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749화>
많은 추측들이 얽힌다.
운명의 장난인가.
아니면 억울한 피해자가 아니라 처단을 당한 놈들의 조직원인가.
그것도 아니면…….
아무래도 생각의 방향이 한쪽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
“공교롭군요.”
이고르의 말대로다.
“더 자세히 조사해 보겠습니다.”
꼬리를 잡은 놈들 회사에 낯익은 얼굴이 있다. 이것만으로도 조사할 가치는 충분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고개를 숙인 이고르가 물러나자 종혁도 발을 떼며 핸드폰을 들었다.
“예, 사장님.”
흥신소 사장이다.
“조사를 좀 해 주실 게 있습니다.”
회귀 전 이 여대생이 사망하기 전에 재직하고 있던, 놈들 회사가 차린 것으로 의심되는 또 다른 업체에 대해.
종혁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 * *
“으아아.”
춥다. 겨울이 되면 영혼마저 얼어붙게 만드는 서울의 지독한 추위에 익숙해진 몸뚱이가 절로 얼어붙는다.
이리저리 날뛰느라 뜨거웠던 스키장과 달리 몸을 절로 움츠리게 만드는 칼바람.
“엄마, 추워.”
종혁은 고정숙의 롱코트 지퍼를 올려 주며 핫팩을 여기저기 쑤셔 넣었고, 그녀는 진저리를 쳤다.
“강원도는 살 곳이 아니네.”
“여기도 사람은 다 삽니다, 아줌마.”
4월, 5월에도 눈이 내리는 곳이긴 하지만, 사람과 사람이 어울리며 살아가는 장소다.
음식도 맛있고, 사람들도 순박해서 좋고.
삭막한 서울, 도시 생활에 지친 사람들이라면 힐링을 위해 잠시 머물기에도 딱 알맞은 곳이었다.
“앗! 엄마도 핫팩 쥐어요!”
종혁을 멍하니 본 철수가 얼른 순덕의 옷깃을 여미며 제 몫의 핫팩을 넘기자, 이미 아차 했던 수호가 반 박자 늦게 소영을 챙긴다.
묘하게 일그러지던 소영의 표정이 그제야 펴지고, 그 알콩달콩 달달한 모습에 이리나는 울상을 짓는다.
“나, 나는?”
여기로 손을 뻗어도, 저기로 손을 뻗어도 해 줄 사람이 없다.
입술을 내민 이리나는 역시 사람은 혼자 사는 거라고 어둡게 중얼거리며 스스로 옷깃을 여민다.
“에고. 여태까지 남자친구 한 명 안 만들고 뭐했냐, 이 아가씨야.”
지이익!
“많이 만들었는데?”
지금까지 사귄 남자친구들을 줄세우면 100미터도 훌쩍 넘는다.
“왜 이래. 나 애나야.”
“지금 없잖아, 이 헛똑똑아. 여기에도 핫팩 넣고.”
이리나의 점퍼 목깃 안으로 작은 핫팩을 밀어 넣는 종혁. 살짝 몸을 움츠렸던 이리나가 배시시 웃는다.
“역시 넌 너무 거칠…… 우부우우웁!”
종혁의 양손에 양 볼이 뭉개진 이리나는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고, 그제야 놓아준 종혁은 개소리 말라며 싱긋 웃어 주었다.
“진짜 넌 나에 대한 취급이 너무 심해.”
“예, 예. 자, 그럼 갑시다!”
“네-!”
빠르게 주차장을 벗어난 그들은 이내 곧 자연이 만들어 낸 거대한 신비를 목격하곤 방금 전과 다른 의미로 얼어붙는다.
푸른 하늘 아래 새하얀 눈꽃들로 뒤덮인 산들과 그 아래 얼어 버린 커다란 오대천.
그리고 오대천 위를 지나며 웃는 사람들.
“우와아!”
종혁을 비롯한 모두가 이 평화롭고도 아름다운 광경에 잠시 재촉하려고 했던 시간을 내려놓았다.
“꺄아!”
“미끄러져! 천천히 가!”
눈으로 만든 경사 위를 미끄러지는 썰매 위에서 행복의 비명을 지르는 아이들과 얼음 벌판 위를 달리는 아이를 잡으려 헐레벌떡 뛰는 부모들.
얼음 조각 앞에서 손을 맞잡은 연인들이 서로를 향해 웃고, 장년인들은 아버지가 만든 썰매를 타고 저수지 얼음 위를 내달리던 옛 추억에 젖어 든다.
“이, 이거 괜찮은 거 맞지?”
쨍쨍하게 얼어붙은 평창의 오대천 위.
강물의 색이 무엇인지 여실히 알 수 있는 푸른색 얼음에 수호가 선뜻 발을 내딛지 못한 채 안절부절못한다.
소영과 고정숙도 말은 하지 않지만 쉽게 오대천 위에 올라서지 못한다.
하지만 철수는 아무렇지 않은 듯 엄마 정순덕의 손을 잡아끌었다.
“엄마, 얼른 가자. 얼른 좋은 자리 차지해야 해!”
“어휴. 천천히 가자니까. 얘가 진짜 왜 이래?”
아무렇지도 않게 오대천 위에 올라서 나아가는 철수와 순덕.
피식 웃은 종혁도 서슴없이 얼음 벌판 위로 올라선다.
“……?!”
“어휴, 이 서울 촌사람들. 괜찮아요. 안 죽어.”
얼음이 보통 30cm 정도 얼지 않으면 이런 축제를 할 수가 없다. 게다가 얼음을 잡아 놓기 위해 쳐 놓은 그물까지.
얼음 속 얼기설기 얽힌 녹색 그물을 가리킨 종혁이 살짝 입술을 내민다.
“내가 설마 위험한 곳을 데려왔을까 봐?”
“크흠.”
“흠흠.”
“미끄러지니까 조심들 하세요.”
종혁이 내민 손을 잡은 고정숙과 이리나가 얼음 벌판 위에 올라섰다가 살짝 놀란다.
발목을 누르는 묵직함.
콱콱!
“엄청 단단하네?”
“이 많은 사람들이 올라올 수 있을 정도니까 축제도 하는 거죠. 예랑, 예신! 너희 안 오냐? 안 오면 두고 간다?”
“가, 같이 가-!”
“이 나쁜 놈!”
몸을 돌리는 종혁에 결국 오대천 위로 올라선 두 겁쟁이들은 이내 고정숙처럼 놀라더니 얼굴을 붉히며 앞선 사람들의 뒤를 따른다.
종혁은 그들을 데리고 가족 낚시터로 향한다.
“와, 저건 뭐야?”
빠져 죽지 않아도 된다는 안심에 여유가 생긴 걸까. 주변을 둘러보던 소영이 한쪽에 줄지어 쳐진 형광색 텐트들을 가리킨다.
작긴 해도 사람 두 명이 족히 누울 수 있는 텐트.
“아, 저건 바람막이 텐트.”
주로 가족끼리 오는 사람들이 이용하는 텐트다.
“우리가 예약한 곳이 저기야.”
“오! 그래?”
마음 같아선 텐트를 둥글게 쳐 함께 온 인원들 모두 한데 모여 낚시를 즐겼으면 했지만, 얼음 구멍이라는 게 그렇게 가까이 뚫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보니 서로 약간씩 떨어져 앉을 수밖에 없었다.
“와! 진짜 바람이 막아지네!”
“따뜻해!”
텐트 안에 놓인 의자에 앉자마자 얼굴이 확 밝아지는 사람들.
종혁이 미리 사 온 낚싯대로 채비를 서두른다.
그 능숙한 손놀림에 자극을 받은 철수도 얼른 포장지를 뜯고, 수호도 종혁을 힐끔거리며 어설프게 낚시 채비를 한다.
“자, 이건 엄마 거.”
“……아들. 낚시 좀 해 봤나 보다?”
“뭐…….”
“맞아. 혁, 너 하라는 일은 안 하고 낚시하러 다녀? 막 사람들이 안내해 주지도 않았는데 바로 여기로 오고.”
“에이. 내가 설마 그러려고.”
날카로운 지적에 뜨끔했지만 종혁은 모른 척했다.
“수상해.”
“수상할 것도 많다.”
얼음낚시는 회귀 전에도 몇 번 해 봤다.
그래서 감회가 새롭다. 이곳에 온 게 처음이 아니라서.
‘여길 몇 년 만에 오더라……. 그러네. 회귀 전에도 이맘때였네.’
정확히는 내후년 2012년 1월이다.
그때를 떠올리자 종혁의 입에서 그도 모르게 실소가 터진다.
지능범죄수사대의 팀장이 되기 전 한때 몸담았던 강력계.
당시 종혁이 소속되어 있던 그 강력반의 반장님이 낚시를 참 좋아하셨고, 이따금씩 팀원들을 데리곤 낚시를 하러 끌고 다니고 하셨다.
그렇게 팀 식구들과 함께 왔었던 평창송어축제.
‘그때 송어도 구워 먹고 참 좋았…….’
“응?”
한쪽을 본 종혁이 눈을 껌뻑인다.
“먼저 하고 있어. 나 잠깐 저기 좀 다녀올게.”
이리나에게 낚싯대를 내민 종혁이 몸을 일으킨다.
“어디 가?”
“아는 사람을 본 것 같아서. 엄마도 먼저 하고 계세요.”
황급히 몸을 일으킨 종혁은 제법 멀리 떨어진 텐트 앞에서 낚시 장비들을 정리하고 있는 비니 모자로 대머리를 가린 장년인에게 다가갔다.
“혹시…… 이성동 반장님?”
“누구…… 어? 어디서 뵌 분인데?”
“하하. 반갑습니다. 신안경찰서장 최종혁 총경입니다.”
“아! 그분이시구나!”
유도 영웅이자 경찰 조직의 역사를 새로 써 가는 엘리트 중 초엘리트. 그리고 경찰 개혁의 선봉에 있는 최종혁 총경.
“아이고, 충성. 서울청 강력계 이성동 경감입니다.”
‘그분…….’
옛 상관을 만나다 못해 존댓말을 들어서 그런지 기분이 싱숭생숭해진다.
“……원래 다른 청에 계시지 않았어요?”
계급도 경위여야 했다.
“아, 어부지리로 승진을 좀 했습니다. 하하. 이것도 다 총경님 덕분이죠. 캄사합니다!”
“아아.”
비리 경찰들을 숙청하며 단행된 인사 개혁. 이성동도 그 덕을 본 것 같다.
“에이, 제 덕분은요. 다 반장님이 유능하셔서 얻으신 결과죠.”
“크으. 진짜 요샌 일할 맛이 난다니까요!”
범인을 잡으려고 애쓴 것뿐인데, 조금만 문제가 되어도 그 책임을 전부 제 한 몸 아끼지 않은 경찰에게 떠넘겼던 과거의 경찰 조직.
그러나 이제는 범인을 검거하기 위해서라면 다소 과격한 방법을 동원해도, 심지어 발포까지 허용될 만큼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휴가 나오신 거세요?”
“예. 얼마 전에 포상 휴가를 받아서 말이죠, 하하.”
열심히 노력한 만큼 그 보상도 확실히 주어지는 조직으로 변화한 경찰.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조직의 모습에, 이성동은 자신이 경찰이라는 사실에 더더욱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휴가차 놀러 왔는데 영 잡히질 않다 보니 가족들이 지루해하네요.”
이성동은 저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가족들을 가리켰고, 종혁은 눈을 빛내며 고개를 숙였다.
‘형수님은 여전하시네.’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을 때면 항상 아랫입술을 내미는 버릇이 있었던 이성동의 아내. 무엇을 하든 항상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는 이성동의 자녀들도 여전한 모습이었다.
“하하. 확실히 낚시라는 게 물고기가 잡히지 않으면 재미가 없죠. 알겠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뵙죠.”
“예. 그럼 가족들과 좋은 시간 보내십시오. 충성.”
능글맞게 웃으며 돌아서는 이성동을 바라보던 종혁이 피식 웃는다.
“확실히 경찰 복지가 좋아지긴 좋아졌나 보네.”
출근하면 조직에 치이고, 퇴근하면 가정에 치인 탓에 항상 피곤한 모습으로 웃음기가 없었던 이성동 반장.
그런데 저렇게 활짝 웃는 모습을 보니, 경찰 조직이 그래도 참 긍정적으로 변화했구나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뿌듯해진 종혁이 미소를 짓던 그때였다.
“에이, 씨.”
“음?”
물고기가 잡히지 않는 탓인지 담배를 질겅질겅 물며 짜증을 내는 덩치 큰 이십대 초반의 사내.
종혁은 슬쩍 고개를 돌려 사내를 바라보다가 이내 어깨를 으쓱이곤 다시 가족에게로 향했다.
“엄마, 뭣 좀 잡았…….”
“쉿!”
아래로 까딱이는 고정숙의 낚싯대.
종혁은 재빨리 말을 삼켰고, 고정숙은 낚싯대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마미. 릴렉스, 릴렉스…… 지금!”
촤악!
“으읏!?”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강한 힘. 당황했던 고정숙은 입술을 깨물며 낚싯줄을 감았고, 종혁과 어느새 모여든 사람들은 그런 고정숙을 말없이 응원했다.
“나, 나온다!”
“어, 어머니! 끝까지 방심하면 안 돼요! 천천히! 천천히…… 나왔다-!”
“와아아!”
종혁과 일행들은 고정숙이 낚아 올린 커다란 송어에 환호성을 보냈다.
* * *
“와아아!”
또 터지는 환호성.
종혁은 고정숙의 옆에서 축 늘어져 있는 물고기들 옆에 막 추가되어 팔딱이는 송어 한 마리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고작 30분 만에 벌써 8마리째. 송어 7마리에 베스 한 마리였다.
“마미! 여기 있는 물고기 다 잡으려는 거야?! 너무해요!”
“와, 이건 그냥 초심자의 행운이라고 볼 수 없는데……. 어머니! 정말 낚시 안 해 본 거 맞으세요? 아니죠? 어머니 많이 해 보셨죠?”
“아냐. 이건 그냥 어복을 타고 태어난 거야. 어머니, 저 손 좀!”
“응? 손은 왜?”
“누가 영 아니니까 어머니 기운 좀 받아 가려고요!”
“소, 소영아? 그, 그게 무슨 말일까? 나, 나도 한 마리 잡았거든?!”
“못 먹는 거잖아!”
“호호. 이 아줌마가 원래 운이 좀 좋긴 하지!”
마음껏 만지라는 듯 손을 내미는 고정숙의 모습에 종혁이 피식 웃는다.
‘즐기고 계셔서 다행이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웃음이 가득한 어머니의 모습을 보니 절로 웃음이 나온다.
아무래도 애들을 데려오길 잘한 것 같았다.
“에이, 씨발! 거 조용히 좀 합시다! 여기 전세 냈어?!”
방금 전 담배를 꼬나문 채 짜증을 내던 사내의 외침에 순간 싸늘하게 식어 버리는 분위기.
그러나 종혁은 푸근히 웃으며 사내를 향해 고개를 숙인다.
“시끄럽게 해서 죄송합니다!”
“지들만 잡으면 다야? 어? 사과만 하면 다냐고!”
짜증을 참지 못해 결국 일어서는 사내.
주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말소리마저 줄어들자 종혁은 이번엔 허리를 숙였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제부터 조용히 하겠습니다!”
“……에이, 씨.”
종혁의 반복된 사과에 사내는 도리어 당황한 듯 다시 자리에 앉았다.
“조금만 조용히 할까요? 하긴, 자긴 하나도 못 잡았는데 남들은 신나 하면 빡칠 수도 있잖아요.”
“……웬일이래?”
“뭐, 인마. 뭐.”
종혁은 자신을 대견스럽게 쳐다보는 수호의 모습에 미간을 찌푸렸고, 소영과 이리나는 그런 그를 보며 실실 웃는다.
솔직히 이런 축제에서 시끌벅적한 건 당연한 일이기에 방금 전 사내의 태도는 어이가 없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종혁은 오히려 그 사내에게 사과를 하고 허리를 숙였다. 그 불같은 성격의 종혁이 말이다.
종혁의 성격을 잘 아는 이들로서는 가족들 앞이라고 성질을 죽이는 그의 모습이 참 기특하고 대견할 뿐이다.
그런 친구들의 시선에 종혁의 눈이 가늘게 떠진다.
“앗! 엄마!”
철수의 외침에 모두의 시선이 정순덕의 낚싯대로 향한다.
얼음 구멍 안으로 빨려들려고 하는 낚싯대.
“엄마, 뭐해!”
철수는 다급히 몸을 날려 낚싯대를 잡았고, 뒤이어 정신을 차린 순덕도 얼른 달려들어 철수를 돕는다.
그리고…….
“우와아아!”
“크다, 커!”
“아줌마! 아줌마 거가 제일 큰 것 같아요!”
거의 종혁의 팔뚝만 한 커다란 송어 한 마리.
모두는 쑥스러워하는 정순덕을 향해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그 순간이었다.
“아, 씨발! 조용히 좀 하라고-!”
다시 식어 버린 공기.
종혁은 겁먹는 가족들의 모습에 몸을 돌리며 애써 웃었다.
좋은 날이다. 이 좋은 날을 망칠 순 없었다.
종혁은 방금 전보다 허리를 깊게 숙였다.
“너나 조용히 해, 새꺄-!”
“뭐, 이 새꺄?!”
순간 사내의 뒤에 있던 텐트에서 터져 나온 외침.
‘……아이고.’
몸을 세운 종혁은 엉뚱한 곳으로 튀어 버린 불똥에 이마를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