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761화>
성광교회 겨울수련회
동일관광
그런 글귀가 붙은 앞 범퍼가 찌그러진 버스를 본 김종두가 눈을 가늘게 뜬다.
온몸이 오싹해지는 느낌.
촉이 서는 순간이었다.
“사고가 났나 보네요.”
팽팽하게 당겨지던 긴장의 끈을 끊어 버리는 종혁의 음성에 김종두가 다급히 종혁을 본다.
어느새 앞만 보고 있는 종혁.
‘아닌가?’
촉이 자신보다 더 비상한 종혁이 무시를 하고 있다.
김종두와 정용진 과장의 눈이 더 가늘어질 때, 종혁의 입이 다시 열린다.
“찬송가 소리 안 들리세요?”
-천사들의 노래가 하늘에서 들리니…….
정말로 그들의 귓가를 희미하게 파고드는 찬송가 소리.
“……이런 날씨에 뭔 수련회를 가나 모르겠네.”
“뭐, 신앙이 날씨를 따지겠습니까.”
종혁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을 계속 쳐다보는 정용진의 눈빛을 외면하고 앞을 쳐다봤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차량 두 대는 넉넉히 지나갈 외길이 나오자 그들의 긴장이 다시금 팽팽하게 당겨진다.
“곧 진입합니다. 모두 장비들 다시 점검하세요.”
-치익! 2호차 수신!
-3호차 수신 완료.
무전기를 내려놓은 정용진도 가슴에 찬 총을 꺼내 약실을 점검한다.
‘부디 늦지 않았기를.’
부디 지금까지도 싸우고 있기를.
유대춘이 사망하지 않았기를.
정용진은 간절히 빌며 핸드폰을 들었다.
“특수본 본부장 정용진 경무관입니다. 기동대 지금 어디쯤입니까.”
-지금 후미가 보입니다!
“도착하면 바로 하차해서 퇴로부터 막으세요.”
-예!
“관리관님!”
운전석에 앉은 경찰의 외침과 함께 부서져 활짝 열린 유대춘 별장의 대문이 보인다.
긴장이 바짝 선 정용진이 다급히 무전기를 든다.
“모두 다치지 맙시다! 진입! 진입!”
부아아아앙! 끼이이익!
부서진 대문 안으로 난입을 하자마자 재빨리 차에서 내리는 그들.
다급히 패싸움 현장을 향해 발을 떼려던 그들은 그대로 멈출 수밖에 없었다.
뭔 일이 있어도 크게 있었다는 듯 진흙탕이 된 정원 여기저기에 흩뿌려진 다량의 피. 문제는 시신이나 부상자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빌어먹을!’
끝났다. 상황이 모두 끝난 거다.
“보, 본부장님.”
“……119에 연락하고 샅샅이 뒤져요!”
혹시 모른다. 이 참변에 몸을 숨긴 깡패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예!”
경찰들이 다급히 연장을 꼬나들며 흩어진다.
그렇게 몇 분이 흐르자…….
-치익! 보, 본부장님-!
저택의 2층에서 터져 나오는 외침.
다급히 걸음을 옮긴 정용진과 김종두은 서재에 벌어져 있는 참극에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복부에 두 방의 자상을 입은 유대춘.
종혁은 뭐가 그리 원통한지 두 눈을 부릅뜬 채 혀를 빼물고 죽은 유대춘의 코에 손을 가져갔다.
“……사망했습니다.”
“아아악! 씨부럴!”
현 시간부로 최소 몇 주, 피가 마르는 야근 확정이었다.
‘아, 야근은 별론데.’
김종두의 고함에 종혁은 씁쓸히 웃었다.
* * *
웅성웅성!
“아이고. 이거 시원섭섭하네.”
“그러게 말이야. 유대춘이 이렇게 갈 거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겠어. 끄흑! 어, 시원하다.”
망자를 앞에 두고 할 생각은 아니지만,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것 같다.
수십 년간 경찰을 괴롭힌 범동방파의 보스 유대춘.
세상이 좋아져 몇 번이나 교도소를 보낼 수 있었지만, 그가 한참 활개를 치던 80년도에는 검찰도 함부로 터치할 수 없는 개새끼였다.
그런 놈이 깡패답게 비명에 갔으니 속이 시원할 수밖에 없었다.
“본부장님!”
경찰들이 저택 후문을 바라봤다가 한숨을 내쉰다.
들것에 실려 오는 네 명의 사람. 아니, 네 구의 시신.
“저 새끼 춘식이 아니야?”
“맞네, 춘식이.”
이름이 참 촌스러운 김춘식. 유대춘의 오른팔이자 범동방파의 2인자다. 그가 시신이 되어 실려 오고 있다.
‘하, 요 새끼 봐라?’
시신이나 부상자들까지 싹 다 치운 오정훈, 이놈이 우대춘과 김춘식은 남겨 뒀다.
과시용이다.
자신이 유대춘을 죽였다는 걸 온 세상에 알리려는 거다.
“꽤 머리가 돌아가는 새끼네.”
여기저기에 피가 상당히 뿌려져 있긴 하지만, 시신이라곤 유대춘을 비롯해 다섯 구가 전부였다.
아마 오정훈 이놈은 나중에 자기 밑에 있는 조직원 한두 놈만 유대춘과 김춘식의 살인범으로 자수시킬 생각일 터.
제아무리 특수본을 설치했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자수자가 나오면 더 이상 사건을 수사하기가 힘들어진다.
사건 현장에서 검거한 게 아니라면 다른 공범자가 있다 한들, 그를 입증할 만한 증거를 찾기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경찰들이 깡패들을 검거할 때 일거에 잡아들이는 것이기도 했다.
깡패 새끼가 깡패 새끼답게 머리를 잘 굴린 거다.
하지만 여기까지도 전부 종혁의 예상대로.
이제 다음 계획을 실행할 차례였다.
‘흠. 언제쯤 개입을 해야…….’
“최 서장님.”
몸을 돌린 종혁이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서울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 팀장의 모습에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씩씩거리며 다가온 그.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주어가 빠진 것 같은데요.”
“우리 청이 강남범동방파를 뺏어 간 게 그렇게 고까웠습니까?!”
저택을 뾰족하게 울리는 외침.
종혁은 몰리는 시선에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어이.”
“뭐요? 어이?”
“당신이 뭔 착각을 하는 줄은 알겠는데……. 여보세요, 팀장 나으리. 당신은 여기 본청이 그렇게 호락호락해 보여? 어?!”
“…….”
종혁은 입을 꾹 다무는 그를 향해 이를 드러냈다.
“좆같은 알력 싸움 그딴 개소리할 거면 딴 곳 가서 하세요. 씨발. 누굴 개 찐따 새끼로 아나.”
“……당신이 강남범동방파에 대해 가장 잘 알아서 자문으로 뽑혔단 말입니까?”
“아니면 장희락 경찰청장님이 미쳤다고 날 자문으로 뽑았겠어? 그리고 당신이 잊었는지 모르겠는데, 나 이전까지 특수범죄수사대 대장이었어.”
대한민국 조폭들에 대해선 종혁 자신이 가장 잘 안다는 말이다.
“당신은 모르겠지만, 여기 본청엔 서울청이 모르는 정보들도 많아요. 아시겠어요?”
“……두고 보겠습니다.”
이를 악문 팀장은 돌아섰고, 종혁은 그런 그를 보며 코웃음을 쳤다.
“지랄하네.”
“큭큭. 야, 종혁아.”
“에헤이. 서장님이요, 최종혁 서장님.”
“지랄하지 마세요.”
“푸흐흐. 왜요?”
“너지?”
종혁은 김종두와 그 옆에 선 정용진의 가늘게 뜬 눈에 입맛을 다셨다.
“아까 그 버스 강남범동방파 새끼들 맞지?”
텄다. 오리발을 내밀어 봤자 먹히지 않을 것 같다.
“쩝. 그건 또 어떻게 눈치채셨어?”
움찔!
“와, 이 새끼!”
놈들이 강남범동방파라는 걸 알았다면 종혁은 도대체 왜 그냥 놈들을 보내 준 것일까?
그 이유로 떠오르는 건 하나뿐이었다.
“너 도대체 뭔 짓을 벌인 거야?!”
유대춘이 건강을 회복했다면 자연스레 범동방파의 세력도 살아나게 될 텐데, 어째서 다른 조직들까지 충동질해 강남범동방파를 쳤을까.
김종두는 그것이 계속 의아했다.
그가 아는 유대춘은 치졸할 뿐, 멍청한 놈은 결코 아니었다.
그래서 혹시나 전적이 많은 종혁이 이번에도 배후에 있지 않을까 했는데, 신안에 있는 놈이 뜬금없이 특별대책수사본부에 합류하기에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쉿! 쉿!”
종혁은 다급히 둘의 입을 막았고, 둘의 눈이 더 가늘어졌다.
“불어, 인마.”
“쩝. 100억을 던졌습니다.”
“흡?!?”
“이, 이런 미친 새끼!”
김종두 과장이 종혁의 멱살을 잡는다.
그에 종혁은 정말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전 그냥 강남범동방파의 모든 걸 알아 오라고 했을 뿐이에요. 정말입니다!”
그랬을 뿐인데, 상황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는 항변에 김종두가 의아해한다.
“왜?”
서울청에 먹잇감을 뺏겨서 빡쳤다고 이런 일을 저질렀을 리는 없다.
제아무리 막 나가는 종혁이라지만, 자신이 아는 최종혁은 정말 부당한 명령이 아니고서야 조직의 체계를 존중하는 놈이기 때문이다.
그에 의아함을 드러내는 그들을 보며 종혁은 이를 악물었다.
“엄마가 그 새끼들한테 당할 뻔했거든요.”
“뭣?! 제수씨는!”
“다행히 무사하세요.”
아니, 살인청부업자가 왔다는 것도 모르고 있다.
“아무튼 이제 왜 그런지 아시겠죠?”
이해가 된다.
하지만 그렇기에 속이 답답해진다.
“……이것 하나만 말해. 네 목표가 뭐냐?”
“강남범동방파 이 새끼들 조지는 거요. 지금은 그것 말곤 관심 없습니다.”
손을 저은 종혁은 김종두와 정용진을 일견하곤 돌아섰고, 둘은 그런 종혁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저 자식 아무래도 깡패들에게 목줄을 채우려는 것 같지 않습니까?”
“뭐든 대한민국 국민과 이 경찰 조직을 위해서겠죠.”
최종혁은 그런 경찰이니 말이다.
대한민국의 그 어떤 경찰도 성공하지 못한 일이라도 종혁이라면 해낼지 모른다.
둘은 고개를 저으며 종혁의 뒤를 따랐다.
그 순간이었다.
부우우우웅! 끼이이익!
대문에 쳐진 폴리스라인 앞에 줄줄이 멈춰 서는 차량들에서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들이 내린다.
“큰형님-!”
“씨발! 비켜, 이 짭새 새끼들아!”
“……저 새끼들도 잡으세요.”
정용진과 김종두는 한숨을 내쉬었다.
* * *
충격! 국내 최대 규모의 폭력 조직 범동방파 두목, 유 모 씨 살해!
특수본, 왜 막지 못했나!
시민들의 반응은?
유 모 씨 장례는 어디에서?
몰리는 인파들!
80년대 격동의 시기를 보낸 사람들이라면 거의 다 아는 이름, 범동방파의 보스 유대춘.
한때 일본 야쿠자, 중국의 삼합회와도 유대 관계를 가지며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대의 조직이었던 범동방파를 이끈 그가 살해당했다는 소식에 그를 기억하는 이들은 잘됐다는 듯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그러며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밤이 조금 더 안전해졌으니 말이다.
* * *
대앵! 대앵!
범종 소리가 울려 퍼지는 어느 절.
검은 양복을 입은 수많은 사람들이, 험악하기 짝이 없는 인상을 지닌 사람들이 비통한 얼굴로 차에서 내리며 절로 향하는 계단을 오른다.
“아이고! 아이고!”
“큰형님! 이렇게 가시는 게 어디 있습니까!”
“어떤 새끼야! 어떤 개새끼가 우리 큰형님을 죽였어-!”
누군가는 절간의 문지방을 넘기도 전에 곡을 했고, 누군가는 문지방을 넘자마자 주저앉아 땅바닥을 친다.
일반인들에겐 공포의 상징이었지만, 그들 깡패들에게 있어선 전설이자 제왕이었던 유대춘.
그에게 은혜를 입은 깡패들이 답지 않게 울어 대며 장례식이 진행되는 절을 더 어둡게 만든다.
“지랄들을 하네.”
땅바닥에 침을 뱉는 종혁.
김종두와 정용진도 가래를 가득 모아 침을 뱉는다.
“어이구. 새까맣기도 하다.”
“전국 깡패 새끼들은 다 모인 것 같네요. 어이구, 저 새끼는 범삼성파 보스 새끼 아니에요?”
“어디? 오, 진짜네!”
마치 염색이라도 한 듯 새하얗게 센 머리를 한 노인이 다른 깡패의 부축을 받으며 계단을 올라가고 있다.
“이야, 저 새끼 얼굴 오랜만에 보는데? 어? 신21세기파 새끼들이랑 선양OB 새끼들도 왔다.”
죄다 전국구라 불리는 조직의 보스나 간부들.
노다지다.
종혁은 뒤에 세워져 있는 검은색 승합차의 창문을 두드렸다.
“안에 계시는 팀장님들, 잘 찍고 계시죠?”
“걱정 마십쇼! 잘 찍고 있습니다!”
종혁과 김종두, 정용진이 눈을 가늘게 뜬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 새끼들 누가 유대춘을 죽인 건지 모르는 것 같죠?”
흠칫!
종혁의 말에 김종두와 정용진이 고개를 끄덕인다.
“어. 그런 것 같다.”
오정훈을 언급하는 놈들이 한 놈도 없다. 아무래도 별장에서의 일이 밖으로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흠…… 사전에 이야기했던 대로 진행할까요?”
혹시나 오정훈이 곧바로 나서지 않았을 경우를 대비하여 준비한 플랜 B.
“아, 때마침 적당한 놈이 오네.”
유대춘의 왼팔이자 범동방파의 넘버 3, 고경철.
현재로선 범동방파 보스 등극이 가장 유려한 인물이다. 그런 그가 부하들을 이끈 채 씩씩거리며 다가오고 있다.
“오랜만입니다, 반장님?”
“반장은 무슨. 본청 과장 된 지가 언젠데. 오랜만이다, 경철아?”
김종두가 넉살맞게 웃으며 손을 흔들자 고경철의 얼굴이 구겨진다.
“이 대한민국에 큰 발자국을 남기셨던 큰형님께서 가시는 길입니다. 자중해 주시죠?”
“무슨 자중?”
“저렇게 대놓고 사진을 찍어 대는데 조문객들이 껄끄러워서 조문을 하겠습니까?”
“에이, 우리가 이러는 거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그냥 무시해. 봐, 다 무시하잖아.”
“씨발. 내 눈이 삐꾸도 아니고 어떻게 무시를 해?”
“왜? 이참에 삐꾸로 만들어 줘?”
“이 양반이 지금…….”
“말이라고 내뱉으면 단 줄 아나! 어이, 이보쇼!”
발끈하는 부하들을 말린 고경철이 치미는 분노를 삭인다.
“적당히들 합시다. 씨발. 고인의 명복은 빌어 주지 못할지라도 방해는 하지 말아야지.”
‘딱 좋네.’
타이밍과 출연 배우의 중요도도 딱 좋다. 아니, 이보다 좋을 수가 없다.
김종두, 정용진과 시선을 나눈 종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서는 고경철을 향해 입을 열었다.
“지랄한다. 뭐, 얼마나 대단한 놈이 죽었다고.”
까득!
“……이쪽 분은?”
“왜? 내 이름을 들으면 누군지 알고?”
“아, 당신이 본청 불도저 최종혁이란 경찰 나으리시구만? 반갑수다. 오다가다 만날 사이니 인사나 합시다. 고경철이요.”
종혁은 내밀어지는 손을 보며 피식 웃었다.
“지 형님 배때기를 누가 쑤셨는지도 모르는 놈들이 인사는 무슨.”
쿵!
까드드드득!
고경철의 얼굴이 귀신보다 더 흉악하게 일그러진다. 종혁이 정곡을 찔렀기 때문이다.
사건이 발생한 그 시각 고경철 자신에게 전화를 걸었던 김춘식. 하지만 일이 있어서 연락을 받지 못했고, 이후 김춘식의 전화를 받은 조직원은 아무도 없다.
그에 누가 큰형님 유대춘과 이인자인 김춘식을 죽였는지 아무도 알지 못하는 상태였다.
“지들이 키우던 개새끼한테 물린 줄도 모르는 새끼들이……. 쯧쯧. 에휴, 됐다. 가라.”
움찔!
“그 말의 의미가 뭐요?”
종혁은 죽일 듯 노려보는 그를 보며 씩 웃었다.
“아까 보니까 육개장 건더기들이 실하더라.”
“……씨발!”
이를 간 고경철은 몸을 돌렸고, 종혁과 김종두, 정용진은 서로를 향해 씩 웃으며 고경철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그들은 짐승들이 넘쳐 나는 더러운 우리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