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732화 (732/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732화>

전라남도 장성 남면에 위치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서부분원.

소장이 창밖을 보며 커피를 홀짝이다 저 멀리 국과수를 향해 달려오는 한 대의 트레일러를 발견하곤 미소를 짓는다.

“왔군.”

몸을 돌린 그가 사무실을 빠져나가 건물을 나선다.

그러자 그가 목격한 트레일러가 국과수 안으로 들어온다.

삐이! 삐이!

큰 소리를 내며 후진으로 들어오는 트레일러.

“크. 역시 대단하시다니까. 증거물 보존은 이렇게 해야지! 햐, 감식반이 이걸 보고 배워야 하는데!”

“그러게 말이다. 이래야 이동 중 오염물질이 유입이 안 되지!”

증거물이 도착한다는 소식에 밖으로 나와 있던 연구원들이 트레일러를 보며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그런 그들에게 종혁이 다가선다.

“원장님.”

“오! 최 서장!”

둘이 뜨거운 악수를 나눈다.

“잘 계셨죠?”

“뭘. 저번에 만나고 얼마나 지났다고.”

불과 얼마 전 김시원 사건 때 만났었다. 딱히 좋은 일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보다 사건 이야기는 들었어. 아동 살해라고?”

“토막 살인으로 추정됩니다.”

“……이 나라에도 참 개새끼들이 많아. 쯧. 빨리 시작하자.”

“그럼 열겠습니다!”

덜컹! 끼이익!

트레일러의 뒷문이 열리며 반파된 한상준의 차량이 모습을 드러낸다.

“막내야! 지게차 끌고 와!”

“예!”

국과수 원장이 차량의 꼴을 보곤 눈을 껌뻑인다.

“차 꼴이 왜 저래?”

“제가 박아 버렸거든요.”

“……설마 저거 영장 없이 끌고 온 거야?”

“걱정 마세요. 폐차 등록을 마친 거니까.”

주인이자 유력 용의자인 한상준이 직접 위임장을 써 줬다.

“맙소사. 저게 범인의 것이 아니면 어쩌려고 그래?”

“그땐 다 박아야죠.”

그 시각 CCTV 사각으로 사라졌던, 또 그 장소에 있었던 똑같은 모델의 모든 차량들을.

여전히 막 나가는 종혁의 모습에 원장은 어이없다는 듯 웃어 버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다.

“모두 주목-!”

부산을 떨던 연구원들이 원장을 본다.

“여기 최 서장이 누군지는 다 알지?”

“예!”

대한민국 과학수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준 존재이자, 대한민국에 있는 모든 국과수의 검사 장비를 최신형으로 바꿔 준 은인.

일할 맛이 나게 만들어 준 고마운 사람이고, 덕분에 대한민국의 과학수사는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강자가 될 수 있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었던 일본도 이제는 한 수 접어 줄 정도.

“그런 분이 맡기신 물건이다! 그 차량에 얽힌 사건은 아동 토막 살해! 티끌이라도 놓치지 마! 알았어?!”

“예-!”

우렁차게 대답한 연구원들이 차량에 달라붙자 종혁은 원장을 바라봤다.

“얼마나 걸릴까요?”

“하루!”

용무 다 봤으면 이제 꺼지라는 듯 원장은 손을 저었고, 종혁은 피식 웃으며 돌아섰다.

함께 따라와 일련의 대화를 들은 이승연 경위는 입을 떡 벌리며 종혁을 바라봤다.

“찾았다!”

찾았다. 결정적인 증거를.

아침부터 국과수에 대기하고 있던 종혁은 원장이 내미는 대조 결과와 GPS 기록을 확인하곤 이를 악물었다.

“이 경위, 그 새끼 잡아 와요.”

-예!

* * *

“흐어억!”

벌떡 몸을 일으킨 한상준이 거친 숨을 몰아쉰다.

“왜, 왜 그래요?”

깜짝 놀라 몸을 일으킨 그의 아내.

“어머! 이 땀 좀 봐!”

무슨 일인지 한상준의 온몸이 식은땀으로 가득하고, 낯빛마저 하얗게 질려 있다.

“아, 아냐. 악몽을 좀 꿔서 그래.”

거대한 괴물이 자신을 잡아먹는 그런 악몽.

상체를 찢고 씹던 괴물의 어금니와 송곳니.

다신 꾸고 싶지 않은 끔찍한 악몽이었다.

“요새 환절기라서 기력이 약해진 거 아니에요? 보약이라도 한 첩 지을까요?”

“보약은 무슨. 내가 하루에 먹는 영양제가 몇 갠데.”

이것저것 다 합하면 무려 10개의 영양제를 먹는다. 기력이 떨어질 일 따윈 없었다.

“그러니까 술 좀 작작 마시라니까!”

찔끔 몸을 움츠린 한상준은 도망을 치듯 화장실로 향했고, 그의 아내는 걱정스럽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보약이라도 지어야 하려나.”

하긴 요새 너무 다그치긴 한 것 같다.

매일같이 물과 싸우는 남편. 날이 추워지니 최소한 보양식이라도 만들어야 할 것 같았다.

“저녁엔 장어랑 삼계탕 좀 해야겠네.”

한상준의 아내는 울상을 지으며 몸을 일으켰다.

“다녀올게.”

“오늘은 술 마시지 말고 들어와요. 저녁에 장어 구울 테니까.”

“……오늘 둘째 갖는 날이야?”

“씁!”

이번엔 한상준이 울상이 된다.

마음 같아선 약속을 잡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진짜 전쟁이다. 그것도 한상준 본인만 일방적으로 터지는 전쟁.

어깨를 늘어트린 그는 배웅을 나온 딸조차 제대로 안아 주지 못한 채 집을 나섰다.

그리고 잠시 후 주차장에 들어선 그는 습관적으로 차키를 찾았다가 피식 웃었다.

“아. 차 팔았지, 참.”

아직도 이틀 전 저녁의 일만 생각하면 어이없는 웃음만 나온다.

하지만 괜찮다. 비록 아내가 보상금의 반을 뜯어 가긴 했어도 남은 돈으로 드림카를 살 수 있으니 말이다.

“흐흐. 드디어 나도 포르쉐 오너구나…….”

“한상준 씨?”

“예? 누, 누구?”

“경찰입니다. 당신을 살해 혐의로 체포합니다. 여기 체포 영장 보이시죠? 당신은…….”

“무, 무슨……!”

깜짝 놀란 한상준은 자신도 모르게 수갑을 채우려는 팔을 뿌리쳤고, 그 순간 이승연 경위가 한상준의 목을 후려치며 파고들어 그의 팔을 휘감아 그대로 바닥에 내리꽂는다.

쿠우웅!

“크헉?!”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으며, 지금부터 하는 말은 모두 법정에서 불리하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체포가 부당하다 생각되면 언제든 이의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이 개새끼야?!”

뿌드득!

“아악!”

“가만있어!”

팔을 사정없이 뒤로 꺾은 이승연이 대기하고 있는 지원 나온 경찰들을 향해 크게 외쳤다.

“압수수색 진행해!”

“예!”

한상준의 집과 세차장. 그 모두 압수수색을 진행해야 됐다.

한상준은 집으로 몰려가는 경찰들을 보며 눈을 부릅떴다.

“안 돼-!”

* * *

한상준은 곧바로 신안경찰서의 취조실로 이동됐다.

“진짜란 말입니다!”

한상준은 미칠 것 같았다.

바퀴벌레도 무서워 죽이지 못하는 자신이 살인이라니. 그것도 13살 남자아이를 잔인하게 죽였단다.

“네 차량에서 박시원 학생의 혈흔이 발견됐어!”

그것도 대량의 혈흔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GPS 기록을 확인한 결과, 한상준이 그날 그 시각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 역시도 밝혀졌다.

쾅!

“이러고도 발뺌을 하시겠다고?!”

“…….”

한상준의 턱이 덜덜 떨린다.

“뭐, 뭔가 잘못된 겁니다! 제가 왜 그 아이를 죽인단 말입니까!”

일평생 함께하기로 한 사랑하는 아내와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딸이 있다. 하루가 다르게 커 가는 딸을 보는 재미가 너무 크다.

그리고 어렵게 시작했던 사업도 지금은 번창해서 연 매출만 5억 이상. 덕분에 아직 젊은 나이임에도 꽤 넓고 좋은 집을 자가로 매입했다.

앞으로 지나친 사치를 즐기지만 않는다면, 지금까지 모아 놓은 돈만으로도 평생 풍족하게 살 수 있을 정도.

그런데 어렵게 쌓아 올린 이 모든 걸 단숨에 잃을 수 있는 행동을 자신이 한단 말인가.

“그럼 알리바이를 증명해 보란 말이야! 이날 뭘 했는지!”

“……수, 술을 마셨습니다.”

“누구랑?”

“세, 세차장 직원들과…….”

이승연 경위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망설임이 깃든 떨리는 목소리.

지금 한상준은 누가 봐도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그래, 나중에도 그렇게 말할 수 있나 보자.”

쾅!

취조실 문을 닫고 나온 이승연의 눈빛이 착 가라앉는다.

‘이상해.’

뭔가 이상하다.

어린아이를 죽이다 못해 토막을 냈을 정도로 잔인한 놈이다.

게다가 자신이 사는 인천이 아니라 먼 신안까지 내려오다 못해 헤드라이트를 끄는 등 치밀한 범행을 계획한 놈.

차량 인식 프로그램이 없었다면 한상준에게 도달하기까지 몇 달, 아니 몇 년이 걸렸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정작 범인인 한상준이 너무 허술하다.

잠시 고민에 잠겼던 이승연은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소 찝찝함이 남았지만, 그래도 현재 정황 증거가 너무 확실했다.

“어, 나야. 지금 세차장이지? 세차장 직원들한테 혹시 그날 한상준과 술을 마셨는지 확인 좀 해 봐.”

그렇게 통화를 종료한 이승연이 사무실을 나설 때였다.

“이 경위.”

“아, 서장님.”

종혁을 본 이승연 경위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종혁도 자신과 똑같은 걸 생각하고 있다고 말이다.

그 순간이었다.

“아동청소년과의 이승연 경위입니까?”

종혁의 등 뒤로 나타난 한 사내.

종혁과 이승연 경위는 그의 슈트 재킷에 달린 노란 금배지에 얼굴을 구겼다.

“반갑습니다. 한상준 씨 변호를 맡은 서광식 변호사입니다.”

골치 아픈 존재가 등장했다.

* * *

“과, 광식아!”

“하아.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서울 유명 로펌에서 변호사를 하고 있는 동창.

서로 하는 일이 달라 연락이 끊긴 지 5년이 넘었지만, 이런 상황이 되지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게 이 친구뿐이었다.

“나도 몰라!”

“야. 지금 그런 말은 아무런 도움이 안 돼. 딱 이것만 말해. 죽였어, 안 죽였어?”

“안 죽였어! 내가 왜 죽여!”

“……오케이. 그럼 난 너의 그 말을 믿고 변호를 할 거야. 일단 상황이 심각한 건 알지?”

“으응.”

“이대로 가면 너 빠져나가지 못해. 무조건 살인이야.”

아직 시체도 발견되지 않았고, 흉기도 발견되지 않은 상황이다. 즉, 정황 증거뿐이라는 거다.

하지만 그 정황 증거가 너무 확실하다.

인천에 사는 한상준이 도대체 무슨 이유로 신안까지 차를 끌고 갔다는 말인가?

너무나도 부자연스러운 상황.

이걸 설명하지 못하는 이상, 이 정황 증거만으로도 판사에 따라서는 유죄 판결이 내려질 가능성이 충분했다.

“그러니까 그날 네 행적을 자세히 기억해 내야 돼. 그날 너 뭐 했어?”

“그, 그게…… 아니…….”

“야, 한상준. 너 지금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본데, 여기 서장이 누군지 알아?”

그 최종혁이다. 당시 현직 국회의원도 잡아 처넣은 미친 또라이.

그놈에 의해 교도소에 수감된 재벌이 몇 명이던가.

변호사라면 절대 피하고 싶은 인물이 바로 최종혁인데, 그런 인간이 이 사건을 주시하고 있다.

“뭐, 뭐?!”

“그래, 이 새끼야. 지금 가볍게 여길 상황이 아니라고. 정신 차리고 똑바로 말해.”

“하아, 씨발. 너…… 내 와이프한테 절대 말하지 마라.”

“걱정 말고 빨리 말하기나 해.”

“……그날 직원들이랑 술 마시고 2차로 노래방에 갔어.”

그냥 단순한 노래방을 뜻함이 아니었다.

“미친 새끼. 지금 고작 그것 때문에…….”

“와이프에게 걸리면 죽는다고!”

“푸후. 그런데 네 차가 왜 거기에서 CCTV에 찍힌 건데? 차를 도둑맞기라도 한 거야?”

“내가 그래서 더 미치겠는 거야! 정비소에 수리를 맡겨 놓은 차가 도대체 어떻게 거기에 있었다는 거야!”

순간 변호사의 눈이 번뜩인다.

“그거 자세히 말해 봐.”

이 거지 같은 상황을 빠져나갈 구멍이 보이는 것 같았다.

* * *

“으흐응.”

“오늘 기분이 좋아 보이시네요.”

“아, 그럴 일이 좀 있어서요.”

오늘은 열쇠를 완성시키는 날이다.

이 흘러내리는 세상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는 날.

그렇다 보니 더 몸이 달은 사내, 이재현은 결국 참지 못하고 일어나 버리고 만다.

“거래처 만나고 바로 퇴근할 거니까 퇴근 시간 되면 알아서들 정리하고 들어가세요.”

“아, 예!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래요. 내일 봅시다.”

직원에게 손을 흔든 이재현은 차를 몰고 인천을 벗어나 위쪽으로 향한다.

한참을 올라가 파주의 어느 산으로 차를 몰고 올라가는 그.

카가각!

차를 멈춰 세운 그의 눈에 작은 건물이 들어온다.

차에서 내린 그는 흥분이 가득 서려 있는 잰걸음으로 건물의 현관문을 열었고, 이내 곧 새하얀 무언가들이 그의 망막 속에 들어온다. 고약한 냄새와 함께.

“스으읍! 하!”

그의 입가에 환하고도 잔인한 미소가 맺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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