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666화 (666/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666화>

123. 파리의 악몽

스윽! 슥!

청담동의 한 헤어숍. 6시, 이른 아침부터 쓸고 닦느라 바쁜 헤어숍 안으로 한 무리의 여성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안녕하세요…….”

아직 잠에서 깨지 못한 건지 잠이 한가득인 여성들.

“어머, 뭐야. 생얼인데 너무 예쁜 거 아니에요?”

“으헤헤헤.”

환하게 웃으며 다가오는 원장을 향해 점퍼를 걸친 남성이 다가온다.

“하하. 늦었습니다, 원장님. 오늘 중요한 스케줄이 있으니까 예쁘게 세팅 부탁드립니다.”

“걱정 마세요. 자, 우리 예쁜 가수님들. 세수하고 올까요?”

“네에…….”

여성들은 직원의 안내를 받아 안쪽으로 향했고, 헤어 디자이너들이 기지개를 펴며 각자의 자리에 선다.

그때였다.

스르릉!

문이 열리며 거구의 한 남성, 종혁이 안으로 들어온다.

이른 아침부터 또 누가 온 건가 하며 고개를 돌렸던 원장은 종혁을 발견하곤 깜짝 놀랐다.

“어머! 부장님!”

“하하. 안녕하세요.”

“부장님이 이른 아침부터 웬일이세요? 혹시 오늘 본청에서 행사가 있는 건가요?”

“그게…… 응?”

우르르!

안쪽에서 몰려나오는 여성들에 반사적으로 시선을 줬던 종혁은 깜짝 놀랐고, 그건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나오던 여성들도 마찬가지다.

“엑?! 삼촌?”

그랬다. 그녀들은 윤아와 윤아네 그룹이었다.

“뭐야. 너희가 여긴 왜 있어? 아직 비활동 기간 아니야?”

“가정의 날 기업 행사 때문에 온 건데…… 삼촌은?”

“나? 오늘 소개팅 때문에 머리 좀 만지러 왔는데?”

쿵!

“요새 귀를 안 팠나. 이야아, 귓밥 봐라.”

윤아뿐만이 아니다.

숍의 사람들 모두 환청을 들은 것처럼 멍하니 종혁을 바라봤고, 종혁은 이렇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 입맛을 다셨다.

“……에에엑?!”

헤어숍이 뒤집어졌다.

* * *

박종태 전 의원, 피해자들에게 사죄하는 마음으로 살겠다.

한림교육재단 이청학 이사장, 사임 표명!

지명대학교 물의를 일으킨 3인 제적 공표!

장희락 경찰청장, 언제나 낮은 곳을 살피어 억울한 피해자가 없게끔 하겠다.

경찰과 교육청, 성범죄 교육 자료 전국 중고등학교에 배포!

적나라한 미혼모의 현실!

경주의 한 소녀가 쏘아 올린 작은 공!

“흐음.”

서울의 한 카페.

단발머리의 이십대 후반 미녀가 핸드폰으로 인터넷 기사들을 확인하며 오묘한 미소를 짓는다.

‘오종철과 박유선, 이주혁이 검거된 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뜨겁다라…….’

오종철과 박유선, 이주혁의 배경들이 수습을 포기한 것이다.

‘그 사람 때문이겠지.’

그녀는 인터넷에 오늘 소개팅을 할 사람의 이름을 다시 쳐 봤다.

최종혁(전 유도선수)

그 아래로 약력이 주르륵 나온다.

언제 메달을 땄는지, 언제 은퇴를 했는지, 언제 경찰대학에 입학을 했는지.

겨우 몇 줄 되지 않는 프로필을 살피던 그녀는 옆에 놓은 서류 가방에서 종혁의 자료를 꺼내어 본다.

“전 유도 국가대표이자 유도 영웅, 현 경찰의 신성…….”

경찰대학을 졸업하고 파출소에서 약 반년 만에 본청으로 특수범죄수사과로 픽업이 되더니, 곧 현재 홍보부 경찰이미지마케팅팀인 홍보부서의 수장 대리를 맡았고, 간편신고관리과 특별수사팀의 1팀장을 거쳐 외사국으로 이동, 특별범죄수사대의 대장이 됐다.

그리고 현재는 경찰 본청 홍보부의 부장.

고작 서른 살밖에 안 된 경찰치곤 너무도 화려한 약력이 아닐 수 없다.

어디 그뿐인가. 어머니는 전국에서 알아주는 부동산 부자고, 본인도 수천억대의 자산가다.

‘거기다 파면 팔수록 그 인맥이 어디까지인지 끝을 알 수 없는 인물…….’

“그런데 회장님께서 왜…….”

세계적으로 위세를 떨치는 삼전을 시작으로,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대기업 그룹들을 품고 있는 범삼전가.

범삼전가의 그룹들은 그 위상에 걸맞은 뛰어난 인물들이 수없이 포진되어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그 많고 많은 이들 중 자신에게 이런 기회를 준 것일까.

입술을 내밀며 생각에 잠기던 그녀는 문을 열고 들어오는 종혁을 발견하곤 얼른 조사 자료를 숨겼다.

딸랑!

‘일단 외모는 합격.’

높이 올려다봐야 하는 큰 키에 떡 벌어진 어깨, 그리고 남자답게 선이 굵은 얼굴.

딱 그녀의 이상형에 가까운 외모다.

‘안경으로 지적 포인트까지 줬네.’

패션 센스까지 있다.

싱긋 웃은 그녀가 몸을 일으켜 손을 내민다.

“반가워요. 홍시연이에요.”

“늦었습니다. 최종혁입니다.”

‘홍씨라…….’

“홍나애 여사님께서 저희 고모님이세요. 저는 삼전장학재단에서 근무 중이고요.”

“죄송합니다. 젊은 남녀가 만나는데 얼굴만 알면 되는 거 아니냐고 시연 씨의 성함조차 알려 주시지 않는 바람에…….”

“회장님께서요?”

고모부를 회장님이라 부르는 시연의 모습에 종혁은 쓴웃음을 흘렸다.

“회장님께서는 집안에서도 엄하시나 보군요.”

어디 엄한 정도일까. 인척들은 물론이고, 직계가 아닌 김씨들도 회장님의 웃는 낯을 본 적이 없다.

그들이 볼 수 있는 건 언제나 세상 모든 게 마음에 안 든다는 듯 굳어 있는 회장님의 표정뿐. 재단의 일을 보고해야 하기에 다른 인척들보다 회장님을 뵐 일이 많은 그녀 또한 그건 마찬가지였다.

김희건 회장의 웃는 모습을 보이는 건 오직 본인의 직계 가족들 앞에서뿐이었다.

‘그런 분이 장난을 치셨다고?’

이는 종혁이 그만큼 편하고 가까운 존재란 뜻이다.

그래서 더 이해가 되질 않는다. 자신이 이 소개팅의 상대가 된 이유가 말이다.

하지만 종혁은 아니었다. 어리둥절해하는 그녀의 얼굴을 빤히 본 종혁은 피식 웃었다.

‘삼전장학재단이라……. 그런 거였군.’

일명 삼전 차일드라 불리는 삼전의 장학생들. 사회 각계각층에 포진해 있는 삼전의 장학생들을 관리하는 곳이 바로 삼전장학재단이다.

즉, 김희건 회장은 삼전그룹이 그동안 쌓아 온 사회 각계각층 인사들과의 연결 고리를 소개시켜 주려는 것이었다.

“정말 대단한 양반이야…….”

이건 종혁조차도 거부하기가 힘든 조건이다.

참 지독히도 머리가 좋은 양반이었다.

“서, 설마 회장님 말인가요?”

“예. 뭐 어떻습니까. 없는 곳에선 임금도 욕한다는데.”

“와아……. 나 회장님한테 이러는 분은 처음 봐요.”

미친 사람이다.

하지만 마음에 든다. 허세가 아닌 당당한 자신감에서 나오는 농담임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홍시연의 눈이 초롱초롱 빛나자 종혁은 씩 웃었다.

“혹시 술 좋아하십니까?”

“이제 겨우 오후 5시인데요?”

“원래 술은 해가 떠 있을 때 마셔야 제맛이죠.”

“음…….”

자신 고민에 잠겼던 홍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친해지기로 마음먹었다면 괜히 내숭을 떨 필요가 없었다.

“혹시 곱창 먹는 여자는 싫어하시나요?”

“마침 근처에 곱창 맛집이 있습니다. 얼마 전에 생긴 곳인데, 볶아져 나와서 옷에 냄새도 별로 안 배죠.”

“혹시 여자들에게 인기 많지 않으세요?”

“시연 씨도 매일 커피 선물을 받으실 것 같은데…….”

홍시연은 빵 터졌다.

“가요! 아, 전 스물여덟이에요. 종혁 씨는요?”

“계란 한 판입니다. 후우. 세월 참…….”

다시 웃음을 터트린 시연은 스스럼없이 종혁에게 팔짱을 꼈고, 살짝 놀랐던 종혁은 옅게 웃으며 그녀를 에스코트했다.

* * *

땅땅땅! 달그락달그락!

현란하게 볶아지는 볶음밥에 종혁과 홍시연의 시선이 집중된다.

“어머님과 함께 사신다고요?”

“예. 일이 바빠 집에 잘 들어가진 못하고 있지만요. 시연 씨는요?”

“전 독립해서 혼자 살고 있어요.”

“재단 일 때문에요?”

흠칫!

술에 취해 발갛게 달아오른 홍시연의 눈이 종혁을 흘긴다. 말을 얼버무릴 수도 없게 깊은 곳을 찔러 왔기 때문이다.

“누가 경찰 아니랄까 봐……. 한 잔 주세요.”

“이런. 죄송합니다.”

종혁은 술을 따라 주었고, 둘은 건배를 했다.

“죄송하지만 업무 관련해서는 말씀드리기 어려울 거 같아요.”

홍시연은 자신이 맡고 있는 업무가 얼마나 중요한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삼전장학재단에서 발굴하여 투자하는 장학생들은 언젠가 삼전의 미래를 지탱해 줄 기둥들.

그들의 쓰임은 오직 삼전을 위한 것이어야만 했다.

홍씨를 위해, 고작 남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다.

그러한 홍시연의 대답에 종혁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이거 때문이었군요.”

“네?”

“회장님이 시연 씨에게 장학재단의 업무를 맡긴 이유 말입니다.”

믿을 수 있는 거다. 홍시연이라면 사사로이 그 연락망을 쓰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그럴…… 까요?”

“오늘 소개팅에 대한 이유를 상기해 보시면 답이 나올 겁니다.”

“아.”

“영광입니다. 차기 삼전장학재단의 이사장님과 이렇게 뵙게 말입니다.”

“……여자친구랑은 왜 헤어졌어요?”

이렇게 듣고 싶은 말을 해 주는데 왜 헤어진 걸까.

“사귄 적도 없습니다만.”

“말도 안 돼. 왜요? 혹시…….”

“첫 만남부터 선 넘네?”

“히히. 농담이에요.”

귀엽게 웃은 홍시연은 볼이 더 빨갛게 달아오른다.

두 눈이 몽롱하게 풀린다.

‘이 남자 재밌네.’

“다 됐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와! 얼른 먹어요!”

“하, 이렇게 먹을 줄을 모른다. 그 전에 짠부터 해야죠.”

“맞다! 자, 짠!”

챙!

칙! 칙!

서로에게 탈취제를 뿌려 준 둘이 밖으로 나오자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먹고 마시다 보니 어느새 해가 저물어 버린 밤바람.

뜨겁게 달아오른 볼을 식히는 바람에 둘의 입가에 미소가 떠오른다.

“담배 피워도 돼요.”

“그건 매너가 아니죠. 그나저나 어떡할래요? 2차? 아니면 좀 쉴까요?”

“네? 우리 아직 손도 안 잡았는데?”

“카페 말입니다, 카페.”

“히히히.”

종혁은 장난이었다는 듯 웃는 그녀의 모습에 고개를 저었고, 홍시연은 지갑을 열어 지폐를 꺼낸다.

“반은 제가 낼게요. 종혁 씨가 돈이 많은 건 알지만, 오늘은 첫 만남이잖아요.”

한쪽이 매달리는 입장이 아니라 서로에게 부족한 것을 가지고, 서로를 파악하기 위해 만난 자리.

어찌 보면 비즈니스적 만남이다.

“벌써 가려고요? 혼날 텐데?”

“움…… 부탁해요, 오빠?”

“푸하핫! 다음엔 언제 볼까요?”

“다음 주 주말 어때요?”

“파주로 맛있는 거나 먹으러 가죠. 편한 차림으로 나와요.”

“콜! 그럼 먼저 들어갈게요! 오늘 즐거웠어요! 바이바이!”

손을 붕붕 흔든 그녀는 근처의 지하철역으로 향했고, 그녀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계속 바라보던 종혁은 핸드폰을 꺼냈다.

-끙. 마음에 안 들었나?

“주선자 입장으로서 궁금하실 것 같아서 연락드렸습니다. 시연 씨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일단 전 마음에 드는군요. 큰 선물 감사합니다.”

-오! 내가 처조카라서 하는 말은 아니지만, 얘가 참 싹싹하고 밝아. 외모도 예쁘고. 실수는 안 했고?

“일하는 사무실에 아저씨들이 많은 듯한 느낌이었죠?”

-그건…… 어쩔 수 없지. 크흠. 회사원이잖아.

“아무튼 보고는 여기서 끝입니다. 다음부턴 저희가 알아서 할게요.”

-……가끔씩 결과만 말해 주면 안 될까?

“끊습니다. 쉬세요.”

통화를 종료한 종혁은 담배를 물었다.

찰칵! 치이익!

“삼전장학재단이라…….”

눈을 가늘게 뜬 종혁은 차가 있는 곳을 향해 걸음을 옮기며 다시 핸드폰을 들었다.

“예, 대리죠?”

* * *

“파하!”

씻은 후 큰 사이즈의 박스티만 입은 채 거실 소파 앞에 앉아 캔맥주를 딴 홍시연이 핸드폰을 확인한다.

-오늘 즐거웠고, 다음 주엔 더 재밌게 놀아요.

짧지만 담백한 애프터 신청.

“덩치만 보면 딱 상남자 같았는데…….”

그녀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서리는 순간이었다.

지이잉! 지이잉!

“고모로서 전화한 거예요, 아니면 삼전가의 안주인 홍나애 여사님으로서 전화한 거예요?”

-지금은 고모! 어땠니? 마음에는 들어?

“음. 이래서 연상이 수요가 있달까?”

적당히 리드를 하면서 대화를 하기에 편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거기다 중간중간 보이는 날카로운 통찰력과 풍부한 상식까지. 시사 경제 쪽으로도 식견이 깊었는데, 적당히 끊으며 대화의 강약을 조절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이야기에도 십분 공감해 주며 경청해 줬다.

연상에 빠지는 이유가 이런 건가 싶을 정도였다.

“오늘 눈이 너무 높아진 것 같아.”

-어머머! 현장 쪽만 돌아다녔다기에 마냥 거칠 줄 알았더니…….

“전혀!”

종혁은 여태껏 만난 남자들과 질적으로 달랐다.

전 남자친구들이 똥차라면 종혁은 벤츠, 아니 롤스로이스다.

-뭐야? 그런데 왜 이렇게 빨리 헤어진 거야? 나 때는 말이야. 통금 시간까지 기다렸다가 서로 모른 척 여관방으로……

“그때도 호텔 가셨을 거잖아요.”

-행간을 이해 못하니, 시연아?

“가만 보면 그때가 더 정열적이었던 것 같아. 회장님과도 그랬어요?”

-……으흠. 그래서 오늘 진도는 어디까지 뺐는데? 손? 뽀뽀?

“다음 주에 만나기로 했어요.”

-에휴. 시연아, 너도 벌써 스물여덟이야. 네 주위 친구들 봐라. 다 결혼해서…….

“끊을게요! 사랑해요!”

매정히 통화를 종료한 시연은 멍하니 맥주 한 모금을 마셨다.

“재밌었지.”

오늘의 이 만남이 사랑으로 커질지, 아니면 친구 겸 비즈니스 파트너로 남을지는 모르겠지만 각오했던 것보다는 훨씬 괜찮았다.

재벌가라면 피할 수 없는 정략혼. 그래서 나름 각오를 했었던 그녀로선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다음 만남도 재밌으면 좋겠네.”

배시시 웃은 그녀는 남은 맥주를 단숨에 들이켜곤 뒤로 발라당 누웠다.

“아! 좋다!”

그동안 혼자 사느라 가끔씩 공허하게 느껴졌던 집.

하지만 오늘은 그게 느껴지지 않을 기분이 좋다.

그녀는 이리저리 뒹굴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 * *

저벅저벅.

아직 사람들이 출근할 시간이 아니라 조용한 복도.

한 손에 커피, 다른 손엔 핸드폰을 든 종혁이 홍보부의 문 앞에 선다.

-지금 막 출근. 시연 씨도 출근 잘해요.

-오빠도요! 회사에 도착하면 연락할게요!

“……자꾸 오빠래.”

아저씨 심장 설레게 말이다.

피식 웃은 종혁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좋은 아침입니다.”

휙! 휙휙휙!

갑자기 모이는 시선들.

마치 먹이를 포착한 맹수처럼 빛나는 눈들에 종혁이 주춤 물러선다.

“뭐, 뭡니까?”

“손? 키스?”

“……예?”

“거 젊은 분께서 이것도 못 알아들으시면 어떡합니까? 첫 만남이라 손만 잡으셨어요, 아니면 키스까지 하셨어요? 헉! 설마 호텔까지?”

“오오오!”

“부장님이 남자 중 남자시니까…….”

이덕출 팀장이 슬그머니 어깨동무를 한다.

“괜찮습니다. 남자끼리 어때요. 딱 저희만 아는 겁니다.”

“7월까지 휴가 다 끊어 볼까요?”

“에이.”

“우우우!”

부서원들의 야유에 종혁의 콧등이 씰룩이는 순간이었다.

지이잉! 지이잉!

“응? 이분이 왜…….”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해리 가드너 교수.

‘설마?’

영국에서 헤어지기 전 놈들 회사에 대해 언급한 기억을 떠올린 종혁이 다급히 부서원들을 진정시키며 전화를 받는다.

“예, 교수님!”

-좋은 오후입니까, 아니면 좋은 밤입니까?

“좋은 아침입니다, 교수님.”

-다행이군요. 이렇게 갑자기 연락을 한 건 다름이 아니라 한 사건 때문입니다.

“사건이요?”

순간 아쉬워졌던 종혁은 이내 눈을 가늘게 떴다.

‘해리 교수님이?’

콧대 높은 영국의 수사기관들, 아니 인터폴조차도 난해한 사건이 있으면 자문을 구할 정도로 범죄학계의 권위자인 해리 가드너.

-혹시 뤼옹 교수를 기억합니까?

“당연히 기억하죠.”

-그가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두 분은 사이가 나쁜 게 아니었나요?”

프랑스 범죄학계의 거물인 뤼옹 드 몽.

영국과 프랑스, 한때 백 년 전쟁이라는 큰 전쟁을 벌인 두 나라의 관계 때문인지 뤼옹 드 몽과 해리 가드너도 꽤 앙숙이다.

주로 뤼옹이 먼저 시비를 걸지만 말이다.

-그런 그가 자존심을 숙일 만큼 큰 사건입니다.

‘그 정도로 큰 사건이라……. 아, 설마?’

한 가지 사건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이때쯤 프랑스 파리를 뒤집었던 최악의 사건이 말이다.

“그 사건 혹시…….”

-아마 최, 당신에겐 익숙한 종류의 사건일 겁니다.

“미술품 도난이군요. 하지만…….”

굳이 갈 필요가 있을까.

프랑스에 가 보지는 못했지만 프랑스인들의 악명을 익히 들은, 게다가 맨날 포럼에서 만나기만 하면 해리 가드너와 싸우는 뤼옹을 보아 온 종혁으로선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프랑스엔 한국의 유물들이 많답니다, 최.

“……그거 구미가 당기는 말이군요.”

종혁의 입매가 비틀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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