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691화>
꼴깍꼴깍!
샤워장 옆, 노란 바나나우유가 두 사람의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허리에 한 손을 얹은 채 목을 젖히며 우유를 마시는 두 사람.
지나는 사람들이 그들을 보며 옅게 웃는다.
“후아!”
“……후아!”
박지영은 자신을 따라 하는 지숙을 보며 빙그레 웃는다.
“맛있지?”
“네!”
“크! 역시 목욕 후엔 바나나우유가 최고라니까!”
샤워장 옆에 음료수를 판매하는 간이매점을 놓다니, 우전리 청년회의 상술이 대단하다.
“지숙아, 배 안 고프니?”
“안 고파요!”
그런 것보다는 더 놀았으면 좋겠다.
박지영은 바다를 보며 몸을 들썩이는 지숙의 모습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밝아졌어.’
아침에 일어났을 때 손을 꼭 잡고 있던 지숙.
어제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밝아졌다.
‘이렇게 웃을 줄 아는 아이인데.’
왜 그동안 이렇게 놀아 주지 못했을까, 죄책감이 박지영을 감싼다.
“그러면 좀 쉬었다가 밥 먹을까?”
“……네!”
혼자 노는 것은 재미가 없기에 지숙은 아쉬워하면서도 손을 내밀었다.
박지영은 그런 지숙의 손을 잡으며 숙소로 향했고, 둘은 곧 침대에 다이빙을 하며 이불 위를 뒹굴거렸다.
“지숙아, 딱 1시간만 코할까?”
“네!”
오전 내내 물장구를 쳐서 그런지 피곤해진 박지영은 그 말을 하자마자 곧바로 곯아떨어졌고, 선생님을 따라 눈을 감았던 숙은 이내 곧 천장을 바라봤다.
자야 하는데, 잠이 안 왔다.
하지만 배 위에 올려진 선생님의 손은 참 좋았다.
박지영의 손에 자신의 손을 포갠 지숙은 한쪽 벽에 걸린 시계를 보며 숫자를 셌다.
‘1초, 2초.’
60초는 1분. 1분이 60개 모이면 1시간.
지숙은 설레는 마음을 달래며 차분히 시간을 셌다.
“1시간. 선생님. 선생님.”
“우음.”
“선생님. 선생님. 선생님.”
지숙이 울상이 된다.
일어나야 하는데, 깨워야 하는데 선생님이 일어나진 않는다.
그러나 억지로 깨울 순 없다.
‘엄마도 억지로 깨우면 화냈어.’
무서운 선생님을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놀고 싶다.
두 개의 생각이 격렬하게 부딪치자 안절부절못하던 지숙은 결국 상체를 일으켰다.
꼬르륵!
“배고파.”
아까부터 밥을 달라고 꼬륵꼬륵 울어 대던 배.
지숙은 등을 보이고 누운 박지영을 바라보다 조심스럽게 숙소를 빠져나와 문 앞에 쪼그려 앉는다.
배가 고프지만 참아야지.
놀고 싶지만 참아야지.
그렇게 지숙이 문 옆에 세워진 흔들의자에 앉아 발을 휘저으며 숙소 앞을 지나는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보던 그때였다.
“안녕?”
지숙의 고개가 한참 올라간다.
‘거인이다.’
누굴까.
“안녕하세요. 압해초등학교 3학년 김지숙입니다. 나이는 10살.”
종혁은 의자에서 내려와 배꼽인사를 하는 지숙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혹시 아저씨 기억해? 어제 만났던 경찰 아저씨인데.”
지숙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종혁은 쓴웃음을 지었다.
“왜 혼자 나와 있니.”
“선생님 코해요.”
‘역시.’
숙소에 들어가서 꽤 오랜 시간 나오지 않은 둘. 분명히 자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다 지숙만 숙소를 나서기에 얼른 다가온 것이다.
“지숙이는 왜 안 자고?”
“잠이 안 와요.”
“배는 안 고프니?”
“고파요.”
아깐 안 고팠는데 지금은 고프다.
꼬르륵!
지숙이 배를 움켜쥐자 종혁은 손을 내밀었다.
“그러면 아저씨랑 맛있는 거 먹으러 갈까?”
지숙은 종혁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좋은 아저씨인데…….’
나쁜 아저씨가 아니다. 그런데 왜 자신에게 맛있는 걸 사 주려는 걸까.
꼬르륵!
의아했지만 배고픔을 이기지 못한 지숙은 종혁의 손을 잡았다.
‘조금만.’
선생님과 밥을 먹어야 하니까 아주 조금만.
지숙은 종혁을 따라나섰고, 종혁은 그녀를 데리고 음식점들이 줄줄이 늘어선 해변도로로 향했다.
물컹!
“……?!”
깜짝 놀란 지숙이 종혁을 본다.
입안에서 뭉개지는 바다의 짠맛.
맛있다. 엄청 맛있다.
종혁은 지숙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건 랍스터라는 거야.”
“랍스터…….”
“하나 더 먹을래?”
끄덕끄덕끄덕!
종혁은 빠르게 고개를 움직이는 지숙의 입에 랍스터를 넣어 줬고, 마치 어미 새가 주는 먹이를 아기 새처럼 받아먹은 지숙은 방방 뛰었다.
“아이고, 따님이 정말 예쁘네요. 이건 부녀 사이가 너무 좋아 보여서 드리는 서비스입니다!”
“어이쿠, 감사합니다.”
종혁은 서비스로 받아 든 치즈를 다시 지숙의 입에 넣어 줬고, 지숙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고개를 까딱였다.
“많이 파세요.”
“예. 감사합니다!”
적당히 배를 채운 종혁은 입가심할 만한 게 있을까 두리번거렸다.
“아, 저기 슬러시 있다. 지숙아, 슬러시 먹을래?”
“슬러시?”
종혁은 어리둥절해하는 지숙을 들어 올려 목말을 태우곤 슬러시 가게로 갔다.
“꺅!”
깜짝 놀라 종혁의 머리를 움켜쥐는 그녀.
하지만 이내 곧 입안을 차갑게 물들이는 포도향에 그녀의 눈은 다시 동그래졌다.
그렇게 입가심할 것까지 산 종혁과 지숙은 방갈로에 조성된 숲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꺄르르, 하하하 웃는 소리가 멀어지며 찾아드는 조용한 적막.
벤치에 앉은 종혁이 슬러시를 쪼옥 빨아들이는 지숙의 머리를 다시 쓰다듬는다.
“지숙아.”
이젠 물어봐야 할 때.
그런데 어떻게 운을 떼야 할까.
종혁의 낯빛이 무거워지는 순간이었다.
“아저씨.”
“응?”
“아저씨도 지숙이에게 아이, 착하다 하는 거예요?”
쿵!
“뭐?”
“아이, 착하다. 아이, 착하다.”
종혁의 몸이 굳는다.
사타구니에 닿는 작은 고사리손에 뒷목이 뻣뻣해진다.
“아, 아니야. 아니야, 지숙아.”
“아니에요?”
“지, 지숙아. 누가 이걸 가르쳐 줬니?”
“할아버지!”
“할아…… 버지?”
‘지숙이 할아버님은 사망하셨을 텐데?’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지숙의 조부는 이미 5년 전 노환으로 사망을 했다.
“네! 할아버지! 또 할아버지! 또 할아버지!”
말이 이상하다. 무척이나 이상하다.
“지, 지숙아, 설마 동네에 사는 할아버지들을 말하는 거니?”
한 명이 아니다. 여러 명이다.
이 아이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닐 거다.
아니어야 했다.
“동네에 사는 할아버지들이 지숙이 여기를 만지면서 아이, 착하다라고 한 거야?”
“네!”
쿠우웅!
종혁은 뒤통수를 후려치는 아득한 고통에 입을 떡 벌렸다.
이번 일, 역시나 사건이었다.
그것도 참담하고 끔찍하기 그지없는 사건이었다.
* * *
부우웅! 끽!
가룡리의 큰 마을.
차를 세우고 내린 박지영이 보조석을 열며 한쪽 무릎을 꿇는다. 안전벨트를 꽉 붙든 채 내릴 생각을 하지 않는 지숙에 박지영은 아파지는 가슴을 쥐며 애써 웃는다.
“지숙아, 도착했어.”
내리기 싫다.
지숙은 몸을 돌렸다.
“……지숙아, 선생님이랑 즐거웠지? 선생님은 지숙이랑 엄청 좋았는데, 지숙이는 어땠니?”
좋았다. 그래서 더 내리기 싫었다.
차에서 내리면 엄마 같은 선생님과 헤어져 하기에.
무서운 할머니가 있는 답답한 집으로 돌아가야 하기에.
“열네 밤만 자면 다시 선생님이랑 만날 수 있어요. 그러면 우리 다시 바다에 놀러 가자.”
‘바다?’
짠 바다. 하지만 웃을 수 있는 바다.
지숙이 박지영을 쳐다보자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그래. 바다에 놀러 가자.”
놀러 가서 더 오래 놀고, 더 맛있는 것도 사 먹는 거다.
“그러니 우리 지숙이…….”
선생님과 다시 만날 때까지 기다려 줄 수 있겠니?
지숙은 그렇게 눈으로 물어 오는 선생님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열네 밤만 참으면 된다.
달칵!
안전벨트를 풀며 내린 지숙이 박지영을 향해 배꼽인사를 한다.
“안녕히 계세요.”
“그래. 착하다, 우리 지숙이.”
슥슥!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에 지숙이 부루퉁하게 입술을 내민다.
“아닌데…… 아이, 착하다는 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
“응?”
지숙은 어리둥절해하는 박지영을 꼭 끌어안았다.
‘아이, 착하다’를 하기엔 쪼그려 앉은 선생님의 아랫배가 너무 멀리 있다.
“그래. 들어가면 씻고, 푹 쉬어. 방학 숙제도 다 하고. 일기도 쓰고.”
“네!”
‘일기!’
맞다. 그림일기에 3일 동안의 일을 적어야 했다.
‘그리고 선생님께 보여 줘야지!’
활짝 웃은 지숙은 다시 배꼽인사를 하곤 집으로 달려갔고, 그런 지숙을 바라보던 박지영은 이내 한숨을 내쉬며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억지로 돌렸다.
타다닥!
할머니집이 다가오자 세차게 달리던 지숙의 뜀박질이 점점 느려진다.
들어가기 싫다.
왜인지 오늘은 더 들어가기가 싫다.
“이런 육시랄 놈! 넌 어떻게 먼저 전화하는 법이 없냐!”
“……할머니 화났다.”
이럴 땐 집에 있으면 안 된다.
지숙은 곧바로 몸을 돌려 마을의 거목 아래로 걸어가 주저앉았다.
“따가워.”
얼굴과 몸이 따갑다.
“빨개.”
선생님이 뭐라고 하며 뭘 많이 발랐는데도 몸이 빨갛다. 병이라도 걸린 걸까.
“어이쿠. 어디 놀러 갔다 왔냐? 아주 새까맣게 탔구만?”
고개를 든 지숙이 오십대 아저씨를 본다.
“타요?”
“그려. 바다에 놀러 갔다 온 겨?”
지숙이 깜짝 놀란다.
어떻게 알았을까.
“그랬구만. 그려, 그려. 재밌게 놀다 왔어? 맛있는 것도 많이 사 먹고?”
“네!”
무척이나 즐거웠다.
이제 열네 밤만 참으면 다시 즐겁게 놀 수 있었다.
그런 생각에 지숙이 배시시 웃자 장년인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아, 또 나쁜 아저씨다.’
왜 동네 아저씨들은 이렇게 좋은 아저씨, 나쁜 아저씨가 되는 걸까.
“지숙아, 아저씨가 용돈 줄까? 또 바다 가서 놀라믄 돈이 필요하잖여.”
“아.”
맞다. 이번엔 선생님이 다 사 줬지만, 다음엔 자신이 사 줘야 했다.
그게 선물.
지숙은 음흉하게 웃으며 손을 내미는 장년인의 손을 잡으며 몸을 일으켰다.
“지숙이 이년은 왜 이렇게 안 오…… 지숙아!”
“하, 할머니.”
“니 거기서 뭐혀! 이 썩을 년이 집에 왔으면 들어올 생각 안 하고!”
성큼성큼 걸어오는 할머니의 모습에 지숙이 고개를 숙이고, 할머니는 장년인을 빤히 봤다.
“아하하. 그, 그냥 지숙이가 밖에 있는 게 안쓰러워서 과자나 좀 사 주려고…….”
“지랄한다. 남의 집 일에 신경 쓸 생각 말고 니 일이나 잘혀.”
“아, 안녕히 계셔라.”
“흥!”
장년인은 입맛을 다시며 돌아섰고, 할머니는 지숙을 내려다봤다.
“썩을 년. 아주 뭐 빠지게 처놀았나 보네. 뭐혀! 안 들어오고!”
“네.”
“에이. 이년이나 저놈이나 아주 마음에 드는 놈이 하나 없어!”
할머니는 다시 집을 향해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고, 지숙은 고개를 숙인 채 그 뒤를 졸졸 따랐다.
집에 가서 얼마나 혼이 날까.
지숙은 울상이 됐다.
한편 그런 지숙을 빤히 쳐다보는 차 안.
“빠드득! 빠드드득!”
동네의 노인들뿐만이 아니다.
동네의 장년인들도 지숙을 노리고 있었다.
저 어린 것을.
저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를.
모두 한통속이 되어 한 아이를 끔찍하게 유린하고 있었다.
“이건 아니잖아…….”
종혁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빨리 알아차리지 못해서, 이런 끔찍한 일을 겪게 해서.
한참을 눈물을 흘리던 종혁은 잠시 후 감정이 사라진 얼굴로 핸드폰을 들었다.
“예, 계장님. 서장입니다. 신안에서 실종된 사람들 명단과 지난 2년간의 범죄 현황 정리해서 3시간 후까지 가룡리로 오세요.”
전화를 끊은 종혁은 액셀을 밟았다.
“씨발. 아니길 빈다.”
할머니가 묵인하고 있다는 그런 개 같은 상황까진 아니길.
종혁은 가룡리 이장의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 후, 가룡리에서 잔치가 벌어졌다.
* * *
“꾸웨에에엑!”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돼지의 멱이 따지며 가룡리 잔치가 시작된다.
노인정에 모인 가룡리 아주머니들은 부침개를 부치고, 한쪽에선 도로를 막아 세운 채 윷놀이를 벌인다.
“와하하!”
“꺄르르!”
생비계, 다 타 버린 갈빗대 조각을 든 채 내달리는 아이들.
부르릉!
“이게 다 뭐시여…….”
도통 서장실에 붙어 있는 꼴을 못 봤을 정도로 자유로운 영혼인 최종혁 서장. 그러면서도 결재와 피드백을 기가 막히게 하는 자신들의 젊은 서장.
수사계와 강력계 계장들은 어리둥절해하며 종혁을 찾는다.
“아, 저기 있네.”
웬 아이를 무릎에 앉힌 채 웃고 있는 종혁을 발견한 그들이 걸음을 옮긴다.
“서장님.”
“아, 오셨어요. 인사하세요. 얘는 지숙이. 지숙아? 이분들은 이 아저씨를 도와주시는 고마운 분들이야.”
“안녕하세요. 압해초등학교 3학년 김지숙입니다. 나이는 10살.”
“어어. 그려. 인사 잘허네.”
“아따. 뉘집 딸내미인데 이렇게 예쁘대?”
종혁은 금세 지숙에게 빠져드는 그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 여기 있습니다.”
신안군의 실종자 명단과 2년간 신안에서 벌어진 모든 범죄 내용들을 모아 놓은 범죄 현황.
“혹시 몰라서 가룡리 것도 따로 모아 놨어라.”
“……전 정말 축복받은 사람이네요.”
이렇게 유능한 사람들을 부하 직원으로 데리고 있는 것도 복이다.
막걸리로 목을 추이며 자료를 살핀 종혁이 눈을 빛낸다.
“범죄자가 가룡리를 스쳐 지나간 것까지 모아 놓으셨네요?”
“거야 당연하지라.”
“하하. 감사합니다.”
“아이고, 최 서장! 잔치를 열어 준 양반이 왜 혼자 있…… 잉?”
“아, 이장님.”
얼굴이 벌게져 다가오던 이장이 종혁의 앞에 서 있는 외지인들에 의아해하고, 종혁은 그와 함께 온 지숙의 할머니를 잠시 바라본다.
무심한 표정을 짓고 있는 지숙의 할머니.
처음 자신이 지숙과 친한 모습을 보이자 떨떠름해했던 그녀는 이후 아예 신경을 꺼 버렸다.
그런데 이후 묘하게 주변을 얼씬거린다.
‘단순히 표현이 서투른 건지, 아니면 연기력이 뛰어난 건지 모르겠지만…….’
일단 지숙의 할머니도 이번 사건의 용의자다. 공범 용의자.
“아, 이쪽은 우리 경찰서의 계장님들이세요. 서열로는 넘버쓰리! 물론 제 서열은 넘버원!”
“으하핫! 반가워! 가룡리 이장 박춘배여!”
“아, 안녕하셔라!”
종혁은 인사를 나누는 사람들을 일견하며 주변을 주욱 둘러봤다.
움찔! 흠칫!
눈이 마주치자 시선을 돌리는 놈들. 이쪽을 힐끔거리다 시선을 돌리는 놈들이, 인면수심의 악마들이 한두 놈이 아니다.
마음 같아선 지금 당장 저 개새끼들의 거시기와 손을 싹 다 뭉개 버리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현재 확인할 수 있는 건 지숙의 증언뿐이기 때문이다.
이것만으로는 저 개새끼들을 잡아 처넣을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경고를 하려는 것이다. 지숙의 뒤에 자신이 있다는 걸.
‘하지만 뇌가 아랫도리에도 있는 새끼들은 참지 못하지.’
갈려지는 이를 억지로 다문 종혁이 몸을 일으킨다.
“그럼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뭐시여? 벌써 간다고?! 아니, 이렇게 가 버리는 게 어디 있디야!”
“공무원이잖아요. 이렇게 땡땡이쳤으면 이제 가서 일해야죠.”
“아따, 잔치는 이제부터 시작인디…….”
“하하. 그럼 가 볼게요. 맛있는 음식 잘 먹고 갑니다.”
“어, 어! 잠깐 기다려 봐! 가룡리 주민들, 내 말 좀 들어 보쇼잉-!”
이장이 종혁이 간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아이고, 뭘 벌써 가신다요!”
“뭘 벌써 가고 그런데! 사람 섭섭허게! 가지 마!”
“하하. 잘 놀다 갑니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고개를 연신 숙이며 차로 향한 종혁은 따라온 지숙에 무릎을 꿇고 시선을 맞춘다.
“다음에 또 올게.”
“……언제요?”
“곧.”
아마 오래 걸리진 않을 거다.
“그러니 할머니 옆에 가서 맛있는 거 많이 먹으며 기다리렴.”
“……안녕히 가세요.”
떠나보내기 싫지만 어쩔 수가 없다.
지숙의 등을 토닥이며 떠나보낸 종혁은 할머니를 찾아 걷는 지숙을 응시하다 담배를 물었다.
찰칵! 치이익!
“뭔 일입니까?”
웃으며 손을 흔들다 낯빛을 굳히는 두 사람.
종혁이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담배 연기를 내뿜는다.
“마을 남자 어른들이 한통속이 되어 정신이 미성숙한 10살짜리 여자아이를 성추행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꽈득! 빠드득!
두 계장의 몸에서 끔찍한 살의가 치솟는다.
“지들이…… 저희들이 뭘 하면 될까라?”
종혁은 포식자의 이빨을 드러낸 둘을 보며 돌아섰다.
“일단 CCTV부터 설치하죠.”
빼곡하게.
몸을 돌린 종혁이 핸드폰을 들었다.
“예, 군수님. 혹시 지금 시간 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