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742화>
“그렇지라!”
낯빛이 흐려지는 것도 잠시다.
마치 잘못 본 거라는 듯 더 밝아진 신복동이 어제 딸과 무슨 일을 했는지 재잘재잘 말한다.
“우리 딸이 얼마나 효녀인지 이 애비 힘들 거라고 찾아왔다는 거 아녀라.”
저번에 아내와 만났을 때 느끼긴 했지만, 이혼하기 전과 얼굴이 많이 달라진 딸.
하지만 성격은 그때 그대로였다.
일이 힘들지 않냐며 슬그머니 어깨를 주물러 주고, 힘내라며 응원도 해 주던 딸. 이번에도 똑같았다.
“근디 지가 깜짝 놀란 게 뭔지 알아라?”
“뭔데요?”
“야가 술을 마시더랑께요?”
“아니…… 그건 당연하잖아요.”
“무슨……! 나한티는 당연하지 않지 않은 일이어라!”
이혼하기 전만 해도 학생이라 술을 마실 수 없던 딸.
신복동의 기억 속 딸은 그때 그대로 멈춰 있었다. 한 달 전 아내와 만났을 때 약간 변한 걸 느끼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 그때의 딸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런 딸이 어느덧 자라 아빠와 술을 마실 수 있는 나이가 됐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으로 이해하지 못해 얼마나 기겁했는지 모른다.
“그것도 폭탄주를! 아따, 환장하는 줄 알았당께요?”
“푸핫! 그래도 좋으셨죠?”
“……좀 그렇더라고요.”
못 본 사이에 훌쩍 커 버린 딸.
그런 딸과 술을 마실 수 있다는 것이 참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이 모른 곳에서 이렇게 자라 버린 것이 섭섭했다.
이렇게 클 때까지 자신의 지분이 없다는 것이 너무 미안했다.
“이혼하신 후로 한 번도 못 보신 거예요?”
“…….”
갑자기 카운터를 빠져나온 신복동이 맥주 한 캔을 들고 나온다.
달칵! 치이익!
“꿀꺽꿀꺽! 크으으. 그랬죠잉. 아내가 만나지 말라고 했응께요.”
괜히 만나서 헛바람 넣지 말라고 했다.
중요한 시기라고.
돈도 보내지 말라고 했다.
“왜요?”
“이젠 우린 남이라고, 예은이도 당신 소관이 아니라고. 그렇게 말했지라.”
“어이구…….”
이번엔 종혁이 술과 안주들을 들고 온다.
결국 편의점 한구석에 놓인 의자에 앉는 둘.
“자신들도 충분히 먹고 살 만하다고, 그러니 이제 내 삶을 살라고 딱 잘라 말하는디…….”
그 말을 무시하고 돈을 보내 봤다. 딸에게도 몰래 용돈을 줘 봤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딸의 용돈까지 모두 다시 돌려보냈다.
그렇게 한 2년을 매달리다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말은 그렇게 우악스럽게 했지만, 내 몸 상태를 알고 있었던 것이 분명 하당께요.”
너무 열심히 일을 해서 그런지 간 수치가 어마어마했다. 당뇨도 있었고, 고혈압에 막노동을 하다 보니 기관지와 폐도 좋지 않았다.
한 발자국만 더 내디디면 곧바로 무너질 상태였다.
“좀만 이기적으로 살제…….”
아내는 참 나쁜 사람이었다.
“그래도 따님을 잘 키우셨잖아요. 이렇게 찾아오기도 하고, 번듯한 남자친구도 있고.”
해 줄 수 있는 위로라곤 이런 것밖에 없어서 씁쓸했다.
“그게 또 그런 게 아닌 것 같응께 문제지라…….”
“예?”
“아, 아니어라. 어휴. 시간도 늦었응께 서장님도 이만 가서 쉬셔라. 지도 이제 그만 문 닫을랑께요.”
얼른 봉투를 가져와 술과 안주를 담은 신복동은 종혁을 내몰았고, 종혁은 문을 닫자마자 가게 정리를 하던 그를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그게 아니다?”
이게 무슨 말일까.
순간 종혁의 머릿속에 장례식장에서 마주쳤던 한 남자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설마…….’
눈을 가늘게 뜬 종혁이 핸드폰을 든다.
“나야, 철아. 혹시 지금 부탁 좀 하나 해도 될까?”
특수한 상황 시 모든 절차를 무시하고 전 국민의 모든 기록을 열람할 수 있는 특수범죄수사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선 순철의 도움이 필요했다.
* * *
띠리릭!
술병이 담긴 봉지를 식탁에 내려놓은 신복동이 안방으로 들어간다.
겨우 사람 한 명이 어젯밤 하루 잤을 뿐인데 냄새가 많이 바뀐 안방.
이전까진 먼지 냄새만 났던 안방을 둘러보던 신복동이 장롱의 문을 열어젖힌다.
그리고 맨 아래 서랍을 빼내 그 안에 든 것을 꺼내 든다.
[보험 증서]
여섯 개의 보험 증서.
오늘 아침에 딸이 떠나고 청소를 할 때 알게 됐다. 딸 신예은이 이걸 봤음을 말이다.
그러자 어제 나눴던 대화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동안 이 아버지가 어떻게 사는지에 대해 썩 궁금하지 않아 했던 딸.
하지만 아파트 가격과 편의점 건물 가격은 참 궁금해했던 딸.
그러더니 오늘 아침 보험에 대해 슬그머니 묻더니 돌아가기 전에는 이번 주 토요일에 남자친구랑 다시 내려온다고 했다.
혼자 사는 게 쓸쓸하진 않냐고. 취미는 있냐고. 낚시를 가자고.
그렇게 말하곤 떠났다.
“대체 뭐가 얼마나 힘든 거여……. 그 돈으로도 부족한 거여?”
딸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그렇다고 사람을 모르는 건 아니다.
딸의 눈빛은 분명 무언가를 바라는 사람들이 짓는 그런 눈빛이었다.
“그려. 내 업보제, 업보여.”
가정을 돌보지 않았던 업보가 딸을 이렇게 만든 것 같다. 나이가 서른임에도 제 앞가림을 못하는 그런 딸로.
하지만 어쩌겠는가. 자신은 그런 딸의 아버지였다. 책임을 져야 했다.
“대출을 받아야겄제?”
일단은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을 받으면 될 것 같다.
그것도 모자라다면 편의점과 편의점 건물까지.
“어차피 돈은 앞으로도 벌 수 있응께.”
이제 고작해야 53살이다. 앞으로 20년은 너끈히 일할 수 있었다.
결혼 선물, 아니 혼수를 미리 장만해 준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신복동은 씁쓸히 웃으며 마음을 정리했다.
* * *
신안경찰서의 서장실.
사락!
“하, 나참.”
신예은의 지난 2년간의 금융 거래 기록을 살피던 종혁은 헛웃음을 흘렸다.
“6억이 어떻게 한 달 만에 90만 원이 되냐?”
차라리 본인이 사치를 부리는 데 전부 다 쓴 것이라면 종혁이 간섭할 문제는 아니었다.
돈을 어떻게 쓰든 그건 그녀의 자유였으니까.
다만 문제는 그 돈의 대부분이 남자친구의 통장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점이었다.
드르륵!
“후우우.”
서장실 창문을 연 종혁이 담배를 문다.
“다시 정리해 보자. 신예은 씨의 남자친구는 그녀의 돈으로 피트니스 센터를 차리는 중이고…….”
족히 60평이 넘는 공간을 임대해 공사에 들어갔다고 한다.
지이잉! 지이잉!
“예, 사장님.”
흥신소 사장이다.
-서장님, 혹시 서비스 좋아하십니까?
“……어이구. 그런 건 주면 감사하죠.”
-의뢰를 맡기셨던 그 사람이 만나고 다니는 사람들을 찍어 봤는데, 보내 드릴까요?
“이렇게 적극적이신 모습 정말 사랑합니다. 사장님.”
역시나 부동산의 파워가 컸던 것 같다.
연쇄살인마 이재현을 감시하기 위해 샀던 아파트와 주택들. 시세보다 싼값에 넘겼더니 이렇게 바라지도 않았던 보답을 해 준다.
-으하하핫! 그럼 바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시간이 좀 남아서 이놈들 뒤도 좀 파 봤으니 더 자세한 정보를 원하시면 언제든 연락만 주십시오! 이건 공짜로 해 드리겠습니다!
“어이쿠. 말만이라도 감사합니다.”
통화를 종료한 종혁은 이내 흥신소 사장이 보낸 사진을 확인하곤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뭐야, 이 새끼들은?”
왠지 낯이 익다.
“어디서 봤더라……? 아!”
기억이 났다. 흥신소 사장이 보내 준 이놈들의 과거 이력을 보니 확실하게 기억이 났다.
“허. 이놈들이 언제 출소했지?”
책상을 검지로 툭툭 두드리던 종혁은 다시 핸드폰을 들었다.
“사장님, 이놈들 지금 어디 있습니까?”
종혁이 외투를 챙겨 들고 일어났다.
* * *
“자자, 마셔!”
“건배!”
채재쟁!
유흥주점 안, 신예은의 남자친구와 두 남성이 술잔을 부딪친다.
“크으으!”
그들이 술을 마시자 안주를 입에 물려 주는 도우미들.
남자친구가 두 남성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형님들!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피트니스 센터가 훨씬 더 좋게 변하고 있다.
인테리어 공사가 모두 끝나 봐야 확실히 알 테지만, 지금까지 공사가 진행된 것만 봐도 입이 찢어질 정도다.
“어이구. 뭘. 후배가 잘되면 우리야 좋지.”
“그럼, 그럼.”
약 십여 년 전, 자신들이 몸담았던 조직이 진행하려 했던 피트니스 센터 프랜차이즈화 사업.
그러나 그 사업은 시작도 해 보기도 전에 어그러졌고, 동시에 조직 또한 함께 공중분해가 됐다.
검경의 소탕 작전.
모두 그놈의 태릉 피트니스 센터를 어떻게 해 보려 들켰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조직이 사라지며 모두 징역형을 살게 된 그들.
시간이 흘러 형을 끝내고 나오니 세상은 별천지처럼 변해 있었고, 전과자인 그들을 써 줄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아는 건달 동생을 통해 눈앞의 남자를 소개받았고, 변변찮은 조언을 해 주는 대가로 자문료까지 받기로 했다.
거기다 옆구리에 아가씨를 낀 채 술을 마시는 것까지.
그들은 매일이 오늘 같았으면 싶었다.
“궁금한 점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 우리가 아는 건 다 알려 줄 테니까.”
“아니면 우리가 고문으로 들어가 줄까? 아직도 말해 줄 게 많은데!”
은근슬쩍 묻는 말에 남자친구가 활짝 웃는다.
“아하하. 아닙니다. 어떻게 형님들 수고스럽게 그런 것까지 부탁드리겠습니까. 거둬 주십시오!”
“끄응. 후배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어쩔 수 없지.”
노림수가 불발로 끝나 버리자 둘은 아쉬워했지만, 그냥 한번 던져 본 것이기 때문에 별 미련 없이 다시 술자리를 즐기기 시작했다.
“어머. 오빠들 사업해요? 무슨 사업해?”
“요년아, 저분께 잘해 드려. 저 후배가 곧 피트니스 센터를 차리거든?”
“정말요?! 와아! 사장님, 헬스장 차리세요?!”
“야! 헬스장이 뭐야, 헬스장이! 촌스럽게! 따라 해 봐. 피트니스 센터!”
“피트니스 센터!”
“그렇지! 너 그래도 말실수했으니까 노래 한 곡 해!”
“치이! 네!”
반주가 흘러나오자 옛 삼거리파 조직원 중 한 명이 신예은의 남자친구를 본다.
“그런데 돈은 괜찮아?”
자신들이 전해 주는 노하우를 모두 녹여 내려면 지금 투자한 것의 최소 2배는 더 투자해야 했다.
“예? 그, 그렇게나요?”
“어이구. 우리 후배님 세상 물정을 이렇게도 모르네.”
현재 이들을 만난 신예은의 남자친구는 고급 피트니스 센터를 지향하게 됐다. 돈 많은 부자들과 연예인이 다니는.
그런데 문제가 있다.
바로 태릉 피트니스 센터의 존재다.
전국 곳곳에 자리하여 명실상부 대한민국 1위인 태릉 피트니스 센터.
그들과 경쟁을 해야 하는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일까.
“차별점을 둬야 한다는 거군요.”
“그렇지! 그런데 그 차별점을 만들려면 뭐가 필요하겠어!”
“……돈이죠.”
맞다. 돈이다.
신예은의 남자친구의 낯빛이 흐려진다.
솔직히 처음엔 깔끔하고 고급스럽게 꾸며 놓고, 할인 이벤트를 적당히 때리기만 해도 고객들이 물밀듯 들어올 거라고 생각했다.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들을 만나고 생각이 달라지게 됐다.
프랜차이즈 사업화.
조금만 더 투자를 하면 그 돈이 미래에 수십 배로 돌아올 텐데 눈이 돌아가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리고 만약 태릉 피트니스 센터까지 이긴다면?
그때는 정말 사장님이 아니라 회장님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자금이 예상 이상으로 많이 들어가고 있었다. 이대로면 사업을 제대로 시작해 보기도 전에 자금이 바닥날 수도 있었다.
“돈 부족하면 언제든 말해! 내가 좋은 분 소개시켜 줄 테니까!”
움찔!
순간 혹했던 남자친구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봤자 어디 사채업자겠지!’
아니면 사채업자처럼 지독한 쩐주거나.
자신도 건달이었기에 건달의 인맥이 다 거기서 거기라는 것쯤을 알고 있다.
이 쩐주에게 돈을 빌리는 순간 자신이 만들고 있는 피트니스 센터의 지분을 넘겨야 한다. 절대 그럴 순 없었다.
“하하.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돈 나올 구멍이 있다.
‘예은이 이년이 잘해야 될 텐데…….’
어차피 이번 주말에 넘어가기로 했다.
거기서 견적을 내야 할 것 같다.
“오! 어디 맘씨 좋은 쩐주라도 물었나 봐? 나중에 한 번 소개시켜 줘!”
“옙! 그렇게 하겠습니다! 야, 뭐해. 형님 잔에 술이 없잖아!”
“네, 사장님!”
그들은 낄낄 웃으며 술을 즐겼다.
“그럼 좋은 밤 되십쇼!”
“아까 말했지? 도움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해!”
신예은의 남자친구는 허리를 꾸벅 숙이곤 아가씨와 함께 사라졌고, 남겨진 옛 삼거리파 조직원들은 담배를 물며 혀를 찼다.
“아, 개새끼. 도무지 파고들 틈이 보이질 않네.”
“그러게. 젊은 놈이 참 영악해.”
“지도 이 바닥에서 제법 굴렀다는 거겠지.”
아무래도 자문료만 받아야 할 것 같다.
“자문료만은 무슨…….”
“푸흐. 그렇지?”
이미 피트니스 센터를 공사하는 업체와 입을 맞춰 놓았다. 자재 가격을 부풀리기로.
신예은의 남자친구가 아직도 건달 생활을 하고 있다면 어림도 없었을 일. 이런 게 바로 냉혹한 사회의 쓴 맛이었다.
딸랑!
“오빠들! 오래 기다렸죠?! 이리로 오세요!”
“어이구. 그래, 그래.”
팔짱을 낀 아가씨들에게 이끌린 둘은 근처의 모텔로 향했다.
그렇게 모텔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이었다.
“어이! 덩어리들!”
움찔!
“어떤 새끼가…….”
“나다, 씹새끼들아.”
옛 삼거리파 조직원들은 가슴을 펴고 다가오는 종혁을 보곤 낯빛을 딱딱하게 굳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