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684화>
싸늘한 침묵이 내려앉은 두레의 입구.
들어선 안 될 말을 들은 홍지만의 머리가 핑핑 돌아가기 시작한다.
생존본능이 극한으로 발휘된 그는 마치 홍지만이란 이름을 못 들었다는 듯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아이고, 서장님! 여기까진 웬일이십니까?”
“……오. 그렇게 나오시겠다? 새끼, 용쓴다?”
1초도 안 되는 찰나에 5번은 바뀌었던 홍지만의 표정.
느려진 시간 속에서 그 표정 변화를 모두 지켜봤던 종혁의 이죽거림에 홍지만은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무슨 말이신지 모르겠지만 좀 불쾌하군요.”
“아, 그러셔? 그럼 윤아 돈으로 산 송아지는 어디 있냐?”
“……저깁니다.”
홍지만은 새로 지은 축사들로 종혁을 안내했고, 3개 동의 축사를 주욱 둘러본 종혁은 피식 웃었다.
“3백 마리 정도 되네? 10억에 3백 마리라……. 그새 송아지값이 뛰었나 봐?”
“나머지는 며칠 안에 다 구입할 겁니다.”
“윤아는 네가 다 샀다고 하던데?”
“그렇지 않아도 윤아 씨가 오면 설명하려고 했습니다.”
“오, 그래? 그러면 저기에 있는 게 신안군민들 것일 테고?”
“그렇습니다.”
“아아, 그러셨구나.”
“다 보셨으면 이만 가 주시겠습니까? 그리고 계약은 없던 걸로…….”
“그럼 경기도 광주분들 건?”
쿵!
“예?”
“대전, 대구, 부산. 목포분들에게서 투자를 받아서 산 송아지는?”
“아, 그거야…….”
“다른 곳에도 축사가 있다는 개소리는 하지 마라. 다 알아보고 왔다.”
쿵!
심장이 아득한 저 아래까지 떨어진다.
“……씨발!”
“잡아!”
그대로 도망치는 홍지만의 동료들과 그런 그들을 덮치는 형사들.
그걸 본 홍지만은 종혁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언제부터 알았지?”
“네 면상을 봤을 때부터. 이야, 너 입 잘 털더라.”
그때부터 홍지만은 부처님 손바닥 위의 손오공일 뿐이었다.
“궁금증은 풀렸지? 그럼 좀 맞자.”
사람의 믿음을 이용한 대가를 치러야 할 시간이었다.
종혁은 주먹을 들어 올렸고, 홍지만은 다급히 몸을 돌렸다.
쩌어억!
홍지만은 몸을 채 다 돌리기도 전에 눈앞이 깜깜해졌다.
* * *
부우우웅!
“어어? 스톱! 스톱!”
의경의 제지에도 신안경찰서의 입구를 밀고 들어온 차.
끼이익! 탁!
경찰서의 주차장에 차를 세우자마자 뛰어내린 동팔이 다급히 안으로 뛰어 들어간다.
그뿐만이 아니다. 뒤이어 몇 대의 차량과 사람들이 경찰서 안으로 뛰어 들어온다.
“수, 수사과! 수사과가 어디다요!”
“이, 이 층으로 가셔서 왼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고맙소!”
날듯이 계단을 뛰어 올라간 동팔이 수사과의 문을 열어젖힌다.
“아니, 계장님. 제가 잡은 새끼들을 왜 계장님의 강원청에 넘깁니까?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 꿈 깨십…… 시오.”
눈이 벌겋게 달아오른 동팔을 발견한 종혁은 가만히 비켜서며 한쪽을 가리켰고, 수갑을 찬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홍지만을 발견한 동팔의 분노가 터져 나온다.
믿지 않았건만, 이 경찰서 올 때까지만 해도 믿지 않으려 했건만 저 나쁜 새끼는 그 믿음을 배신해 버렸다.
“야, 이 육시랄 놈아-!”
허공을 붕 날은 동팔은 홍지만을 걷어찼고, 뒤이어 수사과로 쏟아져 들어온 다른 피해자들이 눈을 뒤집으며 홍지만을 덮친다.
“으아아아아!”
“야, 이 개새끼야! 내 돈! 내 돈 내놔라!”
“그 돈이 어떤 돈인데-!”
눈물, 콧물을 흘리며 달려드는 노인들, 장년인들.
“아이고, 어르신들.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안 돼요. 안 된다니까요. 뭐해. 좀 말려 봐.”
종혁은 대충대충 말리는 형사들을 일견하며 다시 핸드폰을 귀에 가져갔다.
“아무튼 홍지만 이 새끼 강원청에 넘길 생각 없으니까 계장님도 꿈 깨십시오. 끊습니다.”
-아니, 그래도 이건 경우가 아니지! 이봐, 최 서장! 최 서장!
통화를 종료한 종혁은 코웃음을 치며 몸을 돌렸다.
“어딜 감히. 응?”
스윽!
갑자기 그에게 내밀어지는 박카스 한 병.
수사과 과장은 의아해하는 종혁을 향해 엄지를 치켜세웠다.
“정말 짱이십니다요.”
“하핫! 그럼 전 이만 올라가 보겠습니다. 저 새끼는 그냥 목숨만 붙여 놓으세요.”
그렇게만 하면 사지를 분질러 놓아도 다 책임진다.
“정말 짱! 짱입니다! 충성!”
“예, 수고하세요.”
종혁은 박카스를 들이켜며 서장실로 향했고, 수사과 형사들은 그런 종혁을 존경심 가득한 눈으로 배웅했다.
* * *
“……확실히 돈값을 하네.”
상금을 건 지 보름이 지나자 대략적으로나마 신안군의 치안 현황에 대한 가닥이 잡힌다.
기결, 미결, 장기 미결 사건 현황들을 둘러보던 종혁은 생활안전계에서 올라온 결재 서류를 봤다.
“범죄예방 캠페인 출연 연예인 섭외?”
아이들이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는 범죄예방 캠페인 기획도 있다.
“흠. 이건 전남청과 이야기 나눠 봐야겠네.”
기왕 돈 쓰는 거 시원하게 써서 전남 전체로 일을 키우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종혁은 잠시 고민에 잠겼다가 권아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권 이사. 납니다. 다름이 아니라 매각을 원하는 괜찮은 애니메이션 제작사 하나만 찾아 주시겠어요?”
이참에 아예 지속적으로 경찰 관련 애니메이션을 제작할 제작사를 하나 인수해 두면 좋을 듯했다.
‘포돌이, 포순이를 대대적으로 홍보하거나 아니면 아예 새로운 마스코트를 만들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말만 경찰의 마스코트인 포돌이와 포순이.
제대로 된 홍보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기에 요즘 아이들 중엔 포돌이와 포순이를 모르는 경우도 많았다.
이번 기회에 제대로 살려 보거나, 회생이 불가능하다 싶으면 새로운 마스코트를 만드는 방법까지 고려할 때였다.
“그리고…….”
쿵쿵쿵!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들어오세요.”
벌컥 문이 열리며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서장님!”
“아이고, 서장님!”
종혁은 눈물이 말라붙은 사람들을, 홍지만에 속은 피해자들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신안경찰서의 소회의실.
“감사혀라. 정말 감사합니다.”
“내가 미친년이어라! 이렇게 좋은 분을 두고!”
종혁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통장에 꽂히는 막대한 이자에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모은 재투자를 하는 게 어떤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던 그들.
아마 훗날 없는 돈, 빚진 돈까지 모두 잃고 가슴만 쳤을 거다.
종혁은 달달한 커피를 손에 쥔 채 훌쩍이는 피해자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아마 원금은 다 회수하시지 못할 겁니다.”
“오메!”
“아이고!”
“서장님, 어떻게 안 될 까라?”
동팔의 간절한 물음에 종혁은 고개를 저었다.
피해액이 무려 100억 원을 넘어서는 이번 사기. 그 피해액을 모두 회수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었다.
“놈들의 재산은 전부 가압류, 가처분 조치가 들어가겠지만, 돈을 모두 돌려받으시는 건 아마 어려우실 겁니다.”
놈들이 적지 않은 돈을 흥청망청 쓰고 다닌 탓이다.
“계속 최선을 당해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믿고 기다려 주십시오.”
“……어휴우.”
“알겄습니다. 서장님이 힘써 주신다니 저희도 믿어야지라. 어르신들, 그래 주실 수 있지라?”
“그라제. 우덜이 서장님을 믿제, 누굴 믿겄어.”
“그려. 그래도 틈틈이 받은 이자가 꽤 되니께.”
홍지만은 피해자들을 속이기 위해 약속한 높은 이자를 꼬박꼬박 지급해 왔고, 그 덕에 다행히 피해자들 대부분은 투자금의 60%가량은 이자로 받아 둔 상황이었다.
피해자들은 그나마 그것을 마음의 위안으로 삼았다.
“그런디 그 쌍놈의 새끼들은 이제 어떻게 된다요?”
순간 두 눈에 쌍심지가 켜지는 동팔.
고개를 끄덕이던 사람들도 눈을 부릅뜬다.
“이것도 제가 최대한 높은 형량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놈이 받아 본 형량 중 최대 형량일 거예요. 아마 여기 계신 분들 중 몇 분은 그놈들이 나오는 걸 보지 못하실걸요?”
“오메! 우리 서장님이 우덜들 보고 죽으라고 고사를 지내시네!”
“닌 내일 관짝에 들어가지 않어?”
“뭐여?! 니나 내나 며칠 차이 난다고!”
“으하하하핫!”
“깔깔깔깔!”
웃음꽃이 피는 소회의실.
‘이게 시골 경찰서의 맛인가?’
왠지 구수하고 정다운 맛에 종혁도 작은 미소를 지었다.
* * *
탁탁탁!
이른 아침 순찰 겸 밤새 별일은 없었는지 동네를 뛰는 종혁을 발견한 사람들이 웃으며 손을 흔든다.
“아이고, 서장님. 운동하쇼잉?”
“예! 좋은 아침입니다, 어르신!”
“서장님! 식사는 하셨소? 안 드셨으면 얼른 와서 한 숟가락 뜨이소!”
“하하. 괜찮습니다. 식사 맛있게 하세요!”
어제의 일에 대한 소문이 퍼져서 그런지 축제 때 보다 더 살갑게 인사를 해 오는 학교리의 주민들.
종혁은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최재수를 발견하곤 잠시 멈춰 섰다.
“어, 최 팀장. 운동해?”
“아, 충성.”
떨떠름한 얼굴로 인사를 건네 오는 최재수.
종혁이 그런 그를 보며 입술을 달싹인다.
“좀 어때?”
“서장님께서 시원하게 결재를 통과시켜 주신 덕분에 생안계는 완전히 서장님 편으로 돌아선 것 같습니다.”
“형사과는?”
“그쪽도 여론이 엄청 좋더라고요. 체계도 금방 잡힌 거 같고요. 아, 교통계가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거 같았어요.”
작은 사회인 신안.
시골 동네라 그런지 중앙선 침범에 과속, 저속, 음주운전, 불법 주차 등이 판을 치고 있지만 함부로 단속을 할 수 없는 실정이었다.
“흠. 이것도 곧 손을 봐야겠네. 아청계는?”
“아동청소년계는 할 일이 별로 없어서 여유롭다고 합니다.”
학교가 적어서 그렇다는 게 그들의 의견이었다.
“지랄.”
사람 사는 곳에 어떻게 문제가 없을 수 있을까.
문제가 적을 수는 있을지언정 없다는 건 있을 수 없었다. 그저 감춰져 있을 뿐.
시골일수록 범죄에 대한 자각이 없는 경우가 잦다.
부모님들까지도 서로 얼굴을 다 알고 지내는 사이니까.
아직 어린애들 일이니까.
그런 이유로 쉬쉬하고 있을 게 뻔했다.
“날 잡아서 한번 쪼아 봐야겠네.”
종혁의 눈이 서늘해지자 최재수는 몸서리를 쳤다.
“아, 그리고 의경들은 죽을 맛이라네요.”
“끙. 아무래도 그럴 수밖에 없지.”
신안경찰서에 배치되는 의경들은 곧 신안군에서 파출소가 있는 섬들로 흩어질 예정이다.
안 그래도 강제로 나라에 끌려와 기분이 좋지 않은데, 즐길 거리도 없는 섬까지 들어가야 한다면 종혁 자신이라도 짜증이 날 터였다.
“흠. 이 부분은 의경 중대장과 이야기를 해 봐야겠네. 오케이. 수고했어. 잘하고 있다, 최 팀장. 앞으로도 잘 부탁해.”
“흐흐. 그럼 수고하십쇼.”
“어. 수고.”
짧은 대화를 마친 그들은 언제 긴밀한 이야기를 나눴냐는 듯 매정히 돌아서며 뛰기 시작했고, 오늘은 학교리 위에 위치한 가룡리의 가룡선착장까지 뛰어갔다가 복귀한 종혁은 아침 8시 50분이 되자 경찰서로 향했다.
“오메. 서장님 오셨소.”
“아이고. 뭔 아침부터 이렇게 오셨어요. 식사는 하셨어요?”
“히히. 난 먹었지라. 서장님은요?”
“저도 먹었죠.”
“혼자 산다고 대충 먹는 거 아니지라? 아니, 그냥 이것 좀 받아 가쇼. 작년에 담근 김친디 잘 익었당께요.”
“그려요. 내 것도 받아 가쇼! 나물 몇 가지 무쳐 봤어라.”
“난 돼지괴기 좀 볶아 봤어라.”
“어이쿠!”
그렇게 민원실 맞은편 사랑방 앞에서 잠시 붙들렸다가 서장실로 들어온 종혁은 냉장고에 오늘 받은 음식들을 넣으며 고개를 저었다.
“정말 시골 인심들이 너무 좋다니까.”
또 이래서 경찰 할 맛이 난다.
입가에 미소를 그린 종혁은 담배를 물며 서장실에 별도로 만들어 놓은 흡연실로 걸음을 옮겼다.
쿵쿵쿵!
“예, 들어오세요. 아, 중대장님.”
“허허.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후덕한 덩치를 지닌 푸근한 인상의 의경 중대장.
“예. 전할 말이 있어서요. 앉으세요. 커피 드시겠습니까?”
“커피 좋지요.”
아직 커피를 내리지 못했기에 믹스커피를 탄 종혁이 의경 중대장의 맞은편에 앉는다.
“중대 시설은 좀 어떻습니까?”
후룩!
“허허. 죄다 신축인데 불만이 있을 리 있겠습니까.”
그 모두 종혁의 주머니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고 있는 중대장이 감사의 뜻을 담아 고개를 숙인다.
“그렇다니 다행이네요. 곧 섬으로 배치될 분대들의 숙소들도 모두 신축이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허허……. 우리 애들의 불만이 서장님 귀까지 닿았나 보군요.”
역시 연륜이 깊어서 그런지 행간 속에 숨어 있는 뜻을 바로 캐치해 낸다.
“비록 소속은 다르더라도 저희 경찰서에 있는 이상 제가 보살펴야 할 식구들인걸요. 그런 의미에서…….”
지갑을 꺼낸 종혁이 수표를 꺼내어 중대장에게 내민다.
“매달 이 정도씩 드릴 테니 애들한테 맛있는 것 좀 팍팍 사 주십시오.”
“어이쿠! 아이들이 좋아하겠군요. 섬에 배치된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불만을 덜어 낼 수 있도록 계속 신경 쓰겠습니다.”
“제 뜻을 알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허허. 아닙니다.”
서장실 안에 훈훈한 공기가 퍼질 때였다.
띠리링! 띠리링!
“응? 이 시간에 무슨 전화가…….”
종혁은 의아해하며 격렬하게 울리는 전화기의 수화기를 들었다.
“예, 신안경찰서 서장 최종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