<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768화>
“이런 사건은 얼른 검찰에 넘겨 재판을 받게 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재판이 길어질수록 국민들의 불만이 커지지 않겠습니까.”
정의 구현.
국민들은 그것을 바라고 있었다.
여당의 당사, 홍정필의 사무실. 홍정필이 침을 튀기며 말하는 국회의원들을 보며 빙그레 웃는다.
“거 무쟈게들 받아 드셨나 봅니다.”
“워, 원내대표님!”
“커흠! 그게 무슨 참담한 말입니까! 취소하십시오! 이 모두 민생 치안을 위해 드리는 말입니다!”
홍정필을 성토한 그들이 어떻게 좀 해 달라는 듯 당대표를 힐끔거린다.
차를 홀짝이던 여당 당대표가 찻잔을 내려놓는다.
“민생 치안을 위한 의원들의 마음을 곡해하지 말아 주십시오, 원내대표님.”
“뭐, 그렇다고 칩시다.”
“원내대표님.”
“나도 사태의 심각성을 아니까 그만하시란 말입니다.”
그 말과 동시에 차갑게 가라앉은 홍정필의 눈이 이 자리에 모인 국회의원들을 훑는다.
“어흠.”
“커흠.”
‘쯧.’
상황이 고약하게 됐다.
이 자리에 모인 국회의원의 숫자만 무려 9명이다.
초선이나 2선 등 신진 국회의원들은 격이 맞지 않아 참석을 하지 않았는데도 무려 9명.
야당들까지 합하면 대체 몇 명의 국회의원이 이번에 검거된 깡패들과 연관이 됐을지 가늠을 할 수가 없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다시 한번 자신들 정치인들에게 실망을 할 것이고, 이 일을 잘못 대처했다가는 자칫 국민들이 국회 해체, 타도 국회라는 말을 외치며 시위를 벌일 수도 있는 심각한 상황이다.
그렇게 되면 이 중 그 누가 책임을 피할 수 있을까.
홍정필 원내대표 본인 역시 원내대표직을 내려놓아야 할 것이다.
그건 옆에서 고고한 척 구는 당대표도 마찬가지다.
“그러게 왜 탈 날 걸 알면서도 처먹어 가지고 이 사단을…….”
“크흠흠!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을 하십니까.”
“그렇습니다. 먹긴 뭘 먹습니까.”
“그래요. 경찰에게서 사건을 뺏어서 검찰로 넘기도록 손을 쓴다고 칩시다. 그러면 검찰은 막을 수 있습니까.”
옛 중수부장이자 현 서울중앙지검장의 수족인 강철선 검사가 이번 특수본의 본부장직을 맡았다.
윗선의 압력에도 결코 굽히지 않는 대쪽 같은 검사.
선배 검사로서 그런 후배가 검찰을 지켜 주고 있다는 것이 참 대견하고 고맙지만, 지금으로선 골치가 아플 수밖에 없다.
“누가 뭘 막는다고 하십니까. 저흰 어디까지나…….”
“아아, 됐고요. 방도를 한번 찾아볼 테니 의원님들도 자리로 돌아가 계세요.”
“……원내대표님과 친분이 있는 경찰이 경찰 상부와 참 친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순간 홍정필이 속으로 이를 악문다.
‘이것들이 감히!’
“제가 방법을 찾아볼 테니 지금은 돌아가 계시란 말입니다. 제가 그렇게 미덥지 못합니까?”
찔끔!
홍정필의 음성이 서늘해지자 국회의원들의 목이 자라목처럼 움츠러든다.
“그, 그럼 원내대표님만 믿겠습니다.”
그렇게 3선 의원들이 몸을 일으켜 나가자 홍정필의 눈빛이 삭막해진다.
그는 아직 자리를 뜨지 않고 남아 있는 당대표와 4선 이상의 다선 의원들을 차례로 훑었다.
“아무래도 살과 뼈를 가르는 결단을 내려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어쩔 수 없겠지요.”
그들도 누군가는 책임을 지고 금배지를 반납하는 상황까지 염두에는 두고 있었다.
여차하면 당의 중진, 방금 자리를 떠난 3선 의원들 중 한 명의 금배지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런 그들의 말에 홍정필이 가소롭다는 듯 웃는다.
“참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계십니다.”
“……그 최종혁이란 친구가 그렇게 골치 아픈 겁니까?”
당 원로들의 눈빛이 차가워지자 홍정필이 한숨을 내쉰다.
“그 친구가 어떤 일을 해냈는지 벌써 잊으신 겁니까?”
온전히 그 덕분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박명후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에 종혁의 역할이 크다는 건 아는 사람은 모두 인정하는 사실이었다.
만약 당시에 종혁이 박명후가 아니라 현몽준을 밀어줬다면, 대통령은 현몽준이 됐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그렇다.
홍정필 자신이 야당의 유력한 대선 후보인 현몽준과 백중세를 이룰 수 있는 건, 종혁이 현몽준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손을 내밀어 준 덕분이었다.
“본인의 자리에서 본인이 맡은 바 일을 열심히, 그리고 잘하는 친구입니다. 괜히 거위의 배를 가를 생각 하지 마시란 말입니다.”
그 말에 원로들의 눈이 가늘게 떠진다.
‘우리가 모르는 게 더 있나 보군.’
‘어찌 일개 경찰이…… 허어.’
“……믿을 만한 겁니까?”
“그 친구는 정도를 지키는 칼입니다. 이 정도면 대답이 됐습니까?”
누구든 벨 수 있지만, 결코 함부로 휘두르지 않는 칼.
적대한다면 그 무엇보다 무섭지만, 같은 편이라면 참 든든한 존재.
“호오. 홍 대표가 그렇게 말한다면야…….”
마냥 강직한 부류가 아니라는 말.
그들의 눈이 그제야 만족의 호선을 그린다.
“알겠습니다. 그럼 홍 대표를 믿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몸을 일으킨 원로들과 당대표가 나가자 홍정필이 한숨을 내쉰다.
“경찰은 아직 진짜배기 장부를 못 찾았다 하지만…….”
그래서 의원들이 자신의 사무실까지 찾아와 이렇게 압박을 한 것이다. 홍정필도 경찰을 압박하길 바라며 말이다.
“정말 못 찾은 건지, 아니면 찾아 놓고도 모른 척하는 건지…….”
종혁의 성격이라면 후자에 가까울 테지만, 그랬다면 분명 연락을 먼저 해 왔을 것이다.
그런데 아직까지 감감무소식.
정말 못 찾았다면 다행이긴 하지만, 그래도 넘어야 할 산이 또 있다. 검찰의 대나무, 강철선 검사.
“골치 아프구만.”
일단 종혁에게 연락을 해 봐야 할 것 같다.
그가 그렇게 핸드폰을 드는 순간이었다.
똑똑똑!
“들어와요.”
“의, 의원님.”
“……무슨 일이야?”
사무실 안으로 들어온 보좌관의 낯빛이 파랗다.
“이, 이것 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음?”
보좌관이 내민 작은 박스, 그 위의 메모를 본 홍정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는다.
-친구들이 준 선물입니다.
“선물……?”
누가 장난이라도 치는 것일까.
이내 박스의 내용물을 확인한 홍정필은 두 눈을 부릅떴다.
“……자네 말고 이 내용물을 본 사람이 또 있나?”
“퀵으로 전달된 걸 제가 직접 받았습니다.”
보좌관만 알고 있단 소리였다.
“이 자료를 다 살필 때까지 함구해.”
“예. 지금부터 사무실 출입을 통제하도록 하겠습니다.”
홍정필은 보좌관이 나가자 다급히 박스 속 내용물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렇게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얼마나 살폈을까.
“허어.”
크다.
이 내용물들이 진짜라면 정말 국민들이 국회 해체를 외치며 거리로 나올 정도로 끔찍한 사안이다.
현재 경찰이 확보한 증거들까지 합하면 박명후 대통령도 감당할 수 없는, 내년부터 시작될 대선을 생각하면 가히 재앙이라고 할 수 있는 핵폭탄.
그런데 반쪽짜리 핵폭탄이다.
거기다 누가 봐도 복사본.
홍정필의 떨리는 눈이 다시 박스의 맨 위에 있었던 쪽지를 쳐다본다.
“그랬군.”
이제 알겠다. 이걸 누가 준 것인지.
참 많은 의미가 섞인 허탈한 한숨을 내뱉은 홍정필이 꺼 뒀던 핸드폰을 켠다.
-예, 최종혁입니다.
“납니다.”
-……이 나라를 위해 써 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역시나 종혁이었다.
“감사합니다, 최 서장. 내 이 은혜는 꼭 갚도록 하겠습니다.”
-청와대에서 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꼭 대통령이 되라는 말.
통화를 종료한 홍정필이 다시금 허탈이 웃는다.
“정말 빚을 많이 지는군.”
대체 이 빚을 어떻게 갚아야 할까.
고개를 저은 그는 핸드폰을 들었다.
“납니다, 현 대표.”
-……장소는 그 한정식집으로 잡을까요?
“시국이 어수선하고, 기자들 시선도 있으니 그냥 청와대에서 봅시다.”
박명후 대통령도 알아야 할 사안이다.
아니, 정확히는 박명후 대통령의 재가까지 필요할 상황이다. 국회의사당을 물갈이해야 되니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미국과 러시아 친구들이 이 나라 곳곳에 목줄을 채울 판. 여기에 종혁이 다치지 않을 방법도 생각해야 한다.
통화를 종료한 홍정필은 몸을 일으키며 피식 웃는다.
“대통령은 좀 나중에 되려고 했는데…….”
그런데 종혁이 욕심을 내라고 한다.
“거, 사람 참.”
다시 고개를 저은 홍정필은 박스를 옆구리에 끼고 사무실을 나섰다.
* * *
한편 홍정필, 현몽준과의 통화를 종료한 종혁이 씁쓸히 웃는다.
“거지 같지만 이게 최선이지.”
경찰이라는 조직이 가진 권한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엔 한계가 있었다.
그렇다면 그럴 만한 힘을 지닌 사람에게 해결을 맡기면 되는 것이었다.
“두 분이라면 믿을 만하니까.”
혹여 장부 속 인물 중 누군가 처벌을 받지 않는다고 해도 뜻이 있는 것일 터.
종혁은 둘을 믿기로 하며 핸드폰을 들었다.
그 순간 그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어, 그래. 태흥아, 이제 시작해라.”
무주공산이 된 서울과 전국 대도시들의 접수를.
“다시 한번 말하는데, 일반인들을 건드리거나 마약 취급하면 정말 뒈진다. 알았냐?”
-예, 옛!
종혁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돌아가기 전에 한 가지 더 마무리해야 될 일이 있었다.
* * *
짝짝짝짝짝!
“축하드립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서울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로 잠시 복귀하는 팀장과 팀원들을 향해 박수가 쏟아진다.
“축하해. 이거 이러다가 본청 가는 거 아니야?”
“진급하겠어?”
“아하하. 아닙니다. 진급은요.”
“이번에 특수본에 참가한 경찰들 모두 1계급 특진이라는 말도 나오던데?”
“뭐든 감사할 뿐이죠.”
어색하게 웃으며 자리에 앉은 그들.
확실히 엄청난 특진 포인트와 인사고과, 막대한 상여금이 예약되어 있다.
하지만…….
‘이런 개!’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컴퓨터를 켜자마자 몸을 일으킨 팀장이 강력범죄수사대 사무실을 빠져나가 옥상으로 향한다.
콰앙!
“씨바알-!”
문을 걷어찬 팀장이 가슴속에 끓는 울화를 쏟아 낸다.
“내가 맡았다고! 내가!”
이정백을 잡은 건 종혁이었지만, 이정백을 포함해 강남범동방파의 사건을 맡은 건 자신이었다.
조금만 빨랐어도. 이정백이 조금만 빨리 말하기만 했어도 이 모든 영광을 자신이 독차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1계급 특진?! 씨발! 2계급, 3계급 특진도 했지!”
근무 중 사망을 하지 않는 이상, 그것도 언론에 대서특필이 될 정도가 아닌 이상 결코 받을 수 없는 2계급 특진.
고작 며칠 사이에 검거된 깡패들의 숫자가 무려 1800여 명.
이번 일은 그 정도의 사안이었다.
“독식만 했으면-!”
그 모든 것이 자신의 것이었다.
또한 고작 31살임에도 총경인 애새끼, 종혁의 콧대를, 그 잘난 척하던 콧대를 뭉개 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겨우 인사고과와 상여금으로 끝난 것이다.
자문으로서 활약했던 종혁과 달리, 특수본에서 아무런 활약도 하지 못한 그.
유대춘의 별장에서 종혁과 드잡이질을 한 이후에는 그저 일개 부품으로 전락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그런 부품으로.
종혁을 떠올린 팀장은 발을 쿵쿵거리며 분노와 짜증을 쏟아 냈고, 닫힌 옥상문을 잡던 이성동이 슬그머니 몸을 돌린다.
‘어이쿠.’
놀란 그의 얼굴에서 비죽이는 웃음.
‘특수본에서 왕따당했나 보네.’
말하는 꼴을 보니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그러게 사람이 심보를 곱게 써야지.”
물론 그가 심보를 곱게 썼다고 해도 종혁이 아니었다면 어차피 이루어 낼 수 없었을 성과였지만.
평소 얄밉기만 하던 팀장이었기에 이성동은 실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오늘은 팀원들이랑 술이나 마실까?”
평일이긴 하지만, 왠지 취하지 않을 것 같은 기분.
배시시 웃으며 사무실로 돌아간 순간이었다.
“바, 반장님!”
“뭐야. 어디 가게? 마침 잘됐다. 출장 나갔다가 사무실로 복귀하지 말고…….”
“무슨 소리 하세요! 반장님도 얼른 옷 입으세요!”
“……왜 그러는데?”
“지금 삼전의료원에서 연락이 왔는데……!”
이성동 반장은 이어진 말에 다급히 점퍼를 챙겨 들며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 * *
“이게 사람이야, 걸레야?”
마치 미라를 연상케 하듯 온몸이 붕대로 칭칭 감긴 한 사내.
이성동이 낯빛을 굳히며 응급실 담당 의사를 본다.
“이게 저 사람의 옷 속에 들어 있었다는 겁니까?”
이성동이 가죽 커버가 씌워진 책을 들어 올린다.
표지에 ‘서울경찰청 강력계 이성동 반장님께 신고해 주세요’라는 쪽지가 붙은 책.
응급실 담당의가 고개를 연신 끄덕인다.
길거리에 쓰러져 있던 걸 신고를 받아 병원으로 옮긴 사내.
그는 전신에 자상과 화상, 골절상 등 누가 봐도 지독한 악의에 의해 넝마 꼴이 된 상태였다.
목숨이 위급할 정도의 중환자였기에 우선 치료부터 한 뒤에 보호자를 찾았지만, 도무지 신원을 확인할 수 없었다.
대신 책 한 권을 발견했는데…….
“그런데 내용이 너무 심상치 않아서…….”
두려움에 떠는 의사의 모습에 이성동이 책을 펼친다. 그리고 의사의 말을 곧 이해했다.
“이런 미친!”
“왜 그러세요, 반장님!”
“뭔데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큰일을 하셨습니다.”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접수는 누가…….”
“막내야, 선생님 따라갔다 와.”
“예, 알겠습니다. 가시죠, 선생님.”
한순간이라도 저 환자와 같은 공간 안에 있고 싶지 않은 의사는 재빨리 병실을 빠져나갔고, 이성동은 궁금해하는 팀원들에게 책을 내밀었다.
그리고…….
“이런 개……!”
“반장님, 이 새끼 설마?”
“그래. 아무래도 청부업자 같다.”
살인청부업자.
책 속엔 그가 알고 있는 미제 사건들도 있었다.
살해를 당한 게 분명한데 범인을 찾을 길 없던 미제 사건이나 누가 봐도 사고사였지만 담당 형사의 의심에 의해 미제로 남은 사건들.
그 외 그가 모르는 사건들.
책 속의 내용이 진실이라면 이놈에게 당한 피해자의 숫자만 무려 47명이나 된다.
“너 이거 가져가서 사실 확인하고, 너흰 병실 지켜. 이 새끼 수갑 채우고 절대 도망가지 못하게 지키란 말이야. 알았어?!”
“예!”
이성동은 빠르게 움직이는 팀원들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처형.’
이건 처형이다.
‘누굴까.’
경찰도 존재 자체를 몰랐던 살인청부업자를 잡아다가 저렇게 걸레짝으로 만들다 못해 자신에게 던져 준 사람이.
낯빛을 굳힌 이성동 반장이 병원을 빠져나갔다.
한편 삼전의료원의 주차장.
찰칵! 치이익!
“열심히 뺑이 치십쇼, 반장님.”
고정숙의 의뢰 부분만 제거한 책 속에 기록된 사건들의 진범만 밝혀내도 특진은 따 놓은 당상.
이건 자신이 옛 인연인 이성동 반장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그럼 할 일도 다 끝났으니까 돌아가 보실까?”
이 춥고 칼바람 부는 서울보다 훨씬 따뜻한 남쪽, 신안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부르릉!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종혁의 입가에 미소가 맺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