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758화>
부우웅! 스르륵!
서울의 외곽, 고풍스런 한옥으로 지어진 한정식 식당의 주차장으로 고급 세단 한 대가 들어서자 주차장에 서 있던 검은 양복을 입은 수많은 사내들이 일제히 주목을 한다.
탁!
“내가 제일 늦은 건가.”
이태흥이 문을 열고 내리자 허리를 깊이 숙이는 검은 양복의 사내들.
그들을 무시한 이태흥이 대문을 넘어 식당 안으로 들어선다.
스륵!
안내된 방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를 향해 주목되는 시선들.
인상이 험악한 장년인들의 시선에, 한가득 기백을 내뿜는 그들의 박력에 이태흥이 입술을 비튼다.
“이거 늦었습니다. 오랜만입니다, 선배님들.”
“목포에서 출발한 거면 늦을 수 있지.”
“오랜만입니다, 이 회장.”
몸을 일으켜 서로 악수를 하는 여섯 명의 장년인.
빈자리에 앉은 이태흥이 담배를 꺼내 문다.
“후우우.”
방 안을 뿌옇게 물들이는 담배 연기에 장년인들,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전국구 조직의 회장들이 눈을 가늘게 뜬다.
‘참을성 없기는.’
누가 건달 아니랄까 봐 인내심이 부족하다.
그에 속으로 웃은 이태흥이 담배를 끈다.
“공사다망한 분들을 모셔 놓고 너무 여유를 부렸나 보군요.”
“허흠.”
“큼.”
“그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평소 저와 친분이 깊은 어느 재력가분께서 제게 100억의 현상금을 걸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보고 강남범동방파를 물어뜯어라는 말 아닙니까.”
“정확히는 그놈들에 대한 모든 걸 알아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최종혁이가?”
움찔!
이태흥이 진한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인물을 바라본다.
부산을 꽉 잡고 있는 조직인 삼성파 계열의 보스.
현재 독립해 서울의 일각을 지배하는 범삼성파의 보스가, 조직원의 숫자만 무려 85명인 그가 나른하게 웃으며 담배를 문다.
“가만 생각해 보니 와 전라도 사람이 강남범동방파를 노리나 싶데? 이 회장이 아는 사람이라고 해 봤자 전라도에서 콧방귀나 좀 뀌는 사람이나 목포 국회의원일 낀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전라도 재력가가 강남범동방파와 마찰이 있을 일은 없을 테고, 그렇다고 국회의원이 강남범동방파의 작태에 기분이 상한 것 치곤 현상금의 액수가 너무 크다.
그렇다고 이태흥이 그런 국회의원에게 잘 보이려 꼬리를 흔든다고 치기에도 또 너무 큰 액수.
그러다 보니 하나의 결론에 도달하게 됐다.
“돈이 넘쳐 흐르는 최종혁이가 강남범동방파 애들을 우째하려고 서울청과 짝짜꿍하려카다 나가리됐다카드만은 그 일 때문이가?”
본청의 불도저 최종혁.
수천억의 자산이 있음에도 경찰이나 하는 미친 또라이.
그리고 수사에 돈을 아끼지 않는 미친 새끼.
비록 종혁이 그들에게 무슨 짓을 한 건 아니지만,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 그 이름 한 번 들어 보지 못한 사람은 없었다.
모든 것이 낱낱이 밝혀진 상황에 이태흥은 도리어 웃었다.
“그래서 문제 있습니까?”
“문제? 많제!”
정말 최종혁이 이 일을 사주한 거라면, 이 일이 경찰 본청과 연관이 있는 거라면 문제가 커진다.
“그러니 다들 이 대가리에 든 거 없는 다른 조직들을 앞세우려는 거잖습니까. 아닙니까?”
움찔!
이번엔 장년인들의 몸이 굳었다가 그들 모두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맞다. 다들 그 생각을 가지고 이 자리에 참석한 거다.
괜히 이쪽이 피 볼 일 있나. 다른 놈들 다 던져 주고, 자신들은 모두가 뒈진 전쟁이 끝난 이후 남겨질 전리품들만 주우면 되는 거다.
“……선은 어디까지고?”
“불법적인 일, 범죄만 저지르지 않으면 될 겁니다.”
어차피 건달들의 일. 약간의 협박 정도는 용인될 거다.
“그라믄 100억이라꼬?”
“전 그중 15억과 건설사 몇 개만 먹겠습니다.”
움찔!
다시 장년인들의 몸이 굳는다.
“……전라도를 지배하려는 겁니까, 이 회장?”
“어딜요.”
종혁이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그게 가능키나 할까. 종혁의 묵인하에 전라도의 어둠을 손에 넣는 것뿐이다.
“아마 여기 계신 분들도 다 그렇게 되실 테고요.”
여동생의 말도 있고 해서 곰곰이 더 생각을 해 보니 이런 결론에 도달한 그.
종혁이 본청으로 돌아갔을 때 대한민국의 어둠, 최소한 이 자리에 참석한 건달들의 목에 목줄을 채워 한 손에 쥔 채 흔들겠다는 것이었다.
쾅!
“내 이럴 줄 알았지! 그 미친놈이 좌천을 당해?! 누구야! 그딴 말 같지도 않은 말을 한 놈이!”
종혁이 신안으로 내려갈 때만 해도 전임 경찰청장의 목을 직접 날린 죗값을 받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태흥의 반응을 보니 아닌 것 같다.
그냥 때가 됐기에 지방 순회를 도는 것뿐이었다.
즉, 종혁은 언젠가 다시 경찰 본청으로 돌아갈 인물이라는 뜻이고, 이 일은 종혁이 자신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경고였다.
본청 복귀 과시용 첫 제물이 되고 싶지 않으면 알아서 행동하라는.
“이거 최 대장이 자기 입으로 그렇게 말한 겁니까?”
이태흥은 고개를 저었다.
“혹여 그런 의도가 아니라도 최 서장이 우리 쪽으로 눈을 돌리면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고작 조직 하나 날리겠다고 100억을 쓰는 미친놈이다.
그 100억을 이 중 하나에게 준다고 약속하며 옆에 앉은 놈을 치라고 하면 무조건 전쟁이 벌어진다.
그렇게 하면 그 100억을 다 소화시키지 못한 채로 경찰에 일망타진. 100억은 다시 종혁의 손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런 작업을 몇 번만 하면 이 서울, 아니 대한민국은 깡패 청정 구역이 될 수밖에 없다. 물론 그게 다른 재앙을, 더 큰 재앙을 불러오기에 경찰과 검찰들도 자신들을 묵인을 해 주는 것이지만 말이다.
“나중에 좆되기 싫으면 알아서 숙이고 들어가자는 뜻이군.”
“작은 빚이라도 달아 두면 나중에 써먹을 일이 있겠죠.”
이태흥이 그렇게 말하자 다들 생각이 많아진다.
‘이대로 돌아서 러시안룰렛을 돌려? 아니면 가까운 미래에 경찰 고위 간부가 될 미친 또라이와 인연을 만들어?’
뭐든 골치가 아프다.
“……후우. 이 회장, 왜 하필 우리요?”
“최소한 통나무 장사, 뽕 장사는 안 하잖습니까.”
이게 건달을 경멸하는 종혁의 마지노선이 아닐까 싶다. 자신도 통나무, 장기 매매와 마약 판매는 하지 않으니 말이다.
“빌어먹을. 된통 걸렸군.”
“하지만 포기하기엔 너무 큰 판이죠. 어쩌시겠습니까. 고? 다이?”
장년인들의 얼굴이 구겨진다.
“……씨발! 못 먹어도 고!”
텅!
“나도 고!”
경찰 고위 간부가 확실히 되는 간부에게 빚을 지어 두면서 수십, 수백억을 먹을 판이다.
이 판에서 빠지면 병신 소리를 듣게 될 거다.
아니, 여기서 빠지면 분명 이 중 누군가가 자신의 행동을 종혁에게 낱낱이 고해 바칠 거다.
그런 끔찍한 상황은 피해야 했다.
모두가 손을 들자 모든 것이 계획대로 진행된 이태흥은 입술을 비틀었다.
“그럼 여러분이 가진 정보를 공유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이 새끼들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습니까?”
* * *
-호오. 너 의외로 머리 좋다?
오싹!
-아니, 촉이 좋은 건가? 알았으니까, 니들이 이 뒤에 뭔 지랄을 하든 신경을 안 쓸 테니 마약이랑 장기 매매, 일반인 피해만 막아.
너희끼리 지지고 볶는 건 신경을 안 쓴다는 말.
-아, 선봉 세울 애들 명단 작성되면 나한테 넘겨. 너희들이 예쁘게 주울 수 있게 무주공산으로 만들어 줄 테니까. 그리고 내가 말하면 바로 납작 엎드리고. 못 주운 건 나중에라도 챙길 수 있게 해 줄 테니까.
통화가 종료된 핸드폰을 두려움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던 이태흥은 고개를 푹 숙였다.
“씨발. 진짜 이거였네.”
‘무서운 새끼.’
이런 게 진짜 경찰일까.
아니면 이놈이 규격 외의 괴물, 외계인인 걸까.
뭐든 이태흥은 서울의 조직들을 향해 명복을 빌어 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가까운 시일 내에 서울에 올라갈 종혁과 얼굴을 마주할 강남범동방파 놈들의 명복도.
“그나저나 일반인의 피해가 없어야 한다라…… 그러면 되겠군.”
아무래도 소소한 업장들부터 작업해 이 전쟁에서 민간인을 배제해야 할 것 같다.
이태흥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 * *
다시 시간을 돌려 이정백에게 보호비를 뜯기던 식당 안.
“으하하핫!”
태흥건설의 사원들이 호탕하게 웃으며 술과 고기를 흡입한다.
그러나 손님들 그 누구도 그들을 시끄럽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좀 시끄러울 수 있다고, 양해를 부탁한다고 그들의 자리에 내어진 술과 고기들 때문이다.
사장도 그런 태흥건설의 조직원들을 흐뭇하게 바라본다.
‘맨날 이러면 참 좋을 텐데…….’
엄청난 주문량에, 깔끔한 매너까지.
처음에 오해를 해서 너무 미안해 죽을 지경이다.
“이게 주방 식구들만 먹는 특수 부위인데, 맛 좀 보시라고 가져왔습니다.”
“오! 잘 먹겠습니다! 인마들아!”
“감사히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사장님!”
“아이고, 뭘요. 많이들 드세요.”
딸랑!
밝게 웃으며 돌아서던 사장이 그 기분 그대로 반갑게 손님을 맞이하려던 순간이었다.
“어서 오세…….”
담배를 문 채 들어오는 험악한 인상의 사내 네 명.
“여어. 오랜만입니다, 사장님?”
“어휴. 우리 큰형님 없는 동안 사정 좀 폈나 봐? 얼굴에 기름기가 좔좔 흐르네?”
“……오셨어요. 자리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이정백에게 용돈을 찔러 주지 않을 때마다 가게를 찾는 개새끼들이다.
드디어 올 것이 왔음에 사장의 억장이 무너진다.
털썩!
“어구구. 나도 나이가 들었나. 난 일단 삼겹살 10인분. 된장찌개 두 개. 너흰?”
“뭘 물어봐. 그냥 똑같이 다 시켜.”
“들었죠?”
“……예. 곧 음식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아, 사장님. 우리 계산할 게 있죠? 물수건들은 좀 어때요?”
“안 그래도 내일 발주를 넣으려고 했습니다.”
“오케이. 우리 사장님 깔끔하시다. 그럼 보호비는 다 먹고 나가면서 계산하기로 합시다.”
“예.”
고개를 꾸벅 숙이고 돌아선 사장이 이를 악물다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아내를 향해 활짝 웃어 준다.
이 자리까지 오는 동안 이보다 더 험한 꼴도 겪어 봤는데, 고작 이 정도에 무너지랴.
그의 마음이 단단해진다.
‘그래도 다행이네.’
보호세 인상에 관한 이야기는 꺼내지 않아서 말이다.
‘그럼 어떻게 된 거지?’
이정백은 왜 보이지 않는 걸까.
사장은 궁금해하다가 이내 관둬 버린다. 뭐든 어차피 개새끼일 테니 말이다.
한편 사장이 떠난 자리 강남범동방파 조직원 네 명의 표정이 가라앉는다.
“정말 큰형님이 짭새 새끼들한테 잡혀간 거라고?”
“위에서 말했잖아. 평창에 갔던 식구들이 불었다고.”
무려 보름 동안 연락이 안 된 큰형님, 이정백.
며칠 전 위에서 연락이 오지 않았다면 그들은 아직까지도 숙소를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쾅!
“그게 말이 돼?”
평창으로 간 식구들이 어떤 식구들인가.
자신들 중 가장 충성심이 강했기에 간 식구들이다. 그런 식구들이 배신을 했다는 걸 그들은 인정할 수 없었다.
“씨브럴. 그럼 어쩌라고. 위에서 그렇게 말했는데.”
며칠 전 찾아와 그렇게 말하며 선택을 강요한 상부.
이대로 다른 파벌에 흡수될 거냐, 아니면 가진 업장을 몇 개 내놓고 존속을 할 거냐.
당연히 그들로선 존속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혹여 평창 식구들이 배신을 했더라도 이정백이라면 곧 나올 테니까.
그때를 위한 지지 기반을 보존해야 됐다.
“너도 같이 들었잖아.”
“너? 하, 이 개새끼가. 야. 나 너보다 1년 선배야, 이 씹새꺄.”
순간 살벌한 기운이 퍼지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주목된다.
“그래서 뭐? 큰형님이 말 안 하든? 다른 조직에서 뭘 어쨌든 한식구 된 이상 다 같은 식구라고?”
다른 조직에서 1년 일찍 생활을 했더라도 이젠 같은 동료. 2년 이상 차이가 나지 않으면 그냥 동료라고 했다.
“와, 이 개새끼가…….”
한 조직원이 일어서며 점퍼를 벗자 그와 시비가 붙은 다른 조직원도 질세라 옷을 벗으며 몸을 일으킨다.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안다.
이정백이 가장 싫어하는 게 바로 관리하는 업장에서 같은 식구끼리 치고받는 것이니까.
하지만 이정백이 부재중인 이상 한 번 밀리면 끝. 어제까지 야, 야 부르던 놈을 형님으로 모실 순 없었다.
그렇게 둘의 분위기가 흉흉해지자 주변 손님들이 슬그머니 몸을 일으킨다.
“잘 먹고 갑니다.”
“아니, 왜 더 드시지 않고…….”
“배가 불러서요…….”
그러며 이정백의 부하들을 보니 사장의 얼굴이 무너진다.
“죄, 죄송합니다. 다음에 서비스 드릴 테니 꼭 다시 찾아와 주세요.”
“어휴. 어디 저게 사장님 잘못인가요. 수고하세요.”
“죄송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눈물로 손님들을 떠나보낸 사장이 이를 악문다.
이젠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그동안 진상을 부리긴 했어도 이렇게 손님을 쫓아내진 않았던 저들. 그런데 이걸 묵인하게 되면 정말 장사를 접어야 할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이 든다.
‘그래! 한 번 죽지, 두 번 죽어?!’
가족을 위해서, 힘들게 키워 온 이 식당을 위해서 사장은 주먹을 꽉 쥐며 발을 내디뎠다.
그때였다.
“어이! 조용히 좀 먹지?”
“어이? 어이가 없네. 뺨따구를 찢어 버릴…….”
말을 하던 강남범동방파의 조직원의 입이 다물어진다.
어느새 자신들을 감싸고 있는 험악한 인상의 덩치들.
낯익은 냄새가 물씬 풍김에 그들은 주춤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뭐, 뭐야! 씨발! 너희들은 뭐야!”
“눈깔을 똥구멍에 달았나. 아까 들어올 때 이거 안 보였냐?”
태흥건설 운동동아리 천하장사.
‘태흥건설?’
“……모, 목포 태흥파?!”
“다행이네. 그 의미 없는 눈깔에 구멍을 뚫어 주지 않게 돼서.”
움찔!
“이,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여기가 우리 강남범동방파가 관리하는 업소인 거 모릅니까?! 지금 전쟁을 하자는 겁니까?!”
전쟁. 같은 건달들끼리도 웬만해선 꺼내지 않는 말.
“걱정 마. 너희 다른 업장들에서도 다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 테니까.”
놈들이 보호비를 받는 일반 매장들 모두 말이다.
“자, 그럼 친구들. 더 이상 가게 폐 끼치지 말고 나갈까?”
그들에게 어깨동무를 하는 태흥파 간부의 입이 사납게 찢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