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713화>
종혁의 고개가 살짝 비틀리며 투이의 전신을, 그녀가 표정과 행동으로 내뱉는 모든 말을 살핀다.
“쯔엉 씨가 집을 나가신 걸 모르셨나 보군요. 마지막으로 연락을 하셨던 게 언제입니까?”
투이는 핸드폰을 열어 확인했고, 그날은 쯔엉이 집을 나가기 3일 전이었다.
“그때도 별말은 없었어요. 솔직히 믿기지 않아요. 걔가 왜…….”
자신이 한국에 온 이후 만날 때마다 항상 남편 자랑을 늘어놨던 쯔엉이다.
그건 마지막으로 연락을 했던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제가 모르고 있다면 다른 누구한테 물어봐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종혁은 너무 단언하는 투이의 모습에 의아해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저와 쯔엉이 마음을 터놓는 사람은 서로밖에 없었거든요.”
베트남 고향에서부터 오랜 세월을 알고 지낸 두 사람.
그 관계는 낯선 타국에서 지낸다는 공통점이 생기며 더욱 각별해졌다.
만날 때마다 시시콜콜한 것까지 서로에게 다 이야기했고, 다른 사람에게 말했을 정도라면 자신에게도 분명 말했을 것이라는 게 투이의 생각이었다.
그 말에 종혁의 미간이 좁혀진다.
“음. 혹시 목포에 있는 문화센터 모임에 대해 아십니까?”
“당연히 알죠. 쯔엉이랑 같이 가기도 했으니까요.”
목포로 시집을 온 베트남 여성들이 향수병이나 우울증에 걸리지 말라고 나라에서 만들어 준 모임. 소액이지만 운영 예산도 나오는 걸로 알고 있다.
“그런데 몇 번 가고 나서는 다신 나가지 않았어요.”
몇몇 유별난 이들 때문이다.
“왜 그렇게 바보같이 지내냐, 이 정도는 요구해야 한다 등 지나치게 바람을 넣는 사람들이 있었거든요.”
남편이 남편으로서 해야 할 의무를 다하지 않은 채 불합리한 대우라도 하고 있는 것이라면 이는 현명한 조언일 것이다.
문제는 서로가 서로에게 책임을 다하며 순탄한 가정을 이루고 있는 이들에게도 다소 지나친 방향으로 바람을 넣으며 남편과의 불화를 조장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남편과의 사이가 틀어지면…….”
불륜을 제안한다.
자신들이 해 봤더니 걸리지 않는다고, 이 먼 나라까지 고생만 하지 말고 즐기라면서.
“물론 정말 나쁜 한국 남자들도 있지만, 다 그런 건 아니잖아요!”
나이가 어리다고, 가난하게 살았다고 해서 무시하는 남편.
며느리가 아닌 가정부처럼 생각하는 시부모.
결혼이란 위아래가 나뉘지 않는 평등한 관계로 성립되어야만 하거늘, 그 당연한 걸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 인간들도 분명 있다.
하지만 결코 모든 이들이 그런 것은 아니다.
많은 것을 포기하고 먼 나라에 시집을 와 준 것에 감격하는 남편.
나이 많은 아들과 결혼해 주어서 고맙다고 하는 시부모.
착한 사람들도 얼마든지 많다.
하지만 몇몇 베트남 여성들은 자신이 겪은 불행이 모두의 불행이라 여기고, 불행하지 않은 이들은 자신처럼 불행해지길 원하기도 했다.
그런 이들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없던 부정적인 생각마저 들 때가 있었다.
“그래서 가지 않는다는 거군요.”
“가 봤자 눈과 귀만 썩을 테니까요.”
쯔엉도 한두 번 모임에 참여했다가 진저리를 치며 더 이상 나가지 않았다.
“흐음.”
투이와 이대종의 증언이 서로 엇갈린다.
‘거짓말을 했다라……. 왜?’
일단은 좀 더 대화를 들어봐야 할 것 같다.
“아, 대신 아르바이트 때문에 연락하는 사람은 몇 명 있는 것 같았어요.”
종혁의 눈이 빛난다.
“아르바이트요?”
처음 듣는 말이다.
“한국에 시집을 왔거나 일을 하러 온 사람들 중 아직 한국말을 잘 못하는 사람들이 도움이 필요할 때 도와주는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일종의 통역 아르바이트를 하신 거군요.”
“네, 그거요!”
생각보다 도움을 바라는 사람이 많아서 꽤 돈이 된다고 했기에 투이 그녀도 열심히 공부를 하는 중이었다. 남편이 돈을 가지고 생색을 내는 게 점점 지쳐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통화 내역에 있는 베트남인들의 연락처가…….’
아무래도 이 아르바이트와 관련된 것 같다.
“혹시 쯔엉 씨가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이유에 대해 아시는 것이 있습니까? 남편분께서도 아르바이트에 대해선 모르고 계신 것 같거든요.”
“당연하죠. 남편에게 배를 사 준다고 시작한 거거든요. 남편이 타고 다니는 배가 많이 낡았다고, 깜짝 선물을 하고 싶다고. 음. 그런데…….”
투이가 미간을 좁힌다.
“씀씀이가 좀 헤퍼진 것 같긴 했어요.”
“명품을 많이 사셨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네. 어느 순간부터 하이패션 브랜드를 입고 다니더라고요.”
자신이 산 게 아니라, 남편이 다 사 줬다는 이야기로 이어졌던 쯔엉의 자랑.
그 모습이 참 부러웠었다. 단순히 비싼 명품을 사 줘서가 아니라, 쯔엉을 아끼는 남편의 마음이 느껴져서.
자신의 처지와 너무 비교가 되어 더욱 그랬었다.
“그런데 갑자기 집을 나갔다니…….”
‘뭔가 앞뒤가 안 맞는군.’
종혁의 미간도 좁혀진다.
아무리 생각해도 쯔엉이 갑자기 사라진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투이의 말에 따르면 남편에게 진심이었던 쯔엉과 그런 쯔엉을 진심으로 사랑한 이대종.
분명 아직 드러나지 않은 무언가가 있는 것이다.
그 무언가에 앞뒤가 맞지 않는 그녀의 행동에 대한 답이 있을 터였다.
생각을 정리한 종혁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혹시 쯔엉 씨가 갈 만한 곳에 대해 짐작 가는 장소가 있으십니까?”
“……아니요. 죄송해요.”
“아닙니다.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덕분에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이 정도면 들어야 할 이야기는 다 들은 것 같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여쭙겠습니다.”
종혁은 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어 내밀었다.
“혹시 이 차량에 대해 아시는 게 있으십니까?”
목포에 사는 한국인 명의로 된 차량.
투이와 만난 이후 만나려 한 사람이다.
“어?”
심상치 않은 반응.
혹시나 해서 물어봤던 종혁의 몸이 흔들리고, 번호판을 보는 투이의 눈이 가늘게 떠진다.
“이 차는 그 여자의 남자친구 차인데?”
“어떤 여자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제가 방금 전에 말한 그 나쁜 사람들이요. 그중 한 명의 남자친구가 이 차를 타고 다녔어요.”
“혹시 베트남 사람입니까?”
“아뇨, 아뇨. 한국 남자였어요. 분명 무슨 일을 한다는 걸 들은 적이 있었는데…… 아, 맞아!”
이어진 투이의 설명을 듣은 종혁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많은 정보를 알 수 있었습니다.”
“제 이야기가 도움이 됐다니 다행이네요.”
종혁이 수첩을 정리하자 투이도 배웅할 준비를 한다.
하지만 종혁은 다른 수첩을 꺼내 들었고, 투이는 의아해했다.
종혁은 그런 그녀를 향해 푸근히 웃어 주었다.
“그러면 이제 투이 씨 이야기를 들어 볼 수 있을까요?”
“네?”
“혹시 남편분께서 폭력을 휘두르거나 협박을 하는 겁니까?”
“……?!”
투이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 * *
“제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다면 언제든 이 번호로 연락 주십시오.”
투이가 입술을 오물거리며 눈시울을 붉힌다.
“안녕히…… 가세요. 그리고 쯔엉을 찾으면…….”
“예. 꼭 연락드리겠습니다.”
고개를 숙이며 돌아선 종혁이 한숨을 내쉰다.
몇 번이나 거듭 물어봤지만, 부부 사이에 문제가 없다고 말한 그녀.
하지만 누가 믿겠는가.
금방이라도 울 듯한 얼굴을 하고 있는데 말이다.
‘아마도…… 폭언이겠지.’
반팔과 반바지를 입고 있던 그녀.
다행히 드러난 팔과 다리는 물론이고, 얼굴이나 목에서도 폭행의 흔적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폭언도 폭행만큼이나 심각한 문제다.
누군가에게는 육체적인 고통보다 정신적인 고통이 더 끔찍하게 다가오기도 했다.
‘남편이 그런 쪽의 개새끼인가 보네.’
아내를 남은 평생을 함께할 동반자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아래로 생각하는 그런 부류.
자신이 돈을 벌어 오니까 이래도 된다고 착각하는 그런 부류.
아무래도 투이가 고약한 남편을 고른 것 같다.
하지만 아쉽게도 경찰로서 해 줄 수 있는 일이 없다.
‘그래. 경찰로서는 해 줄 수 있는 일이 없지.’
“응? 왜요?”
“아, 아닙니다! 저, 저는 차를 가져오겠습니다!”
종혁은 후다닥 달려가는 여형사를 보며 피식 웃었다.
그녀의 얼굴에 서려 있던 존경심.
“고작 베트남어 조금 했을 뿐인데…….”
‘순경 출신이라고 했던가?’
현재 계급은 경장. 경찰이 된 지 약 5년 정도 됐지만, 과잉 진압 때문에 벌써 10차례나 징계를 받은 인물이다.
과잉 진압한 대상자는 모두 누가 봐도 개새끼라 할 수 있는 범인들.
종혁의 입장으로선 충분히 사명감 넘치는 인재였다.
“여러 팁들을 알려 줘야겠네.”
회귀 전 순경 출신으로 경정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노하우들을.
고개를 끄덕인 종혁은 핸드폰을 들었다.
“예, 권 이사. 납니다. 목포에 신우테크라는 곳이 있을 겁니다.”
투이의 남편이 부장으로서 일하는 신우테크.
뭘 판매하는 곳인지는 관심 없다. 그저 투이가 행복해졌으면 할 뿐이다.
‘더 이상 마음의 상처를 입지 않았으면…….’
종혁은 그녀가 앞으로 웃을 수 있기를 조심스레 바랐다.
“그나저나…….”
행동과 말이 앞뒤가 맞지 않는 쯔엉.
……그리고 그녀를 태우고 떠난 남성의 직업.
“대체 무슨 일이 있는 겁니까.”
종혁의 얼굴에 걱정이 서리기 시작했다.
* * *
오후의 저물어 가는 햇빛이 내리쬐는 원룸.
“으으. 무울…….”
눈을 뜬 삼십대 초반의 남성이 기다시피 냉장고로 걸어가 물을 들이켠다.
“어후우. 이제 좀 살겠네.”
4차까지 달렸던 어제의 술자리.
“용케도 집에 들어왔네.”
자신의 귀소 본능을 칭찬한 그는 핸드폰을 확인하곤 혀를 찼다.
부재중 전화만 무려 80통.
가끔 대화가 안 통할 때도 많지만, 외모가 꽤나 이뻐서 마음에 들었던 지금의 여자친구.
그런데 이놈의 집착이 문제였다.
어차피 오래 관계를 이어 갈 생각은 없었기에 이제 슬슬 정리할 때인 것 같았다.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숨을 내쉬던 그때였다.
“응?”
갑자기 깜빡이기 시작한 핸드폰 불빛.
등록되지 않은 발신자 번호가 뜨자 그는 황급히 전화를 받았다.
“예, 콜입니다. 장거리요? 당연히 뛰죠! 예, 예! 30분 뒤에! 예, 알겠습니다!”
통화를 종료한 그의 입가에 함지박만 한 미소가 걸렸다.
광주로 가는 장거리 운행.
무려 20만 원짜리다.
그는 핸드폰을 집어 던지곤 화장실로 달려갔다.
부우웅!
“호구를 잡으러 바다로 갈까요. 호구를 잡으러 강으로 갈까요.”
목포의 도심을 빠르게 가로지르는 한 대의 고급 외제차.
운전을 하는 남성의 얼굴에 미소가 한가득이다.
“그래. 이런 가외 소득도 있어야지. 만약 돌아올 때도 그 손님을 받는다면…….”
무려 40만 원. 주말 내내 열심히 뛰어야 벌 수 있는 돈이다.
신호 대기를 받은 그가 뒤를 돌아본다.
“사탕, 오케이. 음료수, 오케이.”
호구 손님을 접대할 준비, 아니 손님을 편안하게 모실 준비가 모두 오케이다.
“아, 저 사람인가?”
도로가에 서 있는 덩치 큰 사내.
“아따, 목포에도 저런 양반이 있었나 보네.”
온몸을 치장한 명품들.
혀를 내두른 남성은 얼른 사내 앞에 차를 멈춰 세우곤 다급히 운전석에서 뛰어내린다.
“콜 부르셨죠?!”
“야. 너 부르기 참 힘들다?”
“예?”
덩치 큰 사내, 종혁은 경찰공무원증을 보여 주었고 남성은 얼굴을 와락 구겼다.
“……씨벌.”
손 뻗으면 닿을 거리.
남성은 반항할 생각을 관뒀고, 종혁은 씩 웃었다.
“그래. 신사적으로 하니까 얼마나 좋아.”
“뭐든 물어만 보십시오, 형님!”
종혁은 허리를 꾸벅 숙이는 그를 향해 쯔엉의 사진을 보여 주었다.
문화센터 모임의 사람들을 만나 확인해 본 결과, 투이의 말이 맞았다.
쯔엉은 투이의 말처럼 한두 번 모임에 참여하더니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들르지 않았고, 통역 아르바이트를 해 준 베트남인들 역시 쯔엉의 행방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
이제 남은 희망은 바로 눈앞의 사내뿐.
종혁의 낯빛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 사람 알지?”
“어?”
“이 사람, 어디에 내려 줬냐?”
자격증이 없는 이가 허가를 받지 않고 운행하는 불법 택시, 나라시.
주로 도우미, 혹은 아가씨라 불리는 유흥업소 종사자들과 출장 마사지사들을 업소나 고객이 있는 곳까지 태워 주는 불법 택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