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693화>
“…….”
태흥건설의 사장, 이태흥이 멍하니 통화가 끊긴 핸드폰을 본다.
그것도 잠시.
곧 얼굴이 일그러진 그가 핸드폰을 집어 던진다.
파아악!
소파에 부딪쳐 바닥을 뒹구는 핸드폰.
씩씩거리던 그가 입을 다문다.
“이 새끼가 갑자기 왜?”
그날 치욕을 당한 이후 조사해 알게 된 종혁의 정체.
본청의 불도저, 최종혁.
국회의원까지 들이받아 끌어내린 미친 또라이였다.
복수를 하려고 해도 뒤탈이 있는 놈인지, 없는 놈인지 알아보고 해야 했기에 조사해 봤던 그로선 기겁할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그래서 복수심은 잊고 아예 쳐다도 안 봤는데, 갑작스럽게 쌍욕을 들었다.
그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물었다.
“……내 CCTV라고 했지.”
최근에 자신이 CCTV와 연관이 된 건 하나밖에 없다.
신안군수가 설치를 맡긴 CCTV.
그저 설치만 해 주는 것뿐인데도 금액이 무려 30억짜리였던 계약이었다.
당연히 욕심과 욕망이 얽히고설킨 계약이었다.
이왕이면 CCTV 구입까지 맡겨 줬으면 싶지만, 그것까진 관여할 수 없었던 일.
“그런데 왜 자기 CCTV라고 했을까…….”
눈을 데구루루 굴리던 그는 바닥을 굴러다니는 핸드폰을 주워 군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군수님. 이태흥입니다. 잘 계셨지요?”
-아이고, 이 회장. 무슨 일입니까?
“아,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저희에게 설치 계약을 맡기신 CCTV 말입니다. 혹시 신안서의 최종혁 서장과도 연관이 있는 겁니까?”
-왜요? 무슨 일 있습니까?
“아니, 아닙니다. CCTV를 설치하는데, 최 서장이 직접 설치 현장에 나왔다고 해서 어떻게 된 일인가 연락을 드린 겁니다.”
-아아. 허허, 그 사람……. 예, 그렇기는 하지요. 그 CCTV 모두 최 서장과 인연이 깊은 분께서 기부해 주신 것이니 말입니다.
타악!
이태흥이 이마를 짚는다.
‘이 개새끼야! 그런 일이라면 말을 해 줬어야지!’
그랬다면 계약을 달리 생각했을지도 몰랐다.
“하하. 그랬던 거였군요. 알겠습니다. 아, 다음에 식사 한번 하셔야지요? 제가 좋은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예. 예. 그럼 끊겠습니다.”
통화를 종료한 이태흥이 생각을 정리하고자 잠시 눈을 감는다.
빠드득!
“아니지. 혹시 모르는 일이지.”
그는 치솟는 불길함을 억누르며 다시 핸드폰을 들었다.
“매제.”
-혀, 형님!
움찔!
맞다. 방금 전 자신이 생각한 게 맞았다. 이 매제 놈이 또 되지도 않은 욕심을 부린 것이었다.
그의 얼굴이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야, 이 개새끼야. 너 군수가 맡긴 CCTV에다가 무슨 작업 쳤어?”
* * *
“그랑께, 이것이 말소리도 녹음이 된다는 거여?”
“그렇당께요, 할머님!”
“아따, 허벌나게 거시기허네. 그람 나 뒤질 때 쩌그다 말하믄 우리 애들도 보는 겨?”
“오메, 그런 말을 벌써부터 한다요. 가실라믄 아직 20년은 더 남은 것 같구만.”
“내 나이가 벌써 여든둘인디 무슨. 그때까지 살믄 하늘이 욕혀.”
“순덕 할머님은 아흔일곱이라는 디요?”
“그 어머님은 어려서 산삼을 네 뿌리나 훔쳐 먹어서 그렇고!”
그녀 나이에 열다섯 살 차이면 엄마와 딸뻘.
순덕의 부친이 목숨 걸고 캐온 산삼 네 뿌리를 당시 6살 꼬맹이었던 순덕이 홀랑 다 먹어 버렸다는 말이 가룡리에 전설처럼 내려온다.
“지금이라도 드시면 되지라. 내가 산삼 몇 뿌리 구해다 드릴까라?”
“됐어, 됐어. 다 늙어서 무슨……그런 건 내가 우리 경찰 선생님 사 줘야제.”
그래도 말해 줘서 고맙다는 듯 손등을 쓸어내리는 할머님의 모습에 업자들과 함께 온 형사가 울컥한다.
고작 말 몇 마디 나눈 것뿐인데도 자신의 것을 내주려는 할머님.
“그래도 이제 이게 있으믄 꼬맹이들이 몰래 훔쳐 가는 것도 다 잡을 수 있을 거여라.”
형사가 가룡리의 유일한 슈퍼 안을 가리키자 할머님, 슈퍼 주인 할머니가 푸근히 웃으며 손을 젓는다.
“무얼. 그 나이 때는 다 그러는 거제.”
호기심에 하나 가져가고, 돈이 없어 하나 가져가고.
그 나이 때는 다 그러는 것이다.
“……그런 애들이 많은가 보네요잉.”
“아녀, 아녀. 이 동네에는 없어. 다 착혀. 큰일 날 소리 말어.”
“하하. 알겄습니다.”
“그런디 결혼은 했데?”
“했지라. 벌써 애가 둘이랑께요. 한번 보실래요?”
“오메메. 뉘집 강아지들이 이렇게 예쁘대. 애들이 엄마 닮았나 보네.”
“음마? 말이 쫌 껄쩍지근한디요? 둘 다 딸인디 아빠를 닮아야지라.”
“……그라믄 안 돼.”
얼굴을 구긴 형사가 고개를 팩 돌리자 슈퍼 할머니는 푸근히 웃는다. 그러면서도 말은 정정하지 않는 슈퍼 할머님.
“에라이.”
콧방귀를 뀐 형사가 냉장고에서 음료수를 들고 온다.
“이건 나쁜 말 하신 벌이어라.”
“그려, 그려. 더 시원한 거 줄까?”
“됐어라. 아, 맞아. 저쪽에 사는 지숙이라는 아이에 대해 아셔라?”
“지숙이? ……아! 경자네 사는 그 덜떨어진 애? 알제. 내 슈퍼에 맨날 오는디.”
“매일 온다고라?”
“그럼. 돈이 어디서 난 건지 과자며 아이스크림이며 음료수며 여러 가지 사 먹제.”
하루에 못해도 3천 원씩 쓴다.
“그, 그렇게나 쓴다고라?”
“그랑께 말이여. 안 그래도 이상허다 생각은 했제.”
하루에 못해도 3천 원, 한 달이면 무려 10만 원이다.
“경자 그 짠순이 년이 그런 돈을 주진 않을 것인디…….”
마을에서 유명한 짠순이인 지숙의 할머니. 성격도 어찌나 독한지 마을에서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
슈퍼 할머니의 눈이 가늘게 떠지자 형사의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간다.
“지 아빠가 주는 것이겠지라.”
“하긴 그러겄제.”
그렇지 않으면 말이 안 된다.
“게다가 동네 놈들도 용돈을 쥐여 주는 것 같고.”
그 말에 형사의 눈이 빛난다.
“용돈을 준다고라?”
“잉. 나도 몇 번 봤제. 쩌그 파란 대문 집 오칠봉이, 복숭아나무집 박수병이.”
슈퍼 할머니가 자신이 본 사람들을 다 말하고는 의아해한다.
“희헌하네. 그놈들도 한 짠내 하는디…….”
“아따, 가룡리는 참 사람들이 좋은가 보네요잉. 요샌 읍내에서도 그런 건 보기 힘든디……. 참 보기 좋은 것 같습니다.”
“다 세상이 팍팍해져서 그라제. 동네에도 애들 몇 명 없고. 근디 지숙이는 왜 묻는 거여?”
형사가 한숨을 내쉰다.
“아까 우리 서장님 보셨지라?”
“봤제.”
마을에 예쁜 처녀만 있었어도 연결시켜 줬을 만큼 훤칠한 청년이었다.
“우리 서장님이 그 지숙이란 아이를 조카처럼 생각하잖습니까.”
그러니 어디 불편한 것이 없나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아이고, 우리 경찰 선생님이 상사 때문에 욕보네.”
“어쩔 수 있겠서라.”
“다, 다 설치됐습니다.”
“아, 그래요? 할머님. 여기 좀 보시겄어라?”
형사는 CCTV 확인 방법에 대해 메모지에 적어 가며 알려 주었고, 슈퍼 할머니는 기억하기 위해 애를 썼다.
“그럼 전 이만 가 볼께라. 다음에 산삼 들고 찾아올 텐게 그사이에 가시면 안 돼요잉.”
“그려, 그려. 언제든 놀러 와.”
만 원짜리 한 장을 내려놓은 형사는 깜짝 놀라는 슈퍼 할머니를 뒤로하며 종혁에게로 향했다.
빠드득!
“……일단 용의자가 나왔네요.”
이게 일부인지, 아니면 전체인지 모르겠지만 확인해 봐야 할 것 같다.
“다른 형님들은 뭐라고 합니까요?”
종혁은 고개를 저었다.
이번 사건, 주변 사람들에게 쉽게 물어봐선 안 된다. 범인들이 눈치를 챘다가는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일단 용의자들 집은 특별하고 세심하게 설치하겄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지이잉! 지이잉!
“그래요. 지금 어딥니까.”
이태흥 사장.
종혁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 * *
숨 막히는 침묵이 내려앉은 카페.
종혁이 얼굴이 만신창이가 된 바들바들 떠는 중년인을 일견하며 이태흥을 본다.
“그러니까 섞여 있는 CCTV는 이 사장님이 가로챈 게 아니라 신안군을 위해 기부를 하신 거다?”
“예, 그렇습니다. 아무렴요.”
종혁이 재밌다는 듯 웃는다.
“이야, 이런 식으로 나오겠다? 대가리 많이 굴리셨네요?”
“하하.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요. 전 그저 신안군이 여기 매제가 여러모로 신세를 지는 곳이라, 보다 안전한 신안군을 만들기 위해서 기부를 한 것뿐입니다. 또 곧 있으면 개학이기도 하고요.”
신안군에서 발생하는 모든 이권은 옆의 매제의 것.
목포를 비롯한 주변 군들을 장악한 이태흥은 천연덕스럽게 웃었고, 종혁은 미소를 지었다.
“어이구, 그러시군요. 이 사장님께서 이렇게 좋은 분이신지 모르고 제가 험한 소리를 했습니다. 저번에는 죄송했습니다.”
“하하. 아닙니다. 오해가 있으면…….”
“그런데 이분 얼굴은 왜 이러십니까?”
움찔!
“……아아, 계단을 내려오다 발을 헛딛는 바람에 좀 다치게 됐습니다.”
“누가 봐도 맞은 건데? 어디 부러진 곳도 없고요.”
“그러니 운이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의사도 놀라더군요.”
“……괜찮으십니까? 이 사장님, 매제시라고요.”
“예, 예. 김동철입니다. 편하게 불러 주시어라.”
“사업하시는 분께 그럴 수야 있나요.”
종혁은 가만히 이태흥의 매제를 쳐다봤고, 그는 필사적으로 시선을 피했다.
‘쯧.’
“아무튼 그런 거라면 알겠습니다.”
더 다그치려고 해도 마땅한 증거가 없기에 종혁은 몸을 일으켰고, 이태흥도 미소를 지으며 일어섰다.
“어이구, 벌써 가시려고요!”
“예. 공무가 바빠서요. 아, 맞아. 이태흥 사장님.”
“예, 서장님.”
“나 있는 동안은 깝치지 마세요.”
“……예?”
“목포에서 뭘 하건, 목포 주변의 군들에서 뭔 지랄을 하건 신경 쓰지 않을 테니까, 신안은 건드리지 말라는 말입니다.”
“허허, 무슨 말씀이신지…….”
“야.”
쿠웅!
어느새 고요히 가라앉은 종혁의 두 눈에서 살의가 일어나자 이태흥이 시선을 피한다.
“드, 들어가십시오.”
“……커피값은 놓고 갑니다.”
만 원짜리를 내려놓은 종혁은 카페를 빠져나섰고, 이태흥은 그제야 허리를 폈다.
“저 개새끼.”
빠드득!
이를 간 그가 매제를 죽일 듯 노려본다.
“몇 개를 해 먹으려고 했다고?”
“마, 만 대니까 처, 천 대만 둘러 먹으려고…….”
쩌억! 쿠당탕!
“혀, 형님! 자, 잘못했습니다! 살려 주십시오!”
뺨을 얻어맞고 바닥을 구른 이태흥의 매제가 다급히 무릎을 꿇고, 이태흥이 한숨을 내쉬며 그의 턱을 붙잡는다.
“매제. 매제, 이 개새끼야. 넌 왜 끝까지 거짓말을 하니. 내가 적당히 안 챙겨 줬어? 응?”
그래도 가족이라고 이번 계약으로 받은 30억의 20%, 6억이나 매제에게 주었다.
그런데 매제는 그것도 모자라다 생각한 거다.
신안군에 설치하기로 한 CCTV는 한 대에 무려 백만 원이 넘는 고가형 모델이었고, 그걸 20만 원짜리 저가형으로 1000대만 바꿔치기해도 그 차액이 무려 8억.
그런 계산이 서자 매제는 욕심이 버리지 못하고 허튼 수작을 부린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겨우 1000대? 네가?”
가진 바 능력에 비해 지나치게 욕심이 많은 매제.
적어도 3000대는 바꿔치기하려고 했음이 분명했다.
정말 그랬던 것인지 정곡을 찔린 것처럼 헛숨을 삼키는 매제의 모습에 이태흥의 이가 다시 한번 갈린다.
“내가 이런데도 널 끝까지 믿어야 할까? 응?”
“사, 살려 주세요! 형님! 아, 앞으로 다른 생각 안 하고 형님이 맡기시는 일과 신안군 업장 관리만 열심히 하겠습니다! 부, 부디 선미를 봐서라도…….”
“씨발 새꺄!”
이선미. 자신의 하나뿐인 여동생. 15살이나 어린 여동생.
죽일까, 살릴까.
그냥 죽여서 공구리를 치자니 하나뿐인 여동생이 마음에 걸린다.
하나뿐인 오빠임에도 맨날 사고나 치고 다니느라 해 준 것 하나 없어 힘들게 자란 여동생. 그래서 이런 병신을 예비 신랑이라고 데려왔을 때도 군소리 안 하고 결혼 승낙을 해 줘야 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여동생이 거론되자 들끓는 화가 가라앉기 시작한다.
“후우. 내가 주는 돈이 부족하면 부족하다고 말을 하지, 씨발놈아.”
“죄, 죄송합니다. 하지만 선미가 배도 불러 오고 해서……. 죄송합니다.”
“개새끼가 이젠 세 번째 조카도 들먹이네…….”
다시 이를 갈던 이태흥이 한숨을 내쉰다.
미우나 고우나 여동생의 남편. 조카들의 아버지다.
남자가 어깨를 펴고 살아야 가정이 편안하다는 생각을 하고 사는 이태흥은 이쯤에서 참고 넘어가기로 했다.
“후, 햇님이는 잘 크고?”
“예, 예. 걱정해 주신 덕분에 잘 크고 있습니다.”
“씨발놈. 너 내가 이번엔 봐주는데, 다음에도 또 이러다 걸리면 그땐 다리 한 짝 못 쓰는 걸로 생각해라. 이번엔 진짜야.”
“예, 옙!”
“가 봐. 병원 가서 치료하고. CCTV도 원래대로 되돌려 놓고.”
“저, 저녁에 뵙겠습니다!”
별일 없으면 저녁 식사는 함께.
허리를 꾸벅 숙인 매제가 도망치듯 카페를 빠져나가자 이태흥은 이를 갈았다.
“씨벌. 생돈 깨지게 생겼네.”
종혁의 지인이 내놓은 CCTV와 바꿔치기하기 위해 매제가 산 저가형 CCTV. 그걸 신안군에 기부해야 됐기에 이태흥은 쓰린 배를 문지르며 카페를 나섰다.
* * *
-누가 네 딸이라고 하는데?
아침의 막장 드라마가 흘러나오는 TV.
그 옆의 불이 꺼진 모니터를 응시하던 오칠봉이 슬그머니 엉덩이를 옮겨 전원 버튼을 켜 본다.
그러자 모니터에 나타나는 세 개의 분할된 화면.
“……신통방통허네.”
안방과 거실, 그리고 대문과 담벼락 일부를 비추는 선명한 화면에 그는 혀를 내두른다.
“녹음도 된다고 했제?”
모니터 옆에 놓인 리모컨을 들어 음량 버튼을 누른 그가 선명하게 들려오는 바람 소리에 혀를 내두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다.
이내 곧 흥미를 잃은 그는 모니터를 껐다.
다른 놈들이야 누가 집 담벼락에다 오줌을 갈기고 집의 대문을 두들기고 도망친다지만, 자신은 그런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어떻게든 찾아내서 족쳤는데 어떤 애새끼가 장난을 칠 수 있을까.
그래도 공짜라기에 달았던,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실 수 있기에 달았던 그는 돌연 입맛을 다셨다.
“되팔믄 돈 좀 솔찬하게 만질 것인디…….”
하지만 이장이 시시때때로 들여다본다고 했기에 어쩔 수 없이 한 1년은 묵혀 둬야 할 것 같다.
혀를 찬 그는 몸을 일으켜 집을 나섰다.
8월이 다 지나가면서 날이 제법 선선해졌다고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집 안이 더 많이 더웠기 때문이다.
부채를 챙겨 들고 집을 나서 마을의 정자에 앉은 그.
“아따, 시원하네.”
살랑 불어오는 바람에 얼굴이 절로 느슨하게 풀리는 순간이었다.
“안녕하세요.”
오늘도 나무뿌리에 앉아 있다가 눈이 마주치자 뽀로로 달려와 인사를 하는 지숙.
오칠봉의 손이 움찔거린다.
“……그려. 인사했응께 됐다. 가봐.”
“안녕히 계세요.”
오늘은 좋은 할아버지.
‘왜?’
언제나 자신만 보면 나쁜 할아버지로 변하는 할아버지. 그런데 요 며칠 나쁜 할아버지로 변하지 않고 있다.
의아해한 지숙은 이내 우물쭈물하다가 돌아섰고, 오칠봉은 그런 지숙의 엉덩이를 빤히 바라보며 입맛을 다신다.
평소 같았으면 벌써 집으로 데려갔을 텐데, 아무래도 종혁이 계속 눈에 밟힌다.
보통 경찰도 아니고, 서장.
어리다 해도 파출소장보다 훨씬 높은 사람.
‘자칫 저년이 허튼 말이라도 한다믄…….’
그게 무슨 망신이란 말인가.
하지만 그래도 씰룩이는 엉덩이를 보니 애만 탄다.
“……에이. 씨부럴.”
그는 이를 악물며 몸을 일으켰다.
아무래도 막걸리로 이 애타는 마음을 달래야 할 것 같았다.
한편 지숙은 떠나는 오칠봉을 멍하니 쳐다보다 얼굴을 무릎에 묻으며 울상을 짓는다.
‘용돈…….’
나쁜 할아버지, 나쁜 아저씨들이 없기에 용돈이 점점 줄어 가고 있다.
이러다간 선생님이랑 바다에 가서 사 줄 수 없을 것 같다.
‘이번엔 지숙이가 사야 하는데…….’
하지만 나쁜 할아버지가 싫다.
‘아픈 것도 싫은데…….’
그러나 또 얼른 학교에 가서 선생님과 바다에 가고도 싶다.
“선생님…….”
그리고 경찰 아저씨.
자신의 친구들.
지숙은 좋은 사람들을 떠올리며 그 작은 주먹을 꼭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