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734화>
쿵쿵쿵!
이른 아침, 눈을 뜬 이재현이 시간을 확인하곤 천장을 가만히 응시한다.
빠득!
6시. 평소보다 30분이나 일찍 일어났다.
“으으응.”
깨려는지 인상을 잔뜩 찌푸린 아내.
이재현이 그녀를 달래며 애써 재운다.
콰르릉!
“으응. 윗집도 아침이 빠르나 보네요.”
“……조금 더 자.”
물이 내려가는 소리에 결국 아내가 깨 버리자 이재현은 아내가 앞이 보이지 않는 게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 자신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게 됐을 테니 말이다.
“아니에요. 씻을래.”
“그럴래?”
결국 깨 버린 아내를 화장실로 데려가 세수를 시킨 이재현도 씻고 나와 아침을 차리기 시작한다.
차칵차칵!
한 손에 쥔 작은 통이 흔들리며 소리를 냈다.
“이사부터 해야겠어.”
셀프 세차장은 아무래도 내후년에나 지어야 할 것 같다. 이대로 있다가는 이번에 만든 열쇠의 효능이 얼마 가지 않을 것 같다.
띵! 스르릉!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발을 떼던 이재현이 먼저 타고 있는 남성에 살짝 놀랐다가 고개를 숙이고, 남성도 어색하게 고개를 숙인다.
“하하, 안녕하세요. 제가 이번에 바로 위층, 608호로 이사를 와서요. 어제 이사떡을 가져다 드리려 했는데 댁에 아무도 안 계시더라고요. 오늘 저녁에 다시 한번 이사떡 들고 인사드리겠습니다.”
‘웃어?’
“……아아, 그래요. 반갑습니다. 저는 바로 아랫집, 508호 사는 이재현입니다.”
제법 순박하게 생긴 얼굴이라서 더 짜증이 난다.
하지만 그는 그동안 쌓아 둔 평판이 있기에 애써 참아 냈다.
“어이쿠, 바로 아랫집이시구나! 저희가 어제 좀 시끄러웠죠? 아파트는 처음 살아 봐서 바닥이 그렇게 울리는지 몰랐습니다, 하하. 앞으로 주의하겠습니다.”
“……아닙니다. 별로 시끄럽지도 않던 걸요, 뭘.”
띵! 스르릉!
“오! 이 사장도 지금 출근해? 오늘은 좀 빠르네? 그런데 이쪽 분은 처음 뵙는 분 같은데…….”
“안녕하세요. 어제 608호로 이사 온 박경재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오. 408호 사는 김덕배요. 혹시 담배 피우시나?”
띵! 스르릉!
“그럼 수고하세요.”
“그래! 이 사장도 수고!”
더 이상 같은 공간에 있기 싫은 이재현은 빠르게 차에 올라 아파트를 빠져나갔고, 그런 그를 바라보던 남성은 핸드폰을 들었다.
“이재현, 방금 출근 시작…….”
-이 미친놈아! 왜 타깃과 접촉을 해!
“이 새끼 확실히 이상한 놈이라니까요?”
종혁이 빌려준 터무니없는 성능의 감청 장치.
그걸 통해 이따금 들려온 이재현의 욕설은 짧지만 섬뜩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특히 마치 모래가 흔들리며 나는 듯한, 중간중간 귀를 자극하던 괴상한 소리.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는 온몸에 소름이 돋게 만들었다.
“확실한 단서를 잡아야 보너스도 받을 거 아니에요!”
-몰라! 알아서 해!
통화가 종료되자 남성은 입술을 삐죽였다.
“진짜 확실하다니까 그러네.”
말이 용의자지, 남성에게 있어 이재현은 이미 연쇄살인범이었다.
몸을 떤 그는 얼른 차에 올랐다.
“그나저나 실제론 저렇게 생긴 놈이었네…….”
눈빛을 가라앉힌 그는 차를 출발시켜 이미 이재현의 뒤를 쫓고 있는 다른 미행팀과 합류했다.
* * *
“네, 알겠습니다. 계속 미행해 주세요.”
인천의 모처, 통화를 종료한 이승연 경위가 헛웃음을 터트린다.
“이게 가능하네.”
그녀도 강력계에 있었을 때 가끔씩 흥신소를 이용하긴 했다. 경찰도 영 찾을 수 없는 정보를 흥신소가 알고 있을 때도 있기 때문이다.
흥신소와 정보원. 경찰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하지만 흥신소를 이용한 장기간 미행은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수사 예산이 그만큼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한번 대시해 봐?”
잠시 생각하던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에이, 됐다. 급이 안 맞는데 무슨.”
종혁은 초고속을 승진 가도를 밟는 간부이고, 자신은 경찰대를 나오긴 했으나 결국 경위에 불과했다. 어울릴 수가 없는 사이였다.
달칵!
“후우. 뭐하세요. 안 씻으세요? 머리에서 냄새나요.”
“이것만 좀 보고.”
이승연이 마우스를 딸깍이며 재현 정비&세차 인근의 CCTV를 살핀다.
‘어떻게 찍힌 게 하나도 없는 거냐고.’
주문한 부품이 도착할 때까지 며칠간 재현 정비&세차에 주차되어 있던 한상준의 차량.
그 차량이 아무도 모르게 빠져나가 범죄에 이용됐다.
그런데 누가, 언제, 어떻게 한 것인지 알 수 있을 만한 단서가 아무것도 찍힌 게 없었다.
“이 당시 근처를 지난 차량을 모두 쫓아 봐야 하나…….”
“블랙박스요?”
“그렇지. 혹시 뭐라도 찍혔을지 모르잖아.”
한상준이 차량을 맡긴 날부터 사건 발생일까지 재현 정비&세차의 근처를 지난 모든 차량을 확인해 보면 무언가 단서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한번 알아봐야겠어.”
그녀는 신안경찰서 수사지원과로 연락을 했다.
“예. 아청과 이승연 경위입니다.”
이승연은 자신이 생각한 걸 부탁했고, 그제야 몸을 일으켰다.
“후우우.”
“식사하세요!”
“응!”
이승연이 식탁에 앉자 뚫어져라 쳐다보는 그녀의 파트너.
“왜?”
“헤헤. 선배님도 경찰대 나오셨다고 했죠?”
“그랬지. 아니면 이 나이에 경위가 가당키나 해?”
정말 특별한 어떤 재능이나 기술이 있어 경사 특채로 시작한다고 해도 삼십대 초중반의 나이에 경위는 말도 안 된다.
‘뭐 다른 동기들은 다 경감 다는데 나만 경위인 것도 가당치 않지만.’
이승연은 씁쓸히 웃었다.
“그러면 서장님에 대한 소문은 들으셨겠네요?”
“……듣긴 했지.”
몇 기수 아래의 후배지만, 위명이 너무 자자해서 들을 수밖에 없었다.
경찰대의 전설, 최종혁. 황금 세대의 리더.
“교수님들도 모두 검사나 범죄학 교수가 될 거라고 여겼는데, 경찰이 돼서 다들 많이 아쉬워했다고 하더라고.”
“응? 경찰대에 다니는데 검사가 될 수 있어요?”
“있어. 한 해 최소 5명 이상은 그쪽으로 빠지니까.”
모두 법에 대해 상세하게 배우는 덕분이다.
어디 검사만 될 수 있을까. 검사, 변호사, 판사 다 될 수는 있다.
“와. 그럼 검사나 판사를 걷어차고 경찰이 된 거네요?”
“그래서 미친 또라이로 불렸대. 돈까지 갖춘 미친 또라이.”
“풉! 진짜요?”
이승연은 고개를 끄덕였고, 파트너는 어이없어했다.
“와아. 그때도 돈이 많았구나. 아, 그건 당연한 건가?”
“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운전기사가 왜 없는지 궁금해서요.”
“응?”
“아니, 그렇잖아요. 저기 생안계에 퍼진 소문에 의하면 서장님이 한 달에 버는 수익이 로또 세네 번 당첨되는 수준이라고 하던데……. 그 정도면 운전기사가 모는 차를 타고 다닐 만하지 않아요?”
“그러다 기자한테 걸리면 큰일 난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그걸 함부로 뽐낼 수 없는 게 공인이다. 자칫 안 좋은 구설수에 오르기라도 하면 좋을 게 하나도 없었다.
“치. 나 같으면 맨날 택시 타고 다녔겠다.”
“야, 그러다 상황 터지면 어떻게 쫓아가라고? 됐고, 지금처럼 지원받을 수 있는 거나 감사히 여겨.”
그 어디서도 이런 지원을 받는 건 불가능했다.
‘그리고 그에 보답해야지.’
이승연의 눈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 * *
“대출 신청은 했고…….”
재현 정비&세차를 담보 잡아 대출 신청을 했다. 이제 승인 결과가 나오기만을 바라면 된다.
“주택이 좋을까, 아파트가 좋을까. 주택도 나쁘진 않을 것 같은데…….”
주기가 빨라지고 있으니 완성한 열쇠를 집에 보관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생각 같다.
지하나 2층, 아니면 차고. 앞이 안 보이는 아내가 쉽게 갈 수 없는 장소에 놔두면 조금 더 마음의 안정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동안 집 안에선 아내가 갈 수 없는 곳이 없다 보니 쉬이 들여놓을 수 없었던 열쇠, 아니 열쇠들.
“그래, 주택이 좋겠다. 저녁에 아내랑 상의를 해 봐야겠네.”
열쇠를 가까이 할 수 있다는 것에 기분이 좋아진 그는 콧노래를 부르며 커피를 탔다.
똑똑똑!
“예, 들어오세요. 응?”
안으로 들어오는 세차 파트의 직원들.
두 명 모두 재현 정비&세차가 세워진 직후부터 함께했던 창립 멤버들이었다.
“어쩐 일이세요? 아! 앉아요, 앉아. 둘 다 커피?”
“제, 제가 타겠습니다!”
“에이, 됐어요.”
직원을 말린 이재현이 커피를 타서 그들에게 내민다.
“기기나 손님이 맡긴 차량에 무슨 문제가 생긴 겁니까?”
“아니요. 그게 아닙니다.”
“그러면?”
“그게…… 휴우. 사장님.”
“예. 듣고 있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쿵!
“……예? 아니, 잠깐. 잠깐만요.”
이재현이 손을 흔들며 당황한다.
“혹시 월급 때문에 그러십니까?”
아니다. 그럴 리 없다.
자신이 이들에게 지급하는 월급은 업계 평균 이상. 인근 세차장 직원들보다 몇 십만 원은 더 주고 있다. 월급에 불만이 있을 순 없다.
“차장님, 연봉 조정이 내년이죠? 그걸 올해로 앞당길까요?”
솔직히 이렇게까지 할 이유는 없다.
갈 사람 가고, 올 사람 오는 게 이 바닥.
하지만 두 사람은 이렇게 해서라도 잡아야 할 인재들이다.
손은 느리지만, 꼼꼼하기가 시어머니 저리 가라인 대리. 그리고 손도 빠르고 꼼꼼하기까지 해 손님들의 칭찬이 자자한 차장.
절대 놓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아니면 스카우트 제의를 받으신 겁니까? 차장님, 김 대리. 어딜 가든 저만큼 주는 사람 없다는 건 아시잖습니까. 다시 생각해 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아니, 오늘은 일단 퇴근하시고,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신 후에 다시 이야기 나누죠.”
이재현은 애써 웃었지만, 차장과 대리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그저 쫓겨나기 전에 먼저 나가는 것뿐입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사장님. 앞으로도 번창하길 바랍니다.”
“사장님이 싫어서 떠나는 게 아니에요. 정말 죄송합니다.”
“그게 무슨…….”
이재현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 사장실을 나가는 직원들을 멍하니 바라봤다.
“어? 뭐야. 너희들이 왜 거기서 나와?”
“사람 그렇게 사는 거 아니에요. 진짜 실망입니다.”
“뭐, 인마? 야! 야! 뭐야, 저 새끼들…….”
똑똑!
“……예. 들어오세요.”
“하하. 점심 식사는 맛있게 하셨습니까, 사장님. 방금 전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그런 게 있어요. 그보다 세차 파트장님은 어쩐 일이세요?”
“아, 오늘 저녁에 시간이 되시려나 해서요. 오늘은 약속 없으시죠?”
“예, 오늘은 괜찮습니다. 그런데 대체 무슨 일입니까?”
어제 뜬금없이 술을 마시자기에 일단 거절했던 이재현. 파트장들과의 술자리보다는 아내와 삼겹살을 먹는 게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아하하. 다름이 아니라 저기 아래 셀프 세차장 문제도 있고, 직원들 문제에 관해 이야기를 드릴 게 있어서 말입니다.”
“직원들 문제요?”
‘이거구나.’
직원들의 갑작스런 퇴직 통보의 이유가.
지끈! 지끈!
세상이 어제보다 더 흘러내린다.
‘열쇠를…….’
이재현은 이를 악물었다.
* * *
부우우우웅!
차칵차칵차칵차칵!
어두워진 밤, 빠르게 달리는 차 안. 이재현이 신경질적으로 흔들던 검은 통을 집어 던진다.
“씨발!”
흘러내리는 세상이 멈추지 않는다.
다시 색감이 흘러내리며 현실에 녹아든다.
너무도 빨라진 주기.
왜 이럴까.
근처에 세워진 셀프 세차장 때문일까.
윗집에 이사 온 신혼부부가 신경을 건드려서일까.
아니면 소중한 직원을 내쫓아 놓고도 모른 척을 하던 세차 파트장 때문일까.
옆에서 맞장구를 치며 술을 먹이려던 정비 파트장 때문일까.
“개 같은 늙은이들!”
창립 멤버이자 자리를 잡는 데 큰 도움을 줬던 두 사람. 하지만 이제는 월급이 부담되는 두 사람.
이 둘을 먼저 쳐냈어야 했던가.
아니,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일단 열쇠부터 잡아야 한다.
무너지듯 흘러내리는 이 거지 같은 세상을 바로잡아야 한다.
카가가가각!
산길을 빠르게 올라간 이재현은 재빨리 건물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그리고 얼른 최근에 만든 열쇠를 잡았다.
그와 동시에 손바닥에 닿는 거칠면서 매끈한 느낌과 콧속으로 빨려드는 퀴퀴한 냄새.
하지만…….
“하하…….”
흘러내리던 세상은 멈췄다.
그러나 다시 원래대로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반쯤 흘러내린 세상이 겨우 시야 한구석만 흘러내린 정도로 바뀐 수준. 한참 동안 만졌지만 겨우 이 수준이다.
결국 주기가 찾아와 버렸다.
현실이 침식당해 버렸다.
“아아아아악!”
결국 폭발해 버린 짜증에 이재현은 새하얀 열쇠를 붙들며 악을 질렀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고개를 든 이재현의 눈빛이 차갑고도 광포하게 흔들린다.
“사냥을 준비해야겠네.”
아무래도 이번 열쇠는 너무 작았던 것 같다.
조금 더 큰 열쇠가 필요할 것 같았다.
돌아서는 그의 입술이 비틀렸다.
* * *
“여기란 말이죠?”
“예. 20분 전 이재현이 저곳으로 올라갔다고 합니다.”
파주의 어느 산 입구, 이승연 경위가 한 곳을 가리킨다.
딱 차 한 대가 들어갈 수 있는 흙길.
듬성듬성 박혀 있는 자갈들이 차가 미끄러지는 걸 방지하는 듯하다.
“흠. 올라가 보죠.”
눈을 빛낸 둘은 흙길이 아니라 그 옆 우거진 나무 수풀 사이로 발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