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731화>
빠르게 인천으로 올라온 이승연 경위가 위조 번호판을 단 차량이 마지막으로 찍은 공용 CCTV 아래에 서서 주변을 둘러본다.
부우웅! 빵빵!
4차선 대로를 느릿하게 달리는 차량들과 거리를 오가는 많은 사람들.
“여기란 말이지?”
“예, 선배.”
이승연이 눈을 가늘게 뜬다.
‘여기 어딘가에서 찍혔을 거야.’
번호판을 바꿔 다는 한상준의 모습이 말이다.
그것만 확보하면 영장도 수월히 받아 낼 수 있다.
그럼 놈은 끝이었다.
“가자. CCTV 수거해야지.”
“이거 괜찮을까요?”
새벽에 사라진 차량이 다음 날 점심때 나타났다. 분명 이 근처가 놈이 사는 곳이었다.
그런데 마구잡이로 뒤진다? 자칫 한상준이 눈치를 채고 모든 증거물을 없애 버릴 수 있었다.
“그러니 이럴 때를 위해 쌓아 놓은 인맥을 써야지.”
“네?”
“있어 봐.”
핸드폰을 꺼낸 그녀가 어딘가로 전화를 건다.
“언니! 나야, 승연이! 잘 지냈어요? 언니 지금 인천에 있죠? 다름이 아니라 내가 사건 때문에 CCTV를 수거해야 되는데, 그쪽 서 이름 좀 팔아도 돼요? 오케이! 땡큐! 알았어요. 날 한번 잡아요. 이번 사건 끝나면 휴가 낼 거니까!”
휴가를 내는 게 아니라 거의 반강제적으로 휴가를 간다.
이전 쑤언박 사건을 해결하는 데 공헌한 부서 전체가 일주일 포상 휴가를 받았다. 이번에도 그럴 것이 분명했다.
“됐지?”
“……브라보.”
짝짝짝.
“오늘도 이렇게 하나를 배웁니다.”
“히히.”
“시나리오는 청소년 오토바이 절도로 갈까요?”
“아니, 차량 귀금속 절도로 가자.”
그렇게 CCTV를 수거해 가던 그들은 끝내 재현 정비&세차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 절도요?”
“예. 이놈들이 이 근방에 주차된 차량들 가운데 잠기지 않은 차량을 열어 귀금속을 훔쳤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증거 수집을 위해 주변 CCTV를 수집 중이니 협조 부탁드리겠습니다.”
“으음. 근처에서 그런 못된 일이 발생했나 보군요. 그런데 어쩌죠? 저희 정비소 CCTV는 정비소 안쪽만 찍는데 말입니다.”
“으음. 그렇습니까? 일단 혹시 모르니 그거라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예. 당연히 협조해야죠.”
“아, 감사합니다! 복 받으실 거예요!”
“하하. 아닙니다. 그럼.”
이승연과 그 파트너는 고개를 연신 숙이며 사무실을 나섰고, 문이 닫히자 사내의 입가에 지어진 미소가 사라진다.
그는 핸드폰을 들어 114에 전화를 걸었다.
“예. 인천부평경찰서 아동청소년과로 연결 부탁드립니다.”
뚜르르! 뚜르르!
-네. 인천부평경찰서 아동청소년과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수고하십니다. 거기에 혹시 이승연 경위라는 분이 계실까요?”
-이승연 경위요? 아, 네! 지금은 자리에 안 계신데 혹시 사건 때문에 전화하셨을까요? 누구라고 전해 드릴까요?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통화를 종료한 그의 입가에 다시 미소가 피어오른다.
어깨를 으쓱인 그는 다시 컴퓨터 앞에 앉으며 마우스를 잡았다.
어느 정도 쉬었으니 다시 일을 해야 됐다.
차칵, 차칵!
그의 손에 쥐어진 작고 검은 통에서 모래 알갱이가 흔들리는 소리가 났다.
* * *
달칵!
통화를 종료한 39살, 한상준이 한숨을 내쉰다.
“생일인데 미역국은 먹었나 모르겠네.”
“누구? 재현 도련님?”
“응.”
“왜? 집에 일찍 들어와야 해서 아쉬워?”
“무, 무슨! 그런 거 아니야! 날 어떻게 보고!”
“맨날 술 마실 건수를 찾는 나쁜 아들?”
“……아들은 너무했다. 내가 그래도 남편인데.”
“알아서 챙겨 먹었겠지. 나이가 몇인데. 걱정 말고 다녀오기나 해요.”
“알았어. 다녀올게. 지현아! 아빠 다녀올게요!”
“다녀오째요!”
“……으으. 우리 지현이 왜 이렇게 예쁜 거야!”
“꺄아!”
한상준이 달려들려 하자 딸이 재빠르게 도망을 친다.
“여보, 나 그냥 오늘 출근하지 말까?”
“당신이 사장인데 뭘 출근을 안 해! 얼른 가기나 해!”
“네…….”
입술을 삐죽 내밀며 집은 나선 한상준이 차에 오른다.
“씁. 이놈은 핸들을 얼마나 문댄 거야?”
얼마나 기름을 먹였는지 운전하기가 불편할 정도다.
그뿐만이 아니다. 얼마나 구석구석 잘 청소를 했는지, 마치 새 차 같은 느낌을 받을 정도다.
“하여튼 적당히를 몰라요, 적당히를. 아니, 나보고 열심히 하라고 시위하는 건가?”
어려서부터 참 부지런하고 성실했던 사촌 동생, 이재현.
그래서 그 나이에 그렇게 큰 정비소 겸 세차장을 차릴 수 있었던 것이리라.
혀를 툴툴 찬 그는 차를 몰아 직장이자 그의 사업체로 향했다.
‘유명 세차’라 적힌 세차장 안으로 들어가자 먼저 출근해 커피를 마시고 있던 직원들이 일어서 그를 반긴다.
“좋은 아침입니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사장님!”
그랬다. 한상준은 손세차장의 사장이었다.
차를 한 곳에 주차시킨 그는 사무실로 올라가 옷을 갈아입고 나왔고, 이내 곧 차량 한 대가 세차장 안으로 들어왔다.
“어서 오십시오!”
업무 시작이었다.
한편 그런 세차장이 들여다보이는 길거리에 주차된 차 안.
이승연의 파트너가 가만히 세차장을 응시했다.
* * *
눈에 보이는 모든 CCTV 영상들을 수거해 다시 신안경찰서로 내려와 수사지원과에 넘긴 이승연 경위는 사무실로 돌아가려다 씩씩거리며 계단을 올라가는 총경 계급의 경찰을 발견하곤 눈을 동그랗게 뜬다.
‘설마 목포경찰서장?’
그녀는 다급히 그의 뒤를 쫓았고, 이내 얼굴을 구겼다.
아동청소년과의 문을 열어젖힌 목포경찰서장.
“여기 이승연 경위가 누구야-!”
“헛! 추, 충성!”
“충성이고, 나발이고 누구냐니까!”
“접니다만.”
등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깜짝 놀라 몸을 돌린 목포경찰서장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너야? 네가 우리 동식이 검찰로 넘긴 놈이야?”
현재 특수폭행 및 갈취 혐의로 목포교도소에 수감되어 검찰의 부름을 기다리는 임동식.
새로운 유력 용의자의 등장으로 살인 및 유기 혐의는 반쯤 벗었다지만, 박시원을 괴롭힌 일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이런 미친.’
전화로 안 되니 찾아온 게 분명했다.
‘정말 미친 거 아니야?’
그녀가 알기로 정말 전남청 감찰에서 감찰들이 움직여 목포경찰서장의 직무를 정지시킬 예정이라고 했다. 그것도 모레부터.
이건 정말 미친 짓이었다.
“예! 제가 임동식 학생의 담당 형사입니다! 현재 임동식은…….”
“닥쳐! 경위 짜바리가 어디서 그딴 걸 판단해!”
“…….”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사무실에 퍼지는 묵직한 음성에 이승연의 뒤를 본 목포경찰서장이 이를 드러낸다.
“어이, 최 서장. 정말 해보자는 거지?”
솔직히 종혁이 그냥 젊은 혈기에 반발을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진짜 본청과 전남경찰청의 감찰이 움직였다.
이는 감히 자신에게 칼을 겨눈 것이었다. 이제 총경이 된 새파랗게 어린놈이 말이다.
종혁은 살기를 드러내는 그의 모습에 피식 웃었다.
“왜요. 부정 청탁을 하셨을 때 이 정도 각오도 안 하셨습니까?”
빠득!
“……이봐, 최 서장. 네가 지금 뭘 모르나 본데…….”
“뭐요. 총경 커뮤니티를 말하는 겁니까?”
움찔!
총경부터는 일선 경찰서의 서장 및 지방경찰청의 계장급이다.
중간 간부의 끝자락이자, 고위 간부에 한 발 걸친 계급이라는 뜻.
인체로 치면 허리나 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 보니 이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은 활발하게 교환되고 있고, 실제로 상부에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어떤 잘못된 정책을 발표할 시 이들이 하나로 뭉쳐 반발을 한다.
회귀 전 정부에서 경찰청을 경찰국으로 각하시키려 하자 하나로 뭉쳐 움직인 것처럼 말이다.
“……그걸 알고도 이따위로 행동한다고?”
‘대체 뭘 믿는 거지?’
종혁은 낯빛이 딱딱하게 굳는 목포경찰서장에게 다가가 그의 귀에 입술을 가져갔다.
“선배님, 내가 당신 차명 계좌들을 터는 데 얼마나 걸릴까요?”
움찔!
“1년? 반년? 아뇨. 고작해야 10분입니다, 선배님.”
어디 그뿐일까. 마음만 먹으면 그가 묵인했던 사건들을 파헤치는 것도 식은 죽 먹기보다 쉽다.
“거기다 아드님들과 따님께서 대학에 입학한 것에도 뭔 비리가 있던 것 같던데…….”
오싹!
종혁은 목포경찰서장의 눈을 가만히 응시했다.
“어떻게, 서로 죽어 볼까요?”
“……나만 물러나면 되는 건가?”
“이태흥 사장과도 연락을 끊으시는 게 좋을 겁니다. 이곳에 오기 전에도 통화하셨더라고요?”
‘어, 어떻게 그걸!’
종혁은 파랗게 질리는 그를 보며 미소를 지어 주었다.
“전 한 번 밟기로 생각한 상대는 다신 일어날 수 없도록 제대로 밟는 주의라서요. 부디 현명한 결정을 내리시길 부탁드립니다.”
“……정직은 1년으로 봐주게. 건사해야 될 사람이 많아.”
“먼 곳에선 부디 타의 모범이 되는 경찰이 되길 바랍니다. 멀리 나가지 않겠습니다.”
고개를 푹 숙인 목포경찰서장은 힘없이 걸어 나갔고, 종혁은 멍하니 쳐다보는 아동청소년과 형사들을 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아, 이 경위.”
“예, 옙!”
“영상은요?”
“바, 방금 전에 수사지원과에 넘겼습니다!”
“그럼 지금쯤 결과가 나왔겠군요.”
수사지원과에 사비로 들여놓은 컴퓨터만 10대다.
쑤언박 사건 이후 초고사양의 컴퓨터를 더 들여놓은 종혁.
“올라갑시다.”
“예!”
“이거…….”
수사지원과 경찰이 말끝을 흐리자 종혁과 이승연 경위의 낯빛이 흐려진다.
“안 나온 겁니까?”
“죄송합니다.”
아니다. 죄송할 건 없다.
종혁은 한숨을 내쉬었고, 이승연은 어떤 기대를 담아 종혁을 바라봤다.
“그래도 정황 증거는 확실하니까…….”
“확실한 건 아니죠.”
유력한 용의 차량일 뿐, 번호판이 바뀌었기에 같은 차량이라고 단정 지을 수가 없다. 차량 인식 프로그램을 들이밀어도 법원에서 거부할 게 뻔하다.
더욱이 유력 용의자인 임동식은 아직 혐의를 벗지 못한 상태다.
아직 시체가 발견되지 않은 사건이다 보니 차량 압수는 무리였다. 잘해 봐야 네비게이션의 GPS 기록만 겨우 확인할 수 있을 거다.
문제는 이 차량 압수가 안 된다면 새로운 용의자인 한상준이 혹시라도 남아 있을지 모를 증거를 인멸해 버릴 수 있다는 점이다.
“흠. 안 되겠네요.”
“예?”
종혁은 핸드폰을 들었다.
“예, 서장입니다. 지금 그 한상준의 차량 네비게이션이 어떤 제품인지 확인할 수 있겠습니까?”
-예, 예! 차량 세차를 맡기는 척하면서 확인해 보겠습니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이승연의 파트너가 제품명을 말한다.
“오, 그래요? 다행이네요.”
아는 회사, 아니 정수찬 회장 회사의 제품이다.
-네?
“예?”
“이 경위.”
“예, 서장님.”
“같이 올라갑시다.”
이승연은 눈을 껌뻑였고, 종혁은 싱긋 웃었다.
* * *
“저, 저깁니다!”
이승연의 파트너가 아파트 지상주차장에 세워진 한상준의 차량을 가리킨다. 먼저 주차된 차량이 너무 많아서 이중 주차가 되어 있는 한상준의 차량.
‘위치 좋네.’
종혁이 이승연 경위의 차를 본다.
“차가 좋네요? 언제 산 겁니까?”
“어…… 오, 올해 바꾸긴 했는데…….”
“아, 그러면 안 되겠네요.”
“예? 대체 뭘 하시려고…….”
“보고 계세요.”
탁!
끌고 온 본인의 차에 오른 종혁이 후진을 하다 멈춰 선다.
그리고 사이드 브레이크를 걸며 액셀을 밟는다.
그와 동시에 솟구치는 RPM.
부아아아앙! 부아아앙!
찰칵! 치이익!
“후우. 그럼 가 보실까?”
종혁은 딱 박기 좋은 곳에 위치한 한상준의 차량을 보며 사이드 브레이크를 내렸다.
부아아아아아아앙!
꽈아아아아아앙!
삐용삐용삐용!
“……이런 미친.”
이승연과 파트너는 반파된 종혁의 외제차와 한상준의 차, 그리고 그 영향을 받은 그 주변의 차량들을 보며 입을 떡 벌렸다.
* * *
후다닥!
전화를 받은 한상준이 다급히 뛰어왔다가 절망한다.
“이거 어떡할 거야!”
“이런 미친 새끼!”
이미 난장판이 된 주차장.
덩치 큰 사내의 멱살을 잡은 사람들의 모습 따윈 그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직 시가 2억이 넘는 외제차와 합체를 한 자신의 차만 보일 뿐이다.
큰맘을 먹고 산 예쁜이.
너무도 아껴서 거의 3개월에 한 번씩 정비를 받는 예쁜이.
무려 8천만 원이나 하는 자신의 보물.
“아…… 아…… 누, 누구야…….”
비척거리며 일어난 한상준의 눈이 돌아간다.
“누구야! 어떤 새끼야-! 어떤 새끼가 내 차를 이렇게 만들었어-!”
“아, 혹시 이 차량의 차주십니까?”
“너야?! 네가…….”
“죄송합니다. 차량이 갑자기 급발진을 하는 바람에 이런 결례를 끼치게 됐습니다. 일단 보험사 부르시고, 전손 처리를 하시죠. 아니, 그냥 새 차를 뽑으시는 게 어떠십니까? 제가 피해 위로금까지 합쳐 2억을 보상해 드리겠습니다.”
“……예?”
“아, 인사가 늦었습니다. 서울에서 부동산 쪽 일을 하고 있는 최종혁이라고 합니다.”
“아, 예……. 세차장 일을 하고 있는 한상준입니다.”
이름과 전화번호만 적힌 황금색 명함을 받아 든 한상준은 종혁을 멍하니 쳐다봤다.
“폐차를 생각하신다면, 제가 그 절차까지 책임지고 마무리하겠습니다.”
‘파텍 필립…….’
영롱하게 빛나는 시가 1억짜리의 시계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