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743화 (743/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743화>

    옛 삼거리파 조직원들이 이마를 잡는다.

    골이 띵하다.

    “닌 뭐냐?”

    단순한 취객의 장난으로 볼 수 없는 게 덩치가 너무 크고 분위기도 묘하게 익숙하다.

    “너희 태릉 피트니스에 불 지르려다가 잡혀 들어갔지? 그거 내가 신고한 거다?”

    “……이런 씨버랠 새끼가!”

    종혁은 경찰공무원증을 던졌고, 눈이 뒤집혀 달려들려던 옛 삼거리파 조직원들은 다급히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거 뒤집어 볼래?”

    “크헉?!”

    총경이라는 직급에 움찔했던 그들은, 그 위에 적힌 이름을 보곤 묘하게 낯익은 느낌을 받았다.

    “작년까지 빵에 있었으면 내 이름 정도는 들어 봤지?”

    오싹!

    “보, 본청 불도저…….”

    자신들을 검거한 미친개 김종두보다 더 미친 형사 최종혁.

    국회의원 모가지까지 날려 버렸다는 희대의 미친 또라이 형사.

    “오, 알아봐 주니까 편하네.”

    아니었으면 주저리주저리 설명할 뻔했다.

    물론 주먹으로 말이다.

    “어허이. 거기 여성분들은 저기 문 옆에 붙어서 서 있으세요.”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던 여자들은 울상을 지으며 문 옆에 섰고, 옛 삼거리파 조직원들은 울분을 토했다.

    “무, 무슨 일로 찾아오셨는지 모르겠지만, 저희 사고 안 치면서 조용히 살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아무 죄 없는 사람한테 이래도 되는 겁니까?!”

    “그거야 조사해 보면 알 일이고.”

    ‘씨발.’

    그들이 형사에게 듣기 가장 싫은 말.

    조사해 보면 안다.

    완전히 포기해 버린 그들에게 다가간 종혁은 경찰공무원증을 뺏어 갈무리했다.

    “오늘 너희랑 술 마신 놈 있지?”

    “차, 창배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신예은의 남자친구 우창배.

    “그래, 그놈.”

    종혁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는다.

    “그놈하고 나눈 이야기 싹 다 불어.”

    하나도 남김없이.

    단 한 단어도 빼먹는 것 없이.

    옛 삼거리파 조직원들은 마른침을 삼켰다.

    * * *

    “쩐주를 문 것 같다고?”

    모텔 근처의 호프집.

    종혁이 술을 따라 주며 미간을 좁힌다.

    “예. 그렇다니까요.”

    “형님도 아시다시피 저희 같은 놈들이 무슨 돈이 있겠습니까.”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정치 깡패나 기업형 깡패들이 대중들의 인식에 박히면서, 깡패들이 돈을 많이 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부와 권력을 손에 쥐는 건 결국 윗대가리들뿐, 이들 같은 말단들은 자그마한 방에 여러 명이 부대껴 자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런데 이놈이 갑자기 피트니스 센터를 짓는다지 않습니까.”

    “원래부터 서로 알던 사이였어?”

    “아, 아니요. 저희도 아는 사람에게 소개받았습니다.”

    우창배가 피트니스 센터를 준비하는 중인데, 혹시 조언 같은 것 좀 해 줄 수 있냐고. 너희도 피트니스 센터를 운영하지 않았냐고.

    “그래서 만나 보니 얘가 돈이 많았다?”

    “돈만 많은 게 아니라 좀 멍청했죠.”

    피트니스 센터 사업을 하겠다는 놈이 고작 1억밖에 없었다.

    유동 인구가 많은 입지에 꽤 넓은 평수의 공간을 임대하고, 여러 비싼 운동 기구를 들여놓으려면 그 정도로는 택도 없었다.

    그래서 쓴소리를 하며 바람 좀 집어넣었다. 많은 돈이 투자될수록 자신들에게 떨어지는 돈도 많아질 테니까.

    “그러니까 조금만 기다려 보라더니, 정말 한 달 뒤인가 갑자기 떡하니 2억 가까이 돈을 가져오지 않겠습니까?”

    “꽤나 돈 많은 쩐주를 물은 거 같더라고요.”

    꿈틀!

    종혁의 미간이 좁혀진다.

    “그게 언젠데?”

    “분명 10월 언제였는데…… 아, 잠시만요?”

    다급히 핸드폰을 꺼낸 조직원 중 한 명이 우창배와 주고받은 문자를 보여 주며 소리쳤다.

    “이날입니다, 이날!”

    문자 메시지에 적힌 날짜를 확인한 종혁의 미간이 가늘게 좁혀졌다.

    6일 전.

    신예은의 남자친구 우창배, 놈이 자신 있게 돈을 마련해 오겠다고 말한 날은 이경애 씨가 사망하기 6일 전이었다.

    종혁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 * *

    번뜩 눈을 뜬 이십대 여성이 천장을 바라보다 한숨을 내쉰다.

    어김없이 찾아온 출근 시간.

    시간을 확인한 여성이 담배를 물며 화장실 안으로 들어간다.

    “꺼흑! 아, 이제 좀 살겠다.”

    속이 쫙 풀리는 기분에 작은 미소를 지은 그녀가 출근 준비를 한다. 물기 가득한 머리를 드라이기로 말리고, 화장을 하고.

    그리고 택시를 타고 유흥가로 향한다.

    어느새 어두워진 거리.

    샌드위치와 숙취해소제 따위가 든 검은 봉지를 든 여성이 한 단란주점 안으로 들어간다.

    딸랑!

    “나 왔어요.”

    “왔어? 오늘은 좀 늦었네?”

    “아직 지각 아니거든요?”

    1분만 지각해도 벌금이 있다. 무려 10만 원이 넘는 액수. 어쩌면 오늘 하루 번 돈을 모두 벌금으로 내야 할 수도 있기에 예민하게 반응한 여성에 프런트에 앉은 새끼마담이 속으로 혀를 찬다.

    “얼른 단장하고 3번 룸으로 가 봐. 손님 왔어.”

    “누군지 몰라도 발정 한번 제대로 났나 보네. 알았어요.”

    새끼마담은 얼른 움직이라고 재촉했지만, 느릿하게 대기실로 향한 그녀는 화장을 빡세게 하고 홀복을 입었다.

    그리고 3번 룸 앞에 선 그녀는 문을 열고 활짝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마음이…… 예요!”

    ‘아씨, 깡패인가?’

    큰 덩치에 꽤 잘생겼지만 위험한 분위기.

    아무래도 오늘 첫 손님은 깡패인 것 같다.

    술에 취하면 지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양아치 새끼들.

    하지만 그녀는 웃음을 잃지 않은 채 덩치 큰 사내 옆에 바짝 붙는다.

    “왜 혼자 마시고 계셨어요!”

    “누가 안 와서.”

    “미안해요! 빨리 온다고 왔는데 좀 늦어 버렸다. 그쵸?”

    화 풀라며 사내의 팔짱을 끼며 가슴을 비비는 그녀.

    사내는 피식 웃으며 본인의 품을 뒤져 사진 한 장을 꺼낸다.

    “됐고. 이 사람, 신예은 씨에 대해 알지?”

    신예은과 자신이 함께 걷고 있는 모습이 찍힌 CCTV 사진.

    그 사진을 본 여성은 눈을 부릅떴다.

    “누, 누구…….”

    “이런 사람이다.”

    “헉!”

    여성은 종혁이 내미는 경찰공무원증에 하얗게 질렸다.

    “흠. 아무튼 맞거나 협박을 당하는 것 같진 않았다는 거지?”

    “아마 그랬다면 우리가 가장 먼저 알았겠죠.”

    맞는 말이다.

    출근을 하면 대기실에 모여 함께 화장을 하고 옷을 갈아입는 그녀들. 몸에 멍 따위가 들었다면 알아차릴 수밖에 없다.

    ‘흠. 확실히 장례식장에서도 딱히 우창배를 무서워하는 그런 기색은 없었어.’

    “그리고 돈을 뺏긴 것도 아닐걸요? 걔가 돈에 얼마나 집착하는데.”

    “뭐?”

    “예은이 엄마 보험금도 어차피 물어보셨을 거잖아요.”

    눈치가 빠르다.

    술잔을 내려놓은 종혁의 눈이 가늘게 떠진다.

    “하지만 사치가 심하던데?”

    최근에는 더 심했다. 갑자기 큰돈이 생긴 사람의 전형적인 소비 패턴을 보이고 있었다. 보통 돈에 집착이 있는 사람들은 과소비를 잘 안 하는데도 말이다.

    “예은이는 그 사치를 위해 돈을 벌던 년이에요. 뭐, 이 바닥에서 일하는 애들 중 대부분이 그렇지만요.”

    아름다움이 능력인 이 바닥.

    이건 사치가 아니라 나름의 투자라는 이유로 명품을 사는 등 자신을 꾸미는 데 아낌없이 돈을 쓰곤 한다.

    어린 나이에 많은 돈을 쉽게 벌 수 있기 때문일까?

    미래를 준비하며 차곡차곡 저축하는 애들도 분명 있지만, 대부분은 쉽게 번 만큼 쉽게 돈을 써 버린다.

    그리고 빚더미에 깔려 더 이상 이 바닥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

    신예은도 그런 이들 중 한 명이었다.

    돈을 버는 족족 명품을 사고, 비싼 음식을 먹은 신예은. 진상 손님한테 시달린 날에는 호스트바에 가서 수백만 원씩 쓰며 호스트들을 괴롭히기도 했다.

    그렇다 보니 돈이 모이기는커녕 빚만 늘어났던 그녀.

    그러나 신예은에게는 기회가 찾아왔다.

    “이걸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나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보험금 덕분에 빚을 전부 다 털어 낸 거죠.”

    “흐음. 알았어. 다음 애 들여보내 봐.”

    종혁은 여성에게 수표를 내밀었고, 환하게 웃은 여성이 몸을 벌떡 일으켰다.

    “야, 이거 알지?”

    종혁이 입에 지퍼 채우는 시늉을 하자 여성은 피식 웃었다.

    “장사 하루 이틀 하나. 있어 봐요. 얼른 보내 줄 테니까!”

    여성은 엉덩이를 씰룩이며 룸을 나섰고, 종혁은 그런 그녀를 일견하며 생각에 잠겼다.

    예상과 들어맞질 않는다.

    뭔가 어긋나 빙빙 돌아가는 느낌.

    종혁은 이 상황이 좀 당황스러웠다.

    * * *

    휘이잉!

    겨울의 찬바람이 불어와 창문에 부딪치자 신복동의 낯빛이 어두워진다.

    “오늘은 파도가 좀 있겄는디…….”

    날씨도 좀 흐릿한 게 썩 내키지 않는다.

    하지만 딸이 가잔다.

    지난 삼십여 년 동안 말 한 마디 제대로 나눠 본 딸이.

    이제야 좀 친해진 딸이.

    띠리링! 띠리링!

    “어, 그려! 지금 내려가!”

    얼른 옆에 둔 낚시 가방과 다른 가방을 챙긴 신복동이 아파트를 내려간다.

    “아빠!”

    막 주차한 차에서 내려 손을 흔드는 신예은.

    운전석에서 내린 남자친구 우창배가 고개를 숙였다.

    “그동안 잘 계셨죠?”

    “어, 어. 그래요. 왔어라? 오는 길 힘들지는 않았고?”

    “길이 잘 뚫려 있어서 편히 왔습니다. 하하.”

    “그려요. 근디…… 아따, 뭔 옷을 그렇게 얇게 입었데.”

    “왜?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아?”

    신예은이 한 바퀴 빙글 돌며 올겨울 신상으로 나온 점퍼를 뽐낸다.

    “충분허기는!”

    바지에 겨우 점퍼 하나만 입은 신예은과 우창배.

    신복동이 자신의 옷차림을 가리킨다.

    “최소한 이 정도는 입어야제! 그러다 감기 걸려. 안에 받쳐 입을 거 없어?”

    “없는데…….”

    “허이구. 내가 이럴 줄 알았당께.”

    신복동이 등에 멘 가방을 열어 안에 있는 옷을 넘긴다.

    “이거 안에 입어. 바지는 밖에다 입고.”

    “……와아!”

    안에 기모가 들어간 조끼와 두꺼운 바지.

    두 사람이 안에 옷을 받쳐 입자 신복동은 그제야 흐뭇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근디 낚시 꼭 가야겄냐? 날씨가 심상치 않은디…….”

    “오늘 낚시 못하는 거야? 나 기대했는데…….”

    배에서 고기를 구워 먹고 싶어서 버너와 불판까지 가져왔다.

    그렇게 가져온 것들을 보여 주자 신복동은 당황하고 말았다. 낚시에 대한 딸의 기대가 너무 컸다.

    “아녀, 아녀. 날이 좀 심상치 않다는 거제, 못한다는 건 아녀! 알았어. 가자!”

    그들은 신복동의 차를 타고 선착장으로 향했다.

    “아따! 뭐 이렇게 늦게 오셔잉! 기다리다 얼어 뒤지는 줄 알았네!”

    “미안혀. 아, 이쪽은 내 딸. 그리고 이쪽은 딸 남자친구.”

    “안녕하세요. 신예은입니다.”

    “……희헌허네. 형님 얼굴에서 나올 미모가 아닌디? 솔직히 말혀 봐요. 형님 딸 아니제라?”

    “내가 뭐 어때서 그런디야! 그러는 니는! 니는, 인마!”

    “풋! 맞아요!”

    “아닌디…….”

    “신소리 그만허고, 배는 어디 있냐?”

    “저쪽이어라. 따라오쇼잉. 형님 딸하고 남자친구도 발밑 조심허고. 자칫하믄 빠진께.”

    이번에 새로 선착장을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다리처럼 고정이 된 게 아니다. 파도에 따라 출렁거리고, 또 미끄러울 수 있다 보니 조심해야 했다.

    그렇게 선착장을 걸어 약간은 허름한 배 앞에 선 신복동의 후배가 걱정스럽다는 듯 본다.

    “근디 정말 내가 운전 안 해도 괜찮겠어라?”

    “왜? 내가 배를 잡아먹을까 봐 걱정돼냐잉. 걱정 마야. 망가지믄 다 보상해 줄 텐께.”

    “아따. 누가 그런 것 때문에 그런데요.”

    어차피 쓸 일도 없어서 애물단지로 놔두던 놈이다. 망가져 봤자 그냥 폐선하면 된다.

    “어쩌겄냐. 딸이 다른 사람은 부담시럽다고 아빠랑만 가고 싶다는디.”

    신복동이 선착장에 서서 주위를 신기하다는 듯 둘러보는 신예은과 남자친구를 턱 끝으로 가리킨다.

    “그래서 며칠간 연습도 했잖여.”

    “……확실히 옛날 가닥은 나옵디다.”

    보통 몸을 어느 정도 가눌 나이가 되면 집안일을 돕는 게 이런 시골의 남자들이다.

    그러다 아버지가 술에 취해 도저히 배를 운전할 수가 없으면 대신 운전도 하곤 한다. 고작 12살, 13살 꼬맹이가 말이다.

    신복동도 서울로 올라가기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왕왕 배를 운전하곤 했었다. 가끔은 부모 몰래 배를 끌고 나가 비 오는 날 먼지 나도록 맞기도 했다.

    이 압해도에서 배를 가진 사람들 중 그런 추억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알았어라. 여기 키.”

    “그려. 키는 배에 두고 갈 텡께 내일 저녁 편의점으로 와. 술 살 텡께.”

    “멀리 가진 말고. 해양 경찰 애들이 단속할 수도 있응께.”

    주의를 준 신복동의 후배는 선착장을 빠져나갔고, 신복동은 딸을 향해 크게 외쳤다.

    “예은아! 가자!”

    “……네!”

    돌아서는 신예은과 남자친구가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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