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660화 (660/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660화>

짹짹짹!

이른 아침부터 참새가 울어 대자 눈을 뜬 김희선이 함박웃음을 짓는다.

온몸을 포근히 감싸는 새 담요의 감촉.

휴대용 작은 담요에 불과하지만, 맨날 허름하고 거친 이불만 덮어 온 그녀로서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

배를 잡으며 몸을 일으킨 그녀가 창가로 걸어가 작은 창문을 연다.

드르륵!

“따뜻해.”

완연한 봄인 듯 따뜻하게 내리쬐는 햇살.

희선은 재빨리 책상으로 걸어가 서랍장을 연다.

그러자 나타나는 2백만 원이 든 돈 봉투와 이틀 전 원장님이 나눠 준 백화점상품권 두 장.

이 백화점상품권이면 봄옷 세 벌은 살 것이다.

쿵쿵쿵!

“희선아! 놀자-!”

갑자기 두드려지는 문에 깜짝 놀란 희선이 얼른 문으로 다가가 활짝 연다.

“뭐야. 이제 일어난 거야?”

“그러는 언니는요?”

희선 못지않게 꾀죄죄한 미연.

“히히. 나두! 얼른 씻어! 나가야지!”

오늘은 이틀 전 인터뷰를 하고 번 돈으로 쇼핑을 하는 날이다. 단 1분이라도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들은 후다닥 몸을 돌려 얼른 외출할 준비를 했다.

겨울이 아님에도 두꺼운 점퍼를 입은 희선과 미연, 그리고 주미.

“미연 언니야. 언니는 오늘 뭐 살 거예요?”

“나? 책! 영어 동화책!”

아이 태교에 영어 동화책이 참 좋다고 했다. 그러는 김에 영어 동화책 테이프도 살 생각이었다.

“그것만요?”

“응! 190만 원은 오빠한테 보냈거든!”

월세 보증금에 보태라고 이체시켜 놓았다.

이런 식으로 계속 모아 나간다면 그럴듯한 투룸 월셋집 보증금이 마련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을 듯 보였다.

바퀴벌레 안 나오고, 곰팡이 안 피는 그런 집.

그곳이 바로 자신들의 첫 집, 신혼집이었다.

“우리 언니야 이리 착해서 우야노. 이거 오빠가 알아요?”

“당연히 알지! 안 알면 나한테 죽는데?”

작은 주먹을 흔드는 미연의 모습에 희선과 주미가 웃음을 터트린다.

노랗게 물들인 머리에, 몸 곳곳에 새긴 타투 탓에 불량해 보이는 이미지가 있지만, 센터 사람들은 다 안다. 미연이 얼마나 착하고 남편과 아이에게 진심인지 말이다.

“주미 언니야는요?”

“난…… 우리 아기 일기장.”

마침 육아 일기장이 다 떨어졌다.

나중에 아이 아빠에게 보여 주기 위해선 지금 사 놓아야 했다. 나머지는 나중에 신혼집 살림을 구하기 위해 모아 놓을 생각이다.

“언니야…….”

미연이 안타까워하는 희선의 손을 잡으며 고개를 젓는다.

서로의 속사연은 찌르지 않는 게 미혼모센터의 룰.

희선은 입을 다물었고, 미연은 착하다며 히죽 웃었다.

“희선이 넌? 뭐 살 거야?”

“봄옷 하고…… 떡튀순!”

“헉! 떡튀순!”

여자라면 그 누구도 거부할 수 없고, 언제나 먹어도 맛있는 음식, 떡튀순.

떡볶이, 순대, 튀김 같은 그 흔한 분식조차도 그녀들에겐 사치였기에 마지막으로 먹어 본 게 벌써 몇 달 전의 일이었다.

“닭발도 먹을 거예요!”

“닭발! 흐이잉.”

희선은 나도 먹고 싶다는 눈으로 외치는 둘의 모습에 눈을 새초롬하게 떴다.

“뭐예요. 언니야들이 돼서 동생한테 얻어먹으려고요? 와, 이 언니야들 몬났다, 증말.”

“아, 안 되겠지?”

“……우리 돈 모을까? 미연이랑 내가 만 원씩 낼게.”

그리고 희선이 5천 원을 내는 거다.

2만 5천 원이면 떡튀순에 닭발까지 배불리 먹을 수 있을 터.

벌써부터 입에 침이 고이기 시작한 미연과 주미는 얼른 받아들이라며 희선을 재촉했고, 옆구리가 찔려 깔깔 웃던 희선은 결국 항복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에잇! 기분이다! 우리 야식으로 족발도 먹어요! 제가 살게요!”

“……제가 뭘 하면 될깝쇼, 마님.”

“시켜만 주세요, 마님. 쇤네가 대기 중이에요.”

“에헴. 그럼 안내부터 하거라.”

“요게. 언니들한테…… 확!”

“에헤헤.”

희선은 장난이었다는 듯 둘에게 팔짱을 꼈고, 주미는 그런 희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럼 옷만 살 거야?”

“영양제도 사려고요. 많이 사서 나눠 줄까요?”

“……돈은 안 모을 거야?”

“2백만 원이 있는데 뭐가 문제예요.”

“아니, 그게 아니라…….”

주미는 입술을 달싹이다 다물었고, 그 모습을 본 미연은 팔짱을 풀며 희선을 엄하게 쳐다봤다.

“그러면 안 돼. 나중에 태어날 아기를 위해서 열심히 모아 놔야지.”

산후조리원에 들어가는 건 포기하더라도 아기 병원비만큼은 꼭 준비해 두어야만 했다.

내 몸은 상할지언정 내 아기만큼은 비타민도 꼬박꼬박 먹이고, 필요한 예방 접종은 모두 해 주어야만 하니까.

국가에서 상당수 지원해 주긴 하지만, 남들보다 부족하지 않게 해 주려면 한 푼, 두 푼이라도 아낄 필요가 있었다.

“돈은 있을 때 모아 놔야 해. 그래야 나중이 편해.”

“……많이 공부했네요?”

“나도, 아니 우리도 이제 엄마잖아. 이 정도는 당연히 해야지.”

“그렇죠. 나도 엄마죠…….”

“응?”

희선은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 순간이었다.

부르릉! 끼익!

그녀들은 자신들의 옆에 선 외제차에서 내리는 종혁을 발견하곤 눈을 동그랗게 떴다.

* * *

버드나무 미혼모센터 근처의 한 커피숍.

따뜻한 유자차를 홀짝이며 눈치를 보는 희선의 모습에 종혁은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할까.

네가 스무 살이 아닌 것부터?

네가 인터뷰 때 꺼낸 사연이 진짜냐 추궁하는 것부터?

네 아이의 아빠가 성폭행범일 수도 있다는 것부터?

‘골치 아프네, 진짜.’

하지만 물어야 했다. 혹시나 희선이 피해자일 수 있기 때문이다.

“후. 일단 먼저 사과를 드리겠습니다, 희선 양.”

“예? 뭐, 뭐가요?”

“희선 양의 방에 있던 사진에 희선 양과 함께 찍혀 있는 여성분이 제가 알고 있는 분이더군요.”

덜컹!

희선의 몸이 크게 흔들린다.

“지, 지민이랑 아는 사이라고요?”

“예. 희선 양을 많이 걱정하더군요.”

그 말에 희선이 다급히 점퍼의 안주머니를 꽉 쥐며 자리를 박찬다. 그에 종혁은 얼른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걱정 마세요. 출연료나 백화점상품권을 뺏을 생각은 없으니까요.”

경주로 데려갈 생각도 없다.

“그럼 왜 저를…….”

종혁은 떨리는 그녀의 눈에 한숨을 내쉬었다.

‘부디 충격을 받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한 가지 여쭙고 싶은 게 있어서 찾아온 겁니다.”

종혁은 품에서 사진을 꺼내어 내밀었다.

쿵!

희선의 얼굴이 파랗게 질린다.

“흐읍?! 끕!”

“희, 희선 양?!”

갑작스레 얼굴이 빨개지며 목을 붙잡는 희선의 모습에 종혁의 눈이 부릅떠졌다.

‘과호흡!’

종혁이 다급히 그녀에게 몸을 날리는 순간이었다.

“아악!”

누군가 배를 걷어찬 듯한 충격에 배를 붙잡고 무너지는 희선.

“희선 양! 괜찮…… 까?!”

희선은 갑자기 깜깜해지는 시야에 눈을 감았다.

* * *

그날은 한겨울처럼 시리도록 추운 인생에 찾아온 따뜻한 햇살 같은 축복이었다.

“……하아.”

학교에서 돌아온 희선이 난장판이 된 거실을 보며 한숨을 내쉰다.

난방을 뗄 돈조차 없어서 전기장판의 온기만이 유일하게 차가운 공기를 데우는 거실을 망연히 바라보던 희선이 성적표를 꽉 쥔다.

전교 10등, 반에서 2등.

누가 봐도 모범생이라 부를 성적이건만 오늘도 함께 기뻐해 줄 부모가 없다.

오늘따라 울컥 눈물이 차올랐던 희선은 이내 눈을 비비며 거실을 청소했고, 잠시 후 청소를 모두 끝마친 그녀는 전화기를 들었다.

“저예요, 아줌마. 아빠 안 왔어요? 네, 알겠심니더. 아니에요. 예.”

또 어디 가서 사고를 치고 있을까.

희선은 반쯤 포기한 얼굴로 아빠가 갈만한 다음 장소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그 순간이었다.

띵동!

“……누구지?”

벨을 누르기보다 현관문을 두드리는 아빠.

집에 찾아오기 전엔 무조건 전화를 하는 친구, 지민.

아무리 생각해도 이 시간에 집을 찾아올 사람이 없다.

‘집주인인가?’

낯빛이 어두워진 희선은 급격히 무거워진 엉덩이를 떼며 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아주머니. 월세는…… 누구세요?”

“안녕? 네가 희선이니?”

“와, 귀엽다. 안뇽안뇽?”

희선은 마치 여름의 태양처럼 환하게 웃는 대학생 오빠들을 멍하니 쳐다봤다.

한부모 가정 봉사를 위해 서울에서 찾아온 대학생 오빠들.

문을 열자마자 무겁다고 이것부터 받아 달라고 내밀던 쌀과 김치, 전기장판은 참 따뜻했고 포근했다.

그들의 미소는 그보다 더 뜨거웠다.

그래서였는지도 몰랐다. 자신에게 없는 것을 가진 그들에게 끌려 버린 게.

“종철 오빠야! 여기에요, 여기!”

“뭐야. 뭐가 그렇게 신나? 넌 매일 보는 거 아니었어?”

움찔!

못 봤다. 그동안 경주에 살았지만, 대릉원, 월성, 동궁과 월지(안압지) 등 돈을 내야 들어갈 수 있는 곳은 단 한 번도 가 보지 못했다.

어쩌면 기억이 나지 않는 아주 어릴 적 가 봤을지 몰라도 지금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희선은 박유선을 향해 눈을 흘겼다.

“유선 오빠야는 맨날 강남에 놀러 가요?”

“오! 어떻게 알았어? 나 맨날 놀러 가는데!”

“씨이. 종철 오빠야!”

“인마, 넌 중학생을 이겨 먹고 싶냐?”

“아이거든요! 이제 기말고사 치러서 고등학생이거든요!”

“어이구. 그랬져요? 우리 애기 벌써부터 고삐리 되고 싶었어요? 우리 졸업식은 하고 말하자?”

“……야, 이 문디 머스마야!”

“으악!”

손톱을 세우며 달려들려는 순간 오종철이 희선을 끌어안는다.

“착하지? 귀여운 아이는 그런 험한 말 하는 거 아니에요.”

“하, 하지만 저 오빠야가……!”

“유선이가 놀려서 화났어? 내가 혼내 줄까?”

코끝을 달콤하게 흔드는 향수와 치약의 향기.

왜인지 얼굴이 달아오른 희선은 고개를 숙였고, 오종철은 그런 희선을 착하다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아마 이때부터였을 것이다. 자신이 오종철을 좋아하게 된 게 말이다.

하지만 자신을 여자로 보지 않았던 그.

그렇게 헤어질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푸흐. 미안하네.”

매서운 추위가 몰아치던 1월, 새해가 밝은 지 이틀이 지난 1월 3일의 저녁.

“으이그. 그러니까 이기지 못할 술을 와 마시는데요?”

희선이 술에 잔뜩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오종철을 부축하며 타박한다.

그토록 싫어하고 증오하는 술이건만, 왜인지 오종철의 앞에선 걱정부터 생긴다.

“미안해. 오빠가 조금만 마시려고 했는데 이놈들이 마지막 날이라고 해서……. 그래도 오늘로 경주 맛집은 다 돌아봤지렁!”

“그게 자랑이에요?”

“응! 서울에 가면 애들이 엄청 부러워할걸?”

쿵!

숨이 막힐 만큼 심장을 후려치는 상실감에 희선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오빠야. 진짜 가는 거예요? 안 가면 안 돼요?”

“희선아?”

스윽 팔을 뺀 오종철이 희선을 멍하니 바라본다.

마치 몰랐다는 듯한 그의 모습에 희선이 울컥한다. 설움에 눈물이 차오른다.

“흐윽! 오빠야도 알잖아요! 내가 오빠야 좋아하는 거! 와 모른 척하는데-!”

저녁 12시, 웬만한 곳은 다 문을 닫는 경주의 조용한 골목을 울리는 17살 소녀의 외침에 오종철의 눈이 흔들린다.

그에 희선이 덜컥 겁을 먹는다.

“아, 아이에요! 파, 팔 이리 줘요. 데려다줄게요!”

“……그래.”

숨 막히는 침묵을 휘감은 둘은 근처의 호텔로 들어간다.

거의 매일같이 찾아왔기에 그러려니 하는 호텔 주인.

띵!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희선이 오종철의 방 앞에 선다.

“……안녕히 주무세요. 내일 봬요.”

이렇게 도착할 때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오종철의 모습에 희선은 억울하고 서러워하며 몸을 돌린다.

‘내가 어려서 그러는 기가? 정말 그러는 기가?’

왜 자신은 몇 년 더 일찍 태어나지 못했을까.

괜스레 엄마와 아빠를 다시 원망해 보는 순간이었다.

덥석!

“희선아.”

몸을 멈춘 희선의 머릿속에 온갖 생각이 떠오른다.

그녀는 작은 기대를 가지며 오종철을 돌아본다.

진지한 오종철의 눈빛.

“내가 그렇게 좋아?”

투웅!

가슴을 두드리는 따뜻한 충격.

“……안 좋아하는 사람한테 고백하는 사람도 있어요?”

“아하핫!”

“우, 웃지 마요! 씨이! 갈래요!”

희선은 다시 몸을 돌렸지만, 그녀의 손을 꼭 잡은 오종철은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희선아, 오빠랑 술 마실래?”

희선은 오종철의 따뜻한 미소에 홀려 그의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팠다.

오종철은 참 다정하고 따뜻했지만, 그래도 아팠다.

“우리 희선이, 오빠 많이 사랑해?”

“몰라요…….”

부끄러움에 오종철의 품에 안긴 희선은 미처 보지 못했다. 태양같이 밝게 빛나던 그의 얼굴에 스산한 어둠이 내려앉는 걸.

“오빠 취향을 이해해 줄 수 있을 만큼 사랑해?”

“취향이요?”

“응. 오빠가 좀 특이한 취향이 있거든. 누가 지켜보는 걸로 흥분을 한달까?”

“네?”

이해를 하지 못한 희선은 눈을 껌뻑이는 순간이었다.

띵동! 띠리리릴!

갑자기 울리는 초인종 소리.

침대를 빠져나온 오종철이 현관문으로 걸어가 문을 연다.

“오우! 드디어 끝났어?”

“형! 너무 오래 걸린 거 아니에요?”

박유선과 이주혁의 목소리.

기겁하며 이불로 몸을 가리던 희선은 방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캠코더를 드는 박유선과 이주혁의 모습에 눈을 부릅떴다.

“지, 지금 뭐하시는…….”

“희선아, 방금 내가 말했잖아. 우리 더 사랑하자?”

“오, 오빠야……. 이, 이건 아이다. 종철 오빠야-!”

“흐흐흐!”

“꺄아아악!”

지옥은 그렇게 시작됐다.

* * *

“허어억?!”

다급히 몸을 일으킨 희선이 이를 악문다.

차오르는 눈물에 눈을 비비던 그녀는 낯선 공간에 어리둥절해했다.

“여긴…….”

“깼어요?”

희선은 걱정이 가득한 종혁의 모습에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리고 정신을 잃기 전 기억을 떠올리며 다급히 배를 만진다.

“애, 애는요! 우리 별이는요?”

그녀가 붙인 태명, 별이.

“다행히 괜찮다고 하네요.”

“그래요…….”

종혁은 다행인 듯하면서도 아닌 것 같은 복잡한 표정을 짓는 희선을 보며 속으로 이를 악문다.

안 된다고, 살려 달라고 계속 외쳤던 그녀.

대체 뭐가 그렇게 무서워 이렇게 도망치고 있을까.

“오종철 씨가 아이의 아빠였나 보군요.”

흠칫!

“희선 양이 계속 오종철 씨를 찾더라고요.”

“…….”

종혁은 입을 꾹 다무는 그녀의 모습에 한숨을 내쉬었다.

“희선 양, 아니 희선아.”

깜짝 놀란 희선이 종혁을 본다.

“많이 무서웠지?”

“……흐윽!”

무서웠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서, 도와줄 사람이 없어서 무서웠다.

배 속에서 하루하루 커 가는 아이를 보며 이게 맞는 것인지 매일같이 의심을 했다.

“하, 하지만 애가 무슨 잘못인데요.”

축복이든 저주든 이 생명을 어떻게 버릴 수 있단 말인가.

자신은 엄마처럼 되기 싫었다.

힘들다고 자신을 버리고 도망쳐 버린 엄마처럼 책임감 없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벼, 별이는 내 가족이에요. 앞으로 영원히 내 편일 가족.”

내가 아파도 힘들어도 세상에서 유일하게 내 편일 가족.

“그리고 내가 별이를 잘 키우면…….”

한 번쯤은 오종철이 돌아봐 주지 않을까.

그 햇살처럼 따뜻했던 미소를 보여 주지 않을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번만. 작게나마 기대해 본다.

뒤통수를 후려치는 충격에 종혁의 눈앞이 아득해진다.

‘그런 거였나…….’

트라우마다. 불우한 가정 환경이 그녀로 하여금 그릇된 선택을 하게 만든 거다.

종혁은 뒷목을 주무르며 희선을 봤다.

어리다. 너무 어리기에 할 수 있는 생각이다.

하지만 의지할 사람 없이 불우하게 자란 그녀로선 그 무엇보다 바라는 소망이기도 했다.

‘돌겠네, 진짜.’

“희선아.”

“와요! 지우라고 하지 마세요! 별이는 제 가족이에요!”

“오종철을 만나 볼래?”

희선은 눈을 껌뻑이며 종혁을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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