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735화 (735/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735화>

사박! 사박!

어두운 밤, 달빛에 의지해 길도 없는 산을 걷는 종혁과 이승연 경위.

그러나 둘이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바로 옆에 난 흙길을 보면서 걷기 때문이다.

“후욱! 후욱!”

“괜찮아요?”

“괜찮…….”

아아아악!

“쉿!”

입을 다문 둘이 몸을 낮추며 서로를 본다.

비명, 아니 이건 고함이다.

뭔가가 좀처럼 안 돼서 폭발할 때 지르는 성질의 고함.

종혁과 이승연은 걸음을 재촉했다.

그렇게 얼마나 더 걸었을까.

“훅! 후욱!”

“이거 이번 사건 해결하면 이 경위도 운동을 좀…… 엎드려!”

갑자기 귀가 쫑긋한 종혁이 이승연의 머리를 잡아 짓누른다.

그 순간 저 위에서 불빛이 다가오기 시작한다.

카가가가가가!

흙길을 따라 내려가는 이재현의 차량.

고개를 들어 그것을 바라본 이승연이 얼른 핸드폰을 꺼내 든다.

“지금 이재현 나갑니다! 얼른 따라붙어요! 서장님, 저는……!”

“얼른 가 봐요!”

“충성!”

이승연은 다급히 왔던 길을 뛰어 내려갔고, 종혁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다 고개를 돌려 위를 올려다봤다.

그리고 다시 발을 내디뎠다.

그렇게 10분 정도 다시 걸은 종혁이 코앞에 나타난 장애물에 어이없다는 듯 웃는다.

“……이것 봐라?”

종혁의 입술이 비틀어진다.

펜스가 쳐져 있다. 짐승조차도 단숨에 넘을 수 없을 만큼 높다란 펜스. 그 위에는 윤형 철조망이 얼기설기 얽혀 있다.

그리고 그 너머 나무 수풀 사이로 자그마한 별장 한 채가 보인다.

이재현은 저 안에서 어떤 용무를 본 게 틀림없다.

‘입구에서 여기까지 걸어서 30분.’

차로 올라온다면 대략 5분 정도 걸릴 거다.

종혁보다 20분 일찍 산을 오른 이재현.

즉, 그는 이곳에 대략 45분 정도 머무른 셈.

‘왕복 2시간이 넘는 거리를 달려와서는 벌써 돌아간다고?’

무엇보다 너무 늦은 야심한 시각.

이상하다. 누가 봐도 이상하다.

도대체 고작 45분 동안 무얼하기 위해 이 먼 거리까지 이 늦은 밤에 온 걸까.

“어떡할까나……?”

무리를 해서라도 진입을 해야 될까, 종혁의 두 눈에 갈등이 서리는 순간 그의 시야에 무언가 들어온다.

붉은색 점. 아니, CCTV다.

“……재밌네?”

대체 뭘 숨겨 뒀기에 이런 외진 곳에 저런 별장을 만들어 둔 걸로도 모자라 CCTV까지 설치해 둔 것일까.

“아무래도 이 새끼가 맞는 것 같은데?”

종혁이 코끝을 긁으며 눈빛을 가라앉힌다.

하지만 그는 이내 돌아섰다.

아직 이재현이 범인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 자칫 담을 넘었다가 아무것도 없다면 수사 자체가 어그러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냥 물러날 수는 없었다.

종혁은 핸드폰을 들었다.

“예, 권 이사. 납니다. 산 하나를 매입하고 싶은데, 누구 명의인지 좀 알아봐 줄 수 있겠습니까?”

‘이 산이 이재현 씨 당신 명의일까, 아니면 저곳만 임대를 한 것일까.’

만약 후자라면 방법이 있다.

저 별장 안에 있는 걸, 이재현이 숨기고 있는 걸 바깥으로 끌어낼 수 있는 방법이.

그것도 이재현이 손수.

돌아선 종혁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 * *

빠르게 달리던 이재현이 잠시 도로에 줄줄이 늘어선 차들에 어쩔 수 없이 속도를 줄인다.

빵빵!

“왜 안 가는……!”

얼굴을 일그러트리던 이재현이 그대로 굳는다.

저 멀리서 흔들리는 붉은 불빛.

음주운전 단속이다.

경찰이 흔드는 붉은색 경광등을 보자 머릿속에 차올랐던 열기가 살짝 빠진다.

똑똑! 지이잉!

“음주운전 단속 중입니다. 협조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시야 한구석이 흘러내린 세상.

경찰의 얼굴도 흘러내리며 괴물로 변해 간다.

그러나 이재현은 애써 치솟는 살의를 참아 내며 경찰이 내미는 기기를 힘껏 불었다.

“……가시면 됩니다.”

“수고하세요.”

이재현은 차창을 내리곤 다시 액셀을 밟았다.

그렇게 약간을 달려 갓길에 차를 세운 그는 운전대에 이마를 기대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검은색 작은 통을 귀에 가져간다.

차칵……! 차칵……! 차칵……!

“후우! 후……!”

늦가을의 싸늘한 바람과 마음을 안정시키는 소리에 머리끝까지 차올랐던 열이 조금 더 내려간다.

“……하아아. 병신.”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

머리에 열이 올라 아무런 준비 없이 사냥에 나설 뻔했다.

그랬다면 경찰에 걸렸을 터.

어찌 보면 방금 전 음주운전 단속이 그를 살린 거다.

“그래, 아직은 아니야. 아직은…….”

방금 전까지만 해도 세상이 반이나 흘러내렸지만, 다행히 열쇠 덕분에 어느 정도 현실로 돌아왔다.

아직은 참을 수 있었다.

그러나 오래는 참을 수 없을 거다.

“그래도 이번 휴일엔 사냥터를 물색해야겠어.”

한 번 흘러내리기 시작한 세상은 결코 막을 수 없고, 반 이상 흘러내려 버린 세상은 새로운 열쇠를 만들기 전까지 절대 멈출 수 없다.

전에도 한 번 아내를 괴물로 착각하고 죽일 뻔한 적이 있지 않던가.

그때 깨어난 아내가 말을 걸지 않았다면 하늘이 내려 준 천사를 자신의 손으로 죽일 뻔했다.

세상 어디를 가도 찾을 수 없는 보물.

눈이 안 보임에도 그만한 외모, 그만한 성격을 가진 여자는 찾을 수 없다.

‘그런 아내가 아이를 낳아 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세상 그 누구보다 사랑해 줄 자신이 있는데…….’

하지만 아쉽게도 아직까지 아이가 들어서질 않는다. 아내나 자신이나 문제가 없는데도 말이다.

“쯧.”

혀를 찬 그는 다시 사냥에 대해 떠올린다.

“이번엔 어디로 갈까. 해남으로 갈까? 아님 완도? 고성?”

어디든 상관없다.

자신의 사냥을, 열쇠 제작을 방해할 경찰이 찾을 수 없는 곳이면 된다.

어차피 사냥감은 사냥터에 널리고 널렸으니까.

“조금 더 생각을 해 봐야겠어.”

그는 다시 액셀을 밟았다.

찬바람 때문인지 머릿속에 약간 맑아진 기분이었다.

* * *

“수고하셨습니다.”

“그럼 화요일에 뵙겠습니다!”

일요일 저녁, 직원들이 퇴근을 하자 이재현도 퇴근을 서두른다.

2주에 한 번, 월요일 혹은 화요일에 휴일을 가지는 재현 정비&세차.

공휴일인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세차와 정비를 맡기는 사람이 많아서 오히려 주말이 더 바쁘다.

이번엔 월요일이 휴일.

속도를 내서 집으로 향한 이재현이 지상주차장에서 전화를 건다.

“응. 지금 도착했어. 천천히 내려와.”

통화를 종료한 후 아파트 동 입구로 향하는 그.

이내 곧 가방을 어깨에 멘 그의 아내가 시각장애인 지팡이를 짚으며 걸어 내려온다.

그에 이재현의 입가에 장난스런 미소가 맺힌다.

“워!”

“꺅! 아이, 뭐예요! 놀라잖아요! 이런 장난치지 말라니까!”

“하하. 가자. 조심해. 앞에 돌.”

“치이. 그런데 웬일이에요?”

“뭐가?”

“휴일에 어디 나가면 맨날 혼자 갔잖아요.”

“뭘 맨날 혼자 가. 같이 간 게 훨씬 더 많지.”

“그건 맞아요.”

이재현의 아내가 배시시 웃음을 지으며 차에 오르던 그때였다.

“응?”

“왜?”

“오빠 차가 아닌 것 같아요.”

“아, 렌트했어. 내 차는 정비 때문에 가게에 놓고 왔거든.”

“그래요?”

고개를 끄덕이던 이재현의 아내가 활짝 웃는다.

“오빠, 오빠! 우리 어디로 가요?”

“글쎄. 어디로 갈까?”

갈 곳은 너무 많은데 정할 수가 없어서 아내를 데려가는 거다.

“음. 아, 파주 거기도 좋았는데!”

움찔!

“파주?”

“왜요, 있잖아요. 오빠랑 나랑 연애할 때 처음으로 간 곳!”

‘맞아, 그랬지.’

오래전 찾는 이가 거의 없는 계곡이 있다는 아는 사람의 추천을 받아 갔던 파주의 산.

그곳에서 그 건물을 발견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버려진 지 오래된 것인지 거미줄이 잔뜩 쳐져 있던 별장.

그걸 본 순간 바로 여기라는 생각이 들었고, 곧바로 그곳을 열쇠를 제작, 보관하는 장소로 삼았다.

“거기도 진짜 공기 좋았는데!”

바람에 흔들려 서로 부딪치는 나뭇잎의 소리도 참 좋았고, 이름 모를 새의 울음소리도 참 좋았다.

“아니면 여수도 좋아요!”

11월, 슬슬 굴이 나올 때다. 여수에서 먹었던 굴찜의 맛은 참 각별했었다.

“부산에서 먹은 동태전도 맛있었고!”

해운대 바다의 파도 소리. 좀 급한 것 같지만, 사람들이 북적북적해서 더 좋았다.

“음. 우리 한 번도 안 가 본 곳을 가 보는 건 어떨까?”

“한 번도 안 가 본 곳? 그럼 우리 포항 가요!”

“포항?”

“네! 친구가 얼마 전에 포항 호미곶이란 곳을 다녀왔는데, 거기서 먹은 물회가 정말 맛있다고 했어요! 라면도!”

“돼지?”

“오빠!”

이재현이 농담이라는 듯 웃는다.

앞이 보이지 않다 보니 피부에 닿는 촉감과 귀에 들리는 소리, 그리고 맛이 여행의 전부인 아내.

그렇다 보니 아내에게 여행이란 곧 맛집 탐방이다.

“음. 그럼 포항 갔다가 영덕 거쳐서…….”

“춘천도! 춘천 막국수가 그렇게 맛있대요!”

“그래. 그럼 포항에서 물회 먹고, 영덕에서 대게 먹고, 춘천에서 막국수 먹자.”

“오빠 최고!”

“하핫! 그럼 출발한다?”

“출발-!”

한편 인천을 빠져나가는 이재현의 차량을 뒤쫓는 차 안.

흥신소에서 파견된 남성이 다급히 핸드폰을 든다.

“이재현이 아내와 인천을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저희도 곧 따라붙을 테니까 조심하세요!

“예!”

통화를 종료한 흥신소 직원은 마른침을 삼키며 저 멀리서 달려가는 이재현의 차량을 응시했다.

“……아, 이거 헛갈리네.”

분명 자기 차로 퇴근을 했는데, 자기 아내랑 타고 가는 건 렌트카다. 심증에 확신을 더하고 있었다.

하지만 걸리는 게 있다.

이재현이 아내에게 너무 다정다감하다는 것이다.

‘뭐지? 아닌가?’

흥신소 직원은 미간을 찌푸렸다.

* * *

“와아! 정말 좋다!”

막국수와 닭갈비도 좋고, 공기도 너무 좋고, 귀를 졸졸 두드리는 물소리도 참 좋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해맑게 웃는 아내의 손을 꼭 잡은 이재현이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모자에 선글라스를 껴서 그런지 잘 보이지 않는 그의 눈.

“괜찮은데?”

“그쵸? 오빠도 그렇게 생각하죠?”

“어, 응. 좋네.”

좋다. 한낮임에도 돌아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고, 심지어 대부분 등산복을 입은 관광객들이었다.

늦은 저녁이 되면 거의 사람이 남지 않을 터.

결정적으로 CCTV와 가로등도 보이지 않았다.

‘일단 체크.’

조금 더 둘러봐야겠지만, 현재로선 사냥터로 적합한 장소다.

‘운이 좋네.’

단 한 번의 여행으로 사냥터 후보지 한 곳을 정하게 됐다.

역시 자신의 아내는 보물이었다.

“오빠 여기가 신북읍이라고 했죠? 우리 다음에 여기 또 와요!”

“그럴까? 조심. 앞에 나무.”

“땡큐. 히히. 역시 우리 남편이 최고라니까.”

아내는 이재현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고, 이재현은 그런 아내를 능숙하게 보조하며 차에 태워 신북읍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그러곤 고개를 끄덕였다.

‘한 서너 군데 더 돌아보고도 쓸 만한 곳이 안 나온다면 여기가 좋겠네.’

얼마 전 갔던 신안처럼 조건들이 훌륭하다.

해가 저물자 듬성듬성 켜지는 가로등. 점점 고요해져 가는 동네.

‘그리고…….’

아이들.

해가 저물었음에도 몇 명의 아이들이 신북읍 외곽을 돌아다닌다.

코끝을 스치는 것 같은 피 냄새에 그의 입술이 비틀어진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집에 도착한 그.

“먼저 들어가.”

“……알았어요. 오늘 고생했으니까 딱 한 대만이에요?”

“고마워.”

싱긋 웃은 아내는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고, 이재현은 그런 아내를 바라보다 담배를 물었다.

그때였다.

지이잉! 지이잉!

“응? 누구지? 예, 여보세요?”

-늦은 시간 연락해서 죄송합니다, 사장님. 나 산 주인입니다. 내 산에 있는 땅과 별장을 임대하셨던데…….

이재현의 미간이 좁혀진다.

“누구시죠? 제가 아는 분의 목소리가 아닌 것 같은데요.”

-아아, 이번에 내가 샀습니다.

움찔!

“뭐라고요?”

-한 달 뒤에 임대 계약 끝낼 테니까 거기 있는 건물 다 비워 두세요. 보증금과 위약금은 그날 바로 넣어 드릴 테니 계좌번호 문자로 넣어 주시고요.

“자, 잠깐만요! 여보세요!”

이재현이 황망한 눈으로 통화가 끊긴 핸드폰을 본다.

언제까지고 그곳을 계속 쓸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긴 했다.

하지만 장소를 옮길 일이 생기더라도 새로운 장소를 물색하고, 열쇠를 옮길 시간적 여유는 필요했다.

그래서 처음 계약할 때 한쪽에서 갑작스럽게 일방적인 계약 해지를 요구할 경우, 막대한 위약금을 지불할 것을 계약 조항에 넣어 뒀었다.

안전장치를 마련해 둔 셈.

‘그런데 위약금을 다 물겠다고?’

왜일까. 왜 이렇게 자신을 괴롭히는 걸까.

지끈!

“아아.”

끝났다.

세상이 완전히 흘러내리고 있다. 무너져 내리고 있다.

“사냥을…… 가야겠네.”

본래라면 여러 후보지를 선정하고, 그 안에서 사냥터를 골라야 되는데 이젠 정말 시간이 없다.

그의 눈빛이 흉흉하게 번들거리기 시작했다.

한편 통화를 종료한 흥신소 직원을 응시하던 종혁이 담배를 물며 돌아선다.

“갑시다.”

곧 움직일 이재현, 그가 숨기고 있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말이다.

“예!”

이승연과 그녀의 파트너가 종혁의 뒤를 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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