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678화 (678/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678화>

일본도 두 자루가 놓인 사무실.

핸드폰으로 통화를 하던 대머리 중년인이 벌떡 일어난다.

“뭐?!”

-목포서, 무안서 근처 서장들이 우르르 몰려왔당께요? 전남청 박 차장도 왔어라!

“무, 무슨 일로?!”

대체 무슨 일로 그런 거물들이 한꺼번에 행차를 한 걸까.

-신안에 경찰서 하나 생겼잖습니까요. 거 서장이랑 함께 왔당께요. 축하 자리인 것 같습니다요.

‘아!’

“알았어! 지금 간다!”

기회다.

그는 얼른 정장을 챙겨 들며 일어났다.

* * *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빰빠라라, 밤!

짝짝짝짝짝!

“아이고, 잘한다!”

“뭐여, 최 서장. 가수 아녀?”

“아하하. 이거 못난 솜씨로 선배님들의 귀를 괴롭게 한 건 아닌가 싶네요.”

종혁은 너스레를 떨며 자리에 앉았고, 그 맞은편에 있던 무안서 서장이 엄한 표정을 짓는다.

“아야, 뭐허냐. 니 파트너 술잔에 술이 없잖여.”

“줄라고 했거든요? 오빠, 받으세요!”

“그래. 듬뿍 따라 봐.”

종혁은 도우미의 옆구리를 끌어안으며 술을 받았고, 그 모습을 본 서장들은 눈을 빛냈다.

그리고 그건 종혁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술을 받으며 눈으로 쓱 주변을 훑었다.

가장 상석에 앉은 목포경찰서장과 전남청 박 차장을 필두로, 관할 지역의 주민 수가 많은 순서대로 앉은 서장들, 그리고 그 아래로 앉은 소장들.

이런 단순한 술자리에서도 서열이 여실히 드러난다.

‘그런데…….’

서장들을 대하는 파출소장들의 모습이 종혁의 흥미를 끈다.

‘비굴하지 않아.’

명백히 서열이 존재함에도 파출소장들은 마치 친한 형님을 대하듯 서장들에게 친근하게 굴었다.

‘그만큼 사이가 견고하다는 건가?’

거기까지 생각에 이르자, 종혁은 지금 들어와 있는 룸의 크기에 대해서도 생각이 미쳤다.

‘넓어.’

3, 40명은 족히 수용할 수 있는 커다란 룸.

이 정도 크기의 룸은 서울에서도 보기 힘들었다. 심지어 도심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는 지방의 단란주점이라는 점을 감안하여 지극히 부자연스러웠다.

이 말은 즉, 이 룸이 특별히 만들어진 장소라는 의미였다.

종혁의 눈빛이 더 가라앉는 순간이었다.

똑똑똑!

노크와 함께 문이 열리며 대머리의 중년인이 들어와 목포서장과 전남청 차장을 향해 허리를 숙인다.

“아이고, 오셨습니까! 이렇게 오실 줄 알았다면 더 좋은 곳을 준비해 드렸을 텐데 말입니다!”

한두 번 만난 게 아닌 듯 반가움을 드러내는 소장들과 서장들.

“아, 최 서장. 인사해. 저쪽은 태흥건설의 이정학 사장. 신안 쪽 개발에도 인부를 보내고 있어서 서로 인사하라고 불러 봤어.”

“아, 그러셨습니까? 반갑습니다. 신안경찰서의 서장으로 부임하게 된 최종혁입니다.”

“어이쿠. 안녕하십니까, 서장님. 태흥건설이라는 작은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이태흥입니다. 모쪼록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태흥건설이라……. 여기에 재밌는 놈이 껴 있었네?’

태흥파다. 목포에서 유명한 조직폭력배로, 용역깡패 짓을 주로 하는 놈들.

“이거 제가 오는 바람에 흥이 깨진 것 같군요. 그런 의미에서 제가 벌주로 차장님과 서장님들을 위해 노래 한 곡조 뽑아 보겠습니다!

“오오!”

사람들은 곧 흘러나오는 노래방 기기 반주 소리에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 * *

“후우.”

담배를 물며 화장실에 선 종혁이 바지 지퍼를 내리며 생각에 잠긴다.

‘태흥파뿐만이 아니겠지.’

목포의 다른 조직도 저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을지 모른다.

‘언제부터일까.’

임기가 짧게는 1년, 길어야 2년에 불과한 경찰서장.

그 짧은 시간 내에 이토록 긴밀한 관계를 맺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이들 중 누구인지는 몰라도, 지금의 경찰서에 부임하기 이전부터 이태흥과 관계를 이어 온 인물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뚜벅뚜벅!

화장실 안으로 들어오는 이태흥의 모습에 생각을 마무리할 때였다.

스윽! 구렁이 담넘듯 넘어와 어깨를 주무르는 억센 손.

“어이고. 정말 잘 부탁드립니다, 서장님. 우리 애들이 마음이 좀 많이 여립니다.”

“아?”

따라 들어오는 건 눈치챘지만 설마하니 어깨에 손을 얹을 줄 몰랐던 종혁은 헛웃음을 터트리며 지퍼를 올린다.

그리고…….

빠아악!

“아욱?!”

종혁은 정강이를 붙잡고 무너진 이태흥을 발끝으로 툭툭 쳤다.

“야, 야. 죽을래?”

“왜, 왜 이러십니까!”

“어디 씨발 깡패 나부랭이가 감히 경찰 어깨에 손을 얹냐? 돌았냐? 선배님들이 사람 대접 좀 해 주니까 네 새끼가 정말 사람 새끼 같지, 지금?”

이놈들은 사람이 아니다.

짐승, 아니 그 이하의 버러지다.

종혁은 바닥을 기어다니는 벌레를 밟듯 그의 발목을 짓밟았다.

뿌드드득!

“끄으으!”

“눈치껏 살자, 씨발아. 짐승보다 못한 새끼가 괜히 사람 흉내 내지 말고.”

혀를 찬 종혁은 몸을 돌렸다.

“아, 들어올 땐 웃으며 들어와라.”

별거지 같은 새끼 때문에 괜히 술맛만 버렸다.

종혁은 혀를 차며 룸으로 향했고, 남겨진 이태흥은 이를 악물었다.

“저 개새끼…….”

이태흥의 눈에 살기가 돌기 시작했다.

* * *

“끄으응.”

이제 막 여름의 해가 어스름히 떠오르기 시작한 새벽.

앓는 소리를 내며 일어난 종혁이 멍하니 허공을 바라본다.

“……어제 대체 얼마나 마신 거야?”

종혁이 접대하는 자리라서 그런지 벨트를 풀고 마셨던 서장과 소장들. 어쩜 그리 다들 말술인지 오랜만에 필름이 끊기는 줄 알았다.

물론 그 전에 다 죽여 버렸지만 말이다.

‘이태흥 그 씹새끼도 적당히 비위 맞추다가 돌아갔고.’

모두가 인사불성이 됐을 때는 그나마 술 먹을 맛이 났다.

‘이태흥, 이태흥…….’

아무래도 오택수에게 연락을 해 봐야 할 것 같다.

“후우.”

몸을 일으킨 종혁은 운동을 갈 준비를 마쳤다.

탁탁탁탁탁!

햇살을 받으며 빛을 내는 염전을 지난 종혁이 압해읍의 서쪽 끝인 송곡리에 위치한 송곡여객선터미널에 다다른다.

“후욱! 후욱!”

홍어로 유명한 흑산도를 비롯한 여러 섬들을 오가는 송곡여객선터미널. 그 옆으론 어민들의 배들이 줄지어 서 있는 송곡리선착장과 어판장이 있다.

후두둑 땀을 털어 낸 종혁이 담배를 문다.

찰칵! 치이익!

“후우우.”

담배 연기와 함께 콧속으로 빨려 들어오는 아침 바닷바람의 비린내에 잠시 바다를 보며 생각에 잠기던 그때였다.

“음마? 혹시 서장님 아녀라?”

“어? 지동이 아버님?”

“아이고, 맞네!”

“아버님이 여긴 웬일이세요?”

“나야 할 일 없어서 놀러 왔제라. 그란디 서장님은 여기까정 웬일이다요? 설마 뛰어온 거요? 아따, 역시 젊은 게 좋네. 아, 다들 인사혀! 이번에 학교리에 경찰서 지어진 거 알제? 거기 서장님이여!”

“뭐여? 서장님? 이렇게 젊은디?”

“그람 내가 뜨슨 밥 먹고 헛소리할까?”

“하하. 안녕하세요. 신안경찰서에 서장으로 부임하게 된 최종혁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아이구. 예, 예.”

“서장님, 식사는 자셨어요?”

“아직 안 먹었죠. 아버님은요?”

“우리야 벌써 묵었제.”

“그거 아쉽네요. 아버님과 아버님 단골집에 가려고 했는데.”

종혁은 김동팔의 지인들을 보며 술을 마시는 시늉을 했다.

오십대로 보이는 그들. 이런 시골 마을에선 오십대면 아직 충분히 젊은 축이자, 동네의 핵심 일꾼이었다.

즉, 이들의 평가에 따라 경찰서의 평판이 정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안 그래도 드릴 말씀도 있고요.”

그 말에 사람들의 눈이 빛난다.

“아따. 아침부터 적셔 블믄 한 소리 듣는디…….”

“이라믄 안 되는디…….”

“뭐, 싫으시면 말고요.”

턱!

김동팔의 손이 종혁을 잡는다.

“싫다고는 안 했어라.”

종혁과 김동팔, 김동팔의 지인들은 씩 웃었다.

그들은 근처의 식당으로 들어갔다.

“우리 왔당께! 한 상 봐 와! 술도 좀 주고!”

“오메, 이 화상들. 아침부터 뭔 술이래?”

“우리가 마시고 싶어서 마시는 게 아니여! 여그 잘생긴 총각 보이제? 이분이 이번에 학교리에 생긴 신안경찰서 서장님이랑께? 서울에서 오신 분인께 솜씨 좀 발휘혀 봐.”

“오메! 서장님이셨소잉?”

“하하. 최종혁입니다. 곧 이곳에도 분소가 생길 테니, 앞으로 저희 경찰서 잘 부탁드립니다.”

“해양파출소 분소도 있는디 또 세운다고요?”

“해양파출소는 파출소고, 저희 경찰서는 경찰서죠.”

“그래요? 뭐, 사람 많아지믄 우리야 좋지요. 거그 테이블에 앉으쇼. 거기가 제일 시원한 자리잉께. 가리는 음식 없죠잉?”

“제 몸 보이시죠?”

“오호호호호! 앉아 계쇼잉!”

식당 주인이 가리키는 자리에 앉으니 5분도 안 되어 음식들이 나온다.

“하이고, 뭔 서장님이 이렇게 젊으시대? 오메, 이 팔뚝 봐라!”

“올해 서른밖에 안 됐은께 다 늙은 쭈구렁방탱이가 욕심 내덜 말어. 천벌 받어야?”

“염병 육시랄 헌다. 그냥 참한 아가씨나 소개시켜 줄려고 그러제!”

종혁은 그들의 모습에 피식 웃으며 숟가락을 들어 뽀얀 국물을 떴다.

“……?!”

“으하핫! 어떻소? 맛있지라? 이 누님이 이걸로 자식들 키웠당께요.”

“빈말이 아니라 정말 맛있네요.”

황태를 제대로 우린 해장국이다. 서울이라면 이른 아침부터 웨이팅을 하면서까지도 먹을 수준의 맛. 그런 음식이 겨우 식사 국물용 작은 국그릇에 담겨 나왔다.

“하, 이거 제가 20년은 더 일찍 태어났어야 했는데……. 아쉽네요.”

“오호호호! 서울에서 오셨다고 하더니 말을 참 예쁘게 하시네. 들었제? 좀 보고 배워야.”

“염병한다.”

“넌 처먹지 마.”

“사랑혀!”

식당 안에 웃음이 터졌고, 곧 나머지 음식들이 나오자 제대로 술판이 벌어졌다.

“근디 하고 싶다는 말이 뭐데요?”

“아, 경찰서도 생겼으니 홍보차 신안 군민들을 뫼시고 잔치를 열까 합니다. 홍윤정, 남진아 등 여러 가수들을 불렀으니 시간 되시면 이틀 후에 찾아오셔서 자리를 빛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챙그랑!

“뭐, 뭐요? 누, 누구? 홍윤정?! 남진아?!”

입을 떡 벌리는 그들. 주방으로 들어갔던 식당 주인도 우당탕 달려 나온다.

종혁은 정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그들은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어, 형님! 나요! 지금 당장 방송 좀 하쇼잉! 이틀 뒤에 홍윤정이랑 남진아가 학교리에 온당께 병원 갈 일 없으면 경찰서로 오라고! 모레! 모레 온다고!”

“아따, 뭐 하러 오간디요! 모두 경찰서장님께서 주민들에게 경찰서 좀 홍보할라고 부른 거제요!”

“지금 배가 문제요? 홍윤정이랑 남진아랑께요?”

“새벽이도 옵니다.”

“새벽이까정?! 들었지라?! 새벽이도 온다 안 하요! 그래, 그 새벽이! 다른 섬 이장님들한티도 얼른 연락하랑께요! 사진? 응! 찍을 수 있답니다!”

윤아가 어떤 드라마에서 맡았던 배역인 김새벽.

꽤 높은 시청률이 나와 나이 많은 어르신들 사이에선 아이돌 가수 윤아는 몰라도 새벽이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었다.

종혁은 사방팔방 소식을 전하는 그들의 모습에 술잔을 기울이며 식당 밖의 풍경을 가만히 감상했다.

‘응?’

작은 보따리를 든 채 선착장으로 향하는 한 동남아 혼혈 소년.

종혁은 낑낑거리면서도 낚시 가방을 든 장년인의 뒤를 쫓는 소년을 보며 푸근히 웃었다.

‘아빠랑 낚시 가나 보네.’

혹여 햇빛에 피부가 상할까 긴팔을 입힌 모습까지도 참 보기가 좋다.

종혁은 빈 잔에 술을 따랐고, 통화를 마친 동팔이 그런 종혁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서장님.”

“예, 아버님.”

“혹시 돈 좀 있어라?”

“예?”

순간 종혁의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내가 서장님한티 돈 벌 사업 아이템 좀 알려 드리려고 그라제.”

“아! 그거 말하는 겨?”

“응, 그거. 서장님이 요로코롬 우덜을 위해 신경 써 주시는디 나가 가만히 있을 수 있남?”

종혁은 의아해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예, 어느 정도는 있습니다.”

“그러요? 얼마나 있소?”

종혁은 고민하다 그냥 장단을 맞춰 주기로 했다.

방금 신안군 모든 섬들에 연락을 해 준 동팔과 그 지인들. 수고비를 준다고 생각하면 됐다.

“한 2천만 원 정도 쓸 수 있습니다.”

“아이고, 잘됐네! 쪼까 기다려 보쇼잉?”

김동팔이 다시 핸드폰을 들어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어! 나여, 동팔이! 내 소들은 잘 크고 있제?”

‘소?’

살짝 놀랐던 종혁은 풀썩 웃었다.

‘내가 소를 사 봤자 뭘 어떻게 키울 수 있다고…….’

이런 시골 사람들에게는 목돈으로 취급되는 소. 그래도 그 마음 씀씀이가 참 고맙다.

“다름이 아니라 2천만 원이면 소를 한 열두 마리쯤 살 수 있제? 그려. 소를 사신다는 분이 계셔야. 내려온다고? 언제? 내려올꺼믄 모레까지 와. 그때 동네 행사가 있응께. 그려. 그때 봐.”

종혁은 전화를 끊는 동팔을 보며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요새 소값이 싸나 보네요?”

자세히는 몰라도 송아지만 하더라도 100만 원을 넘는다.

거기다 소를 키우기 위한 축사를 만드는 비용에, 사료값과 약값까지 더하면 소 한 마리를 키우는 데만 수백만 원이 든다.

2년을 넘게 고생고생해서 키워 고가에 팔아도 손에 남는 돈은 크지 않은 게 현실인 상황.

그러니 2천만 원에 무려 소를 열두 마리나 판다는 것이 쉬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 그게 아니라 저기 강원도에서 소를 키우는 사람인디, 우리들은 돈을 주고, 그 짝은 우리들 돈으로 소를 사서 대신 키워 주는 거랑께요.”

“소를 위탁…… 한다고요?”

‘어? 이거?’

“그 부분 자세히 좀 설명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순간 뭔가가 떠오른 종혁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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