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704화 (704/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704화>

    신안의 모든 섬을 뒤져야 한다는 짜증 때문에 얼굴이 일그러진 둘은 곧바로 목포해양파출소로 향했다.

    어업을 하는 모든 배들은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GPS를 부착한 배들만 허가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단순한 낚싯배들도 마찬가지다.

    해양에서 발생하는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거나 혹여 불의의 사고가 났을 시 이 GPS 신호를 쫓아 해양경찰구조대가 출동하기에 GPS 부착은 무조건 의무다.

    그리고 이 GPS 기록은 모두 해양경찰서에 기록이 되기에 둘은 목포에 있는 목포해양경찰서로 올 수밖에 없었다.

    이 늦은 시간에 공문을 보내는 것보다는 그냥 이렇게 바로 와 버리는 게 시간을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신세는 꼭 갚겠습니다. 이건 가시는 길에 기름값 하세요.”

    “아이고, 아닙니다. 이 정도는 당연히…… 힉?!”

    종혁과 최철규 팀장을 이곳까지 데려다준 지도읍사무소의 직원들, 계장이 불러서 투덜거리며 봉리로 달려와야 했던 공무원들이 종혁이 준 수표에 기겁을 하면서도 입이 찢어진다.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계장님도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일이 빨리 끝나실 것 같으면 그냥 여기에 있겠습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예.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부우웅!

    “가죠.”

    “예!”

    ‘크! 진짜 미쳤구마잉.’

    공문으로 보내면 될 일을 함께 찾아왔다. 고작 시간이 지체된다는 이유로.

    이런 상사가 대체 어디 있다는 말인가.

    충성심이 계속해서 늘어나는 최철규였다.

    그 순간이었다.

    “음?”

    옆을 스쳐 지나가는 여경을 따라 고개를 돌리는 종혁.

    최철규가 그 모습을 보며 흐뭇이 웃는다.

    “서장님, 혹시 여자친구는 있으십니까?”

    최철규의 오해에 종혁은 대답 대신 핸드폰을 들어 사진첩 속 홍시연의 사진을 보여 준다. 놀이동산을 배경으로 둘이서 나란히 미소를 지으며 찍은 사진.

    “오메!”

    ‘아직 사귀는 단계는 아니지만…….’

    슬쩍 콧대를 세운 종혁이 다시 뒤를 돌아보며 눈빛을 가라앉힌다.

    ‘왜지?’

    왜인지 눈길이 갔다. 제법 예쁘장하긴 했지만, 딱 그뿐이었는데 말이다.

    “어디서 봤지?”

    분명 낯이 익은 것 같았던 느낌 아닌 느낌.

    고개를 모로 기울이던 종혁은 도통 떠오르지 않음에 이내 신경을 끄며 목포해양경찰서의 계단을 올랐다.

    “수고하십니다.”

    “억?! 추, 충성!”

    사무실에 앉아 있던 경찰들이 종혁의 어깨에 박힌 총경 계급장을 보곤 다급히 일어섰다.

    배의 종류와 크기 등 다양한 정보가 모두 등록이 되는 목포해양경찰서. 마침 당직이라 자리를 지키고 있던 이십대 후반의 담당 경찰이 묘한 미소를 짓는다.

    “경운기 엔진이란 말이죠.”

    “예. 찾을 수 있겠습니까?”

    종혁이 초조함을 누르며 묻는다.

    어디 범죄자가 내륙으로만 튀던가.

    바다로도 섬으로도 튄다. 그렇기에 이런 배들에 대해 좀 알고 있다.

    1990년도까지만 해도 자주 볼 수 있었던 경운기 엔진을 올린 배들. 보통 통통배라 부르는 배들이다.

    단종이 된 건지, 아니면 사양길에 접어든 것인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1990년도 후반에 들어서면서부터는 거의 일반 엔진이나 쾌속정 모터를 올린 배들이 대세가 되면서 경운기 엔진을 올린 배들을 찾아볼 수 없게 됐다.

    “확실히 그렇기는 한데…… 이게 시기가 시기라서요.”

    4월. 봄이다.

    겨울 내내 봄을 애타게 기다리던 낚시꾼들이 바다로 몰려들고, 선주들도 제철을 맞은 어종을 쫓아 바다로 나갈 때다.

    물론 12월, 1월, 2월. 낚시꾼들은 한겨울 추운 날씨도 아랑곳하지 않는다지만, 그래도 4월은 보다 더 선착장과 항구가 떠들썩해진다.

    그건 이 경운기 엔진을 올린 배들도 마찬가지다.

    방금 전 종혁의 설명처럼 엔진 자체가 너무 낡고 오래됐기에 한겨울에는 조업을 하기가 좀 힘들지만, 날이 풀리면 통통통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바다로 나간다.

    “엔진의 가격이 워낙 비싸서 수십 년째 엔진을 바꾸지 않고 선체만 바꾸는 경우가 많거든요.”

    엔진에 비하면 선체값은 상대적으로 비싸지 않기 때문이다.

    “엔진 가격이 그렇게 비싸다고요?”

    “그렇죠. 선착장에 세워진 배들 있죠? 그 모터 올린 거 말고, 배답게 생긴 놈들이요. 3톤 넘는 놈들은 중고로 사려고 해도 8천은 넘게 줘야 하지라.”

    최철규가 깜짝 놀란다.

    8천만 원이면 거의 고급 세단 한 대 값이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싸게 샀을 때 그 값이죠잉. 좀 제대로 된 거 사려면 억은 우습지라.”

    이래서 바닷가에서 배가 재산으로 취급받는 것이다.

    “아무튼, 이런 배들을 가진 선주들은 대부분 나이가 드신 어르신들인데, 이런 양반들의 특징이…….”

    “잘 까먹으신다는 거죠.”

    아마 GPS 전원 위치도 잘 모를 거다.

    “거기다 그런 분들은 GPS 수신기 가격도 좀 더 지원해 드리고요.”

    거의 공짜로 지원해 준다.

    “잠시만요. 나왔습니다.”

    찌직! 찌직!

    사무실 한구석에 있는 프린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종이를 토해 낸다.

    “그 시간대에 그 장소를 지난 선박들의 목록입니다.”

    친절하게 이동 경로까지 포함되어 있다.

    종혁은 기쁜 마음으로 목록을 살폈다가 굳어 버렸다.

    “……아니.”

    없다. 이날 운행한 배 중 경운기 엔진을 올린 배는 단 한 대도 없었다.

    방금 전의 대화에 잠시 부풀었던 종혁의 작은 기대가 와장창 깨져 버린다.

    “이렇지 않을까 예상은 했는데…….”

    도주를 하려는 놈들이 과연 GPS를 켜 놓을까.

    하지만 막상 보고 나니 눈앞이 깜깜해진다.

    다급히 GPS 기록을 살핀 담당 경찰이 당황을 한다.

    “이, 이게 왜 이러지? 무조건 켜 놓으셔야 하는데?”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중에 또 연락드리죠.”

    종혁은 수고비로 수표를 내려놓곤 돌아섰다.

    그렇게 목포해양경찰서를 나선 종혁은 들고 나온 서류를 콱 쥐고 있는 최철규를 봤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번 사건은 자신이 찾아 넘겼다고 해도 최철규가 선장이다. 그의 의견을 따라야 했다.

    “일단…… 아무래도 배부터 빌려야겠지라. 빌릴 수 있을지는 모르겄지만.”

    그도 이렇게 될 거라곤 대충 예상했다.

    그렇기에 가장 먼저 떠올린 게 섬들을 돌아다닐 때 쓸 배였다.

    큰 섬들이야 다니는 여객선들 있다지만, 작은 섬들에 들어가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배를 빌려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9월. 한참 갈치에 꽃게 등 어업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철이라 배를 빌릴 수 있을지를 장담할 수가 없다.

    최철규는 그런 걸 어떻게 아냐는 듯 놀라는 종혁을 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지가 목포에서 형사로 구른 세월이 몇 년인디라. 또 해양경찰청에 친구랑 동기들도 있고.”

    제아무리 종혁이 돈이 많다고 해도 이번엔 무리가 있을지 모른다.

    “뭐가 그렇게 걱정이세요. 배가 없으면 가져오면 되는 거죠.”

    “예?”

    종혁은 핸드폰을 들었다.

    “예, 접니다. 요트들, 지금 신안으로 보내 주세요.”

    부산 및 동해안에 정박되어 있는 요트들.

    친구들이 준 선물들.

    ‘그리고…….’

    다음으로 해야 될 일을 떠올린 종혁은 눈을 빛냈고, 최철규는 요트란 말에 입을 떡 벌렸다.

    * * *

    “먹어.”

    쾅!

    싸늘한 철문이 닫히자 양팔이 뒤로 묶인 김성익은 무릎걸음으로 걸어가 그릇에 얼굴을 박는다.

    국물에 밥과 나물 따위들을 비빈 꿀꿀이 죽, 음식 쓰레기.

    허겁지겁 먹어 치우던 김성익이 멈칫하더니 몸을 떤다.

    “끄으흑!”

    그의 눈에서 떨어지는 굵은 눈물.

    죽고 싶다. 이런 고통을 계속 받을 바에는 죽고 싶었다.

    그런데 하루 온종일 굶고 먹는 밥이라고, 배가 고프다고 짐승처럼 눈이 돌아 밥을 먹는 자신의 모습에 심장이 찢기는 것 같다.

    대체 왜 이렇게 됐을까.

    힘겹게 몸을 세운 그는 싸늘한 시멘트벽에 등을 기대며 생각을 해 본다.

    * * *

    이 취업 알선 사기를 떠올린 건 교도소였다.

    사기를 쳤다가 경찰에 걸리는 바람에 들어간 교도소.

    어차피 경찰과 검찰은 자신이 숨긴 돈을 찾지 못할 것을 알기에 여유롭게 지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출소일이 가까워졌을 때였다.

    ‘밖에 나가면 뭐하지?’

    일단은 숨겨 놓은 돈을 찾아 해외로 나가 수감 생활동안 누리지 못했던 걸 모두 누릴 거다.

    여자를 옆구리에 끼고 술을 마시고, 맛집들을 찾아다니며 음식을 먹고, 최고급 호텔에서 잠을 잘 거다.

    그리고 다시 사기를 칠 거다.

    사기는 그에게 삶이자 인생.

    사기를 치지 않는 삶은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사기의 매력에 흠뻑 빠진 그였다.

    그런데 어떤 사기를 쳐야 할까.

    그것이 문제였다.

    “나도 취업만 할 수 있었으면 여기 안 들어왔다니까요!”

    김성익의 눈이 같은 방에 있는 법자에게로 향한다.

    흔히 법무부의 자식이라고 부르는 법자. 돈과 가족이 없는 수용자를 일컫는 은어로, 교도소에서 통용되는 말이다.

    돈이 없기에 관급 물품에 기대어 살고, 또 돈이 없기에 언제나 허드렛일을 하고 살아야 하는 법자.

    “아이고, 범죄자 새끼가 잘도 취업을 했겠다.”

    “왜 이래요! 저 서울에 있는 대학 나왔거든요?! 그리고 내가 운전을 얼마나 잘하는데! 저 군대에서 대대장님 운전병이었어요!”

    “운전하고 취업하고 무슨 상관인데?”

    “하, 이 형님이 뭘 모르시네. 일단 취직만 하잖아요? 그러면 출장 갈 때 내가 운전 다 하고, 등산 갈 때 내가 운전 다 하고. 어? 나랑 비슷한 스펙을 가진 놈들과 비교했을 때 누가 먼저 진급을 할 것 같아요?”

    “……너?”

    “그렇죠!”

    김성익은 목에 핏대를 세우며 말하는 법자를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취업이라…….’

    머릿속이 간질간질한 게 뭔가 떠오를 것 같다.

    “야, 법자! 아니, 김지원!”

    “예, 형님!”

    “이리 와 봐.”

    법자는 쪼르르 달려왔고, 김성익은 입을 열었다.

    “요새 취업하기 힘드냐? 서울에 있는 대학을 나와도?”

    “에휴. 고작 서울에 있는 대학이 문제겠습니까. 최상위권 대학을 나와도 취업이 힘들어요. 뭐, 눈을 낮추면 문제없겠지만.”

    하지만 누가 최상위권 대학을 나와서 대기업을 목표로 하지 않고 눈을 낮추겠는가.

    “지방대들은 더 심각하죠. 설령 취업을 하더라도 인턴으로 들어가서 죽어라 구르다 쫓겨나기도 하고.”

    겨우겨우 취업을 했는데, 길어 봐야 반년 일하고 다시 취준생이 되는 것이다. 그때 느낄 좌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터였다.

    “옛날에는 기업들이 제발 오라고 난리를 쳤었지만, 저희 세대에서는 안 그래요. 제발 일 좀 시켜 달라고 회사에 매달려야 해요. 이런 현상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심해질 테고요.”

    “……너 대학물 제대로 먹었구나?”

    생각보다 똑똑하고, 식견이 깊다.

    “흠. 아무튼 그렇단 말이지…….”

    ‘이거 잘하면?’

    갑자기 아이디어가 샘솟듯 솟는다.

    김성익은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고, 김지원은 그런 김성익을 보며 더 묻고 싶은 게 있냐는 듯 싱글벙글 웃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출소하는 날이 다가왔다.

    “야, 지원아.”

    “예, 형님.”

    “너 출소하면 나한테 연락해. 내가 너 취직시켜 줄 테니까.”

    “엇?! 정말요?!”

    “뭔 말인지 알잖아, 새꺄. 내가 너 두둑하게 챙겨 준다.”

    “……흐흐. 충성. 충성.”

    믿을 만한 아군을 만든 김성익은 씩 웃으며 교도소를 나섰다.

    “형님-!”

    “왔냐?”

    “와아! 사무실 죽이네요!”

    대전까지 내려온 김지원은 사무실을 둘러보며 혀를 내둘렀다.

    “저 진짜 취업한 것 같아요! 아! 안녕하십니까, 김성익 형님의 비서이자 운전기사인 김지원입니다!”

    “……이봐. 김 프로.”

    “믿을 만하니까 그냥 넘어가. 싫으면 지금이라도 빠지시든가.”

    “끙.”

    모든 집기가 들어온 사무실, 한구석에 놓인 원형 테이블에 모인 사람들 중 한 명이 혀를 차자 다른 사내가 뭐든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담배를 문다.

    “김 프로, 그래서 이번 사업 아이템이 뭐야?”

    그 물음에 빛나는 모든 사람의 눈.

    김성익은 입술을 비틀었다.

    “취업 알선.”

    취업을 하고 싶은 20대, 30대. 그들이 간절히 바라는 소망을 돈을 주고 파는 거다.

    “사이즈는?”

    “최소 50억.”

    “……사이즈 좋네. 그럼 시작하자고.”

    사기 공범들의 얼굴에 비틀린 미소가 번져 갔고, 김지원은 그런 그들을 보며 그저 싱글벙글 웃었다.

    이때 의심을 했어야 했다.

    아무런 생각이 없는 듯했던 모습을.

    이후 김지원은 빼어난 식견과 명석한 두뇌로 점차 그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비서이자 운전기사로서만 서포트하며 쥐꼬리만 한 월급에 기뻐하는 그의 모습은 김성익의 경계심을 무장 해제를 시켰다.

    그렇게 3년.

    어느새 비서 겸 운전기사에 불과했던 김지원은 자금의 흐름에까지 관여하고 있었다.

    그랬음에도 사람들은 물이 스펀지에 스며들 듯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다른 의도 있을 거라고 그 누구도 의심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그날이 찾아왔다.

    모든 사기를 접고 철수를 하는 그날이.

    부아앙!

    “타세요!”

    어둔 저녁, 너 넘버의 SUV를 끌고 온 김지원의 모습에 김성익과 사람들은 아무런 의심 없이 올라탔다.

    “도주로는 어떻게 되는데?”

    “일단 신안으로 간 다음에 미리 준비한 배를 타고 인천으로 갈 겁니다. 배는 인천의 조 선장님이 보내 주시기로 했어요.”

    인천에서 유명한 밀항 알선 업자.

    그의 이름은 자신도 들어 봤다.

    “그리고 밀항?”

    “빙고! 사장님, 아니 성익 형님은 앞좌석에 앉으셨으니까 안전벨트 메시고, 뒤에 괜찮죠?”

    “아이씨, 좀 큰 차로 가져오지. 모양 빠지게.”

    “큰 차는 눈에 띄잖아요.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대전을 빠져나간 차는 달리고 달려 신안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잠들지 않았다.

    작업을 마무리하고, 돈의 분배만 남은 상황이다.

    서로 믿지 않으면 칠 수 없는 게 사기라지만, 어차피 사기꾼들.

    뒤통수를 칠 수 있기에 그들은 정신을 또렷하게 유지했다.

    그렇게 도착한 신안.

    봄이라지만 새벽이라 그런지 쌀쌀히 불어오는 바람에 그들이 옷깃을 여민다.

    “어후. 추워.”

    “지원아, 배는?”

    다른 사람들처럼 담배부터 문 김성익의 눈에 긴장감이 서린다.

    외져도 너무 외지다.

    “도착할 시간이 됐는데…… 아, 왔네.”

    핸드폰을 켠 김지원은 팔을 흔들었고, 이내 곧 저 멀리서 불을 끈 배 한 척이 다가온다.

    통통통통통!

    “사장님!”

    “이 사람들입니까?”

    “예, 여기요. 한 사람당 2백만 원씩.”

    돈을 지불한 김지원은 돌아서며 김성익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럼 조심히 가세요, 형님들.”

    “뭐?”

    “응? 왜요?”

    “아니, 같이 안 가고?”

    “퇴직금도 다 주셨잖아요. 제가 말했죠? 형님, 누님들이 얼마를 벌건 난 신경 안 쓴다고?”

    정말 미련이 없는 듯한 모습에 김성익은 놀라고 만다.

    ‘정말이었던가.’

    “……그럼 이제 뭐 할 거냐?”

    “모아 놓은 월급으로 집 하고 차 사야죠. 그동안 정기예금에 적금 들어 놓은 게 있으니까 거기에다가 대출 풀로 받아서 원룸 건물 하나 사려고요. 흐흐. 이 나이에 건물주가 되는 거죠. 다음에 또 이런 일 있으면 불러 주세요! 아, 이렇게 헤어지기 아쉬우니까 건배하죠!”

    술을 마시지 않을 테니까 캔커피로.

    김지원은 국도의 외딴 휴게소 자판기에서 뽑은 캔커피를 내밀었고, 김성익과 일당들은 피식 웃으며 받아 들었다.

    “희한한 새끼.”

    “이왕이면 성실한 놈이라고 말해 주세요.”

    “……아무튼 다음에 또 보자.”

    “흐흐. 넵! 자, 건배!”

    “건배.”

    캔커피를 딴 그들은 단숨에 들이켰고, 그렇게 그들은 헤어졌다.

    통통통통통!

    “다음에 또 봐요!”

    김성익은 멀어지는 불빛을 바라보며 손을 저었다.

    그렇게 긴장이 조금 풀려서일까.

    부다다다당

    배가 속도를 높이기 시작하자 잠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아니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에 다급히 선장을 바라보던 찰나에 김성익은 정신을 잃었다.

    * * *

    그리고 정신을 깨어나 보니 이곳.

    “흐으…….”

    ‘대단한 새끼.’

    김지원은 이렇게 뒤통수를 치기 위해 무려 3년을 연기했다.

    아니 애초부터 이러기 위해서 교도소에서부터 연기를 했던 것이다.

    정말 대단한 놈이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경악스러운 점이 있다.

    ‘어디지?’

    김지원이 소속된 단체가.

    마치 어느 단체에 소속된 듯했던 김지원.

    김성익의 눈빛이 흐려지는 순간이었다.

    “하. 최종혁 이놈은 정말 대단하네요. 코가 개코보다 더하네. 내가 납치 계획을 어떻게 짰는데…… 하아.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예.”

    바깥에서 들리는 김지원의 목소리.

    덜컹!

    문을 열고 들어오는 김지원의 손에 송곳이 들려 있자 김성익이 발작을 한다.

    “다, 다 말했잖아! 네가 집요하게 묻던 내 노하우도 다 말했고! 숨겨 놓은 돈 들의 위치도 다 말했잖아-!”

    그러니 이제 그만 죽여 주세요.

    죽고 싶습니다.

    “네. 그러려고요.”

    “……뭐?”

    쿠웅!

    “아직 더 뽑을 게 남은 것 같지만, 꽤 골치 아픈 놈이 들러붙었거든요. 잘 가요.”

    푸우욱!

    김지원의 송곳이 김성익의 목을 꿰뚫었다.

    * * *

    “해 저문 소양강에.”

    한 손에 바지락이 한 움큼 든 양동이와 호미를 든 장년인이 파도가 출렁이는 뻘을 걷는다.

    “아따, 여기도 오랜만에 오구마잉.”

    지금은 아무도 찾지 않는 섬의 한구석. 근처에 있던 마을이 노령화로 인해 사라진 탓이다.

    저 멀리 있는 다 무너진 마을을 바라보던 장년인이 한 곳에 주저앉으며 호미를 든다.

    삭삭!

    뻘을 긁는 호미질에 드러난 바지락 하나.

    “흐흐. 고놈이 좋아하겄제?”

    바지락 귀신인 10살 늦둥이 아들.

    “근디 이놈은 어디 간 겨? 지 아빠가 이렇게 지 좋아하는 거 잡고 있는디.”

    “아빠!”

    “어디 갔다 오냐. 위험항께 딱 붙어 있으라고 혔냐, 안 혔냐!”

    “아빠, 이거.”

    “응?”

    귀여운 아들이 내미는 뭔가를 본 장년인이 눈을 부릅뜬다.

    피가 굳어 있는 송곳 한 자루.

    “니 다쳤냐?! 어디 봐! 어딜 얼마나 다쳤는디!”

    “아니, 저기.”

    중년인은 아들이 가리키는 저 멀리 마을 근처, 하얀 건물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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