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733화>
신안경찰서 소회의실에 침묵이 내려앉는다.
스크린 속에 나타나는 한상준의 모습.
저녁 7시경 직원들과 회식을 마친 한상준이 9시경 노래방에 들어갔다가, 11시경 웬 아가씨와 함께 가게를 나서는 모습이다.
환하게 웃는 모습에선 기대감이 잔뜩 보이고 있었다.
“……노래방 업주 역시 이날 한상준과 일행들이 도우미를 불렀다고 증언했고, 도우미들 역시 같은 증언을 했습니다.”
이승연이 그러며 카드결제 내역을 스크린에 띄운다.
“……알리바이가 성립 됐군요.”
종혁의 말에 소회의실에 다시 침묵이 내려앉는다.
사건이 발생한 시각이 저녁 8시경.
인천에 있었던 한상준이 신안 압해도까지 내려오기엔 불가능한 시간이다.
“죄송합니다.”
이승연이 이를 악물며 고개를 숙인다.
벌써 헛발질이 몇 번인가.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재현 정비&세차에 맡겨져 수리나 세차가 끝난 차량은 어디에 보관이 되는 겁니까.”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가장 유력한 가설은 범인이 범행을 저지르기 위해 이동 수단을 물색하다가 한상준의 차량을 발견, 이용하여 신안까지 내려와 범행을 저지른 것이다.
“증언에 따르면 모두 재현 정비&세차 내부에 보관이 된다고 합니다. 정확히는 정비소 건물과 세차장 건물 사이에 말입니다. 하지만…….”
이승연이 스크린에 또 다른 영상을 띄운다.
사건 발생 이틀 전부터 먹통인 영상.
“정비소나 세차장 내부 CCTV는 멀쩡하지만, 이 외부 CCTV만 고장이 났다고 합니다.”
공교롭게도 말이다.
“그리고 쇠사슬이 끊긴 흔적은 없었다고 합니다.”
재현 정비& 세차의 입구는 쇠사슬 자물쇠로 잠겨 있는데, 그 열쇠는 어떤 직원이 먼저 출근할지 모르기에 모든 직원이 각자 하나씩 가지고 있다고 한다.
차키 또한 사무실 내부에 보관되어 있지만 직원이라면 누구든 손쉽게 꺼낼 수 있었다.
“내부 CCTV는 멀쩡하다고 하지 않았나요?”
“하필이면 딱 사각에 위치해 있어서…….”
누가 차키를 꺼냈는지는 확인이 불가능했다.
“……용의자들 알리바이는 확인했습니까?”
“현재 12명 중 9명은 확인이 끝났습니다.”
9명은 사건 발생 추정 시각에 다른 곳에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제 남은 사람은 셋.
“남은 세 명은 알리바이를 확인할 수가 없는 상태입니다.”
사건 발생 추정 시각에 자택에 머물렀다고 한 세 명. 하지만 집 인근에 CCTV가 없다 보니 사실을 확인할 수 없는 상태다.
뒤이어 알리바이가 확인되지 않은 세 명의 간단한 신원 정보가 스크린에 띄어졌다.
‘사장 이재현과 정비 파트장, 세차 파트장.’
공교롭게도 재현 정비&세차의 책임자들 셋이었다.
“현재 조사된 건 여기까지입니다.”
이승연 경위의 말이 끝나자 스크린이 올라오며 소회의실에 불이 들어온다.
“죄송합니다.”
종혁에게 고개를 숙이는 아동청소년과 과장과 이승연 경위.
“제게 죄송하실 건 없습니다.”
사과를 할 거라면 피해자인 박시원 학생과 그 유가족, 그리고 경찰들의 헛발질 때문에 용의자로 오인된 이들에게 해야 됐다.
종혁이 테이블을 검지로 톡톡 치며 생각에 잠긴다.
‘남은 용의자는 한상준의 사촌이자 사장인 이재현과 정비, 세차 파트장까지 총 3명.’
하지만 알리바이가 확인된 이들도 계속 여지는 남겨 둬야 한다.
단독 범행이 아니라면 그들도 공범에게 열쇠를 맡긴다든지 등의 방법으로 얼마든지 차를 훔치는 게 가능했다.
‘여기에 그만둔 직원들도.’
재현 정비&세차에 근무했던 적이 있는 사람은 전부 의심할 필요가 있었다. 입구 열쇠를 직원들이 모두 공유했다면, 혹시 열쇠를 복사해 뒀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쯧.’
조사해야 될 사람이 너무 많은 상황.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탐문에 나서기도 어렵다. 범인이 낌새를 느끼면 혹시라도 남아 있을 수도 있는 증거물을 없앨 수도 있었다.
“아청과장.”
“예, 서장님.”
“언제든 아청과 전원 동원해도 무리 없습니까?”
“아, 예!”
“그럼 됐습니다.”
“……?”
* * *
“다녀올게. 문단속…….”
“문단속 잘하고, 누가 와도 열어 주지 말고! 아이, 참. 알았다니까요.”
쪽!
이재현의 얼굴을 더듬어 입술을 찾은 아내가 입을 맞추자 그의 얼굴이 화사해진다.
다시 현실로 돌아온 세상.
아내의 예쁜 얼굴을 온전히 볼 수 있어서 참 좋다.
“저녁에 봐.”
“다녀와요. 몸조심하고, 감기 조심하고.”
“걱정 마.”
이번엔 그 본인이 먼저 아내의 입술에 입을 맞춘 이재현이 출근길에 오른다.
부우웅!
아침 7시, 아직은 차가 막히지 않을 시각.
저녁에 차를 맡기고 아침에 차를 찾아가는 손님들이 있기에 하루가 일찍 시작되는 정비소와 세차장.
-샨티, 샨티! 카레, 카레야!
“완전 좋아! 아, 레알 좋아!”
아침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르는 그의 입가에 미소가 번져 있다.
색이 흘러내리지 않는 현실 세계.
사람이 괴물이 아닌 사람으로 보이는 세계.
눈과 머리가 아프지 않은 것만으로도 그의 기분은 날아갈 듯 상쾌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도로변의 어느 건물을 보는 이재현의 눈이 가늘게 떠진다.
“셀프 세차장…….”
이전까지만 해도 주유소의 자동세차 아니면 전문 손세차장뿐이었던 세차 업계.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우후죽순 셀프 세차장이란 것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매출이 감소해갔다.
이제는 하루하루 손님들이 줄어드는 게 느껴질 정도.
지끈!
눈에 통증이 생기더니 시야 한구석이 미세하게 흘러내린다.
“후.”
짜증이 치솟는다.
어느 날 갑자기 흘러내리기 시작한 세상.
성인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매해 생일이 다가올 때만 급격히 무너지듯 흘러내렸던 세상.
그러나 본격적으로 사회에 뛰어들기 시작한 후부터는 점점 그 규칙성이 무너졌다.
월급을 받던 직장인일 때는 어떻게든 겨우겨우 참아 냈지만, 세차장을 차린 뒤에는 점차 그 주기가 빨라질 뿐만 아니라 견디기 힘들어지고 있었다.
‘어제 열쇠를 만들었는데!’
뽀얗고 하얀 열쇠를.
그런데 완전한 현실로 돌아온 지 겨우 하루 만에 다시 흘러내리고 있다.
차칵차칵차칵차칵!
이재현은 키링에 달린 작고 검은 통을 빼선 귓가에 대고 신경질적으로 흔들었다.
파주에 있는 산에 매일같이 갈 순 없기에 평상시 혹시나 참기 힘들 때를 대비하여 준비한 소리.
이 소리를 듣고 있으면 세상은 흘러내리는 걸 멈춘다.
하지만 효과는 그리 길게 지속되지 않는다.
열쇠를 제작하는 데 필요 없는 자투리로 만들기 때문에 세상이 본격적으로 흘러내리기 시작하면 의미가 없어진다.
새로운 열쇠의 재료를 찾기 전까지 말이다.
“……후우우.”
표정이 나른해진 이재현의 눈이 또렷해진다.
“나도 한번 해 볼까?”
손세차장 옆의 셀프 세차장. 다시 한번 생각해도 최고다.
대출을 더 늘리면 당장 힘들어지긴 하겠지만, 멀리 내다보면 분명 이게 맞았다.
언젠가 가질 아이를 생각하면, 무리해서라도 젊을 때 돈을 더 열심히 벌어야 했다.
“시간 날 때 은행에 한번 가 봐야겠네. 아, 신호다.”
얼른 액셀을 밟았던 그는 이내 무언가를 발견하곤 다시 멈춰 선다.
끼익!
그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미치겠네.”
얼마 전 싹 밀어 버린다, 만다 말이 많았던 장소.
자신의 정비소 세차장과 그리 떨어져 있지 않은 장소.
그가 바라보는 곳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셀프 세차장 OPEN!
시야 한구석, 방금 전 고정시킨 세상의 일부가 다시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 * *
덜컹!
“수고하셨습니다.”
“예, 수고하셨습니다.”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이 나가자 종혁이 거실을 둘러보고, 그런 그에게 한 장년인이 다가선다.
“허허. 오랜만입니다. 이젠 서장님이라고 불러 드려야죠?”
그동안 많이 이용해 온 흥신소 사장이 너스레를 떨며 다가오자 종혁이 손을 젓는다.
“됐습니다. 그냥 편하게 부르세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흥신소 사장이 순간 눈빛을 가라앉힌다.
“그래서 이번엔 어떤 놈입니까?”
고작 감시를 위해 바로 윗집을 구매했다.
현재 이곳 아파트뿐만이 아니다. 이렇게 감시를 목적으로 매매한 곳이 두 군데 더 있었다.
대체 누구의 뒤를 캐려고 이런 거금까지 써 가면서 감시를 부탁하는 걸까.
흥신소 사장이 흥미진진해한다.
“연쇄살인범으로 추정되는 놈이요.”
움찔!
종혁은 흥신소 사장의 한 발자국 물러서자 담배를 물었다.
“그러니 감시만 부탁드리는 겁니다.”
가까이 다가가지 말고 멀리서만.
연쇄살인범으로 추정되는 용의자. 보통 연쇄살인범은 상식으론 재단할 수 없는 놈들이기에 어떤 돌발 행동을 벌일지 알 수 없어 조심해야만 했다.
본래라면 형사들에게 맡겼어야 할 일이지만, 현재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이승연 경위와 그 파트너뿐.
그 둘만으로 용의선상에 오른 세 명을 모두 감시할 수는 없기에 어쩔 수 없이 이들을 고용한 것이었다.
종혁은 흥신소 사장의 뒤를 일견하며 말을 이었다.
“선수들은 저분들인가요?”
“지영아. 경재야.”
두 명의 남녀가 다가온다.
“흐흐. 서장님도 아시다시피 여성이 필요한 일도 있거든요. 이곳뿐만 아니라 다른 곳들도 모두 여성 직원들을 배치시켰습니다. 이왕이면 부부로 위장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요새 장사 잘되나 보네요.”
“모두 서장님 덕분이죠. 흐흐.”
종혁이 한 번 의뢰를 할 때마다 얼마나 많은 돈이 들어오던가.
자고로 자금이 있을 때 사업 규모를 키워야 하는 법이었다.
“그나저나 좀 아쉽네요.”
에어컨에 냉장고, TV, 전자레인지 등 가전제품을 풀옵션으로 구매했다. 누가 봐도 사람이 사는 집인데, 이번 일이 끝나면 다 버려야 한다니 괜히 아쉬움이 들 수밖에 업었다.
“전세든 매매든 시세보다 싸게 드릴 테니 생각 있으면 들어와 사시든가요. 아니면 그냥 가전제품들만 가져가셔도 상관없고요.”
아니면 딱히 공실로 남겨 둬도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한동안은 부동산 가격이 계속 오를 테니 말이다.
“오! 정말입니까?”
흥신소 사장뿐만 아니라 남녀 직원들도 눈을 빛낸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피식 웃은 종혁이 현관 옆에 놓아둔 이사떡 박스를 가리켰다.
“감시나 잘해요. 연락은 이 번호로 하시고요.”
“허허. 걱정 마십시오!”
종혁은 안녕히 가시라며 고개를 숙이는 그들을 일견하며 아파트를 빠져나갔다.
“놈이 빨리 움직이면 좋을 텐데 말이야……. 예, 이 경위. 지금 어딥니까?”
지금쯤 인천 모처에서 대기하고 있는 이승연 경위.
그녀를 만나 자신이 뭘 했는지를 알려 줘야 했다.
* * *
“파, 파트장님! 오늘 출근길에 그, 그거 보셨어요?”
재현 정비&세차의 세차 파트장이 커피를 홀짝이다 의아해한다.
“뭘?”
“저기 아래에 있던 공터요! 공사하던!”
“거기가 왜?”
“거기에 셀프 세차장이 차려진대요!”
“……아, 그래?”
“그래가 아니라니까요! 미치겠네, 진짜!”
왜 이 양반은 이런 일에도 무사태평일까. 부하 직원으로서 속에서 열불이 치솟는다.
“뭐가 그렇게 호들갑인데, 인마. 어차피 젊은 애들만 찾을 텐데 뭘 그렇게 신경 써?”
손세차장에 비하면 몇 배나 저렴하게 세차를 할 수 있는 셀프 세차장.
하지만 다소 비용이 들더라도 전문가에게 맡기고 싶거나, 직접 세차를 하는 것이 귀찮은 이들은 결국 손세차장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정 걱정하려거든 네 실력이나 걱정해, 인마. 어떻게 거품 밥을 8년이나 먹은 놈 실력이 처음 들어왔을 때랑 하나도 변함이 없냐.”
“아니, 전 좀 느리니까…….”
“엉덩이 차 버리기 전에 가서 연습이나 해.”
“……예.”
입술을 삐쭉 내민 직원이 물러나자, 세차 파트장의 심드렁하던 얼굴이 딱딱하게 굳는다.
방금 전 말은 그렇게 했지만 걱정이 안 될 수 없었다.
지금이야 어떻게든 영업이 되고 있지만, 이 균형은 시간이 갈수록 무너질 터였다.
편의성을 추구하는 이들은 자동세차를 찾을 테고, 차에 애착을 갖고 있는 이들은 직접 세차를 하기 위해 셀프 세차장을 찾을 테니까.
호록!
그는 커피를 마시는 척 정비소로 향했다.
분명 자신과 같은 것을 봤을 것임에도 평소와 같은 정비소 직원들.
‘그래, 너희 밥그릇이 아니라는 거지?’
“형님.”
“뭔 일이야?”
건물과 건물 사이의 거리가 고작 십여 미터밖에 안 됨에도 서로 잘 보지 않는 세차 파트와 정비 파트.
“무슨 일은……. 날도 따뜻하니 커피나 한잔하자는 거지.”
그러며 마시는 커피를 보이는 세차 파트장의 모습에 정비 파트장도 고개를 끄덕이며 나가 있으라는 듯 손을 젓는다.
그에 건물 뒤편으로 돌아가니 이내 곧 정비 파트장이 한 손에 커피가 든 종이컵을 들고 온다.
“크더라. 한 열 대는 동시에 세차해도 되겠던데?”
거기에 오픈 행사 반값 세일이라는 현수막도 붙었다.
“썩을.”
들통났다.
“뭐가 그렇게 걱정인데? 설마 사장님이 널 버리겠냐?”
“나 5백 넘게 가져가요.”
“……월급 내려야겠네.”
세차 파트장의 얼굴이 구겨진다.
솔직히 지금이라도 관두고 싶다. 하지만 곧 내년에 막내아들이 결혼을 한다. 빚을 내서 집을 얻어 줘야 하다 보니 앞으로 최소 5년은 더 일해야 한다.
그런데 자신 다음가는 베테랑들이 받는 월급이 100만원가량 적다. 자신이 이재현 입장이라도 자를 수밖에 없다.
“빌어먹을 내가 데려오고 유치한 단골이 몇 명인데!”
“그 단골들 전화번호를 너만 가지고 있냐?”
이재현도 가지고 있다.
세차 파트장이 단골들 데리고 나가려는 액션을 취하는 순간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다.
“나도 알아요! 알아!”
그래서 더 미치겠다. 그런 세차 파트장의 모습에 정비 파트장의 눈이 가늘게 떠진다.
“아니면 쓸모없는 인력을 줄이든가.”
세차 파트장의 눈이 번뜩 떠진다.
“……오늘은 사장님과 술 한잔해야겠네.”
“왜? 같이 입 좀 털어 줘?”
“형님한테도 술 살게요.”
서로를 보며 씩 웃은 둘이 다시 재현 정비&세차로 들어설 때였다.
부우웅!
“오?”
벤츠. 그것도 겨우 2년 전에 나온 모델로 무려 1억이 넘는 고급 차다.
“아, 잠시만요! 파트장님!”
“나?”
정비 파트장은 빠르게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덩치 큰 사내, 종혁에게 다가갔다.
“예. 제가 재현 정비의 파트장입니다. 무슨 일이신지…….”
“다름이 아니라 제가 이번에 1년간 해외로 출장을 가게 돼서 말입니다. 그래서 여기 정비소에 정비를 맡기면서 보관을 좀 하고 싶어서요.”
2주에 한 번씩 시동도 걸어 주고, 석 달에 한 번씩 점검도 해 주고, 세차도 한 달에 한 번씩.
“달에 200만 원씩 드릴 테니까 해 주실 수 있을까요?”
“……으음. 이건 제가 결정할 수 없는 일 같군요. 저희 사장님과 만나 보시겠습니까?”
“예. 그럼요. 당연하죠.”
종혁은 정비 파트장과 세차 파트장을 보며 눈웃음을 지었다.
‘대화는 평범했는데 말이야…….’
그냥 적당히 평범한 사람들의 대화였다.
* * *
“으흐응!”
검은 봉지를 든 이재현이 콧노래를 부르며 차에서 내린다.
곧 오픈을 하는 셀프 세차장 덕분에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갑자기 대박 손님이 나타났다.
그 차량으로 인해 앞으로 손님을 한 명 덜 받아야 하지만, 어차피 차고지가 항상 꽉 차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1년에 2400만 원이라는 확실한 매출이 생기는 거다. 무조건 이득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다녀왔어!”
“왔어요?”
거실 소파에 앉아 점자책을 읽고 있던 아내가 벌떡 일어나 다가오자 이재현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그 순간이었다.
쿵쿵쿵!
“응? 윗집이 무슨 일이지?”
평소보다 발소리가 크다. 윗집에 사는 사람은 할머니뿐이라 이렇게 크지 않을 텐데 말이다.
게다가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이었다.
“아, 오늘 윗집에 누가 이사 온 것 같아요. 아까 아침부터 쿵쾅거리더라고요. 아무래도 신혼부부인 것 같아요.”
화장실에 갔을 때 남녀가 대화를 하는 걸 들었다. 좀 옛날 아파트다 보니 이렇게 들리지 않아야 할 이야기를 종종 듣곤 한다.
“아…….”
신혼부부. 같은 아파트, 아랫집에 사는 주민으로선 썩 좋은 이들이 아니다. 밤낮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냥 이 기회에 신축으로 이사를 가야 하나.’
하지만 셀프 세차장 설립이 마음에 걸린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밥 안 먹었지? 얼른 씻고 밥 차릴게. 오늘은 삼겹살이야!”
“와아!”
아내의 볼에 뽀뽀를 한 이재현은 들고 온 고기를 부엌에 내려놓은 후 화장실을 문을 열었다.
그러자 그의 코를 자극하는 짙은 담배 냄새.
지끈!
“아, 씨발.”
다시 시야 한구석의 세상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