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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705화 (705/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705화>

    1004개의 섬이 있다고 해서 천사의 섬이라 불리는 신안.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숫자의 섬이 있는 신안.

    그래서 김성익 일당들이 다른 곳으로 도망치지 않고, 신안 어딘가에 숨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직감도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하지만…….

    “뭔가 이상해서 딱 와봉께 이런 난장판이었당께라! 오메 얼메나 식겁스럽던지!”

    웅성웅성.

    폴리스라인이 쳐진 4층의 하얀 건물.

    1층 전체와 2층 일부분이 까맣게 타 버린 건물로 진입한 종혁이 감식반이 모여 있는 작은 방 안으로 들어간다.

    “뭐 좀 나오겠습니까?”

    “아, 서장님.”

    감식반과 국과수 대원들이 고개를 젓는다.

    “꼴이 이래서…….”

    전부 새까맣게 타 버린 까만 방. 한쪽엔 매트리스로 추정되는 스프링 골조가 보인다.

    “아무래도 이곳이 화재의 발원지인 것 같습니다.”

    여기서 건질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을 듯했다.

    고개를 끄덕인 종혁이 다른 방으로 향한다.

    찰칵! 찰칵!

    “거기 밟지 마!”

    “여기에도 혈흔이 있습니다!”

    방금 전 방과 달리 까맣게 그을린 벽면에 점점이 박혀 있는 핏자국. 이 안에서 도축이 벌어졌다는 뜻이다.

    아니, 도축이 아니다.

    고문 도구로 보이는 칼이나 바늘, 집게, 밧줄과 수갑도 보인다.

    유린이다.

    이런 고문 도구들이 있는 방이 한 개도 아니고, 무려 네 개나 있었다.

    ‘김성익이군.’

    직감이 강렬하게 외치고 있다. 김성익과 그 일당이 이곳에 있었다고 말이다.

    “서, 서장님!”

    방을 빠져나온 종혁에게 최철규 팀장이 빠르게 다가온다.

    오늘 아침 날아온 요트를 타고 목록에 나와 있는 선장을 만나러 가기 위해 준비하던 중 전달된 소식.

    큰 사건이 벌어진 것 같다는 소식에 최철규는 종혁과 함께 넘어왔었다.

    뭘 발견한 건지 두 눈이 그의 눈이 흔들린다.

    “이, 이것 좀 보시랑께요. 건물 옆 드럼통에서 발견한 거지라!”

    증거물 봉투에 담긴 타다 만 지갑을 본 종혁이 한숨을 내쉰다.

    “지영호. 7508…… 맞네요.”

    김성익의 일당 중 한 놈이다.

    지영호. 사기 전과 1범 및 폭행 전과 3범, 절도 전과 2범의 범죄자.

    직감이 맞았다. 김성익과 그 일당들은 이곳에 숨어 있었다.

    구성원이 모두 사라져 아무도 찾지 않는 마을 근처, 놈들은 이곳을 은신처로 삼았던 것이다.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최철규 팀장이 다른 지갑들을 보여 준다.

    “세 개?”

    세 명의 신분증이 들어 있는 지갑.

    이 세 명에 지영호까지 더해, 총 네 명이 김성익의 패거리일 것이다.

    “김성익 신분증만 없군요.”

    “아무래도 이놈아가 다른 놈들 뒤통수 까고 다 꿀꺽한 거 아니겠어라? 오메, 이 썩을 놈.”

    그리고 뒷정리를 한 뒤 도주한 것이다.

    ‘아니야.’

    아니다.

    회귀 전 김성익은 일당에게 살해를 당한 것으로 추정됐다. 앞뒤가 맞지 않았다.

    ‘그럼 뭐지?’

    중요한 뭔가를 간과하고 있는 듯한 느낌.

    다시 방들을 살피며 머릿속을 정리해 가는 종혁에게 수사 2팀의 팀원이 다가온다.

    사건 현장 같은 곳이 발견됐단 소리에 바로 출동을 한 수사 2팀.

    “서장님.”

    다가온 수사 2팀의 팀원이 브리핑을 한다.

    “원래 이 건물은 동국건설에서 리조트로 운영하기 위해 지었던 건물이라고 합니다.”

    “아, 동국건설.”

    IMF 때 파산을 당한 기업 중 하나다. 당시 재계 서열은 115위. 그렇게 큰 건설 회사는 아니었다.

    “본사가 파산하는 바람에 공사가 중단됐나 보군요.”

    “예. 그렇게 파산을 한 이후 인수할 사람을 찾으려 했지만…….”

    풍광이 나쁘지 않다지만, 이런 섬의 외진 곳에 지어진 작은 리조트를 누가 욕심낼까.

    다들 힘들 시기였고, 어렵사리 IMF를 이겨 낼 때쯤에는 닷컴버블이 터지며 경제가 쑥대밭이 됐다.

    아마 이곳도 그렇게 잊혀 갔을 것이다.

    “이후 2003년, 근처에 하나 있던 마을이 사라지면서 근방에 아무도 살지 않는 사실상 버려진 곳이 됐습니다.”

    이 섬에 사는 누군가가 버려진 건물에 관심을 보였었을 수도 있겠지만, 철거를 하든 관리를 하든 돈이 드는 일이기에 결국 욕심을 접었을 것이다.

    “허미. 완벽한 은신처구마이라. 김성익 이 새끼는 여기를 어떻게 알았을까라?”

    ‘맞아.’

    이 현장의 맹점을 찌르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종혁이 생각하던 의문점 중 하나.

    이곳은 이 섬에 사는 사람들조차 발길을 두지 않는 외곽이다.

    김성익이 이 건물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고 생각하긴 어려웠다.

    그래서 더 이상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귀가 맞아떨어지지가 않는다.

    “일단 김성익이…….”

    “으아아악-!”

    건물 뒤편에서 들려온 비명.

    서로 눈을 마주친 그들은 곧바로 달려갔다.

    그리고…….

    “우웩!”

    “웨에엑!”

    그들보다 먼저 달려왔다가 고개를 돌리며 헛구역질을 하는 사람들. 그들을 헤치며 나아간 종혁은 열려 있는 네 개의 파란색 드럼통 안을 보곤 뒷목을 잡았다.

    “이, 이런 개새끼!”

    “우욱!”

    액체, 아니 염산에 둥둥 떠 있는 하얗게 변색된 살점들. 그리고 녹다 만 뼛조각들.

    빠드득!

    얼굴이 구긴 종혁이 형사들을 본다.

    “김성익 수배 내용을 연쇄살인 및 사체 훼손으로 수정하고, 최 팀장은 팀원들 파견해서 김성익이 수감됐던 교도소부터 김성익 지인들까지 싹 다 훑어봐요. 그리고 인터폴에 연락해서 적색 수배도 때리고! 그리고 감식반!”

    “예, 예!”

    이런 끔찍한 현장은 처음인지 허둥지둥하는 감식반의 모습에 종혁의 얼굴이 구겨진다.

    “뭐하는 거야, 새끼들아! 정신 안 차려!”

    쩌렁쩌렁 울리는 종혁의 외침에 사방이 조용해지고, 감식반 형사들이 다급히 자세를 바로 한다.

    “이것들을 최우선적으로 감식해! 그리고 반경 200미터를 싹 다 뒤져! 뭐라도 찾으란 말이야! 알았어?!”

    “예, 예!”

    “너희들은 뭣들 해! 움직여!”

    “……예!”

    처음 보는 종혁의 화난 모습에 형사들은 놀라 튀어 나가고, 종혁은 주먹을 쥐며 돌아선다.

    ‘누구냐.’

    이런 좆같은 일을 꾸민 건 결코 김성익이 아니다.

    다른 이들은 잔인하게 살해당한 네 명이 김성익을 제외한 다른 패거리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회귀 전 김성익의 사망 사실을 알고 있는 종혁은 확신했다.

    사망한 네 명에 김성익이 포함되고 있다고.

    그렇다면 결국 결론은 하나였다.

    김성익 패거리의 누군가가 김성익을 포함한 다른 일행을 모두 무참히 살해하고, 김성익에게 모두 뒤집어씌우려 한 게 분명했다.

    종혁은 네 개의 신분증을 다시 한번 쳐다보며 미간을 좁혔다.

    이 중에 진범이 있는 것이다.

    빠드득!

    종혁의 얼굴이 귀신보다 더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 * *

    “후우. 출장 다녀왔습니다.”

    어두운 밤, 김지원이 습관처럼 말하며 작은 사무실 안으로 들어서다 잠시 멈춘다.

    너무도 오랜만에 맡아보는 사무실의 향기.

    비록 사무실 위치는 바뀌었다지만 떠날 때 그대로인 모습에 그의 심장이 떨리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손을 든다.

    “오! 수고했어, 김 대리.”

    “여기 피로회복제입니다, 대리님!”

    “땡큐.”

    서류 가방을 자리에 내려놓고 피로회복제를 원샷한 김지원은 갑자기 코끝을 스치는 냄새에 옷으로 코를 가져간다.

    “쯧. 그렇게 씻었는데도 탄 냄새가 나는 것 같네.”

    “뭐야 김 대리, 보고서 작성 안 해? 프로젝트 진행하면서 과장으로 불렸다고 과장 대우 해 달라는 거야?”

    “봐주십시오. 근 4년 만에 복귀하는 겁니다.”

    그리고 곧 다시 떠나야 한다.

    프로젝트를 끝낸 사원은 얼굴을 갈아엎는 게 사칙. 이 사무실에 있을 시간은 길어야 5일뿐이었다.

    “시끄러워, 인마. 나와. 담배나 피우게.”

    “오면서 피웠는데…….”

    그래도 일어선 김지원이 과장을 따라나서며 옥상으로 향한다.

    5층짜리 작은 건물, 9월의 상쾌한 바람이 불어오며 김 대리의 귀환을 축복한다.

    “깜빵 생활은 좀 어떻디?”

    “……거지 같았죠.”

    일명 파견 프로젝트.

    본사에서 모든 지부를 대상으로 지원자를 각출해 전국 교도소에 파견한 프로젝트다.

    그렇게 파견이 된 직원들은 사기 및 한탕을 노리는 범죄자들에게 접근, 그들의 일원이 되어서 그들의 결실을 가로채는 게 바로 이번 프로젝트의 목적이었다.

    “법자라고 툭툭 건드리는데…….”

    솔직히 회사가 아니었더라면 벌써 몇 놈은 죽여 버렸을 것이다.

    “너 출소할 때도 만나서 말했지만 수고했다. 매출액 통장은?”

    “가방 안에 있습니다.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그 버러지들이 숨긴 걸 모두 뽑아낼 수 있었을 텐데…… 쯧.”

    그놈의 최종혁이 문제다.

    “설마 그 시간에 뱃소리를 들은 사람이 있을 줄이야.”

    양쪽 마을에 불이 모두 꺼진 걸 확인한 후에 준비한 배를 접안시켰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그 노인, 김철정을 무리해서 죽이지 말 걸 그랬다.

    “됐다. 그게 어떻게 네 잘못이냐. 지원과 잘못이지.”

    그런 것조차 제대로 체크하지 않은 지원과의 잘못이다.

    아니, 솔직히 누구의 잘못이라고 할 순 없지만, 그래도 일이 어그러졌기에 탓을 해 볼 수밖에 없다.

    “그보다 최종혁 그 새끼가 요트를 동원했다며?”

    “예. 다섯 대를 동원해서 그날, 그 시각, 그 인근을 지난 배들의 선주들부터 탐문 조사를 했답니다.”

    “……미친 새끼. 진짜 돈을 아름답게 쓰는 새끼네.”

    중고를 산다면 1대당 수천만 원이면 충분히 사겠지만, 최종혁이 그럴 놈은 결코 아니었다. 아마 전부 메이저 제조사의 최신형 크루저 요트일 터.

    1대에 2, 3억을 호가하는 요트를 5대나 탐문 조사에 동원하다니 정말 미친놈이었다.

    참 부럽지만, 그 아름다운 돈지랄 때문에 다급히 마무리를 해야만 했다.

    이가 갈릴 수밖에 없었다.

    “쯧. 최소 몇 억은 더 뽑아냈을 텐데……. 분명 숨기는 게 더 있었는데…….”

    “어쩌겠냐. 잊어야지.”

    자연재해인 매미급 태풍이 다가오는 게 뻔히 보이는데 버틴다는 건 미련한 짓을 넘어 회사를 위험에 빠트리는 행위였다.

    “넌 네 몫을 충분히 해냈으니까 잊어.”

    “하지만 출장소가…….”

    최종혁 때문에 폐쇄됐다. 앞으로 써먹을 일이 무궁무진한 출장소인데도 말이다.

    그 출장소를 만들기 위해 회사가 얼마나 많은 인력과 시간을 투자했던가.

    진짜 그놈은 회사에게 있어 해악 그 자체였다.

    “아, 그냥 죽여 버릴까.”

    “어허이. 잊으라니까. 그보다 뒷마무리는 깔끔하게 했지?”

    혀를 찬 김지원이 고개를 끄덕인다.

    지원과의 지원까지 받으며 모든 증거가 김성익을 가리키게 만들었다. 제아무리 최종혁이라고 해도 자신을 쫓을 수는 없었다.

    “김성익은?”

    “시멘트 채워서 바다에 버렸습니다.”

    배 속까지 채웠기에 시체가 떠오를 일은 없었다.

    “잘했다. 수고했어. 내려가자. 얼른 보고서 작성하고 한잔해야지?”

    좋다. 오랜만에 함께하게 된 가족 같은 부서 동료들.

    목구멍에서 술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아, 그럼 전 얼굴 엎으러 어디로 갑니까? 다시 신안으로 갑니까?”

    “아, 그건…….”

    둘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사무실로 내려갔다.

    * * *

    쏴아! 쏴아!

    놈들의 아지트로 쓰인 폐쇄된 리조트 인근의 바다.

    커다란 바위 인근에 형사들이 모여든다.

    “아무래도 이게 맞는 것 같지라?”

    “어이, 감시반! 여기여, 여기!”

    배를 발견했다는 소식에 다가온 종혁도 배를 보며 눈을 가늘게 뜬다.

    “경운기 엔진은 맞네.”

    갑판이 모조리 타 버려 엔진룸이 드러난 배.

    이것 역시 감식을 해 봤자 건질 게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건 다 해 봐야 했다.

    “이거 누구 명의인지 조회하고, 최 팀장님.”

    “예, 서장님!”

    방금 전 종혁의 모습에 놀랐던 최철규가 굳은 얼굴로 미소를 대답한다.

    “지난 3일 동안 이 근방 해역을 지난…….”

    “선박들 GPS 기록과 이 섬의 CCTV 기록, 여객터미널의 입출 기록을 확보하란 말이지라? 이미 보내 놨습니다!”

    그리고 섬 전체를 수색하며 탐문 조사를 해 보라고도 말해 놨다.

    “수고했습니다. 그럼 일 보세요.”

    “충성!”

    고개를 끄덕인 종혁은 돌아섰고, 최철규는 그런 종혁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본청에서 불도저라 불렸다더니만…….’

    여태껏 연상이라면 일개 팀원에게까지 존댓말을 했던 종혁.

    그러나 오늘 모습을 보니 확실히 알겠다.

    ‘그동안 어뜨케 버텼디야?’

    저 펄펄 끓는 성격을 말이다.

    그는 입술을 비틀며 돌아섰다.

    “어, 나여. 여객터미널 입출 기록 확인혔냐?”

    한편 근처 선착장에 정박된 요트로 향하던 종혁이 핸드폰을 든다.

    “접니다, 나탈리아. 혹시 지난 3일 동안의…….”

    -현재 최가 있는 섬 인근의 위성 사진을 말하는 건가요?

    “부탁할 수 있을까요?”

    회사 놈들의 의해 종혁이 죽을 뻔했던 그날 이후, 나탈리아와 헨리는 위성까지 동원하여 종혁을 경호하기 시작했다.

    이는 종혁이 받아들인 일이었다.

    죽음이 두려워서는 아니었다. 그런 걸 두려워했다면 애당초 놈들을 쫓을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자신이 죽으면 슬퍼할 어머니를 위해.

    종혁은 오로지 그것만을 생각하며 다소의 불편함은 감수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 일이 외부에 새어 나가서는 결코 안 됐다.

    자칫 우방국을 감시한다고 비추어질 수 있고, 이는 외교적인 마찰이 일어나기에 충분한 사안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위성은 종혁의 경호를 위한 일이 아니면 최대한 노출을 피해야 했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종혁이 이런 이야기를 꺼내니 나탈리아로서는 다소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요?

    현장 상황은 그녀도 전해 들어서 안다.

    분명 사명감 넘치는 종혁이라면 이렇게 화를 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긴 했지만, 그래도 결국 범죄자들의 다툼으로 인해 발생한 일이다.

    위성사진까지 동원할 정도는 아니었다.

    “느낌이 이상해서요. 세세한 사진이 아니라 윤곽만 드러난 사진이라도 좋습니다. 식별만 하면 됩니다.”

    -……알았어요. 곧 메일로 보내 놓을게요.

    무려 종혁이 이상하다 말하고 있다.

    아주 작은 단서, 그녀조차도 무심코 넘어갈 단서에서 사건의 냄새를 기가 막히게 맡는 종혁이.

    낯빛을 굳힌 나탈리아는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

    “감사합니다.”

    통화를 종료한 종혁은 저쪽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누군가를 발견하곤 살짝 놀랐다.

    ‘쟤도 지원을 나온 건가?’

    옛 제자, 지석철 순경이었다.

    * * *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신안에서 전달된 산처럼 쌓인 증거물들에 국과수 연구원들이 비명을 지른다.

    “자자, 최종혁의 부탁이다! 급하지 않은 사람들은 다 달라붙어!”

    최종혁.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은인.

    이 중에서 급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지만, 눈빛이 달라진 연구원들은 다급히 증거물 봉투를 열어젖히기 시작했고, 신입들이 슬그머니 그들에게 달라붙는다.

    “저…….”

    “최종혁이 누구냐고?”

    “예.”

    “이 국과수 과학수사 기술을 최소 10년은 앞당긴 친구. DNA 증폭 기술도 그 친구가 가져온 거야. 너희 그 말 들어 본 적 있지? 전 세계 거의 모든 수사기관이 차용하는 수사기법을 창시한 사람이 한국 사람이라는 말? 그 사람이 이 친구야.”

    “허억!”

    “그 사람이 현역 경찰이었어요?”

    “그러니 대단한 친구지. 그리고 우리 국과수 장비들이 많다고 생각되지 않디?”

    “예!”

    미국에서도 보기 힘든 최신형 검사기들이 있는 걸 보고 얼마나 기함했는지 모른다.

    “허억! 설마 그것도 그 사람이?”

    선배 연구원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신입들은 입을 떡 벌렸다.

    “어허. 안 그래도 된다니까.”

    연구원들의 시선이 일감을 들고 온 부장에게로 향한다.

    “그래, 알았어. 고마워. 다 검사하려면 한…… 열흘쯤 걸릴 거야. 그래, 들어가. 다들 잘 들어! 방금 전 종혁이가 회식비로 5천만 원을 쐈다! 다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그렇지!”

    “와아! 종혁아, 사랑한다!”

    “잡담할 시간 있으면 분류부터 해!”

    “예!”

    일단 DNA 분류를 해야 된다.

    그 현장에 있었던 사람이 누구인지 줄을 세워야 한다.

    그것도 3일 안에.

    그들의 눈이 뒤집어졌다.

    꼴깍 꼴깍!

    피로회복제가 물처럼 넘어간다.

    다크서클이 볼까지 내려온 얼굴들. 흐리멍덩한 눈들이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본다.

    그 순간이었다.

    찌직! 찌직!

    격한 소음을 내며 종이를 토해 내는 프린터기 앞으로 앳된 얼굴의 여성이 다가간다.

    “어?”

    모두의 시선이 휙 하고 돌아간다.

    이런 연구실에선 결코 나와선 안 되는 말.

    하지만 어쩔 땐 꼭 나와 줬으면 하는 말.

    “선배님, 일치하지 않는 인물이 있는데요?”

    “뭐?”

    지난 일주일간 날밤을 새며 분류했던 DNA.

    새로운 인물의 등장에 방 안에 있던 연구원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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