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706화 (706/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706화>

종혁이 눈을 가늘게 뜬다.

“DNA 등록이 안 된 사람이라고요?”

종혁이 임성원 교수와 함께 미국의 DNA 증폭 및 분리, 추출 기술을 들여오면서 구축된 전국 교도소 수감자들의 DNA 데이터베이스.

그러니 등록되지 않은 DNA라고 한다면, 가능성은 셋이다.

범죄를 저지른 적이 없거나,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되기 이전에 범죄를 저질렀거나.

……또는 범죄를 저지르고도 그동안 잡히지 않았거나 이 셋뿐이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딱히 문제 될 건 없었다.

결국 다른 이들의 DNA가 확인되면, 마지막 한 명만 남게 될 테니까.

하지만 종혁의 예상과는 다른 설명이 뒤이어졌다.

-그래도 연령대와 성별은 알아냈어. 연령은 14세에서 19세 사이. 성별은 여성.

“미, 미성년자란 말입니까?!”

종혁이 벌떡 일어난다.

‘무슨!’

김성익과 함께 사기를 공모한 패거리들로 추정되는 이들의 신분증을 확보한 상태다.

그리고 그들 중 미성년자는 없었다.

즉, 지금 확인되지 않는 DNA는 김성익 패거리들과 무관한 인물, 제3의 인물이라는 뜻이었다.

-어디 보자…… 아, 986번 포인트에서 발견된 거네.

“자, 잠시만요!”

종혁이 다급히 현장 사진들을 살핀다.

986번 포인트는 고문이 행해졌을 것으로 예상되는 방들이 쭉 늘어선 복도였다.

종혁의 시선이 여러 사진 중 짧게 잘린 머리카락이 찍힌 사진으로 향했다.

-염색을 한 흔적이 있고, 약간의 영양 부족이 있는 것 같네. 나트륨과 당분을 과다 섭취했고…….

이는 여중생, 여고생들에게 두드러지는 현상이다.

‘여학생이 여긴 도대체 왜?’

주변에 아무도 살지 않고, 아무도 찾지 않는 폐건물.

실제로 이곳이 발견된 건 정말 우연에 불과했다. 그 우연이 없었다면 종혁이라고 할지라도 영원히 찾아내지 못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여학생이 이곳에 혼자 찾아올 일이 뭐가 있겠는가.

아니, 설령 이유가 있어 이곳에 왔다고 하더라도 이곳의 흔적, 고문실을 봤더라면 분명 신고를 했을 터였다.

그런데 신고조차 하지 않았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었다.

“일단 알겠습니다. 계속 수고해 주세요.”

-그래. 더 나오는 게 있으면 바로 연락 줄게.

“감사합니다.”

통화를 종료한 종혁은 눈을 가늘게 떴다.

‘또 다른 피해자가 있는 건가? 아니면…….’

공범일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었다.

매해 처벌받는 소년범의 수는 무려 수만 명.

물론 이 중 대부분이 절도나 폭행이지만,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끔찍한 일을 저지르는 괴물들도 분명 존재했다.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는 한 아예 가능성을 배제해서는 안 됐다.

종혁은 몸을 일으켜 서장실 한구석에 세워진 화이트보드 앞으로 갔다.

커다란 위성지도 사진들이 붙어 있는 화이트보드.

가운데에 미세한 점이 찍힌 작고 하얀 동그라미가 가득한 위성사진 안에 유일하게 그려진 붉은 동그라미.

“안좌도…… 아니면 팔금도인가?”

리조트 건물에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시각으로부터 12시간 이내에 인근 해역을 지난 배들 중 유일하게 GPS 신호가 기록되지 않은 배가 향한 장소.

시간대는 오후 10시.

안좌도와 팔금도 사이로 들어갔고, 섬 뒤로 빠져나온 흔적은 없다. 즉, 놈은 안좌도와 팔금도 중 한 곳으로 향한 것이다.

종혁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어, 재수야. 새학기맞이 범죄 예방 캠페인 진행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어? 안좌도와 팔금도 들어갔어?”

-아, 거긴 내일 들어갈 예정입니다. 그런데…….

“요트?”

-흐흐흐.

종혁은 피식 웃었다.

“알았어. 말해 놓을게. 그보다 본청 홍보부에 연락해서 KYT 좀 내려보내라고 해 봐.”

KYT, 일명 키트.

1990년도부터 순정, 비련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낸 혼성 그룹으로, 현재 경찰홍보대사다.

-……이번 사건 때문에 그러세요?

“응. 아무래도 안좌도와 팔금도 고등학교 좀 돌아봐야겠다.”

통화를 종료한 종혁은 다른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시연 씨.”

홍시연. 현재 종혁과 좋은 만남을 가지고 있는 여인.

삼전장학재단의 직원이자 김희건 회장의 처, 홍나애 여사의 조카다.

-흠…… 제가 생각나서 전화한 목소리가 아닌 거 같은데요?

“아하하.”

-……휴. 결국 이날이 왔네요. 어떤 분과 연결시켜 드리면 될까요?

삼전그룹의 회장, 김희건이 준 선물인 홍시연.

아니, 정확히는 일명 삼전 차일드라 불리는 삼전의 장학생들.

사회 각계각층에 포진해 있는 삼전의 장학생들을 관리하는 곳이 바로 삼전장학재단이었고, 홍시연은 그런 삼전장학재단의 차기 이사장으로 꼽히는 존재였다.

즉, 김희건 회장은 삼전그룹이 그동안 쌓아 온 각계각층 인사들과의 연결 고리를 소개시켜 준 것이었고, 종혁은 드디어 그걸 써먹으려는 것이었다.

“당장 모레 움직일 수 있는 외내과의사들과 심리학 교수님들 연락처가 필요합니다.”

-그런 거라면 삼전의료원에 연락하면 되지 않나요?

“우리 시연 씨 재단 이사장으로 만들어야죠. 그리고 회장님 체면도 좀 세워 드리고요.”

준 선물을 적극 이용하면 김희건은 안심을 하게 될 것이고, 또 홍시연의 필요성 또한 높아진다.

이런 종혁의 말에 홍시연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추석엔 뭐하세요? 며칠 후면 추석이잖아요.

“단풍 구경은 어떠세요? 온천에서.”

-엉큼해. 끊을게요.

통화가 종료된 핸드폰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시던 종혁은 외투를 챙겨 들고 서장실을 나섰다.

“수사지원과장입니까? 서장입니다. 통화 목록 좀 뽑을 수 있겠습니까?”

김성익의 차량이 유기된 장소 양옆에 있던 작은 마을들과 지도읍사무소 계장과 직원들, 그리고 목포해양경찰서에서 만난 경찰들.

“그리고 이유정 경장도.”

왠지 느낌이 이상했던, 목포해양경찰서의 1층에서 스쳐 지나갔던 이유정 경장.

그들 전원의 통화 목록이 필요했다.

아무래도 김성익 패거리들이 살해당한 타이밍이 이상했다.

* * *

뿌우우웅!

바다를 가르는 커다란 여객선.

담배 연기를 뿜는 최철규 팀장이 눈빛을 가라앉힌다.

“팀장님, 서장님은 그 정보를 어떻게 알았을까요?”

“안좌도와 팔금도?”

“예.”

“따로 쓰는 정보원들이라도 있는 거겠제.”

“본청에서 쓰던 정보원들이 신안까지 내려와 활동하고 있다고요?”

“돈으로 안 되는 게 어디 있냐잉.”

매달 로또 1등 세 번이나 당첨되는 수익을 낸다고 했다. 분명 자신들로서는 상상조차 되지 않을 금액이 정보원들에게 지급될 터였다.

그리고 그런 정보료를 받는 정보원들이라면 과연 능력이 얼마나 뛰어날까.

종혁의 재력을 알게 된 지금, 그가 무슨 짓을 해낸다고 해도 딱히 이상하게 되지 않을 거 같았다.

“저 봐.”

옆을 본 형사는 입맛을 다셨다.

바다를 가르는 새하얀 요트 한 대. 선글라스를 낀 채 갑판에 서 있는 종혁의 모습은 부러움 그 자체였다.

“쩝.”

“그보다 탐문 결과는 어찌 됐어? 업데이트된 거 있으믄 읊어 봐.”

“나온 것이 없어라.”

여객터미널도, 섬에 있는 모든 마을을 탐문한 결과도, CCTV, 택시 등 수사지원과의 지원까지 받으며 모두를 뒤져 봤지만 아무것도 나온 것이 없다.

“그중 염전을 하는 양반이 뭘 숨기는 것 같긴 하던디…….”

“이름은?”

“김덕칠. 58세여라.”

“마킹은? 붙여 놨고?”

“마킹을 붙여 놓을 수 있는 곳이 아니었어라.”

그래도 그가 뭘 숨기는지는 대충 알아냈다.

“염전에 있는 창고에 사람이 산 흔적이 있더라고요. 안으로 들어가 보지는 못했지만 찢어진 틈으로 보니께 오래된 이불도 있고, 버너도 있었어라. 화투짝도 몇 장 보였어라. 이불이랑 냄비가 몇 년간 한 번도 거시기 안 한 것처럼 더럽긴 했지만, 아무래도…….”

“거기서 도박판을 벌이나 보구마잉. 쯧. 그것 말고는 없단 말이제?”

강력 2팀의 팀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정말로 배를 타고 튀었다는 것인디……. 정말 그 섬들에 숨어 있다는 것인디…….”

자신들도 이제야 반쯤 확신을 하는 걸 종혁은 어떻게 이틀 전에 확신을 내린 것일까.

거기다 접촉한 사람 모두의 통화 목록을 뽑으라던 건 또 어떻던가.

김성익이 바닷가에 차량을 유기한 채 자취를 감춘 게 벌써 5개월 전이다.

그런데 왜 그동안 가만히 있다가 왜 하필 지금 패거리들을 죽인 것일까?

과도한 의심일 수도 있겠지만, 수사망이 좁혀 오자 꼬리를 자르려 했다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형사 경력 20년 이상인 자신 정도는 되어야 생각이 미칠 만한 영역을 종혁도 생각해 낸 것이다.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더니……. 그 양반도 헤쳐 온 수라장이 어지간하나 보다.”

“본청 아닙니까. 이런 시골이랑은 레벨이 다르지라.”

‘쯧.’

솔직히 쪽팔린다.

“그런디 우리도 저분들에게 검사를 받을 수 있을까라?”

팀원이 갑판에 서서 멍하니 바다를 보는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들. 얼굴색이 파리한 게 툭 치면 쓰러질 것처럼 피로가 가득한데, 또 표정은 밝다.

아무래도 바다에 와서 기분이 좋은 것 같다.

“왜? 몸이 이상허냐?”

“몸이야 언제나 이상허지라.”

형사들 중 몸이 성한 형사가 있을까. 몸 여기저기가 고장이 났지만, 그래도 참고 범인을 쫓는 게 바로 형사다.

“어차피 생안과에서 부른 거니께…….”

생활안전과에서 범죄 예방 캠페인을 하며 중고생들을 대상으로 건강검진도 하겠다며 부른 의사들.

“버스도 가져왔잖여라.”

“알았다. 계장님한티 말해 볼게.”

“사랑합니다.”

코웃음을 친 최철규 팀장은 가까워지는 안좌도를 보며 눈빛을 가라앉혔다.

“내리자마자 선착장들부터 훑어. 서장님이 주신 기름들로 기름칠 팍팍 하믄서.”

“예.”

‘이 개새끼. 잡히기만 혀.’

사지 멀쩡히 신안을 나갈 수 없도록 만들 것이다.

뿌우웅!

최철규는 주먹을 꽉 쥐었다.

* * *

부우웅!

흩어지는 강력 2팀의 차량들을 바라보던 종혁이 몸을 돌린다.

“오랜만입니다, 안좌 소장님.”

악수를 한 안좌파출소의 소장이 머리를 긁는다.

“정말 경찰서가 오니께 뭐가 달라도 달라지는구마이라.”

기껏해야 남의 통발을 훔쳐 가고, 말린 생선이나 훔쳐 가는 절도나 무전취식, 음주운전 사건만 접수되던 신안.

그런데 경찰서가 들어서자마자 강력 사건만 벌써 세 건이다.

동네가 쑥대밭이 되는 느낌에 안좌파출소장은 가슴이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열심히 일하셨다는 걸 알고 있으니 너무 자책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흠칫!

“끙. 아주 죄책감에 치여 죽으라고 하쇼.”

“으하핫.”

안좌파출소장은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여러 가지를 해 주시니께 참 좋습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신체검사와 건강검진.

섬이다 보니 의료 시설이 열악할 수밖에 없는데, 그 탓에 상대적으로 몸이 건강한 미성년자들은 의료 혜택을 잘 받지 못한다.

결국 돈 문제기 때문이다.

웬만큼 아프지 않고서는 큰 병원이 있는 목포까지 나가지 못하는 섬의 청소년들.

건강검진은커녕, 신체검사도 1년 한 번 학교에서 실시하는 것으로 자신의 키와 몸무게만 알 뿐이다.

“동네 어르신들이 아쉬워하진 않으시던가요?”

“당연히 하지라. 그래서 면사무소에 민원 넣으라고 했어라.”

종혁은 빵 터졌고, 암좌파출소장도 음흉히 웃었다.

“가십시다. 선상님들이 기다리셔라.”

“예. 가시죠.”

“이쪽으로…….”

“소장님!”

“오메.”

웃으며 몸을 돌리던 암좌파출소장이 누군가의 부름에 한숨을 내쉬고, 종혁도 이쪽으로 빠르게 달려오는 4명의 중년인을 보곤 의아해한다.

암좌파출소장은 그들이 다가오기 전에 먼저 걸음을 옮겨 그들을 막아섰다.

“전국에 수배 때려 놨응께 기다리라고 혔잖여요.”

“하, 하지만…….”

경찰들이 이렇게 무더기로 왔다는 건 분명 어떤 진척이 있다는 것 아닐까.

그런 그들의 말에 암좌파출소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찾았으믄 내가 바로 연락혔지요. 왜 이렇게 믿질 못한데요.”

“무슨 일입니까?”

“아, 서장님. 그게라…….”

“서, 서장님이십니까?! 안녕하십니까. 전 명희 애비 되는 유종철입니다.”

“아, 예. 안녕하십니까. 신안경찰서 서장 최종혁입니다.”

종혁은 암좌파출소장을 봤고, 그는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그 실종 명단을 살펴보셨는지 모르겄는디…….”

“아!”

종혁은 단숨에 깨달았다.

피로가 가득한 얼굴로 금방이라도 울 듯한 표정을 짓는 이들이 누군지를 말이다.

“유명희, 오지명, 김달수, 김희 학생의 부모님이시군요.”

작년 차례차례 암좌도에서 사라진 암좌고등학교 학생들. 단순 가출로 분류된 실종자들이다.

“죄송합니다. 저희도 백방 노력하고 있으니 곧 좋은 소식이 들어올 겁니다. 혹시 최근 사진이나 머리카락, 타액 등 DNA가 묻은 옷가지나 화장품 같은 게 있을까요? 그런 게 있다면 더 빨리 찾을 수 있습니다.”

“자, 잠시만 기다려 보쇼잉! 어! 나여! 지명이가 입고 다니던 옷 있제? 안 빤 걸로! 없으믄 지명이 방 좀 뒤져서 머리카락이라도 챙겨 와! 아, 묻지 말고 빨리!”

“사, 사진은 여기 있습니다! 우리 희야가 사라지기 하루 전에 찍은 사진입니다!”

“네 명이 찍은 사진은 여기 있어라!”

“감사합니다.”

얼마나 품에 가지고 있었는지 꼬질꼬질한 사진들.

‘에구.’

다시 염색할 돈이 없었는지, 어깨까지 내려오는 갈색 단발의 반이 검은색인 여학생 김희.

유명희 학생도 비슷한 모습이었다.

안타까운 표정을 짓던 종혁은 슬그머니 미간을 좁혔다.

‘……왜 이렇게 시선이 가는 거지?’

안타까움을 느끼던 감정은 어느새 찝찝함으로 변해 있었다.

직감이 알아들을 수 없는 무언가를 계속 외쳤다.

종혁은 미간을 찌푸리며 김희라는 여학생의 사진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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