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694화>
“푸핫핫!”
마우스를 클릭한 종혁이 모니터를 보며 웃음을 터트린다.
“정말로 해냈네.”
인수인계 및 업무 파악.
모두가 족히 반년은 걸릴 거라 예상했던 일이 한 달도 안 되어 끝나 버렸다.
신안경찰서의 모든 부서가 전부 말이다.
그것도 완벽하게.
역시 돈의 위력인 걸까.
한참을 웃던 종혁이 다시 모니터를 보며 각 부서가 제출한 자료들을 다시금 검토한다.
“역시…….”
다시 봐도 완벽하다.
함박웃음을 지은 종혁은 내선전화기를 들었다.
“예, 서장입니다. 1등이 되신 걸 축하드립니다.”
-우와아아아아악!
경찰서 한 곳에서 터져 나오는 함성.
-저, 정말 저희가 1등이 맞는 겁니까?!
“예, 맞습니다.”
이들보다 더 빨리 인수인계 및 업무 파악을 해낸 부서들이 있다.
이를테면 경무계나 생활안전계 등 파악할 내용이 그리 많지 않은 부서들.
하지만 공평성을 기해서 상황과 업무량 등 여러 요소를 따져 봤을 땐 이 부서가 1등이었다.
-와아아아아아악!
다시 터져 나오는 함성들.
-추, 충성! 앞으로 열심히 하겠구마이라!
씩 웃으며 전화를 끊은 종혁은 다른 부서로 전화를 걸었다.
“방금 전 함성 들으셨죠?”
-저, 저희가 2등이어라?!
“예, 2등이십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와아아아아아악!
신안경찰서가 함성에 휩쓸렸다.
“서장님! 같이 가셔야지라!”
“어이쿠. 전 눈치 많고 센스 넘치는 상사가 되고 싶으니까 회식은 눈치 없는 여러분들이 이끄십시오. 그럼 수고들 하세요.”
“오메! 그게 무슨 서운…….”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업무에 지장 안 가게 적당히 드세요.”
“서장님! 서장님!”
“아따, 미치겄네!”
등 뒤로 들리는 아쉬운 소리에 미소를 지은 종혁이 경찰서를 나서며 담배를 문다.
찰칵! 치이익!
“이제 업무 파악도 모두 끝났으니까…….”
뭐부터 건드려야 할까.
“송도실업?”
신안 지도읍에 똬리를 튼 송도실업.
태흥파의 보스 이태흥의 매제인 김동철의 송도실업.
김동철 본인이 신안 지도읍에 위치한 솔섬, 한자로는 송도라 불리는 작은 섬 출신이라 회사 이름을 그렇게 지은 것으로 추정됐다.
“용역에 단란주점, 보도방, 주류 유통, 일회용품 유통…….”
깡패 하면 생각나는 모든 짓을 다 하고 있는 놈들.
게다가 CCTV 설치 같은 전문적인 일도 하면서 지자체 사업까지 따내고 있다.
물론 이태흥이 뒤에 있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놈들의 규모는 제법 컸다.
“아니야. 아직 건드릴 때가 아니야.”
놈들을 잡아들일 증거가 없다.
CCTV에 관한 일을 종혁 자신에게 걸렸으니 군수와 이어진 끈도 잠시 끊어 버렸을 터. 이쪽은 방심하도록 놔두는 게 낫다.
“흠. 당장 급한 게…….”
이태흥, 김동철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할 일은 참 많았다.
인구가 4만 5천 명밖에 안 되는 이 작은 군에 뭔 사고가 이리 많은 것인지, 종혁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에휴. 일단 오늘은 좀 쉬자, 쉬어…….”
지이잉! 지이잉!
경찰서 옆에 있는 숙소의 대문을 열려는 순간 울리는 핸드폰.
발신자를 확인한 종혁이 낯빛을 굳힌다.
“예, 알겠습니다. 지금 가겠습니다.”
빠드득!
통화를 종료하며 몸을 돌리는 종혁의 얼굴이 귀신보다 더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 * *
해가 저문 밤, 오칠봉의 집.
“에이. 다 마셔 브렀네.”
마루에 앉은 오칠봉이 빈 막걸리 통을 뒤집어 흔들다 집어 던진다.
텅, 텅텅!
몸을 일으킨 오칠봉이 냉장고로 걸어가 열어젖힌다.
“……뭐시여. 벌써 두 병을 다 마신 거여?”
오늘은 타는 속이 쉬이 진정되지 않을 것 같아서 평소보다 한 병을 더 사 왔는데 다 마셔 버렸다.
“부족한디…….”
오늘따라 술은 또 왜 이렇게 잘 들어가는 걸까.
입맛을 다시며 안방과 대문을 번갈아 보며 입맛을 다시던 오칠봉은 혀를 차며 발을 뗐다.
“그려. 딱 반병만 더 마시는 거시여.”
CCTV를 공짜로 달면서 돈을 벌지 않았던가.
물론 CCTV를 달 생각 따윈 없었지만, 그래도 공돈은 공돈. 딱 반병만 더 마시는 거다.
“남은 반병은 내일 마셔도 됭께…….”
꾸깃꾸깃한 지폐를 챙겨 든 그는 집을 나섰다.
그와 동시에 그의 달아오른 몸을 달래는 서늘한 바람.
“아아, 신라의 바아암이여……. 어이쿠, 좋다.”
기분 좋게 취해 슈퍼에 도착한 오칠봉이 문을 열어젖힌다.
드르륵!
“아이구메!”
널브러진 것들을 정리하다 깜짝 놀라는 할머님.
“숨겨 놓은 서방이라도 있디야? 뭘 그리 놀란대?”
“……취했으믄 개소리 말고 들어가 자빠져 자.”
“안 취했는디?”
취했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나 인상부터 찌푸리고 들어오며 딱 용건만 보는 오칠봉이 이런 장난을 칠 리 없었다.
“한 병? 두 병?”
“한 병만 주쇼!”
“있어 봐.”
취객은 상대하는 게 아니기에 얼른 막걸리 한 병을 가져온 할머니가 오칠봉에게 돈을 받는다.
그러며 눈을 가늘게 뜬다.
“씹을 거라도 줘?”
“공짜로? 아님 말고!”
“육시랄 짠돌이 놈. 이런 놈이 애들 용돈은 어찌 주는지 몰라.”
움찔!
“……지금 요, 용돈이라 하셨어라?”
용돈.
올라왔던 취기가 한순간에 싹 가시는 한 마디.
눈에 초점이 돌아온 오칠봉의 얼굴은 사납게 굳었다.
“내가 언제 용돈을 줬다요! 누구헌티!”
“왜? 누군 주고, 누군 안 주믄 말 나올 깜시 놀라냐? 걱정 마야. 아무 말 안 할 텡께.”
“그런 게 아니랑께 그러네!”
“그려, 그려. 니 말이 맞다. 니 안 줬응께 나이 많은 사람헌티 성내지 마러. 콱 대가리를 조사불랑께.”
“……어흠.”
라면이나 찌개, 술 등 간단한 음식도 파는 슈퍼.
할머님이 라면 국물이 말라붙은 숟가락을 들며 위협을 하자 오칠봉이 고개를 돌린다.
“다 샀으믄 얼른 꺼져. 문 닫아야 항께. 그거 처먹고 오밤중에 문만 두드려 봐라.”
혀를 찬 할머님은 슈퍼에 딸린 방 안으로 들어가며 문을 쾅 닫았고, 그런 방문을 노려보던 오칠봉이 이를 악물며 돌아선다.
‘그건 또 언제 봤을까잉.’
심장이 서늘해졌던 방금 전의 말.
“조심해야 쓰겄네.”
걸리면 마을 어른으로서 어찌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있을까.
혀를 찬 그는 손에 들린 막걸리를 쳐다보다 이내 뚜껑을 딴다.
방금 전 말 때문에 입안이 바싹 말라서 그런지 목을 축일 게 필요했다.
꿀꺽꿀꺽!
“크으!”
고개를 털자 내려앉았던 술기운이 훅 하고 다시 올라온다.
오칠봉은 술기운과 함께 올라오는 흥에 다시 노래를 흥얼거리며 집을 향했다.
바로 그때였다.
“응? 저건 뭐여?”
거목 아래 뭔가가 있다.
눈을 가늘게 뜨며 쳐다보던 오칠봉은 갑자기 일어나 이쪽으로 다가오는 그림자에 깜짝 놀란다.
“뭐, 뭐여! 구, 구신이면 가고, 사, 사람이믄…….”
“안녕하세요.”
움찔!
세차게 뛰던 심장을 가라앉히는 어린 목소리.
희미한 가로등이 그제야 그림자를 두르고 있던 주인을 비추자 오칠봉이 허탈하게 웃는다.
“……지숙아, 니 왜 이 시간에 나와 있냐?”
“할머니가…….”
술을 드시고 왔다.
술을 마시면 더 무서운 할머니가 되는 할머니.
술을 드실 때만 방문을 열어젖히는 더 무서운 할머니.
이럴 땐 할머니의 눈에 띄면 안 된다.
눈에 띄면 잠을 잘 수 없을 만큼 심장이 아픈 소리를 들어야 한다.
‘저녁밥도 못 먹었는데…….’
이럴 땐 할머니가 참 밉다.
“아이고, 그 양반이 또 지랄하나 보구마잉.”
그렇게 중얼거리던 오칠봉이 애처롭게 서 있는 지숙의 모습에 잠시 멍해진다.
‘안 되는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그의 눈은 주변을 훑는다.
불이 꺼진 슈퍼. 늦은 밤이라 불이 꺼진 집이 더 많은 어두운 동네. 높이 달린 방범용 CCTV를 힐끔 살핀다.
꼴깍!
‘그, 그려. 며칠 동안 안 왔잖여.’
그 젊은 놈의 서장도 이제 바쁜 것일 터.
그 며칠 동안 얼마나 참았던가.
얼마나 애가 탔던가.
막걸리를 꽉 움켜쥔 오칠봉이 지숙을 향해 사람 좋은 미소를 짓는다.
“지숙아, 니 할미 잘 때까정 이 할애비 집에 있을래?”
‘아, 다시 나쁜 할아버지다.’
한 번씩 나쁜 할아버지가 되는 할아버지.
그리고…… 용돈을 주는 할아버지.
“맛있는 것도 있어야.”
“……참외?”
“그려, 참외! 까까도 있고.”
꼬르륵!
우렁차게 우는 배를 붙잡은 지숙은, 선생님과 놀러 갈 생각에 신이 난 지숙은 더 나쁜 할아버지가 되어 버린 할아버지가 내미는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 * *
아삭!
“으흐응.”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참외에 지숙이 TV를 보며 발을 동동 구른다.
나쁜 할아버지, 나쁜 아저씨들 집에 오면 언제나 먹는 맛있는 과일과 과자들.
그리고 보고 싶은 걸 마음껏 봐도 되는 TV까지.
아픈 건 너무나도 싫지만 할머니 집에선 먹을 수 없는 것들이기에, 볼 수 없는 TV이기에 참는다.
덜컹!
부엌으로 이어진 문을 열며 오칠봉이 들어오자 지숙이 언제나 그렇듯 양손을 뻗는다.
그에 또 언제나 그랬다는 듯 지숙에게 들고 온 쟁반을 내미는 그.
지숙은 쟁반에 올려진 과자와 음료를 입에 가져간다.
아삭아삭 소리를 내며 오물오물 위아래로 움직이는 빵빵한 볼과 작은 입술.
그 아래로 떨어지는 가냘프고 까맣게 탄 목선.
평평한 가슴을 지나 안으로 숨는 사타구니에 오칠봉의 혀가 삐져나온다.
꿀꺽!
“맛있냐?”
“네.”
대답을 하는 지숙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진다.
지금부터다. 지금부터 시작이다.
나쁜 할아버지가 자신에게 하는 아픈 짓이 말이다.
지숙은 일부러 더 TV를 봤고, 그런 줄도 모르는 오칠봉은 손을 들어 지숙의 가슴을 툭툭 털어 낸다.
“어이구, 그런디 뭘 이렇게 칠칠치 못하게 흘리고 먹는디야.”
아무것도 묻지 않았는데 가슴을 털어 내는 손.
너무 큰 어른의 손길에 지숙의 가슴속이 텅텅 울린다.
“아따, 이건 더 묻기 전에 물을 묻혀야겄네. 자, 우리 지숙이 벗자. 만세.”
지숙은 양팔을 들었고, 오칠봉은 지숙의 상의를 벗겼다.
“잉? 뭐여? 속옷이네?”
‘벌써 이년이 부라자를 찰 때인가?’
“크, 크흥!”
왜인지 심장이 더 강하게 뛰자 오칠봉이 더 다급해진다.
“발도 만세!”
“발도 만세.”
속절없이 벗겨지는 바지. 그리고 속옷.
그리고 오칠봉도 바지와 속옷을 벗는다.
그러자 흉하게 늘어지는 흉물.
“흐흐. 지숙아, 이 할애비랑 ‘아이, 착하다’ 놀이 할까?”
오칠봉은 애당초 허락을 구할 생각이 없었다는 듯 지숙의 대답이 떨어지기도 전에 천천히 지숙에게 다가선다.
그리고 그 손으로 지숙을 만진다.
‘선생님. 경찰아저씨…….’
지숙이 둘을 떠올리며 입술을 앙다무는 순간이었다.
꽈아앙!
“야, 이 금수만도 못한 새끼야!”
“뭐, 뭐여!”
다급히 일어나는 오칠봉의 가슴을 누군가의 발이 걷어찼다.
* * *
찌르찌르!
풀벌레가 우는 가룡리 인근의 큰 저수지.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던 낚시꾼이 해가 지자 기지개를 켠다.
“아하암. 아, 따가. 이 씨부럴 놈의 모기들.”
여름이 다 지나가는데 이놈의 모기들은 왜 안 사라지는지 모르겠다.
띠리링! 띠리링!
갑자기 벨소리가 적막한 저수지를 요란하게 울린다.
“예, 여보세…… 억? 진짜? 우덜이 3등이라고라? 아, 알겠습니다! 끊을게라!”
다급히 통화를 종료한 그가 근처에 세워둔 텐트, 그 옆의 승합차로 뛰어간다.
드르륵! 쾅!
안이 아예 보이지 않도록 까맣게 선팅이 된 승합차.
커다란 기기들 앞에 앉아 하품을 하던 한 사람이 깜짝 놀라 사내를 본다.
“뭐, 뭐시여?”
“우리가 3등이랍니다!”
“……지, 진짜? 그, 그럼?”
못해도 30만 원이다.
“크으! 이번에 딸내미들 개학 선물은 사 줄 수 있겠구마잉!”
지난 한 달여 동안의 고생이 눈앞을 스쳐 지나가자 시야가 살짝 흐려진다. 이런 날은 팀원들과 한잔 진하게 해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어 아쉽다.
“우덜끼리 축하하면 되지라!”
“야, 이 미친 또라이 새끼야. 누가 잠복 중에 술을 처먹으라고 했냐?”
“술이 아니라 거기 냉장고에 있는 시원한 아이스크림 말하는 거 아뇨! 그 서른한 가지 맛!”
“……뭘로 먹을래?”
“지는 초코요. 그보다 지숙이는 어떻게 하고 있다요? 아까 지 할미가 술 처먹고 옹께 도망쳐 나왔잖여라.”
“맨날 가던 그 나무 앞에 있더라. 이거제?”
“예, 감사합니다. 잘 먹겠……?! 켁! 쿨룩쿨럭!”
“아따, 천천히 먹으랑께. 누가 뺏어 먹냐?”
“쿨럭! 쿨럭!”
아니라고 고개를 저으며 커다란 기기에 있는 모니터를 가리키는 사내.
느낌이 이상해 고개를 돌린 다른 형사가 눈을 부릅뜬다.
“저, 저거?”
가룡리의 길목 길목을 비추는 CCTV 영상들이 흘러나오는 모니터에 웬 노인의 손을 잡고 이동을 하는 지숙이 비친다.
“씨발!”
아이스크림을 내팽개치며 앞좌석으로 달려가는 둘.
“얼른 타!”
“예, 서장님! 지금 용의자 중 한 명인 오칠봉이가 지숙이를 데려가고 있어라!”
승합차에 올라탄 그들이 다급히 액셀을 밟는다.
부아아앙!
마치 쏜살처럼 날아가듯 달리다 가룡리가 나타나자 속도를 줄이는 그들.
적막한 가룡리에 조심스럽게 접어든 그들은 차를 세우며 소리를 죽여 내린다.
“방금 오칠봉이었지라?”
“저쪽이다.”
가룡리의 지리는 익숙하다는 듯 거침없이 나아가는 둘.
그러다 오칠봉의 닫힌 대문 앞에 선 둘은 서로를 본다.
“어떡할까라. 벨 눌러라?”
“……아니.”
그랬다간 혹시 모를 증거가 사라질 수 있다.
만에 하나 지숙이 나쁜 짓을 당하지 않는 상황이라면 앞으로 놈들을 처벌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형사가 주목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는 순간 자신들의 더럽고 추악한 욕망을 숨길 그들.
고개를 끄덕인 둘이 단숨에 담벼락을 넘는다.
탁!
아주 작게 터져 나오는 소리.
수신호를 나눈 둘이 오칠봉의 집 건물로 향한다.
숨소리마저 죽인 채 거실 쪽 창문을 조심스레 열어젖히는 둘.
눈을 그 틈 사이로 집어넣는 순간이었다.
쿵!
형사의 몸이 뻣뻣이 굳는다.
저게 사람일까.
저게 정녕 사람이 하는 짓이 맞는 걸까.
어린아이를 바른길로 인도해야 할 어른이 어린아이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걸까.
‘뭐여. 뭔데.’
부들부들!
“이, 이 개 씨부랄 놈의 새끼!”
“야!”
콰아아앙!
“야, 이 금수만도 못한 새끼야-!”
사내, 형사는 달려가 오칠봉의 가슴팍을 걷어찼다.
차라리 죽어 버리라고 걷어차 버렸다.
뿌드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