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685화>
His Judgement cometh and that right soon.
심판의 날이 곧 오리라.
성경의 한 구절이 적힌 액자가 걸린 사무실.
한 노인이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다.
“소 위탁 사기?”
-피해자 153명, 피해액 128억입니다. 수법은…….
종혁이 검거한 홍지만의 사기 수법을 가만히 듣던 노인이 묘한 표정을 짓는다.
참신하다.
하지만 이건 문제가 아니다.
“이걸 어떻게 알아차린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종혁은 냄새를 맡고 수사를 시작해 함정을 파서, 범인을 검거했다.
그 비정상적인 통찰력에 노인은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본사의 반응은?”
-새로 개편된 기획실들 가운데 제2기획실에서 다루려는 것 같습니다.
“그렇겠지.”
아이템이 좋다. 조금만 주무르면 꽤 좋은 기획이 될 거 같다.
“대전 지부였나? 그쪽에서 기획한다는 후원 프로젝트 쪽은 어때?”
-감을 못 잡고 있다고 합니다.
모두 대검에서 시즌마다 후원 단체들을 조지고 있기 때문이다.
박노형 대통령 때는 약간이나마 숨통이 트였는데, 박명후가 청와대에 들어가고 나서는 다시 전처럼 옥죄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회사도 참고할 데이터나 시뮬레이션 데이터가 부족한 상황이었다. 모두 종혁의 본사 급습으로 인해 수많은 데이터가 유실됐기 때문이다.
-들리는 말로는 최종혁이 예전에 잡아넣은 사기꾼에게 접근해 본다는 것 같던데…….
일명 ‘철수야, 놀자’ 사건.
“그런 위험한 짓을 한다고?”
-어쩔 수 있겠습니까.
종혁에 의해 본사의 절반과 일부 지부들이 날아가면서 영업이익이 급격하게 떨어진 회사.
거기다 웬 미친놈들이 해외 지사들을 없애고 다니다 보니 이것저것 따질 때가 아니었다.
“내부 배신자는? 찾았어?”
-아직 특정하지 못하고 있답니다.
내부에서 정보를 유출하고 있는 배신자가 있는 게 아니고서야, 이렇게 단기간 내에 해외 지부들이 연이어 공격당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조희구는?”
-열심히 찾고 있긴 하지만…….
“쯧. 천둥벌거숭이 한 놈 때문에 회사가 개판이 됐군. 인턴들은 신안경찰서에 무사히 잠입했다고 했던가?”
-본사의 명령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집어넣긴 했지만…….
종혁이 중앙경찰학교의 교관이던 시절 입교를 했던 인턴들. 기억력이 범상치 않은 종혁이라면 그들을 기억하고 있을지 모른다.
“이것저것 따질 때가 아니라고 하지 않았나?”
-하, 진짜 어렵게 키운 놈들인데……. 왜 하필 신안으로 내려와서…… 빠득!
정말 악연은 악연이다.
“수고해. 더 보고할 거 없으면 이만 끊지.”
-오늘 하루도 파이팅입니다, 원장님.
“들어가.”
통화를 종료한 노인은 이내 몸을 일으켜 창가로 걸어갔다.
쏴아! 쏴아아!
열린 창문을 통해 들려오는 파도 소리.
눈앞으로 펼쳐진 푸른 바다에서 잠시 시선을 돌린 그가 액자로 걸린 문구를 바라본다.
His Judgement cometh and that right soon.
심판의 날이 곧 오리라.
“제발. 부디다. 이 악연으로 똘똘 뭉친 놈아.”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린 노인이 보는 건 신안의 바다였다.
* * *
신안군 지도읍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증도면.
부르릉!
어딘가로 나아가는 차 안, 증도면의 면장이 신나게 떠든다.
“우덜 증도가 2007년에 아시아 최초로 슬로 시티로 지정됐다 안 합니까.”
“오. 그래요?”
느림의 철학을 바탕으로 자연 생태 환경과 전통 문화를 지키는 삶을 추구하는 사회 운동을 뜻하는 슬로 시티.
“그라믄요! 그때 증도가 어찌나 들썩였는지! 게다가 2008년엔 국내 최초로 갯벌 도립공원으로 지정 됐당께요.”
어디 그뿐인가?
2009년에는 유네스코 생물보전 지역, 2010년 올해 1월에는 람사르 습지로 지정이 됐다.
“말만 들어도 자연 경관이 얼마나 멋질지 기대가 되네요.”
‘슬로 시티라.’
의미는 좋지만, 결국 개발이 많이 안 된 시골 중 깡시골이라는 말밖에 안 되기에 썩 좋은 말은 아니다.
그러나 별다른 수익 창출을 기대할 수 없는 이런 시골에서는 관광객을 유치할 좋은 명분이기도 하다.
“게다가 증도대교도 딱 놔져 블믄서 접근성도 편리해졌응께요.”
올해 개통이 된 증도대교. 덕분에 관광객이 예년보다 많아진 추세였다.
“아, 저기가 우리 증도의 자랑 태평염전이어라.”
고개를 돌린 종혁의 눈에 국가등록문화재 제360호로 지정이 된, 한국 최대 크기의 단일 염전이 들어온다.
꽉 닫힌 차창을 뚫고 들어오는 소금의 짠 내.
자줏빛으로 물든 염생식물의 밭이 참 아름답게 눈 속을 파고든다.
“아.”
세상 그 어떤 단어로도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없을 정도로 멋진 풍경.
자신도 모르게 속도를 줄인 종혁이 그제야 슬로 시티의 참뜻을 알아차리고 깊게 반성을 한다.
“여기 회장님이 참 대단한 양반이지라.”
수년 전, 세계 최고라 불리는 프랑스의 게랑드 염전을 시찰하고 온 뒤 본격적으로 염전을 개발하기 시작한 태평염전의 손명오 회장.
“한국의 염전이랑은 겁나게 달라서 놀랐다고 하셨지라.”
청결을 무엇보다 중요시했던 태평염전.
그러나 세계 최고라는 게랑드는 소금에 묻은 갯벌도, 주변에서 자라는 식물도 그냥 방치하고 있었다.
누군가 보기에는 불결하다고 느낄 수도 있는 모습.
그러나 실제로는 그것이 게랑드에서 나오는 소금의 미네랄이 풍부한 비결로, 친환경적 생산 방식이었던 것이다.
큰 충격을 받은 손명오 회장은 태평염전을 게랑드와 마찬가지로 친환경적으로 변모시키기 위해 움직였고, 결국 지금과 같은 성공을 이루어 낼 수 있었다.
또한 2007년에는 국내 유일의 석조 소금창고를 일부 개조하여 소금 박물관으로 개관하였고, 그것이 태평염전과 석조 소금창고 모두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되며 태평염전을 널리 알리게 되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정말 대단한 양반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면장의 수다를 듣다 보니 어느덧 목적지에 다다른다.
“꺄아아!”
“아하하핫!”
“나 잡아 봐라!”
맑은 웃음소리가 울리는 긴 해변.
핑크색 원피스 수영복을 입은 작은 아기가 양팔 벌려 쫓아오는 부모님을 피해 아장아장 도망을 치고, 짐을 팽개친 고등학생 소년들이 파도를 향해 뛰어드는 신안 증도의 명물, 우전해수욕장.
차에서 내린 종혁이 주차장 한 곳에 세워진 경찰 버스를 향해 다가간다.
“아, 오셨어라!”
활짝 웃는 증도파출소장과 의경 중대장.
“늦었습니다. 그러면 순찰을 시작하죠.”
이거다. 증도파출소 소장이 자신을 부른 이유가 말이다.
7월 말, 본격적인 휴가 시즌을 맞이한 해변 순찰.
경찰 근무복을 입은 종혁이 오른손에 든 경찰모를 꺼내 푹 눌러썼다.
* * *
“꺄르르!”
박스티로 비키니를 가린 여성들이 걷자 선글라스를 낀 남성들과 모자를 눌러쓴 의경들의 눈이 흔들리다.
“눈깔 정면에 고정 못하지.”
사사삭!
“놔두세요. 얼마나 놀고 싶겠습니까.”
종혁의 말에 소대장이 입맛을 다시며 물러나자 종혁을 바라보는 의경들의 눈이 초롱초롱해진다.
피식 웃은 종혁은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드넓은 해수욕장을 풍경을 가만히 응시했다.
곳곳에 세워진 텐트와 파라솔, 그중 한곳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앳된 얼굴의 소년, 소녀들이 경찰이 근처에 다가오자 다급히 술병을 감춘다.
가만히 있었으면 별생각 없이 그냥 지나쳤을 텐데, 도둑이 제 발을 저린 것이다.
“허흠. 서장님, 어떡할까라?”
은근히 물어 오는 의경 중대장의 말에 종혁은 단호하게 말했다.
“모르고 지나쳤으면 모를까, 알게 된 걸 눈감아 줄 수는 없죠. 특히 저녁에 문제가 더 많아질 테니 확실히 단속하도록 하세요.”
그 순간 면장이 안절부절못하며 종혁에게 매달렸다.
“아이쿠, 서장님!”
해수욕장은 여름만 성수기이다. 이때 바짝 벌지 못하면, 이 동네 상인들은 1년을 손가락만 빨아야 한다.
그런데 경찰이 관광객을 과도하게 단속하면, 사람들이 이곳을 찾겠는가.
그런 서장의 이야기에 종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면장님, 오늘 잠깐 증도를 둘러보니 풍광이 참 아름다운 게 가족과 연인들이 찾기에 참 좋은 섬인 것 같더군요.”
실제로 증도는 그 점을 부각시켜 홍보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더더욱 그 부분을 살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거야 그런디…….”
면장이 무슨 말인지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자, 종혁은 신안경찰서에서 파견을 나온 생안과 여경을 불렀다.
“추, 충성! 순경 김인경!”
“김인경 순경은 본가가 어디죠?”
“광주광역시입니다!”
“그래요. 그럼 김 순경. 만약 여기에 김 순경 또래의 취향에 딱 맞는 분위기 좋은 카페와 상무지구의 감성 넘치는 술집들이 있으면 어떨 것 같습니까? 깔끔하고, 물이 펑펑 나오는 예쁜 펜션과 모텔도 있고요.”
“상무지구 말입니까? 어…… 그렇다면 올 것 같습니다.”
함평이나 영암을 통해 들어와야 하기에 접근성이 그리 좋지 않은 증도. 대천해수욕장에 가는 것과 비슷한 시간이 걸릴 정도기에 솔직히 잘 찾지 않게 된다.
그러나 만약 종혁의 말처럼 즐길 거리가 있다면 긴 운행 시간을 감수하고서라도 올 만했다.
“들으셨죠? 요새 젊은이들의 감성은 하루하루 바뀌고 있습니다.”
대중들에게 SNS가 나날이 확산이 되면서, 이미지 마케팅은 상당히 중요해지고 있었다.
“우전해수욕장이 애새끼들이 술 처먹고 싸움하고 추파나 던지는 곳이 아니라, 언제고 마음 놓고 바다 풍광을 바라보며 추억을 쌓을 수 있는 곳이라는 이미지를 심어 주는 겁니다.”
경찰들의 확실한 단속은 오히려 안전하고 깨끗한 장소라는 이미지를 심어 줄 수 있을 터였다.
“으음. 그렇단 말이지라…….”
“증도의 풍광과 잠재력을 믿으세요, 면장님.”
“으으음.”
면장이 생각에 잠기는 순간이었다.
“아이고, 이게 누구십니까! 부장님 아니십니까!”
요란을 떨며 다가오는 장년인.
종혁도 놀란 얼굴이 된다.
“아니, 종 사장님. 여긴 웬일이세요?”
“저야 분점 공사 때문에 왔지요. 허허. 아, 면장님! 안녕하십니까.”
“예, 안녕하십니까, 사장님!”
종배수. 위수 지역을 비롯해 전국 모든 도시에 호텔과 모텔을 비롯한 수많은 사업체를 소유하고 있는 M 컴퍼니의 사장이자, 숙박왕이라 불리는 인물이다.
가성비 끝판왕이라 불리는 M-모텔과 M-호텔.
게다가 M-PC방이나 M-고깃간은 또 어떤가.
증도에 이런 M 컴퍼니가 들어온다고 해서 면사무소 직원들과 만세삼창을 외쳤었다.
‘그런 M 컴퍼니의 종 사장이 최 서장과 아는 사이라니?!’
“혹시 두 분께서 어떤 관계신지…….”
“아아, 제가 철이 없던 시절에 여기 부장님께 많은 신세를 졌지요. 그런데 부장님이 여기까진 웬일이십니까?”
“이번에 신안에 경찰서를 신설했는데, 그곳의 서장으로 부임해 오게 됐습니다.”
“허어. 벌써 고위 간부로 가기 위한 코스를 밟으시는 겁니까?”
“하하.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그런데 M 컴퍼니가 증도에 들어왔을 거라곤 생각 못했네요.”
아니다. M 컴퍼니의 신안 진출은 종혁이 직접 명령한 것이다.
오늘 이 만남도 증도파출소장의 해변 순찰 참가 요청을 받자마자 종혁이 계획한 일.
해변을 어지럽히는 놈들을 쓸어버리기 위해선 면사무소의 협력이 필수라서 면장과의 원활한 대화를 위해 불렀는데, 내 인맥이 이 정도라는 걸 알려 주기 위해 불렀는데 이야기가 이상하게 튀다 보니 상황이 이상하게 변하게 되고 말았다.
“허허. 숙박업을 한다는 놈이 풍광이 이렇게 아름답고 볼거리가 많은 섬을 놓칠 수 있겠습니까.”
거기다 다리가 놓이면서 접근성도 편리해졌다. 다른 놈들이 움직이기 전에 먼저 선점을 해야 됐다.
그런 아부에 면장의 입술이 꿈틀거린다.
“하지만 개발이 제한됐을 텐데요?”
“모두 여기 계시는 면장님과 군수님 덕분이죠. 그래도 이 멋진 경관을 해치지 않고자 방갈로형 펜션 위주로 짓고 있습니다.”
“오. 방갈로라면 저도 와 보고 싶은데요?”
“허허. 부장님이라면 언제나 공짜지요. 이 예쁜 풍경을 더 기분 좋게 즐기기 위한 분위기 좋은 카페도 짓고 있고, 젊은 사람들이 혹할 만한 여러 식당도 짓고 있으니 언제든 몸만 오십시오.”
움찔!
종혁은 몸을 굳히는 면장을 일견하며 손을 저었다.
“에이, 제가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그보다 필리핀 쪽 공사는 좀 어떠세요.”
“잘되고 있지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한국에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다행이네요.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허허. 아닙니다. 아니지, 아직 식전이면 식사나 같이하시죠.”
“하. 이거 종 사장님한테 함부로 밥 얻어먹으면 탈 나는데…… 세 분 생각은 어떠십니까?”
“오, 좋죠!”
“좋지라.”
면장과 소장, 중대장 모두 찬성을 하자 종혁은 종배수를 봤다.
“지금은 순찰 중이니까 이따 순찰이 다 끝나고 식사하시죠. 오래 안 걸립니다.”
“예. 아무렴요. 당연히 공무부터 보셔야죠. 그럼 이따가 뵙겠습니다.”
고개를 숙인 종배수가 멀어지자 종혁은 면장을 봤다.
생각이 많아진 면장.
“면장님?”
종혁은 속으로 미소를 지으며 그를 불렀고, 면장은 미간을 구기며 종혁을 봤다.
“……치안이 좋아야 관광객들이 더 온다는 말이지라?”
“물론 적당히 풀어 주기도 할 겁니다.”
결국 자유와 휴식, 휴가를 위해 오는 해변이다. 무작정 옥죄기만 하면 역효과가 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부탁드리겠어라.”
“감사합니다.”
종혁은 의경 중대장을 봤다.
“오늘부터 술 취해 사고 치는 새끼들은 엄벌로 다스리세요.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그리고 소장님?”
“예, 서장님!”
“저녁에 의경을 인솔할 경찰들 좀 보내 주세요. 서에서도 생안과를 파견할 테니 1시간에 한 번씩 순찰하는 걸로 하죠. 쓰레기 무단 투기도 단속해 주시고요.”
“쓰레기 무단 투기는 면사무소 관할인디…….”
증도파출소장이 쳐다보자 면장이 얼굴을 구긴다.
“……저희도 파견할 수 있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아니면 예산을 더 투자해 미화원을 더 고용하는 방법도 있었다.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끄으응.”
“진짜 너무하네-!
“응?”
귀를 꿰뚫는 외침.
고개를 돌린 사람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