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728화>
“뭐가 이상하다는 겁니까, 최 팀장.”
최재수의 연락을 받자마자 달려온 종혁이 폐가 안으로 들어서며 미간을 좁힌다.
자신이 열심히 가르치고, 오택수가 다듬으며 살벌한 현장들을 열심히 굴린 최재수다. 그런 최재수가 이상하다고 했다면, 분명 뭔가 특이점이 있는 것이다.
종혁에게 거수경례를 한 최재수는 한 곳을 가리켰다.
“저기 좀 보시겠습니까?”
재수가 가리키는 장소, 문이 열려 있는 외부 화장실을 본 종혁은 낯빛을 딱딱하게 굳혔다.
“맞네. 이상하네.”
이상하다. 소름이 끼칠 만큼 이상하다.
“여긴 어떻게 발견한 거냐?”
“갑자기 현장 냄새가 나더라고요.”
딱히 말로 설명할 수 있는 냄새가 아니다.
그저 불길한 냄새. 딱 그 표현이 알맞다. 가장 비슷하게 표현한다면 피 냄새라고 할 수 있다.
“저…… 서장님? 뭐가 이상하다는 건지…….”
“깨끗하잖습니까.”
“예? 어? 그, 그러고 보니까?”
정말 종혁의 말처럼 깨끗하다.
밖엔 흙먼지나 쓰레기 따위들이 가득한데, 널따란 외부 화장실 안은 마치 얼마 전까지 사람이 쓴 것처럼 깨끗했다.
화장실 바닥뿐만 아니라 변기, 심지어 천장까지 모두 얼마 전에 청소를 한 것처럼 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다.
“서, 서장님!”
한곳을 가리키며 하얗게 질리는 최재수.
“그래. 나도 보고 있다.”
최재수가 가리키는 곳을 보고 있던 종혁이 이를 악문다.
너무 작아 티끌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작고 붉은 점.
“최 팀장, 감식반 불러.”
“예!”
아니겠지. 아닐 거다.
그저 누군가 급한 김에 쓴 게 분명 할 거다.
종혁은 화장실 안을 죽일 듯 노려보며 이를 악물었다.
“씨, 씨발. 이게 뭐야.”
“미친…….”
어두웠던 화장실을 가득 채우는 청자빛.
감식반과 뒤늦게 도착한 다른 경찰들이 화장실 벽과 바닥을 가득 채운 청자색 발광도료를 보곤 하얗게 질린다.
청자색 발광도료, 아니 루미놀 시약에 반응한 혈액.
즉, 이 화장실 전체에 거의 뒤덮이다시피 피가 뿌려져 있었던 것이다.
“뭐가 좀 나올 것 같습니까?”
“처음 발견한 혈흔만으로도 유의미한 결과는 충분히 나올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부탁드리겠습니다.”
돌아선 종혁이 주먹을 쥔다.
아닐 거다. 박시원 학생이 아니어야 했다.
입술을 깨문 종혁은 돌아서며 초조하게 기다린다.
그렇게 1분이 하루 같은 초조한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지이잉! 지이잉!
“예, 원장님!”
-최 서장, 방금 전 보내 준 혈액과 머리카락을 대조해 봤는데…….
박시원의 집에서 채취한 머리카락.
-99퍼센트 일치해.
쿠웅!
“……예. 감사합니다.”
참담히 얼굴을 구긴 종혁은 자신을 보는 경찰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런 말을 해야 한다는 게 너무 아프다.
“현 시간부로…… 박시원 학생 실종 사건을 박시원 학생 살해 사건으로 전환합니다.”
“……씨발-!”
경찰들의 얼굴이 구겨졌다.
* * *
가을이 되면서 부쩍 짧아진 해.
어느새 어둠이 내려앉은 도로 위를 박시원이 힘들게 걷는다.
터벅! 터벅!
“하아, 하…….”
‘여기가 이렇게 멀었나……?’
하지만 힘들어도 돌아가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임동식과 다시 마주칠 수도 있었으니까.
“바보.”
자신은 바보다. 솔직히 왜 그렇게 우직하게 행동했나 싶다.
앞에서는 알았다고 하고, 나중에 신고를 하든 도망을 다니든 했으면 됐을 텐데.
하지만 후회가 되진 않는다.
항상 부러질지언정 굽히며 살지 말라고 하셨던 아빠.
남을 돕지 못할지언정 피해를 주는 사람은 되지 말라고 하셨던 엄마.
박시원은 그런 어른이 되고 싶었다.
“에이, 나쁜 놈.”
임동식이 꺼지라고 했다고 정말 따라오지 않은 친구 김지훈이 떠오르자 박시원이 콧잔등을 씰룩인다.
장난기가 많고 좀 심한 것을 빼면 착한 친구인 지훈이.
솔직히 이번 일로 배신감이 들지 않으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이해한다. 임동식은 그만큼 무서운 형이었다.
‘그래도 신고는 해 주지. 아니면 다른 형들한테 말해 주든가.’
“칫! 그래. 조금이라도 성숙한 내가 이해해야지.”
내일 자신이 배신자라고 놀리면 어쩔 줄 몰라 할 친구의 모습을 떠올리며 히죽 웃던 박시원은 순간 오싹해지는 등골에 고개를 돌렸다가 눈을 가늘게 떴다.
저 멀리 누군가 다가온다.
“헉!”
임동식이다.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잘 알아볼 수 없지만, 임동식임이 확실했다.
“어, 어쩌지?”
도망쳐야 한다.
당황해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박시원은 이내 눈을 질끈 감으며 도로 옆 수풀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납작 엎드려 숨을 죽였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터벅터벅!
“이 씨발 새끼는 왜 이렇게 안 보여! 아, 씨! 야, 정말 너희 쪽에 없어?! 자세히 좀 찾아보라고! 씨발!”
퍼억!
‘흡?!’
박시원이 얼굴 옆에 틀어박힌 주먹 두 개 크기의 돌에 기겁하며 입을 막으며 귀를 기울인다.
“이 씨발 새끼는 진짜 어디로 간 거야! 어? 설마……?”
쿵!
얼굴이 하얗게 질린 박시원은 엎드린 채로 뒤로 물러났다.
그 순간 박시원이 있던 자리로 돌 하나가 틀어박힌다.
‘크흡!’
“나와라. 지훈이 친구 이 개새끼야, 나와라.”
퍼억! 퍽! 퍼억!
점점 박시원을 향해 다가오는 소리와 돌 그림자.
“에이, 씨. 던질 만한 게 없네.”
임동식은 옆으로 3미터 정도 걸어가 몸을 숙여 다른 돌을 집어 든다. 그리고 수풀을 향해 집어 던진다.
도로 옆은 농수로. 자칫 신발이 망가질 수 있기에 들어갈 생각은 못한다.
퍼억! 퍽!
임동식은 계속해서 자리를 옮기며 돌을 던졌고, 박시원은 임동식의 말소리와 돌이 흙바닥에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됐음에도 계속 숨을 죽였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고개를 빼꼼 들어 도로가를 살핀 박시원이 입을 막은 양손을 내린다.
“푸하아!”
숨조차 죽였던 살벌했던 순간.
박시원은 몸을 뒤집어 하늘을 본다.
“집에 늦게 가겠다.”
임동식이 자신을 찾고 있다.
아무래도 더 버텨야 할 것 같다.
“7시…….”
‘20분만 더 있다가 나가자.’
그 정도면 아마 임동식도 멀리 갔을 거다.
박시원은 그렇게 생각하며 천천히 숫자를 셌다.
그리고 잠시 후 몸을 일으킨 박시원은 다시 수풀을 헤치며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보이기 시작한 도로와 그 옆에 자리한 농협 마트.
박시원은 잠시 멈춰 서서는 자신의 몸을 살폈다.
흙먼지와 풀 조각들로 가득한 팔뚝. 피와 흙먼지가 가득 묻고, 여기저기 찢어진 옷.
“에휴.”
이대로 돌아다니면 아무래도 이상하게 보일 터.
몸을 돌린 그는 마트 입구 옆 화장실로 들어갔다.
“와. 나 엄청 맞았구나.”
얼굴이 케첩 범벅 찐빵이다. 그것도 말라붙은 케첩 범벅.
“바로 들어가지 않길 잘했다.”
쏴아아아!
“아, 따가!”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지른 박시원이 순간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깨문다.
“흐으으!”
갑자기 차오른 눈물.
‘아니야! 눈물을 흘리면 지는 거야!’
맨날 맞기만 하지만, 눈물까지 흘리면 정말 임동식에게 지는 거다.
그런 나쁜 사람에게 지고 싶지 않은 박시원은 이를 악물며 얼굴에 말라붙은 피딱지를 닦아 냈고, 옷에 묻은 피도 물을 묻혀 박박 문질렀다.
“푸후우.”
거울을 본 박시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은 여전히 찐빵이고, 옷은 물에 흠뻑 젖었지만 방금 전보다는 훨씬 낫다. 이 정도면 괜찮을 것 같다.
히죽 웃은 박시원은 휴지로 얼굴을 닦기 위해 변기칸의 문을 열었다.
“그럼 네가 남아 있든가.”
“에이. 무슨 말을 또 그렇게 해요?”
‘힉?’
밖에서 갑자기 들려오는 대화에 박시원은 또다시 입을 막고는 숨죽였다.
그러길 얼마나 지났을까.
그는 더 이상 대화 소리가 들려오지 않기 시작하고도 한참을 지난 뒤에야 화장실을 빠져나왔다.
“후. 지금이 8시니까…….”
부모님이 자는 시간이 대략 10시. 대충 11시쯤에 몰래 들어가면 될 것 같다.
박시원은 읍내 입구 근처에서 몸을 숨기고 있기로 하며 터벅터벅 도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하루가 일찍 끝나는 시골인 탓에 벌써 주변은 어두컴컴했다.
휘이잉!
“으, 추워.”
온몸에 홀딱 젖은 터라 몸을 웅크린 박시원이 다시 마트로 돌아갈까 진지하게 고민하던 그때였다.
“어이! 친구!”
옆을 돌아본 박시원은 눈을 부릅떴다.
부웅! 퍽!
“엄마…….”
박시원은 머리가 터지는 느낌과 함께 정신을 잃었다.
* * *
쾅!
“네가 죽인 거 맞잖아!”
“아니에요! 아니라고요!”
“이 영상을 보고도 아니라고? 네가 박시원의 뒤를 쫓아간 곳에서 마트까지 10분! 하지만 넌 20분이 걸렸어!”
“정말 아니라고요-! 아, 진짜 미치겠네!”
빠악!
“똑바로 앉지 못해!”
“지, 진짜 아니라고요…….”
이승연 경위는 울상을 짓는 임동식을 보며 고민에 빠진다.
‘정말 아닌가?’
아니다. 임동식 말고는 살해 동기를 가진 사람이 없다.
게다가 박시원을 쫓았던 것과 다른 길로 나타난 임동식의 이후 행방이 2시간 정도 묘연하다.
말은 근처 단군 PC방에서 놀았다고 하지만, 조사해 보니 그 시각 단군 PC방에는 주인이 없었다. 근처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고 했다.
M PC방에게 손님을 거의 뺏기다 보니 그냥 문만 열어 놓는 단군 PC방. 어차피 회원이 아니면 컴퓨터를 이용할 수 없으니 결제는 알아서 하라고 말이다.
게다가 그 흔한 CCTV도 없었다.
임동식의 알리바이는 성립되지 않았다.
“제 친구들한테 물어보라고요-!”
“미안하지만 공범의 증언은 알리바이 입증에 별 효력이 없단다. 네 외삼촌이 이런 건 안 알려 줬니?”
“아, 씨발 진짜!”
빠아악!
다시 서류철로 임동식의 머리를 후려친 이승연이 이를 드러낸다.
“욕하지 마.”
그녀의 몸에서 피어오른 살의에 임동식은 마른침을 삼키며 입을 다물었고,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켰다.
“배고프지? 일단 좀 쉬자.”
* * *
“흠.”
취조실의 유리거울 너머.
어두운 공간에 서서 임동식과 이승연 두 사람을 응시하던 종혁이 입술을 달싹인다.
현재 정황상 가장 유력한 용의자인 임동식.
그런데 연기라고 하기엔 너무 억울해하고 있다.
수많은 범죄자를 접해 왔던 종혁이 판단하기엔 저 억울함은 진심이었다.
“사이코패스가 아니고서야…….”
“정신 감정을 의뢰할까요?”
“그렇게 하세요. 그리고…… 사건 현장 주변을 더 샅샅이 뒤지라고 하시고요.”
임동식은 중학생 1학년 평균 키에, 평균 체중.
혼자 같은 나이의 남자를 살해한 후 옮기기에는 체력적으로 어려움이 많고, 시간도 많이 들 수밖에 없다.
시간을 지나치게 지체했다간 다른 누군가에게 들킬 가능성이 생기니, 차라리 그냥 주변에 유기했을 확률이 높다.
“신안의 모든 마트와 철물점을 뒤져서 저놈과 그 패거리, 아니 학생들 중 누구라도 락스와 솔, 칼, 톱이나 도끼를 산 적이 있는지도 확인하시고요.”
임동식이 박시원을 살해한 후 그대로 옮겼다면 반드시 흔적이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사건 현장에서 그러한 흔적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은 하나.
‘……토막을 낸 거겠지.’
그게 아니고서야 화장실에서 발견된 출혈량을 설명할 길이 없다.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은 일이지만, 지금까지의 정황이 가리키는 건 그것뿐이었다.
빠드득!
박시원의 시체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묻고 빌어야 한다.
널 죽인 게 임동식이 맞는지, 맞다면 입증할 증거가 있는지.
박시원의 신체, 혹은 옷에 남아 있을 어떤 흔적.
죽기 싫어 반항했을 박시원의 간절함.
그것을 찾아야 했다.
“후우.”
취조실을 벗어나자마자 담배를 찾던 종혁이 혀를 찬다.
‘맞아, 아까 다 피웠지.’
“이놈의 담배도 줄여야 하는데…….”
회귀 전, 몸이 그렇게 망가졌음에도 결코 끊을 수 없었던 담배.
회귀 후에는 다신 손대지 말아야겠다며 생각했건만 결국 이놈의 사건들이, 세상이 자신의 금연을 돕질 않는다.
“쯧.”
그렇게 경찰서를 나서던 그때였다.
후다닥!
“아.”
경찰서 안으로 달려 들어오는 중년인 부부.
얼굴에 간절함이 가득한 부부의 모습에 종혁은 눈을 질끈 감았다.
“서, 서장님!”
“우, 우리 시원이! 시원이는 어떻게 됐나요!”
지금은 만나고 싶지 않았던 사람들.
박시원의 부모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