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648화>
“닌 뭐 앉아서 천리를 내다보는 기가?”
강남의 어느 한정식집.
너스레를 떨며 안으로 들어오는 강철선의 말에 종혁이 피식 웃는다.
“그러는 검사님은요?”
“흐흐. 잘 지냈나?”
‘또 선수 앞에서 수 쓰시네.’
대놓고 말을 돌리며 자리에 앉는 강철선.
그러나 져 줄 수밖에 없다.
“저야 뭐 언제나 잘 지내죠. 검사님은 좀 어떠세요?”
“나야 정신 없제.”
종혁이 예쁘게 만들고 아름답게 포장까지 해서 토스해 주었던 세부의 마약왕 김정식 사건. 현재 그의 특수부가 필리핀 검찰청과 함께 공조하며 여죄를 밝혀내고 있기에 꽤 정신이 없었다.
“내년에는 차장 다시겠어요?”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수백 명의 검사를 진두지휘하는 4명의 차장 검사. 명실상부 서울중앙지검의 이인자의 자리라고 할 수 있다.
이보다 더 위로 올라가려면 무조건 거쳐야 하는 자리.
“어데 중검의 차장이 문제겠노. 대검 차장도 노려 볼 만하제. 현석이는 잘 있나?”
“……서로 이야기 잘 안 하세요?”
“어데 글마가 회사 일을 말하는 아가?”
그렇지 않아도 서로 경상도 상남자라 집에서 이야기를 잘 나누지 않았는데, 강현석이 검사가 아니라 경찰을 택하면서부터 더 나누지 않게 됐다.
“올해부터 파출소 근무 들어가요.”
경찰대학교를 졸업하고 의경 소대장으로 긴 군 복무를 마친 그는 올해부터 총 3년의 순환 근무에 들어간다.
“글나?”
“아마 현석이는 파출소 부소장으로 시작할 겁니다.”
본디 경위에서 경감 계급이 맡는 게 파출소 소장.
종혁이 할 때는 이 경위에서 경감 계급이 너무 많아 파출소 내에서 특별한 직위를 얻지 못했지만, 몇 번의 칼춤으로 인해 이 중간 간부들의 목이 많이 달아나면서 관리직에 대한 공백이 생긴 상태였다.
“처음부터 그런 막중한 직무라니…… 잘할 수 있겄나.”
“장남을 믿으세요, 검사님.”
강철선이 집안을 신경 쓰지 못할 때 맏아들로서 형제, 남매들을 다독이며 강씨 가문을 지켜 냈던 큰오빠, 큰형 강현석.
“잘 해낼 겁니다. 현희나 다른 애들도 잘 있죠?”
현석과 현희 말고도 자녀가 세 명이나 더 있는 강철선. 처음 봤을 때만 해도 코찔찔이 애기들이었던 그 아이들도 이젠 모두 어엿한 대학생이었다.
히죽!
“당연히 잘 있제!”
한국대 법대에 진학한 현희는 올해 사법고시를 치를 예정이고, 셋째와 넷째는 한국대 의대와 경영학과에 진학해 열심히 학교를 다니고 있다.
“우리 아들 성적이 어떤지 아나?”
“어이구. 걔들은 자기 아빠가 이렇게 팔불출인 건 아는지 몰라. 집에서 표현 좀 하세요. 어머님이 저희 엄마 붙잡고 얼마나 하소연을 하는지 아세요?”
“뭐라카노. 그냥 건강하게 잘 크기만 하면 되는 거제. 어흠.”
고개를 저은 종혁은 이내 눈빛을 가라앉히며 강철선을 봤다.
서로의 안부는 물을 만큼 물었으니 이제 사건 이야기를 할 차례였다.
“그래서 검사님은 어떻게 아신 건데요?”
잠시 입을 다문 강철선이 돌연 실소를 터트린다.
“음?”
“아,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어서 그러는 기다.”
사건을 인지하게 된 상황이 참 웃겼다.
“이번에 특수부에 수사관이 몇 명 추가됐거든? 그중 한 놈이 그러는 기다.”
요새 스페이스 워 게임판이 이상하다고 말이다.
지지 말아야 할 상황에 지고, 이길 수 없는 경기에서 이기는 일이 속출하는 경기들.
이건 뭔가 있는 거라며 수사관이 직접 수사를 했고, 결국 한 선수가 승부 조작에 가담했음을 밝혀냈다.
그런 강철선의 말에 종혁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수사관이 직접 수사를 했다고요?”
검사가 수사 지시를 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 게 검찰수사관.
한 명의 검사가 맡는 사건들이 워낙 많기에 경찰이나 검사와 달리 인지 수사를 할 수 없는 게 검찰수사관의 현실이었다.
인지 수사는 고소장이나 신고가 접수되지 않아도 사건을 인지한 경찰이나 검사가 사건을 수사하는 걸 뜻한다.
“글마가 스페이스 워에 워낙 진심이라서 글타.”
수사를 못한다고 허술하다고 욕을 해도 허허 웃으며 넘기지만, 게임 좆밥이란 소리를 들으면 불같이 화를 내는 이십대 젊은 수사관.
여러모로 꼴통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왜…….”
검찰이 인지를 했다면, 검찰이 직접 수사를 하면 될 일이었다.
그 말에 강철선은 코웃음을 쳤다.
“내가 니한테 받은 게 얼마노. 모르는 검사에게 넘길 바에는 니하고 공조해야 은혜를 아는 놈이 되지 않겠나.”
“검사님…….”
감동이었다.
“니는? 우째 알게 된 기고?”
종혁은 사정을 설명했고, 강철선은 풀썩 웃고 말았다.
“난중에 같이 용한 무당 찾아가 굿 좀 하제이.”
대체 무슨 업보를 타고났기에 이렇게 서로 사건에서 벗어나질, 아니 사건들이 찾아온단 말인가.
“흐흐흐.”
“그나저나 스무 명이라…….”
1차로 추려진 용의자만 스무 명이다.
“이 중 몇 놈이 승부 조작에 가담했는지, 또 얼마나 늘어날지도 장담할 수 없다는 건데…….”
“그거야 승부 조작을 의뢰한 놈을 족쳐 보면 알겠죠.”
불법 도박 사이트의 운영자.
놈을 잡으면 신성한 경기를, 지금도 수많은 프로게이머와 지망생들에게 꿈과 희망의 무대인 프로 리그를 망친 선수들을 모두 끄집어낼 수 있을 거다.
“그러겠지. 그보다 너 이거 사이즈가 얼마나 될 것 같노?”
“장담할 수 없죠.”
10조 원 이상의 자금이 움직이는 것으로 추정되는 불법 도박판.
그 인기가 예전만 못하다지만, 그래도 여전히 여러 채널에서 리그가 중계될 만큼 지속적인 사랑을 받는 스페이스 워이니 그중 최소 수천억의 자금이 흘러들 것이라고 보아도 무방했다.
“그중 10분의 1만 승부 조작에 얽혀 있다고 해도…….”
수백억이다.
“아이고, 대한민국이 뒤집어지겠구만.”
규모도 규모지만,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던 스페이스 워의 승부가 조작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팬들이 알게 된다면 그 배신감은 엄청날 터였다.
“쯧. 서둘러 움직이자. 아, 그런데 이거 다른 놈들은 없겠제?”
혹시나 다른 불법 도박 사이트들도 얽혀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에 종혁의 눈빛이 가라앉는다.
“그것도 곧 알게 되겠죠.”
한 사이트의 단독 범행인지, 아니면 여러 사이트들이 얽혀 있는 일인지.
둘은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키다 문이 열리며 들어오는 음식에 다시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 * *
서울 서초동의 한 5층 건물.
그렇지 않아도 유동 인구가 많지 않은 거리, 늦은 저녁이 되자 사람이 거의 사라진 거리로 십여 명의 청년이 걸어 나온다.
“끄으아!”
“아오, 머리야.”
눈을 주무르고, 어깨를 돌리는 거북목의 수더분한 인상의 청년들. 그런 그들은 뒤이어 걸어 나오는 여덟 명의 청년을 향해 재빨리 허리를 숙인다.
“수고하셨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비슷한 연배임에도 깍듯이 인사를 하는 그들.
인사를 받는 청년들도 익숙한 일이라는 듯 대충 인사를 받고, 십여 명의 청년은 그런 그들을 보며 부러워한다.
뒤따라 나온 중년인은 그 모습을 보며 흐뭇이 웃었다.
“오늘도 수고 많았고, 내일은 쉬는 날인 거 알지?”
“네!”
“쉬는 날이라고 해도 너무 마시지 말고. 사고 치지 말고.”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더 엄한 잣대가 들이밀어지는 청년들.
“특히 재섭이 너.”
“아, 걱정 마시라니까요. 제가 언제 사고 치는 거 봤어요?”
“네가 우리 팀 에이스니까 그렇지, 인마.”
“맨날 그놈의 에이스. 그만한 대우를 해 주고 그렇게 말하든가.”
“좀 봐주라. 우리 구단 예산이 적은 거 알잖아.”
“쳇. 가 보겠습니다.”
“주장! 같이 가요!”
“형! 같이 가!”
“야, 오늘 저녁은 뭐 먹을까?”
이미 10시가 넘은 밤이지만 연습을 하느라 식사를 하지 못한 1군들은 근처의 식당을 향해 우르르 몰려갔고, 남겨진 2군들은 그런 1군들을 부럽게 쳐다보며 주린 배를 움켜쥐었다.
뭘 먹어도 식비가 전액 지원되는 1군들과 달리, 외식이 허용되지 않는 2군들. 게임단에서 그들에게 제공하는 식사라고는 냉동식품이 전부였다.
“우리 또 냉동 돌려 먹어요?”
“배부른 소리 하고 자빠졌다. 야, 스폰서도 제대로 없는 팀은 라면만 먹는 거 몰라? 억울하면 1군으로 올라…….”
터벅터벅.
낯빛이 어두워지던 2군 멤버들은 등 뒤에서 돌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가 깜짝 놀랐다.
“헛! 수고하셨습니다!”
“응? 뭐야? 다들 어디 갔어요?”
어리둥절해하며 1군 선수들을 찾는 19살 소년의 모습에 2군 멤버들은 어색하게 웃었다.
김지석. 벌써 20경기나 치른 베테랑 선수이자, 1군 붙박이다.
“식사하러 가시는 것 같던데요…….”
“아이씨. 또 나만 빼놓고 갔어. 그럼 형들은? 너희들은?”
“…….”
“아, 됐다. 말해 뭐하냐. 따라와. 내가 밥 살게.”
“헉?! 아, 아니요. 그러지 않으셔도…….”
“삼겹살이야.”
김지석은 대답은 듣지 않겠다는 듯 휘적휘적 걸어갔고, 2군들 중 나이가 어린 선수들은 그런 그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역시 1군.”
역시 자리가 아우라를 만든다는 걸까.
몇 년 전만 해도 같은 2군이었던 그가 고작 2년 만에 커다란 등을 가지게 되자, 그들은 부러우면서도 절로 존경심이 들었다.
그러나 나이가 스물이 넘은 2군 선수들은 반응이 좀 달랐다. 그들은 나이가 어린 2군들과 함께 멀어지는 김지석을 보며 얼굴을 구겼다.
“시발. 재작년 전까지만 해도 형, 형 하던 놈이…….”
“어쩌겠어. 무조건 실력이 우선인데.”
이 팀에선, 아니 다른 어디를 가도 실력 좋은 놈이 형이고, 선배였다.
“하아. 우리는 언제 고기 산다는 말을 저렇게 가볍게 할 수 있을까?”
“열심히 하면 언젠가는 되겠지…… 씨발.”
그들은 이를 악물며 김지석의 뒤를 따랐다.
아니꼽고 배알이 꼴리지만, 자존심을 생각하기엔 그들은 너무 굶주려 있었다.
* * *
“선배님, 선배님은 어떻게 연습하고 계세요?”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는 17살 소년의 모습에 김지석의 눈이 가늘게 떠진다. 소년이 뭘 물어보려는 건지 눈치를 챘기 때문이다.
“네 평가전 성적이 어떻지?”
“87전 48승이요!”
“아, 그러면 넌 가능성 있겠다.”
“……예?”
“리그 톱 선수들의 경기를 찾아보고 좆빠지게 연습하는 거? 그걸 누가 못해.”
김지석의 시선이 고개를 숙인 채 삼겹살만 먹는 2군의 이십대 선수들에게로 향한다.
“하, 씨발. 이거 천만 원짜리 팁인데……. 야, 요지는 선택과 집중이야.”
좋은 경기를 찾아보고, 그걸 따라 하고.
하지만 결정적인 건 바로 자신이 따라 하는 그 빌드가, 경기 운용이 정말 프로에서 먹힐지 실험해 보는 거다.
“즉, 백날 2군들끼리 연습해 봤자 네 실력은 늘지 않는다는 거야.”
“예? 서, 선배님.”
“와, 얘가 내 말을 귓등으로 듣네. 야, 너 1군이 왜 1군인지 알아?”
“그, 글쎄요?”
“2군들과는 각오부터가 다르기 때문에 1군인 거야.”
다신 그 좆같은 2군으로 내려갈 수 없다는 절박함.
“대우를 받으면 받을수록 더 절박해지지.”
그리고 1군이 되고, 뛰어난 선수들과 반복해서 리그 경기를 치르다 보면 시야부터가 달라진다.
고작 몇 판의 경기만으로도 실력이 늘어나는 기분.
괴물들의 경기를 코앞에서 함께 호흡하며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실력이 늘어나는데 어떻게 2군 따위로 다시 내려갈 수 있을까.
“니들은 모른다. 이 절박함이 어떤 종류인지.”
그래서 1군으로 남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거다.
“너 잘 때 오늘도 힘들었다, 내일도 열심히 하자 같은 생각하지? 1군은 안 그래.”
오늘 자신의 빌드가 어땠고, 경기 운영이 어땠고, 어떤 실수를 했고, 상대 선수를 어떻게 잡아먹어야 할지를 생각하다 까무룩 잠이 든다.
“이렇게 잠을 자는 그 순간까지도 게임에 대해 생각해야 1군이 되는 거야.”
그리고 아침에도 눈을 뜨자마자 경기에 대해 생각해야 된다.
이런 것들이 쌓여야 결국 실력이 되고, 센스가 되는 거다.
“알았어?”
“와아아.”
그걸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맨날 코치들이 하는 말이 바로 그것이기에 그들도 그렇게 노력을 한다. 하지만 그래도 안 되니 물어본 것이었지만, 아무래도 들을 수 없는 듯하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다 먹었으면 이만 일어나자.”
“잘 먹었습니다!”
김지석은 거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계산서를 챙겨 들고 카운터로 향했다.
“30만 8천 원인데, 30만 원만 주세요.”
움찔!
먹어도 너무 먹은 걸까.
낯빛이 어두워지며 안절부절못하는 2군들의 모습에 김지석은 콧대를 세우며 카드를 내민다.
“여기요.”
“예. 감사합니다!”
그렇게 삼겹살집을 나서는 순간이었다.
퍼억!
“악!”
“어이구. 죄송합니다.”
땀 냄새가 풀풀 풍기는 허름한 옷차림의 장년인의 모습에 김지석은 얼굴을 구겼다.
“아, 씨발. 이게 얼마짜린 줄 알고.”
“죄,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다야? 이거 어쩔 거냐고!”
지이잉! 지이잉!
“……하, 씨발. 됐으니까 가요.”
“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장년인은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멀어졌고, 김지석은 갑자기 걸려 온 전화에 눈을 빛냈다.
“내가 아까 한 말 무슨 뜻인지 알죠? 숙소 가면 씻고 잘 생각 말고 연습하세요. 형들도 더 나이 들기 전에 1군 올라와야지.”
꽈악!
“……잘 먹었습니다.”
낯빛이 검게 죽은 그들은 피가 나도록 쥔 주먹을 풀며 무거운 걸음을 옮겼고, 그 모습을 보며 비릿하게 웃던 김지석은 전화를 받았다.
“병신 새끼들……. 예, 사장님. 아, 지금요?!”
무슨 말을 들은 건지 표정이 확 밝아지는 그.
“알겠습니다! 지금 가겠습니다! 택시-!”
한편 택시를 은밀히 따르는 한 검은색 외제차 안.
뒤를 따르는, 특별범죄수사대의 형사들과 서울중앙지검 수사관들이 탄 승합차들을 힐끔 본 종혁이 무전기를 든다.
“어, 철아. 방금 김지석과 통화한 사람 땄어?”
-예. 그런데 아무래도 대포폰 같습니다.
“빙고.”
계약서를 보지 못했기에 김지석의 정확한 연봉에 대해선 알 수 없지만, 지난 1년 사이 씀씀이가 무척이나 늘어난 그.
‘카드로 쓴 것만 1억이 넘지.’
아무리 e스포츠 시장이 커지며 뛰어난 선수들이 고액의 연봉을 받기 시작했다지만, 그의 소비는 지나치게 컸다.
또한 통장에도 달마다 2백만 원, 5백만 원씩 정체불명의 돈이 입금된 것도 확인됐다.
김지석의 통장에 계좌를 이체한 통장은 대포통장으로 밝혀진 상황.
입술을 비튼 종혁이 다시 무전기를 들었다.
“아무래도 김지석 이 어린놈이 물주를 만나러 가는 것 같습니다. 스탠바이 합시다.”
-치익! 라져.
-수신!
“가자.”
“예, 부장님!”
최재수가 사납게 웃으며 액셀을 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