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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646화 (646/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646화>

    “그러니까 경찰 게임단 창설이 어렵다는 말이지?”

    경찰청장실, 장희락 경찰청장의 얼굴이 구겨진다.

    “일단 상황을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아니, 협상 중인 상황이라며. 협상만 마무리되면 끝나는 거 아니야?”

    맞는 말이다.

    하지만 협상이 무난하게 끝날 거였다면 협상이 시작된 2007년에 끝났을 거다.

    3년이나 지지부진하게 협상을 미뤄 왔다는 건, 한국 e스포츠 협회에서는 스페이스 워의 제작사와 협상할 의사 자체가 없다고 봐야 했다.

    이런 종혁의 말에 장희락의 눈이 가늘게 떠진다.

    “배짱이 좋군. 그 정도라면 더 볼 것도 없겠어. 곧바로 조사 들어가도록 하지.”

    “문제는 한국 e스포츠 협회가 진행하고 있는 리그를 후원하고 있는 대기업들입니다.”

    대표적으로는 삼전도 워 스페이스 프로 리그를 후원했다. 그 외에도 이름을 대면 대부분 알 법한 대기업들이 다수 얽혀 있었다.

    이들의 자본이 들어가 있는 리그가 중단된다면, 이들과도 마찰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아니, 사실 종혁에게 있어 그런 것은 문제가 안 된다.

    문제는 바로 장희락 경찰청장의 의지다.

    경찰청장 임기가 끝나면 더 높은 곳으로 가고 싶어 하는 장희락 경찰청장. 여의도 입성을 위해서라면 대기업들과의 원만한 관계는 필수라고 할 수 있었다.

    움찔!

    대기업이란 말에 눈을 데구르르 굴린 장희락이 한숨을 내쉰다.

    “하아…… 어쩔 수 없나.”

    아무래도 상황이 진정될 때까지 추이를 지켜봐야 할 듯싶다.

    “일단 대회는 열 거라고?”

    “예. 상황이 해결되면 곧바로 게임단 창설을 진행할 수 있도록 선수 후보들은 추려 둘 계획입니다.”

    “방송은?”

    “지상파는 힘들지 않을까 합니다.”

    게임 전문 채널인 케이블 TV와 인터넷 생중계 정도가 한계라고 할 수 있었다.

    “으음. 상금은?”

    “우승자에게 15박 16일 휴가와 포상금은 어떻습니까?”

    그리고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백화점 상품권, 향수 등 가정의 달에 어울리는 선물들을 상품으로 거는 것이다.

    “좋군. 알았어. 그대로 진행시켜. 단, 이왕 하는 김에 아예 판을 키워서 제주도까지 대회에 참가할 수 있게 하자고. 시간이야 좀 더 늦출 수 있잖아.”

    “……훌륭하신 생각입니다. 그럼 그렇게 알고 진행시키겠습니다. 충성.”

    “그래. 나가 봐.”

    경찰청장실을 빠져나온 종혁은 한숨을 내쉬었다.

    “청장님의 허락은 얻었고…….”

    가장 어려운 일을 해냈다. 이제 남은 건 대회를 무사히 치르는 것뿐이었다.

    종혁은 머리를 긁으며 본청 건물을 빠져나갔다.

    * * *

    “야, 야! 빅뉴스! 빅뉴스!”

    수원 남부 경찰서의 의경 부대.

    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까까머리 청년의 외침에 생활관의 의경들이 의아해한다.

    “또 뭔데 난리를 피우심까, 김 상경님?”

    “뭐야, 못 들었어? 본청에서 경찰 e스포츠단을 창설대!”

    “예에?!”

    모두의 시선이 한 의경에게로 향하고, 시선을 받은 순한 눈매의 이준호 일경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프로게임단의 2군 선수였던 이준호.

    본디 그는 공군 게임단에 지원을 했었지만 체력 검정에서 탈락하여 차선책으로 의경을 지원하게 되었다.

    그래도 일반 국군 부대보다는 개인 활동 시간도 많을 뿐만 아니라 외출, 외박도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군 복무를 하는 동안 너무 긴 시간 제대로 연습하지 못한 탓에 결국 은퇴를 하는 경우가 많은 프로게이머.

    기량을 조금이라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단 1분이라도 더 연습해야만 했다.

    “오오! 잘됐다, 이 일경!”

    “축하해!”

    “자, 잘 못 들었슴다?”

    “잘 못 듣기는! 너 제대 후에 복귀 문제 때문에 매일 끙끙 앓았잖아!”

    한마음이 되어 축하 인사를 건네는 의경들의 모습에 이준호는 머리를 긁으며 머쓱해한다.

    “크. 역시 하늘은 노력하는 자를 돕는다니까!”

    “야, 김 이경 봤지? 인마, 너도 이 일경처럼 노력해 봐. 혹시 알아? 피아노 부대도 만들지?”

    “시, 시정하겠습니다!”

    그렇게 생활관에 훈훈한 웃음꽃이 피어나는 순간이었다.

    퍼억!

    “억?!”

    “비켜, 인마.”

    생활관의 문 앞에 서 있던 김 상경이 자빠지는 것과 동시에 날카로운 눈매의 청년이 들어오자 일경 이하의 의경들이 입을 꾹 다물며 자세를 바로 한다.

    “아, 말로 하면 될 거 가지고 왜 엉덩이를 때리심까, 박 상경님.”

    “아, 쏘리.”

    “진짜 나중에 누가 뒤통수 때리면 그거 저인 줄 아십쇼.”

    “뭠마? 이 새끼가…….”

    “흐흐. 아, 그보다 그 소식 들으셨슴까? 경찰 본청에서 경찰 e스포츠단을 만든다지 말임다!”

    움찔!

    “……아, 그거?”

    “반응이 영 꼬롬합니다? 이거 창설되면 박 상경님도 가능성 있지 말임다?”

    이준호와 마찬가지로 프로게임단의 2군 선수였던 박 상경.

    하지만 이준호와는 달리 출전 기회조차 제대로 부여받지 못하던 그에게 있어서 입대는 곧 은퇴나 다름없었다.

    “가능성은 무슨……. 이 새끼는 아침에 나온 이야기를 이 저녁에 하고 있어. 야! 그거 나가리됐단다!”

    “예에?! 잘 못 들었슴다?”

    “제대로 들었잖아, 새꺄! 그거 나가리됐다고! 그냥 대회로 퉁 친대!”

    “……왜 말임까?”

    “내가 아냐? 암튼 그렇다고 하니까…….”

    박 상경의 찢어진 눈이 이준호에게로 향한다.

    자신과는 달리, 조금이라도 다시 프로게이머로 복귀할 가능성이 있는 이준호.

    처음에는 그저 부러웠던 마음뿐이었으나, 시간이 흐르며 전역이 가까워질수록 이준호를 향한 감정은 질투로 변해 갔다.

    그리고 지금은 이준호가 무엇을 하든 거슬리는 지경까지 이르러 있었다.

    “괜히 저 병신 새끼한테 헛바람 넣지 마. 아무튼, 야!”

    “일경 이준호!”

    “대회에 출전할 사람 각 경찰서마다 3명씩 뽑는데, 우리 부대에서는 너랑 나랑 출전한다. 알았어?”

    “일경 이준호. 예, 알겠습니다!”

    “……병신 새끼. 퉤!”

    침을 뱉은 박 상경은 담배를 피우러 밖으로 나갔고, 김 상경은 박살이 난 생활관 분위기에 머리를 벅벅 긁었다.

    ‘아오, 저 새끼가 선임만 아니면 진짜……!’

    “야, 준호야. 미안하다. 내가 괜히 설레발을 쳐서…….”

    “아, 아닙니다. 괜찮지 말입니다.”

    “그래도…….”

    김 상경은 미안해 고개를 들 수 없었고, 이준호는 걱정 말라는 듯 웃으며 속으로 한숨을 내뱉었다.

    솔직히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

    하지만 그는 애써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우승하면 휴가랑 포상금 정도는 주겠지? 그러면 지금까지 모은 월급에다가 포상금을 얹어서…….’

    올해 대학생이 된 여동생에게 노트북을, 어머니에겐 봄옷 정도는 사 줄 수 있을 듯하다.

    이준호의 얼굴에 진심 어린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 * *

    대망의 날이 밝자 각 지서를 대표하는 전사들이 PC방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수원에서 가장 크고 시설이 좋다는 M-PC방에 도착한 남부서 선수들과 응원단은 PC방을 둘러보며 혀를 내둘렀다.

    ‘미쳤는데?’

    “와, 씨. 여기 대박인데?”

    “그러게 말임다. 여기선 게임을 해도 돈이 아깝지 않을 것 같지 말임다.”

    “헉! 야, 야. 카운터 위에 메뉴판 좀 봐! 여기 삼겹살도 팔아!”

    “에이, 뭔 개소리를……. 진짜네? 미친 거 아냐?”

    삼겹살뿐만이 아니다. 제육볶음에 돈까스, 떡볶이, 치킨에 와플도 팔았다.

    “남부서?”

    고개를 돌린 남부서 선수들과 응원단은 이쪽으로 다가오는 종혁을 보곤 입을 떡 벌렸다.

    ‘초, 총경?’

    ‘저, 저렇게 젊은데 우리 서장님과 계급이 같다고?’

    “추, 충성-! 경찰대 52기 서정우-! 최종혁 대선배님을 뵙습니다!”

    최종혁. 경찰대의 전설이자, 현 경찰 조직에서 역사를 써 가는 괴물.

    “어, 그래. 반갑다. 경찰대 52기면 나랑 4기수 차이네. 교수님들은 잘 계시지?”

    “예! 그렇지 말임다!”

    “괜찮아. 편하게 해, 편하게.”

    “아닙니다! 이게 편합니다!”

    종혁은 잔뜩 얼어 있는 후배를 보곤 싱긋 웃으며 어깨를 두드렸다.

    “대회 준비가 잘됐는지지 둘러보러 온 거야. 괜찮지?”

    아니다. 꿩 대신 닭이라지만, 자신의 치적이 걸린 일이니 이것저것 간섭하려는 장희락 경찰청장을 피해 도망쳐 온 거다.

    별다른 중계 없이 치르는 예선전. 이후 본선 진출 멤버들이 확정됐을 때 이 예선전 녹화 영상들이 방영될 예정이었다.

    “그렇지 말임다!”

    종혁은 후배를 일견하며 먼저 도착한 남부서 선수들을 봤다.

    “이준호라고 했던가?”

    이준호. 나이 21세. 홍보부에서 조사하여 추려낸 선수들 중 한 명으로, 준플레이오프까지도 자주 진출하는 팀의 소속되어 있던 프로게이머.

    ‘수원은 남부서가 이길 확률이 높겠네.’

    다른 경찰서들에 프로게이머가 없기 때문이다.

    어떤 분야든 아마추어와 프로 사이에는 좁히기 힘든 격차가 있는 법이었다.

    “추, 충성! 일경 이준호!”

    “그래요. 오늘 좋은 경기 부탁할게요.”

    “충성!”

    어깨를 두드린 종혁은 PC방 양쪽 끝에 설치되는 카메라들을 점검하기 위해 발을 뗐고, 이준호는 크고 따뜻했던 손이 닿은 어깨를 쓸어내리며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야.”

    “일경 이준호?”

    “깝치지 마라.”

    “…….”

    난데없는 시비에 이준호는 입을 다물었고, 박 상경은 부러움에 이를 드러냈다.

    ‘이딴 새끼가 뭐 그렇게 대단하다고.’

    “넌 또 뭐하러 애 기를 죽이고 그러냐.”

    “하하. 그냥 잘하자는 의미로 한 말이지 말임다. 서 수경님, 그보다 닭꼬치 어떻지 말임다?”

    “닭꼬치 좋지.”

    박 상경은 서 수경을 이끌고 카운터로 걸어갔고, 남겨진 이준호는 한숨을 내쉬며 남부서 선수석에 앉았다.

    개인전 세 경기와 팀전 두 경기.

    총 다섯 경기 중 세 판을 먼저 따내는 경찰서가 이기는 예선전. 한 판, 한 판이 소중하다 보니 그 어떤 때보다 집중이 필요했다.

    이준호는 오늘 쓸 빌드를 떠올리며 이미지 트레이닝을 시작했다.

    ‘이겨야 해!’

    이번 대회에 우승팀 선수들에게 주어지는 휴가가 무려 15박이다.

    1분이라도 더 게임을 손에서 놓고 싶지 않은 그로서는 막대한 포상금보다 그 휴가가 간절했다.

    절대 질 수 없었다.

    곧 그의 주변 공기가 고요하고도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 * *

    만약 해설자들이 있었다면 이렇게 외치지 않았을까.

    “치즈! 치즈예요!”

    다른 종족의 일꾼보다 체력이 높은 점을 활용하여, 초반에 다수의 일꾼을 동원하여 빠르게 적진에 쳐들어가는 전략인 치즈 러시.

    다량의 자원 수집을 포기하면서까지 공격을 감행하는 만큼 상대에게 큰 타격을 주지 못하면 곧바로 패배로 이어질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큰 전략이다.

    “와, 컨트롤 봐라. 미쳤는데요?”

    지나치게 일꾼을 늘리고 있었던 상대는 어떻게든 이준호의 기습을 막아 내려 했으나, 이준호는 과연 프로게이머다운 컨트롤로 거의 피해를 입지 않은 채 상대의 일꾼들을 모조리 학살해 나갔다.

    “확실히 프로가 다르긴 다르네요.”

    “당연하지.”

    종혁은 최재수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

    이준호는 2군이라고는 하나, 적잖게 리그 출전 명단에 이름을 올리던 선수다. 그 정도면 1군에 크게 밀리지 않는 기량을 가지고 있으리라 보는 게 맞았다.

    “중부서도 나쁘지 않은데요?”

    “중부서는 모두 아마추어라고 했지?”

    “예. 그런데 한 선수의 배틀넷 승률이 어마어마해요.”

    “아까 그 남부서의 박 상경이란 친구를 발라 버린 선수를 말하는 거지?”

    압도적인 빌드 운영으로 2군이라고는 하나 프로게이머인 박 상경을 농락하듯 발라 버린 중부서의 선수.

    총 2182전 1278승 904패.

    이 정도면 학창 시절을 거의 PC방에서 살았다고 봐야 했다.

    프로에 버금가는 실력을 지니고 있지만 프로로 진출하지 않은 숨겨진 고수가 있을 거라는 종혁의 생각이 그대로 맞아떨어지는 순간이었다.

    “흠. 그럼 그 친구도 수원 대표팀에 뽑히겠네.”

    이번 예선전의 결과를 기준으로, 우승팀의 3명과 그 외 나머지 팀 선수들의 개인전 경기 성적을 토대로 2명을 더 추가하여 총 5명이 지방 대표팀 선수단이 될 예정이었다.

    예선전에서 팀이 아쉽게 탈락했다고 하더라도 본선 진출이 무조건 무산되는 건 아니었다.

    “더 볼 건 없겠네. 밥이나 먹으러 가자.”

    “예.”

    종혁은 시작된 마지막 경기를 바라보다 미리 예약해 놓은 근처의 일식집으로 향했다.

    * * *

    근무 시간이라 녹차로 술을 대신한 종혁과 최재수.

    “대회가 끝나면 어떡하실 겁니까?”

    게임단 창설이 무기한 미뤄졌다지만, 결국 언젠가는 만들어야 한다.

    “뛰어났던 선수들에게 접촉해 봐야지.”

    프로게이머로 활동했던 선수들은 자신의 기량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별다른 조건 없이 경찰 게임단에 들어와 줄 터였다.

    자신들은 뛰어난 선수가 누구인지 확인만 하면 충분했다.

    “뭐 그때까지 내가 홍보부에 붙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협상이 길어질 거라고 생각하시나 보네요.”

    “3년을 질질 끌었는데 더 못 끌겠냐?”

    아마 스페이스 워의 제작사가 지쳐 나가떨어질 때까지 끌 확률이 높았다. 지적재산권과 중계권을 가져갈 새로운 경쟁자가 나타나지 않는 이상 말이다.

    “확실히…….”

    웅성웅성.

    “아, 왔나 보네요.”

    오늘 수원 예선전에 참가한 수원 남부서와 중부서 의경들이 말이다.

    종혁은 오랜만에 외유를 나온 그들이, 수원 시민들의 안전을 책임지느라 불철주야 노력하는 젊은 청년들이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이 식당을 예약해 주었다.

    “흐흐. 저 사람들 뭘 시킬까요? 부장님 눈치 보고 가장 싼 메뉴를 시킬까요?”

    메뉴는 아무거나 시키라고 말한 종혁.

    종혁은 피식 웃었다.

    “뭐든 추억만 쌓으면 되는…….”

    “이거 사기지 말임다! 제가 이런 승부 조작을 한두 번 보는지 아십니까?! 키보드에 수를 써 놨을 게 분명하다니까요! 야, 이 일경! 너도 말 좀 해 봐!”

    ‘승부 조작?’

    문밖을 응시하는 종혁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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