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665화 (665/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665화>

    띵동! 띵동!

    오피스텔 안쪽을 향해 귀를 기울였던 종혁은 뒤에 선 사람들을 봤다.

    “따세요.”

    “옙!”

    앞으로 나와 문틈 사이로 빠루를 박아 넣는 소방대원.

    콰작! 콰자작!

    강제로 문을 따고 들어간 종혁이 어질러진 내부를 보며 혀를 내두른다.

    “참 팔자 좋네.”

    거대한 TV와 홈시어터, 그리고 최고급 가죽 소파까지. 영화관을 방불케 하는 풍경에 같이 들어온 경찰들도 혀를 내둘렀다.

    ‘아쉽네.’

    박유선과 이주혁이 있었다면 더 재밌었을 텐데 말이다.

    종혁은 방들을 가리켰다.

    “한 방씩 맡아서 수색하세요.”

    그래서 비디오테이프, CD, USB, 메모리카드 등 뭔가를 저장할 수 있는 모든 걸 수거하는 거다.

    우렁차게 대답한 그들은 흩어졌고, 이윽고 안방에서 외침이 터져 나왔다.

    “부장님!”

    빠르게 걸음을 옮긴 종혁은 이내 곧 이를 악물었다.

    자물쇠가 떨어져 나온 옷장 안에 빼곡하게 꽂혀 있는 수십 장의 CD와 메모리카드.

    각기 다른 이름이, 누가 봐도 여성의 이름이 적힌 그것들에 뒷목이 뻐근해진다.

    “……일단 하나만 확인해 보죠.”

    종혁은 경주 김희선이라 적힌 메모리카드를 빼서 거실의 홈시어터에 연결했다.

    그리고…….

    -꺄아아아악! 안 된다, 오빠야!

    -오오! 구도 좋고!

    -아, 씨발 존나 꼴리네! 더! 더!

    빠드드드드득!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이를 가는 형사들.

    “1팀장님.”

    오늘 함께 온 광역수사대 1팀 팀장이 고개를 숙인다.

    “예, 부장님.”

    “여기서도 범죄가 이뤄졌을지 모르니 감식반 불러서 증거물 확보하고, 박유선과 이주혁 이 두 개새끼한테도 체포 영장 신청하세요. 출국 금지도 시키시고요.”

    이것은 폭력이다. 피해자의 영혼에 나을 수 없는 상처를 준 끔찍한 폭력.

    “예, 알겠습니다.”

    “그럼 갑시다.”

    오종철을 잡으러.

    종혁과 일부 형사들이 오춘재의 저택으로 향했다.

    * * *

    쿠당탕!

    오춘재가 오종철의 뒷덜미를 잡아 집어 던진다.

    방금 전 벌어졌던 일련의 사태, 할아버지의 끔찍한 폭력과 종혁의 협박에 정신이 나간 오종철은 바닥을 굴렀고, 그에 저택의 거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오종철의 부친과 이순애가 기겁하며 일어선다.

    “아버지!”

    “아버님!”

    “내가 왜 너희 아버지야-!”

    이런 망종을 키운 놈이 어찌 자신의 자식일까.

    거대한 분노에 오종철의 부친과 이순애가 얼어붙었지만, 오춘재는 발을 더 강하게 굴렀다.

    “아비 심장에 칼을 꽂은 놈들이 왜 내 자식이냐고!”

    “그, 그게 무슨…….”

    오종철의 부친과 이순애는 바닥에 널브러져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아들과 분노를 토해 내는 오춘재의 모습에 어쩔 줄 몰라 했고, 그런 그들을 일견한 오춘재는 부들부들 떨며 소파에 앉았다.

    “여기 있습니다, 이사장님.”

    꿀꺽꿀꺽! 터엉!

    “후우우.”

    가정부가 들고 온 냉수를 들이켠 오춘재는 망연자실 천장을 쳐다봤고, 그 심상치 않은 모습에 자식들의 애가 닳는다.

    “어, 어떻게 된 겁니까, 아버지!”

    “어떻게 됐어요, 아빠?”

    오종철은 아귀 같은 표정을 지으며 물어 오는 자식들의 모습에 웃음을 터트렸다.

    “하! 네 말처럼 되어서 참 좋겠구나, 큰놈!”

    “……예?”

    “병원 접게 생겼다고!”

    최종혁과 고정숙, 가진 자산이 수천억이라는 두 모자.

    게다가 최종혁은 김희건 회장과 긴밀한 인연이 있는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김희건 회장이 도담서울병원의 부지를 팔진 않았을 테니 말이다.

    이제 자신은 끝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 그게 무슨 말이세요! 설명 좀 제대로 해 보세요, 아버지!”

    “왜?! 내 돈이 얼마나 남았을지 궁금해?! 걱정 마라! 지금 너희가 가진 것보다는 훨씬 많으니까!”

    “아버지! 그 말이 아니잖아요!”

    그 말이 맞지만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오춘재는 억울해하는 자식들의 모습에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 슬그머니 오종철을 부축한 채 다가오는 셋째를 봤다.

    “셋째!”

    “예, 아버지!”

    “그 쌍놈의 새끼, 내일 아침에 자수시켜!”

    “예?! 아, 아버지!”

    “아버님!”

    오종철도 파랗게 질려 고개를 든다.

    “닥쳐, 이 배은망덕한 놈들아! 니들이 가정교육만 똑바로 했어도…… 했어도!”

    자수를 시켜야 한다. 그래야 작은 자비라도 바랄 수 있다.

    “어디 그런 또라이를 건드려서 집안을 풍비박산 내!”

    자신이 도담서울병원을 짓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던가.

    그것이 고작 손자 놈 하나 때문에 허무하게 무너졌다.

    “너희도 마찬가지야! 이번 달 내로 가져간 것들 되돌려 놔! 그렇지 않은 놈들은 나 죽은 뒤에 단 한 푼도 못 물려받을 테니까!”

    배은망덕한 건 다른 자식들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어떻게 입히고, 어떻게 먹였는데 힘든 아비를 돕겠단 말을 하는 놈이 한 놈도 없을까.

    ‘내가 잘못 키운 거야. 다 내 잘못이야.’

    “아, 아버지!”

    오춘재는 할 말이 다 끝났다는 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서재로 들어갔고, 기겁한 오춘재의 자식들은 오종철과 부친, 이순애를 죽일 듯 노려본다.

    “네가 책임져!”

    “예? 무, 무슨 말이야, 큰형!”

    “그래요! 서방님이 책임지세요! 모두 서방님 자식 때문에 벌어진 일이잖아요!”

    “우린 한 푼도 못 돌려주니까 네가 알아서 해! 알았어?!”

    악악 소리를 지르는 난장판이 벌어지는 거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정신을 차린 자식들이 서재 앞을 서성일 때 벨이 울린다.

    띵동! 띵동!

    “네. 누구…… 크, 큰도련님!”

    “누군데 그럽니까?”

    “경찰이래요.”

    “……빌어먹을.”

    단숨에 상황을 파악한 첫째는 고개를 푹 숙였고, 오종철 일가의 낯빛이 파랗게 질린다.

    “도, 도망가, 종철아! 얼른!”

    “어, 엄마!”

    “도망가라고!”

    벌컥!

    “도망가긴 어딜 도망가!”

    “아버지!”

    서재의 문을 연 오춘재는 성큼성큼 현관으로 걸어가 가정부를 봤다.

    “문 여시게.”

    “이, 이사장님…….”

    “열래도!”

    가정부는 눈을 감으며 열림 버튼을 눌렀고, 이내 곧 구둣발 소리가 들려오더니 현관문이 열린다.

    가장 선두에서 들어오던 종혁은 많은 걸 포기한 듯한 오춘재의 모습에 눈을 가늘게 떴다.

    “포기하셨군요.”

    오춘재가 고개를 무겁게 끄덕인다.

    지금 이렇게 찾아왔다는 건 확실한 증거까지 확보했다는 것일 터.

    자신이 지금껏 휘둘러 왔던 권력조차 종혁 앞에서는 의미 없음을 확인한 마당에 더 이상의 반항은 의미가 없었다.

    “그저 자비만을 바랄 뿐이오.”

    쿵!

    거인이었던 오춘재의 비굴한 모습에 자식들이 입을 떡 벌린다.

    그 순간이었다.

    부들부들 떨던 오종철의 아버지가 주먹을 휘두른다.

    뻐어억!

    “꺄악! 여보!”

    “네놈이 감히! 네놈이 감히-!”

    약속된 이사장 자리, 약속된 부, 약속된 명예.

    자식 놈 하나를 잘못 키워서 그 모든 걸 잃게 되었다. 이놈은 살아 있을 가치가 없었다.

    “아악! 아버지! 사, 살려 주세요! 잘못했어요!”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소. 데려가시오.”

    “아버님-!”

    고개를 숙인 종혁은 뒤를 돌아봤고, 이윽고 뒤에서 걸어 나온 경찰들이 오종철의 아버지를 말리며 오종철의 손에 수갑을 채운다.

    “어흐흑! 엄마! 엄마-!”

    “가만히 있어!”

    난장판을 일견한 종혁은 오춘재를 봤고, 오춘재는 차갑기 그지없는 종혁의 눈빛에 고개를 푹 숙였다.

    “앞으로 야인으로 살겠소. 그러니 여기서 그만둬 주시오.”

    아마 종혁은 다음 공격도 준비하고 있었을 거다.

    그리고 자식들도 쳤을 거다. 머리를 친 후 잔당을 쓸어버리는 건 전술의 기본이니 말이다.

    제아무리 밉다고 해도 자식들. 아비로서 더 이상 자식들이 고통받는 꼴은 볼 수 없었다.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고개를 숙인 종혁은 돌아섰고, 오춘재는 못 데려간다며 난리를 피우는 이순애를 외면하며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 서재로 향했다.

    ‘그럴 의리는 없지.’

    오종철과 같이 사고를 쳤을 박유선과 이주혁.

    혼자만 당할 순 없었다.

    “후우.”

    아무래도 오늘은 술을 한잔해야 할 것 같았다.

    “아, 아버지, 잠시만요! 저희 이야기 좀 해요!”

    “아버님! 너무하세요!”

    “올케는 조용히 해요! 지금 누군 때문에 이 사단이 벌어졌는데 어딜 감히 입을 열어요!”

    “뭐요?!”

    “애를 저따위로 키워 놓고 뭐 잘났다고 목소리를 높여! 당신도 조용히 해!”

    “여, 여보?!”

    거실이 다시 난장판이 됐다.

    한편 밖으로 나온 종혁은 핸드폰을 들었다.

    “예, 저예요. 박 부장님, 오춘재 이사장이 병원을 폐쇄 한다고 하네요. 아, 체포 영장 나왔습니까?”

    -예! 지금 막 나왔습니다!

    “영장 나왔다네요. 시작해 주세요.”

    박유선과 이주혁을 향한 공세를.

    종혁은 다른 기자들에게도 연락을 돌렸다.

    * * *

    끔찍한 의대생들! 이게 과연 사람이 할 짓인가!

    주범 오 모 씨, 박 모 씨, 이 모 씨! 모두 상류층인 걸로 밝혀져!

    4선 국회의원의 손자 박 모 씨, 교육 재단의 손자 이 모 씨!

    오 모 씨 명의의 오피스텔에서 쏟아진 촬영물!

    엘리트의 민낯! 인면수심의 악마들!

    검경, 도담서울병원 압수수색? 범죄 정황 드러나!

    도담서울병원 오 모 이사장! 병원 폐쇄 결정!

    오 모 이사장, 책임을 통감한다. 피해자들에게 용서를 바란다.

    밤사이 쏟아진 뉴스에 대한민국이 발칵 뒤집혔다.

    뚜벅뚜벅뚜벅!

    백발의 노인들이 본청의 복도를 걸어 광역수사대의 문을 열고 들어간다.

    “아, 거 딸 같아서 만진 거 가지고 너무하네!”

    “청장 데려와! 내가 너희 청장하고 어?!”

    “조용히 해요! 여기가 어디라고 목소리를 높여!”

    오늘도 난리가 아닌 광역수사대.

    그중 다리를 꼰 채 거만하게 앉아 있는 두 청년을 발견한 두 노인이 눈을 차갑게 빛내며 걸음을 옮긴다.

    그에 광역수사대 수사 1팀의 형사가 몸을 일으킨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하, 할아버지!”

    “할아버지!”

    박유선과 이주혁의 외침에 형사의 낯빛이 딱딱하게 굳으며 팀장을 찾는다.

    현재는 야인이지만 4선 국회의원이었던 거물과 교육재단 이사장. 제아무리 본청 광수대라고 해도 감당하기 힘든 거물들이다.

    형사의 시선을 받은 팀장이 일어서 다가올 때 멀리 있던 종혁과 광수대 대장이 다가온다.

    “1층이 시끄럽다 싶더니 두 분께서 오셔서 그랬나 보군요.”

    눈빛이 서늘한 종혁을 본 두 노인이 낯빛을 굳힌다.

    “혹시 최종혁 부장이십니까?”

    “본청 홍보부장 최종혁 총경입니다.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제 어떻게 할 거냐는 듯 차분히 살피는 종혁의 시선에 손자들을 힐끔 본 두 노인이 고개를 숙인다.

    “홍정필 대표에게 말씀 많이 들었소. 박종태올시다.”

    “못난 손자 때문에 고생이 많으십니다. 행복의 쉼터 재단 권회수 이사장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이청학입니다.”

    ‘홍 원내대표님께서…….’

    빚을 졌다.

    혀를 찬 종혁은 숙이는 둘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두 분의 모습을 어떤 뜻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액면 그대로 받아 주시면 되오. 내놓은 자식들이니 법리대로 처벌해 주시오.”

    “하, 할아버지?!”

    “하, 할아버지! 잠시만요!”

    “누가 네 할아버지야!”

    기겁하며 일어난 박유선과 이주혁은 처음으로 화를 내는 할아버지들에 공포에 질렸고, 종혁은 재밌다는 듯 웃었다.

    “전 후환을 남겨 두는 타입이 아닌데 말입니다.”

    오싹!

    “……그럴 일은 없으니 걱정하지 마시오.”

    오춘재가 어떻게 몰락하는지 지켜봤는데 어찌 이를 드러낼까.

    김희건 회장이 무려 땅을, 그들 같은 재벌들에겐 최후의 보루이자 정치와 협상의 패인 땅을 넘길 만큼 친분이 깊은 종혁.

    그것만으로도 건드리기 힘든데, 그 홍정필이 경고를 했다.

    검사 출신으로 언제든 검사들을 움직일 수 있는 홍정필 원내대표. 이리저리 둘러 말하긴 했지만, 손자를 포기하지 않으면 꽤 재미없는 일이 발생할 거라고 했다.

    권회수도 마찬가지다.

    한때 밤의 황제라 불렸던 권회수. 그가 허튼짓을 하면 자신의 학교들 근처에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시설이 좋고, 교사들도 최고로 세팅한 최고의 학교를 세울 거라고 엄포를 놓았다.

    즉, 감히 복수를 생각할 수조차 없는 상황이란 뜻이었다.

    “흠…….”

    두 노인의 눈을 가만히 살피던 종혁은 이내 싱긋 웃었다.

    “오시느라 힘드셨을 텐데 안에서 목을 축이시는 건 어떠십니까?”

    “……허허. 믹스커피 있습니까? 나이가 드니 달달한 게 당기는군요.”

    “하, 할아버지?!”

    화가 머리끝까지 솟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 그렇다면 친분이라는 작은 이득이라도 가져가야 했다.

    “이런, 당뇨를 조심하셔야 할 텐데요.”

    “이 나이에 산다면 얼마나 산다고. 달달하게 부탁드리오.”

    “난 두 봉지에 물은 절반만 부탁합니다.”

    “하, 할아버지! 할아버지!”

    “조용히 해! 앉아!”

    “할아버지-!”

    자신들은 오종철과 다르다, 할아버지들이 곧 구해 줄 거며 굳게 믿고 있었던 박유선과 이주혁의 절규가 광역수사대를 울렸다.

    “그럼 조심히 가십시오.”

    “그래요. 다음에 또 봅시다.”

    거물 둘이 떠나자 광수대 대장이 한숨을 내쉰다.

    “심장 떨려 죽는 줄 알았네.”

    “큭큭큭.”

    “웃지 마, 인마. 그런데…… 저 양반들이 잘도 숙이네? 대체 누굴 움직인 거냐?”

    종혁은 어깨를 으쓱했고, 광수대 대장은 고개를 저었다.

    “그보다 이제 뭐 할 거야? 또 휴가 가게?”

    “아뇨. 마지막 걸림돌을 치우려고요.”

    희선의 인생에 있어 최고의 걸림돌.

    그 존재를 치워야 했다.

    “걸림돌?”

    종혁은 다음에 또 보자는 말을 남기며 돌아섰다.

    * * *

    콰장창!

    “으악!”

    “술 가져와라! 술!”

    경주의 어느 허름한 식당, 한 장년인이 테이블을 엎으며 난동을 부린다.

    “그래! 다 뿌시라, 다 뿌셔! 내도 그냥 죽이라! 이 문디 자슥아!”

    “술이나 가져오라꼬!”

    “니한테 팔 술 없다! 끄지라!”

    “뭐라꼬?! 이 미친 여자가!”

    “헉?!”

    의자를 치켜드는 장년인의 행동에 잠시 흔들렸지만, 이내 눈을 독하게 뜨며 머리를 들이미는 식당 여주인.

    “아나! 죽이라! 죽여! 니 때문에 손님 떨어져 가 굶어 죽든, 니한테 맞아 죽든 매한가지 아이가!”

    “이, 이……! 니 지금 내 무시하나! 내가 죽이라믄 못 죽일 줄 아나!”

    “와? 그리 취해도 사람은 못 패겠나? 지 부인이랑 딸년은 그리 패서 도망가게 해 놓고?”

    “……오냐! 죽자, 이 좆같은 년아!”

    눈이 회까닥 돌은 장년인이 의자를 내려치는 순간이었다.

    콰악!

    “뭐꼬? 누꼬? 안 놓나!”

    마치 뭔가에 걸린 듯 움직이지 않는 의자.

    이미 눈이 돌아간 장년인이 그대로 몸을 돌리며 주먹을 휘두른다.

    하지만…….

    콰악!

    거대한 손바닥에 빨려 들어가듯 잡히는 장년인의 주먹.

    종혁은 눈을 동그랗게 뜨는 장년인을 향해 주먹을 들어 올렸다.

    “넌 좀 맞자.”

    뻐어억!

    “웨웩?!”

    “이 악물어라. 혀 잘린다.”

    “자, 잠깐! 서, 선생님……!”

    뻐어억! 뻑!

    장년인, 아니 희선의 아버지의 전신에 종혁의 주먹이 쏟아졌다.

    “웨엑! 우웨에엑!”

    “음마야! 야! 누가 봉다리 가 온나!”

    경찰들에게 들리듯 부축되어 경찰차에 태워지는 희선의 아버지.

    “아이고, 머 이리 팼습니꺼? 괜찮겠으예?”

    “하하. 걱정 마십시오. 그럼 수고해 주십시오. 충성.”

    “우리 경주 볼거리 많으니까 천천히 둘러보다 가이소. 충성!”

    그렇게 경찰차가 떠나자 종혁은 해산하는 사람들 사이에 있던 소녀, 복잡미묘한 표정을 짓는 희선에게 다가갔다.

    희선이 종혁을 올려다본다.

    “이제 아버지는 어떻게 돼요?”

    “아마 못해도 3년은 교도소에 있어야 할 거야.”

    상습적인 가정폭력을 비롯해 그동안 술에 취해 벌인 모든 사건들까지 처벌받게끔 할 계획이었다. 적어도 희선이 성인이 될 때까지 그녀의 아버지가 눈앞에 나타날 일은 없다고 봐야 했다.

    “그래요…….”

    “왜?”

    “그냥요.”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지옥.

    매일매일 눈물로 잠에서 깰 때마다 하늘에 대고 간절히 빌었다. 방문을 열고 나가면 아빠가 없기를. 집에 혼자만 있기를.

    그 소원이 이뤄졌다.

    그런데 뭔가 심란하다.

    종혁은 이제 세상에 혼자 남겨질, 이제부터 모든 걸 혼자 해야 될 희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거니?”

    “……공부하려고요.”

    이번 일로 확실히 알게 됐다. 힘이 없으면 당해야 한다는 걸 말이다.

    “판사가 될라꼬요.”

    “뭐야, 경찰이 아니라?”

    “히힛! 아저씨, 나 배고파요.”

    “얼씨구? 이놈 보소?”

    피식 웃은 종혁은 그녀의 어깨를 감싸며 걸음을 옮겼다.

    5월의 완연한 봄, 하늘이 시리도록 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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