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739화 (739/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739화>

웅성웅성.

먹먹한 소음이 가득한 장례식장.

빈소의 벽에 기댄 신복동이 멍하니 아내의 사진을 본다.

왈칵 눈물이 쏟아져 내린다.

“왜 그리 웃고 있는가……. 뭣이 좋다고 웃고 있어.”

꽃들 사이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아내.

“미안허네. 내가 미안혀……. 끄윽! 끄으윽!”

“아빠…….”

“크읍!”

애써 얼굴을 문지르며 일어나던 신복동이 깜짝 놀란다.

“서, 서장님?”

흐릿하게 웃은 종혁이 향을 올리고 망자에게 절을 올린다.

그리고 신복동에게도 절을 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가, 감사합니다. 그런데 여긴 어떻게 오셨어라.”

아내가 서울 사람이라 서울에서 장례를 치르고 있다. 신안에서 오기엔 너무 먼 거리였다.

“그래도 와야죠.”

몰랐다면 모르되 부고 소식을 함께 들었다. 당연히 와야 했다.

“……식사는 하셨어라?”

“사장님은요? 아니, 제가 괜한 것을 물었네요. 같이 한술 뜨시죠. 장례를 무사히 치르시려면 사장님이 정신을 차리고 계셔야죠.”

장례는 체력전이다. 아무것도 먹지 않으면 끝날 때까지 버틸 수가 없다.

“생각 없는디…….”

신복동이 못 이긴 척 따라나선다.

“주민분들은 내일 오신다네요.”

그와 친한 지인들은 이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종혁이 말하는 건 압해읍의 동네 사람들이었다. 버스를 대절해서 온다고 했다.

“뭘. 이 먼 곳까지 온다고…….”

말만이라도 고맙다.

소주를 딴 신복동이 종혁의 잔에 술을 따르려다 멈춘다.

“아, 차 가지고 오셨지라?”

“대리 불러서 가면 됩니다. 전 걱정 마세요.”

종혁이 그의 손에 들린 병을 뺏어 소주를 따라 준다.

“크으!”

“어떻게 가신 건지 여쭤도 될까요?”

“……푸흐. 난 몰랐는디 암이었답니다.”

갑상선암이었단다.

아무리 이혼을 했다지만 그걸 몰랐다는 게, 불과 며칠 전 서울에서 만났을 때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게 참 어이가 없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어이가 없는 건 아내의 사인이 암이 아니라 실족사라는 점이었다.

“실족이요?”

“딸내미랑 등산을 갔다가 발을 헛디뎌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고 하네요잉. 단풍 다 진 이 날씨에 뭐 헌다고 거기까지 기어간 건지…….”

그랬다면 구할 수 있었을까.

혹여 자신이 대신 죽을 수 있었을까.

짙은 후회가 눈시울을 뜨겁게 만든다.

종혁은 울려는 그의 모습에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아내분과는 어떻게 만나셨어요?”

“……맞선이었지라.”

아직도 생생히 기억이 난다.

아내와 처음 만난 곳은 다방이었다.

지금처럼 카페도 없던 시절. 다방이 만남의 장소였다.

명치까지 내려오는 긴 생머리에 하얀 원피스. 핏줄이 보일 정도로 하얀 피부의 아내는 마치 천사 같았다.

“한눈에 반했지라.”

커피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몰랐다.

이 여자를 놓치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던 성복동은 그날 이후 계속 따라다니며 구애를 했다.

그 정성을 알아준 것인지, 아니면 하늘이 도운 것인지 소개팅을 한 지 딱 반년째 되던 날 둘은 사귀게 됐다.

“그리고 반년 뒤에 결혼했지라.”

“빨리하셨네요?”

“급했지라. 배가 부르기 전에 식을 올려야 했응께.”

“어이쿠.”

“뭐…… 그때 있던 애는 하늘이 데려가 버렸지만 말이어라.”

뭐가 그리 급한 지 7개월 만에 나온 아이. 낳은 지 일주일도 안 되어 하늘이 데려갔다.

“아마 그래서였을 거여라.”

아기가 빨리 나온 것도, 일주일 만에 죽은 것도 다 자신이 모자라서 그랬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일만 붙들며 살았을지도 몰랐다.

겨울이면 수도가 얼어붙는, 난방도 안 되는 반지하 쪽방에서 살았기에 아이가 죽은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정말 미친 듯이 일만 했다.

“아내도 함께 모으자며 식당일을 했지라.”

그렇게 두 사람이 함께 모으니 반지하는 1층으로, 그 1층은 겨울이면 펄펄 끓는 아파트로.

역시 가난이 문제였는지 아파트로 이사를 간 그날, 거의 8년 동안 지지리도 생기지 않았던 아이가 그날 생겨 버렸다.

지금의 딸이다.

그게 너무 기뻤나 보다.

“실족을 했지라.”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는 말처럼, 15살부터 매일같이 살았던 공사장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다리가 박살 났다. 설상가상 뼈마저 잘못 붙어 영구적인 장애를 입게 됐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집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만 둘인데.

지금의 딸을 낳고 건강이 급격히 안 좋아졌던 아내.

그래서 막노동을 나갈 때보다 더 이 악물고 일했다.

“그랬으믄 안 됐는디…… 안 됐는디…….”

아내가 그렇게 힘들어하는 줄 알았다면 일을 조금 줄일 걸 그랬다.

“집도 있는디 뭐 그리 악에 받쳐 일했는지……. 그러지 않았다면 갈라서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랬다면 또…….”

함께 살았다면 아내의 병을 빨리 알아차리지 않았을까.

아내를 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혼하자고 혔어도 안 된다고 했어야 했는디! 그래야 했는디-!”

신복동은 끝내 울음을 터트렸고, 종혁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저 울음을 터트리는 그의 손등을 토닥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마음이 무거웠다.

* * *

“아빠.”

초췌한 인상의 딸이 다가오자 신복동이 눈물, 콧물로 얼룩진 얼굴을 닦는다.

“그려. 누구 오셨어?”

종혁을 힐끔 보더니 옆 사람을 소개시키는 그녀.

“인사해. 내 남자친구야.”

“남자친구?”

“처음 뵙겠습니다, 아버님.”

허리를 숙이는 남성을 본 신복동이 멍해진다.

제법 다부진 체격에 호남형으로 생긴 얼굴.

종혁은 그의 손가락에 새겨진 문신을 응시했다.

“어, 어. 그래요. 이렇게 와 줘서 고마워요. 나 예은이 애비 되는 사람이오.”

“박선철입니다. 편히 말씀해 주십쇼.”

“그려요. 차차 그렇게 합시다.”

“그럼 전 어머님께 인사부터 올리겠습니다.”

다시 허리를 숙인 딸의 남자친구는 빈소로 들어갔고, 그걸 보는 신복동의 표정이 심란해진다.

“따님이 남자친구를 사귀고 있는지 모르셨나 보네요.”

“그랑께라…….”

당연히 몰랐다.

“스무 살이 되자마자 독립해서 살았다고 하더니만은…… 허어.”

그래도 다행인 것 같다.

생긴 건 꽤 건실해 보이지 않는가.

“이야기 좀 나눠 보시죠.”

“……됐어라. 내가 무슨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보면 딸에게 해 준 것이 하나 없다.

“학교 다닐 시절 몇 학년 몇 반인지도 몰랐던 애비가 이제 와 애비 노릇을 할 수 있겠어라.”

그런 아비라도 아비라고 불러서 서울 나들이를 시켜 준 딸이다. 아내와 다시 좋아질 기회를 만들어 주려고 했던 효녀다.

비록 문신이 옥의 티이긴 하지만, 요새 문신은 패션이라고 하지 않던가. 딸도 다 생각이 있을 거다.

“아버님…….”

“아따, 그래도 서장님이 있응께 술이 술술 들어가구마이라.”

“……안주도 좀 드시고요.”

씩 웃은 신복동은 종혁이 밥그릇에 올려 준 수육을 입에 집어넣었고, 종혁은 다른 안주를 그의 밥그릇에 올려 줬다.

“푸후우.”

장례식장 건물 밖, 종혁이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는다.

‘진짜 이곳은 언제 와도 익숙해지지가 않네.’

언제 와도 숨이 막힌다.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렇게 와 줘서 고맙당께요.”

“당연히 와야죠.”

“아녀라. 당연한 것이 어디 있당께요. 정말 고마워라.”

신복동과 친구인 장년인을 향해 흐릿하게 웃어 준 종혁 건물을 나서는 신복동의 딸, 신예은의 남자친구를 발견하곤 눈을 빛낸다.

“잠시만요. 저기요, 남자친구분!”

종혁은 깜짝 놀라는 그의 모습에 피식 웃으며 그에게 담배를 내밀었다.

“깡패라며?”

뭔가 익숙한 냄새가 나길래 혹시나 해서 몰래 사진을 찍어 신원 조회를 해 보니 역시나.

무려 두 번의 전과가 있는 조직 생활을 하는 깡패였다.

움찔!

“……누구십니까?”

“뭐하냐. 얼른 담배 받아. 저쪽에서 이상하게 쳐다보잖아.”

종혁이 경찰공무원증을 흔들며 재촉하자, 신예은의 남자친구는 눈을 부릅떴다가 얼른 담배를 받았다.

“장소가 장소이니만큼 딱 한마디만 할게. 혹시나 허튼 생각 품고 있다면 일찌감치 헤어져라.”

“요새 경찰은 남의 사생활에도…….”

“만약 헛짓거리하다가 나한테 걸리면 내가 책임지고 너 죽일 거거든.”

오싹!

그의 낯빛이 딱딱하게 굳자 종혁은 피식 웃으며 자신도 담배를 물었다.

“잘 들어. 형 이름은 최종혁이야. 형 이름을 들어 보지 못했다면 니네 형님들한테 물어봐. 그러면 이 최종혁이란 놈이 어떤 놈인지 알게 될 테니까.”

“……예, 알겠습니다.”

“그래, 지켜본다.

씩 웃어 준 종혁은 몸을 돌려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빈소 앞에서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신예은의 앞에 앉아 있는 험악한 인상을 지닌 한 사내 때문이다.

“저건 또 뭐야?”

수첩을 꺼내 든 폼이 아무래도 이쪽 식구 같다.

“아니, 하아…….”

종혁은 머리를 벅벅 긁으며 그에게 다가갔다.

* * *

“그러니까 이경애 씨가 먼저 등산을 가자고 했다고요?”

“네…….”

수술을 해도 완치 가능성이 낮다는, 사실상 시한부 통보를 받은 이후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기 시작한 엄마.

여행이나 등산, 쇼핑.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지독하게 아끼며 살아왔던 한을 풀기라도 하듯 엄마는 마음이 동하면 여기저기 놀러 가자고 했다.

“그래서 저도 아예 일을 관뒀고요.”

“음. 그런데 이경애 씨는 왜 그 위험한 절벽에 서 계셨던 겁니까?”

“예쁜 꽃이 있다며 사진을 찍어 달라고…….”

그래서 가방에 넣어 둔 카메라를 찾기 위해 몸을 돌렸고, 직후 비명 소리가 들렸다.

다시 몸을 돌리니 엄마가 사라져 있었고, 얼른 달려가 보니…….

“확실합니까?”

“예. 확실…… 아니, 잠깐만요. 그게 무슨 의미죠?”

신예은의 눈썹이 하늘로 솟자 젊은 형사가 입술을 슬쩍 비튼다.

“이보세요!”

툭!

“응?”

“잠깐 나 좀 봅시다.”

중요한 순간을 방해하는 누군가에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던 형사는 종혁의 손에 들린 경찰공무원증을 발견하곤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예, 뭐 그러시죠.”

둘은 장례식장 건물을 빠져나갔다.

“어느 서? 계급은?”

“거 나이도 비슷해 보이는데 반말하지 맙시다. 아무리 같은 식구라도 이건 경우가 아니죠.”

“신안경찰서장.”

“예?”

“신안경찰서장 총경 최종혁. 그게 나라고.”

그 말에 형사가 경악한다.

그제야 기억이 난 거다. 나이 서른에 경찰서장이 된 미친 괴물이 있다는 걸.

“추, 충성. 경장 이성경!”

“몇 년 차?”

“2년 차입니다!”

형사 짬밥을 먹은 지 이제 2년 차란 뜻이다.

“하아. 파트너는요?”

“그, 그게…….”

쉽사리 대답하지 못하는 형사. 아무래도 넘치는 혈기에 독단적으로 행동한 듯했다.

종혁은 순간 끓어오르는 화를 간신히 억눌렀다.

“이유나 좀 들어 봅시다.”

이곳은 장례식장이다. 그리고 신예은은 불과 하루 전에 모친을 잃은 유가족이다. 그것도 눈앞에서.

아무리 초짜여도 별다른 이유도 없이 이랬을 리는 없었다.

“……이경애 씨의 사망 보험금이 총 5억입니다.”

여기까지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문제는 다음이었다.

“그런데 신예은 씨에게 무려 2억 원이 넘는 빚이 있는 게 확인됐습니다.”

흠칫!

많이 쳐줘 봐야 아직 30대 초반으로 보였던 신예은.

사업을 하려고 했거나, 집을 사려고 한 게 아니라면 나이에 비해 많은 빚이라 할 수 있었다.

“하…….”

종혁은 예기치 못한 이야기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런 경우 경찰은 두 가지 경우를 의심한다.

첫째, 자살.

둘째, 타살.

어느 쪽이든 보험금을 노린 계획범죄였다.

하지만…….

“그게 끝입니까?”

“……예?”

“목격자 확인이나 주변 탐문은 다 해 봤냐고요.”

“아니, 아직 그건…….”

“야, 이 씨발아.”

“예?”

“무죄추정의 원칙은 어디다 팔아먹었냐, 이 또라이 새끼야!”

빠악!

“악?!”

종혁이 정강이를 붙잡고 펄쩍펄쩍 뛰는 형사를 노려본다.

그래. 이해는 한다. 충분히 의심을 해 볼 만한, 의심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경찰이 의심을 해야만 하는 건 용의자와 상황만이 아니다.

“너 경찰이 왜 2인 1조인지 몰라?”

혹시 모를 위협에서 서로를 보호하기 위해서기도 하지만, 한 사람이 폭주할 때 다른 사람이 말리기 위해서다.

게다가 형사는 언제든 한 사람의 인생을 망가트릴 수 있는 존재다.

자기 생각에 확신이 들어도 그 생각이 맞는지 몇 번을 더 의심을 해 봐야 한다.

“그런데 뭐? 제대로 조사도 안 해 보고 장례식장까지 찾아와서 이 난장판을 만들어?”

이런 무분별한 행동 하나하나가 자칫 무고한 이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길 수도 있다는 걸 왜 모르는 걸까.

“아오! 이 병신 새끼를 씹어 먹을 수도 없고!”

“…….”

“꺼져, 이 새끼야!”

입술을 깨문 형사는 뭔가 말을 하려다가 몸을 돌려 사라졌고, 종혁은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다가 얼굴을 쓸어내린다.

“거지 같네.”

말은 이렇게 했지만, 확실히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

하지만 아닐 거다. 아니어야만 한다.

종혁은 머리를 벅벅 긁으며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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