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672화 (672/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672화>

    시끄러운 음악이 울리는 파리의 어느 저택 앞.

    부르릉!

    롤스로이스 한 대가 멈춰 서며 가면을 쓴 오십대 흑인이 내린다.

    “시끄럽군.”

    시끄러운 정도가 아니다. 아직 여름이 아닌데도 헐벗은 옷차림의 여성들이 꺄르르 웃으며 저택 안으로 들어가자 흑인은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한 달을 기다렸는데 이런 요란한 곳에서…….”

    “이래야 시선을 피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며칠 전부터 계속 이어진 파티.

    때문에 경찰도 그저 돈을 주체할 수 없는 어느 부자의 파티로 생각할 뿐, 이곳에서 비밀 경매가 이뤄진다고는 생각지 못할 거다.

    “치밀하군. 경매 주최자가 누구라고?”

    “두더지의 왕이라고 합니다.”

    통칭 두더지의 왕(roi des taupes).

    프랑스의 비밀 경매를 대부분 주관하던 뒷세계에선 모르는 이가 없을 만큼 유명했으나, 10년 전 꼬리가 밟히며 한순간에 소리 없이 사라진 조직이었다.

    “그들이 다시 돌아온 것 같습니다.”

    “경찰이 판 함정일 확률은…… 없겠군.”

    다섯 점의 그림을 제외한다고 해도 오늘 나온 경매품들의 값어치만 따져도 족히 5천만 유로가 넘는다.

    검찰과 경찰이 꾸며낼 수 있는 사이즈가 아니다.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흑인이 비서 옆에 있는 장년인을 보며 저택 안으로 걸음을 옮기는 순간이었다.

    과르릉!

    우렁찬 굉음을 내뿜으며 흑인이 내린 롤스로이스 뒤에 도착한 슈퍼카 두 대.

    선두의 슈퍼카에서 하얀 슈트를 입은 거한이 내리자 흑인이 눈을 빛낸다.

    “동양인인가?”

    흑인의 머릿속으로 동양인 부자의 명단이 스쳐 지나간다.

    “들어가시죠. 30분 후에 경매 시작입니다.”

    “어디로 가면 되지?”

    “입구에 가면을 쓴 안내인이…… 저 사람인가 보군요.”

    비서의 말에 흑인은 동양인에게 신경을 끄며 저택 안으로 들어갔고, 동양인은 그런 흑인을 응시하며 핸드폰을 든다.

    “네, 시연 씨.”

    -어딘데 이렇게 시끄러워요?

    “음. 좋은 곳?”

    -남자한테?

    “여자한테도요.”

    비율이 훌륭한 남자들도 제법 보인다.

    -사진 찍어 와요.

    “남자 사진 찍는 취미 없습니다. 끊을게요.”

    -……조심해요.

    “시연 씨도 오늘 하루 파이팅입니다.”

    전화를 끊는 종혁에게 백이도 과장과 해리 가드너가 다가선다.

    “아주 꿀이 떨어지는구나, 떨어져.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더니.”

    “거 후배가 연애하겠다는데 방해하지 맙시다.”

    “아직 손도 안 잡아 봤다며?”

    “이번 사건만 아니었으면 잡았어요.”

    아마 그랬을 거다.

    종혁은 너스레를 떠는 백이도를 보며 피식 웃었다.

    “그보다 최 부장. 방금 그 흑인…….”

    “예. 경매 참가잡니다.”

    방금 전 스쳐 지나간 흑인이 쓰고 있던 특이한 가면.

    그건 경매 참가자를 구분할 수 있도록 경매 주최 측에서 전달한 특별한 패턴의 가면이었다.

    ‘몇 명이나 참가했을까나……. 되도록 많이 참가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떳떳이 판매할 수 없는 장물들이 경매에 오르는 비밀 경매. 그리고 경매 참가자들은 그 사실을 모두 알고 있다.

    즉, 이번 경매에 참가하여 물건을 구매하는 이들은 전부 범죄자라는 뜻이다.

    이들은 이전에 다른 장물들도 매입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고, 이번 기회에 그것들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최 부장, 근데 정말 아무거나 입찰해도 되는 거냐?”

    이번 경매의 물품들의 입찰액이 수백만 유로는 가뿐히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

    백만 유로만 되더라도 자신은 평생을 모아도 모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돈이었기에 백이도는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걱정 말고 마음껏 입찰하세요.”

    ‘어차피 다 돌려받을 돈이니까.’

    종혁은 한 달 전 뤼옹 드 몽의 소개로 만난 이 경매의 주최자, 두더지의 왕이라 불렸다는 노인과의 만남을 떠올리며 저택 입구에 서 있는 안내인에게 다가갔다.

    * * *

    따뜻한 봄바람이 점점 뜨거워지기 시작하는 6월.

    높다란 에펠탑이 보이는 카페에 앉은 뤼옹 드 몽이 다리를 꼰 채 우아하게 커피를 마신다.

    그런 그의 옆에서 빵을 씹으며 다리를 떨던 알랭 까네는 담배를 찾다 뤼옹 드 몽을 보곤 주머니에서 손을 뺐다.

    “피워도 되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두 번 권하지 않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뤼옹 드 몽의 모습에 알랭 까네는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대단하더군요.”

    “부럽던가?”

    “……예.”

    어젯밤, 콩테 공방을 낚기 위해 천만 유로를 턱턱 써 버리던 종혁.

    물론 후에 다시 회수할 돈이지만, 그런 돈을 수사에 쓸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게다가 앞으로 종혁이 쓸 돈까지.

    뤼옹 드 몽은 씁쓸히 웃는 알랭 까네를 보며 눈빛을 가라앉혔다.

    “그래서 주는 것만 받아먹을 생각인가?”

    그러고도 파리경찰청의 형사라고 자부할 수 있을까.

    “……그럴 리가요.”

    종혁은 다른 나라의 사람이다.

    아무리 도움을 주기 위해 왔다지만, 뒤에서 지켜만 봐서는 자랑스러운 프랑스 경찰이라고 할 수 없다.

    그래서 이렇게 여기까지 온 것이다.

    알랭 까네의 두 눈에 전의가 불타오르자 고개를 끄덕인 뤼옹 드 몽은 에펠탑 앞 잔디밭에 앉아 여유롭게 피크닉을 즐기는 사람들을 응시했다.

    일광욕을 하며 책을 읽는 파리의 시민들과 관광객들.

    ‘이들을 지켜야 하는 건 프랑스 경찰이 할 일이지.’

    타국의 경찰이 아니라 프랑스 경찰이.

    얼마의 돈을 써서라도.

    알랭 까네는 고고하게 커피를 즐기는 그를 존경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다 돌연 실소를 터트렸다.

    “왜 그런가?”

    “대통령도 참 급했다 싶어서 말입니다.”

    본래라면 허가가 되지 않을 수사 방식.

    그러나 재임이 될 확률이 한없이 낮은 대통령은 지지도를 올리기 위해 이번 수사를 긴급히 허락했다.

    “물론 공작님께서 힘을 쓰신 게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테지만 말입니다.”

    그야 당연하다는 듯 코웃음을 친 뤼옹 드 몽은 이내 오묘한 눈빛을 지으며 알랭 까네를 봤다.

    “흠. 자넨 모르나 보군.”

    “무슨…….”

    “그 사람 피카소와 모딜리아니의 광팬이네.”

    “……예?”

    피식 웃음을 흘리곤 다시 커피를 마시던 뤼옹 드 몽은 시야 한 구석에 나타나는 허름한 옷의 노인을 발견하곤 몸을 일으켰다.

    버려진 음료수 캔 따위를 줍는 노인에게 다가가 뤼옹 드 몽.

    “오랜만이군.”

    “……뤼옹 드 몽.”

    노인의 얼굴이 구겨졌다.

    “죽고 싶어서 내 앞에 나타난 겁니까?”

    뤼옹 드 몽은 쓰레기 집게를 강하게 쥐는 노인을 위아래로 훑으며 피식 웃었다.

    “한때 왕이라 불렸던 자의 꼴이 참…….”

    “누구 때문인데!”

    빠드득!

    눈앞의 뤼옹 드 몽 때문이다.

    한때 프랑스에서 한 손가락 안에 꼽혔던 자신의 비밀 경매 조직. 그런 조직을 파리 경찰들과 함께 일망타진한 게 바로 눈앞의 뤼옹 드 몽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취조를 통해 자신이 최후의 보루로 숨겨 두었던 재산까지 밝혀낸 게 바로 뤼옹 드 몽이었다.

    그 탓에 이렇게 출소 후 거리의 재활용 쓰레기를 주워다 파는 거지 같은 꼴이 됐다.

    만약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처음 뤼옹 드 몽을 봤을 때 어떻게든 찢어 죽였을 것이다.

    “눈빛이 좋군.”

    “놀리는 겁니까!”

    “백만 유로.”

    움찔!

    “거기에 자네가 편히 머물 수 있는 주택도 하나 주지. 본 공작가의 소유니 황혼을 보내기에는 알맞을 거야.”

    “……무슨 수작이지?”

    “글쎄…… 나도 자존심이 상한달까?”

    혹여 콩테 공방이 도망을 친다면 날아가 버릴 천만 유로.

    그럼에도 종혁은 그 큰돈을, 자신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건을 해결하는 데 그 큰돈을 쓰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물론 한국의 문화재 때문이겠지만…….’

    한 명의 프랑스 인으로서, 그런 프랑스 인을 다스려야 할 귀족의 일원으로서 자존심이 상하지 않을 리 없었다.

    “찾아야 할 그림이 있네. 그러니 자네가 잘하는 짓, 경매 좀 해 줘야겠어.”

    그러면 편안한 노후를 보낼 수 있을 거다.

    이것이 대통령이 승인한 수사. 함정 수사.

    노인, 한때 두더지의 왕이라 불린 그는 입을 떡 벌렸다.

    * * *

    저택 지하의 와인 창고 뒤편에 있는 커다란 비밀 공간.

    푸른 조명이 내리쬐는 그곳에 이미 수십 명의 사람이 의자에 앉아 있다, ‘정말 노다지네.’

    종혁은 가면을 쓰고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며 이 저택의 3층, 어느 방에 수사본부를 차린 채 CCTV로 지켜보고 있을 뤼옹 드 몽과 경찰들을 떠올렸다.

    “경매에 참가하고 싶으면 중앙에 있는 버튼을 누르시면 됩니다.”

    그럼 테이블 중앙에 세워진 불빛, 숫자가 적힌 빛을 뿜어낼 거다.

    지정된 테이블에 앉은 백이도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그 교수님은 대체 어떤 놈들을 섭외하신 거야?”

    마치 브로드웨이의 극장을 연상시키는 품격이 느껴지는 장소와 곳곳에 서서 위험한 기세를 풍기는 덩치 좋은 경호원들.

    그리고 이곳을 지나오기 전에 있었던 와인 창고의 진열되어 있던 희귀한 와인들까지.

    정말 제대로 준비했다.

    설마 이걸 보고도 경찰의 작전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터였다.

    그런 백이도의 감상에 종혁은 피식 웃었다.

    ‘뤼옹 드 몽 교수가 귀족인 걸 말씀 안 드렸었나?’

    아마 이 저택은 몽 공작가의 숨겨진 자산일 확률이 높았다.

    “이거 두 분이서 너무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시는 거 아닙니까?”

    자신도 끼워 달라며 웃는 해리 가드너의 모습에 종혁과 백이도는 아차 했다.

    “하하. 죄송합니다. 그게…….”

    팟!

    말을 꺼내려던 종혁은 정면의 단상에 불이 들어오자 입을 다물었고, 백이도와 해리 가드너 교수도 눈을 빛냈다.

    “시작됐군요.”

    경매 시작.

    ‘자, 그럼 지켜보도록 할까?’

    가브리엘에게 그림을 훔쳐 오라 의뢰하고 총질을 한 얼굴 모를 개새끼가 알아서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말이다.

    종혁은 즐겁다는 듯 웃으며 테이블에 비치된 와인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이내 곧 웃음을 터트렸다.

    * * *

    “6만 유로입니다. 6만 유로! 다음은 6만 5천 유로 가겠습니다! 6만 5천 유로!”

    “하핫!”

    버튼을 누르는 종혁이 한 방 맞았다는 듯 웃고, 백이도는 단상에 올려진 파란 청자를 보며 뒷목을 주무른다.

    “야, 이거 그 양반이 고른 경매품이라고 하지 않았냐?”

    “그랬죠.”

    파리경찰청이 이런 비밀 경매나 범죄 단체, 범죄자에게서 압수한 장물들 중 일부.

    훗날 프랑스에 산재한 박물관과 미술관으로 가거나 경매를 통해 프랑스 정부의 국고를 늘려 줄 보물들이고, 오늘 경매에 오른 보물들은 모두 뤼옹 드 몽이 손수 골라낸 것들이다.

    그런데 그 보물들 안에 한국의 문화재들이 끼어 있다.

    뤼옹 드 몽은 혹시나 프랑스 정부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을 때를 대비해, 한국의 보물을 숨기려고 할 때를 대비해 프랑스 경찰이 이런 보물들을 확보해 놓았다는 걸 알려 주려 한 것이었다.

    참 재치 있는 양반이었다.

    “7만 5천 유로! 더 없으십니까? 마지막으로 세 번 더 외쳐 보겠습니다! 7만 5천! 7만 5천! 7만 5천!”

    땅땅땅!

    짝짝짝!

    망치가 세 번 두드려지자 사방에서 박수가 쏟아지고, 종혁도 가면을 잡으며 사람들을 향해 고개를 숙인다.

    축하해 줘서 고맙다, 양보해 줘서 고맙다는 의미를 담은 감사 인사.

    그렇게 축하 분위기가 진정되는 순간이었다.

    “모두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하나의 그림이 조심스럽게 단상에 옮겨지자 가면 속 사람들의 눈이 번뜩인다.

    그들이 그토록 기다렸던 경매품. 도난당한 다섯 명화 중 하나.

    “페르낭 레제의 샹들리에가 있는 정물화!”

    “호오. 저게…….”

    “아름답군.”

    가면 사이로 지독한 욕심과 호기심을 드러내는 사람들.

    그건 종혁도 마찬가지다.

    ‘누구냐. 너희 중 어떤 새끼가 이걸 훔치라고 지시한 거냐.’

    두더지의 왕이 기억하고, 파리경찰청과 뤼옹 드 몽이 교차 검증을 해 모은 부자들, 아니 용의자들.

    어두운 쪽에 밝은 사람이라면 무조건 걸려들 수 있게끔 그리 비밀스럽지 않게 소문을 퍼트리고 초대장을 발송했다.

    분명 이 중에 그림을 훔치라고 의뢰한 놈들이 있을 거다.

    종혁과 백이도, 해리 가드너, 그리고 3층의 뤼옹 드 몽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때였다.

    “이봐!”

    “예, 35번 손님!”

    “그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어떻게 믿을 수 있지?”

    가면을 쓴 흑인의 옆에 있는 비서의 외침에 방금까지의 열기가 싸늘하게 식어 버리는 경매장.

    경매 진행자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는다.

    “……지금 그 말은 저희 경매장을 의심하는 걸로 받아들이면 되겠습니까?”

    “흥! 경찰에 붙잡혀 다 털린 놈들을 어떻게 믿지?!”

    웅성웅성.

    “맞아. 그랬지?”

    “뭐야. 그랬어?”

    분위기가 요상해지자 경매 진행자는 혀를 찼다.

    하지만 이미 예상한 일이다.

    “흠. 그렇게 저희를 믿지 못하시겠다니 별수 없군요. 좋습…….”

    “잠깐.”

    뚜벅!

    갑자기 귀를 때리는 구둣발 소리.

    사람들의 시선이 단상의 좌측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노인에게로 향한다.

    “두, 두더지의 왕?”

    “두더지의 왕이다!”

    경매 진행자에게서 마이크를 낚아챈 노인은 사람들을 향해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절 잊지 않고 찾아 주신 여러 귀빈들께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이렇게 다시 만나 뵙게 되어 반갑군요. 그리고…… 손님은 처음 뵙는 분 같군요. 반갑습니다. 과분하게도 두더지의 왕이라 불리는 늙은이입니다.”

    노인의 시선이 비서가 아닌 흑인에게로 향한다.

    “……크흠.”

    “제가 손수 검증한 작품들이 의심스럽다고요?”

    “쯧. 그렇소.”

    노인은 결국 입을 열며 가슴을 펴는 흑인의 숨겨진 초조함에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예. 그런 의심은 경매 참가자로서 당연한 소양이죠.”

    몇 천만 유로가 될 작품을 구매하는 건데 이런 검증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럼 기회를 드릴 테니 올라와서 살펴보도록 하시죠. 그 옆의 감정사와 함께.”

    깜짝 놀랐던 흑인이 이내 눈을 가늘게 뜬다.

    “다만 이것만은 경고하죠. 만약 그림을 훼손하거나 내 명예에 흠집을 낸다면 당신께 재미없는 일이 발생하게 될 겁니다.”

    허공에서 둘의 눈이 마주치며 뜨거운 불똥을 피운다.

    “……양해해 주셔서 고맙군. 가서 살펴봐.”

    “예, 회장님. 크흠.”

    일어난 흑인과 함께 온 장년인, 아니 감정사는 단상으로 걸어가 그림을 살피기 시작했고, 이내 곧 두 눈을 파르르 떨었다.

    노인은 그런 감정사를 보며 입술을 비틀었다.

    “더 확실히 볼 수 있도록 기구를 빌려 드릴까?”

    “제, 제 도구만 돌려주시면 됩니다!”

    노인은 경매장의 한 사내에게 눈짓을 했고, 이내 곧 작은 가방이 감정사의 손에 쥐어진다.

    그렇게 감정용 기구들을 꺼내 그림을 살핀 감정사는 허탈한 숨을 뱉어 내며 함께 온 흑인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진품이 맞습니다, 사장님!”

    “오오오!”

    “우와!”

    종혁은 환호성을 터트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거다. 이걸 위해서다.

    프랑스를 주름잡던 비밀 경매 조직의 부활.

    당연히 태클이 들어올 거라고 예상했고, 그게 아니라도 누군가는 그림의 진위 여부를 살필 거라고 예상했다.

    ‘그리고 그렇게 검사하려고 드는 놈이 범인일 확률이 높지.’

    이래서 콩테 공방을 그렇게 쪼았던 거다. 범인이 안심하고 경매에 참가할 수 있도록.

    종혁은 가면 아래 못마땅한 표정을 짓는 흑인을 가만히 응시했다.

    ‘너냐?’

    종혁의 눈이 고요하게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페르낭 레제의 샹들리에가 있는 정물화에 대한 경매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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