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687화 (687/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687화>

    126. 한통속

    ‘이건 뭐지?’

    결코 평범하지 않은 소년의 행동.

    잘했다 토닥이는 것이야 어른을 따라 하는 것이라 볼 수 있지만, 그 부위가 문제다.

    사타구니. 생식기. 남자든 여자든 중요한 부위.

    온갖 생각이 종혁의 머릿속을 흔든다.

    가정폭력이 아니라 성폭력.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기에 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는 행위.

    종혁은 우길주의 시선을 차단하며 티 없이 맑은 소년의 눈을 응시했다.

    “꼬마야, 이름이 뭐야?”

    “우성경! 나이는 8살! 압해초등학교 1학년입니다!”

    여덟 개 손가락을 펴며 해맑게 웃는 아이의 모습에 종혁은 목구멍이 격하게 일렁인다.

    “그래, 성경아. 이렇게 여기를 만지면서 착하다, 착하다를 가르쳐 준 사람이 누구야? 혹시…… 아빠니?”

    가끔, 아주 가끔 있다.

    같은 남자임에도, 아빠임에도 자신의 아이에게 성욕을 푸는 찢어 죽일 개새끼들이.

    종혁은 부디 아니길, 그저 장난기 많은 소년의 장난이길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아뇨? 누나가 알려 준 건데요?”

    쿵!

    “누, 누나? 누구? 성경이 친누나?”

    “아니요? 3학년 누나요!”

    그 누나가 그랬다. 착한 일을 하면 여기를 쓰다듬으며 ‘착하다’라고 하는 거라고.

    종혁의 낯빛이 딱딱하게 굳었다.

    “서장님!”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종혁은 혀를 찼다.

    * * *

    늦은 오후 신안경찰서 인근의 한 식당, 청년회 부회장이 종혁을 보며 뚱한 표정을 짓는다.

    청년회 사무실에서 찾은 증거들을 자세히 조사해 봐야 하거니와 면장의 보증으로 인해 잠시 풀려난 청년회 부회장.

    “거 화 좀 풀라니까 그러네.”

    면장이 오늘 조사 때문에 화가 단단히 난 청년회 부회장을 달랜다.

    “아니, 우리가 우리만 먹습니까요?”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은 뒤로하더라도 우전해수욕장이 좀 넓은가.

    배나 수상바이크 타고 파도를 일으키고, 혹여 물에 빠지는 사람이 있을까 감시하고, 관광객들이 숙소로 돌아가는 저녁과 아침에 해변가 쓰레기 줍는 등 그 인건비, 기름값은 어디서 충당한단 말인가.

    지자체에서 청년회에 지원해 주는 예산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여름 한 철, 섬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약간의 돈을 걷는 것뿐이다.

    “그런데 사람을 범죄자로 몰고 말이야! 젊은 사람이 감투 썼다고 그러면 안 되제!”

    정말로 청년회 사무실을 뒤집었단 소리에 그는 뿔이 단단히 난 상태였다.

    “어허. 그만하라니까.”

    “흥!”

    종혁은 아예 등을 돌리는 청년회 부회장을 보며 속으로 낯빛을 굳혔다.

    ‘그래서 그 일을 하는 애들한테 얼마를 줬는데?’

    오늘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하루 종일 일해서 2만 원이다. 최저 시급에도 훨씬 못 미치는 액수.

    종혁은 면장을, 부디 원만하게 풀어 달라고 간곡히 부탁한 면장을 힐끔 보곤 푸근히 웃으며 술병을 기울였다.

    “그래도 잘못하신 건 맞잖습니까. 돗자리 하나에 2만 원은 너무 심했죠. 아무리 다리가 놓였다고 해도 이렇게 강매를 하면 관광객들이 찾아오겠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교통편이 좋지 않은 증도다. 아무리 다리가 놓였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애써 나라에서 만들어 준 기회를 이렇게 날리실 겁니까? 여기 종 사장님의 M 컴퍼니도 들어왔는데?”

    전국적으로 가성비가 차원이 다르기로 유명한 M 컴퍼니.

    여기에 방갈로형 펜션 공사도 며칠 후면 마무리된다.

    이제 곧 대대적으로 광고를 할 테고, 아마 8월 중순이 넘기 전에 관광객들이 유의미하게 증가될 거다.

    그런데도 계속 강매를 한다?

    조사해 보니 슈퍼가 너무 멀어 만들어 놓은 간이매점 문제도 있다. 물 한 병에 3천원, 음료수 한 캔에 4천 원, 심지어 떠먹는 아이스크림은 만 원씩 한다.

    폭리도 이런 폭리가 없었고, 이건 굴러온 호박을 걷어차는 행위였다.

    “아따, 내가 말하지 않았소! 우리 섬을 위해서인디, 한 철 잠깐 오는 사람들 주머니 좀 털면 어쩐다고 그라요! 여즉꺼정 이래 왔는디!”

    “아.”

    종혁은 죄책감이 하나 없는 청년회 부회장의 모습에 관자놀이를 눌렀다.

    ‘미치겠네.’

    “정말 이러시겠다고요?”

    종혁의 목소리가 서늘해지자 부회장의 목이 살짝 움츠러든다.

    “……난 모르겠고! 어디 맘대로 해 보쇼! 우리 청년회 도움 없이도 우전해수욕장이 제대로 돌아가는지!”

    “부회장! 정말 이럴 거여?”

    “면장님도 이러는 거 아니어라! 우덜 청년회가 그동안 해수욕장과 우전리를 위해서 얼마나 애써 왔는디 요로코롬 외지 사람 편을 든다요!”

    ‘이 사람 안 되겠네.’

    쥐뿔도 안 되는 감투를 가지고 이러는 것을 보니 면장 때문에라도 좋게 풀려던 마음이 쏙 들어간다.

    ‘이 정도면 봐줄 만큼 봐줬습니다.’

    면장을 일견한 종혁이 입을 열려던 순간이었다.

    “허허. 정말 그래 볼까요?”

    가소롭다는 듯 웃는 종배수.

    청년회 부회장의 볼이 꿈틀거린다.

    “뭐요?”

    종배수는 면장을 봤다.

    “면장님, 우전해수욕장의 관리를 M 컴퍼니에 위탁해 주십시오. 증도 발전관리 위원회를 발족해, 안전 관리부터 운영까지 확실히 책임져 드리겠습니다.”

    안전 요원을 여럿 고용하여 관광객들의 안전을 확실히 지키고, 편의 시설과 대여 시설까지 최고의 가성비로 설치한다.

    “그뿐만 아니라 해수욕장 미관까지 제대로 관리해 드리겠습니다.”

    “저, 정말입니까?”

    면장이 반색하자 위기감을 느낀 청년회 부회장은 황급히 대화에 끼어들었다.

    “이, 이보쇼! 지금 뭐하는 거야!”

    종배수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맺힌다.

    “이봐요. 내가 여기 우전해수욕장에 투자한 돈이 얼만지 압니까?”

    무려 50억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 정도 액수가 더 들어갈 예정이다.

    신안군 전체를 놓고 보면 이 몇 배.

    그런데 우전리 청년회가 관광객들을 내쫓는다?

    이 때문에 다른 청년회들도 M 컴퍼니를 얕본다?

    “내가 그걸 그냥 두고 볼 것 같습니까?”

    종배수의 눈에 짙은 짜증과 경멸이 서리자 청년회 부회장이 이를 악문다.

    “어, 어디 해 볼 테면 해 보쇼! 시, 신문은 뻘로 있는지 아나!”

    그리고 우전리 주민들도 돕지 않을 거다.

    M 컴퍼니가 상권을 장악한다면, 기존에 장사를 하던 지역 상인들은 죽어 나갈 것이 뻔한 상황.

    그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철저히 무시될 거고! 고립될 거여! 지금 우전리 주민들을 무시하는 거여, 뭐여!”

    “아닐걸요?”

    찰칵! 치이익!

    담배를 문 종배수는 면장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지역 상권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M 컴퍼니에서 리모델링부터 사업 컨설팅까지 적극적으로 도와 드릴 테니까요.”

    모두 무료로 말이다.

    “게다가 우전해수욕장의 명물이 될 수 있게끔 조명쇼와 폭죽쇼도 지속적으로 이어 나갈 계획입니다.”

    여름에만 찾는 장소가 아니라, 사시사철 찾아올 관광지가 될 수 있도록.

    여기서 창출될 일자리가 과연 몇 개일까.

    지역 경제가 과연 얼마나 활성화될까.

    “관광객이 끊이지 않고 장사가 잘되게 해 주겠다는데, 과연 지역 상인들이 M 컴퍼니를 외면할까요?”

    그럴 리가 없었다.

    “아이고, 사장님!”

    입이 귀까지 찢어진 면장이 종배수의 손을 잡는다.

    말처럼만 된다면 다음 군수는 자신이 될 수도 있는 거대한 프로젝트다.

    “이런데도 언론이 나를 깐다고?”

    오히려 지역 경제를 살렸다고 칭찬을 할 거다.

    그렇게 만들 거다.

    그리고 청년회와 연관된 곳만, M 컴퍼니를 악의적으로 비방하고 피해를 끼치려는 곳만 이 혜택을 주지 않을 생각이다.

    “아, 맞아. 청년회 부회장이 횟집을 운영하던가요?”

    쿠당탕!

    “이, 이건 협박이여! 이봐, 서장! 시방 저 인간이 날 협박하는디 뭐하는 거여!”

    “흠. 확실히 협박이 맞군요. 종 사장님, 진정하고 사과드리세요.”

    “미안합니다. 내가 감정이 격해졌습니다. 이렇게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하지만 입 밖으로 내뱉은 건 모두 지킬 거다.

    허리를 깊이 숙이면서도 그런 눈빛을 보내오는 종배수의 모습에 청년회 부회장의 낯빛이 검게 죽는다.

    “지, 진짜…… 왜 그런다요.”

    만약 이런 혜택들이 청년회 간부들의 지인만 비켜 가면 어떻게 될까. 그러면 자신이, 청년회 간부들이 동네에서 고립되게 된다.

    아니, 동네에서 쫓겨나게 될 거다.

    “왜 그러긴요.”

    종혁은 ‘다 알잖아’라는 눈으로 청년회 부회장을 봤다.

    종배수는 재떨이에 담배를 끄며 입을 열었다.

    “어떡하시겠습니까. 청년회가 내일까지 죄를 다 인정하고 저희와 함께 우전 해수욕장을 아름답게 가꾸시고 관리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전쟁을 벌이시겠습니까? 아, 이번 범죄의 경우 형벌이 어느 정도 됩니까, 서장님?”

    “기껏해야 벌금일 겁니다, 종 사장님.”

    버티면 실형. 그동안 먹은 돈을 다 토해 내고 청년회가 새롭게 거듭나지 않아도 실형이다.

    “……할 게라. 하면 될 거 아니요.”

    종혁과 종배수는 고개를 푹 숙이는 청년회 부회장을 보며 흡족히 웃었다.

    “차, 참말로 경찰 조사든 종 사장님께든 다 협조 할텡게…….”

    “가 보세요.”

    “그, 그럼 내일 뵐게라.”

    “으허헛. 그럼 저도 이만 들어 가 보겠습니다.”

    청년회 부회장과 면장이 자리를 뜨자 종혁이 종배수의 잔에 술을 따른다.

    “필리핀에서도 느꼈지만, 제법 사업가 티가 납니다. 종 사장님.”

    “아이코! 이 모두 서장님 덕분 아니겠습니까, 흐흐흐!”

    방금 전 사납고 진중했던 모습은 어디로 간 건지 바로 경박해지는 종배수의 모습에 종혁은 피식 웃었다가 다시 진지해졌다.

    “계림그룹과 삼전그룹도 증도 발전관리 위원회에 참여하게 될 겁니다.”

    증도뿐만 아니다.

    다른 섬의 해수욕장을 비롯한 관광 명소가 있는 동네, 그로 인해 개발이 진행 중인 동네에서도 이런 발전관리 위원회가 만들어질 거다.

    그렇게 주민들과 화합하여 그들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이들을 끌어들이면서 그토록 바랐던 명분.

    그것이 드디어 만들어졌으니 슬슬 계획을 진행할 차례였다.

    “호. 드디어 시작하는 겁니까?”

    종배수 자신에게도 설명해 주지 않은 종혁의 계획.

    뭔지 모르지만 드디어 시작하는 거다.

    하지만 그보다는 계림그룹과 삼전그룹이 함께한다는 것이 더 신경이 쓰이는 종배수다.

    ‘어차피 범죄에 관련된 것일 테니까.’

    종혁을 움직일 수 있는 건 가족과 막대한 돈벌이, 그리고 범죄의 처벌. 이 셋뿐이었다.

    그런 기색을 눈치챈 종혁은 그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 주기로 했다.

    “아마 발전관리위원회의 키는 종 사장님이 잡게 될 겁니다.”

    “으허헛! 제가 말입니까?”

    삼전그룹과 계림그룹, 그 두 대기업을 범죄자에 불과했던 자신이 잡고 흔드는 거다.

    종배수의 몸이 들썩였다.

    “그리고 결과에 따라 압해읍과 지도읍, 그리고 신안군 모든 해변에 드바 로마노프가 들어올 거고요.”

    “모두 1년 365일 관광객이 유치됐을 때 이야기겠지요?”

    그렇다고 해도 호재다.

    드바 로마노프는 여름뿐만 아니라 사시사철 계절이 변화하는 것에 맞춰 해변가에 특화된 의류들을 내놓을 것이고, 그건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는 또 다른 아이템이 될 것이다.

    오직 신안에서만 살 수 있는 디자인. 아마 이걸 사기 위해 들르는 사람들도 있을 거다.

    또한 이렇게 의류 브랜드까지 들어오면서 거리가 발전되고 유동 인구가 많아지면, 패스트푸드나 유명 카페 브랜드들도 알아서 들어올 거다.

    이런 말을 하던 종배수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는다.

    “이놈들 배제해도 됩니까?”

    돈은 돈대로 쏟아부었는데, 다른 놈들이 과실을 나눠 갖는 꼴을 볼 수 있을까. 이렇게 발을 담근 이상 신안을 먹어야 할 것 같다.

    “……맘대로.”

    어차피 차가운 비즈니스다.

    다른 기업들이 경쟁에 진다고 해도, 아니 애초부터 입점을 못한다고 해도 종혁은 관여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협잡만 하지 마세요.”

    “으흐흐. 걱정 마십시오.”

    종배수는 종혁의 잔에 술을 따랐고, 종혁은 흡족히 웃으며 잔을 받았다.

    챙!

    달조차 구름에 가려진 밤, 둘의 술잔이 부딪쳤다.

    * * *

    다음 날 아침, 송곡리 송곡선착장에 도착한 종혁이 깊게 숨을 들이켠다.

    “아따, 서장님! 어제 우전리에서 한바탕했다믄서요!”

    “그게 벌써 소문이 났어요?”

    정말 시골은 소문이 빠르다.

    다가온 동팔이 혀를 내두른다.

    “소문이 안 날 리가 없제라. 여그 송곡리 청년회랑 학교리 청년회도 뒤집어졌다는디……. 뭐 때문에 하는 거여라?”

    “우전리 청년회가 횡령을 제법 했더라고요. 그런데 그중 몇 명이 수갑을 찬 것에 반발해 왜 우리들에게만 이러냐, 다른 놈들도 다 하는 짓이라고 말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오늘부터 차례차례 소환될 거다.

    “……그 썩을 우전리 시키들 때문에 애먼 놈들이 횡액을 맞구마잉. 별일은 없는 거지라?”

    “조사해 봐서 문제가 없으면 별일 없을 겁니다. 아, 동네 사람이니 봐줘라 그런 말은 하지 마세요. 이런 건 안 봐줍니다.”

    “아이고!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다요!”

    그것도 은인인 종혁에게 말이다.

    종혁은 다행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왜 자꾸 송곡리에 계세요?”

    “학교리에 있으믄 쫓아온다 안 하요.”

    마누라가 빨랫방망이를 들고 쫓아온다. 그래서 그런 친구들끼리 모여 이 먼 송곡리까지 도망쳐 온 거다.

    고개를 저은 종혁은 주변을 둘러보곤 눈을 빛냈다.

    “누굴 찾는다요?”

    “우길주 씨요.”

    정확히는 그 아들 우성경에게 볼일이 있다.

    어제 종배수가 눈치 없이 다가오는 바람에 다 묻지 못했던 말. 오늘은 들어야 했다.

    “길주 말이어라?”

    “혹시 우길주 씨가 성경이를 쥐 잡듯 잡고 그러진 않으시죠?”

    “아이고, 뭘요! 마누라 그렇게 간 이후로 한시도 옆구리에서 떼어 놓질 않는디.”

    어찌나 애지중지 아끼는지 문방구며 슈퍼며, 우성경이 갈 모든 곳에는 모두 달마다 돈을 지불해서 애가 집어 가는 건 그냥 이 돈으로 계산해라 말을 할 정도다.

    ‘그건 좀 안 좋은데…….’

    “아, 쩌그에 길주 아들내미 있네. 야, 야! 길주 아들내미!”

    슈퍼에서 희희낙락 웃으며 과자 한 봉지와 두부 한 모를 들고 나오는 우성경.

    종혁은 그런 우성경을 보며 눈을 빛냈다.

    이제 어제 듣지 못한 이야기를 들어 볼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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