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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673화 (673/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673화>

    -4천만 유로입니다. 4천만 유로!

    비밀 경매가 이뤄지는 저택의 어느 방.

    경매사의 외침과 함께 모든 테이블 위에 솟은 전등이 켜지자, 수십 대의 CCTV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경찰들이 혀를 내두른다.

    2천만 유로에서 시작되어 10만 유로씩 올라가다 3천만이 돌파하자 50만 유로씩 상승한 호가.

    눈을 깜빡일 때마다 연봉의 몇 배가 올라가니 심장이 두근거려 참을 수가 없다.

    그러나 뤼옹 드 몽은 아니다.

    “느리군.”

    경매장의 열기가 느껴지지 않아서 그런지 마치 C급 무성 영화를 보는 것처럼 지루하기 짝이 없다.

    이래서 놈을 가려낼 수 있겠냐는 뤼옹 드 몽의 눈빛에 노인은 입술을 비틀었다.

    “이런 경매를 좋아하지 않으신가 봅니다.”

    그렇다. 원하는 물품이 있다면 그냥 웃돈을 주고서라도 사면 되는 게 바로 귀족의 부.

    이따위로 소중한 시간을 쏟을 바에는 더 건설적인 일에 시간을 투자하는 게 훨씬 이득이다.

    “하긴, 고귀한 귀족께는 이런 탐욕의 구덩이가 천박하다 느껴지시겠지요.”

    “……왕이라 불러 주니 자기가 정말 왕이라고 생각하나 보군.”

    뤼옹 드 몽의 눈이 매서워지자 노인은 헛기침을 했다.

    “워밍업은 끝났으니 이제부터 뜨내기들을 털어 내도록 하죠.”

    “털어 낸다?”

    “재미는 지금부터입니다, 공작님.”

    노인은 입술을 들며 무전기를 들었다.

    “시작해.”

    * * *

    움찔!

    귀에 꽂히는 노인의 명령에 잠시 몸을 굳힌 경매 진행자가 이내 함박웃음을 짓는다.

    “휘유. 이거 열기가 대단하군요? 어떻게든 이 명화를 차지하고 싶다는 여러분들의 열망이 흠뻑 느껴집니다!”

    경매 진행자가 말을 돌리자 경매 참가자들이 가쁜 숨을 몰아쉰다.

    10만에서 단숨에 50만으로 뛰며 쉴 새 없이 달려온 경매. 아무리 돈이 많은 그들이라도 금세 백만, 2백만이 넘어가는 호가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동안 미술관에 처박혀 손에 쥘 수 없었던 명화.

    나라의 소유라 어쩔 수 없이 손가락만 빨아야 했던 작품. 가끔 현대미술관에 들를 때마다 얼마나 소유하고 싶었던가.

    그들은 경쟁자를 보며 주먹을 쥐며 경매 진행자를 노려봤다.

    “이런 여기서 더 쉬었다가는 와인병이 날아오겠군요! 워밍업은 잘하셨죠? 그러면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달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열심히 따라오십시오! 지금부터 호가를 5백만으로 올리겠습니다!”

    쿵!

    ‘5백만?’

    ‘이런 미친!’

    순간 크게 뛰어 버리는 호가.

    그에 경매장의 분위기가 반으로 나뉜다. 포기하는 사람들과 이제야 좀 할 만하겠다 미소를 짓는 사람들.

    흑인은 후자였다.

    “정물화의 예상 감정 평가액이 얼마지?”

    “8천만 유로입니다, 회장님.”

    “8천만 유로라…… 쯧. 그놈들이 허튼짓만 안 했어도…….”

    가브리엘 형제 때문에 괜히 쓸데없는 지출이 생기게 됐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어떻게든 차지하고 싶은 다섯 작품의 명화.

    ‘어차피 승자는 나다.’

    이 경매를 위해 얼마나 준비를 했던가. 오늘 참가한 참가자들 중 자신보다 현금을 준비한 사람은 없을 터.

    주변을 둘러본 흑인은 버튼을 눌렀다.

    그러며 입을 열었다.

    “8천만 유로.”

    술렁!

    “8천만 유로 나왔습니다! 8천만 유로! 받으실 분 계십니까?! 없다면 페르낭 레제의 샹들리에가 있는 정물화는, 다신 구할 수 없는 이 명화는 저기 35번 신사님께 돌아가게 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을 외치겠습니다! 8천만 유로! 8천만 유로!”

    흑인은 쉽사리 버튼을 누르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며 입술을 비틀었다.

    ‘역시 한 번에 지르니 따라오지 못하는군.’

    이 역시 원하는 걸 따내기 위한 경매 스킬 중 하나.

    단번에 예상 액수를 질러 버리면 사람들은 그 이후 얼마를 더 올리지 모르기에 포기해 버리고 만다.

    “8천…….”

    ‘됐군.’

    흑인이 승자의 미소를 짓는 순간이었다.

    번쩍!

    “8천 5백만 유로.”

    쿠웅!

    흑인은 경매장에서 유일하게 불이 들어온 테이블, 버튼을 누르며 이쪽을 쳐다보는 종혁의 모습에 이를 악물었다.

    분명 검푸른 조명 때문에 보이지 않아야 하는데도 보이는 것 같은 조롱의 눈빛.

    ‘저 개새끼가!’

    “8천 5백만! 8천 5백만이 나왔습니다! 35번 신사님, 받으시겠습니까?! 받지 않으신다면 페르낭 레제의 샹들리에가 있는 정물화는, 다신 구할 수 없는 이 명화는 11번 신사님의 소유가 됩니다!”

    까득!

    “9천만!”

    “회장님!”

    “조용히 해!”

    “9천만-! 9천만이 나왔습니다!”

    종혁은 어쩔 거냐는 듯 노려보는 흑인의 모습에 씩 웃었다.

    ‘너 맞구나?’

    이놈이다. 이놈이 가브리엘 형제에게 그림을 훔쳐 오라고 시킨 이번 도난 사건의 배후다.

    ‘흠. 어떡할까.’

    어떡하긴 뭘 어떡한단 말인가.

    악인에겐 악의로.

    달칵!

    “1억 유로.”

    ‘현금은 얼마나 준비했니? 일단 난 무제한인데.’

    저 범죄자의 지갑부터 예쁘게 털어 봐야 할 것 같다.

    * * *

    경매장에 기묘한 분위기가 맴돈다.

    “8천만!”

    “8천 5백만.”

    35번 흑인이 금액을 외치면, 11번 동양인이 그보다 무조건 5백만 유로를 더 붙여 부른다.

    마치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마치 어른이 아이를 보며 얼마든지 재롱을 떨어 보라는 듯.

    그 모습에 다른 경매 참가자들은 흥미 가득한 표정을 짓는다.

    짓궂은 누군가는 슬그머니 호가를 높이며 둘의 싸움을 더 부추기고, 둘의 싸움에 자금이 여유로워진 누군가는 다섯 명화 중 하나라도 건지기 위해 이를 악물고 달려든다.

    “1억!”

    또다시 돌파해 버린 1억 유로. 경매장에 잠시 침묵이 찾아든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다.

    “1억 백만!”

    “1억 백만 나왔습니다! 아, 21번 신사님께서도 받으시는군요! 35번 신사님? 11번 신사님? 받으시겠습니까? 받지 않으신다면 38번 손님과 21번 손님께서 파블로 피카소와 함께 입체파를 창시하고 발전시킨 조르주 브라크의 에스타크의 올리브 나무를…….”

    종혁은 눈이 빨개진 사람들을 보며 싱긋 웃었다.

    ‘귀찮은 것들이 붙었네. 고맙게시리.’

    “1억 천만.”

    “1억 천마안! 11번 신사님께서 1억 천만을 부르셨습니다! 21번, 35번, 38번 신사님? 21번 신사님께서 받으셨습니다!”

    흑인은 느긋이 와인을 마시는 21번을 보며 얼굴을 구겼다.

    ‘저 개자식!’

    감정 평가액이 8천만 달러였던 페트랑 레제의 정물화.

    그러나 계속해서 호가를 올리는 11번 동양인 탓에 무려 1억 5천만 유로에 낙찰받게 되었다.

    1억 4천 5백만까지 호가를 올리더니 슬그머니 빠지며 낙찰받은 걸 축하한다며 박수를 친 11번.

    그 모습은 마치 돈이 부족해서 포기한 게 아니라, 그렇게나 갖고 싶다면 양보하겠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건 그가 두 번째 작품을 낙찰받을 때도 똑같이 이어졌다.

    그것이 흑인의 신경을 건드렸다.

    그는 이를 악물며 버튼을 향해 손을 가져갔다.

    그 순간이었다.

    “회장님, 너무 흥분하셨습니다.”

    “……닥쳐.”

    여태껏 원하는 건 단 한 번도 놓쳐 본 적이 없는, 어떻게든 가져야 직성이 풀렸던 그.

    그런 그에게 11번, 종혁은 감히 자신의 것을 도둑질하려는 개자식이었다. 이제는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자존심이 제대로 긁힌 흑인은 비서의 손을 쳐 내며 버튼을 눌렀다.

    “1억 3천만!”

    “1어억 3천만-! 아! 21번 신사님과 38번 신사님께서 포기하시…….”

    “나도 포기.”

    “……아! 11번 신사님께서 포기하셨습니다!”

    짝짝짝!

    “축하드립니다, 35번. 좀 아쉬운 싸움이군요.”

    ‘이 개새끼!’

    이젠 확실히 알겠다.

    11번은 그림을 낙찰을 받을 생각이 없는 거다. 그냥 자신을 엿 먹이려 경매 호가를 높였을 뿐이다.

    까드드득!

    ‘좋아. 그럼 나도 방법이 있지!’

    “휴. 열기가 너무 과잉된 것 같군요. 하지만 이 열기를 식힐 순 없겠죠? 바로 오늘 경매의 하이라이트, 다섯 명화 중 네 번째 명화에 대한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야수파의 창시자…….”

    번쩍!

    흑인은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버튼을 눌렀다.

    “2억.”

    쿠웅!

    “미, 미친?”

    “아무리 앙리 마티스라지만 2억을 부른다고? 미친 거 아니야?”

    술렁이는 경매장.

    흑인은 종혁을 보며 비릿하게 웃었고, 종혁은 그걸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야, 이거 함정이다. 저 새끼 네가 받기만을 기다리는 거야.”

    “그걸 제가 모르겠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종혁은 시끄럽게 떠드는 경매 진행자를 무시하며 버튼을 눌렀다.

    “2억 5천만.”

    이젠 소음조차 사라진 경매장.

    사람들은 입을 떡 벌리며 35번을 바라보고, 35번은 자신이 만든 덫에 걸려든 종혁에 주먹을 불끈 쥐며 경매 진행자를 바라봤다.

    “이봐, 난 좀 의심스럽군.”

    “……뭐가 의심스럽다는 것이죠?”

    “저 11번이 하는 짓이 아무래도 이상해서 말이야.”

    “그게 무슨…….”

    경매 진행자가 당황하자 종혁은 한숨을 내쉬었다.

    “천박하게 노는군.”

    “뭐야?”

    “결국 내 통장에 얼마가 들어 있나 확인하고 싶은 거잖아?”

    흑인이 입을 다물자 종혁은 몸을 일으켜 그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막아서는 경호원.

    멈춰 선 종혁은 품 안에서 수표책을 꺼내어 숫자를 적어 흑인에게 내밀었다.

    “숫자 확인했나?”

    6억 유로. 흑인의 눈이 파르르 떨린다.

    종혁은 그가 확인을 하자 옆의 경호원에게 수표를 내밀었다.

    “확인해 봐.”

    “……알겠습니다.”

    조심스럽게 경매 진행자에게 다가는 경호원.

    경매 진행자는 무전기를 꺼내 수표에 적힌 계좌번호를 말하고, 경매장에 숨 막힐 듯한 침묵이 찾아든다.

    흑인도 제발 아니길 빌었다.

    그리고 잠시 후.

    “……11번 신사님께서 보여 주신 수표는 지급에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알려 드립니다.”

    쾅!

    믿을 수 없다는 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흑인.

    종혁은 경악과 불신, 분노에 부들부들 떠는 그를 보며 입술을 뒤틀었다.

    “이제 남은 게 피카소지?”

    대망의 마지막, 오늘 경매의 피날레.

    미술을 배운 적 없는 일반인들조차 그 이름을 아는 위대한 화가, 파블로 피카소.

    “방금 2억 5천을 태웠으니 3억 5천만 유로가 남았네.”

    “네, 네놈…….”

    “쫄리면 뒈지시든가.”

    애당초 이 경매는 종혁에게 무제한의 자금이 허락된 가짜 경매. 애초부터 35번이 이길 확률은 단 1퍼센트도 없었다.

    * * *

    “파블로 피카소의 비둘기와 완두콩은 11번 신사님의 품으로 돌아가게 됐습니다!”

    “와아!”

    짝짝짝짝짝짝!

    감정가 1억 2천만 유로, 그러나 낙찰액 2억 7천만 유로.

    이 말도 안 되는 돈지랄에 사람들은 비록 그림을 한 점도 낙찰받지 못했지만, 좋은 구경을 했다는 의미를 담아 격렬한 싸움을 벌인 두 사람을 향해 박수를 쳐 줬다.

    쾅!

    자리를 박찬 흑인은 경매장을 빠져나갔고, 종혁은 그런 그를 향해 미소를 지어 주다 몸을 일으켰다.

    “우리도 이만 일어나죠.”

    낙찰을 받은 경매 물품을 받으러 가야 했다.

    “어? 어어, 그래.”

    “후우. 정말 재밌는 구경이었습니다. 이거 새로운 취미가 생길 것 같군요.”

    “하하. 저도 그러네요.”

    그동안 가끔 기부의 의미로 자선 경매만 다녔던 종혁. 꽤 즐길 만한 취미를 얻게 된 것 같다.

    “야, 나도 데려가라.”

    “뒷주머니를 그렇게까지 차셨어요?”

    셋은 키득키득 웃으며 경매장을 빠져나갔다.

    꽝! 꽝꽝!

    가면을 벗어던진 흑인이 차창을 때려 부술 듯 후려친다.

    어떻게든 다섯 점의 명화를 모두 낙찰받으려 했던 그. 그러나 웬 미친놈 때문에 돈은 돈대로 썼으면서 낙찰을 받은 그림은 겨우 세 점에 불과했다.

    “너무 흥분하셨습니다, 회장님.”

    “그 입!”

    죽일 듯 노려보는 시선에 비서는 입을 다물었고, 이를 간 흑인은 시거를 꺼내 물었다.

    “푸후우…… 빌어먹을!”

    독한 시거로도 가라앉지 않는 분노에 다시 방방 뛰던 흑인이 다시 비서를 노려봤다.

    “그 새끼에 대해 알아 와.”

    “가면을 써서 힘들…….”

    “두더지의 왕인지 뭔지의 아가리에 돈을 쑤셔 넣어서라도 알아 오라고!”

    그리고 놈에게서 뺏긴 그림을 되찾아와야 한다.

    “……예.”

    비서가 핸드폰을 들며 어디론가 전화를 하자 그는 시거를 뻑뻑 피우며 애써 화를 가라앉혔다.

    그사이 그들을 태운 차는 저택에 도착했다.

    “이 그림들은 어떻게 할까요, 회장님.”

    “모두 모아서 정밀 감정 맡겨.”

    “알겠습…….”

    꽈앙!

    갑작스러운 굉음과 함께 저택을 뒤흔드는 충격에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렸던 흑인과 비서는 순간 온몸을 엄습하는 불길함에 다급히 창가로 걸어갔다.

    그리고…….

    “하! 하하하하하하!”

    웨에에에에엥!

    사이렌 소리를 요란하게 울리며 정원 안으로 진입하는 경찰차들.

    “푸하하하하핫!”

    당했다. 함정 수사에 제대로 당했다.

    “피, 피하셔야 합니다, 회장님!”

    “……어디로?”

    “회장님!”

    저렇게 많은 경찰 병력이 몰려왔다. 이미 개미 새끼 한 마리조차 이 저택을 빠져나갈 수 없었다.

    뚜벅뚜벅!

    흑인은 열린 현관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오는 뤼옹 드 몽을 발견하곤 이를 악물었다.

    “당신이 범인일 줄은 몰랐군, 앙리 회장.”

    “뤼옹 드 몽 공작……. 당신이 움직였을 줄은 몰랐군.”

    정확히는 이렇게 요란하게 움직일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그동안 수많은 사건을 해결했지만, 범죄학 교수로서 경찰 수사의 자문 역할만 맡았던 뤼옹 드 몽.

    ‘그 그림들이 진짜였을 줄이야!’

    가브리엘 형제에게서 뺏은 그림들. 그것들은 모두 진짜였던 거다.

    흑인, 앙리 회장은 부들부들 떨었고 뤼옹 드 몽은 그런 그를 보며 냉소를 지었다.

    “미안하지만, 이번 건 내 스타일이 아니라네.”

    “뭐?”

    “소개하지. 동양에서 온 나의 돈 많은 친구라네.”

    “봉 쥬르?”

    뤼옹 드 몽의 뒤에 나타난 종혁이 가면을 벗으며 히죽 웃는다.

    뚝!

    “……이 개자식아-!”

    종혁은 결국 폭발해 달려드는 앙리를 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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