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657화 (657/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657화>

똑똑똑똑똑!

-마하반야 바라밀다…….

스피커를 통해 청아한 목탁 소리와 불경이 울려 퍼지는 불국사의 대웅전.

스륵!

방석을 깐 고정숙이 부처님을 보며 절을 올린다.

오늘도 아들이 무사하길.

내일도 아들이 무사하길.

모레도 이 행복이 이어지길.

자식을 생각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부처님께로 향한다.

그 뒤 문밖에 선 종혁은 부처님께 합장을 하며 그동안 자신이 부족해 사망한 억울한 사람들의 명복을 빈다.

눈을 감으면 언제나 나타나는 피해자들.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

허리를 숙인 채 한참 명복을 빌던 종혁은 이내 돌아선다.

“후우.”

반사적으로 담배를 찾다 멈추며 불국사의 고즈넉한 경내를 둘러보는 종혁.

“꺄르르!”

“호호호!”

아이들의 꾀꼬리 웃음소리가 울리자 종혁의 시선이 절로 옮겨진다.

다보탑, 불국사 삼층석탑 앞에서 사진을 찍는 교복 입은 학생들.

“벌써 수학여행 시즌인가?”

봄꽃이 만발하는 시기,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이 나라의 과거를 아는 시기가 온 것 같다.

포동포동 젖살이 가득한 학생들의 모습에 종혁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피어난다.

“끝났다. 그만 가자.”

“벌써 다 했어요?”

“그냥 짧게 했어.”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사람이 절을 하며 소원을 빌 텐데, 오래 절을 해 봤자 부처님만 귀찮을 뿐이다.

“부처님이? 대자대비의 상징이신 분이?”

“그 양반 태어나실 때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외치신 분이야. 성깔 있으셔.”

“풉! 너무 불경한 말 아니야?”

“아, 사실적시 명예훼손이려나?”

“푸핫!”

배꼽을 잡고 웃은 종혁이 손을 내민다.

“어서 가요. 부처님 화내실라.”

“걱정 마. 이 정도로 화 안 내시니까.”

이 정도로 화를 내실 거라면 가끔 다니는 절의 주지스님은 벌써 객사를 해야 됐다.

촌철살인이 거의 국보급인 주지스님.

“그리고 엄마가 기부 많이 하시니까 봐주실 거야.”

“거기가 어디 절인지 모르겠지만 이제 가지 마.”

“그 재밌는 곳을 왜 안 가? 거기다 거기 절밥이 얼마나 맛있는지 모르지? 보살님들 손맛이 얼마나 야무진지 스카우트하고 싶어지더라니까.”

“네, 네. 먹은 만큼 기부하세요.”

종혁은 결코 말로 이길 수 없는 어머니에 고개를 젓는다.

“저, 저기…….”

“응?”

“사, 사진 좀 찍어 주실 수 있을까요? 저희도 찍어 드릴게요!”

‘오, 깡이 좋은데?’

누가 봐도 쉬이 접근하기 힘든 덩치를 지닌 종혁.

“역시 사람은 잘생기고 봐야 하려나…….”

“엑?!”

“왜? 찍기 싫어요?”

“아뇨! 피부가 우윳빛깔이세요!”

“푸하핫! 서 봐요. 찍어 줄게요.”

“감사합니다!”

종혁에게 핸드폰을 맡기고 다보탑 앞에 나란히 서며 포즈를 취하는 고등학생 소녀들.

‘구성이 좀 특이하네.’

저마다 분위기가 저렇게까지 다른데 어울리며 지내는 것이 신기했다.

‘뭐, 그럴 수 있나.’

끼리끼리 만나는 게 친구지만, 사람은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끌리기도 하니까.

“우와! 사진 잘 찍으시는데요?!”

“하하. 마음에 들었다니 다행이네요.”

뒤이어 소녀들도 종혁과 고정숙을 찍어 준다.

“경주 구경 잘해요.”

“아저씨, 아주머니도요!”

삐끗!

“아직 아저씨 아닌데…….”

“나이 서른 넘었으면 아저씨 맞아.”

“거, 팩트로 패지 말라니까.”

“호호. 지랄 마시고 다음 스케줄은 뭔가요, 아드님?”

“잠깐 쉬었다가 해지고 대릉원 구경.”

대릉원의 야경이 참 멋지다고 했다.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그녀와 종혁은 그렇게 불국사를 나섰다.

챙!

해가 모두 저문 밤, 숙소인 호텔 근처의 한 호프집.

두 개의 맥주잔이 부딪친다.

“크으으!”

“어휴.”

“왜? 피곤해?”

“엄마도 이제 나이가 들었나 봐. 그 조금 걸었다고 다리가 아프네.”

“운동 부족이십니다. 수영이라도 해.”

“이럴 땐 주물러 드릴까요 하는 거란다, 이 불효막심한 아드님아.”

“에이. 내가 불효는 안 했다!”

“그래서 결혼할 여자친구는?”

“…….”

“아들, 엄마는 네 나이에 벌써 10살짜리…… 읍!?”

“네, 네. 많이 드세요. 아니, 요새 자꾸 왜 이러실까. 앞자리 숫자 바뀌었다고 정말 아줌…… 푸헥?!”

고추장을 듬뿍 묻힌 멸치가 콧속을 찌르자 발버둥 치던 종혁이 고정숙을 노려보고, 그녀는 코웃음을 친다.

“아줌마라 부르지 마라. 듣는 아줌마 기분 나빠.”

“예. 그래야지요, 어마마마.”

“주문하신 안주 나왔습니다.”

“아, 여기 맥주 한 잔, 아니 두 잔 더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종혁과 고정숙은 따끈한 안주와 함께 남은 한 모금을 마신다.

“푸후우. 아들.”

“응?”

“7월에 지방으로 간다고?”

고정숙의 흔들리는 눈동자에 종혁이 씁쓸히 웃는다.

“잠깐 다녀올 예정이에요. 웬만하면 주말에 올라올 거지만, 너무 기대는 하지 마세요.”

“얼마나 걸리는데?”

“글쎄…… 1년? 2년?”

가서 상황을 봐야 알 테지만, 3년은 걸리지 않을 거다.

“어쩌면 1년 안에 돌아올 수 있어요. 아들이 원체 잘났어야지.”

“알았어. 다녀와. 대신 돌아올 땐 꼭 여자친구 데려오고.”

같이 안 오면 현관문도 열어 주지 않을 거다.

“아니, 이 아줌마가 진짜 아줌마가 되셨나.”

“너도 누굴 만날 때마다 결혼 이야기, 손자손녀 이야기만 들어 봐라. 나처럼 말 안 하나.”

“……나만 안 갔어?”

“응. 너만 안 갔습니다.”

“반성은 할게.”

“데려온단 소리는 안 하지. 에휴. 그래, 네 인생 내가 뭐라 하겠냐. 나중에 왜 여자 소개 안 시켜 줬냐고 헛소리만 해 봐라. 그땐 아주 그냥…….”

“사랑합니다.”

“난 안 사랑해.”

둘은 새로 나온 맥주잔을 부딪쳤고, 그렇게 경주에서의 마지막 날이 저물어 갔다.

* * *

“좋은 아침입니다.”

이른 아침 종혁이 들어서자 먼저 출근해 있던 부서원들이 미소로 반긴다.

“오셨습니까, 부장님!”

“여행은 잘 다녀오셨습니까!”

종혁의 눈치를 살피던 부서원들은 종혁의 표정이 밝자 안도를 하고, 종혁은 씁쓸히 웃으며 고개를 숙인다.

“모두 그날 와 줘서 고마웠습니다.”

“아, 아닙니다!”

“당연히 가야죠!”

솔직히 안 갈 뻔했다. 친할머니도 아니고, 종갓집 할머니. 친할머니처럼 생각하고 계신다는 최재수의 말이 아니었다면 아마 참석하지 않았을 것이다.

손을 젓는 그들의 모습에 종혁은 다시 한번 감사를 표했다.

“11시에 제2소회의실에서 가정의 달 특집에 대한 최종 회의를 할 테니까 아청과에 연락해서 관계자들 모두 모이라고 하세요.”

“예!”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로 가 옷을 벗는 종혁에게 최재수가 다가선다.

“괜찮으세요?”

“호상이셨는데, 뭘. 와 줘서 고마웠어.”

“아닙니다. 전 당연히 갔어야죠. 제가 부장님 오른팔이잖아요.”

“당연한 게 어디 있어.”

그래서 참 고맙다.

“나 없는 동안 별일 없었지?”

할머님이 위독하시다는 소리에 일주일 휴가를 냈던 종혁.

“청장님이 언제 오냐고 재촉하신 것 말고는 딱히요?”

“청장님이? 왜…… 아, 설마?”

“예. 가정의 달에 본인께서 출연할 만한 일이 있으신지 넌지시 물어보시더라고요.”

“에라이. 진짜 여의도에 가겠다는 거야, 뭐야.”

물론 그럴 생각이 만만인 것은 알지만, 그럴 깜냥이 되지 못하기에 걱정이 된다.

“에휴. 알았어. 가 봐.”

“옙. 충성.”

한숨을 내쉰 종혁은 자리에 앉으며 내선 전화기를 들었다.

“충성. 홍보부장 최종혁 총경입니다.”

시간이 흘러 제2회의실.

“최 부장!”

“억?! 국장님도 오셨습니까?”

“최 부장이 참석하는데 당연히 나도 와야지!”

본청 생활안전국 국장의 등장에 종혁과 경찰들 모두 다급히 거수경례를 한다.

외사국의 함경필 국장과 막역한 사이인 생활안전국 국장.

“안 오셔도 되는데요. 아니, 부담스럽습니다.”

“에이, 그러지 마. 나 삐진다?”

종혁은 생활안전국 아동청소년과 과장을 보며 평소 성격이 이러냐는 듯 국장을 가리킨다.

그에 얼굴을 가리며 고개를 돌리는 아동청소년과 경찰들.

“어? 최 부장, 그 제스처 뭐야?”

“……최 경사, 여기 국장님 빈자리 안내해 드리고, 커피 가져다 드려.”

“옙!”

“어허이. 뭐냐니까? 나 치안감이다? 아?”

“하하. 저기로 가시죠, 국장님.”

그렇게 작은 소란이 가라앉자 종혁이 아동청소년과 과장을 본다. 그와 동시에 제2소회의실에 모인 모든 경찰이 앞에 놓인 서류를 한 장 넘긴다.

“이번 아청과 홍보 촬영에서 처음 들를 장소가 용문고등학교라……. 이곳을 선택한 이유가 있습니까?”

“첨부 자료를 보시면 알겠지만, 그 학교가 약간의 특수성이 있습니다.”

빈과 부. 그 두 개의 성질이 교차하는 지역의 고등학교인 용문고등학교.

공적인 회의라 존대를 하는 과장의 말에 종혁이 고개를 주억거린다.

“흠. 확실히 이러면 사건 사고들이 좀 있겠네요.”

옛날이나 지금이나 부모의 재력와 권력이 곧 학생의 명함이고 자존심이다. 아마 학생들 간에 갈등이 좀 있을 거다.

“그럼 어떤 캠페인을 하실 생각입니까?”

“우선 요즘 한참 대두되고 있는 청소년 범죄의 종류와 그 처벌에 관해 이야기를 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학적 기록상 문제가 있는 학생들을 데리고 소년교도소에 들를 겁니다.”

“흠. 나쁘지 않네요.”

소년교도소에 들러 일탈의 대가에 대해 알게 해 그릇된 마음을 다잡는다. 훌륭한 생각이다.

“거기에 안양이나 청송교도소 견학까지 끼워 넣는 건 어떻습니까?”

“그것도 좋군요. 일정에 추가시켜.”

“예.”

교화 기관인 소년원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소년교도소. 하지만 안양이나 청송교도소에 놓고 비교하자면 소년교도소도 아동용에 불과했다.

안양, 청송교도소에 수감된 이들을 본다면, 혈기를 주체하지 못하는 청소년들의 선택적 분노조절장애도 완치될 것이다.

“홍보부의 의견은 이걸로 끝입니까?”

“아니요. 재소자들의 교도소 생활과 인터뷰를 영상으로 담아 전국 중고등학교에 시청각 자료로 배포했으면 좋겠습니다. 가능하겠습니까?”

“배우와 조미료도 좀 추가하고요?”

“딱히 그럴 필요 있겠습니까? 닭다리 하나 사 주면 할리우드 배우들보다 열연을 펼칠 텐데요.”

“하하. 알겠습니다. 교육부와 협의해 보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종혁은 다음 장을 넘겼고, 이내 미간을 찌푸렸다.

“이게 이번에 아청과에서 갑작스럽게 추가한 내용이군요…….”

미혼모센터 방문이란 글자가 종혁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이걸 추가한 이유가 뭡니까?”

“……후. 책임감도 좋지만 사회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는 걸 보여 주려는 거지, 뭐.”

혼자 잘 키울 수 있다며 부모의 도움과 참견을 뿌리치고 나온 미혼모들. 그녀들이 가장 먼저 뼈저리게 느끼는 건 바로 돈의 중요성과 사회의 냉혹함이다.

답답한 마음에 결국 존대를 버려 버린 과장의 모습에 종혁도 담배를 문다.

“책임감이라도 있으면 다행이죠.”

“……최 부장도 아는구나?”

“저 행복의 쉼터 최대 기부자 중 한 명이에요.”

대한민국의 수많은 가출청소년과 소외받고 어려운 자들을 케어하는 행복의 쉼터 재단.

미혼모들에 대해서도 당연히 알 수밖에 없다.

“그랬어? 그럼 알 수밖에 없겠네.”

배 속에 찾아와 버린 아이를 차마 지울 수 없어 미혼모센터의 도움을 바라는 건 양반이다.

많은 수의 미혼모들은 그냥 낙태할 비용이 없거나 낙태가 무서워, 그리고 더 이상 낙태를 하면 안 되기에 미혼모센터를 찾아 아이를 낳는다.

그리고 아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입양을 보내거나 시설에 버려 버린다.

무분별한 쾌락이 가져온 끔찍한 결과였다.

“그런데 잘도 이런 예민한 걸 하실 생각을 다 하셨습니다? 교육부랑 말이 오간 거예요?”

“응. 좀 부탁하더라.”

“예산 지원은요?”

“외상.”

“……같은 공무원들끼리 너무하네.”

“최 부장, 걱정 마! 내가 교육부 장관 멱살이라도 잡을게!”

종혁은 생활안전국 국장의 외침에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이참에 잘됐습니다. 그쪽 예산 없이 저희 입맛대로 편집하는 걸로 하죠. 그리고…… 과장님, 여기 미혼모센터부터 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센터부터? 아, 그러면 스토리가 좀 나오겠네.”

학교생활을 바라는 미혼모의 인터뷰를 통해 학교생활로 넘어가는 자연스러운 흐름.

“꽤 어두울 텐데…… 미화 좀 할까?”

“전국의 부모들이 온갖 쓴소리를 쏟아 낼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너무도 예민한 문제이다 보니 말 한 마디, 한 마디도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끙. 오케이. 그렇게 하자. 큼. 그럼 다음 챕터를 봐 주시겠습니까?”

샤락!

“현재 경찰을 꿈꾸는 광주광역시의 한 학생이 한 푼, 두 푼 모은 용돈으로 어려운 분들을 돕는…….”

본격적인 회의가 시작되었다.

* * *

-……야. 희야…… 사랑하는 거……?

“헉!”

창문을 통해 따사로운 햇빛이 내리쬐는 작은 방.

병원의 침상만큼 작은 침대, 분홍색 이불을 덮고 있다가 몸을 일으킨 17살의 소녀 김선희가 식은땀으로 젖은 옷에 눈살을 찌푸리다 이내 살짝 부풀어 오른 배를 끌어안으며 몸을 웅크린다.

끔찍했던 악몽. 그러나 지울 수 없는 악몽의 결과물.

그녀는 오늘도 눈을 뜨자마자 지독한 충동을 느끼며 미지의 공포와 분노에 젖어 든다.

“후우.”

혀를 찬 그녀는 몸을 일으켜 분홍색과 하얀색으로 가득한 좁은 방을 나선다.

쿠당탕! 우당탕!

무슨 일인지 소란스러운 미혼모센터.

김선희가 빗자루를 든 채 다가오는 여성을 붙든다.

“언니야, 뭔 일 있어요?”

“아, 오늘 경찰 본청에서 온다고 해서 그래.”

“겨, 경찰이요? 왜요?”

돌연 하얗게 질리는 희선의 모습에, 이곳 센터에서 일하는 복지사가 눈을 질끈 감는다.

“……걱정 마. 촬영 때문이니까.”

희선의 사정을 알고 있는 그녀는 애써 다독였고, 덕분인지 빠르게 안정을 찾은 희선이 고개를 모로 기울인다.

“촬영이요?”

“응. 아동청소년과에서 청소년 일탈을 방지하고자 미혼모의 현실에 대해 촬영을 하고 싶대. 출연해 주면 소정의 출연료도 지불한대.”

“아…….”

출연료라는 말에 희선의 눈이 흔들린다.

출연을 하면 절대 안 되지만, 현실 여건상 돈이 무척이나 필요한 희선.

그런 희선의 마음을 알아차린 건지 복지사 여성이 걱정 말라는 듯 푸근히 웃는다.

“전국 중고등학교에만 배포할 거고, 원한다면 모자이크도 해 준대.”

“……소정이라면 얼마요?”

“2백만 원.”

쿵!

“그, 그렇게 나요?”

“어떡할래? 출연할래?”

“저는…….”

희선은 흔들리는 눈으로 입술을 달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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