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658화>
끼익!
하루가 다르게 날이 따뜻해지는 봄날의 햇빛을 받으며 차에서 내린 종혁이 미혼모센터의 건물을 보며 눈을 가늘게 뜬다.
“조명부터 내려야지!”
“그거 조심히 다루라고 몇 번 말하냐!”
시끄러워지는 콘텐츠 제작 및 관리팀.
최재수가 종혁의 옆에 서며 건물을 응시한다.
“건물이 꽤 노후됐네요.”
2층짜리 작은 건물, 외풍을 제대로 막아 주기나 할까 의심이 가는 노후된 건물이었다.
종혁은 씁쓸함을 느끼며 건물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딸랑!
건물 안으로 들어선 종혁은 옹기종기 모여 있는 미혼모센터의 원장과 직원들을 발견하곤 다가갔다.
“어려운 일 하시느라 고생이 많으십니다. 본청 홍보부장 최종혁 총경입니다.”
“아, 어서 오세요! 버드나무 센터의 원장 유명자예요.”
유명자 원장은 센터의 직원들을 소개시켜 줬고, 종혁과 이야기를 나눈 그들은 맨 뒤에 선 탑차에서 나오는 박스들을 보며 눈을 빛낸다.
“이런 것들이 많이 필요하다는 말을 들어서 좀 가져와 봤습니다. 제가 맞게 사 왔나 모르겠네요.”
한번 확인해 보시라는 제스처에 얼른 다가간 직원들은 깜짝 놀랐다.
“와아!”
“이, 이건?!”
분유에 기저귀, 아이 옷과 담요, 포대기, 쌀과 김치, 미역, 과일, 그리고 영양제 등 모두 임산부와 산모, 태어난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물품들이었다.
어떻게든 예산을 쥐어짜서 사도 언제나 없어서 문제인 물품들.
그것들을 본 유명자와 센터 직원들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이, 이렇게나 많이…….”
종혁은 어쩔 줄 몰라 하는 그들의 모습에 이들이 진심으로 미혼모들을 위하고 있음을 느끼며, 콘텐츠 제작 및 관리팀이 센터를 제대로 선정했구나 생각했다.
“아, 이건 센터에 계시는 미혼모 여성분들에게 나눠 주십시오. 출연료와 별개로 저희가 드리는 선물이니 걱정 말고 받아 주세요.”
뒤이어 종혁은 십만 원짜리 백화점상품권 수백 장을 꺼냈고, 유명자와 센터 직원들은 결국 눈물을 보였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하하. 아, 우선 내부 좀 구경할 수 있을까요?”
“네, 물론이죠! 이쪽으로 들어오세요.”
잠시 후 내부를 모두 살핀 종혁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좀…… 열악하네요.”
건물이 노후된 탓인지 바닥 군데군데가 제대로 난방이 되질 않았고, 외풍이 들이쳐서 방 공기는 차가웠다.
깨끗한 걸 제외하면 싸구려 고시원보다 못한 수준.
“그나마 저희 센터는 사정이 나은 편이에요. 근처 기름집 사장님이 후원을 해 주셔서 난방은 걱정 없이 틀고 있거든요.”
한겨울에도 난방을 할 돈이 없어서 저녁이면 한 방에만 난방을 틀어, 그 방에 모여서 자는 센터도 수두룩하다.
“음. 미혼모 관련 예산이 적나 보군요.”
“솔직히 풍족할 정도는 아니죠. 그리고…….”
원장은 아차 하며 입을 다물었지만, 종혁은 그녀가 하려고 했던 말을 눈치챘다.
‘센터까지 내려오지 못하고 중간에 새는 돈이 많다는 거겠지.’
위에서 내린 복지비를 중간에서 훔치는 도둑놈들이 많다는 소리다.
‘지랄 맞네, 진짜.’
“첫 번째로 인터뷰할 분은 어디 계십니까?”
“아, 이쪽 케어룸에 계세요.”
종혁은 임산부와 산모의 멘탈 관리와 태교를 위해 만들어진 케어룸으로 향했다.
* * *
“아저씨, 정말 2백만 원 주는 거 맞아요?”
처음으로 인터뷰할 여성은 몸에 문신 있는 여성이었다.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짙게 화장을 한 이십대 초반의 여성. 핑크색 핫팬츠를 입은 채 껌을 질겅이는 여성의 모습은 아무리 봐도 좋게 볼 수가 없었다.
“네, 맞아요.”
아동청소년과에서 파견된 여성 경관의 말에 여성의 얼굴이 확 밝아진다.
“오! 현금으로 줘요?”
“현금으로 주죠.”
“오오오! 뭐든지 물어보세요!”
“성함과 나이가 어떻게 되시죠?”
“김미연, 나이는 23살이요.”
“지금 임신 몇 주 차세요?”
“24주 차요!”
마치 아이가 축복이라는 듯 배를 감싸며 배시시 웃는 여성.
“……이 센터에 입소하신 이유가 뭔가요?”
“돈 때문이죠. 그것 말고 무슨 다른 이유가 있겠어요.”
학창 시절 남자친구를 잘못 만나서 경찰서에 몇 번이나 들락거렸던 그녀.
폭력을 거리낌 없이 휘두르는 남자친구가 무서워, 그가 무슨 짓을 저질러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곁에 있다가 함께 경찰서로 끌려간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남자친구가 다른 여자랑 바람이 났고, 그녀는 드디어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미 부모님도 그녀에게 등을 돌린 지 오래였고, 배운 게 없었던 그녀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면 근근이 생계를 이어 나갔다.
그러다 사고가 터졌다.
시재가 몇 백 원도 아니고, 무려 3만 원이나 빈 것이다.
당연히 사장은 노발대발했고, 심지어 네가 훔친 거 아니냐며 의심까지 했다.
그때 짐을 놓고 갔던 이전 타임 아르바이트생이었던 오빠가 소설 속 백마 탄 왕자님처럼 나타났다.
그리고 사장에게 말했다. 자신이 깜빡하고 채워 넣지 않았다고, 미안하다고.
그날 저녁 캔맥주를 마시며 대체 왜 그랬냐고 물었다.
“뭐라고 대답한 줄 아세요? 사람이기에 실수할 수도 있는 거라고, 실수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 되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정말 멋있지 않아요?”
그때 딱 반해 버렸고, 먼저 사귀자고 고백했다.
그리고 이렇게 아기를 가지게 된 것이다.
“사실 좀 놀랐었어요.”
“아이를 낳자고 해서요?”
미연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솔직히 그렇잖아요. 배운 것도 없고, 집에서도 내놓은 년인데 누가 저랑 같이 살고 싶겠어요?”
하지만 오빠는 걱정하지 말라며, 너랑 아기는 어떻게든 자신이 책임지겠다며 말해 주었다.
어린 나이에 내린 치기 어린 결정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빠의 눈빛과 목소리에 담긴 진심만은 느낄 수 있었다.
동시에 생각했다.
이 사람이다. 이 사람은 믿어야겠다.
“그런데 저희가 무슨 돈이 있어요.”
모아 놓은 돈 하나 없는 사회초년생, 아니 알바 인생.
“저도 다리가 이렇고요.”
몸을 일으킨 미연이 치마를 걷어 무릎을 보여 주자, 종혁과 홍보부 직원들의 낯빛이 모두 굳는다.
수술 자국이 크게 난 무릎.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그곳에 난 화상 자국이다.
‘담배…… 빵?’
동그란 화상 자국이 수십 개나 있는 무릎.
그 처참함에 절로 이가 악물어진다.
“헤헤, 예전 남자친구가 많이 폭력적이었거든요…….”
지금은 딱히 통증이 남아 있거나 한 건 아니지만, 정신적 충격 탓인지 뛰거나 걸을 때 불편함이 있었다.
“아무튼 오빠나 저나 딱히 모아 둔 돈도 없고, 기댈 곳도 없었거든요.”
“그래서 이 센터에 들어오신 거군요?”
“네!”
오빠가 월세 보증금을 다 모으면 나갈 요량으로, 잠시 신세만 질 요량으로 무릎 꿇고 빌며 들어왔다.
살려 달라고, 제발 우리 아이만 살려 달라고 빌면서.
“오빠도 같이 와서 빌었어요. 금방 데려가겠다고. 잠시만 저랑 우리 오렌지 좀 보호해 달라고. 아, 우리 애기 태명이 오렌지인데, 제가 오렌지를 엄청 좋아하거든요.”
다행스럽게 미혼모센터에 들어오게 된 뒤로 오빠는 밤낮으로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모으는 중이었다.
“그러셨군요…….”
“이모, 저 이제 정말 착하고 열심히 살 거예요. 아니, 열심히 살거든요? 왜인지 아세요? 안 그러면 우리 오빠랑 오렌지한테 쪽팔려서 못 살아요. 제가 다른 건 없어도 깡이랑 자존심은 넘치는데, 쪽팔린 짓을 하면 안 되잖아요.”
어디 그뿐인가. 자식 교육은 엄마 몫이라는 소리를 들은 그녀는 학창 시절 하지도 않았던 공부도 시작했고, 토익도 무려 200점을 넘겼다. apple이 뭔지도 몰랐던 무식한 년이 말이다.
“……그 말투만 더 고치면 더 훌륭한 엄마가 되실 것 같네요.”
“악! 오빠랑 선생님들이 예쁜 말만 쓰라고 했는데! 취소, 취소!”
입을 다문 아동청소년과의 경관은 종혁을 봤다.
“……수고하셨습니다. 최 경사, 이분께 출연료 지급해 드려.”
“예.”
“아싸! 또 이런 일 있으면 연락 주세요!”
미연은 냉큼 방을 빠져나갔고, 종혁은 치미는 혈압에 뒷목을 주물렀다. 그건 다른 경찰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뭔 씨발…….”
“와, 내 딸도 학교에서 저런 꼴을 당할까 무섭네.”
어떻게 그런 일을 겪고도 저렇게 티 없이 해맑게 웃을 수 있는 걸까.
“최재수.”
“찾을까요?”
“일단 찾아봐.”
미연을 괴롭혔다는 남자친구를 말이다.
지금 어떻게 사는지 그 꼴을 보고 뒷일을, 처벌을 생각해야 됐다.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던 종혁은 기묘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미혼모센터 원장의 모습에 의아해했다.
“그렇게까지 하시는 건가요?”
“몰랐으면 모르되 알아 버린 이상 찾아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자신들이 경찰인 이상 말이다.
그에 원장의 표정은 더 묘해졌고, 종혁은 씁쓸히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럼 다음 분을 만나러 가죠.”
그들은 자리를 옮겨 식당으로 향했다.
인터뷰 장소를 바꿔 가며 자연스럽게 미혼모센터의 열악한 사정을 보여 주기 위해서였다.
식당에 도착하자 미연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소심해 보이는 여성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사람들 눈치를 보며 어깨를 움츠리는 여성.
“아,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저희 무서운 사람들 아니니까 안심하시고 여기 자리에 편히 앉으세요. 최 경사님, 이분 담요랑 따뜻한 차 좀 가져다주세요.”
“아, 예!”
최재수는 곧 캐릭터 담요와 코코아를 타 왔고, 여성 경관은 살짝 긴장을 푸는 여성을 향해 포근한 미소를 지어 주었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요? 이름과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기, 김주미고요. 나이는 21살이에요…….”
그리고 그녀의 사연이 달싹이는 입술을 통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아오, 이 개씹새끼!”
“그게 어디 그 새끼 혼자만의 결정이겠어요?! 그 새끼 부모가 낙태를 하라고 돈을 쥐여 줬다면서요!”
김주미의 사연은 경찰들의 공분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여중, 여고를 졸업한 후 대학교 신입생 환영회에서 처음으로 남자친구를 사귀게 된 김주미.
남자친구는 같은 과 선배였고, 둘은 1년의 연애를 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관계를 가지게 된 건 작년 크리스마스.
사실 그녀는 내키지 않았지만, 남자친구의 계속된 요구를 이기지 못하고 그날 처음 관계를 가지게 됐다.
그로부터 한 달 후 그녀는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고, 자신이 책임질 테니 아기를 낳자던 남자친구는 어느 날 갑자기 유학을 가 버렸다. 모든 연락을 끊은 채 말이다.
김주미는 황급히 남자친구의 집을 찾아갔지만, 남자친구의 부모는 낙태를 종용하며 그녀를 차갑게 돌려보냈다. 김주미의 부모 역시 낙태를 종용한 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녀는 차마 아이를 지울 수 없었고, 이렇게 미혼모센터로 도망쳐 오게 되었다.
배신을 당했지만, 자신을 버리고 떠났지만 남자친구가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믿음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후. 그럼 다음 분을 만나러 가죠.”
그들은 이내 곧 한 미혼모 방으로 향했고, 이내 곧 배가 볼록한 한 여성이 몸을 일으켜 그들을 맞이한다.
그에 종혁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는다.
종혁뿐만이 아니다. 방 안으로 들어온 모든 경찰의 낯빛이 굳는다.
너무나도 앳되어 보이는 여성의 모습 탓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김희선입니다.”
“나, 나이가 어떻게 되시죠?”
“……스무 살이요.”
‘휴우.’
다행.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이 그들의 머릿속을 찾는 순간이었다.
‘응? 저건?’
방 안 한구석에 놓여 있는 작은 액자 하나.
그 안에서 교복을 입은 채 희선과 함께 웃고 있는 여성을 발견한 종혁은 이내 소스라치게 놀라 희선을 바라봤다.
‘이런 미친?!’
종혁의 뒷목이 뻣뻣해졌다.
* * *
“그럼 안녕히 가세요.”
“정말 감사합니다!”
종혁과 본청이 전달한 물품 덕분에 올 한 해는 따뜻하고 부족함 없이 지낼 수 있게 된 버드나무 미혼모센터.
밖으로 나온 원장과 직원들이 감사의 뜻을 담아 허리를 깊이 숙인다.
“하하, 아닙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럼 이만.”
거수경례를 한 홍보부와 아동청소년과 경찰들이 돌아선다.
“하, 지랄 맞다. 진짜.”
한 명, 한 명 안타깝지 않은 사연이 없다.
지옥을 살아왔지만 한 명의 어머니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첫 번째 미혼모부터 마지막 다섯 번째 미혼모까지.
“넌 어떤 분이 가장 안타까웠냐?”
“전 두 번째요.”
“세 번째도 안타깝더라고요.”
1월 1일 새해, 남자친구와 정동진에 놀러 갔다가 덜컥 애를 밴 희선.
그러나 남자친구는 그로부터 두 달 후 교통사고로 사망하였고, 희선은 애를 지우라는 부모님을 피해 이렇게 미혼모센터로 도망쳐 왔다.
“하, 꽃다운 스무 살에 어쩌다가…….”
“스무 살 아닙니다.”
“예?”
종혁은 몰리는 시선에 이를 악문다.
“고등학생, 아마 17살, 18살일 겁니다.”
“그, 그게 무슨 말이세요?! 아니, 부장님이 그걸 어떻게 아세요?!”
“경주에서 희선 양의 친구를 본 것 같거든요.”
불국사에서 사진을 찍고 있던 교복 입은 여고생들. 분명 입고 있는 교복은 다르지만, 그중 한 명과 찍은 사진이 희선의 방 안에 있었다.
“이런 미친!”
“자, 잠깐! 그럼 그 말은…….”
“……희선 양의 인터뷰 내용이 모두 거짓일 수 있다는 거죠.”
종혁은 뒷목을 잡는 사람들의 모습 최재수를 봤다.
“예, 알겠습니다. 어떻게든 찾겠습니다.”
찾아내 사연을 알아야 했다.
고등학생이 대체 왜 미혼모센터로 도망을 쳐 왔는지, 왜 도움을 받으러 왔는지, 2백만 원이 궁할 정도면서 대체 뭘 숨기는 건지를 말이다.
종혁은 미간을 좁힌 채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