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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701화 (701/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701화>

“여기야, 여기!”

술집 안으로 들어서던 박승태가 손을 흔드는 친구를 발견하곤 잠시 멈춘다.

번듯한 정장 차림.

박승태로서는 그토록 그리는 옷.

‘나보다 한참 못났던 놈인데…….’

울컥 차오르는 질투에 당황한 그는 애써 감정을 억누르며 다가간다.

“이제 퇴근했냐?”

“어휴. 아주 죽겠어. 나도 이제 사원이라고 일감을 막 던져 주는데…… 차라리 뭘 모르던 인턴 때가 나았다니까.”

자랑질 같은 친구의 말에 박승태가 다시 차오르는 질투를 흩어 버린다. 친구가 일부러 이런 말을 하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포기하지 말라고.

배가 아파서라도 희망의 끈을 놓지 말라고.

“넌? 요즘 좀 어때?”

“……똑같지.”

낮에는 이력서를 넣고, 밤에는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리고 돌아와 술을 마시며 신세를 푸념하고 한탄한다.

왜 학창 시절에 조금 더 노력하지 않았을까 매일매일 후회 속에 잠든다.

“어디까지 지원해 봤는데?”

“이젠 중소기업에 지원해 볼까 하려고.”

더 이상 이력서를 넣을 대기업이 없다.

아니, 이젠 중소기업에 취직을 할 수 있을지도 자신이 없었다.

“희망 직종은? 너 원래…….”

“몰라. 아무거나 해야지.”

몇 달 후면 서른이다. 영업이든, 생산이든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신안 쪽에 건설 붐이 일어나고 있다니까 거기 가 볼까도 생각 중이야.”

“삼전이나 계림그룹 협력사로?”

“하청에 하청이라도. M-컴퍼니라면 정말 좋고. 거긴 푸드 파트 홀매니저도 정직원이잖아.”

그리고 알아보니 이들 모두 한참 채용 공고를 내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서 무슨 일인데?”

“뭐가 그렇게 급해? 일단 마시자고.”

친구와 박승태의 잔이 부딪친다.

한 잔, 두 잔, 세 잔.

잠시 동안 둘은 추억을 곱씹으며 웃음꽃을 피웠다.

“그래서 무슨 일인데?”

결국 인내하지 못한 박승태의 모습에 친구가 히죽 웃는다.

“너 내가 어디서 일하는지 알지?”

“브릴리언트 컨설턴트라고 했잖아.”

외국계 기업이었다.

학창 시절엔 공부를 거의 안 해서 성적이 밑바닥에서 놀았던 친구지만, 군대를 다녀온 후엔 정말 열심히 공부해서 작년에 합격하기 전까지 무려 6개의 자격증을 딴 독종이었다.

브릴리언트 컨설턴트도 그런 친구의 악바리 근성을 알아차렸던 게 분명했다.

“정확히 뭘 하는 곳인지 알아?”

“회사의 경영 전략을 컨설팅해 주는…….”

“아니.”

“아니라고?”

“……하.”

갑자기 한숨을 내쉰 친구가 술을 들이켠다.

꽁꽁 숨겨 왔던 비밀을 말하려 하니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결국 입을 연다.

그것이 친구 박승태를 만나러 온 이유였으니 말이다.

“너 혹시…… 취업 알선 브로커라고 아냐?”

“어?”

철학과를 나온 병신 따위가 외국계 기업에 취직을 할 수 있었던 비결.

아무리 취직이 급하다지만, 그런 곳에서 일하고 싶냐는 지탄이 두려워 박승태에게 하지 못했던 비밀.

우연히 찾아왔던 기회.

취업 알선 브로커.

친구의 눈이 무겁게 빛났다.

“난 이만 가 볼게. 그리고…… 고맙다.”

“취직하면 한턱이나 쏴, 인마.”

한턱뿐일까. 취직만 할 수 있다면 몇 번이고 사 줄 수 있었다.

박승태는 자신을 위해 영원히 숨겨 두고 싶었을 비밀을 토해 낸 친구의 우려와 격려에 이를 악물며 집으로 향했고, 친구는 그런 박승태를 보며 혀를 찼다.

“다 놓아 버렸구나.”

친구의 가슴이 아파 온다.

공부벌레라 불렸지만, 누구보다 밝게 빛났던 박승태.

언제나 앞장서고 솔선수범했던 자랑이 내뿜던 빛이 금방이라도 꺼질 듯 희미하다.

친구는 자신의 오지랖으로 인해 부디 박승태가 다시 빛을 환하게 내뿜을 수 있기를 바랐다.

꿀꺽! 꿀꺽!

“크!”

오늘따라 술이 달았다.

* * *

쿵!

“7천만 원이요?”

몇 그루의 난초가 놓여 있는 햇살 가득 스며드는 사무실, 박승태가 기함을 토한다.

“우리 김 사원에게 들으니까 그동안 인사과에 지원하고 계셨다면서요?”

대기업, 인사과.

대기업이 왜 대기업인가. 초봉부터 4천만 원 이상으로 시작하기에 대기업인 것이다.

수백 대 1의 경쟁력이 우스운 대기업. 그런 대기업에서도 중추 부서가 바로 인사과다.

“그렇다 보니 아무래도 최소 6천만 원 정도는 그쪽 담당자들에게 찔러 넣어 줘야 그쪽에서도 호응이 나오거든요.”

그리고 남은 1천만 원을 브릴리언트 컨설턴트가 수수료로 가져간다.

“그리고 비용도 너무 부담스러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대기업이 왜 대기업이겠습니까?”

대출도 잘 나오니 대기업이다.

취업만 되면 고금리로 받은 대출을, 저금리 사내 대출로 전환이 가능해진다.

원리금균등 상환 기준, 5년 동안 월 120만 원 정도만 상환하면 원금까지 모두 갚는 것이다.

부담이 안 되는 액수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부담이 지나치게 큰 것도 아닌 액수.

“물론 허리띠를 약간 졸라매셔야겠지만, 대략 5년이면 다 갚을 수 있죠. 5년 후면, 승태 씨 나이가 몇 살입니까? 고작해야 서른 중반이에요. 사회인으로서는 참 젊은 나이라 이겁니다.”

“그, 그런가요?”

“또 그렇게 대출을 다 갚고 나서 또 대출을 해서 집을 사고, 차를 사고, 부모님께 효도할 수 있는 겁니다.”

그리고 예쁜 아내를 얻어 두 사람을 꼭 닮은 자식들을 낳아 알콩달콩 살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대출은…….”

“승태 씨, 대출도 능력이에요. 자산입니다.”

집도 절도 없는 일용직 노가다 일꾼이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을까.

“전혀!”

3금융권도 어려워 사채를 빌려야 한다.

“사채가 얼마나 무서운지는 아시죠?”

“네, 뭐…….”

“그런데 승태 씨는 다릅니다. 왜?”

“대, 대기업 사원이니까?”

“그렇죠!”

대한민국에서 공무원 다음으로 안정된 직장.

그러나 공무원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월급을 받는 대기업.

“1금융, 2금융에서 제발 우리 돈 좀 빌려 가라고 애원을 하는 겁니다. 고작 취직만 했을 뿐인데!”

고작 취직이 아니다. 인생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대기업에 취직을 하면 부모님 어깨가 얼마나 펴지시겠습니까.”

우리 아들이 대기업에 다닌다.

그 한 문장이 부모님으로 하여금 어딜 가서도 콧대를 세울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몇 년이 지나도록 취업을 못한 아들 때문에 이웃들, 친척들 앞에서도 움츠러들었던 가슴을 쭉 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동안 받기만 해 왔던 부모님의 사랑을 일부나마 갚을 수 있는 것이다.

“아…….”

“심지어 저희는 3년 안에 취직을 시켜 드리지 못할 시 전액 환불을 약속드립니다.”

“헉!”

“부디 신중히 생각해 보시고 다시 연락 주세요. 언제나 승태 씨의 연락을 기다리겠습니다.”

고개를 꾸벅 숙이는 담당자의 모습을 응시하던 박승태는 입술을 달싹이다 일어서 브릴리언트 컨설턴트 건물을 빠져나왔다.

고작해야 5층짜리 꼬마 빌딩의 한 층만 겨우 쓰고 있는 브릴리언트 컨설턴트.

“7천만 원…….”

현재까지 자신이 모은 금액이 약 2천 5백만 원.

군대에서부터 아득바득 모은 돈에, 은행에서 신용 대출까지 받는다면 아마 3천 5백만 원까진 어떻게든 모을 수 있을 거다.

그래도 3천 5백만 원이 부족하다.

‘이게 맞는 걸까?’

이렇게까지 해서라도 대기업에 들어가는 게 정말 맞는 걸까?

또 다른 선택지는 없을까?

지이잉!

-아쉽게도 인턴에 선발되지 못하셨습니다.

부들부들!

박승태를 결국 오랜 고민을 접고 전화번호를 눌렀다.

“엄마.”

* * *

-씨발! 진짜 언제쯤 되는데요!

“죄송합니다. 저희 쪽에서 노력을 하고 있으니 곧…….”

-곧! 곧! 그놈의 곧! 아아악!

“죄송합니다.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조금만 더 믿고 기다려 주신다면 곧 좋은 일로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시끄러운 브릴리언트 컨설턴트.

전화기를 붙든 채 쩔쩔매는 사원들을 훑어보던 서른 중반의 과장이 몸을 일으켜 안쪽의 사장실로 향한다.

“그러니까…… 무슨 일이야, 이 과장.”

한 청년과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던 중년인이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보자 과장이 입술을 비튼다.

“방금 전 김 사원 친구가 7천만 원을 송금했습니다, 사장님.”

“오!”

“그런데 지금 회사 분위기가…….”

드디어 언제 취직을 할 수 있냐는 전화들이 빗발치기 시작했다.

그 말에 사장이 얼굴을 구긴다.

“흐으음. 알았어.”

“사장님. 김 과장과 지 상무도 벅차 하고 있습니다. 이젠 슬슬…….”

“이 과장, 선 넘지 마.”

명령을 내리는 건 사장 자신이다.

아무리 동료라지만 지켜야 할 선이란 게 있었다.

“죄송합니다.”

“오늘은 사원들 데리고 회식이나 해.”

“예.”

고개를 숙인 과장이 나가자 사장이 가만히 생각에 잠긴다.

이 짓을 한 지도 벌써 3년.

‘드디어 그만둬야 할 때가 온 건가?’

그러나 그동안 빨았던 꿀 때문에 머뭇거리게 된다.

미간을 찌푸린 그는 눈앞의 청년을 쳐다봤다.

“지원아, 아니 김 과장.”

“예, 사장님.”

“우리가 지금 얼마쯤 모았지?”

“한 60억쯤 될 겁니다. 사장님이 따로 챙기신 것까지 합하면 그 세 배 이상일 테고요.”

“허! 내가 따로 챙기긴 무슨! 다 너희들이 허튼 생각하지 말라고 관리하는 거지!”

견물생심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서로의 믿음이 중요한 이번 일. 돈 때문에 분란이 일어나지 않게 관리하는 것이다.

“작업이 모두 끝나면 N분의 1을 한다고 했잖아!”

“전 아무 말 안 했습니다.”

어차피 직책도 사장의 비서이자 운전기사다.

자신은 그저 처음에 약속받은 돈만 받으면 될 뿐, 자신을 제외한 4명이 돈을 어떻게 나누든 상관없었다.

“크흐음. 아무튼 그렇단 말이지…….”

눈을 가늘게 뜨며 생각에 잠기던 사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결론을 내린 것이다.

“철수하자.”

수많은 사람을 지옥의 구렁텅이에 밀어 넣는 결정임에도 마치 집 앞 편의점에서 담배를 사는 것처럼 무심한 목소리로 말하는 그.

배경을 위해 입사시킨 일반인들을 제외한 5명이 3년 동안 100억이 훌쩍 넘는 돈을 벌었다.

더 이상 엉덩이를 뭉갰다가는 경찰이 냄새를 맡을 것이다. 이젠 도주를 해야 됐다.

그런 사장의 말에 김지원은 고개를 숙이며 일어섰다.

“예. 그럼 준비하겠습니다.”

도주할 준비를.

세상에서 사라질 준비를.

‘그리고 너희가 번 돈 모두를 집어삼킬 준비를.’

몸을 돌린 그는 사장실을 빠져나가며 입술을 비틀었다.

“예, 부장님. 김지원 과장입니다. 철수 준비하겠습니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 * *

-정말 괜찮은 거 맞지?

“그럼요! 걔도 일하는 곳이라니까요! 걱정 마시고, 주변에 소문내지 마시고요. 괜히 소문 퍼졌다가는 취직 못할 수 있으니까.”

-당연하지! 내가 그런 말을 왜 하니!

무덤까지 가져가야 할 일이다.

그렇게 펄쩍 뛰던 박승태의 어머니는 아들의 밝은 목소리에 푸근히 웃는다.

아들의 목소리가 이토록 가벼워진 게 얼마 만일까.

몇 년 만에 목소리가 밝아진 아들의 모습에 어머니는 남몰래 가슴을 쓸어내린다.

-승태야.

“응, 엄마.”

-파이팅. 반찬 부족한 거 있으면 언제든 연락 줘. 아니, 집으로 와. 아빠가 너 많이 보고 싶어 하더라.

움찔!

“……취직하면 첫 월급 들고 찾아뵐게요.”

그래야 당당하게 찾아뵐 수 있을 것 같다.

“취직하면 엄마하고 아빠한테 빌린 돈부터 갚을 테니까 너무 걱정 마세요.”

-얘는! 됐어. 그런 건 천천히 갚아도 돼.

“그럴 수 있나요.”

부모님이 빌려주신 3천 5백만 원은 부모님이 사시는 집의 전세 보증금이다.

두 분에게 있어선 최후의 보루.

무조건 그것부터 갚아야 했다.

딸랑!

“아무튼 알았어요. 끊을게요. 손님 왔어요.”

-그래! 오늘도 파이팅!

“네. 엄마도요.”

“우유 어디 있어요?”

“오른쪽에 있습니다!”

환하게 웃으며 외친 박승태는 온기가 스며 나오는 핸드폰을 주무르며 입술을 핥았다.

대체 언제 연락이 올까.

오늘일까, 내일일까.

기분 좋은 기다림에 박승태의 몸이 들썩인다.

그때였다.

지이잉! 지이잉!

“어? 얘가 왜?”

브릴리언트 컨설턴트에서 일하는 친구.

‘설마 오늘?! 벌써 취직된 거야?!’

그는 다급히 전화를 받았다.

“응! 나야! 무슨 일…….”

-스, 승태야!

쿵!

왜인지 모르게 내려앉는 심장.

“어? 어? 이거 계산…….”

브릴리언트 컨설턴트로 달려간 박승태는 아무도 없는 사무실의 풍경에 그대로 무너져 버리고 만다.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에 아득한 절망에 빠져든다.

“아, 안 돼.”

안 된다. 이러면 안 된다.

그게 어떤 돈인데!

그게 어떤 희망인데!

“안 돼-!”

“흐흑. 미안해, 승태야. 내가 미안해.”

“아아아아아아악!”

이날, 박승태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 * *

삑! 삑!

“5천 원입니다…….”

“여기요.”

“감사합니다…….”

손님이 나가자 박승태가 핸드폰을 바라본다.

오늘은 연락이 올까.

그 개새끼들을 잡았다고 경찰에서 연락이 올까.

딸랑!

“헉! 헉! 미안해요, 오빠. 제가 늦었죠?!”

“어. 많이.”

“죄, 죄송해요! 얼른 옷 갈아입고 나올게요!”

안으로 들어간 교대 근무자가 옷을 갈아입고 나오자, 인수인계를 한 박승태도 창고에서 옷을 갈아입고 편의점을 나선다.

찰칵! 치이익!

“후우우.”

시간을 확인하자 더 무거워지는 시름.

“아니야. 가야지.”

몸이 부서져도 다음 알바를 가야 한다.

드러누운 어머니를 위해서도, 구멍 난 전세 보증금을 갚기 위해 저녁에 대리운전까지 뛰는 아버지를 위해서라도 다음 아르바이트를 가야 했다.

하지만 담배 한 개비의 여유만 즐기자.

담배 한 개비 정도, 딱 그 정도만 숨 쉬자.

이것조차도 안 하면 미쳐 버릴 것 같기에 박승태는 이를 악물며 걸음을 옮긴다.

그 순간이었다.

“박승태 씨?”

“누, 누구…….”

“경찰입니다.”

박승태는 전라도 사투리가 진한 두 형사를 보며 두 눈을 파르르 떨었다.

* * *

-강력 2팀 전원 대전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알겠습니다.”

통화를 종료한 종혁은 입술을 비틀었다.

“자, 그럼 나도 움직여 보실까?”

김성익. 이 개새끼들을 잡기 위해 먼저 해야 될 일이 있다. 서장으로서의 일이.

종혁은 담배를 물며 서장실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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