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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721화 (721/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721화>

    똑!

    “헉!”

    볼에 닿는 차가운 물기에 눈을 부릅뜬 카응안이 몸을 일으키려다 당황해 아래를 본다.

    ‘묶였어?!’

    마치 드라마 속 수술 방처럼 새하얀 페인트가 칠해진 커다랗고 밝은 방. 침대에 눕혀진 채로 팔다리뿐만 아니라 가슴까지 묶여 있다.

    그리고 역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피 냄새?’

    고향에서 돼지를 잡을 때 나던, 수시로 잡았지만 결코 익숙해지지 않았던 그 냄새다.

    본능적으로 지금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깨닫는다.

    심장과 숨통이 옥죄어진다.

    도망을 쳐야 한다.

    그렇게 몸을 뒤틀던 순간이었다.

    “……지안!”

    딸이다.

    딸이 옆의 침대에 묶여 잠들어 있다.

    “안 돼! 지안, 일어나! 지안-!”

    살려야 한다. 지안을 깨워야 한다.

    그녀는 사력을 다해 몸을 뒤틀었다.

    그런 그녀의 바람이 하늘에 닿은 걸까.

    팔목을 고정시킨 가죽벨트가 느슨해진다.

    눈을 부릅뜬 카응안은 더 힘차게 팔을 흔들기 시작했다.

    그 순간이었다.

    철컹!

    “어, 뭐야. 벌써 일어났네? 이 새끼들은 일을 어떻게 하는 거야?”

    “내버려 둬. 일개미들이 뭘 알겠냐. 수면제를 덜 먹였나 보지.”

    “네가 마취를 안 한 거겠죠.”

    “들켰어?”

    “아…… 아아…….”

    앞치마와 장갑을 낀 채 안으로 들어오는 베트남 남성 둘.

    카응안의 정신이 아득해진다.

    “안 돼!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그래서 언제까지 이렇게 한다는 거야? 중간 거름망이 없으니까 일감이 너무 몰려들잖아. 이러다 과로로 죽는 거 아니야?”

    “야. 하노이에 있을 땐 더 심했던 거 벌써 잊었어? 일주일 안에 하노이 학원 같은 곳을 만든다니까 그때까지만 고생하자.”

    “에휴. 저년 마취나 하세요.”

    “살려 주세요! 이렇게 빌게요! 제발 살려 주세요!”

    “에휴. 얼굴은 참 예쁜데…….”

    “함부로 건드리지 마라. 자궁도 상품이다.”

    “살려! 읍! 으으읍!”

    “아이, 시끄러워.”

    입이 천 뭉치 같은 것에 의해 틀어막힌 카응안은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자신의 오른쪽 팔뚝에 꽂힌 링거, 거기다 주사기를 꽂는 남성의 모습을.

    뜨겁고 날카로운 무언가가 혈관을 타고 들어오는 것을.

    공포에 질린 카응안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그런데 자궁 이식이 성공한 사례가 있어?”

    “내가 알아? 우린 그냥 떼어 내기만 하면 되는 거야.”

    “읍! 으으읍!”

    ‘지안아, 일어나! 지안아-!’

    안 된다. 이러면 안 된다.

    ‘제발! 제발-!’

    누가 좀 살려 주세요.

    제가 잘못했습니다. 정말 잘못했습니다.

    전 죽어도 좋으니 제발 제 딸 좀 살려 주세요.

    그녀는 빌고, 또 빌었다.

    까무룩 정신을 잃는 그 순간까지 빌었다.

    그 순간이었다.

    꽈아아앙!

    끊어지는 정신의 끄트머리. 귀를 때린 커다란 소리를 마지막으로 그녀는 정신을 잃었다.

    * * *

    ‘덮쳐? 말아?’

    광주광역시 외곽, 이진한 경위가 주택가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위치한 3층 건물을 보며 다리를 떤다.

    왜 이런 곳에 있는지 모를 담벼락이 쳐진 큰 건물.

    망해 버린 유치원인 것 같기도 하고, 옛날식 복도형 빌라 같기도 하다.

    저곳이다. 저곳에 놈들이 있고, 방금 전 놈들의 먹잇감이 될 피해자가 들어갔다.

    웬 여성과 여자아이가 저 건물에서 나온 베트남 남성들에 의해 안으로 옮겨지지 않았던가.

    저놈들이 무슨 짓을 할지 뻔히 알고 있지 않은가.

    물론 놈들이 장기를 매매한다는 증거는 없다.

    하지만 덮쳐야 한다.

    지금 구해야 한다고 형사의 직감이 외치고 있다.

    “혀, 형님. 어떡합니까.”

    동료들을 기다려야 한다.

    열화상 카메라로 확인했을 때 저 건물 안에 있는 인원은 무려 58명.

    물론 그중 놈들에 의해 감금된 피해자들도 있을 테니 그보단 숫자가 적겠지만, 그래 봤자 자신들 두 명보다는 놈들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을 것이다.

    지금 들어갔다가는 비명에 가는 거다.

    하지만…….

    “그 여자가 들어간 지 벌써 20분이나 지났다고요!”

    20분이면 벌써 배가 갈라지고도 남을 시간이다.

    그나마 아침 7시 30분, 사람이 활동하기에 이른 시간이기에 저놈들도 아직 꿈나라에 있을 거라고 애써 희망을 가질 뿐이다.

    그러나 더 이상은 견딜 수가 없다.

    1초가 1시간 같은 억겁의 기다림.

    뭐라도 하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씨발. 좆같네.”

    “형님? 형님!”

    골목에 숨겨진 차에서 내린 이진한은 트렁크를 열어 방탄복을 입고 옆구리에 끼워져 있는 총을 점검한다.

    “그래요, 씨발! 좆같은 경찰 생활! 한 번 죽지, 두 번 죽나?!”

    낯빛이 환해진 이진한의 파트너도 방탄복을 입고 권총을 점검한다. 그리고 손잡이에 붕대를 감은 쇠파이프 두 개를 꺼내 하나씩 나눠 갖는다.

    그러자 둘의 코끝에 진한 피 냄새가 스친다.

    언제나 살 떨리는 현장의 냄새.

    “흐. 지원이 오려면 빨라도 10분은 걸리겠죠?”

    “그래. 딱 10분만 시간 벌자.”

    그러면 특수팀 형사들, 약 20명이 지원을 온다.

    “형님이 뒤?”

    “좆까, 새꺄.”

    텅!

    트렁크를 닫은 이진한이 골목을 나서는 순간이었다.

    “어이!”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린 이진한이 눈을 부릅뜬다.

    텅 텅텅! 카르르르르!

    쇠파이프나 각목들로 땅바닥을 두드리거나 끌며 다가오는 험악한 인상의 사람들.

    둘의 눈이 부릅떠진다.

    “아따, 뭘 둘이 가시려고 한데. 왜요? 오늘 나란히 합동 장례 치르시게라?”

    최철규 팀장을 비롯한 신안경찰서 강력 2팀.

    “아, 아니 어떻게 벌써?”

    “어떻게긴. 뭐 빠지게 존나 밟았제.”

    솔직히 어떻게 이렇게 빨리 온 것인지 그들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다만 기억나는 건 본격적인 출근 시간 전이라서 그런지 도로에 차가 많이 없었다는 점이다.

    “……하!”

    최철규는 헛웃음을 터트리는 이진한을 향해 씩 웃어 주었다.

    “그래도 여덟이믄 퇴로는 막겄제라?”

    “큭큭. 그쪽도 만만치 않네요.”

    “맨정신으로는 형사 짓 못하제. 그럼 동의한 것 같응께 갑시…….”

    부아아아아앙!

    전의가 불타오르는 골목을 갑자기 깨우는 오토바이의 요란한 굉음.

    ‘이런 씨발!’

    소리가 점점 커지며 곧 오토바이 한 대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것도 모자라 그들을 향해 빠르게 다가온다.

    “어?”

    “얼레?”

    이진한과 최철규를 비롯한 형사들이 오토바이에 앉은 거구의 사내, 종혁을 발견하곤 눈을 부릅뜬다.

    하지만 종혁은 오토바이를 멈춰 세우지 않고 그들을 스쳐 지나간다. 그러며 그들을 향해 짓는 상쾌한 미소.

    “먼저 갑니다!”

    손을 흔든 종혁이 핸들 손잡이를 강하게 잡아당긴다.

    그와 동시에 들리는 앞바퀴.

    부아아앙!

    거세게 밀려드는 바람과 함께 창살로 된 반쯤 닫힌 대문이 코앞까지 다가온다.

    꽈아아앙!

    ‘어라?’

    느려진 시간 속.

    대문과 부딪치는 것과 동시에 오토바이의 균형이 흔들리자 종혁은 미련 없이 곧바로 몸을 날린다.

    “읏챠!”

    운전수가 떠나자마자 완전히 뒤집히며 한쪽 구석으로 날아가는 오토바이.

    “뭐, 뭐야!”

    우르르!

    종혁은 놀라 튀어나오는 베트남인들을 향해 미소를 지어 주었다.

    “안녕, 새끼들아?”

    쩌어어억!

    종혁이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한편 안으로 사라진 종혁을 멍하니 바라보던 형사들은 이를 악물며 몸을 날렸다.

    “뭐혀! 튀어가!”

    “우와아아아아!”

    * * *

    콰아아앙!

    귀를 찢는 굉음에 뒤로 눕혀진 의자에 누워 있던 쑤언박이 눈을 뜬다.

    벌컥!

    “보스!”

    그가 있는 사무실의 문이 열리며 응우옌이 들어온다.

    “무슨 일이야?”

    “아, 아무래도 한국 경찰 같습니다.”

    “경찰? 확실해?”

    모르겠다. 솔직히 긴가민가하다.

    쳐들어온 놈들 모두 험악하게 생기고 난입하자마자 각목이나 쇠파이프 따위를 휘두르고 있기 때문이다.

    “확실한 건 대피하셔야 한다는 겁니다.”

    “……몇 놈인데?”

    “아홉 놈입니다.”

    “쯧.”

    몸을 일으킨 쑤언박이 책상 옆의 금고에 손을 가져간다.

    한국 경찰인지 한국 깡패인지 모르겠지만, 이곳을 어떻게 찾았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이토록 엄청난 소란이 발생했다.

    경찰이 오기 전에 떠야 했다.

    철컹!

    “돕겠습니다.”

    “됐으니까 배편이나 알아봐.”

    그냥 도망이 아니라 한국을 떠야 한다. 지하에서 장기를 뽑아냈기 때문이다.

    “예!”

    응우옌은 얼른 핸드폰을 꺼냈고, 쑤언박은 금고에 보관된 현금과 마약을 쑤셔 넣기 시작했다.

    지난 2년 동안 벌어들인 것에 비하면 한없이 적은 액수.

    그럴 수밖에 없다.

    쿠탑과의 항쟁에 의해 옌 하오가 몰락했을 때 거의 맨몸으로 도망을 쳐야 했던 일을 교훈 삼아, 수익 대부분을 페이퍼컴퍼니에 미리 넣어 놨기 때문이다.

    그렇게 장부까지 모두 챙긴 쑤언박이 마지막으로 권총을 챙긴다.

    하노이에 있을 때도 눈에 불을 켜는 공안들 때문에 소지가 어려웠던 총. 총기 소지가 불법인 한국은 더 심했다.

    “가자.”

    쑤언박이 몸을 일으키자 통화를 마친 응우옌도 몸을 돌린다.

    “안내하겠습니다.”

    철컥!

    “우와아아아아아!”

    “죽여-!”

    계단을 통해 올라와 전 층을 쩌렁쩌렁 울리는 소음들.

    “다행히 아직 1층에 있나 봅니다.”

    고개를 끄덕인 쑤언박은 계단을 통해 내려가기 시작했고, 이내 난장판이 따로 없는 로비의 풍경이 그의 눈을 한가득 채운다.

    어떻게든 뚫으려는 한국인들과 어떻게든 막으려는 조직원들.

    칼이나 손도끼를 든 조직원들의 반항에 한국인들이 쉬이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

    쑤언박이 혀를 차며 몸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쑤언박!”

    움찔!

    소란을 꿰뚫고 귀에 틀어박히는 이름.

    고개를 돌린 쑤언박은 놀라 이쪽을 보는 덩치 큰 사내, 종혁과 눈을 마주쳤다.

    그것도 잠시다.

    “피유!”

    품에서 권총을 꺼낸 쑤언박은 쏘는 듯한 시늉을 하며 몸을 돌렸고, 종혁은 눈을 부릅뜨며 품 안으로 손을 가져가 손에 잡히는 걸 빼낸다.

    그리고 그대로 잡아당긴다.

    꽈아아앙!

    퍼억!

    ‘……어?’

    뭔가 거대한 것이 어깨를 꿰뚫듯 후려친다.

    그리고 한발 늦게 끔찍한 고통이 뇌를 후려친다.

    “끄아아아아악!”

    “보스!”

    꽈아앙!

    “……으아악!”

    마찬가지로 어깨를 붙잡고 무너지는 응우옌.

    굉음의 여파가 왕왕 복도를 울리며 침묵을 강요한다.

    종혁은 방금까지 죽일 듯 칼을 휘둘렀지만, 지금은 입을 다문 채 눈만 부릅뜬 베트남 놈들을 보며 피식 웃었다.

    “뭐해요. 저 새끼들 총 꺼냈잖아요. 우리 총은 뒀다가 국 끓여 먹을 겁니까?”

    “……에라이, 씨벌!”

    “책임지십쇼!”

    촤라라락!

    형사들의 품에서 빼지는 권총들. 그에 베트남 놈들이 다급히 양손을 든다.

    종혁은 그런 그들의 얼굴을 총 든 손으로 툭툭 치며 앞으로 나아가다 피식 웃었다.

    “어이구, 어디 가냐?”

    피가 철철 흐르는 어깨를 붙잡은 채 꽤 멀리 도망을 간 쑤언박과 응우옌.

    종혁의 총이 다시 불을 뿜는다.

    꽈앙! 꽈아앙!

    “야!”

    종혁은 폭발음에 놀라 멈춘 쑤언박과 응우옌을 향해 다가가며 이를 드러냈다.

    “다음은 대가리다. 그러니…… 대가리 박아.”

    종혁의 눈에서 감정이 사라졌고, 쑤언박과 응우옌은 머리를 향해 겨눠진 총구에 절망하고 말았다.

    “꼼짝 마! 너희들은…… 어?”

    쑤언박과 응우옌이 빠져나가려던 뒷문을 박차며 들어온 박은지와 신안경찰서 형사 2팀은 눈을 껌뻑이며 앞을 겨누었던 총들을 슬그머니 내렸다.

    * * *

    웅성웅성.

    빠아악!

    “얼른 손 내밀어. 새꺄! 핸드! 핸드!”

    형사들이 양팔을 든 놈들에게 수갑을 채우는 현장.

    권총을 갈무리한 종혁이 눈을 번뜩이며 옆으로 몸을 돌려 가까이 있는 방의 문을 열려는 순간이었다.

    “서장님-!”

    지하실에서 터져 나오는 다급한 외침.

    온몸을 엄습하는 불안감에 계단을 뛰어 내려간 종혁의 낯빛이 딱딱하게 굳는다.

    코에 박힌 화약 냄새를 지워 버리는 역한 피 냄새.

    현장의 냄새.

    그는 열려 있는 문 안으로 들어갔다가 재빨리 핸드폰을 든다.

    “119죠! 여기가……!”

    온몸이 결박된 채 죽은 듯 누워 있는 카응안과 그녀의 딸에게 재빨리 다가간 종혁이 그녀들의 코에 손을 가져갔다.

    햇빛이 쏟아지는 병실 안.

    “스읍! 후! 으으.”

    얼굴을 일그러트린 카응안이 얼굴에 씌워진 산소마스크를 손으로 잡아당기다 눈을 부릅뜬다.

    “흡?!”

    기겁하며 일어난 카응안이 다급히 옆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아…… 아아.”

    있다.

    자신의 보물이 숨을 쉬며 누워 있다.

    하얀 침대에 다소곳이 누워 무슨 꿈을 꾸는지 미소를 짓고 있다.

    꿈이 아니겠지. 꿈은 아니겠지.

    조심스럽게, 힘들게 손을 뻗어 딸을 만진 카응안의 눈에서 눈물을 쏟아진다.

    “아으. 으으으!”

    다행이다. 딸이, 자신의 보물이 살아 있어서 너무나 다행이다.

    드르륵! 탁!

    화들짝 놀란 카응안이 안으로 들어오는 종혁을 발견하곤 눈을 크게 뜬다.

    “일어났어요? 몸은 좀 어때요?”

    “……흐윽!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어이쿠.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무릎을 꿇는 그녀를 말린 종혁이 푸근히 웃는다.

    “많이 놀라셨죠? 여긴 병원이고, 놈들이 투여한 마취제는 중화시켰습니다. 따님분도요.”

    산소마스크를 씌워 놓은 건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서다.

    “그, 그럼 그…….”

    “예. 모두 검거됐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흑!”

    그녀의 눈에서 결국 안도의 눈물이 쏟아진다.

    입에서 설움과 공포의 통곡이 터져 나온다.

    종혁은 온몸으로 살았다고 외치는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속사정은 나중에 물어야겠네.’

    그녀가 납치되듯 그곳으로 가게 된 이유를.

    종혁은 그녀가 모든 걸 쏟아 낼 수 있도록 등을 두드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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