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707화 (707/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707화>

띵동댕동!

종소리가 울리는 암좌고등학교.

“선생님! 지는 더 클 수 있지라? 그런 거지라?! 왜, 남자는 22살까지 큰다고 안 합니까!”

“크흠. 이 검진으로는 그런 걸 알 수 없고요.”

“의사 선생님, 제 가슴은 언제까지 자랄까요?”

“선생님, 요새 생리를 잘 안 해요.”

“아싸! 3센티 컸다!”

“악! 다시 재요! 제가 그렇게 쪘을 리 없어요!”

이번 생은 포기를 해야 할 듯한 학생들과 잘생긴 레지던트 선생님들을 놀리는 일부 여학생들.

건강검진이 처음인지 시끌벅적한 체육관의 풍경을 훑어보던 종혁이 몸을 돌려 안좌고등학교의 2층으로 향한다.

1학년에서 3학년까지 학생의 수가 고작 162명에 불과한 안좌고둥학교.

건강검진을 마친 학생들이 교실 문 앞에 줄을 서 있다.

종혁은 1:1 심리테스트를 하는 학생들을 보며 눈빛을 가라앉혔다.

‘작년에 실종이 된 4인방을 제외하고는 다 나왔다라…….’

“최 박사.”

“아, 교수님.”

종혁은 다가온 노인을 향해 활짝 웃어 줬다.

몇몇 심리학 포럼에서 안면을 익힌 국내 심리학계의 권위자. 이 사람이 삼전 장학생이었다는 걸 알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박사 학위도 없는 사람에게 무슨 박사입니까. 다른 교수님들이 욕합니다.”

“학위만 안 땄을 뿐이잖아.”

이미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범죄심리학과 행동심리학의 권위자인 종혁.

마음만 먹으면 박사 학위도 무난히 따낼 그였기에 학위가 없다고 해서 그를 무시할 사람은 없었다.

“우리 대학원에 등록만 하라니까.”

수업을 듣거나 출석을 하지 않아도 된다. 명부에 이름만 올려놓아도 전 세계 유명 심리학 권위자들이 자신의 대학을 찾아올 거다.

“아하하.”

교수는 머쓱해하는 종혁을 보며 눈을 빛냈다.

“김 회장님께서 자네를 사위로 점찍었나 보구만. 직계는 아닌 것 같고, 방계인가?”

흠칫!

교수의 얼굴을 본 종혁은 한숨을 내쉬었고, 교수는 껄껄 웃었다.

“모인 사람들 죄다 삼전 장학생들인데 모를 거라고 생각했나?”

“회장님이 빚 좀 갚게 해 달라고 사정을 하시는 바람에…….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됐네. 이렇게라도 선대의 은혜를 갚을 수 있다면 된 거지.”

은혜는 산처럼 입혀 놓고도 도통 바라는 것이 없었던 선대 회장과 김희건 회장.

비록 새 발의 피일 뿐이지만, 선대 삼전그룹 회장에게 진 빚을 일부라도 갚을 수 있었기에 교수는 기분이 좋았다. 솔직히 갚지도 못하고 죽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오늘 모인 사람들 모두 같은 생각일세.”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그래도 대가는 치를 생각이다.

“대가라…… 공무원이?”

“저 돈 많습니다. 기대하셔도 좋을 겁니다.”

“됐네, 됐어. 차라리 벼룩의 간을 빼먹지. 나중에 강의나 한번 해 줘. 그보다…….”

교수는 종혁을 보며 말을 툭 던졌다.

“혹시 사건 때문에 우리를 모은 건가?”

현재 종혁이 관심을 기울이는 어떤 사건의 용의자가 학생이냐는 물음.

“……자리를 옮기죠.”

심상치 않은 종혁의 모습에 교수는 낯빛을 굳혔고, 둘은 옥상으로 올라갔다.

찰칵! 치이익!

“후우. 역시 교수님을 속일 순 없나 보네요. 일단 그런 의심은 하고 있습니다.”

물론 피해자, 또는 단순 목격자일 확률도 있다.

종혁은 교수에게 리조트 사건 현장에 대해 설명했고, 교수는 점차 표정을 굳혔다.

“APD(Antisocial Personality Disorder)군.”

Antisocial Personality Disorder, 일명 반사회성 인격 장애.

흔히 알고 있는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가 이에 속한다.

그들은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하고, 오로지 자신의 욕심과 욕망을 위해서 행동하곤 한다. 그리고 그것이 끔찍한 범죄로 이어지는 경우는 상당히 흔했다.

그리고 반사회성 인격 장애를 앓고 있는 이들이 범죄를 저지르면, 다른 범죄자들보다 골치가 아픈 경우가 많았다.

가령 이번 사건도 그랬다.

경찰의 추적을 뿌리치기 위해 시체를 염산에 녹인다?

단순히 충동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 어떠한 목적을 위해 이런 잔혹한 행위까지 저지르는 놈에게 사람의 감정이 남아 있으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분명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 반사회성 인격 장애일 확률이 높았다.

생각에 잠겼던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네. 좀 더 심도 깊은 테스트를 하라고 말해 놓지.”

“부탁드리겠습니다.”

“여긴 내게 맡기고 일 보도록 해. 바쁘잖아.”

종혁의 어깨를 토닥인 교수는 아래로 내려갔고, 남겨진 종혁은 눈을 가늘게 떴다.

아무래도 교수의 말이 계속 걸린다.

‘소시오패스. 확실히 그런 놈일 확률이 높지.’

놈이 한 모든 행동이 치밀하고 계획적이다.

마치 수없이 예행 연습을 한 것처럼 당황한 흔적도 없다.

이미 이런 놈이 아닐까 예상은 했기에 교수의 말이 놀랍지는 않지만, 왜인지 미묘한 위화감이 느껴진다.

현재로선 딱 꼬집어 말할 수 없는 위화감.

“흠. 이거 왠지 익숙한 악취가 나는 것 같은데…….”

그동안 몇 번이나 맡아 본 것 같은 냄새.

종혁은 코를 긁으며 핸드폰을 들었다.

“예, 최 팀장님. 뭐 좀 나온 게 있습니까? 예?”

종혁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 * *

성경 구절이 적힌 액자가 걸린 사무실.

방금 전해진 소식에 원장의 눈이 파르르 떨린다.

“누가…… 어딜 가?”

-최종혁이 안좌도에 나타났습니다.

“안좌도는 왜!”

-표면상의 이유는 신안경찰서 생안과에서…….

수화기 너머의 상대는 종혁이 나타난 이유에 대해 설명했고, 이후 말을 덧붙였다.

-그러면서 강력 2팀이 안좌도의 모든 선착장을 훑고 있다고 합니다. 이거 아무래도…….

종혁이 어떤 냄새를 맡은 것 같다.

‘대체 어떻게?’

물론 우연일 확률이 90퍼센트에 육박하지만, 그래도 상대가 최종혁이기에 꺼림칙하다.

행보가 너무 빨라서 더.

-아마 인식 프로그램 시리즈, 그걸 가지고 내려온 게 아닐까 싶습니다.

‘아니, 아니야.’

그렇다고 해도 곧바로 안좌도를 찾는 건 이상하다.

신안 제2출장소를 폐쇄, 아니 종혁에게 던져 버린 이후 거의 열흘 동안 경찰서에서 두문불출했던 종혁.

그렇게 경찰서와 집만 오가던 놈이 갑자기 안좌도를 찾았다.

원장의 머릿속에 하나의 정보가 떠오른다.

신안경찰서에서 국과수로 전달한 엄청난 양의 증거물들.

제2출장소를 이 잡듯 헤집으며 찾은 증거물들.

“제2출장소에 무언가 흔적이 남았을 확률은?”

-현재 상황을 보면 아예 배제할 수는 없어 보입니다.

이 미친놈이 반경 200미터를 훑었다.

상황이 이렇다면 분명 어떤 증거를 확보한 것일 터.

-지원과 사원들이나 제2출장소를 이용한 다른 사원들은 신원을 특정할 만한 증거를 남기진 않았을 테지만…….

제2출장소의 먹잇감이 된, 제2출장소에서 작업한 자들은 모른다는 뜻이다.

“……신안경찰서 생안과가 의사들을 데려온 이유가 뭐라고?”

왜일까. 갑자기 종혁이 생활안전과와 함께 움직인 이유가 미친 듯 신경 쓰이기 시작한다.

불길함이 가슴을 간질이기 시작한다.

-범죄예방 캠페인을 겸해 중고등학생들의 건강검진을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그거…… 압해읍과 지도읍에 있는 중고등학교에서도 했어?”

-……아닙니다.

종혁이 신안경찰서의 서장이 된 후 회사는 신안경찰서의 모든 행보에 주목하고 있었다.

백 명이 넘는 수족이 생긴 종혁. 어디서 어떻게 어그러질지 모르기에 모든 촉각을 세운 채 감시하고 있었다.

뿌득!

불길함이 더 커져 간다.

그 순간이었다.

-뭐?! 그걸 왜 이제 말해!

순간 수화기 너머 상대의 격한 반응에 원장의 심장이 내려앉는다.

“무슨 일이야?”

-그, 그게…….

“빨리 말해!”

-방금 국과수에서 연락이 왔는데, 제2출장소에서 다른 DNA가 발견이 됐다고 합니다. 여중생, 혹은 여고생의 DNA라고 합니다.

“여고생?”

원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뜬금없이 튀어나온 여고생.

하지만 원장은 그 여고생이 누군지 알 것 같다.

-누군지 알고 계십니까?

“그래.”

이젠 어쩔 수 없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쯧.”

입을 열어 지시를 내리기 시작한 원장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지원과 과장한테 시말서 쓰라고 해.”

-예.

‘최종혁.’

뿌득! 뿌드드드득!

* * *

안좌도 동쪽의 한 선착장.

종혁이 배 주인들과 어울리고 있는 최철규 팀장에게 다가간다.

“그날엔 다 나갔지 않나?”

“아녀. 안 나간 사람들도 있었어. 어, 형님! 형님은 나갔소?”

“해 떨어지기 전에 들어왔제. 눈이 캄캄해서 밤엔 못 나가.”

“아따 뭘 벌써부터 노안이 오고 그런대요.”

“흠. 그라믄 일단 나갔다 오신 분들은 이쪽으로…… 아, 서장님.”

“오메, 서장?”

“젊은디?”

종혁은 웃으며 고개를 숙였고, 사람들도 얼떨떨 고개를 숙인다.

“아무튼 그날 나갔다 오신 분들은 이쪽으로 쪼까 모여 주시쇼잉.”

사람들이 패를 나누며 흩어지는 순간이었다.

“잉? 어야, 송현아. 니도 그때 나가지 않았냐?”

움찔!

종혁과 최철규의 눈이 돌아서던 사람들 가운데에 있는 삼십대 사내에게로 향한다.

바다 일을 열심히 했다는 듯 피부가 새까만 순박한 인상의 중년인. 이런 시골 마을에선 충분히 청년이라 불릴 연령대다.

화들짝 놀란 중년인이 다급히 검지를 입에 가져가고, 종혁과 최철규의 몸에 긴장이 서린다.

“쉿! 쉿! 아따, 뭐 그런 걸 말하고 그러셔요!”

“에라이. 니 또 술 마시러 바다에 나갔냐?!”

“형님!”

최철규가 한 발 앞으로 나선다.

“뭐시여. 음주운전을 했소?”

“무, 무슨! 그냥 낚시하러 나갔당께요! 술은 입에도 안 대요!”

“낚시는 무슨. 술 마시러 간 거제. 호랭이 같은 마누라 피해서.”

“큭큭. 저놈은 아직도 제수씨가 모른다고 생각하나벼.”

“마, 마누라가 알고 있다고라!?”

“그럼. 배가 없어지는디 모를 리가 있간디?”

“오메…….”

“일단 여기로 오시죠.”

“……끄응. 이거 비밀로 할 수 있지라?”

중년인은 머리를 긁적이며 최철규 팀장에게 다가갔고, 종혁은 한숨을 내쉬며 돌아섰다.

중년인은 그런 종혁을 힐끔 보곤 속으로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웅성웅성.

어느새 어두워진 하늘, 선착장 앞 공터에서 술판이 벌어진다.

최철규가 내놓은 사례비로 벌이는 술판.

부인에게 술 마시는 걸 들킬까 걱정을 한 중년인까지 벨트를 풀고 술을 마시고, 멀리 떨어진 종혁과 최철규가 담배를 문다.

찰칵! 치이익!

“후우. 뭐가 없네요잉.”

종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골치 아프네.’

일단 알리바이가 부실한 사람들이 몇 명 있긴 한데, 확실한 뭔가가 없다.

별 소득이 없단 소리에 혹여 자신이 직접 보면 뭐라도 나올까 싶었던 종혁으로선 맥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일단 용의선상에는 올려놔야겠군.’

“니들은 뭐 나온 거 있어?”

강력 2팀 팀원들이 고개를 젓는다.

“다 알리바이가 있었어라.”

“저희도 이상한 점은 없었습니다.”

“아까 서장님이 지시하신 것처럼 배를 판 사람도 없는 것 같습니다.”

놈, 혹은 놈들이 이용한 두 대의 배.

지도에서 그 섬으로 간 배와 이 안좌도, 팔금도 사이로 타고 온 배.

신안은 작은 사회다.

인구는 적고, 배를 가진 사람의 숫자는 더 적다.

배를 판 사람이 있으면 분명 티가 날 테고, 혹여 신안이 아닌 다른 곳에서 구했다고 하더라도 낯선 배가 등장하면 누구든 알아차릴 거라고 생각했다.

종혁이 찾으려는 건 바로 그것이었다.

교수와의 대화를 통해 더 짙어진 위화감.

그것이 더욱 선명한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안좌도와 팔금도 주민들 가운데 놈의 조력자가 있는 것 같은데……. 그 소녀일까?’

피해자나 목격자가 아니라 조력자.

그렇다면 그 소녀는 어떻게 배를 몰고 갈 수 있었을까. 주민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진 않았을까. 놈과의 관계는 뭘까.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쯧.”

혀를 찬 종혁은 최철규 팀장과 강력 2팀 팀원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오늘은 여기서 마무리하고, 내일 팔금도로 넘어가도록 하죠. 오늘 잘 방은 잡았죠?”

“잡긴 혔는디…… 서장님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전 내일 서로 복귀해야죠.”

지이잉! 지이잉!

“예, 원장님. 예?!”

종혁의 몸이 벼락을 맞은 듯 크게 흔들린다.

-오늘 보내 준 그 DNA 있잖아. 그중 데이터베이스에 기록되어 있던 사람이 있다고.

실종된 학생들의 물건들을 국과수에 보냈던 종혁.

하지만 그건 무언가 다른 단서라도 나오길 바라는 마음이었을 뿐, 이런 결과를 바랐던 건 아니었다.

DNA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되는 건 범죄자와 그 범죄와 연루된 증거물에 남아 있는 DNA뿐.

즉, 데이터베이스에 DNA 정보가 남아 있다는 건 실종된 학생 중 범죄에 연루된 이가 있다는 것이었다.

혹시나 실종된 학생이 어떤 사건에 휘말린 건 아닌지 종혁이 걱정하던 그때였다.

-그런데…….

순간 종혁의 눈이 가늘게 떠진다.

갑자기 가슴을 불안케 하는 원장의 말.

-그 살인 현장에서 나온 DNA와 일치해.

쿵!

순간 종혁의 머릿속에 하나의 번호가 떠오른다.

“986번이요?”

-맞아. 김희라는 학생이야.

종혁의 입이 떡 벌어지는 순간이었다.

“서, 서장님!”

핸드폰을 붙들고 하얗게 질린 최철규.

“기, 김지원이 떴어라!”

종혁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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