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670화 (670/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670화>

    해가 높이 뜬 한낮.

    초조하게 다리를 떨던 가브리엘이 시계를 확인하더니 화구통들을 들며 몸을 일으킨다.

    “루이, 다 챙겼어?”

    “응! 크몽도 챙겼어!”

    사료 봉지와 크몽의 애장품, 그리고 크몽을 든 채 해맑게 웃는 루이.

    “개 장난감은 버리라니까! 거기 가서 더 좋은 거 사면 된다고 몇 번 말해!”

    “아, 안 돼! 크몽 이것들 없으면 밥을 안 먹는단 말이야!”

    하루 종일 우울해하고, 자신이 불러도 쳐다보지도 않는다.

    다른 장난감들은 다 버려도 크몽이 안고 자는 인형과 다 낡아 버린 터그 장난감은 무조건 챙겨야 했다.

    “……에휴. 그래, 네 맘대로 해라. 가자.”

    “형, 나 배고픈데…….”

    “이따가 먹어!”

    곧 넘겨받을 돈으로 레스토랑에 가서 프랑스 정찬을 먹는 거다. 밑바닥을 전전해 온 가브리엘과 루이로서는 근처도 못 가 본 고급 레스토랑에서 말이다.

    “너 정찬 코스 먹어 봤어?”

    “아, 아니?”

    “그거 엄청 맛있는 거야. 지금 배부르면 좀 있다가 먹을 수 있겠어?”

    “차, 참을게. 참을 수 있어!”

    고개를 끄덕인 가브리엘은 사무실을 나서다 잠시 멈춰 섰다.

    “왜?”

    “……아니야.”

    지난 몇 달간 예행연습을 하며 정이 든 건지 쉬이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

    코웃음을 치며 밖으로 나온 가브리엘은 흰색 승합차 옆에 세워 둔 다른 차량에 올라타 공장 단지를 빠져나갔다.

    부우웅! 빵빵!

    점심시간이라서 그런지 제법 막히는 차 안.

    “잠시 검문 좀 하겠습니다.”

    차창을 연 채 담배를 피우고 있던 가브리엘은 도로 옆 지나다니는 행인들 중 남자들을 대상으로 검문검색을 하는 경찰들의 모습에 코웃음을 쳤다.

    ‘멍청이들.’

    그는 담배를 물며 액셀을 밟았다.

    * * *

    스르륵!

    달이 높이 뜬 어두운 밤, 파리 외곽의 빈민가.

    한 폐건물 입구, 언제든 수월하게 도망갈 수 있도록 입구에 차를 세운 가브리엘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는다.

    “와아, 오랜만에 온다.”

    그들이 매번 거래를 할 때마다 약속 장소로 잡는 폐건물.

    빈민가에서 자란 루이와 가브리엘은 이 삭막하고도 더러운 장소가 마치 어머니의 품처럼 포근했다.

    ‘허튼수작은 부리지 않은 것 같지만…….’

    한낮에 미리 와 이 폐건물이 보이는 장소에서 지켜봤던 가브리엘과 루이.

    “루이.”

    “응.”

    “잘할 수 있지?”

    “……응.”

    언제나 이렇게 긴장된 상황이 닥치면 울상을 짓는 루이.

    가브리엘이 그의 눈에 선글라스를 끼고, 마스크를 씌운다. 그건 가브리엘도 마찬가지다.

    철컥!

    루이가 샷건을 장전하자 가브리엘이 핸드폰을 든다.

    “도착했습니다.”

    -우리도 도착해 있소.

    부르릉!

    폐건물 안쪽에서 들려오는 배기음과 눈을 때리는 헤드라이트 불빛.

    곧 사람이 내리자 가브리엘과 루이도 차문을 열어 놓은 채 차에서 내린다.

    터벅! 터벅!

    슈트를 입은 중년 남성이 주변을 둘러보며 입술을 비튼다.

    “잘도 이런 곳을 골랐소.”

    “안전한 거래를 위해 고른 장소니 이해해 주십시오.”

    “……물건은?”

    “돈부터.”

    가브리엘과 중년인의 시선이 허공에서 치열하게 부딪친다.

    그러다 중년인이 혀를 차며 뒤를 향해 손짓을 한다.

    탁! 드르르륵!

    차에서 내린 다른 남자가 커다란 가방을 끌며 다가와 가브리엘의 앞에 놓고, 가브리엘은 다급히 가방을 열어 확인한다.

    쿠웅!

    심장을 강하게 때리는 돈다발의 향연.

    가브리엘의 귀가 입까지 찢어진다.

    “확인했소?”

    중년인을 가만히 응시하던 가브리엘은 몸을 일으켰다.

    “루이.”

    “응?”

    “허튼짓 하면 쏴 버려.”

    “아, 알았어.”

    철컥!

    사내들에게 샷건을 겨누는 루이를 일견한 가브리엘은 차로 걸어가 뒷좌석에서 다섯 개의 화구통을 꺼내 중년인에게 걸어갔다.

    “여기 있습니다. 확인해 보시죠.”

    “화구통에 넣어 오다니…….”

    “그림이 훼손될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액자기술공이었던 가브리엘이다. 그림을 망치지 않고 보관하는 방법은 통달해 있었다.

    “큼.”

    중년인은 화구통들을 열었고, 이내 눈을 파르르 떨었다.

    누구나 다 아는 입체파의 거장 파블로 피카소의 비둘기와 완두콩.

    파블로 피카소와 함께 입체파(큐비즘)를 창시하고 발전시킨 조르주 브라크의 에스타크의 올리브 나무.

    야수파의 창시자 앙리 마티스의 목가.

    생전에 인정을 받지 못한 비운의 천재, 비극적인 사랑의 대명사인 모딜리아니의 부채를 든 여인.

    입체주의에 영향을 받아 튀비슴이라는 본인만의 스타일을 만들어 낸 페르낭 레제의 샹들리에가 있는 정물화.

    명화들이 내뿜는 박력에 잠시 넋을 잃었던 중년인은 이내 여러 도구로 그림의 진품 여부를 확인하곤 조심스럽게 화구통 안에 다시 집어넣었다.

    “확실하군요. 수고했소.”

    ‘휴우.’

    안도의 한숨을 내쉰 가브리엘은 중년인이 내민 손을 붙잡았다.

    “다음에도 제가 필요하면 연락 주십시오.”

    “다음에 또 봅시다.”

    고개를 끄덕인 가브리엘은 뒷걸음질 쳐 차로 향했고, 루이도 총구를 내리며 슬금슬금 뒤로 물러난다.

    그때였다.

    “아, 그런데 말이오!”

    갑자기 그들을 멈춰 세우는 중년인.

    가브리엘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다.

    찰칵! 치이익!

    “아무리 생각해도 좀 도둑들에게 돈을 너무 많이 지불한 것 같아. 그렇지 않나?”

    철컥! 철컥!

    중년인의 비릿한 미소와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장전 소리에 가브리엘의 온몸에 소름이 내달린다.

    ‘저 두 놈 말곤 없었는데!’

    “루이-!”

    꽈아앙!

    어둠 속에서 불꽃들이 터져 나왔다.

    * * *

    카가가가각!

    튀어 나가듯 후진으로 폐건물을 빠져나가는 차를 향해 총알이 빗발치듯 쏟아진다.

    그러나 결국 멈춰 세우지 못했고, 차는 폐건물을 무사히 빠져나간다.

    “어떡할까요? 쫓을까요?”

    “……됐어.”

    사람들 눈에 띄었다가 꼬리라도 밟히면 괜히 일이 복잡해질 수도 있었다.

    그림과 돈 모두 문제없이 손에 넣은 상황에서 더 무리할 필요는 없었다.

    “돈 회수해. 철수한다.”

    중년인은 몸을 돌렸고, 이내 돈 가방과 그림들을 실은 한 대의 차량이 폐건물을 빠져나갔다.

    부아아아앙!

    파리 시내를 달리는 차 안.

    “끄으윽!”

    Deux prêcautions valent mieux qu‘une.

    두 번 조심하는 것이 한 번 조심하는 것보다 낫다고 했는데, 방심해 버리고 말았다.

    피투성이가 된 가브리엘이 온몸을 뒤흔드는 끔찍한 고통에도 이를 악물며 차를 몬다.

    “커헉! 아, 아파…….”

    “루이-!”

    “풉!”

    입에서 피를 토하는 루이. 그와 동시에 그의 가슴팍에서도 피가 많이 스며 나온다.

    “야, 이 새끼야! 정신 차려! 금방 치료할 거니까 정신 차리라고!”

    병원은 안 된다. 총상으로 병원에 갔다가는 곧바로 경찰들이 출동한다.

    무능해도 총격 사건은 기가 막히게 찾아다니는 경찰들. 자신들이 파리 시립 현대미술관의 도둑인 걸 알게 된다면, 이번엔 족히 20년을 교도소에 처박아 넣을 거다.

    그럴 순 없다.

    ‘그 개자식들!’

    복수를 해야 된다. 자신들을 배신한 이놈들을 죽여야 한다.

    빠드득!

    “형…… 나 졸려…….”

    “잠들면 안 돼! 잠들면 안 된다고, 병신아! 노, 노래! 노래 불러!”

    “시, 신나게 춤추자. 손에 손을 마주 잡고…….”

    ‘창고로 가야 해!’

    핸드폰을 꺼내 교도소에서 알게 된 무면허 의사를 호출한 가브리엘은 ‘아비뇽 다리 위에서’를 들으며 핸들을 꺾었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루이의 노랫소리가 이젠 들리지 않을 만큼 희미해졌을 때, 가브리엘의 눈에 공장 단지가 들어온다.

    그의 눈에 희망이 서리기 시작한다.

    “다 왔어, 루이! 조금만 더 참아!”

    끼기기기긱!

    다급히 창고로 향하는 골목으로 핸들을 꺾는 순간이었다.

    “어?”

    그의 눈에 끔찍한 광경이 들어온다.

    창고를 에워싸고 있는 특수부대들. 창고에서 빠져나오고 있는 경찰들.

    아득한 절망이 엄습한 가브리엘이 반사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으려 발을 옮긴다.

    “잘 자, 형…….”

    섬뜩!

    “아, 안 돼!”

    늦었다.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

    “그깟 20년 살아 주면 되잖아-!”

    가브리엘은 총을 드는 경찰들을 향해 액셀을 밟으며 정문으로 차를 밀어 넣었다.

    끼이이이익!

    “사, 살려 줘! 내 동생 좀 살려 줘-!”

    그는 자신의 고통을 잊은 채 경찰에게 매달렸다.

    * * *

    삐이! 삐이!

    산소호흡기를 쓴 채 잠들어 있는 루이를 보며 종혁이 눈을 가늘게 뜬다.

    루이의 몸에서 적출한 총알만 다섯 개다.

    총알이 관통한 총상까지 합하면 열두 개.

    그럼에도 수술은 무사히 끝났고, 바이탈 사인도 정상이다. 이 정도면 거의 신이 살렸다고 봐야 했다.

    몸을 돌려 중환자실을 빠져나간 종혁은 경찰들이 지키고 있는 가브리엘의 병실로 향했다.

    양손이 침상에 결박되어 있는 가브리엘. 종혁과 경찰들이 들어오자 그의 몸이 요동친다.

    “내, 내 동생은! 내 동생은 어떻게 됐어?!”

    쩌억!

    “네 동생 목숨은 중요하고, 너 때문에 실직자가 될 미술관 직원들 목숨은 안 중요하지?”

    술에 취해 본분을 잃은 경비원들이야 동정할 가치도 없지만, 파리 시립 현대미술관 직원들까지 앞으로 이쪽 계통의 일을 구하지 못할 거다.

    그들 중에는 빈민에 가깝게 힘들게 사는 사람도 있었고, 당장 내일 월세를 내야 되는 일곱 가족을 부양하는 가장도 있었다.

    앞으로 20년간 대출금을 갚아야 할 신혼부부도 있었고, 학자금 대출을 갚아야 하는 사회초년생도 있었다.

    일평생 미술 쪽 공부만 해 온 그들.

    이제 그들의 앞에 펼쳐진 건 지옥밖에 없었다.

    그 절망에 어쩌면 그릇된 선택을 할 수도 있는 그들.

    목이 꺾인 가브리엘은 종혁의 싸늘한 일갈에 고개를 숙였고, 종혁과 뤼옹 드 몽의 시선을 받은 파리경찰청의 경찰이 다가와 가브리엘의 멱살을 잡았다.

    “공범이 누구야! 불어!”

    가브리엘의 취조가 시작됐다.

    놈들에게 연락이 온 건 작년 10월이었다.

    당시 막 출소해 일감을 찾는 가브리엘에게 전화로 연락을 해 온 그들.

    “총 4천만 유로. 선수금으로 4백만 유로.”

    이제는 정말 평범하게 살겠다며 다짐했던 가브리엘이었지만, 동생과 둘이 한평생 부족함 없이 살 수 있는 액수에는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내부 지도는 어떻게 구한 거지?”

    “그쪽에서 인사 담당 직원을 매수했습니다.”

    그리고 루이를 경비원으로 취직시켰다.

    그렇게 루이는 3개월 동안 파리 시립 현대미술관에서 경비원으로 지내며 조금씩 미술관의 내부 정보를 가져왔고, 가브리엘은 그 정보를 바탕으로 커다란 창고를 미술관으로 꾸며 나갔다.

    이후로는 매일매일 최적의 동선을 궁리하고, 연습하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현재의 상황까지 이어진 것이다.

    “놈들의 인상착의는! 전화번호는!”

    “너희들은 빈민가로 달려가서 CCTV 회수해!”

    “예!”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는 병실.

    한구석에 앉아 가브리엘의 표정을 살피던 뤼옹 드 몽이 몸을 일으켜 병실을 빠져나가고, 그의 눈빛을 받은 종혁이 따라나선다.

    “자네는 이번 일에서 이만 손 떼게.”

    “……무려 공작님이나 되시는 분께서 약속을 어길 줄은 몰랐는데요.”

    종혁이 얼굴을 구기자, 뤼옹 드 몽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림을 회수하지 못한 이상, 프랑스 정부를 설득해서 받아 내는 건 어려운 상황.

    아니, 어쩌면 프랑스 정부는 이번 사태의 책임을 수사를 주도한 종혁에게 뒤집어씌우려 할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니 종혁의 도움을 받는 건 여기까지.

    “정리의궤는 내가 따로 매입해서라도 넘기도록 하지.”

    프랑스 정부를 설득할 수 없으니, 개인적으로 구입해 이번 일에 대한 대가로 지불한다.

    이것이 귀족으로서의 자존심이었다.

    뤼옹 드 몽의 흔들리지 않는 두 눈을 응시하던 종혁은 이를 악물었다.

    “빌어먹을. 사람 죄책감 느끼게 하는데 뭐 있네요.”

    “다음에 또 보도록 하지.”

    “됐습니다.”

    어차피 이대론 찝찝해서 잠을 이루지 못할 거다.

    혀를 찬 종혁은 병실 문을 열어젖히며 크게 외쳤다.

    “동작 그만-!”

    모두를 멈추게 한 종혁은 알렝 까네 형사를 봤다.

    “저 새끼 검거된 거 언론에 알려졌습니까?”

    “아, 곧 알릴 생각입니다.”

    범인은 잡았지만, 그림은 회수하지 못했다.

    어쩌면 여기 있는 사람의 목이 전부 날아갈 일이라 파리경찰청장의 결재를 받지 않으면 언론에 알릴 수조차도 없었다.

    “오케이. 잠시만 나가 계시죠.”

    경찰들을 모두 내보낸 종혁은 가브리엘을 불렀다.

    “야.”

    “예?”

    “너 소문 하나만 내 줘야겠다.”

    종혁은 의아해하는 가브리엘을 보며 흉흉한 눈빛을 지었다.

    ‘찾을 수 없다고?’

    공용 CCTV조차 제대로 설치되지 않은 빈민가.

    놈들을 찾을 방도가 없다면 놈들이 이쪽을 찾아오게 하면 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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