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748화 (748/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748화>

132. 겨울 축제

좁고 작은 교도소의 독방.

이젤 앞에 선 장년인이 붓을 든 채 눈을 가늘게 뜬다.

머리 이곳저곳에 새치가 가득한 장년인.

장고 끝에 붓이 움직인다.

촤악!

“……오케이.”

머리카락이 밤송이인 한 남성의 초상화.

훌륭하다.

덜컹!

갑자기 예고도 없이 열린 문.

“4885. 안으로 들어가라.”

4885라 불린 장년인이 손에 든 팔레트와 붓을 내려놓고는 뒤로 물러나 무릎을 꿇은 채 이마를 바닥에 댄다.

무저항한 장년인의 모습에도 잔뜩 긴장을 하며 들어오는 교도관들.

철컥!

교도관들은 장년인의 손목에 수갑을 채우고도 긴장한 기색을 지우지 못했다.

“일어나.”

“저기 성경만 챙기게 해 주십시오.”

“……여기.”

몸이 강제로 일으켜진 장년인이 밖으로 나와 복도를 걷자 양옆으로 줄줄이 늘어선 독방들이 부산해진다.

“회장님 접견 가신다!”

“잘 다녀오십시오, 회장님!”

교도소를 쩌렁쩌렁 울리는 외침.

교도관들의 낯빛은 더 굳고, 장년인이 온화하게 웃는다.

그렇게 꽤 걸은 장년인이 교도소 건물을 빠져나와 하나의 건물 안으로 인도된다.

철컥!

그제야 풀리는 수갑.

“들어가.”

“절 데려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고개를 숙인 장년인은 열린 문 안으로 들어가고, 안에 있던 종혁이 손을 든다.

“여, 탈옥범.”

“……썩을 새끼.”

한때 대한민국을 뒤집어 놨던 희대의 탈옥수 한상원.

그는 콧속을 파고드는 여러 음식 냄새에 입술을 비틀었고, 종혁은 그를 보며 재밌다는 듯 웃었다.

다급히 종혁의 맞은편에 앉은 한상원이 회부터 집어 든다.

물컹하게 씹히며 입속을 가득 채우는 기름진 맛.

이 거지 같은 교도소 안에선 먹을 수 없는 회의 맛에 한상원이 몸부림을 친다.

“아흐으.”

이곳이 천국이 아니면 어디가 천국일까.

이번엔 상추와 깻잎에 초장을 듬뿍 찍은 회 네 점을 올려 쌈을 싼다.

“술도 마셔 가면서 먹어.”

꼴꼴꼴!

종이컵에 따라지는 호박빛의 술.

눈이 돌아간 한상원이 단숨에 들이켠다.

“어흐으!”

목구멍과 배 속을 뜨겁게 달구는 진한 다크초콜릿의 맛. 뒤이어 찾아드는 견과류의 고소한 맛과 과일의 상큼한 맛에 그의 눈이 몽롱하게 풀린다.

종혁은 쌈을 입에 넣자마자 나른해지는 그를 보며 헛웃음을 터트렸다.

‘독기가 많이 빠졌네.’

살인에 성폭행까지 저질렀던 희대의 탈옥수 한상원.

수십만의 경찰 병력과 군 병력을 움직이게 만들다 못해 경찰 간부 수십 명을 강제 은퇴시켰던 그.

1999년, 종혁 자신에게 잡혔을 때까지만 해도 깡마른 몸에 눈에 독기가 철철 넘쳤던 그가 어느덧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저씨가 됐다.

“어째 좀 살 만한가 보다?”

“뭐 그럭저럭.”

처음에는 독방에 갇혀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견디기 힘들고 미칠 것 같았다.

물론 10년이 넘게 흐른 지금도 고통스러운 건 마찬가지였지만, 이것이 자신이 감내해야 할 죗값임을 인정하게 되자 더 이상 이걸로 힘들다고 말할 수 없게 되었다.

종혁은 담배를 물었다.

“네 내연녀 며칠 전에 출소했다.”

한상원의 검거에 작은 공을 올린 마지막 내연녀 유미.

움찔!

“……오래 있었네.”

“너 같은 범죄자를 옹호했는데도, 11년 만에 출소한 거면 빠른 거지. 안에서 네일아트도 배우고, 미용도 배웠다더라.”

“……잘됐네.”

씁쓸히 웃은 한상원이 앞에 놓인 담배를 문다.

찰칵! 치이익!

“후우.”

부디 자신 같은 개새끼는 잊고, 본인의 인생을 살아가길 한상원은 짧게 바래보았다.

“그보다 고맙다.”

이 말부터 했어야 했는데, 교도소 안에선 절대 먹을 수 없는 회에 눈이 돌아가 버렸다.

“아버지 임종을 지킬 수 있게 해 줘서.”

아버지. 모든 일가친척, 친구들이 자신을 버렸음에도 계속 면회를 오셨던 유일한 가족.

종혁이 손을 써 준 덕분에 마지막 가시는 길 쓸쓸히 보내지 않을 수 있었고, 장례도 무사히 치를 수 있었다.

허리를 깊이 숙이는 그의 모습에 종혁이 혀를 찬다.

‘그것 때문인가 보네.’

한상원의 눈에서 독기가 많이 빠진 이유가 말이다.

“됐어. 네가 아무리 개새끼라도, 네 아버지는 잘못 없어서 그런 것뿐이니까.”

“알아. 나도 개새끼인 거.”

종이컵에 남은 위스키를 들이켠 한상원은 이번엔 소갈비찜에 젓가락을 가져갔고, 이내 몸을 이리저리 꼬았다.

종혁은 그런 그를 보며 피식 웃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래서?”

차갑게 가라앉는 종혁의 눈빛. 그런 그의 눈 깊숙한 곳에서 기쁨과 살의가 어울려 춤을 춘다.

그럴 수밖에 없다.

“백종명 그 새끼한테 접근한 놈들이 있다고?”

후원금을 착복할 뿐만 아니라 폭행과 폭언까지 일삼았던 사기꾼, 백종명.

놈들 회사의 프로젝트 시뮬레이션 모르모트가 아니었나 의심이 되던 놈.

한상원이 다시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입술을 비튼다.

“돈값은 제대로 했나 모르겠네.”

그동안 백종명의 감시를 위해 한상원에게 매달 200만 원의 영치금을 넣었던 종혁.

지난 9년간의 투자가 드디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물론 제대로 확인을 해 봐야 할 테지만 말이다.

* * *

“형!”

해맑게 웃으며 달려온 청년이 종혁을 힘주어 끌어안는다.

와락!

“어이쿠.”

“으히히.”

무엇이 그리도 좋은지 종혁을 꽉 끌어안은 채 웃음을 흘리는 청년.

종혁은 부쩍 자란 청년의 등을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두드린다.

노인들만 모여 사는 산골 마을의 유일한 소년이자, 사정이 여의치 않아 제대로 된 배움의 기회조차 받지 못했던 불쌍한 소년, 철수.

그랬던 철수는 이젠 더 이상 소년이라 말할 수 없는 어엿한 청년으로 자라 있었다.

“뭐야, 종혁이만 보이는 거야?”

“실망인데, 철수.”

“우왁! 수호 형! 누나들!”

철수는 소영과 수호, 이리나를 알아보곤 이번엔 그들을 향해 달려가 품에 안겼고, 겨우 풀려난 종혁은 철수의 어머니를 향해 다가가 고개를 숙인다.

“잘 계셨어요, 어머님.”

“어휴. 우리야 형사님 덕분에 잘 있었죠.”

종혁을 보는 철수 어머님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아무것도 없었던 그들 모자에게, 사기꾼에게 사기를 당할 뻔한 그들에게 집을 사 주고, 과수원과 밭도 사 준 종혁.

덕분에 철수도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저렇게 훤칠한 청년으로 자랄 수 있었다.

종혁이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을 하면 아직도 눈앞이 아찔하다.

종혁은 자신들에게 은인 그 이상의 존재였다.

“형사님도 잘 계셨죠?”

당시 경찰대학교 학생이었던 종혁.

이젠 어엿한 경찰이 된 종혁의 훤칠한 모습에, 성공한 모습에 그녀의 가슴이 터질 듯 부풀어 오른다.

“저야 언제나 잘 지내죠. 자주 찾아뵙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경찰이 되며 본격적으로 바빠지기 시작하자 1년에 한 번도 들르지 못했다. 미안했다.

“아, 아니에요! 그런 말은 하지 말아 주세요!”

“아, 엄마. 인사드려. 이쪽은 내가 오랫동안 후원을 하고 있는 철수 어머니.”

“안녕하세요. 고정숙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아드님 덕분에 잘 살고 있는 정순덕입니다.”

어려워하는 순덕의 모습에 고정숙이 어떻게 해 보라는 듯 종혁을 쳐다보자 종혁은 볼을 긁적인다. 자신도 이런 상황은 어려웠기 때문이다.

“철수야!”

“응!”

“준비 다 했어?”

“다 했지! 나도 이전의 철수가 아니란 말씀!”

메고 있는 큰 가방을 보여 주며 환하게 웃는 철수.

“좋았어! 그럼 가자!”

“네!”

종혁은 얼른 철수와 순덕을 차에 태웠다.

* * *

촤악! 촤악!

“꺄아아악!”

“우아아아!”

비명을 지르며 새하얀 슬로프를 미끄러지듯 내려오는 사람들로 가득한 스키 리조트.

“오오오오!”

차에서 내린 철수가 동그랗게 뜬 눈을 초롱초롱 빛낸다.

“사람 되게 많다! 종혁이 형, 여긴 원래 이렇게 사람이 많아?!”

“혹시 스키장 처음 와 보는 거야?”

“응!”

‘에고, 내가 너무 무심했네.’

종혁은 자신이 좀 더 챙겨 줬어야 하는데, 라는 생각으로 괜스레 미안해졌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종혁을 떠나, 철수도 그럴 시간이 없었다.

또래 한 명 없는 산골 마을에서 어떠한 교육도 받지 못해 당시 또래보다 정신연령이 많이 어렸던 철수.

인생극장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많은 후원을 받으며 겨우 배움의 기회를 얻나 싶었으나, 사기꾼 백종명은 그 간신히 찾아온 기회마저 빼앗아 버렸었다.

이후 종혁을 만나 백종명이 체포되고, 철수는 종혁의 후원을 받으며 16살 나이에 드디어 처음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철수는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만큼 9년이라는 시간 동안 정말 열심히 공부했고, 덕분에 이제는 남들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모습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것이 참 대견하고 고마운 종혁이다.

남들보다 뒤처진 만큼 힘들었을 텐데 포기하지 않고 노력해 줘서.

“아무튼 스키장은 대부분 이래.”

겨울이면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스키장.

“오오! 그럼 지금부터 타면 되는 거지?!”

“일단 짐부터 풀어야지, 인마.”

종혁은 단숨에 슬로프로 튀어가려는 철수의 뒷목을 낚아채며 예약해 놓은 숙소로 향했다.

* * *

“우아아아아악!”

빠르다. 너무 빠르다.

퍽!

순간 하늘로 날아오르는 스노보드.

눈물로 그렁그렁한 철수의 눈이 동그랗게 떠진다.

“아아아아악!”

퍼어억!

“쿠웨에엑!”

괴상한 소리를 내며 얼굴부터 땅바닥에 처박힌 철수는 쭉 들어 올려진 엉덩이를 씰룩였고, 뒤이어 달려온 종혁이 다급히 철수의 옷을 잡아 들어 올린다.

“괜찮아?!”

“철수야! 괜찮아?!”

재빨리 내려와 철수를 감싸는 소영과 수호, 그리고 이리나.

종혁도 당황한 채 철수의 이곳저곳을 살핀다.

‘이 자식 전에는 운동 신경이 꽤 있지 않았나?’

산책 나온 강아지처럼 산 이곳저곳을 뛰어다녔던 철수. 분명 운동 신경이 꽤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혀, 형……. 누나…….”

“어디 다치지 않았어? 어디 좀 봐!”

“……푸하핫! 뭐야, 걱정했어요?”

“……야!

“이런 씨! 너 죽을래!”

‘아오, 이 발랄한 똥강아지 같으니!’

정말 깜짝 놀랐다.

“나 또 타고 올게! 엄마! 이번엔 더 높은 곳에서 타요!”

“어휴. 천천히 가라니까.”

철수는 엄마 순덕의 손을 잡고 슬로프를 거슬러 올라갔고, 순덕은 오랜만에 신난 아들의 모습에 힘들어하면서도 미소를 짓는다.

수호와 소영, 이리나도 고개를 저으며 철수를 뒤쫓는다.

촤아악!

그런 그들을 지나쳐 내려오다 종혁의 앞에 멈춰 서는 고정숙에 종혁이 엄지를 치켜든다.

“오올. 이젠 프로라고 해도 믿겠는데?”

“흐흥. 벌써 스키가 몇 년인데.”

예전에 강철선 가족들과 함께 처음 스키장을 간 이후 매해 겨울마다 스키장을 찾은 고정숙.

아들과 함께 오지 못할 땐 친구들과 오다 보니 스키 실력이 자연스럽게 늘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혹시 저랑 단둘이 오붓하게 오고 싶으셨던 건 아니죠?”

둘만의 여행이 아니라 사람들도 북적북적한 여행.

아들과의 여행을 기대했을 고정숙으로서는 서운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물론 양해를 구하자 쿨하게 그러라고 대답한 어머니지만, 걱정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런 아들의 기색에 고정숙이 코웃음을 친다.

“너랑 둘만 오면 재미가 있겠니?”

맛있는 거 먹고, 좋은 풍경을 보는 그런 조용한 여행도 좋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이 떠들썩하게 북적이는 여행도 좋았다.

이건 진심이었다.

“아, 그건 상처인데…….”

“상처는 개뿔. 데려오라는 아가씨는 데려오지도 않고…….”

움찔!

“어쩌겠어. 바쁘다는데.”

삼전장학재단의 직원인 홍시연.

연말이라 장학재단의 후원을 받은 장학생들이 모이는 행사가 많다 보니 도저히 시간을 뺄 수가 없다고 했다.

정말 미안해하며 눈물마저 글썽거리는데, 거기다 대고 그냥 휴가를 내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쯧. 비켜. 내려가야 해.”

자세를 푼 고정숙은 아래로 내려갔고, 종혁은 그런 엄마의 모습에 피식 웃다가 눈을 가늘게 떴다.

급격히 가라앉는 그의 분위기.

‘백종명을 찾은 놈들에게 감시도 붙였고…….’

CIA와 SVR의 추적 결과, 어느 후원회 소속이었던 놈들.

종혁은 그 결과를 받았던 오늘 아침 일을 떠올렸다.

* * *

“후우우.”

입김과 함께 담배 연기가 뿜어진다.

‘벌써 연말이네…….’

2010년도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참 여러 일이 많았던 해이기 때문인지 가슴이 싱숭생숭했다.

“최.”

“이고르.”

그의 집인 정혁빌딩의 입구에 서 있던 종혁은 SVR에서 파견한 요원인 이고르가 내민 노란 대봉투 속 내용물을 보곤 눈을 가늘게 떴다.

“후원 단체 소속이군요.”

사람들에게 기부를 받아 어려운 사람들을 후원하는 후원 단체 소속 직원이 후원 사기를 친 사기꾼을 몇 번이나 만났다?

종혁은 고약한 냄새를 맡는 코를 긁적였다.

“교차 검증은 끝냈습니까?”

“이들의 얼굴을 아는 친구들이 없더군요.”

이쪽으로 완전히 돌아선 김 대리, 김경후를 비롯해 강원도 연수원 급습 때 확보한 놈들의 조직원들. 그리고 조희구 등 중국에서 확보한 놈들의 사원들.

그들 중 누구도 이들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었다.

“쯧.”

‘헛다리를 짚은 건가.’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혀를 차며 소속 직원들 사진을 확인하던 종혁은 한 여성의 사진에 그대로 굳어 버렸다.

“흠…… 응?”

‘이, 이 여성은?’

숨이 멎는다.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여성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왜 그러십니까? 아는 사람이 입니까?”

“……아뇨. 낯익은 얼굴인 것 같아서요.”

같은 게 아니다. 그냥 아는 얼굴이다.

그것도 회귀 전 놈들이 저지른 것으로 추정됐던 한 사건의 피해자였다.

2011년 여대생 피살 사건의 피해자.

당시 놈들 회사로 추정되는 어느 회사의 비정규직 아르바이트생이자 여대생이었던 이 여성은 집으로 귀가를 하던 중 돌연 둔기에 뒤통수를 얻어맞고 숨을 거두고 만다.

‘이 여성이 대체 왜 여기에…….’

현재 놈들이 만든 것으로 의심되는 후원 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여대생.

종혁의 기억이 확실하다면, 그녀는 내년에 놈들이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또 다른 회사로 이직하는 셈이었다.

이것이 과연 우연일까.

‘……대체 무슨 상황인 거야?’

종혁의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