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750화>
“넌 뭐야, 이 새끼야!”
“뭐? 새끼? 어디서 봤다고 새끼야?!”
“너도 새끼 하잖아, 새꺄!”
“이 새끼가 지금……!”
순간 험악해지는 분위기.
가족과 함께 온 부모들은 자식들의 귀와 눈을 가리고, 연인과 함께 온 사람들인 서로의 손을 꼭 잡은 채 불안해한다. 누군가는 자리를 정리하고 떠날 준비를 한다.
얼른 끝났으면, 얼른 이 시간이 지나갔으면.
공포에 젖는 사람들의 모습에 종혁이 한숨을 내쉰다.
“잠깐 다녀올게요.”
“험하게 하지 말고.”
“안 해.”
종혁은 결국 배를 부딪치는 두 젊은 사내에게 다가갔다.
“어? 쳤냐? 지금 쳤어?”
“오냐! 쳤다!”
“이 새끼가……!”
덥썩!
“어?”
두 사람의 뒷덜미를 잡은 종혁이 떼어 놓는다.
“악!”
“으악!”
바닥이 미끄러워서 그런지 그대로 나뒹구는 두 사내.
당황해 쳐다보는 두 사내를 보며 종혁이 아차 한다.
“아이고, 선생님들. 죄송합니다. 괜찮으세요?”
“넌 또 뭐야!”
“이런 씨발……!”
다급히 일어난 사내들이 달려들자 종혁은 몸을 비틀며 두 사내를 툭 밀어 중심을 밀어트린다.
그에 다시 얼음 벌판 위를 나뒹구는 사내들.
“……이 개새끼가!”
종혁은 다시 일어난 사내들의 중심을 다시 밀어트린다.
쿠당탕!
“아이고. 기분 좋게 놀러 와서 왜들 이러십니까.”
더 이상 했다가는 쌍방이고, 주최 측에 영업 방해로 신고를 받을 수 있다.
움찔!
신고라는 말에 얼어붙는 그들을 향해 푸근히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가족들과 기분 좋게 놀러 온 곳이고, 지친 피로를 풀려고 온 곳이잖습니까. 저희도 더 주의할 테니 웬만한 일은 서로 웃으며 넘어갑시다. 낚시 안 된다고 괜히 짜증 내지 말고.”
눈을 데구루루 굴린 사내들은 이내 슬그머니 일어나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낚시 장비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결국 도망치듯 사라진다.
“에휴…… 젊은 사람들이 왜 그리 화가 많은 건지.”
이십대 초중반으로 보였던 사내들.
밀쳤을 때 손끝에서 그들의 탄탄한 근육이 느껴졌다.
젊고, 몸도 튼튼한 양반들이 뭐가 그렇게 화가 많아서 혈기를 주체하지 못하는 것일까.
“아차.”
종혁은 얼른 어머니와 일행들에게 돌아가며 씩 웃었다.
“많이 놀랐죠? 많이 놀랐지? 응? 왜?”
“……아니야. 수고했어.”
전에도 보긴 했지만, 여전히 심장이 떨린다.
아들이 위험한 곳으로 향하는데 그 어떤 엄마가 태연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런 모습을 드러낼 순 없다. 자신의 이런 모습이 아들의 경찰 생활에 악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고정숙은 종혁의 엉덩이를 두드리곤 무슨 일 있었냐는 듯 다시 자리에 앉아 낚싯대를 드리웠고, 종혁은 그런 어머니를 보며 옅게 웃었다.
정말 고맙고, 언제나 미안한 엄마.
종혁은 그녀의 옆에 앉으며 오늘 한 마리도 낚지 못한 낚싯대를 든다.
“좁아. 저리 가.”
“에이. 이러면 더 따뜻하잖아.”
“따뜻하기 전에 숨 막혀 죽겠다! 저리 가라고. 안 가?”
“마미!”
“윽?! 애나, 아줌마 힘들어.”
“사랑해요, 마미!”
몸을 이리저리 비틀면서도 차마 이리나가 미끄러 넘어질까 격하게 떼어 내지 못하는 고정숙.
그녀의 모습에 소영과 수호는 웃었고, 살짝 얼어붙었던 분위기가 사르르 녹아내렸다.
* * *
뜨거운 송어의 살이 입안으로 들어간다.
“하뜨! 하뜨!”
드럼통을 길게 이어 붙인 듯한 화로에서 막 구워진 붉은 속살.
방금까지 추워서 그런 걸까.
아니면 사방에서 풍겨지는 고소한 냄새 때문일까.
그저 굵은 소금만 뿌린 송어의 고소한 맛이 입안을 뜨겁게 달군다.
금방이라도 화상을 입어 버릴 것 같은 황홀한 맛.
다급히 입안으로 넘어간 달달한 막걸리 한 잔이 뜨거운 입안을 식히며 제법 강한 흙냄새를 그대로 씻어 내린다.
“아흐으!”
“와! 미쳤다, 미쳤어!”
고작 두시간 만에 꽁공 얼어붙어 버린 몸이 사르르 녹자 종혁이 냉큼 빈 잔들에 술을 채운다.
“자, 건배!”
“건배-!”
꿀꺽꿀꺽!
“아흐으!”
“수호야, 아!”
“너도, 아!”
인상이 절로 찌푸려지는 바퀴벌레 커플의 애정 행각.
하지만 그런 것 따윈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행복하다.
모두가 즐겁게 웃으며 서로의 입에 송어를 넣어 준다.
“엄마. 괜찮아?”
“뭐, 괜찮네. 레몬즙이 있으면 더 맛있었을 것 같긴 하지만…….”
“다음엔 레몬즙 챙겨서 오자.”
사실 종혁은 레몬즙이 있으면 더 좋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일부러 챙기질 않았다.
무엇이라도 아쉬운 게 있어야 다음에 또 오지 않겠는가.
훗날 더 애틋하게 만들어질 추억을 기약하며 종혁은 지금의 아쉬움은 뒤로하기로 했다.
“으악! 다 먹었다!”
“야, 최종혁!”
“혁! 나빴어!”
“이번엔 나 아니다, 이 자식들아!”
두 시간 동안 고작 12마리를 잡은 그들.
물론 크기가 커서 각자 한 마리씩만 먹어도 충분히 배불리 먹을 수 있었지만, 어느새 12마리의 송어가 전부 사라져 있었다.
다른 이들은 그 범인으로 종혁을 의심했지만, 사실 그건 여행지의 즐거움이 식욕을 자극한 탓에 다들 평상시보다 많이 먹게 된 탓이었다.
그런데 억울하게 자신을 타박하자 종혁은 그들의 머리통을 움켜쥐었고, 고정숙과 순덕, 철수는 발버둥 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깔깔깔 웃었다.
물론 철수도 괘씸죄로 머리통이 움켜쥐어져야 했다.
“히이. 머리 터지는 줄 알았네.”
“어휴. 우리가 이 나이에도 이러고 산다, 철수야.”
“수고했어요, 형. 누나들.”
“이 자식들이?!”
“자자, 나이를 딴 곳으로 드신 꼬맹이님들. 다 먹었으면 일어나야지?”
“에이.”
좀 더 있고 싶지만, 많은 사람들이 구운 송어를 든 채 빈자리를 찾고 있다. 아쉽지만 일어서야 할 때였다.
“아! 맛있었다!”
“응! 재밌었어!”
서로 경험한 감정을 나누는 사람들.
종혁의 입가에도 미소가 맺힌다.
“어떻게 할래요? 좀 부족하니까 근처 식당에서 더 먹고 갈까요?”
“운전할 수 있겠어?”
“뭐 어때요. 대리 부르면 되죠.”
그리고 근처에도 식당들이 제법 있다. 굳이 차로 이동하지 않아도 됐다. 다만 어젯밤 눈이 와서 길이 미끄럽기 때문에 차로 이동하려는 것뿐이다.
“먼저 차에 가 계세요.”
“알았어.”
일행들이 차로 향하자 종혁이 담배를 문다.
어른들 때문에 참아야 했던 담배.
찰칵! 치이익!
“후우우.”
좋다. 적당히 달아오른 몸에 함께 있으면 절로 웃음이 나는 사람들. 매일이 오늘 같으면 싶어진다.
“형.”
“어, 철수야. 무슨 일이야?”
아까 전 술을 마시는 걸로 종혁 자신을 비롯한 친구들을 깜짝 놀라게 만든 철수.
얘가 벌써 술을 마실 수 있게 됐구나 하는 생각에 상념이 많아졌었다.
“그, 그게…….”
종혁은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는 철수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철수는 누구 동생?”
“……형 동생!”
크고 맑게 외치는 철수의 모습에 16살의 철수가 겹쳐진다.
종혁의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맺힌다.
“그래. 그것만 기억하면 돼. 얼른 들어가서 차에 시동부터 켜 드려. 다들 추워하시겠다. 대리도 부르고. 여기 대리운전 명함. 아까 송어 먹던 곳에 있더라.”
“넵!”
냉큼 돌아서던 철수는 아차 하며 종혁을 봤다.
그리고 크게 외쳤다.
“고마워요, 형! 적당히 피우고 오세요!”
“……짜식이 말이야.”
형을 울리고 있다.
종혁은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고맙다라…….”
“오히려 우리가 고맙지. 올바르게 커 줘서. 구김살 없이 커 줘서.”
종혁은 차에 함께 가지 않고 다가온 이리나를 보며 의아해했다. 이리나는 그런 종혁을 빤히 바라보다가 갑자기 와락 끌어안았다.
“……무슨 일 있어?”
어제 만났을 때부터 잠깐잠깐 얼굴이 흐려졌던 이리나.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일단 그녀의 등을 다독여 준다.
못 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걱정이 든다.
“……혁.”
“무슨 일인데? 말해 줄 수 없는 일이야?”
“나 미국에 들어가야 할 것 같아.”
움찔!
‘이거였나…….’
“언제 들어가는데? 완전히 들어가는 거야? 애들이나 주위 사람들에게는 말했고?”
“내년 초에. 아마 몇 년은 미국에 있어야 할 거야. 주위 사람들에게는 곧 말해야지.”
“그러냐……. 아버님, 어머님도 같이 들어가는 거야?”
“응, 같이 가.”
“하긴 한국에 오래 계시긴 했지…….”
참 오래됐다.
1999년, 스키장에서 소영을 덮치던 이리나를 튕겨 내는 걸로 맺게 된 인연.
코젤 샤크, 안젤라 샤크, 그리고 이리나 샤크. 이 세가족과 인연을 맺은 지도 벌써 11년이나 된 것이다.
“언제 돌아올 기약은 없고?”
“글쎄…… 들어가 봐야 알 것 같아.”
‘그런데…… 그 말밖에 할 말이 없어?’
왜 가는지, 가서 뭘 하는지 궁금하지 않는 걸까.
종혁은 애써 말을 삼키는 그녀의 눈을 보며 싱긋 웃었다.
“어차피 12시간이야.”
한국에서 미국까지 직항으로는 12시간이면 충분히 간다.
“응?”
“연락도 할 거잖아. 아니야?”
“……당연히 하지! 날 뭘로 보고!”
“그럼 됐어.”
어차피 지금의 이별은 영원한 이별이 아니다.
종혁은 방금 전 철수와 다른 의미로 이리나의 머리를 헤집었다.
“이 오빠 보고 싶으면 언제든 연락해라. 전용기 보내 줄 테니까.”
“너 각오해! 내가 거기 가서 나이스한 남자만 사귈 거거든?”
이번엔 결혼 상대를 진지하게 고를 거다.
“예, 예. 제발 그러세요. 웬 놈팡이만 사귀지 말고.”
“흥! 내 맘이야!”
이리나는 그렇게 외쳤지만 종혁의 품을 더 파고들었고, 종혁은 그런 이리나를 다독였다.
참 당차지만, 여린 친구인 이리나.
앞으로 좋은 일만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 * *
2차는 메밀국수집으로 정해졌다.
메밀로 유명한 평창.
시원한 막국수와 수육에 술을 한잔하면, 1차로 먹은 송어의 느낌도 지워지지 않고 계속 이어 갈 수 있을 것 같아서 만장일치로 낙찰됐다.
“아들.”
“응?”
대리기사에게 키를 넘겨받고 뒤늦게 일행들의 뒤를 따르던 종혁이 어머니 고정숙을 본다.
“애나랑 무슨 일 있어?”
어제부터 중간중간 안 좋은 모습을 보이더니 방금 전 종혁과 함께 돌아올 땐 더 낯빛이 흐려진 이리나.
“……애나가 미국에 들어가야 하나 봐요. 잠깐 갔다가 돌아올지, 아니면 계속 거기에 있을지 아직 장담할 수가 없고요.”
“아.”
“애나가 말할 때까지 비밀로 해 주세요.”
“……그래. 알았어. 들어가자.”
곧 있을 이별의 아쉬움이 크지만, 지난 십여 년간 친구로 지내 온 종혁보다 클까.
부디 아들이 힘들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종혁은 춥다는 듯 고정숙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음식은 시켰어?”
“비빔 네 개랑 물 네 개, 묵사발 두 개, 수육 대자 두 개 시켰어. 술은 막걸리!”
“오. 센스! 이따가 저녁에 숙취로 죽을 준비해라.”
“자기 전까지 쉬지 않고 마시면 괜찮아. 숙취는 뭐…… 내일의 내가 아프겠지.”
“빙고.”
어이없어하는 여성들의 시선을 무시한 종혁과 수호, 철수는 반찬과 함께 나온 막걸리부터 따랐다.
“크흐!”
아삭하게 씹히는 시금치의 쌉쌀한 맛.
‘역시 강원도가 음식도 괜찮단 말이야.’
감자의 지방, 강원도. 음식들이 마냥 싱거울 것 같지만, 음식으로 유명한 고장들 못지않다.
전라도가 젓갈 등으로 간이 세다면, 강원도는 정갈한 맛이라고 할 수 있다.
“후우.”
맛있는 음식에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니 몸이 절로 늘어진 종혁이 나른한 미소를 지으며 창밖을 바라본다.
“여기다 눈까지 내리면 금상첨화일 텐데…….”
하지만, 그랬다가는 운전지옥이 될 것이기에 종혁은 그 생각을 고이 접어 삼킨다.
“형! 제 잔도 받으세요!”
“오! 받아야지!”
‘응?’
웃으며 고개를 돌리던 종혁이 순간 멈추며 다시 창밖을 바라본다.
식당 앞을 지나가는 덩치 큰 사내들. 그 사이에 낯익은 얼굴들이 있다.
‘……쟤들이 왜 함께 있지?’
방금 전 낚시터에서 서로 시비가 붙었던 두 사내다. 서로 감정을 풀고 친구를 먹기로 한 것일까.
그런데 다른 일행들 역시도 낚시터에서 봤던 사람들이다.
덩치가 범상치 않아서 기억을 할 수밖에 없던 사람들.
‘분명 서로 모르는 사이 같았는데…….’
모두 듬성듬성 떨어져 있었다.
종혁의 미간이 좁혀진다.
뭔가 느낌이 안 좋아진 그는 몸을 일으켰다.
“나 잠시 전화 좀 하고 올게. 먹고들 있어요.”
“또 일이야?”
“어쩌겠어. 서장인데.”
금방 다녀오겠다고 웃어 준 종혁이 건물을 빠져나가는 순간이었다.
“어?”
“응? 이 반장님?”
“서, 서장님이 여긴 왜…….”
“이 반장님은요? 돌아가신 거 아니었어요?”
“저야 2차로 가족들과 술을 마시던 중이었는데…….”
마음씨 좋은 사람 덕분에 송어구이 맛을 봤지만, 뭔가 부족해 2차로 근처 식당에서 술을 마시던 이성동.
종혁과 이성동이 서로를 보며 입을 다문다.
아무래도 같은 걸 보고 형사로서의 본능이 움직인 것 같다.
“일단 가시죠.”
“예.”
둘은 어느새 저 멀리 멀어진 무리의 뒤를 쫓았다.
서로 말도 나누지 않은 채 얼마나 미행했을까.
무리들이 중국집 안으로 들어가는 걸 목격한 둘이 걷는 속도를 높인다.
“여기! 주문받아!”
“예! 뭘 주문하시겠어요?”
“짜장면 8개와 탕수육 대자 3개!”
“네! 감사합니다!”
주방으로 달려가 주문 내용을 외치는 종업원.
사람은 여덟 명인데 덩치가 커서 그런지 테이블을 세 개나 차지한 무리에게서 멀리 떨어진 곳에 앉은 종혁과 이성동도 주문을 한다.
그리고 이내 곧 덩치 큰 사람들의 테이블 위로 음식이 놓이자…….
“다들 많이 먹어라.”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형님!”
‘응?’
‘어?’
깜짝 놀란 종혁과 이성동이 다시 서로를 본다.
특정 부류를 연상케 하는 우렁찬 외침도 있지만, 곧장 짜장면을 가위로 난도질하더니 직각으로 들어 올려 입안에 넣는 사람들의 모습 때문이다.
“군인은 아닌 것 같은데…….”
그런데 조폭 깡패라고 치기엔 식사 방법이 훈련소 신병 같다.
“예, 아닌 것 같네요. 하, 이 새끼들 봐라?”
누군지 알겠다. 직각으로 식사를 하는 모습을 보니 확실히 기억이 났다.
회귀 전 서울경찰청을 발칵 뒤집었던 놈들.
조직 내 강령이 굉장히 특별했던 놈들.
‘강남범동방파.’
대한민국의 전국구 조직, 현재 몰락해 가는 범동방파의 유지를 잇겠다던 골칫덩이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