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656화>
122. 가족. 가족. 가족
“아이고! 아이고……!”
“아악! 할머님!”
곡소리가 울려 퍼지는 종갓집.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종갓집을 찾는다.
“……그렇게 가셨습니다.”
“어이고.”
“어휴.”
마지막 임종을 지킨 종혁의 설명에 최씨 종가의 사람들이 가슴을 친다.
“그래도 웃으며 가셨다니 다행일세…….”
“수고했네, 최 부장.”
종혁이 아니었다면 할머님이 잠만 주무시다 그렇게 가셨겠거니, 마지막에 어떤 모습이셨는지 전혀 알지 못했을 거다.
종혁이 큰일을 해 주었다.
“한잔하시게.”
“예.”
자신의 잔에 술을 가득 따른 종혁이 단숨에 술을 들이켠다. 벌써 다섯 병을 넘게 마셨는데도 취하지 않는 몸뚱이가 오늘은 좀 원망스럽다.
“그럼 일어나 보겠습니다. 기다리시는 분이 많네요.”
“그래, 그래. 저치들도 궁금할 테지. 얼른 가 보시게.”
“그럼…….”
고개를 숙인 종혁이 막 절을 마치고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오늘 아침부터 계속 했던 이야기를 다시 나누고 일어선다.
“삼촌!”
“바쁠 텐데 뭐하러 왔어.”
눈시울이 빨갛게 달아오른 윤아가 종혁에게 달려와 안긴다.
몇 번 뵙진 못했지만, 뵐 때마다 참 따뜻하게 대해 주셨던 할머님. 노래 한 소절에 손뼉을 치며 좋아하셨던 할머님. 웃는 모습이 참 고우셨던 할머님.
“흐이이잉.”
“너희들도 왔니.”
함께 온 리나를 비롯한 그룹 멤버들이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듯 울상을 짓는다.
“오셨습니까.”
“늦었습니다.”
윤아의 아버지와도 인사를 나눈 종혁이 윤아의 등을 토닥인다.
“할머님께 인사부터 드리자.”
“……으응.”
종혁의 안내를 받아 빈소에 도착한 윤아가 활짝 웃고 있는 할머님의 영정 사진을 보곤 다시 한번 눈물을 쏟아 낸다.
힘들게 절을 마친 윤아는 결국 종부를 끌어안고 울음을 터트리고, 애써 마음을 다스리던 종부도 다시 울음을 터트린다.
왜 먼저 가셨나요.
왜 이렇게 일찍 가셨나요.
증손자 장성하는 걸 보고 가시지, 고손자 태어나는 걸 보고 가시지 뭐가 그리 급하시다고 가 버리셨나요.
종혁도 고개를 돌리며 눈물을 보인다.
* * *
“어이고! 우리 경주 최씨 자랑들 아니야!”
“세계에 경주 최씨를 알리느라 수고 많아요.”
“아, 안녕하세요!”
다시금 인사를 하고 앉은 윤아가 마당을 둘러보며 울상을 짓는다.
웃음을 터트리는 사람들, 술에 취해 잠든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숙소로 옮기는 사람들, 한쪽에서 화투를 치는 사람들.
눈물 한 방울 없이 웃는 사람들을 보니 울컥해 버린다.
“왜 안 울어?”
“그래야 편히 가시니까.”
남겨진 사람들이 울면 어디 발목 잡혀 쉬이 갈 수 있겠나. 장례식장에선 떠들썩하게 웃는 게 망자에 대한 예의다.
“뭐 살 만큼 사신 분이라 말려도 가셔 버렸지만.”
“나 울리지 마! 흐이이잉!”
종혁은 다시 울음을 터트린 윤아를 토닥인다.
“이렇게 여려서 그 힘든 연예계 생활은 어떻게 해? 맨날 우는 거 아니야?”
“으아아앙!”
리나도 종혁을 파고들며 울음을 터트린다.
“종혁아!”
“……?!”
안으로 들어오는 소영과 수호, 이리나를 발견한 종혁이 경악하며 몸을 일으킨다.
“너, 너희들이 여긴 어떻게 왔어?”
말을 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왔을까.
“어머님이 말씀해 주셨어.”
“……아, 그래?”
어머니가 쓸데없는 일을 하셨다.
“그래도 와 줘서 고맙다.”
이래서 친구인가 보다.
“가자. 할머님 소개해 드릴게.”
종혁은 빈소로 안내했고, 세 사람은 처음 뵙는 할머님께 절을 올리며 속으로 참 많은 말을 쏟아 냈다.
아버지 없는 종혁이에게 할머니가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종혁이가 명절 때 종갓집 다녀오면 할머님 이야기 많이 했어요.
“오느라 힘들었지? 조카님, 여기 상 하나만 내와 줘요!”
“네, 아저씨!”
“여기 애들은 몇 번 말해서 알지?”
“헐, 연예인이다.”
“윤아야, 인사해. 여긴 삼촌 친구들.”
“아, 안녕하세요!”
“네, 네. 안녕하세요.”
꼬집!
“악?!”
깜짝 놀라 소영을 바라본 수호는 이내 다급히 식은땀을 뻘뻘 흘렸고, 소영은 그런 수호를 보며 눈을 흘긴다.
그 모습에 종혁이 깜짝 놀라고, 아차 한 소영이 낯빛을 흐린다.
또 그 모습에 수호가 소영의 손을 잡는다. 놀라 쳐다보는 소영의 모습에 수호가 다부진 표정을 짓는다.
“그렇게 됐다.”
“……썩을 놈들. 빨리도 말해 준다. 학창 시절부터 투덕거리더니 결국 사귀는구나? 언제부터야?”
“사귄 지는 얼마 안 됐어.”
“뭐…… 축하는 하는데 괜찮겠냐? 얘 성격 드센 건 너도 알…….”
콰악!
소영에게 발이 밟힌 종혁은 입을 떡 벌리며 이래도 사귀는 거냐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고 눈으로 말했고 동시에 반대쪽 발을 밟혔다.
“아오, 씨. 넌 진짜 기집애가…….”
“계집애가 뭐? 말 잘해라잉.”
고사리처럼 작은 주먹을 흔드는 소영의 모습에 종혁은 입을 꾹 다물었다. 체구는 작지만 손은 참 매서운 소영.
“야, 애나! 넌 언제부터 알았어?”
“오우. 한쿡말 어려워요. What?”
“너 네이티브 스피커잖아, 쨔샤.”
쾅!
“꺄아악!”
정수리를 붙잡은 채 바닥을 뒹구는 이리나.
고개를 저은 종혁은 윤아네 옆자리에 앉았고, 벌떡 일어난 이리나가 냉큼 종혁의 옆자리에 앉는다.
“야, 떨어져. 더워.”
“에이, 허니. 하루 이틀도 아니잖아. 그 말은 넣어 둬.”
“하루 이틀이 아니니까 싫다고, 인마.”
“넌 진짜 고자야.”
“예, 예. 응? 왜?”
윤아와 리나가 입을 벌리고 있다.
“두, 둘이 사귀는 사이야?”
“아저씨, 여자친구 있으셨어요?!”
눈에 불똥이 튀는 리나.
“여자친구는 무슨. 얘가 아메리칸 마인드라서 그래.”
“아, 그래요? 그냥 여자사람 친구셨구나.”
눈에 띄게 안심하는 리나의 모습에 이리나의 눈이 가늘게 떠진다.
“흐응. 혁, 이 꼬꼬마들은 누구?”
“……적당히 하자.”
“호호호.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넌 에베레스트가 들판을 부러워하는 거 봤어?”
나올 곳은 확실히 나오고, 들어갈 곳도 확실히 들어간 이리나와 한국인의 표준 사이즈인 리나, 그리고 약간 미달인 윤아.
빠직!
“어머, 언니. 외모처럼 말을 참 아름답게 하시네요. 우리 친하게 지내요!”
종혁은 왠지 고양이들의 앙칼진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였다.
“아저씨!”
“오빠!”
“형!”
안으로 들어오는 현희와 현석, 그리고 연아.
종혁은 놀라 몸을 일으키면서도 옆에 딱 붙어 있는 이리나의 모습에 눈을 부릅뜨는 현희와 연아의 모습에 한숨을 내쉬었다.
* * *
딸랑! 딸랑!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어이야. 어이야.”
긴 행렬이 선산을 오른다.
일평생 경주 최씨 충렬공파 종가를 위해 애써 온 할머님. 선산에 안치될 자격은 충분했다.
상여의 뒤를 따르는 사람들은 마지막 눈물을 흘리고, 상여를 멘 상여꾼들은 목이 터져라 할머님의 평안을 바란다.
결국 땅에 묻히고, 흙이 덮이자 터져 나오는 울음들.
곳곳에서 솟구치는 뿌연 담배 연기가 향이 되어 할머님을 따라나선다.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나자 발걸음을 떼는 사람들.
떨어지지 않는 발을 억지로 떼는 사람도 있고, 홀가분하게 웃는 사람도 있다.
종혁은 종부의 손을 꼭 잡는다.
“수고하셨습니다.”
“아우님도 수고하셨습니다.”
참 많은 종혁의 지인들이 종가를 찾아 주었다. 그래서 많이 놀라웠고, 덕분에 보다 더 떠들썩하게 할머님을 보내 드릴 수 있었다.
종혁의 어머니인 고정숙이 찾아와 늦어서 미안하다, 생전에 찾아왔어야 했다 함께 울어 준 것도 참 감사했다.
“이건 종가 살림에 보태도록 하세요.”
“어휴, 뭘 이런 걸 또……. 어머, 이건?”
“선산 인근의 산과 임야를 좀 샀습니다. 할머님께서 사시사철 꽃을 볼 수 있도록 해 주세요.”
그러며 선산엔 벌과 뱀이 꼬이지 않도록 전문가들을 고용할 생각이다.
“허어…….”
종혁의 배려에 종부의 눈에 눈물이 차오른다.
“이것밖에 해 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이미 차고 넘치게 받았거늘, 해 준 것도 없거늘 뭘 바란단 말인가. 고맙고 또 감사할 뿐이다.
“그래서…….”
“예, 종부님.”
“미래에 부장님 와이프가 되실 분이 네 명 중 누구신가요?”
“이런.”
“어허.”
“뭐요!”
장난기가 가득한 종부의 얼굴에 종혁은 고개를 저었다.
“종혁아!”
“그럼 가 보겠습니다. 추석 때 뵐게요.”
“저런. 점심이라도 드시고 가시지…….”
고개를 숙인 종혁은 저 앞에서 손을 흔드는 최기룡에게 다가갔다.
찰칵! 치이익!
“후우. 이제 어쩔 생각이냐? 바로 복귀할 거야?”
종혁은 선산 밑에서 기다리는 어머니 고정숙을 바라봤다.
“경주에 가려고요.”
할머님이 가지 못했던 경주에 갈 생각이다. 구석구석 낱낱이 들여다보고 사진첩으로 엮어 올 추석에 할머님께 선물로 드릴 생각이었다.
“좋은 생각이다. 나도 같이 가자.”
“모자간의 데이트를 방해하시겠다고요?”
“봐줘라. 집에 붙어만 있는다고 눈치 줘서 그래.”
“다음에 가요, 다음에.”
“이러기냐?”
“예, 이러깁니다.”
종혁은 최기룡의 손을 뿌리치며 어머니 고정숙에게 다가갔다.
* * *
부스럭!
새하얀 이불 아래 누워 있다 눈을 뜬 종혁이 옆 침대를 보고 살짝 놀란다.
쏴아아!
저 멀리서 희미하게 들리는 샤워 소리.
“아, 씻고 계신가 보네.”
아들이 힘들어하는 걸 알고 있어서 그런지 경주행을 순순히 승낙해 주신 어머니 고정숙.
기지개를 켠 종혁은 담배를 물며 창문을 활짝 연다.
천년고도 경주의 풍경이 종혁의 눈 안으로 빨려 들어왔다.
웅성웅성.
“와아!”
“예쁘다!”
성곽을 따라 걷는 사람들로 가득한 경주의 반월성.
종혁과 고정숙도 느릿하게 걸으며 풍경에 빠져든다.
“엄마, 거기 서 봐.”
“여기?”
“응. 거기 좋다.”
종혁은 사진을 한두 번 찍어 본 게 아닌지 자연스럽게 개나리 사이로 들어가 고개를 내미는 어머니의 모습에 활짝 웃는다.
“어이구, 누가 꽃인지 모르겠는데?”
“또 지랄한다. 얼른 찍기나 해.”
“얼른 웃기나 하셔요.”
찰칵!
“아들도 이리 와서 서.”
“옙!”
풍경이 잘 보이도록 선 종혁은 브이를 그렸고, 이내 둘은 서로 함께 서는 걸 찍었다.
휘이잉!
“좋네.”
꽃향기를 가득 머금은 봄바람에 어깨가 느슨히 풀리며 입가에 미소가 걸리는 어머니.
모자의 데이트에 사람들은 부러워하고, 종혁도 어깨를 느슨히 풀며 느릿하게 걷는 어머니의 보폭을 맞춘다.
그렇게 반월성 안에 있는 석빙고와 바깥에 있는 첨성대, 그리고 길 건너편의 동궁과 월지까지 모두 둘러본 둘은 예약한 식당으로 향한다.
동궁과 월지는 저녁에 보는 게 좋다고 하지만, 낮의 풍경도 담고 싶은 거다.
꽤 걸어서 그런지 평소보다 많이 드시는 어머니.
종혁도 오랜만에 어머니와 함께 하는 외식에 꿀맛으로 변한 음식들을 복스럽게 먹는다.
“뭐라꼬? 공사가 중단됐다고? 와?”
“와 그러겄노. 유물이 발견되어 가 그렇지.”
“에이, 지미럴. 그놈의 유물 무서워 가 땅 팔 수 있겄나. 정부는 뭐하는 기고! 관련 법 좀 개정 안 하고!”
옆자리서 들리는 격렬한 대화에 서로를 본 종혁과 고정숙이 혀를 내두른다.
“경주는 유물 나올까 무서워 함부로 땅을 팔 수 없다더니 그 말이 정말인가 보네.”
“아들, 저렇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거야?”
“어떻게 되긴. 유물이 다 출토될 때까지 올스톱이지.”
심지어 발굴 비용의 일정 부분도 공사를 진행한 개인 및 단체가 분담해야 된다.
“미친 거 아니야? 왜? 그러면 땅을 판 사람만 손해잖아.”
“내가 압니까. 법이 그래요, 법이.”
“신라 사람들도 참 진상이다. 후손들 힘들게 이게 뭔 민폐야?”
“푸핫!”
고정숙도 농담이라는 듯 웃는다.
“이제 다음 코스는 어디니?”
“근처에 전망 좋은 카페가 있더라고.”
밤새 블로그를 돌아다니며 경주의 볼거리와 먹거리를 찾은 종혁. 근처에서 새로 생긴 찻집이 하나 있었다.
“인테리어가 한옥식인데, 꽃차들을 판대.”
“좋네. 희야도 함께 왔으면 좋았을 텐데…….”
“학기 중인데 어쩔 수 있겠어? 희야가 못 온 만큼 우리 둘이서 더 재밌게 놀면 되는 거지.”
그것도 맞는 말이라며 고개를 끄덕인 고정숙은 후식으로 나온 매실차를 들이켠 후 몸을 일으켰고, 종혁도 따라 일어섰다.
그렇게 식당을 나온 순간이었다.
삐이이이잉!
종혁의 앞을 스쳐 지나가다 멈춘 경찰차.
다급히 내린 두 명의 경찰이 어딘가로 뛰어간다.
“가 봐.”
“……금방 다녀올게. 미안.”
다급히 걸음을 옮긴 종혁은 칼을 든 채 웬 정자에 앉아 있는 괴한과 대치하는 경찰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선생님, 그거 내려놓고 이리로 오시이소.”
“선생님.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진정하는 게 어떻겠는교.”
“씨발! 다 꺼져! 내 딸 데려와! 내 딸년 데려오라고!”
술에 많이 취한 건지 잔뜩 꼬인 혀.
붕붕 휘두르는 칼에 경찰들이 허리춤에 손을 가져간다.
바로 옆에 유치원이 위치해 있는 정자. 자칫 저 괴한이 담을 넘어 유치원에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끔찍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기에 경찰들의 눈빛이 단호해진다.
“무슨 일이십니까?”
“아, 들어오시면 안 됩니더. 떨어지세요.”
“본청 홍보부의 최종혁 총경입니다.”
“헉! 추, 충성.”
“무슨 일이신데요?”
“아, 딸이 가출을 한 것 같습니다.”
이 동네에서 꽤 유명한 작자다.
맨날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는 요주의 인물.
그런 저 장년인에겐 여고생 딸이 한 명 있는데, 결국 아비의 술주정을 못 이겨 가출을 한 것 같다.
“평소엔 그냥 술 처먹고 아무데나 드러눕거나 무전취식 하는 정도인데……. 뭐 고함도 지르고 시비도 걸지만…….”
그래도 칼을 들진 않았었다.
“에휴.”
“어? 어어?!”
한숨을 내쉰 종혁은 사연이 있는 진상 취객에게 다가갔다.
“넌 또 뭐꼬! 씨발, 안 꺼지나?”
“선생님, 좋게 말로 할 때 칼 내려놓으세요. 그러다 다치세요.”
“이 미친 자슥이! 뭐라카노! 죽고 싶나!”
얼굴을 구기며 벌떡 일어나 위협적으로 칼을 휘두르는 장년인.
팔이 크게 돌아가자 눈을 빛낸 종혁이 그의 품 안으로 파고들며 칼을 쥔 손목을 때리고 장년인의 멱살을 잡는다.
부웅! 퍼어억!
“꺼어억?!”
꼬리뼈부터 올라오는 끔찍한 충격에 입을 떡 벌리는 장년인.
종혁은 그를 짓누르며 팔을 꺾는다.
“선생님, 선생님을 특수협박 현행범으로 체포합니다. 뭐해요. 수갑 안 채우고?”
“헉! 예, 예!”
다급히 달려와 수갑을 채운 경찰들은 종혁을 대신해 미란다 원칙을 고지했고, 일으켜 세워진 장년인은 설움을 토해 낸다.
“희야! 이 문디 가스나야! 이 아비는 어떡하라고 도망가 쁫노! 으허어엉!”
종혁은 다시 한숨을 내쉬며 돌아섰다.
“수, 수고하셨습니다!”
“예, 수고하세요.”
어느새 몰려든 인파를 뚫고 나온 종혁은 인파의 뒤에 서 있는 고정숙을 발견하곤 깜짝 놀랐다.
“빨리 왔네?”
“에이, 내가 우리 오마니를 어떻게 기다리게 해.”
“다친 곳은?”
“겨우 저런 취객 따위에게 기스 나면 경찰일 관둬야지. 갑시다, 어마마마.”
“흐흠. 어디 안내해 보거라, 최 내관.”
“헐. 나 고자야?”
둘은 웃음을 터트리며 근처의 카페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