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655화 (655/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655화>

    검경 합동 수사본부, 전국 불법 도박 사이트 급습!

    스페이스 워에 드리워진 어둠의 손길!

    승부 조작?! 스페이스 워, 결코 정당한 승부가 아니었다!

    한국 e스포츠 협회 임원도 승부 조작에 가담?

    검경, 대현중공업과 계림그룹에 감사하다!

    승부 조작 세력을 뿌리 뽑기 위해 검경에 협조를 한 현몽준 당대표!

    현몽준 당대표, 수백억의 손해보다 신성한 승부가 망쳐진 게 더 화가 나!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현몽준 당대표에 대해 집중하다!

    현몽준 당대표, 검경의 계획에 함께 어울려 준 삼전전자와 JJ그룹에 감사 표시!

    e스포츠팬들, 광화문에서 한국 e스포츠 협회의 해산을 위한 시위 시작!

    들고 일어난 e스포츠팬들!

    대한민국이 뒤집어졌다.

    * * *

    “건배-!”

    채재재쟁!

    “크아!”

    “크으으으!”

    노릇하게 소고기가 구워지는 한우집, 경찰 본청의 특별범죄수사대 형사들과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특수부 소속 수사관들이 서로의 잔을 부딪친다.

    스페이스 워 불법 도박 사이트 총 24개.

    한 해 도박 규모만 무려 수천억 원.

    양측의 수사기관 모두 올해 최고의 성과였다.

    게다가 이게 끝이 아니다.

    곧 이 사이트들에서 도박을 한 이들에게도 소환장이 날아갈 예정이고, 그들을 통해서 다시 전국에서 불법 도박을 조장하는 복권방과 성인 PC방 또한 대대적인 단속을 진행할 예정이다.

    그리고 김 부장을 통해 승부 조작에 관여한 한국 e스포츠 협회 인물들 또한 모조리 족칠 것이다.

    앞으로 족히 두 달간은 정신없이 움직여야만 했다.

    “수고하셨어요.”

    “니도 욕봤데이. 오 대장도 욕보셨어요.”

    “하하. 아닙니다. 영감님이 잘 컨트롤을 해 주신 덕분이죠.”

    “어데예. 제가 한 게 있겠슴니꺼.”

    다 특별범죄수사대와 종혁이 해낸 일이다.

    중앙지검 특수부는 고작해야 빠른 영장 심사 통과와 수사관들을 빌려준 것밖에 없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하십니까. 영감님께서 뒤를 봐주지 않으셨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아이고. 그리 말해 주니 고맙네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더.”

    “저 역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오택수와 뜨거운 악수를 한 강철선은 이쪽을 보며 흐뭇이 웃고 있는 종혁을 바라봤다.

    “우얄 끼고?”

    “어쩌긴 뭘 어째요. 다시 일 시작해야지.”

    이제 곧 5월, 가정의 달이다.

    홍보부가 미친 듯 바쁠 예정이었다.

    “검사님은요?”

    “수사 확대 드가야지.”

    KBO리그, K리그, V-리그, KBL에 대한 수사.

    이번 사건에서 가장 먼저 검거가 됐던 유종철이 언급했던 국내 4대 스포츠 리그의 승부 조작과 불법 도박에 관한 수사가 들어갈 예정이다.

    “와? 찍을라꼬?”

    “아이고, 됐습니다. 회장님들한테 찍힐 일 있어요?”

    4대 스포츠 리그의 구단주들인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 그걸 홍보 영상으로 찍게 된다면 아마 불쾌함을 표할 거다.

    “그리고 경찰에 나눠 주지도 않을 거면서 괜히 설레게 하지 마세요.”

    “……푸흐. 티 마이 났나?”

    “제가 검사님을 몰라요?”

    “미안테이. 오 대장도 미안합니더. 내도 식구 좀 챙겨야 해서…….”

    언제까지 특수부 부장으로 있을 순 없지 않겠는가. 슬슬 위로 올라갈 준비를 해야 됐다.

    “아이고. 걱정 마십시오. 나중에 인력이 부족하면 연락만 주십시오!”

    “고마워요. 내 그 말 잊지 않을게요.”

    종혁은 사이가 돈독해지는 둘의 모습에 다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이번에도 쉬는 기가? 얼매나 쉴 기가?”

    “왜요? 쉬면 와서 좀 도와 달라고요?”

    “하, 이놈 참. 마! 이럴 땐 기냥 모른 척해 주는 기다!”

    “큭큭. 저도 그러고 싶은데 이번엔 약속이 좀 있어서요.”

    “약속?”

    종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젯밤 무슨 일인지 갑자기 종갓집의 할머님이 연락을 해 오셨다. 샛노란 개나리를 보고 싶다고 말이다.

    “글나? 그라믄 어쩔 수 없제. 아랐다. 봄나들이 잘 다녀오래이.”

    “옙! 자, 그럼 건배하시죠! 보너스를-!”

    쩌렁쩌렁 울리는 종혁의 외침에 순간 조용해지는 소고깃집.

    이내 사람들은 활짝 웃으며 잔을 들었다.

    “위하여!”

    채재재재쟁!

    소주와 맥주를 환상적으로 담은 술잔들이 허공에서 부딪치며 아주 잠시의 휴식을 축하했다.

    “2차 가자! 2차!”

    “아이고, 잔뜩 취하신 양반이 무슨 2차예요?”

    “마! 지금 내 나이 묵었다고 괄시하는 기가?! 아직 이 정도는 끄떡없다!”

    “거기 수사관님들! 여기 진상 민원인 한 분 좀 데려가세요!”

    “으하하핫!”

    “자자! 가시죠, 부장님!”

    “안 취했다니까!”

    “그럼 잘 먹고 갑니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강철선을 부축하며 멀어지는 수사관들과 끼리끼리 헤어지는 특별범죄수사대 형사들.

    오택수도 미안해하며 형사들을 따라나선다.

    “자, 그럼 우리도 2차 가죠!”

    “오오오오!”

    이번 검거에 대한 모든 걸 기록했던 본청 홍보부.

    앞으로 허튼짓을 해 봤자 부처님 손바닥 안이라는 것을 전국적으로, 불법 도박꾼들에게 경고를 하고자 콘텐츠로 제작할 예정이다.

    “사노라면!”

    “언젠가는!”

    종혁은 갑자기 노래를 부르며 어깨동무를 하는 홍보부 직원들의 모습에 피식 웃으며 발을 뗐다.

    그 순간이었다.

    -오! 오오오! 오빠를 사랑해!

    “응? 이분이 왜?”

    갑작스런 최기룡 전 경찰청장의 연락.

    종혁은 의아해하며 전화를 받았다.

    “예, 청장님.”

    -종혁아…….

    쿠웅!

    종혁은 갑자기 내려앉는 심장을 지그시 눌렀다.

    * * *

    부우우웅.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 안.

    운전대를 잡은 종혁이 옆에 앉은 최기룡을 본다.

    평소와 달리 말 한마디 없이 조용히 앉아 있는 그. 차 안에 고요한 침묵이 맴돈다.

    “커피 한잔하자.”

    “예.”

    종혁은 휴게소로 차를 몰았고, 최기룡은 차가운 커피를 쥔 채 하늘을 본다.

    “……날이 흐리네.”

    “그러게요.”

    금방이라도 눈물을 뚝뚝 흘릴 것 같은 잿빛의 하늘.

    바람도 많이 차다.

    “가자.”

    “예.”

    다시 고요한 침묵 속에 달리고 달려 종갓집에 도착한 둘은 가슴을 짓누르는 무거운 공기에 한숨을 내쉬며 안으로 걸음을 옮긴다.

    “최 청장 왔나. 최 부장도 왔어?”

    “오셨어요.”

    새하얀 두루마기를 입은 채 갓을 쓴 노인들과 정장을 입은 장년인들.

    힘들게 몸을 일으키는 그들을 향해 고개를 숙인 종혁이 경주 최씨 충렬공파의 종부에게 다가간다.

    “오셨어요, 최 부장님.”

    “늦었습니다. 할머님은요?”

    “별채에 계세요. 어서 가 보세요. 기다리고 계세요.”

    둘은 할머님이 계시는 별채 안으로 들어갔고, 이내 곧 눈을 질끈 감았다.

    코끝을 진하게 맴도는 죽음의 냄새.

    이럴 땐 죽음과 가까이 있는 형사란 직업이 야속하다. 사람의 죽음을 너무 빨리 알아채 버리니 말이다.

    종혁은 봉황이 수놓인 금침을 덮고 누워 눈을 감고 있는 할머님의 손을 꼭 잡았다.

    ‘왜 이렇게 손이 푸석해요.’

    이 세상에서 가장 성분이 좋은 핸드크림을 사다 드렸는데, 왜 이렇게 수분기 하나 없는 걸까.

    얼굴은 또 왜 저렇게 거칠기만 할까.

    “할머님, 종혁이 왔어요. 청장님도 오셨어요.”

    “종부님, 기룡이가 왔습니다. 일어나 보세요.”

    제법 큰 목소리건만 반응이 없으신 할머님.

    두 사람이 입술을 지그시 깨문다.

    “할머님, 개나리꽃 보고 싶으시다면서요. 어서 일어나셔서 꽃구경 가셔야죠.”

    “그렇습니다, 종부님. 어서 가셔야죠. 저랑 같이 개나리꽃차 드셔야죠.”

    두 사람의 목소리만 왕왕 울리는 별채.

    종혁이 한숨을 내쉰다.

    “……이따가 다시 오시죠.”

    “그래.”

    몸을 일으킨 두 사람이 방을 나서자 바깥을 서성이던 사람들이 다가온다.

    “뭐라시던가?”

    “목소리는 어때. 털고 일어나실 것 같아?”

    이 땅이 혼란스러웠던 시절, 14살 어린 나이에 시집을 오셔서 이 집안의 종부가 되셨던 할머님.

    그 후로 수십 년 동안 종갓집의 맏며느리로서 집안을 지키신 할머님.

    그런 할머님께 참 혼이 나고, 가끔 칭찬도 들으며 기나긴 세월을 함께해 온 사람들이 눈에 눈물이 고인다.

    “주무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신가?”

    사람들은 우중충한 하늘을 보며 한숨을 내쉰다.

    아무래도 정말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허어. 꽃구경을 가시자 해 놓고선…….”

    “형님도 그랬소? 나한테도 그랬소.”

    “경주 반월성에 핀 개나리 보러 가시자 하셨지.”

    “대릉원에 핀 목련이랑 산수유도 보러 가시자 하더이다.”

    “경주에 가시고 싶으셨나 보구만…….”

    “그럴 수밖에. 이 집안에 시집오셔서 처음으로 여행 간 곳이 경주였으니까.”

    아직도 아련히 기억이 난다.

    아직 젖살도 다 빠지지 않은 얼굴로 남편과 경주로 나들이를 다녀왔노라고, 참 볼 게 많았노라고 양 볼이 빨개져 자랑을 하시는 게 어쩜 그리 사랑스러웠는지 모른다.

    그런 노인의 말에 사람들의 눈이 절로 감긴다.

    “아마 그게 신혼여행이셨을 게야.”

    그때야 어디 신혼여행이 있었겠나.

    집안에서 정해 준 사람과 만나 식을 올리고, 한방에 들어가 하룻밤을 보내면 그 이후로 부부로 사는 게 그 시절의 남녀였다.

    더욱이 가훈이 엄한 종갓집이다 보니 어린 나이에 시집을 오셔서 남몰래 눈물을 많이 쏟으셨던 그녀.

    참 많은 걸 내려놓고 계셨던지라 생각지도 못한 나들이에 참 기뻐했더랬다.

    “허어. 오늘내일하시더니 결국 한풀이를 못하고 이렇게 가시는구만.”

    “어르신…….”

    “흐윽!”

    “아니, 이러지 말고 애들 보고 사진이라도 찍어 오라고 하시죠! 경주로 모실 순 없어도 경주 사진은 찍어 올 수 있는 거 아닙니까!”

    “그, 그래! 그런 수가 있었구만! 어, 첫째냐?!”

    “종현이냐? 나다! 너 지금 당장 경주에 가서 꽃 사진 좀 찍어 와라! 아비가 하라면 할 것이지 뭔 말이 그렇게 많아!”

    사람들이 핸드폰을 붙들고 말을 쏟아 내는 순간이었다.

    후다닥!

    버선발로 별채의 문을 넘는 종부.

    그녀는 혼이 빠진 얼굴로 종혁을 본다.

    “최, 최 부장님!”

    “……왔나 보네요.”

    종혁은 모이는 시선에 서글픈 미소를 지었다.

    * * *

    부웅! 부웅!

    부엉이가 울기 시작한 자정을 훌쩍 넘긴 새벽.

    눈을 뜬 할머님이 잠시 천장을 가만히 응시한다.

    그런 할머님의 코가 들썩인다.

    콧속을 진하게 파고드는 꽃냄새.

    고개를 돌린 할머님의 눈이 크게 떠진다.

    노랗다.

    어스름한 불빛만이 비추는 방 안이 노랗게 물들어 있다.

    개나리꽃밭이 방안에 펼쳐져 있었다.

    벽과 천장에도 푸른 하늘이 펼쳐져 있다.

    “……최 부장이 오셨나 보구만.”

    이런 말도 안 되는 기상천외한 일을 벌일 사람이 종혁 말고 또 있을까.

    곱게 웃은 할머님이 바닥을 짚으며 몸을 일으킨다.

    불을 켜니 더 아름다워진 방 안의 풍경.

    개나리꽃들 사이에 숨은 공기청정기가 향긋한 바람을 적셔 온다.

    잠시 멍하니 방 안의 정경을 감상하던 할머님은 문을 활짝 열고 바깥으로 나갔다.

    “아…….”

    모두 잠들었는지 소음 하나 들려오지 않는 고요한 종갓집. 그곳에 무릉도원이 펼쳐져 있다.

    개나리, 진달래, 목련, 산수유까지 보고 싶었던 봄꽃들이 종갓집 전체에 가득 피어 있다.

    곳곳에 세워진 어스름한 조명들이 무릉도원을 더 아름답게 만든다.

    잠시 넋을 잃었던 할머님은 이내 푸근히 웃으며 마루를 내려와 꽃들 사이를 걷는다.

    별채를 나서 수십년 추억이 서린 종갓집을 느릿하게 둘러보시는 할머님. 한 발, 한 발 내딛을 때마다 울고 웃었던 추억이 떠오른다.

    저 담벼락 아래서 남편과 사랑을 속삭였더랬지.

    저 장독을 깨트려 혼이 나야 했지.

    푸근히 웃다 다시 별채 앞에 도착한 할머님이 이제 됐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안채로 향한다.

    불이 모두 꺼진 안채의 부엌으로 향한 할머님이 아궁이 앞에 선다.

    “많이들 오셨으니…….”

    오랜만에 솜씨를 발휘해야 할 것 같다.

    모두가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아침이 될 수 있도록.

    힘들게 찾아와 이런 선물을 준 종혁이 배불리 먹을 수 있도록.

    냉장고를 열어 재료를 꺼낸 할머님이 무쇠로 된 식칼을 꺼내 든다.

    통통통!

    식칼이 도마를 두드리는 소리가 부엌을 울리기 시작했다.

    * * *

    부스럭.

    눈을 뜬 종혁이 잠시 어두운 천장을 응시한다.

    “……3시네.”

    왜인지 빨리 깨 버린 잠.

    잠시 눈을 감았던 종혁은 이내 다시 눈을 뜨며 사랑채를 나선다.

    그런 그의 눈앞에 펼쳐진 꽃밭.

    ‘할머님은 이 풍경을 보셨을까?’

    작은 희망을 품은 종혁은 발길이 닿는 대로 느긋이 종갓집을 거닐었다.

    회귀 전에는 좋은 기억이라곤 없었던 종갓집. 그건 모두 승진에 목말라 있던 자신의 업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언제 떠올려도 그 풍경이 기억 속에 선명하고, 언제 찾아와도 내 집처럼 편안한 장소.

    이제 종갓집은 종혁에게 그런 고향 같은 곳이었다.

    “응?”

    귓가를 희미하게 때리는 어떤 소리.

    “이 늦은 시간에 누가…….”

    칼이 도마를 때리는 소리에 미간을 좁힌 종혁이 마치 귀신에 홀린 듯 소리를 쫓아 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이내 안채까지 도착한 종혁은 왠지 모를 온기를 느끼며 안채 바깥에 마련된 부엌으로 향했다.

    “아!”

    부엌 안에 가득 남아 있는 온기와 음식 냄새.

    아궁이 가마솥을 열어 본 종혁은 다급히 별채로 달려갔다.

    그리고 굳어 버렸다.

    “하, 할머님!”

    별채의 마루에 앉아 찻잔을 쥔 채 꽃을 바라보고 있는 할머님.

    종혁은 다급히 그녀에게 향한다.

    “할머님.”

    “호호. 왔어?”

    철렁!

    목소리가 너무 맑고 가볍다.

    눈이 너무 초롱초롱 빛난다.

    눈시울이 뜨거워진 종혁이 할머님에게 큰절을 올린다.

    “그동안 강녕하셨나요, 할머님. 자주 찾아뵙지 못해 죄송합니다.”

    “어휴. 흙먼지 묻게 무슨 절을……. 우리가 그런 사이 아니잖니. 게다가 사내가 바깥일을 하다 보면 못 올 수도 있는 거지.”

    “하하. 제 선물은 좀 어떠세요.”

    “좋지. 이럴 줄 알았으면 평소에 꽃나무 좀 심을 걸 그랬어.”

    할머님은 옆자리를 통통 두드렸고, 종혁은 그 옆에 앉아 찻주전자를 든다.

    “깨우시지 그랬어요. 그럼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꽃차를 만들어 드렸을 텐데요.”

    “무얼. 사람들 귀찮게.”

    흘흘 웃은 할머님은 꽃들을 응시했고, 종혁도 그녀를 따라 같은 곳을 응시한다.

    서늘한 봄바람이 살랑 불어와 둘의 온기를 어루만진다.

    “그래, 이제 된 것 같네.”

    철렁!

    “왜, 왜요. 곧 종부님께서도 일어나실 텐데요.”

    “됐어. 그 아이들과는 평소에 이야기 많이 나눴어. 나 좀 일으켜 주겠니?”

    싫다. 너무 싫다.

    하지만 종혁은 결국 손을 내밀 수밖에 없었다.

    “어구구.”

    종혁의 손을 잡고 몸을 일으킨 할머님이 방 안으로 향한다.

    방문을 열자마자 펼쳐지는 개나리꽃밭에 웃음을 흘리는 할머님.

    “덕분에 웃으며 가는구나.”

    “……크으읍!”

    애써 울음을 참는 종혁의 손등을 두드린 할머님이 어서 침구로 가 달라며 말없이 재촉한다.

    떼고 싶지 않은 걸음을 억지로 뗀 종혁은 할머님을 조심스레 이불 위에 눕혔고, 그 옆에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누운 채 종혁의 손을 꼭 잡는 할머님.

    “에휴. 우리 최 부장 결혼하는 건 보고 가야 했는데……. 어찌 참한 아가씨 한 명을 안 데려와.”

    “늦게 가시라고요.”

    “에그. 그럴 수 있나.”

    “몰라요. 나중에 단단히 따질 겁니다.”

    나중에 아주 나중에 저승에서 만나면 왜 먼저 가셨나 따질 거다.

    “흘흘. 그래, 최 부장. 아니, 종혁아.”

    “예, 할머님.”

    “그동안 고마웠어. 종혁이 덕분에 참 많이 웃었어.”

    친손자보다 더 알뜰살뜰 챙겨 주고 이야기 벗이 되어 주었던 종혁. 변화가 없는 시골 종가의 삶에 큰 활력이 되어 주었다.

    “저, 저도 그동안 제 할머님이 되어 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어머니 말고도 가족의 정을 느끼게 해 줘서 정말 감사했다.

    사랑을 주셔서 감사했다.

    “참한 색시 만나서 결혼하고. 애도 많이 낳고.”

    “예. 꼭 그럴게요.”

    “그래. 이만 가 봐. 난 자야겠다.”

    눈을 감는 할머님의 숨결이 빠르게 흩어진다.

    “……예, 편히 주무세요.”

    이승의 미련은 다 끊으셨기를.

    훌훌 털고 가시기를.

    끝내 다 흩어져 버린 숨에 종혁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