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754화>
133. 무법자들
“꺄악!”
사람들이 놀라 물러서고, 종혁이 배를 움켜쥐고 끙끙거리는 놈을 보며 머리를 쓸어 올린다.
“웬 말뼉다구 같은 놈이 기어 들어와서.”
놈의 얼굴 앞에 종혁이 쪼그리고 앉는다.
“어이. 어이.”
짝! 짝!
“너, 너 이 새끼…….”
쩌억!
짜증을 담아 뺨을 후려치자 놈의 입에서 피가 터진다.
“놀러 왔으면 그냥 조용히 놀다 갈 것이지, 왜사 물을 흐리나?”
종혁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강원도 사투리.
“이 동네가 그렇게 만만해 보였나? 응?”
쩍! 쩍!
“말을 안 하네? 내 말이 안 들리나? 뭐야, 니 자나? 에이, 자네.”
“어이!”
고개를 돌린 종혁은 씩씩거리며 다가오는 다른 조직원의 모습에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누구? 아, 일행? 그렇다면 내가 미안해요. 솔직히 이쪽도 잘한 거 없잖아요. 왜 엄한 아가씨들을 추행하고 그래요. 친구 관리를 좀 똑바로 해야겠어요.”
“이 개새끼가!”
종혁의 얼굴을 향해 날아드는 두꺼운 발.
피식 웃은 종혁이 발등을 그대로 후려친다.
빠아악!
“……끄아아악!”
“친구끼리 아주 똑같네.”
“끄으윽! 너, 너 뭐야?”
발등을 움켜쥔 채 주저앉아 종혁을 죽일 듯 노려보는 사내.
종혁은 피식 웃었다.
“뭐긴. 오랜만에 고향 내려온 사람이지.”
빠득!
“……이 동네에서 생활하는 놈이냐?”
“생활? 아, 너 깡패 양아치나? 이야, 요새 깡패 양아치들도 좋게 사나 보다야. 이런 데를 다 놀러 오고.”
“넌 뒤졌다, 이 개새끼야.”
촤악!
“꺄아악!”
놈의 품에서 뽑혀 나오는 칼.
느려지는 시간 속, 종혁은 칼을 빼자마자 달려드는 놈의 팔을 휘감으며 그대로 몸을 뒤로 뉘었다.
그에 강남범동방파 조직원이 속절없이 딸려 오고, 종혁은 놈의 팔을 휘감은 자신의 팔을 위로 잡아 올린다.
뿌드드드득!
“끄아아아악! 흐아아악!”
부러지듯 관절에서 뼈가 뽑혀 버리며 인대가 끊긴 팔꿈치를 움켜쥔 조직원이 얼음 바닥 위를 뒹굴자 종혁이 누웠던 몸을 일으키며 담배를 문다.
그러며 주변을 살피다 혀를 찬다.
‘흠. 똑똑한 놈이 있나 보네.’
이를 악물며 이쪽을 노려보지만 달려들지 않는 조직원들.
아쉬워한 종혁이 팔꿈치를 잡은 채 이쪽을 공포에 질린 눈으로 쳐다보는 조직원을 본다.
찰칵! 치이익!
“왜? 칼 빼 들면 내가 무서워 할 줄 알았나?”
“너, 너 정체가 뭐야…….”
“자라.”
쩍!
주먹으로 턱을 돌려 버린 종혁은 손을 보곤 혀를 찼다.
“에이. 피 묻었네.”
삐요오옹!
“아, 왔네. 여기요, 여기!”
종혁은 저 멀리 다가오는 경찰차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의 미소는 참 해맑았다.
“저 개……!”
-참아.
“하지만 형님!”
-우리가 건달이라고 소문낼래?
낸다고 해도 지금은 아니다.
나중에 서울에서 다른 형님이 내려오셔야 정체를 드러낼 수 있다. 아니면 경찰 등 골치 아픈 일이 생긴다.
-애들 다 빠져나오라고 하고, 한 놈만 파출소에 가 있으라고 해.
“아.”
무슨 뜻인지 알겠다.
“알겠습니다, 형님.”
강남범동방파 조직원은 경찰들과 마주하는 종혁을 보며 입술을 비틀었다.
* * *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들이 바닥에 널브러진 조직원 둘과 종혁을 멍한 눈으로 번갈아 본다.
보통 덩치가 아님에도 뭘 어떻게 맞은 건지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조직원들과 어서 수갑을 채우라는 듯 양손을 내미는 종혁.
“어…… 선생님을 폭행 현행범으로 체포합니다. 선생님은…….”
“들은 걸로 할 테니까 그냥 넘어 갑서.”
“……강원도분이셨네. 그런데 왜사…….”
“진술서 쓰면서 다 말해 드릴게요.”
“예. 선생님은 현 시간부로 체포되는 겁니다.”
철컥!
“막내, 너는 구급차 두 대 불러서 저분들 옮겨라. 저러다 죽겠다.”
“예.”
“선생님은 저와 함께 가시죠.”
종혁은 순순히 경찰을 따라나서며 수사본부의 경찰들 중 한 명에게 따라오라고 눈짓을 보냈고, 이내 순찰차에 올라탔다.
“아니, 열 받는 일 있어도 좀만 참지, 뭐 한다고 사람을 그리 만듭니까?”
입고 있는 옷도 깔끔하고 좋은 게 잘사는 집 아들 같은데 왜 사람을 팬 것일까.
장년인 경찰은 가슴이 답답했다.
“이건 쌍방으로도 엮을 수 없잖아요.”
통통!
뒷좌석과 앞좌석을 분리시키는 강화플라스틱판이 두드려지자 장년인 경찰은 얼굴을 구겼다.
“왜사 부르…… 헉!”
투명한 플라스틱 판에 붙여진 경찰공무원증.
“추운 날 저 때문에 더 고생이 많으십니다. 반갑습니다. 최종혁 총경입니다.”
“추, 충성!”
“예, 충성. 사건 때문에 잠시 신세를 진 것뿐이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사, 사건?”
“예. 그러니 저와 입 한번 맞춰 주실 수 있겠습니까?”
종혁은 경찰을 보며 눈을 빛냈고, 경찰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딸랑!
파출소의 문이 열리자 고개를 든 경찰들이 의아해한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아, 제가 화장실이 급해서 그런데 화장실 좀 이용할 수 있겠습니까?”
“……김 순경!”
“예!”
파출소 화장실은 웬만해선 민원인 혼자 이용할 수가 없다.
화장실까지 가는 길에 경찰만 알아야 하는 기밀 문건이 있을 수 있고,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몸을 일으킨 젊은 경찰은 덩치 큰 남성을 화장실로 데려갔고, 이내 곧 다시 파출소의 문이 열린다.
딸랑!
다시 고개를 든 경찰들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잘한다, 잘해!”
“아! 아아!”
종혁의 귀를 잡은 채 들어오는 평창파출소의 경찰.
“아프다니까니요!”
“아픈 거 아는 놈이 왜사 사람을 그따위로 만드나?! 앉아라, 이 멍청한 놈아!”
종혁을 자신의 자리 맞은편 의자에 앉힌 경찰.
자리에 앉은 경찰이 얼굴을 구기고, 종혁은 꼬집힌 귀를 박박 문지른다.
그런 그들을 보는 파출소 내의 경찰들이 당황한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가해자를 데려왔는데, 누가 봐도 아는 사이인 듯 친밀해 보이는 모습.
그런데 문제는 여기 있는 경찰들 모두 종혁을 처음 본다는 것이다. 인구가 8천여 명인 평창읍. 웬만해선 다 아는 사이였다.
“그럼 우리 평창을 보러 온 관광객들을 추행하는데 그걸 가만히 놔둬요?”
“그래서 20년 만에 고향에 돌아오자마자 사람 둘을 병신으로 만들었나! 전화기는 뭐한다고 들고 다니나!”
“그건 반성한다니까요…….”
종혁은 꿍얼거리며 몸을 돌렸고, 경찰은 혀를 찼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한 옆 경찰이 슬그머니 입을 연다.
“임 경사님, 누구래요?”
“니 기억 안 나나? 저기 옛날 문방구 손자!”
“아! 아아아!”
질문을 던진 경찰뿐만 아니라 평창에서 나고 자란 다른 경찰들도 놀라 까무러친다.
약 이십여 년 전, 자식 따라 미국으로 건너간 문방구 할아버지.
이곳에 있는 삼십대 이상의 경찰들 중 어릴 적 문방구에서 엿 한 번 얻어먹어 보지 않은 적이 없기에 그들의 얼굴에 반가움이 서린다.
“와. 걔가 벌써 이렇게 컸어? 야, 너 내가 누군지 기억하냐?”
“이야, 잘 컸네. 근데 얘를 왜 데려온 거야?”
“왜 데려오긴. 송어축제 행사장에서 사람 둘을 병신으로 만들어서 데려왔지.”
“……어이구.”
“그건 여자를 추행하려고 해서 그랬다니까니요!”
“신고! 신고, 인마!”
종혁을 데려온 경찰이 서류철을 들자 종혁은 움츠렸고, 종혁이 파출소에 들어오자마자 바로 화장실을 나왔던 강남범동방파의 조직원이 눈을 가늘게 뜨며 파출소 한구석에 세워진 정수기로 향한다.
“됐고. 일단 어디서 자는데? 집은 구했나?”
“아, 구했어요.”
종혁은 수사본부의 주소를 말했고, 경찰은 그 주소를 그대로 받아 적었다.
딸랑!
순간 다물어지는 종혁과 경찰의 입.
고개를 돌린 종혁은 사라진 조직원에 눈을 가늘게 떴다.
“알았어. 그 사람들 깨어나면 다시 부를 테니까 너도 가 봐라.”
“수고하셨습니다.”
고개를 숙이며 눈빛을 교환한 종혁은 파출소를 빠져나갔고, 그런 그의 모습에 경찰들은 당황했다.
“뭐이나. 이리 빨리 끝내도 되나?”
“이름도 알고, 나이도 알고, 주소도 아는데 더 할 것 있드래요?”
“그렇다면 그런 거이긴 한데…….”
경찰들은 찝찝한 표정을 지었고, 종혁과 합을 맞춘 경찰은 파출소 문을 보며 걱정 어린 표정을 지었다.
‘이거 지원은 안 해 줘도 되나 모르겠네.’
대체 이 평창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무슨 험한 일이 벌어지기에 서울경찰청뿐만 아니라 저 멀리 신안에서도 형사들이 올라온 걸까.
그는 부디 동네가 시끄럽지 않게 끝나길 바랐다.
언제나 조용한 동네, 평창이.
* * *
평창의 한 모텔.
네 명의 이십대 사내가 바닥에 머리를 박고 있고, 그보다 나이가 조금 많은 사내가 삼십대 사내 앞에 무릎을 꿇고 있다.
“얘들 상태는?”
“둘 다 최소 3개월은 쉬어야 한다고 합니다, 형님.”
한 놈은 이가 6개나 부러지다 못해 턱뼈와 광대뼈가 아작이 났고, 다른 한 놈은 팔꿈치에 장애가 남을 거란 소견을 받았는데 턱뼈가 박살 난 탓에 최소 한 달은 죽만 먹어야 한다.
스윽!
삼십대 사내가 옆에 놔둔 야구방망이를 들고 일어나 바닥에 머리를 박고 있는 사내들의 엉덩이를 후려쳤다.
뻐어억!
“건달이란 새끼들이! 일반인한테! 줘 터져서! 병신이 돼?!”
뻑! 뻑! 뻑!
야구방망이가 엉덩이를 후려칠 때마다 무너지는 자세들.
비명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 했지만, 억지로 누른 사내들이 다시 바닥에 머리를 박으며 엉덩이를 치켜세운다.
“죄송합니다, 형님!”
“시정하겠습니다, 형님!”
모텔 방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외침.
“병신 새끼들.”
야구방망이를 집어 던진 삼십대 사내가 아직도 무릎을 꿇고 있는 사내를 향해 입을 연다.
“그 새끼는?”
“형님. 경찰과 아는 사이입니다, 형님.”
“닥쳐, 이 병신 새끼야! 그럼 건달이 당했는데, 병신같이 참고 있으라고?!”
“……마침 근처가 놈이 사는 집입니다.”
“저기 가서 대가리 박고 있어.”
“예, 형님!”
무릎을 꿇고 있던 사내가 몸을 일으키자, 삼십대 사내가 생각에 잠긴다.
‘일단 다 데려가야겠지?’
아까 봤을 때 사람을 치는 게 범상치 않았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그 잔인했던 손속.
순간 같은 업계 사람인 줄 알았다.
하지만 파출소에 다녀온 조직원의 말에 의하면 그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미국에서 왔다라…….’
“에이.”
미국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총.
그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총기 소지가 불법인 한국. 물론 그렇다고 해서 총을 구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설사 총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방금 전 조직원에게 말한 것처럼 이쪽이 먼저 맞았다. 이걸 보복하지 않는다면, 밥숟가락을 놓는 수밖에 없었다.
자존심 문제였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연장을 차고 가야겠네.’
그의 눈빛이 스산하게 빛날 때였다.
지이잉! 지이잉!
“예! 식사는 하셨습니까, 형님. 전화 받았습니다, 형님.”
-별문제 없지?
움찔!
“예, 형님! 별문제 없습니다, 형님!”
-……문제 있는 것 같은데?
“아닙니다, 형님! 정말 문제없습니다, 형님!”
-흐음. 그래, 알았어. 완전히 선 넘지 말고. 일주일 뒤에 보자.
“예, 형님! 들어가십시오, 형님!”
전화 상대가 앞에 있는 것도 아닌데 몸을 일으켜 허리를 90도로 숙였던 삼십대 사내는 이를 악물었다.
“하, 씨발. 뭐라고 변명하냐.”
데리고 있는 조직원 두 명이 병신이 됐다.
왜 그렇게 됐는지 꾸며내야 했다. 일반인에게 당했다고 한다면 아무리 보복을 했다고 하더라도 징계를 받을 테니 말이다.
그는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평창 읍내에 어둠이 내려앉고도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모텔의 문이 열리며 검은 정장을 입은 강남범동방파 조직원들이 걸어 나온다.
저녁 10시, 늦은 시간이라서 그런지 인적 하나 없는 적막한 거리. 그들이 내뿜는 살기가 거리를 흉흉하게 물들인다.
이윽고 한 빌라 건물 앞에 도착한 그들이 잠시 멈춰 선다.
“들어가자.”
우르르 올라간 그들은 종혁이 머무는 방 앞에 섰다.
그리고 초인종 카메라에 비치지 않도록 현관문 양옆 벽에 몸을 붙였고, 한 조직원이 품 안에서 칼을 꺼내 든다.
그리고 초인종을 누른다.
띵동!
조용한 복도를 올리는 초인종 소리에 숨을 죽이는 그들.
이윽고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네. 누구세요!
“배달입니다!”
안에 있는 종혁이 배달을 시켰든, 시키지 않았든 상관없다. 일단 현관문을 열기만 하면 그대로 칼을 쑤실 테니 말이다.
-네, 열려 있어요!
“예?”
-열려 있다고요!
당황하며 삼십대 사내를 바라보는 조직원.
마찬가지로 당황했던 삼십대 사내는 이내 눈빛을 굳히며 고개를 끄덕였고, 조직원은 문을 잡아당기며 몸을 안으로 날렸다.
그건 다른 조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헉!”
“뭐, 뭐야!”
안으로 얼마 들어가지도 못한 채 굳어 버린 조직원들.
그럴 수밖에 없다.
그들의 목표인 종혁뿐만 아니라 험악한 인상의 형사 6명이 각목이나 야구방망이를 든 채 대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삼십대 사내는 얼굴을 구겼다.
‘씨발! 생활 뛰는 놈 아니라며!’
그 순간이었다.
양옆 집의 문이 열리더니 형사들이 뛰어나와 그들의 퇴로를 막는다.
“어이! 칼 버려! 쉽게, 쉽게 가자!”
‘짭새!’
미국에서 온 놈이 아니라 경찰이었다.
“……씨발! 뚫어!”
종혁은 등을 돌리는 놈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꽈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