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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669화 (669/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669화>

    -5억 유로 상당의 그림들이 사라진 지 벌써…….

    와삭!

    “으으음.”

    돼지고기와 콩을 다져 만든 퓌레를 바게트 위에 올려 크게 한 입 베어 문 루이가 몸을 떨자, 시선을 돌린 가브리엘이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다.

    “맛있냐?”

    “응!”

    “진짜 그걸 무슨 맛으로 먹는 건지…….”

    익혔다가 차갑게 식힌 돼지고기의 누린내와 콩의 비릿한 풋내가 가득한 퓌레.

    가브리엘이 생각하는 최악의 프랑스 음식이 바로 저 돼지고기 퓌레였다.

    “마, 맛있는데…….”

    “그래요. 그 맛있는 거 너나 많이 드세요.”

    “응!”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동생에게서 시선을 돌린 가브리엘은 시금치로 만든 녹색 퓌레를 바게트에 올려 베어 물며 파리경찰청장이 나오는 TV를 가만히 응시한다.

    “병신들.”

    아직까지도 자신들의 꼬리조차 잡지 못하는 무능과 부패의 상징들.

    매일 아침, 경찰서 주변을 가면 크루아상과 커피로 숙취를 달래는 경찰들을 목격할 수가 있다.

    그뿐이라면 말도 안 한다. 프랑스 경찰의 무능과 부패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면 일평생을 말할 수 있을 정도다.

    그 대표적인 영화가 뤽 베농의 택시 드라이버. 프랑스 경찰의 특징들을 그대로 녹여 낸 작품이었다.

    -위 인물을 목격하면 곧바로 경찰서로 연락해……

    “어? 형이다!”

    “그래. 나인 거 아니까 닥치고 간식이나 처먹으세요.”

    “응!”

    그때였다.

    지이이잉! 지이잉!

    “뭐야. 이 사람이 왜…….”

    혀를 찬 가브리엘은 전화를 받았다.

    “네, 가브리엘입니다. 무슨 일입니까?”

    -너냐?

    가브리엘의 귀에 꽂히는 중후한 노년의 목소리.

    가브리엘이 18살 어렸을 적, 간 크게도 보석상을 털다가 잡혀 교도소에서 복역을 할 때 액자를 만드는 법을 가르쳐 준 스승이다.

    루브르 등 전 세계의 박물관과 미술관, 전 세계 유명 화가와 작가들이 액자를 만들어 달라고 찾아오는 액자 제작의 명인.

    이후 출소를 한 가브리엘은 그를 찾아가 무려 8년을 일하며 기술을 배웠지만, 결국 제 버릇 남 못 주고 공방을 뛰쳐나왔다.

    이후 액자 제작을 하면서 고미술품에 대해 알게 된 가브리엘은 고미술품 위주로 도둑질을 하고 다녔지만, 그래도 그가 해 준 것이 너무 많아서 아직까지 연락을 하고 있었다.

    “TV에서 나오는 거 저 아닙니다.”

    -누가 봐도 넌데?

    “사장님, TV에서 나오는 게 정말 저라면 지금 사장님 전화를 받겠습니까?”

    -하긴…….

    가브리엘이 정말 범인이라면 지금쯤 따뜻한 지중해에서 미녀들의 엉덩이를 주무르고 있을 것이다. 가브리엘은 그러고도 남는 놈이었으니 말이다.

    -알았다. 다음에 놀러 와.

    “예. 루이 데리고 놀러 갈게요. 수고하세요.”

    -영업 시간 끝났다.

    코웃음을 친 노인이 전화를 끊자 한숨을 푹 내쉰 가브리엘은 의아해하며 자신을 쳐다보는 루이의 모습에 혀를 찼다.

    “사장님이 다음에 놀러 오래.”

    “진짜?! 언제가?!”

    “나중에. 그러니까 닥치고 그거나 처먹으세요.”

    “응!”

    끄응! 끄응!

    “씁! 안 된다니까. 강아지는 사람이 먹는 거 먹으면 안 된다고 했어. 배가 아야 하니까.”

    끄으응!

    “아, 안 되는데…….”

    결국 오늘도 크몽의 눈빛에 져 버린 루이를 일견한 가브리엘은 핸드폰을 테이블 위에 던졌다.

    “지겹게도 연락 오는군.”

    노인뿐만 아니라 교도소에서 친해졌던 수많은 지인들이 계속 연락을 해 왔다.

    이들 중 누군가가 경찰에 제보할지도 모르는 일.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뜰 필요가 있었다.

    “끄으! 그럼 이제…….”

    따라라라랑!

    테이블의 유리판 위에서 요란하게 우는 핸드폰.

    발신자를 확인한 가브리엘은 다급히 핸드폰을 가져왔다.

    -교환 날짜가 정해졌소.

    가브리엘은 입술을 비틀었다.

    * * *

    숨 쉬는 소리조차 크게 들릴 만큼 고요한 파리경찰청의 상황통제센터.

    모든 이들의 시선이 벽면을 가득 채운 모니터 속 파리의 지도를 멍하니 응시하다 종혁을 본다.

    “맙소사.”

    사건 현장을 확인한 종혁이 가장 먼저 재기했던 가능성. 놈들이 예행 연습을 위한 장소를 대여했을 거라던 종혁의 말이 그대로 들어맞는 공단 지역이기 때문이다.

    종혁은 차가운 눈빛으로 붉은 원이 쳐진 지도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공백 지대의 크기는?”

    나지막하게 울리는 종혁의 목소리에 순철이 기민하게 반응한다.

    타다닥!

    “반경 168미터입니다!”

    버스정류장도 없고, 지하철역도 없다.

    이 안으로 들어가고 나간 차들 가운데 증발하듯 사라진 차량은 하얀 승합차 한 대뿐.

    그 외에 이 공백 지역을 들어가고 나온 모든 차량에서 두 놈을 발견하지 못했다. 즉, 아직까지 놈들은 저곳에 있다는 것이었다.

    “자, 잠깐! 저긴 분명…….”

    알렝 까네가 갑작스레 몸을 벌떡 일으키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한다.

    “제가 기억하기로 분명 저쯤에 폐업한 지 2년 정도 된 창고가 있는데…….”

    미국발 경제 위기에 프랑스가 요동칠 때 파산을 한 창고가, 범인이 예행 연습을 하기에 딱 적당한 크기의 창고가 저 반경 내에 있었다.

    모든 경찰이 전율을 하고, 종혁이 냉소를 짓는다.

    “놈들의 아지트를 찾은 것 같군요.”

    “……자크 뤼베르!”

    “예, 공작님!”

    “수사개입부와 RAID에 연락하게!”

    조직 범죄, 강도, 납치, 마약, 인질 사건 등의 강력 범죄에 대한 수사와 현행범의 체포, 대테러작전을 목적으로 창설된 전술 부대 및 법 집행부서인 수사개입부(Brigade de recherche et d‘intervention)와 경찰대테러부대이자 경찰특수부대인 RAID.

    RAID는 Recherche(수색), assistance(지원), intervention(개입), dissuasion(억제) 이 네 가지의 약자이다.

    “옛!”

    거수경례를 한 생활안전국의 수장이 뛰쳐나가자 뤼옹 드 몽은 종혁을 보며 입을 열었다.

    “정리의궤라고 했던가?”

    “감사합니다, 교수님.”

    “가지.”

    종혁 덕분에 잡게 된 범인들.

    종혁도 그 영광의 순간을 함께해야 됐다.

    * * *

    공단 공장들의 노동자들이 모두 퇴근한 늦은 저녁.

    가로등 불빛만이 어둠을 밝히는 공단에 한 대의 택시가 슬그머니 나타나 멈춰 선다.

    스르륵! 탁!

    “끄으으!”

    기지개를 켜0며 굳은 몸을 푼 동양인 택시기사는 손에 든 종이봉투를 들며 트렁크로 향한다.

    덜컹!

    트렁크 문이 열리며 구겨져 누워 있는 한 남성이 드러난다. 마치 죽은 듯 미동조차 없는 동양인 사내.

    택시기사가 무심한 눈으로 손을 뻗는다.

    “야, 일어나.”

    “……어우, 벌써 교대 시간이야?”

    트렁크에서 기어 나온 동양인 사내는 기지개를 켰고, 택시기사는 얼굴을 구긴다.

    “미친놈아. 내가 조심히 자라고 했지? 가림막을 또 부수면 어쩌자는 거야?”

    승객이 봤으면 어쩔 뻔했나. 하마터면 신고를 당할 뻔했다.

    “부순 거 아니야. 눕혀진 거라고.”

    “……밥이나 처먹어.”

    “오우. 오늘 저녁 메뉴는 뭐야?”

    “샌드위치.”

    이 파리에서 가장 가성비가 좋은 바게트 오이 샌드위치.

    “또?”

    얼굴을 구긴 남성은 이내 한숨을 내쉬며 샌드위치를 받아 들었다.

    부품 꿈을 안고 도착한 파리. 그러나 파리는 결코 그들에게 친절한 도시가 아니었고, 그들은 먹고살기 위해 이렇게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택시를 몰 수밖에 없었다.

    영주권을 따고, 집을 사기 위해선 택시를 집 삼아 24시간 운행을 할 수밖에 없는 지옥 같은 삶.

    “그리고 아까 연락이 왔는데, 자베르가 내일부터 15유로 더 내래.”

    그들 같은 불법체류자들에게 택시를 빌려주는 자베르 사장.

    “빌어먹을. 내일부턴 오이 샌드위치가 아니라 오이만 먹겠네.”

    “먹기나 하자.”

    트렁크에 걸터앉은 그들은 커팅이 된 샌드위치를 한 조각씩 나눠 가지며 입으로 가져갔다.

    그 순간이었다.

    사사삭!

    “응?”

    “왜?”

    “아니야. 바람이었나 봐. 먹자.”

    둘은 동시에 샌드위치를 베어 물었고, 오늘도 신세 한탄의 한숨을 뱉어 냈다.

    한편 그들이 쳐다봤던 골목.

    어둠을 휘감은 채 멈춰 서 있던 한 사내가 뒤를 본다.

    헤드라이트를 끈 채 주변 어둠과 동화되어 있는 커다란 작전 차량에서 내리다 멈춰 선 동료들.

    그들의 작전 성공을 바라며 배웅을 하던 종혁도 숨을 죽인다.

    “흔한 불법체류자 택시기사다.”

    “계속 전진해.”

    사사사삭!

    RAID 특부대원들은 담벼락에 달라붙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종혁은 작전 차량 안으로 들어갔다.

    “저런 게 흔합니까?”

    종혁의 말에 뤼옹 드 몽이 혀를 찬다.

    외지인들에겐 보여 주기 싫은 파리의 적나라한 현실.

    “파리의 부동산은 비싸지.”

    부동산뿐만 아니라 물가도 터무니없이 비싸다.

    그렇다 보니 아메리칸드림 같은 파리드림을 꿈꾸며 국경을 넘거나 불법체류한 사람들은 파리의 빈민들보다 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1팀 작전 포인트 도착 완료.

    -4팀 작전 포인트 도착 완료.

    수사개입부와 RAID 특수부대원들의 몸에 달린 바디캠을 통해 전송되어 오는 현장의 모습들.

    모든 대원이 작전 포인트에 도착하자 작전 차량 내부가 숨 막힐 듯한 긴장에 휩싸인다.

    직후 이번 작전의 지휘를 맡게 된 RAID의 대장이 무전기를 든다.

    “2팀.”

    -열화상 탐지 불가능합니다.

    “3팀.”

    -옥상 포인트에서 살펴보고 있지만 인기척 없습니다.

    ‘설마?’

    놈들이 도망을 간 게 아닐까.

    다른 사람들처럼 종혁의 미간도 좁혀지는 순간이었다.

    -4팀. 흰색 승합차 발견. 다시 전파한다. 흰색 승합차 발견.

    불끈!

    RAID 대장과 종혁을 비롯한 사람들이 주먹을 강하게 쥔다.

    뤼옹 드 몽은 대장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고, RAID 대장은 이내 사납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전 대원. 작전 시작.”

    -Oui!

    콰장창!

    고요한 대기를 흔들어 깨우는 유리창을 깨트리는 소리.

    그리고…….

    콰과과광!

    섬광탄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수사개입부와 RAID 대원들이 창고 안으로 밀려 들어갔고, 종혁과 사람들은 바디캠을 통해 전달되어 오는 생생한 현장의 모습에 입술을 깨물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빌어먹을!”

    종혁과 사람들 모두 작전 차량을 뛰쳐나와 창고로 달려갔다.

    * * *

    난장판이 된 창고.

    누구보다 먼저 주인 없는 사무실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 뤼옹 드 몽이 사무실의 전경을 훑다가 혀를 찬다.

    “자리를 비운 지 꽤 됐군.”

    사무실에 온기가 없다. 사람이 있던 공간이라면 무조건 느껴져야 할 온기가.

    “재떨이를 비우지 않았네.”

    그뿐만 아니라 옷가지도 이리저리 널려 있고, 애견용품들도 꽤 어질러져 있다. 그런 사무실의 풍경이 두 용의자가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 등의 프로파일링을 해 준다.

    그리고 놈들이 완전히 떠난 게 아님을 말해 준다.

    “아마 음식을 사러 갔겠지. 곧 다시 돌아…….”

    “다시 돌아올 일은 없을 것 같네요.”

    흠칫 놀란 해리 가드너 교수와 뤼옹 드 몽이 싱크대 찬장을 모두 열어젖힌 종혁을 본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사료 알갱이는 널려 있는데, 쓰레기통에도 사료 봉지가 없습니다.”

    “……Putain!”

    종혁은 뤼옹 드 몽의 쌍욕에 깜짝 놀랐다가 이내 씁쓸히 웃었다.

    놈들은 짐을 최소화해서 떠난 거다. 그 닥스훈트에게 내일 아침먹일 사료까지만 들고.

    어차피 돈이 넘쳐 날 테니 새 제품들을 살 생각일 터.

    종혁은 파리경찰청에서 백이도 과장과 함께 있는 순철에게 전화를 걸었다.

    “철아, 24시간 사이 공백 지대에서 벗어난 모든 차량을 추적해 줘.”

    싱크대에 버려져 있던 퓌레와 바게트빵.

    현재 파리의 기온과 사무실의 습도, 음식물 쓰레기의 부패도를 보면 놈들이 사라진 지 12시간이 채 지나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종혁은 혹시 몰라 시간대를 더 크게 잡았다.

    -……실패입네까?

    “이 새끼들 튀었다.”

    -알갔습네다.

    통화를 종료한 종혁은 사무실을 빠져나와 난장판이 된 창고를 둘러봤다.

    “여기네.”

    족히 2000평은 되어 보이는 커다란 공간과 쓰레기들의 배치.

    자연스럽게 파리 시립 현대미술관의 인테리어가 무너진 쓰레기 더미 위에 입혀진다.

    종혁은 위태롭게 서 있는 사각 틀, 놈이 깨고 들어온 미술관의 유리창과 똑같은 크기의 사각 틀 앞바닥을 매만지며 코웃음을 쳤다.

    “대체 얼마나 연습을 한 거야?”

    먼지가 한 톨도 없다 못해 신발 밑창의 고무들이 끌린 자국이 가득하다. 사각 틀도 손때가 많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연습을 했다는 증거다.

    혀를 차며 밖으로 나온 종혁은 담배를 물었다.

    찰칵! 치이익!

    “푸후. 어떡하실 겁니까? 기자들을 부를 생각입니까?”

    뤼옹 드 몽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럴 순 없지.”

    작전이 실패했다. 이 망신을 전국적으로 알리고 싶지 않았다.

    고개를 저은 뤼옹 드 몽이 발을 떼는 순간이었다.

    부아아아앙!

    갑자기 어두운 밤을 다시 흔들어 깨우는 배기음 소리.

    이런 곳에서 속도를 높이는 미친놈이 있다며 혀를 차던 사람들은 점점 가까워지는 소리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 뭐야! 밖에 무슨 일이야!”

    -지, 지금 웬 차량이 돌진…… 피해!

    부아앙! 꽈아아앙!

    대문을 뚫고 난입하자마자 창고를 처박으며 멈춰 선 한 대의 승용차.

    쉬고 있던 특수부대원들이 다급히 총을 겨누고 차에서 내린 피투성이의 사내가 양팔을 들어 올리며 절규한다.

    “사, 살려 줘! 내 동생 좀 살려 줘, 제발-!”

    사내, 가브리엘의 눈물과 콧물로 젖은 얼굴을 본 종혁은 이를 악물었다.

    아무래도 상황이 이상한 방향으로 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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