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752화 (752/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752화>

    검은 정장을 입은 요원들이 모두 사라진, SVR이 따로 만든 공간에 지독한 침묵이 내려앉는다.

    BUY JAPAN.

    잃어버린 20년이란 말이 공공연히 나돌 만큼 과거의 위세가 꺾인 일본이라지만, 그래도 일본이다.

    한때 도쿄의 모든 부동산을 팔면 미국이라도 살 수 있을 거라던 허황된 말이 나왔던 나라. 바이 차이나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의 중국처럼 얕볼 수가 없는 나라.

    갑작스런 제의에 대한 이유를 듣긴 했지만, 나탈리아와 헨리는 쉽게 입을 열지 못한다.

    -그러니까…… 최는 지금 늦어도 2년 안에 일본에 거대한 재앙이 올 거라고 예측을 하는군요.

    -그리고 그 충격에서 쉽게 헤어나지 못할 거란 것도요.

    “일본은 아직도 아날로그의 나라입니다.”

    일각에선 재난을 가장 대비하고 있는 나라라곤 하지만, 위에서 아래로 또 아래서 위로 바삐 움직여야 할 정보와 결제가 아날로그로 움직인다.

    조직 사회는 옛 관료 사회를 보듯 경직되어 있고, 먼 곳과의 통신도 인터넷 등의 디지털이 아니라 팩스를 이용한다.

    대처가 신속할 수가 없다.

    실제로도 그렇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

    조금만 더 신속하게 조치만 취했어도 그 정도 상황까지 가진 않았을 거라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인력을 갈아 넣는다고 해도 결코 쉽게 수습할 수 없는 재앙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영구적인 장애를 입을 수도 있다는 건가요?

    “재앙이 닥친다면 필히.”

    퐁! 화륵! 치이익!

    나탈리아와 헨리가 동시에 담배를 문다.

    -후우. 도박입니다.

    한국의 IMF, 미국의 닷컴버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때와는 결이 다른 도박이다.

    당시야 붕괴할 수밖에 없는 전조들이 있었지만, 이번 일은 아직도 인간이 100퍼센트 예측할 수 없는 자연의 일이다.

    “압니다. 그러니 제안만 하는 겁니다.”

    -……최는 그 재앙이 만들 특수에 발을 담가 보겠다는 거군요.

    종혁은 어깨를 으쓱였고, 나탈리아와 헨리는 더 깊은 장고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최, 우리도 조사를 해 봐야 합니다.

    말을 꺼낸 헨리가 다급히 손을 젓는다.

    -물론 최의 자료를 믿지 못하겠다는 게 아닙니다.

    “당연히 그래야죠. 제가 내민 자료만 보고 다 믿었다면 오히려 실망했을지도 모릅니다.”

    종혁과 나탈리아, 헨리.

    그 첫 시작은 비즈니스였을지 몰라도 지금은 서로에게 목숨이라도 내놓을 수 있는 관계다.

    하지만 그것과 특정한 누군가를 맹신한다는 건 다른 문제였다.

    그건 곧 그 특정한 누군가에게 복속이 된다는 뜻이고, 그렇다면 더 이상 친구 혹은 파트너라고 부를 수가 없게 되어 버린다.

    -……이해해 줘서 감사합니다, 최.

    -나도 고마워요, 최.

    아니라는 듯 싱긋 웃은 종혁은 공간의 한구석에 있는 냉장고에서 맥주를 가져왔다.

    “그럼 골치 아픈 이야기는 잠시 잊고, 다른 이야기를 해 볼까요?”

    원래 올 한 해의 마무리와 성과,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들의 상황, 내년에 있을 금융 및 사회 전반에 관한 이야기 등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려 했던 그들.

    -이런 그 이야기도 충분히 골치가 아픕니다만.

    “그래도 방금 전보다는 훨씬 낫잖아요.”

    -언제쯤 편히 쉬어 볼지.

    “하하하!”

    나탈리아와 헨리는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술을 찾았다.

    -16시간 후에 다시 연락을 할 테지만, 미리 인사할게요. 새해를 축하해요, 최.

    -이제 최도 완전한 삼십대군요. 축하합니다.

    “나이로 공격하기 있깁니까? 제 반격이 만만치 않을 텐데요?”

    -사랑해요, 최.

    -크흠. 끊겠습니다.

    다급히 화상채팅을 종료하면서 공간이 어두워지자 종혁이 고개를 젓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다.

    “권 이사.”

    “예, 보스.”

    “일본 시민들에게 재앙을 경고하세요.”

    움찔!

    “……네, 보스!”

    “휴. 여전히 인류애가 넘치시는군요.”

    “그냥 잘 때 발 뻗고 편히 자려고 이러는 겁니다.”

    이번 동일본 대지진 사태로 벌어들일 돈의 일부를 재난 피해자들에게 지원해 줄 계획도 세우고 있었다.

    “기빙을 움직이실 생각입니까?”

    “필요하다면.”

    아니면 일본에 복지 재단을 만들어도 된다.

    아직 시간은 있었다.

    “그럼 이야기도 다 끝난 것 같으니 부족한 술이나 마시러 가죠.”

    그 말에 권아영과 박태규는 흐뭇하게 웃었다.

    “살려 주십시오.”

    그렇게 2010년도 완전히 지나가 버렸다.

    * * *

    눈이 내렸다.

    밤사이 하늘에서 새해 선물로 하얀 똥 무더기가 내려 보냈다.

    “돌아가시겠네.”

    이른 아침, 2층 주택의 현관문을 나선 이십대 중반의 사내가 자연스럽게 현관 옆에 세워 둔 넉가래를 집어 든다.

    매해 반복되는 일상.

    올해도 상큼한 겨울 아침을 맞이하지 못한 그가 한숨을 푹푹 내쉬며 넉가래를 민다.

    부욱! 부욱!

    “씻고 나왔는데…….”

    어느덧 이마에 송골송골 맺히는 땀방울.

    겨우 현관에서 대문까지 길을 치운 사내가 대문을 열고 나간다.

    부욱! 부욱! 부욱!

    “안녕히 주무셨어요!”

    넉가래를 들고 본인 집 앞에 쌓인 눈을 치우는 사람들을 향해 사내가 고개를 숙인다.

    “어, 그래! 우빈이도 잘 잤어? 네 아빠는?”

    “어제 술을 늦게까지 드셔서 아직까지 주무세요!”

    “어제? 어떻게 집에는 무사히 들어왔나 보다? 어제 8시부터 세차게 내렸는데!”

    “근처에서 시체 발견됐단 소식 없으니까 집에 잘 들어간 거겠지.”

    뼈를 때리는 농담이지만, 마냥 농담이라고 치부할 수 없는 말.

    겨울이 되면 심심치 않게 동사자가 나오기 때문이다.

    그게 자신이 될 수도, 또 가족이 될 수 있기에 평창 사람들은 눈이 내렸다 하면 웬만해선 서둘러 집으로 귀가를 한다.

    아마 이건 평창뿐만 아니라 강원도 모두 해당되는 이야기일 것이다.

    어색하게 웃으며 집 앞의 눈을 치운 우빈은 골목이 깨끗해지고 나서야 허리를 편다.

    “……씻어야겠네.”

    아무리 지독한 추위에 익숙한 평창 사람이라지만, 이렇게 추운 날씨에 땀에 젖은 옷을 갈아입지 않으면 백 퍼센트 감기에 걸린다.

    안으로 들어가 다시 씻고 나온 우빈이 손목에 찬 시계를 확인하더니 길을 재촉한다.

    그런 그가 향한 곳은 평창송어축제의 현장이었다.

    “어우, 추워!”

    사방이 두꺼운 비밀이 쳐진 천막 안으로 들어가며 몸을 웅크리는 그.

    “어떻게 안 죽고 왔네?”

    “아침에 죽으면 평창 사람이 아니지!”

    “그건 맞지!”

    웃음을 터트리는 또래, 혹은 어린 청년들.

    우빈도 웃으며 점퍼 위에 ‘STAFF’라 적힌 형광 조끼를 걸친다.

    그것도 모자라 평창의 지자체와 청년회에서 지급한 털장화로 갈아 신고, 장갑도 끼운다.

    그러고 나서야 따끈한 난로 앞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청년들에게 다가간 그.

    “형, 여기요.”

    “땡큐.”

    기름난로 위에서 보글보글 끓는 어묵 국물에 오는 길 동안 얼어붙었던 얼굴이 사르르 녹는다.

    ‘좋네.’

    “야, 우빈아. 인간적으로 오늘 같은 날은 그냥 하루 휴장해야 하는 거 아니냐? 아니, 어제야 연말이라서 사람들이 모이니까 그런다 쳐. 그런데 새해 첫날, 1월 1일부터 낚시하는 건 아니잖아. 이런 날은 따끈한 아랫목 위에 있어야지!”

    한 청년의 말에 다른 사람들이 고개를 연신 끄덕인다.

    “어쩌겠냐. 오늘이 토요일인데.”

    휴식이 필요하거나 여행을 떠나고픈 사람들에겐 참 좋은 일이지만, 자신들 같은 사람들에겐 왜 하필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는 일.

    “……씨발.”

    “빌어먹을.”

    “이따위 송어축제 콱 망해 버렸으면 좋겠네.”

    “야, 야. 망하면 안 돼. 우리 용돈 벌어야 돼.”

    우빈은 투덜거리는 그들의 모습에 미소를 지으며 어묵 국물을 마셨다.

    ‘어우. 국물 죽이네.’

    어젯밤 집에서 마신 술이 절로 해장이 되는 듯한 느낌.

    “그럼 난 먼저 나간다.”

    “응? 뭘 벌써가려고 해? 아직 개장하려면 멀었어.”

    “용선이 형님이 아침에 오라고 했어.”

    “아, 그래? 알았어. 이따가 보자. 오늘도 수고!”

    “그래. 너도 오늘도 수고해라.”

    천막을 나선 우빈이 향한 곳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컨테이너 사무실이었다.

    쿵쿵!

    문을 열고 들어간 우빈은 콧속으로 빨려드는 싸구려 향수 냄새와 안에서 벌어지는 광경에 눈살을 찌푸렸다.

    “아이, 참. 아침부터!”

    “아침이니까 힘이 넘치는 거지! 어떡할래? 바로 티켓…….”

    “크흠!”

    “어! 우빈이 왔냐? 빨리 왔네?”

    썩 좋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음에도 능청스럽게 손을 든 삼십대 사내.

    저렇게 다방 레지를 부른 돈도 모두 청년회에서 나가는 것이기에 확 위에다 불어 버리고 싶지만, 아쉽게도 눈앞의 사내는 배경이 든든한 청년회의 간부다.

    “이런 날은 어? 좀 늦게 출근하고 어?”

    ‘그랬으면 지랄할 거면서.’

    일급을 깎겠다고 온갖 난리를 다 칠 것이다.

    “무슨 일로 부르셨어요?”

    “……크흠. 애들은 좀 어때? 새해 첫날부터 출근하는데 불만이 있는 것 같진 않아?”

    ‘에라이.’

    그게 걱정이라면 그냥 오늘 하루 휴장을 했으면 되지 않는가.

    하지만 이렇게 말해 봐야 자신은 힘이 없다는 말만 돌아올 테니 우빈으로선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뭐 불만이 좀 있긴 한데, 다들 그러려니 하죠.”

    송어축제가 개막한 지 벌써 4년째다.

    2007년 개막한 평창송어축제. 그때부터 계속 이 한철 반짝 아르바이트를 해 온 친구들이기에 무슨 부조리가 있어도 그러려니 하게 된 것이다.

    “부, 부조리는 무슨!”

    “죄송합니다. 말이 헛나왔네요. 그럼 용무는 끝이세요?”

    곧 9시, 개장을 해야 될 시간이다.

    아침부터 오는 관광객은 없지만, 그래도 문은 열어 둬야 했다.

    그리고 관광객이 오기 전 주차장과 현장 내에 쌓인 눈을 치워야 했기에 낭비할 시간이 없었다.

    “넌 뭐가 그렇게 바쁘냐? 너만 바빠?”

    “다들 바쁜 거 아시잖아요.”

    “이 자식이! 그거 꼭 나보고 들으라는 것 같다?!”

    “용선 형님.”

    흠칫!

    “……끄응. 그 왜 축제 개막일부터 매일 오는 사람들 있잖냐.”

    그 말에 우빈의 미간이 절로 좁혀진다.

    겨울 강원도의 유명한 축제인 화천산천어축제보다 훨씬 더 좋고 멋진 축제를 만들겠다며 기획한 평창송어축제.

    예년보다 오대천이 빨리 얼어붙으면서 개막도 며칠 빨리하게 됐는데, 벌써 일주일째 출근 도장을 찍으며 축제를 난장판으로 만드는 사내들이 있다.

    덩치가 크고 말이나 인상도 험악한 사람들.

    “설마 우리보고 막으라는 그런 말 아니시죠?”

    “야, 그게…….”

    “못합니다.”

    “인마!”

    사내가 벌떡 일어났지만, 우빈은 요지부동이다.

    그 사람들이 얼마나 무섭고 험한지 모른단 말인가.

    그렇지 않아도 축제 개막일부터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드는 그 사람들을 막아서려고 했던 몇 명이 그때 얻어맞은 충격으로 아직까지 출근을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청년회는 아무런 대책도, 하물며 다친 청년들의 병원비도 지급해 주지 않고 있다.

    정말 한동네 사람만 아니었다면 한 대 쳐 버렸을지도 모른다.

    “차라리 경찰을 부르세요. 청년회장님이 평창 경찰서장님과 호형호제한다면서요.”

    “아니, 진상 몇 명 때문에 경찰을 부르는 게 말이 돼?! 그렇게 경찰이 오면 어떻게 되겠어! 관광객들이 경찰 무서워서 제대로 즐길 수나 있겠어?!”

    “몰라요. 막으려면 형님이 막으세요. 그럼 말 끝나신 것 같으니까 가보겠습니다.”

    “야! 야, 이 새끼야!”

    쿵!

    문을 닫고 나온 우빈은 바닥에 침을 뱉었다.

    “씨발. 자기도 무서워서 아무것도 못하면서.”

    혀를 찬 우빈은 얼굴을 구기며 축제 행사장 입구로 향했다.

    삑! 삐익!

    도로에서 주차장으로 진입하는 차들을 향해 울리는 호루라기 소리에 사람들이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잔뜩 기대하는 얼굴로 걸음을 옮긴다.

    “아빠, 송어가 뭐야?”

    “송어는 말이야. 연어목 연어과의 회귀성 어류인데…… 컥?!”

    “이따가 아빠가 잡아서 보여 줄 거야. 우리 채아, 그때까지 기다릴 수 있지?”

    “응!”

    “와아! 썰매다! 아빠 저기, 저기!”

    “어이구. 천천히 가.”

    웅성웅성 새해 첫날부터 모여든 사람들도 북적이는 행사장.

    마스크에 귀마개까지 한 채 행사장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매표소로 인도하던 우빈이 그 푸근한 모습들에 미소를 짓는다.

    새해 첫날부터 출근을 한 게 썩 기분 좋진 않지만, 먼 곳에서 힘들게 평창을 찾아와 준 사람들에 감사함과 뿌듯함을 느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아!”

    행사장 안으로 들어오는 단연코 이질적인 사람들.

    다른 관광객들로 하여금 깜짝 놀라 분분히 비켜서게 만드는 커다란 덩치에 험악한 인상들에 우빈이 한숨을 내쉰다.

    ‘저 자식들은 새해 첫날에도 왔네.’

    분명 서로 아는 사이 같은데, 서로 모른 척 거리를 두고 들어오는 사내들.

    “매표소는 저쪽입니다!”

    우렁차게 외친 우빈이 사내들의 뒤를 따라 매표소로 향한다.

    그렇게 따라가니 역시나…….

    “테, 텐트 낚시는 3만 5천 원인데요…….”

    “아, 난 텐트 필요 없고, 얼음낚시만 하겠다고. 이해 안 돼?”

    “하, 하지만…….”

    “하지만 뭐? 뭐!”

    “거 빨리 좀 합시다!”

    “뭐야?! 어떤 새끼야!”

    덩치 큰 사내들끼리 시비가 붙자 순간 얼어붙는 매표소.

    줄을 서 있던 관광객들이 겁을 먹으며 물러서려 하자 얼굴을 구긴 우빈이 매표소를 담당하는 동네 여동생을 향해 고개를 숙인다.

    그에 그녀의 얼굴이 울상이 된다.

    지금껏 텐트가 필요 없다며 저렴한 티켓을 결제해 놓고선, 무작정 텐트에서 낚시를 해 왔던 사내들.

    이번에 또 그럴 것이 분명하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민원과 차액은 아르바이트생이 온전히 감행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냥 해.’

    ‘히잉.’

    “아, 알겠습니다. 2만 5천 원입니다.”

    “진작 이럴 것이지, 왜 시간을 뺏어? 짜증 나게 말이야. 자, 여기!”

    촤악!

    천 원짜리들이 허공에 뿌려진다.

    그 모습에 우빈은 주먹을 꽉 쥐었다.

    하지만 나설 수가 없다.

    지독한 무력감이 그의 몸을 감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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