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663화 (663/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663화>

“빌어먹을!”

쾅!

서울의 한 오피스텔, 오종철이 소파를 걷어찬다.

삐비비비빅 띠리릭!

“여어! 출소는 잘했어?”

“형, 여기요! 출소 선물이요!”

“닥쳐!”

웃으며 들어오던 박유선과 이주혁이 심상치 않은 오종철의 모습에 두부가 담긴 봉지를 쓰레기통에 던진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어떻게 되긴! 경주 그 촌년이 경찰에 신고를 한 거지! 내 애를 뱄단다!”

“씨발? 종철이 좆됐네? 큭큭. 새끼야, 내가 그러니까 교회 오빠 컨셉은 아니라고 했지? 나 봐라. 연애 때도 지랄을 하니까 별로 안 찾아오잖아.”

“닥치라고 했지!”

정말 죽일 듯한 시선에 박유선은 양팔을 벌리며 물러났고, 오종철은 씩씩거렸다.

“형, 괜찮아요. 이런 일이 어디 한두 번이에요?”

관계를 가질 때마다 피임이라곤 해 본 적도 없는 그들.

그렇다 보니 임신을 했다며 찾아오는 여성은 이전에도 종종 있었고, 때로는 강간했다며 신고하는 일도 있었다.

그럼에도 여태껏 처벌 한 번 받지 않은 이유가 뭐겠는가. 다 집안이 무마해 주기 때문이었다.

“후우. 씨발. 내가 너희들 때문에…….”

이놈들도 잘못을 저질렀는데 왜 자신만 끌려가야 했단 말인가.

그것이 무척이나 억울한 오종철이었다.

“그래서? 너희 아버지는 뭐래?”

“뭐라긴. 학교 끝나면 바로 집으로 튀어 오라고 하지.”

딴 곳으로 세면 카드를 모두 끊어 버린다고 했다.

“아아, 그래서 강의 째고 여기 있는 거였어?”

“몰라, 씨발.”

그래도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자 짜증이 좀 풀린 오종철은 캔맥주를 따며 소파에 앉았고, 박유선과 이주혁도 킬킬거리며 냉장고를 열었다.

그 모습을 힐끔 본 오종철은 생각에 잠겼다.

‘대체 회장님이 누구지?’

너무도 갑작스럽게 알게 된 집안의 비밀.

설마하니 병원 땅이 남의 것이었을 줄 몰랐던 오종철은 심각해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훗날 그 병원은 자신의 것이 될 테니 말이다.

“뭔 생각을 그렇게 해?”

“아니야.”

‘말할 수 없어.’

아무리 친한 친구라지만 이런 약점을 말할 순 없었다. 무시당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 흠…… 아무튼 그년이 촬영한 거에 대해선 말 안 했겠지?”

순간 셋의 표정이 굳으며 안방을 응시한다.

오종철은 눈을 가늘게 뜨며 생각에 잠겼다.

“글쎄. 한 것 같기도 하고…….”

“뭐? 진짜? 아, 씨발!”

“어떡해요? 저거 다 버려요?”

그동안 소중히 모아 온 컬렉션. 버리기에는 너무 아깝다.

“아니, 괜찮을 거야. 어차피 짭새 새끼들은 여기 못 들어와.”

“하긴…….”

고개를 끄덕인 박유선은 이내 신경을 끄며 스마트폰 켜 한 여성의 사진을 보여 줬다.

“야, 다들 얘는 어떠냐?”

“응?”

오종철과 이주혁의 눈을 빛냈다.

화장기 없고, 헤어스타일도 수더분하다 못해 안경까지 낀 촌년이었지만 몸매가 제법이다.

“……얘 누구냐?”

꾸며 놓으면 꽤 데리고 다닐 맛이 있을 것 같은 여자.

“큭큭. 새끼, 그런 꼴 당해 놓고도 눈 돌아가기는…….”

“씨발. 진짜 뒤질래?”

“10학번 신입생. 어때, 죽이지?”

“억? 이런 애가 제 동기 중에 있었다고요?”

“내가 누구냐. 매의 눈 아니냐. 어떡할래? MT에서 날 한번 잡을까?”

그들 의과대학은 5월 중순, 중간고사를 치른 이후에나 MT를 간다.

“……오케이. 작업 들어가 봐.”

“크! 새끼. 알았어!”

“그럼 난 간다. 더 늦으면 카드 끊겨.”

남은 술을 모두 들이켠 오종철은 몸을 일으켰고, 아지트에 남겨진 박유선과 이주혁은 잘 가라며 손을 흔들곤 스마트폰을 쳐다봤다.

“어?”

뭔가를 발견한 이주혁이 마치 헛것을 본 것처럼 눈을 비빈다.

그런 그의 행동에 오종철과 박유선은 의아해하며 쳐다봤고, 이주혁은 떨떠름한 얼굴로 오종철을 봤다.

“형, 아무래도 형 좆된 거 같은데요?”

“또 왜?”

이주혁이 다가오는 오종철에게 방금 전 실시간 검색어로 오른 인터넷 기사를 보여 줬고, 오종철은 하얗게 질려 버렸다.

“이, 이게 무슨…….”

“뭐야. 뭔 일인데? 어? 씨발?”

정말 좆됐다.

박유선이 걱정을 담아 오종철을 보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형, 세입자였어요?”

“뭐?”

기묘한 미소를 짓는 이주혁의 모습에 오종철의 낯빛이 딱딱하게 굳었다.

지이잉! 지이잉!

오종철의 핸드폰이 맹렬하게 울렸다.

* * *

의료 재단 일가의 민낯! 미성년자 성폭행?

도담의료재단의 이사장 손자 오 모 씨!

삼전그룹, 도담의료병원 퇴거 조치!

“흐음…….”

서울고등법원의 법원장실, 흰 머리칼이 가득한 날카로운 인상의 노인이 오늘 자 신물을 바라보다 핸드폰을 든다.

“납니다, 고 실장. 그동안 잘 계셨습니까. 회장님 건강은 좀 어떠십니까?”

-하하. 걱정해 주신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회장님 건강도 문제없으십니다.

“그렇습니까…….”

-왜 그러십니까. 혹시 어떤 투서라도 온 것입니까?

“아니요. 아닙니다. 요새 정세가 흉흉하잖습니까. 그래서 요즘 불편하신 곳은 없는지 안부 차 연락드렸습니다.”

-아, 그러시군요. 하하. 전자의 스마트폰 매출과 기업 전체의 매출이 상향되면서 매일같이 웃고 계십니다.

“그렇다니 다행이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끊겠습니다.”

-다음엔 회장님께 직접 연락 주시죠. 회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래요? 허허, 그것참 기꺼운 이야기군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통화를 종료한 고법원장은 눈을 빛냈다.

“뭔가 있군.”

그러니 이렇게 기사가 났는데도 입을 다무는 것이다.

고법원장은 다른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야. 도담의료재단 이사장 손자가 무슨 사고를 쳤는지 알아봐.”

-5분 후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그는 오늘 올라온 결재 서류를 살피며 전화를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후.

지이잉! 지이잉!

“무슨 사고야?”

-도담의료재단 이사장의 손자가 성범죄에 연루되었다고 합니다. 이것 때문에 경찰 본청이 나섰는데, 저희 고법에서 영장 발부를 막았다고 합니다.

“뭐? 누가?”

-오상득 부장판사가 도담의료재단 이사장의 큰아들입니다.

“아, 무슨 상황인지 알겠군. 알았어.”

전화를 끊은 그는 담배를 물었다.

“강간이군.”

기사 내용처럼 정말 미성년자 강간이다.

그것도 김희건 회장이 개인적으로 지원을 하는 것이든 뭐든 인연이 깊은 소녀를 도담의료재단 오춘재 이사장의 손자가 강간을 한 것이다.

그러니 김희건 회장이 이렇게 화를 내는 것일 터.

“하아. 이런 일은 그냥 부탁을 하시면 될 텐데…….”

1970년대 찢어지게 가난하던 시절, 물로 배를 채우며 학교를 다니던 자신을 장학생으로 선발해 결국 법대까지 진학시켜 주신 선대 회장님.

선대 회장님이 계셨기에 자신은 판사가 될 수 있었고, 이렇게 고등법원의 법원장이 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선대 회장님이시나 현 회장님이시나 도통 은혜를 갚을 기회를 주지 않으니 애만 태우던 그.

그런데 드디어 기회가 왔다. 이 거대한 빚을 새 발의 피나마 갚을 기회가.

그는 내선 전화기를 들었다.

“오 부장인가? 올라와.”

그의 눈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 * *

콰작!

신문을 구긴 오춘재가 바들바들 떤다.

“이, 이게 대체…….”

“이사장님!”

다급히 달려오는 비서실장의 부름에 오춘재가 벌떡 일어난다.

“알아봤어?!”

“그, 그게…….”

“누구야! 얼른 말해!”

어떤 새끼일까. 대체 어떤 놈이 감히 자신에게 칼을 휘두르는 것일까.

지이잉! 지이잉!

“……있어 봐. 그래, 장남. 무슨 일이신가?”

-아버지! 종철이 이놈의 새끼가 대체 누굴 건드린 겁니까!

오춘재의 미간이 좁혀진다.

“그게 무슨 말이야?”

-제가 지금 법원장님께 무슨 말을 들었는지 아십니까?! 올 하반기 인사이동 때 강원도로 가라고 합니다!

성범죄를 저지르는 범죄자와 혈족인 판사는 이 고등법원에 필요 없으니 강원도로 꺼지라고 했다.

그것도 춘천지방법원 영월지원 태백시 법원의 부장판사로. 한직 중 한직인 그곳으로.

움찔!

“뭐, 뭐라고?”

-대체 누굴 건드렸기에 법원장님께서 이렇게 진노를 하시는 거냐고요-!

“아, 알아볼 테니까 끊어!”

오춘재는 다급히 비서실장을 봤다.

“후우. 아무래도 삼전의 김 회장님이 움직인 것 같습니다, 이사장님.”

쿵!

“뭐?”

뒷목을 때리는 충격에 오춘재가 비틀거린다.

“김 회장님이 왜…… 왜! 여태까지 아무 문제도 없었잖아!”

병원을 빼란 소리를 듣자마자 찾아갔지만, 마침 자리를 비워서 만나지 못한 김희건 회장.

“삼전그룹 비서실에서 이 기사들을 언론사 데스크에 다이렉트로 꽂았다고 합니다.”

비서실장은 도담의료재단을 마구잡이로 공격하고 있는 신문의 헤드라인을 가리켰고, 오춘재는 입을 떡 벌렸다.

“그, 그럼 이게 정말 모두 종철이 때문이다? 누, 누가 우릴 공격하는 게 아니고?”

“예. 종철 도련님이 건드린 소녀가 아무래도 김 회장님께서 후원하는 학생이 아니었을지…….”

아니면 김씨 일가와 짙은 인연, 매년 수십억의 임대료와 억제제를 버릴 만큼 소중한 인연인 것이다.

“이, 이……! 종철이 끌고 와-! 커헉?!”

“이사장님!”

* * *

“아버지!”

“아빠!”

오춘재가 쓰러졌단 소리에 병실 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그의 자식들.

“왔느냐.”

오춘재가 셋째아들이자 오종철의 아버지를 밀어내며 그들을 맞이한다.

“갑자기 쓰러지시다뇨!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에요!”

“셋째 오빠, 아빠는 좀 괜찮아?”

십 년은 늙은 오춘재의 얼굴에 자식들이 안타까워한다.

그러다 눈이 쭉 찢어지며 오종철의 아버지를 노려본다. 오춘재가 왜 쓰러졌는지 짐작이 가서 그렇다.

“오빠! 오빠는 자식 교육 똑바로 못 시켜?! 이게 무슨 망신이야!”

“뭐야!? 너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그래요, 아가씨! 우리 종철이가…….”

“이 새끼가 어디서 목소리를 높여! 네 자식새끼 때문에 내가 지금 무슨 꼴을 당했는지 알아?!”

순식간에 난장판이 된 병실.

오춘재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다.

“다들 조용히 하지 못해!”

병실을 쩌렁쩌렁 울리는 외침에 입을 다무는 그들.

오춘재가 혈압이 오르는 뒷목을 주무른다.

“……작은놈은?”

그의 말에 장년 여성들이 우물쭈물한다.

순간 가슴속을 스치는 불안함에 오춘재가 핸드폰을 드는 순간이었다.

지이잉! 지이잉!

“차남! 많이 바쁘신가?”

-아버지, 종철이가 누굴 건드린 겁니까? 아니, 누굴 건드렸는지 모르겠지만 제게 도움을 바라지 마세요.

“뭐, 뭐라고? 이봐, 차남!”

-방금 전 대표님께서 절 불러다 두 가지 선택권을 주시더군요.

회사냐, 집안이냐.

경쟁 중인 다른 로펌들에서 이번 사건을 빌미로 공격을 해 올 거라고, 인성적으로 문제 있는 집안의 변호사가 일하는 곳에 수임을 맡길 거냐는 식의 공격을 해 올 거라고 말을 했다.

이미 2개의 로펌에서 그런 연락이 왔다고 했다.

-종철이 그 망나니 놈 일은! 지 자식 일은 셋째 놈이 해결하라고 하세요. 그 전까지는 연락하지 마시고요. 끊습니다.

“차남! 차남!”

망연자실 핸드폰을 응시하던 오춘재가 이를 악문다.

“이! 이이이……!”

자식의 배신. 그 이유가 짐작이 가기에 더 화가 솟구친다.

“왜요? 오빠가 뭐래요?”

궁금증이 가득한 자식들의 표정에 오춘재가 정신을 차린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며 자식들을 둘러봤다. 둘째의 반항에 그의 마음속에 의심이 들어차기 시작한다.

“……다들 기사를 봤으니 상황은 대충 알 거다. 병원을 다시 지어야 하니까 다들 가져간 것들 다시 가져와라.”

흠칫!

“예, 예?!”

“아니, 아버지! 종철이 놈이 사고 쳤는데 왜…….”

“그래요, 아버지! 주신 걸 가져오라는 건 아니죠! 치사하게 이게 뭐예요!”

“이, 이놈들이?!”

혹시나가 역시나가 되어 버림에 오춘재는 이를 갈았다.

“가져오라면 가져오지 뭔 말이 그렇게 많아! 어릴 때처럼 처맞아야 말을 들을 거야?!”

지팡이를 찾는 오춘재의 모습에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렸던 자식들은 이를 악물었다.

“아버지.”

“허, 그래. 그래도 큰놈이라고 모범을…….”

“병원은 이만 접으시는 게 어떻습니까?”

‘그 돈이 어떤 돈인데! 그 건물이 어떤 건물인데!’

돌려주면 언제 다시 받을지 모를 재산들. 오종철의 큰아버지의 눈빛이 악독해진다.

쿠웅!

“……뭐?”

“그래요, 아빠! 이참에 그냥 병원 그만하시고 남은 재산으로 편히 사시는 거예요!”

“네! 그렇게 해요, 아빠!”

“허어…….”

이게 과연 자식이 아비를 향해 짓는 표정일까.

어떻게든 쥔 것을 뺏기기 싫어하는 욕심쟁이들의 얼굴들.

눈앞이 아득해진 오춘재가 허탈하게 웃는다.

‘내 병원이 무사했어도 이놈들이 이딴 말을 했을까?’

아니다. 병원만 무사했다면 이딴 말은커녕 벌벌 떨기 바빴을 것이다.

앞으로 최소 1년 반은 지나야 다시 세워질 병원. 부지를 사들이고 공사를 하는 데 그 정도 시간이 걸릴 거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다. 바로 환자들이다. 자신의 병원에 입원하고 치료를 받고, 수술을 하러 오던 환자들이 다시 찾아와 주느냐가 문제다.

아마 지금의 성세를 다시 구사하는 데 못해도 5년은, 아니 5년이 지나도 지금의 성세를 다시 구사한다고 장담할 수가 없다.

오춘재는 시선을 피하는 자식들을 다시 둘러봤다.

‘김 회장이 내 아픈 곳을 제대로 찔렀구나.’

스르륵!

“하, 할아버지…….”

오춘재는 잔뜩 겁먹은 얼굴을 한 채 안으로 들어오는 오종철의 모습에 몸을 일으켰다.

그러곤 방금 전 상황이 머쓱한지 더 크게 화를 내는 자식들을 무시하며 다가가 손을 들었다.

쩌억!

“하, 할아버지?”

“이, 이……. 후. 됐고, 따라와라.”

“예, 예?”

“그 촌년을 집안으로 받아들이든! 무릎을 꿇든 해야 할 것 아냐, 이 머저리 같은 놈아!”

일단 김희선에게 사과부터 해야 한다.

‘그래야 김 회장을 만날 수 있겠지!’

오춘재는 오종철의 멱살을 잡은 채 병실을 나섰고, 오종철은 울상을 지었다.

* * *

인터넷 기사들을 둘러보다 핸드폰을 종료한 종혁이 입맛을 다신다.

“이거 신세를 졌네.”

김희건 회장, 역시 참 무서운 사람이다.

“이러면 소개팅을 진지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데…….”

머리를 벅벅 긁은 종혁은 한 국밥집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 저기 계시군.”

눈을 빛낸 종혁은 테이블에 앉아 어깨를 늘어트린 채 넋을 놓고 있는 사십대 남성에게 다가갔다.

“이종국 교수님?”

순간 눈에 힘이 돌아온 이종국 교수가 종혁을 본다.

“혹시 절 스카우트하고 싶으시다던…….”

“반갑습니다. 최종혁입니다.”

중증외상 분야 및 간담췌외과 전문의, 이종국 교수.

국내에 몇 없는 더블 보드 외과의이자 외상 및 외상 후 후유증, 총상 치료 부문에서 한국 최고 권위자이며 후에 참 많은 업적을 남긴 분이다.

그러나 주변 여건과 여러 문제로 인해 본인의 숭고한 뜻을 제대로 펼치지 못한 위인.

“이종국입니다.”

“이렇게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환자들 때문에 빨리 들어가야 하기에 오래 이야기를 나눌 수 없습니다. 이 점 양해해 주십시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 듯 심드렁한 이종국의 모습에 종혁은 푸근히 웃었다.

“그러시다니 용건만 간단히 말하겠습니다. 서울에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중증외상센터를 지을 생각입니다. 그 치료 센터의 센터장으로 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응급환자 중에서도 곧장 응급수술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될 정도의 중상을 입은 이들을 전문적으로 치료하기 위한 치료 센터, 중증외상센터.

가까운 미래에 권역외상센터라는 이름으로 각지에 설립되기 시작하는 그곳들 덕분에, 대한민국의 중증외상으로 인한 사망률이 많이 격감하게 된다.

이렇게만 보면 왜 지금껏 짓지 않았던 것인지 의문이지만, 사실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바로 경제성 때문이다.

중증외상 환자가 발생했을 때 곧바로 수술에 들어가기 위해선 의사가 센터에 상시 대기를 하고 있어야 하는데, 이러면 병원 측 입장에선 의사들에게 지급해야 하는 비용이 자연스레 늘어날 수밖에 없다.

또한 중증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선 더 많은 의사와 약품이 필요한데, 환자와 그 가족들이 치료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았다.

이런 문제로 중증외상센터는 병원 입장에선 부담이 되는 존재였던 것이다.

“이익을 보려고 설립하는 것이 아니니만큼 환자들의 의료비와 관련해서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자세한 내용은 저희 센터로 오시는 걸로 확정되시면 추후 다시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교수님의 연봉과 인센티브도 현재 받고 계신 것에 2배를 약속드리죠. 혹시 데려오고 싶은 분이 계시면 얼마든지 데려오셔도 괜찮습니다. 그분들도 2배까진 무리라도 섭섭지 않게 맞춰 드리겠습니다.”

도담서울병원이 사라지면 남겨질 환자들.

그들은 무슨 죄란 말인가.

종혁은 그들이 지속적으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조치해 줄 생각이었다.

현재 의료재단 설립과 의과대학 인수 및 다른 의료진들 확보는 권회수가 행복의 쉼터 재단의 이름으로 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런 미친…… 아, 죄송합니다. 아니, 의사들 연봉을 그렇게 줄 수 있겠습니까?”

“잘 모르시겠지만, 행복의 쉼터 재단은…….”

지이잉!

핸드폰이 울리는 소리에 시선을 돌린 종혁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는다.

-ㅅㅏ려 주ㅅ;요

위급해 보이는 김희선의 문자.

“죄송합니다! 이야기는 다음에 나누시죠!”

종혁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