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700화 (700/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700화>

    “여기란 말이제?”

    마치 주차장처럼 차량들이 줄줄이 서 있는 대전의 한 렌터카 회사 건너편.

    차에서 내린 신안경찰서 강력 2팀의 막내와 그의 파트너가 늦여름 푸른 하늘 아래에서 담배를 문다.

    “예. 우진렌터카. 드림렌터카 사장이 말한 그곳 맞어라.”

    그리고 사업자 등록도 안 된 불법 렌터카 업체였다.

    그 말에 허름한 간판을 본 파트너가 실소를 터트린다. 드림렌터카 사장이 제보를 한 이유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는 얼른 범인을 잡길 바라는 마음에 제보를 했다고 하지만, 등록도 안 한 중고 차량이나 대포차를 가지고 장사를 하는 게 그냥 아니꼬웠던 것이다.

    슬그머니 경찰과 함께 가는 게 좋을 거라는 말을 하는 걸 보면 분명했다.

    즉, 이번 기회에 우진렌터카를 날려 버릴 심산인 것이다. 본인이 손을 썼다가는 역공을 당할 수 있으니,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서.

    “자기도 대포차를 굴리고 있을 텡께라?”

    “그러겄제. 여그도 아주 정글이여.”

    “……그라고 보믄 이놈의 새끼들도 참 깡도 좋당께요.”

    도심에서 버젓이 저렇게 간판까지 달아 놓고 영업을 하는 걸 보면 절로 혈압이 솟는다.

    “썩을 것들. 이 새끼들도 언제 날 잡아서 싹 다 쓸어버려야 하는디.”

    “내 말이.”

    하지만 뿌리를 뽑았다 생각하면 어디선가 또 나타나 버젓이 영업을 하는 바퀴벌레 같은 놈들.

    놈들을 박멸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말하려던 파트너가 순간 멈칫하곤 미소를 짓는다.

    “기획서 함 써 보든가.”

    “아따, 시간 낭비 아니겠습니까?”

    “서장님과 함께 움직였던 형사들 이야기 못 들었냐?”

    “듣긴 했는디…….”

    현실성이 너무 없어서 아무래도 과장된 이야기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함 혀 봐. 손해 볼 건 없잖여.”

    “으음…….”

    ‘그려, 그렇게 고민이든 뭐든 해 봐야 실력이 느는 거제.’

    이제 강력계 형사 생활 2년 차인 막내.

    나이가 젊어서 그런지 오늘처럼 생각지도 못한 기지를 발휘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었다.

    “그만 똥 싸고 연장이나 챙겨. 혹시 모릉께.”

    “아, 알았어라.”

    둘은 트렁크를 열었다.

    달칵!

    우진렌터카 부지 한구석에 세워진 조립식 건물 안.

    아직은 여름이 가시지 않아 에어컨을 튼 사무실에 앉은 우진렌터카 사장이 마우스를 클릭하며 얼굴을 찌푸린다.

    “끄응. 성수기가 지나서 그러나…….”

    9월을 기점으로 예약 문의가 뚝 떨어져 버렸다.

    현재로선 하루에 한두 대나 겨우 나갈까.

    가을 성수기가 코앞이라지만, 이대로는 직원들 월급도 주지 못할 판이다.

    덜컹!

    “다녀왔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청년의 모습에 사장의 얼굴이 밝아진다.

    “5호 차 회수했어? 긁힌 곳은? 찌라시는 다 돌렸고?”

    “긁힌 곳은 없었고, 찌라시는 가져간 거 다 돌렸어요.”

    업체 번호가 적힌 명함을 거리나 화장실, 모텔 같은 곳에 뿌리는 걸로 손님을 끌어모으는 우진렌터카.

    빠직!

    “야, 이 새끼야! 없어도 있다고 했어야지!”

    없는 기스도 만들어야 돈을 벌 것 아닌가.

    “너는 월급만 받으면 다라는 거야?! 내가 말했지? 회사를 내 것처럼 생각해야 월급이 오르는 거라고!”

    오늘도 시작된 잔소리에 청년의 피로한 얼굴이 구겨진다.

    “그럼 어쩌라고요.”

    렌터카를 받았을 때 찍은 사진과 반납할 때 찍은 사진을 비교하며 보여 줬다. 거기다 대고 어떤 야료를 부릴 순 없었다.

    “요새 핸드폰 카메라 화질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세요? 웬만한 디지털카메라 저리 가라예요.”

    “이 새끼가 그래도!”

    “자요. 보고 이야기하세요. 야료를 부릴 빈틈이 있는지 없는지!”

    ‘시발. 누군 하고 싶지 않아서 안 하는지 아나.’

    요새 사람들이 얼마나 똑똑해졌는지 사장만 모르는 것 같다.

    거기다 가끔씩 발생하는 진상들.

    어차피 불법 아니냐며 이 정도 흠집은 넘어가라고, 조금만 더 타고 다닌다고 할 때엔 정말 이 일도 때려치우고 싶다.

    그런 불상사가 생기면 결국 자신의 돈으로 메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 때문에 한 달에 가져가는 돈은 고작해야 150만 원 남짓. 매일매일 때려치우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인다.

    핸드폰을 사장의 책상 위에 거칠게 내려놓은 청년이 얼굴을 구기며 몸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열린 사무실 문 앞에 서 있는 두 사내.

    움찔!

    “……아이고. 차 빌리러 오셨구나!”

    방금 전 자신이 한 말을 들었든 말든 환하게 웃으며 일어나는 사장.

    청년을 밀어내며 앞으로 나선 사장의 모습에 두 사내, 신안경찰서 강력 2팀의 형사들이 흐뭇하게 웃으며 품 안으로 손을 집어넣는다.

    “스탑. 경찰이여.”

    쿵!

    “방금 한 말, 좀 자세히 듣고 싶은디……. 어뜨케, 한따까리 하고 시작헐까?”

    탕, 탕탕!

    “……씨발.”

    사장은 바닥을 찍는 금속 배트들과 살벌한 형사들의 눈빛에 양손을 내밀 수밖에 없었다.

    * * *

    사락!

    “이거라고?”

    장부에 붙여진 신분증 복사본을 확인한 파트너가 눈을 부리부리하게 뜨자 사장이 고개를 숙인다.

    “예. 5개월 전 차를 끌고 갔다가 사라진 놈이 그놈 맞습니다.”

    아직도 그때만 생각하면 뒷골이 땅긴다.

    차를 한 달 동안 렌트를 한다며 돈을 지불한 후 사라진 놈. 이후 당연히 차량은 회수하지 못했고, 사장은 차량을 찾기 위해 백방 노력해 봤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아따, 니들 좀 꼼꼼하다? 이렇게 신원도 다 꼼꼼하게 기록해 놓고?”

    “이런 일을 할수록 더 확실하게 따져야죠. 헤헤.”

    그래서 아예 신분증 판별기도 구매해 놓고 있다.

    “근디 왜 신고 안 했습니까? 역시 대포차라서?”

    “……예.”

    “추적기도 안 달고 뭐 혔대요? 요새 렌터카 회사들 죄다 추적기를 단다면서요?”

    “그게 수신기는 가격이 좀 비싸서…….”

    신차에는 모두 GPS 수신기를 달아 놓았지만, 놈이 끌고 간 SUV는 연식이 좀 오래된 것이기도 하고 장물로 싸게 구입한 것이라 부착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차를 회수하지 못하게 됐을 때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에라이.”

    참 잘하는 짓이다.

    혀를 찬 파트너는 몸을 일으켰다.

    “아무튼 곧 경찰들이 올 거니께 협조 잘하쇼잉.”

    “아이고, 형사님!”

    “지랄 마시고. 범죄를 저지르셨으면 그 값을 치르셔야제.”

    “끄으응.”

    “우리들도 어디 안 가고 밖에 있을 텡께 수작 부릴 생각은 하지 마쇼잉. 공무집행 방해에 경관 폭행까지 얽히긴 싫지라?”

    사장은 고개를 푹 숙였고, 혀를 찬 형사들은 우진렌터카 입구에서 서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찾긴 찾았구만이라.”

    “그랑께 말이여. 허허.”

    사건을 인계받은 지 고작 하루 만에 찾았다.

    기존에 그들의 하던 수사와 비교하면 차원이 다른 속도.

    기존의 수사 속도가 무궁화호라고 하면, 이건 거의 KTX, 아니 비행기 수준이었다.

    볼을 꼬집어 볼 정도로 믿기지 않았다.

    “진짜 돈이 만세다.”

    “서장님이 만만세지라.”

    “……응. 그렇제.”

    고개를 끄덕인 둘은 신분증 복사본을 응시했다.

    “올해 서른여덟 살이구마이라. 근디 이게 진짜 신분증 맞을까라? 위조한 거 아닐까요?”

    “혹시 모릉께 신원조회 요청하믄서 면상도 데이터베이스도 돌려 보라고 혀. 왠지 느낌이 쎄한께.”

    형사로서의 직감이 꿈틀거린다. 그동안의 경험상 이럴 땐 할 수 있는 걸 모두 해 봐야 후회를 하지 않았다.

    “옙!”

    막내가 신분증 복사본의 사진을 찍어 수사지원과로 보내자 파트너는 담배를 물었다.

    그리고 잠시 후.

    “예?!”

    “응?”

    “예, 예. 감사합니다. 예.”

    통화를 종료한 막내가 파트너를 멍하니 바라보고, 그에 파트너가 미간을 좁힌다.

    “뭐여! 왜 그러는디?”

    “나 갑자기 서장님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당께요.”

    “뭣 때문에 그러냐고!”

    파트너의 재촉에 막내가 마른침을 삼킨다.

    “놀라지 말고 들으쇼잉. 이 새끼…….”

    “빨랑 말 안 하냐!”

    “수배 떨어진 놈이어라.”

    쿵!

    “……뭐?”

    막내는 되묻는 그의 물음에 대답 대신 핸드폰을 보여 주었다.

    “역시 위조된 신분증 같은디…… 형님 말대로 범죄자 데이터베이스에 면상이 올라와 있는 놈이랑께요.”

    그것도 얼마 전에 업데이트된 놈이다.

    이름 김성익.

    나이 38세.

    “그리고…… 사기 전과 3범. 현재 취업 알선 사기 주동자로 수배 중…….”

    빠드득!

    “이 개호로 새끼가……!”

    파트너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반복된 취업 실패로 백수 생활이 길어지자 가족들 눈치도 보이고, 자존감도 밑바닥까지 떨어진 취업 준비생.

    그리고 곁에서 응원 말고는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사실에 안타까움과 미안함을 느끼는 그 가족들까지 전부 나락에 떨어뜨려 버리는 취업 알선 사기.

    자식들은 부모 생각에, 부모들은 자식 생각에 눈과 귀가 멀어서 당해 버리는 사기다.

    그렇게 간절한 이들의 마음을 농락하고 짓밟는 사기이기에 너무 악질적이라 할 수 있었다.

    “뭔 일 있습니까?”

    “……나도 당했었거든. 이 씨버랠 놈의 취업 알선 사기.”

    장남이 취업이 안 되자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기 힘들어, 소까지 팔아서 돈을 가져다 바쳤다.

    그리고 한껏 기대에 부풀었다가, 사기를 당했음을 깨닫곤 이전보다 더욱 낭떠러지까지 떨어지는 절망을 맛봤다.

    아직도 그때만 생각하면 뒷목이 뻣뻣해진다.

    “아.”

    “뭐 결국 그런 씹새끼들 잡아넣으려고 이렇게 경찰이 됐지만…… 허허.”

    오싹!

    막내가 방금 전 왜 소름 끼쳤는지 알 것 같다.

    ‘설마 이놈의 정체를 미리 알고 우리 강력계에 맡기신 건가?’

    아닐 거다. 그건 말이 안 된다.

    하지만 아니라고 하기엔 너무도 공교로운 상황.

    ‘우리 서장님은 신기까지 있나 보구마잉…….’

    혀를 내두른 그는 핸드폰을 들었다.

    “팀장님, 애들 올려 보내쇼잉.”

    -왜?

    “이 새끼 사기꾼이어라. 그것도 86억이나 해 묵은 개새끼.”

    쿵!

    현재까지 밝혀진 피해액이 총 86억, 피해자 수 112명.

    피해액과 피해자 수가 얼마나 더 있을지 모르는 대형 사건이다.

    -……서장님이 운빨이 좋은 거냐. 우리가 운빨이 좋은 거냐?

    인구 4만 5천여 명에 불과한 신안군에서 이전에 또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유례가 없는 규모의 사기.

    해결만 한다면 높은 인사고과는 따 놓은 당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따, 뭔 소리를 그렇게 한다요.”

    자신들이 운이 좋은 게 아니라 피해자들이 운이 나쁜 것이다.

    그동안 애간장이 새까맣게 탈 정도로 마음을 졸였을 그들. 이제야 사건을 인지한 게 미안해 미칠 것 같다.

    “아무튼 상황이 이렇게 됐응께 서장님께 보고나 올리십쇼. 피해자들, 대전에 살고 있응께.”

    -대전청도 들이받을 준비하시라고?

    “예.”

    -……오메. 환장하겄네. 알았어!

    최철규 팀장이 전화를 끊자 파트너는 막내를 봤다.

    “가자. 경찰 온다.”

    “예.”

    그들은 저 멀리서 다가오는 경찰차와 그 뒤를 따르는 승용차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 * *

    사각, 사각, 사각.

    생각해 보면 언제나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남들이 뛰어놀 때도 책상 앞에 앉아 있었고, 집에 와서도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까맣게 채워져 가는 공책과 밑줄을 치는 형광펜 색만이 기억의 대부분을 차지했었다.

    그런데…….

    -인사팀입니다. 면접 결과, 아쉽지만 불합격하셨습니다.

    -……진심 어린 응원의 마음을 전합니다.

    -언제나 응원하겠습니다.

    -불합격하셨습니다.

    왜일까.

    “왜지?”

    29살, 박승태가 멍하니 중얼거린다.

    오늘도 어김없이 날아온 면접 탈락 문자.

    100번째 탈락 문자.

    100이란 의미적인 숫자가 겨우 붙들고 있는 그의 이성을 무너트린다.

    “응원을 할 거면 합격을 시켜 달라고!”

    쾅!

    스펙이란 걸 만들어야 한다고 해서 자격증을 땄다.

    운전면허증, 컴퓨터활용능력 자격증, 액셀 자격증 등 간단한 자격증부터 시작해서 딸 수 있는 건 줄줄이 땄다.

    외국어를 잘하면 유리하다고 해서 토익, 토플은 기본이고, 일어와 스페인어까지 공부했다. 4개 국어를 할 수 있게 된 셈.

    그런데 그 결과는 100번째 탈락이다.

    대학이 문제였던 걸까.

    대출을 해서라도 서울에 방을 구해서 인서울 대학을 갔어야 했던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주제도 모르고 너무 높은 곳만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딸랑!

    “보햄 시가 마스터 하나요.”

    “5000원입니다.”

    담배를 찾아 내미는 그의 목소리에선 희망을 찾아볼 수 없었다.

    터벅터벅!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돌아온 원룸.

    벌써 4년째 이어진 취업 실패에 아무도 주지 않는 눈치를 주지 않음에도 견디지 못하고 시작한 자취.

    안주도 사치라 소주만 두 병 달랑 들고 온 그는 냉장고에 붙어 있는 메모지를 발견하곤 무너지고 만다.

    반찬 해 놨어.

    우리 아들 파이팅.

    언제나 응원하는 엄마가.

    묻고 싶은 게 많을 텐데 항상 응원의 메시지만 남기는 어머니.

    언제나 실패하는 아들이 보기 힘들 텐데도 계속 사랑을 해 주시는 어머니.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냉장고 속 장조림을, 하나뿐인 아들이 가장 좋아하기에 언제나 해 주시는 장조림을 꺼낸 박승태가 눈물을 쏟아 낸다.

    “끄으으!”

    죄송합니다.

    남들 다 하는 취업도 못하는 못난 아들이라서 죄송합니다.

    자랑할 수 없는 못난 아들이라서 죄송합니다.

    너무 못나 안부 인사도 못 드리는 아들이라서 죄송합니다.

    입안에서 뭉개지는 짜고 따뜻한 어머니의 사랑에 박승태는 오늘도 무너지고 만다.

    지이잉! 지이잉!

    발신자를 확인한 박승태는 얼른 얼굴을 닦는다.

    “응. 왜?”

    -어디야? 면접 결과는?

    “……몰라.”

    -큭큭. 또 떨어졌냐?

    “야, 이…….”

    -나와, 병신아. 형한테 좋은 소식이 있으니까. 오랜만에 얼굴 좀 보자.

    그는 진지함으로 가득한 친구의 목소리에 눈을 크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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