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711화>
“아이고, 이 화상아. 길바닥에서 자믄 얼어 뒤져야!”
“놓으랑께요! 콱 뒤져 블라니까!”
“죽으려면 다른 데 가서 뒤져! 내 식당한티 폐 끼치지 말고!”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는 식당 앞.
식당 안에 있던 사람들도, 또 주변 상가에 있던 사람들도 무슨 일인가 얼굴을 내밀다 이내 소란을 벌이는 사람이 누군지 확인하곤 고개를 저으며 안으로 들어간다.
그에 중년인의 설움이 더 폭발한다.
“이러기요! 누님도 그렇게 말하는 거 아녀!”
“그럼! 거시기 아니고 뭔디!”
“진짜 나 돌아 버리는 꼴 보고 싶소! 확!”
“아나, 쳐라! 쳐! 동네 사람들! 이 오살할 놈이 사람 치네요!”
“이이익!”
손을 든 채 몸을 부들부들 떠는 중년인.
종혁이 그 손을 잡아 힘을 준다.
“아악!”
“무슨 일입니까.”
“오메, 서장님!”
“악! 손목, 손목!”
마치 물 밖으로 나온 물고기처럼 파닥거리는 중년인.
식당 주인이 다급히 말린다.
“괜찮여라, 괜찮여! 지는 괜찮응께 그 손 좀 놔줘요! 그러다 애 팔 부러지겄소!”
종혁은 진심으로 중년인을, 아까 낮에 술을 마셨던 중년인을 걱정하는 식당 주인의 모습에 혀를 차며 손을 놓았고, 다급히 손목을 잡고 물러선 중년인이 공포 서린 눈으로 종혁을 경계한다.
그에 식당 주인이 쌍심지를 켜더니 중년인의 등짝을 후려친다.
“에라이. 화상아! 누구한티 도끼눈을 뜨는 겨! 얼른 서장님께 사과 안 혀?!”
“서, 서장님이요?”
“그려! 저그 신안경찰서 서장님!”
“힉! 지, 지송합니다. 지가 속이 상해 술을 마시는 바람에…….”
설마 경찰서에 가야 하는 건가 더 겁을 먹는 중년인의 모습에 종혁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덜 드셨죠?”
“예?”
종혁은 따라 들어오라는 손짓을 하며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탁! 탁!
종혁과 중년인의 앞에 놓이는 두 개의 술잔.
종혁이 어깨를 움츠리는 중년인의 잔에 술을 채운다.
그에 황급히 종혁의 잔에 술을 채운 중년인은 고개를 푹 숙였고, 종혁은 방금 전 바락바락 화내는 모습은 어디로 가 버린 중년인의 모습에 다시 한숨을 내쉰다.
방금 전과 다른 이중적인 모습 때문이 아니다.
잠깐 살펴본 것이지만, 이 중년인의 성격은 원래 이런 것 같았다.
소심하고, 숫기 없고, 술의 힘을 빌어서야 겨우 입이 열리는 그런 타입의 사람.
그런 타입의 사람이 그렇게 폭발했다는 건 가슴에 쌓이고 쌓인 게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경찰에 신고는 하셨습니까?”
사기일까, 아니면 누군가 모함을 할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도둑을 맞은 걸까.
종혁의 눈에 걱정이 서린다.
하지만…….
“…….”
“어이구, 저 염병.”
혀를 찬 식당 주인이 중년인의 옆자리에 앉는다.
“이 멍청한 놈 이야기 들을라믄 한참 백날이 걸릴 텐께 그냥 내가 말해 드릴게라.”
“누, 누님!”
“그래서? 니 입으로 말할 수는 있간디?”
“…….”
“쯧쯧쯧.”
고개를 저은 식당 주인이 종혁을 본다.
“서장님.”
“예, 이모님.”
“사람 하나 찾는디, 아니 지 새끼 놔두고 도망간 베트남 년 찾는디 얼마나 걸릴까라?”
“……예?”
종혁은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숨기는 중년인의 모습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 * *
그녀는 꽃처럼 아름다웠다.
“자자, 절 따라오시면 돼요!”
여름의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베트남 북부의 타이응우옌.
버스에서 내린 수더분한 남성들이 여성 가이드의 뒤를 따른다.
어디서 산 것인지 하나같이 올드하기 짝이 없는 정장을 입은 35세 이상의 남성들.
도심에서도 이제는 노총각이라 불리지만, 결혼을 비교적 일찍 하는 시골에서는 특히 더 시선이 좋지 못한 노총각들이었다.
그중에서도 90년대를 연상케 하는 올백 머리에, 품이 넓은 정장을 입은 39세의 이대종은 이제 마흔을 눈앞에 두고 있어 더 마음이 급한 노총각이었다.
“전 잠시 안에 들어가서 예비 신부님들께서 다 오셨는지 확인하고 올 테니까 여기에 잠시만 계세요.”
“예!”
예비 신부라는 말에 다시 크게 뛰는 심장.
중년인들은 얼른 담배를 문다.
“오메, 오메. 이게 누구여. 니 정말 상철이 맞어?”
“흐흐. 형님도 어디 좋은 곳에서 맞췄는갑소.”
“이거? 야, 이게 얼마짜린 줄 아냐? 이게 말이여, 광주서 유명한 정장집에서 30만 원이나 주고 맞춘 겨.”
“히익! 30만 원이나?”
“아따, 기죽네. 내 건 18만 원인디.”
“형님도 비싸게 주고 샀구만!”
‘흥!’
이대종이 30만 원입네, 18만 원입네 하는 중년인들을 보며 남몰래 코웃음을 친다.
‘그딴 싸구려 입어서 뭐한데. 이게 얼마짜린 줄 알어? 40만 원짜리여.’
그것도 어머니가 하나뿐인 아들 장가보내겠다고, 먼 서울까지 가서 직접 사 오신 거다.
그것도 그 유명한 동대문 시장, 아니 동대문 패션타운에서 산 정장이다.
기껏해야 목포시, 더 나갔다 해도 광주광역시인 저들의 정장과는 출생지부터 달랐다.
슬그머니 어깨를 추켜세우던 이대종은 식당을 나오는 가이드, 아니 결혼정보회사 직원의 미소에 주먹을 쥐었다.
‘다 왔구나!’
“다행히 예비 신부님들께서 모두 도착하셨네요!”
“오오!”
“자, 들어가기 전에 주의사항 하나 말씀드릴게요. 안에 계신 분들은 어디까지나 회원님들과 맞선을 보기 위해 나오신 분들이세요.”
편의상 예비 신부라 칭했지만, 아직은 맞선 상대일 뿐 아무런 관계도 아니었다.
“그러니까 비하하는 발언을 하셔도 안 되고, 함부로 몸을 만지셔도 안 돼요. 물론 신사이신 회원님들께서 그럴 일은 없으시겠지만, 간혹 그런 행동을 저지르는 분들도 계시거든요.”
“아따, 그런 육시랄 것들이 있나 보네잉.”
“그랑께 말이여. 지금이 쌍팔년도여, 뭐여?”
“여기 있는 회원님들 모두 성혼을 올리실 때까지 저희 결정사가 몇 십 번이고 노력을 할 테니, 너무 성급하지 마시고 오늘은 서로 알아 가는 시간만 갖도록 할게요. 상대가 마음에 안 드신다고 해도 그 자리에선 티를 내지 마시고, 자리가 끝난 후 저희에게 따로 말씀해 주세요. 그러실 수 있죠?”
“예-!”
“당연하지라!”
“네. 그럼 들어가실게요.”
술렁.
드디어 만나는 거다.
혹시나 미래의 신부가 될지도 모르는 여성과.
벌써부터 신혼의 단꿈에 빠진 사람들은 흥분감에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채 직원의 뒤를 따랐고, 그건 이대종도 마찬가지였다.
‘얼마나 이쁘게 생겼을까.’
아니, 예쁜 건 그리 중요하지가 않다.
그저 노모와 사이좋게 잘 지내 줄 수 있으면 족했다.
올해 81세이신 노모.
마흔이 되도록 자신을 낳지 못해 평생토록 할아버지, 할머니께 구박을 받으시다 43세 늦은 나이에 노산으로 힘겹게 자신을 낳으신 어머니.
늦둥이라고 애지중지하며 키워 주신 어머니께 제대로 된 효도 한번 하지 못했다.
자신에겐 못해도 노모와 잘 지내 주면 그걸로 만족할 수 있었다.
그런데…….
쿵!
긴 생머리에 큰 눈, 오뚝한 콧날, 앵두처럼 붉은 입술을 모두 담은 조막만 한 얼굴.
청초하면서도 화사한 튤립이 이럴까.
“헤, 헬로……? 마, 마이 네임 대종. 와, 왓츠 유어 네임……?”
“헬로. 마이 네임 쯔엉.”
배시시 웃는 미소가 심장을 헤집었다.
* * *
“흐에에에엥!”
“남표니!”
“가, 갈게!”
한눈에 반한 이대종은 6개월간 베트남과 한국을 오가며 그녀에게 구애를 했고, 결국 21살 꽃다운 여대생이었던 그녀는 그를 믿고 한국행을 택했다.
나중에 물어보니 사실 그녀도 처음부터 이대종이 마음에 들었다고, 수줍은 모습으로 조심스럽게 이름을 물어 오는 게 귀여웠다고 했다.
그렇게 이대종은 베트남에서 한 번, 한국에서 한 번 결혼식을 올리며 본가 바로 옆에 신혼집을 차렸다.
이 나이에 너희들 알콩달콩한 모습을 보면 부러워서 못 산다고 그의 어머니가 내쫓은 것이다.
다행히 꽃같이 예쁜 외모처럼 성격도 꽃 같은 쯔엉은 이대종의 어머니를 알뜰살뜰 잘 모셨고, 그런 그녀의 정성이 하늘에 닿은 건지 떡두꺼비 같은 아들도 낳게 됐다.
그리고…….
“남표니, 또 엄마 생각해?”
걱정스레 눈가를 어루만지는 쯔엉의 손길에 정신을 차린 이대종이 고개를 젓는다.
손자를 두 눈으로 보시자마자 다음 날 이제 미련은 없다는 듯 하늘로 가 버리신 어머니.
그때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아마 쯔엉이 곁에 없었다면 버티지 못했을지도 몰랐다.
“아니여, 그런 거. 이리 주랑께.”
아직 젖먹이인 아들을 낚아챈 이대종은 등을 토닥였고, 효자 아들은 금세 진정하며 얕게 칭얼거리다 까무룩 잠에 들었다.
하지만 방심할 수 없다.
지금 내려놓았다가는 다시 울음을 터트릴 확률이 100퍼센트이기 때문이다.
이대종은 아들을 어화둥둥 하며 쯔엉을 봤다.
“여보, 어머님과 아버님 보고 싶지 않아?”
“왜? 나 베트남 가?”
“아니…… 한국에 산 지도 벌써 3년이잖아.”
그동안 단 한 번도 베트남에 가지 못한 그녀.
떠나기 전 쯔엉을 끌어안고 울음을 터트리던 장모님과 장인어른의 모습이 눈앞을 아른거린다.
“안 돼. 가도 내년에.”
젖을 떼고, 예방 주사를 다 맞힌 후에야 안심하고 가야 한다.
그래야 엄마라고 할 수 있었다.
“알았어. 네 마음이 그렇다면 그렇게 해. 어머님, 아버님께 보내 드리는 용돈은 부족하지 않고?”
“충분해. 벳남 돈 마니 필요 없어. 100만 원 이렇게 많아.”
월 최저 임금이 한화로 몇 만 원에 불과한 베트남.
4년제 대학을 졸업했거나 외국계 기업에 취업한 이들은 그 몇 배를 벌기도 했으나, 그래 봤자 한국의 임금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액수다.
매달 보내 드리는 100만 원이면 베트남에선 상당히 큰돈이었다.
“그래도…….”
“쉿. 남표니, 잘했어. 고마워. 사랑해. 오늘 술 마셔?”
고혹적인 눈빛을 짓는 아내의 모습에 이대종이 헛웃음을 터트린다.
“허어. 그러다 혼나려고잉.”
“우리 아들 자?”
“지금쯤이면 완전히 잠들었을겨.”
그렇게 보내지 말아야 했다.
* * *
“그렇게…… 작년 초에 베트남에 보냈지라.”
본인의 일이기에 결국 식당 주인을 말린 이대종이 사연을 털어놓기 시작한다.
비행기도 편도로 끊어 줬다. 그것도 비즈니스로.
주위에서 얼마나 말렸는지 모른다.
그러다 도망친다. 베트남 가서 안 온다. 베트남 애들이 얼마나 문란한지 아냐.
마치 동화처럼 아이 셋 낳기 전에는 절대 보내지 말라고 주위 노총각들이나 외국인과 결혼한 유부남들이 참 많이 말렸었다.
“나도 귀가 있는디 왜 그런 것을 모른대요.”
“각오를 하신 거군요.”
“예.”
자신이야 이제 이대로 늙을 일만 남은 42세 아저씨지만, 아내는 이제 고작 24살의 아가씨다.
한창 놀고 싶고, 하고 싶은 일도 많을 나이.
그런 그녀를 자신의 욕심 때문에 붙잡아도 되는 것인지 한참을 고민하다, 그는 결국 결론을 내렸다.
“더 구속할 수 없지라. 그것은 내 욕심잉께.”
“오메. 니가 호구냐!”
종혁은 화를 내려는 식당 주인을 말리며 이대종의 잔에 술을 따라 주었다.
“크으. 그란디 한 일주일쯤 됐을까라?”
친한 동생 부부에게 아들을 맡긴 후 바닷일을 하고 돌아왔는데, 집에서 된장찌개의 냄새가 나는 것이다.
깜짝 놀라 부엌으로 가니 쯔엉이 저녁을 차리고 있었다.
“놀라 물어보니 불편해서 그냥 와 버렸다고 했지라.”
화장실도 좌변기가 아니라 재래식이고, 뭐라도 하나 사러 나가라면 30분이나 걸어 나가야 하는 깡시골.
똑같이 시골이라지만, 압해도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열악하고 불편하다고 했다.
그때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처음으로 대성통곡하게 됐다.
고마워서, 미안해서, 앞으로 더 잘해 줄 거라며 울고 또 울었다.
“그렇게 한 10일쯤 지났을까요. 갑자기 베트남 여자들과 어울릴 수 있는 문화센터에 나가고 싶다고 했지라. 고향에서 친하게 지내던 언니가 목포에 시집을 왔다고 가고 싶다고 했지라.”
이미 쯔엉을 철석같이 믿은 이대종은 별다른 걱정 없이 그러라고 했다.
“그러지 말아야 했지라…….”
“그때부터 외출을 많이 하셨나 보군요.”
“예.”
처음 한두 달은 괜찮았다. 그런데 그게 세 달이 되고, 네 달이 되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욕심이나 짜증도 날이 갈수록 늘어 갔다.
오토바이 하나에 세상 보물을 다 가진 것처럼 기뻐하던 예쁜 아가씨는 어느새 명품백이나 비싼 화장품을 원하기 시작했다.
사소한 일에도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걱정이 돼서 물어보니께 원래 여자는 같은 여자를 만날 때 겉에 걸치는 걸 잘 걸쳐야 한다고 했지라.”
또 목포로 시집온 친한 언니의 남편이 어느 중소 기업의 부장이라며 더 파이팅 있게 꾸며야 한다고 했다.
병신처럼 그 말을 믿어 버렸다.
“사준 백이나 구두가 하나둘씩 사라졌는디도 믿어 버렸응께요. 그러다 열흘 전에…….”
“자취를 감추신 거군요.”
이대종은 고개를 끄덕였고, 식당 주인은 어이구 이 병신아 하며 그의 등을 두드렸다.
“신고는 하지 않으신 겁니까?”
“……나 하나 때문에 이역만리 먼 나라까지 와 준 아가씨를 데려다 이만큼 고생시켰으믄 놓아줘야제라.”
“정말요?”
움찔!
“……아뇨.”
그 말을 내뱉는 순간 애써 잡고 있던 이대종의 이성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나도 남잔디 어찌 그럴 수 있다요! 아무리 밉상 짓을 했어도 내 마누라인디!”
첫사랑이자 부인이다.
“다 내가 못난 탓이지라! 내가! 흐어어어엉!”
종혁은 울음을 터트리는 그의 등을 토닥이며 위로했다.
“제발 꼭 찾아 주셔요!”
그리도 데려오지 않아도 이 말 하나만 전해 줬으면 싶다.
자신은 언제까지고 여기 있겠노라고.
노는 게 질리면 그때 천천히 돌아와도 된다고.
“아이고, 이 화상아! 그게 뭔 말이여! 머리채를 잡아서 끌고 와야제!”
“내가 애기 엄마한티 어찌 그런다요! 진짜 누님도 그런 말 하는 거 아니랑께라! 흐어어엉!”
“……알겠습니다. 지금부터 찾아볼 테니, 내일 술 깨시면 경찰서로 오셔서 실종 신고부터 해 주세요.”
“꼭 부탁드릴게라. 정말 부탁드린당께요.”
종혁은 힘내라고 등을 두드린 후 몸을 일으켰다.
딸랑!
“후우.”
골치 아프다면 골치 아픈 사건.
노총각의 지극정성이 배신을 받은 사건.
종혁은 한숨을 내쉬며 걸음을 옮겼다.
어디선가 불어온 서늘한 바람이 가을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