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645화>
한국 게임 산업과 한국 e스포츠 역사의 시작이나 다름없는 스페이스 워.
90년대 말부터 시작된 초고속 인터넷의 보급과 맞물려 전국적으로 PC방이 생겨나며, 스페이스 워는 그야말로 국민게임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렇게 수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게임이었지만…….
“그거 이제 솔직히 한물가지 않았습니까?”
“한물이 아니라 두물갔지.”
사람들이 열광했던 2000년대 초반과 비교하면 아무래도 인기가 떨어진 스페이스 워.
“지금은 김요한 같은 스타플레이어도 없잖아.”
스페이스 워의 전설이자, 한국 e스포츠 최고의 스타 김요한.
김요한을 위해 공군에 게임단이 만들어졌을 정도이니, 그의 대중적인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충분히 알 만했다.
그런 김요한을 필두로 홍선호, 김제동, 박연석 등 수많은 스타플레이어들의 대결은 별들의 전쟁이라 불리며 대중을 열광시키는 힘이 있었다.
“게임 방송 같은 거 잘 안 보시죠? 지금도 스타플레이어는 넘쳐 난다고요! 아직도 PC방 가면 스페이스 워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
“에이. 요즘은 총싸움이 대세야, 대세. 아, 리듬 게임? 그것도 많이 한다더라.”
짜악!
분위기가 과열될 듯하자 진정시킨 종혁은 어느새 YB, OB로 편이 나눠진 두 무리를 가만히 응시했다.
“지금 누구 말이 옳네, 그르네 하는 그런 문제가 아니잖습니까.”
“……죄송합니다.”
경찰 조직의 수장인 경찰청장이 게임단을 창설하고, 홍보하라고 명했다.
그럼 홍보부로서는 따를 수밖에 없었다.
“경찰 게임단도 공군에서 운영하는 게임단처럼 군 복무를 대체하는 팀으로 운영되는 겁니까?”
콘텐츠 제작 및 관리팀 팀장의 말에 종혁은 곧바로 입을 열었다.
“맞습니다. 일단 저희 홍보부에서 운영하는 게임단이 될 예정이지만, 사실상 확정이라고 보셔도 상관없습니다.”
현재 본청 조직들 가운데 홍보부 말고는 이를 담당할 곳이 없기 때문이다.
예산은 곧 편성될 예정이다.
“경찰 홍보팀장님.”
경찰 홍보단을 이끌고 있는 경찰 홍보팀.
“예, 부장님!”
“경찰 게임단을 맡아 주세요.”
“회의가 끝나면 곧바로 연락을 돌려 전, 의경들 가운데 프로게이머가 있는지 확인하겠습니다.”
“입대를 앞둔 1군, 2군들 가운데 데려올 만한 인재들이 있는지도 확인해 주십시오.”
“프로게이머를 꿈꾸다 경찰로 전향한 경관들도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좋은 의견입니다. 그것도 함께 진행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경찰 이미지 마케팅팀.”
“e스포츠 협회와 미리 이야기를 나눠 놓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부장님.”
워 스페이스의 게임 특성상, 대전 선수가 없다면 게임을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게임단이 경기에 나서려면 여러 게임단이 연합하여 만들어진 e스포츠 협회의 협조가 반드시 필요했다.
“그 부분은 제가 협의해 볼 테니 홍보 문구만 기가 막히게 뽑아 주십시오. 여론 조사 및 관리팀에서는 경찰에서 게임단 창설을 하는 데 여론이 어떤지 조사해 주시고요.”
“알겠습니다.”
“미디어 관리팀.”
“게임단이 창설되면 토크쇼 같은 예능에 출연할 수 있도록 방송국과 협의해 보겠습니다.”
종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부서원들을 둘러봤다.
“그럼 전 국방부 좀 다녀오겠습니다.”
어찌 됐든 결국 군 복무 문제. 이쪽이 아무리 뭘 준비한다고 해도 국방부에서 거부하면 의미 없는 일이 되어 버린다.
국방부와의 조율은 필수였다.
* * *
용산 이태원의 국방부.
차관실 앞에 선 종혁이 눈을 껌뻑인다.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됐더라…….’
분명 담당 부서장과 약속을 잡았는데, 어느 순간 그것이 차관과의 면담으로 바뀌게 됐다.
“에이. 뭐든 말만 통하면 되는 거지.”
머리를 긁은 종혁은 최재수를 봤다.
“긴급 예산안 자료는?”
“여기 있습니다. 부장님, 그런데 이게 먹힐까요?”
경찰 게임단 창설 때문에 갑작스럽게 편성된 예산. 그렇다 보니 예산안은 아무래도 허술할 수밖에 없었다.
“통하기를 빌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결국 시간 낭비를 하게 된 것이니 말이다.
“들어가자.”
문을 두드린 종혁은 안으로 들어갔고, 이내 곧 차관의 비서관이 그를 맞이했다.
“기다리고 계십니다.”
뒤이어 비서관이 안쪽의 문을 열었고, 종혁은 몸을 일으키는 장년인을 향해 거수경례를 했다.
“충성. 대한민국 경찰청 홍보부장 최종혁 총경입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하하. 국방부 차관 장수한입니다. 군인은 아니니 편하게 대해 주십시오.”
‘이 젊은이가…….’
종혁에게 자리를 권하는 장수한 차관의 눈이 빛난다.
박명후 대통령을 당선시키는 데 공을 세운 젊은 경찰.
얼마 전에는 세부 마약왕 김정식 사건으로 대통령의 지지율을 높이는 데에도 혁혁한 공을 세웠다.
어디 그뿐인가.
‘현몽준 당대표가 감싸고도는 경찰…….’
요즘은 홍정필 원내대표와도 친하게 지낸다는 말이 있다.
‘언제 한번 만날까 했는데…….’
이렇게 기회가 닿을 줄 몰랐던 장수한은 환한 미소를 지었고, 그 의미를 짐작하지 못한 종혁은 의아해하면서도 마주 웃어 주었다.
“경찰 내에서 대체 복무를 위한 e스포츠 게임단을 창설하고 싶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제가 맞게 들은 게 맞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e스포츠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나날이 증가하고 있기에 저희 경찰도 그에 발맞추어 움직이려고 합니다.”
“흠. 솔직히 경찰 야구단과 축구단에 대해 말이 있다는 걸 아십니까?”
“……알고 있습니다.”
경찰 야구단과 축구단.
국군체육부대, 상무처럼 아예 처음부터 그쪽으로 입대를 하는 게 아니다.
일단 의경으로 입대한 후 경찰 야구단과 축구단으로 재배치되는 거다.
즉, 그들의 신분은 엄연히 의경.
국민들의 안전과 치안을 담당해야 하는 게 그들의 일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훈련이 힘들어 치안 업무를 수행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들뿐만 아니라 같은 의경들 사이에서도 의경인데 쟤들은 왜 훈련만 하냐는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른바 특혜 논란이다.
“여기에 수영과 피겨 등의 종목까지 영역을 넓히며 욕을 두루 더 먹고 있죠. 인정합니다.”
“그런데도 e스포츠단까지 만들겠다라……. 너무 욕심을 부리는 거 아닙니까?”
“그렇기에 저희 경찰도 그에 대한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흠, 어떤 준비를 하고 있죠?”
“일단 가장 큰 문제가 되는 순찰 등의 치안 업무에 관한 것부터 손볼 예정입니다.”
아니다. 아직 이 문제에 대해선 언급되지 않았다. 그러나 종혁은 이 문제를 개선시킬 생각이었다.
전, 의경을 비롯한 대한민국의 국군 장병들은 모두 국가의 명령에 의해 학업이나 사회활동 등의 하던 일을 관두고 입대를 하는 거다.
그런데 다른 누군가는 특혜를 받고 있다? 불만이 나오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결국 이 문제들이 불거져 해체가 되지.’
일평생을 바치고 또 앞으로도 바칠 경찰 조직에 작더라도 잡음이 발생하는 건 종혁이 바라는 일이 아니었다.
“그 외에도 의경들과 국민들이 불만을 가지는 점들을 점차 개선해 나갈 예정입니다.”
“호오. 경찰의 의지가 강하군요. 이 부분 명시할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그래야죠. 맡겨만 주신다면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종혁은 그렇게 말하며 긴급하게 편성된 예산안을 내밀었고, 예산안을 살핀 장수한는 고개를 끄덕였다.
“흠. 알겠습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경찰 스포츠단의 문제점이 개선된 이후에 말이다.
더 말해 봤자 씨알도 먹히지 않을 걸 알아차린 종혁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곤 몸을 일으켰다.
“감사합니다. 그럼 다음에 또 찾아뵙겠습니다.”
“다음엔 식사라도 한 끼 하죠. 아니, 말 나온 김에 오늘 점심을 함께하는 건 어떻습니까? 혹시 대구탕 어떠십니까?”
“아, 업무 시간에 술 마시면 안 되는데요…….”
“하하하! 가시죠.”
종혁은 장수한과 함께 근처의 대구탕 맛집으로 향했다.
“어후. 이거 나이가 드니 낮술도 버겁군요. 그럼 다음에 또 봅시다.”
“옙! 들어가십시오!”
허리를 꾸벅 숙였다 편 종혁은 한숨을 내쉬며 담배를 물었고, 최재수가 불을 붙여 주었다.
“역시 잘 안 되네요.”
“어쩔 수 없지.”
공군 게임단이라는 선례가 있기 때문이다.
김요한을 영입하며 야심 차게 출발했지만, 썩 성적이 좋지 못한 공군 게임단. 그쪽도 굳이 존속을 시켜야 하냐는 말이 나오고 있는 중이었다.
“리그 꼴찌만 하는 팀, 왜 비싼 세금까지 퍼부어 가며 유지시키냐는 거겠죠.”
“그렇지. 그리고 이 문제는 우리도 피할 수 없고.”
“그래서 어떡하시게요?”
“최고의 감독과 코치진을 데려와야지.”
“올까요?”
“오겠냐…….”
연봉을 제대로 줄 수 없을 텐데 그 누가 올까. 잘해 봐야 2군 감독이나 코치들일 것이다.
최재수는 그런 종혁의 말에 눈을 가늘게 떴다.
“……이번 일, 마음에 안 드세요?”
만약 종혁에게 의욕이 있었다면 오겠냐가 아니라 오게 만들 거라고 말했을 거다.
“어, 안 들어.”
처참할 게 분명할 성적 때문이다.
“아침에야 그럴듯한 말로 꾸며 댔지만, 이 성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결국 시한부일 뿐이니까.”
한 번 할 때는 제대로 해야 되는데, 아무리 계산을 해도 시한부 말고는 답이 나오질 않는다.
“게다가 게임단이라는 것 자체부터 논란거리지.”
“논란거리요?”
“분명 다른 게임의 팀도 만들어 달라고 난리를 피울걸?”
“하아. 청장님께서 저희에게 똥을 무더기로 주셨네요.”
“어쩌겠냐. 그래도 해야지.”
세계경찰태권도 대회에 김정식 사건까지 일련의 사태들로 어깨가 하늘까지 승천한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가는 어떤 불이익을 당할지 모른다.
그 어깨를 종혁 자신이 세워 줬다고 한들 말이다.
‘분명 뒤에서 구시렁거리겠지.’
장희락 경찰청장이라면 앞에서 대놓고 구시렁거릴 거다. 그 꼴을 볼 바에는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해 주는 게 나았다.
“그래야 뭔 일 있을 때 발뺌하기도 좋고.”
물론 그러기 전에 반대 의사부터 확실히 전해야겠지만 말이다.
“에이.”
둘이 한숨을 내쉬던 그때였다.
지이잉! 지이잉!
“예, 박 팀장님. 무슨 일입니까?”
경찰 이미지 마케팅팀의 박동수 팀장.
-부장님, 아무래도 e스포츠 협회에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걔들은 또 왜요?”
종혁의 얼굴이 구겨졌다.
* * *
본청 홍보부로 복귀한 종혁은 박동수의 말에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다시 정리해 봅시다. 그러니까 애초부터 한국 e스포츠 협회에 중계권이 없었다는 말입니까?”
2000년대 초반 홀연히 나타나 스페이스 워를 여기까지 키워 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한국 e스포츠 협회.
그들이 주력으로 밀고 있는 게임은 스페이스 워였고, 한국 e스포츠 협회가 수많은 대기업들과 얽힐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스페이스 워 덕분이었다.
“아니, 계속 여러 방송사에서 리그를 중계했잖습니까.”
그중에서 MBS게임이라는 지상파 산하 게임 방송국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한국 e스포츠 협회는 스페이스 워의 제작사와 지적재산권 협상을 끝마치지 않은 채 무단으로 영리적 활동을 강행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2007년, 지금으로부터 3년 전 한국 e스포츠 협회에서 무단으로 자신들의 게임을 이용하여 중계권 사업까지 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한 스페이스 워의 제작사에서는 이를 지적해 왔다.
한국 e스포츠 협회는 원작자와 협의도 하지 않은 채 이를 이용하여 영리사업을 벌여 왔던 것이다.
이때라도 원만하게 지적재산권 협상을 끝마쳤다면 아무런 문제도 없었겠지만, 한국 e스포츠 협회는 협상에 소극적으로 나설 뿐만 아니라 협상을 끝마치지도 않은 채 계속 영리사업을 강행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럼…….”
“자칫 한국에서 열리는 모든 스페이스 워 리그가 중단될지도 모릅니다.”
아니, 어쩌면 한국에서 스페이스 워 게임 자체가 철수될 수도 있었다.
“지랄 났네.”
머리를 벅벅 긁은 종혁은 팀원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일단 이번 일의 향방이 정해질 때까지 경찰 게임단 창설에 관한 모든 업무를 무기한 중단합니다.”
“아오!”
“빌어먹을!”
“부장님! 이미 면접을 보러 오라고 공문을 보내 놨는데, 이건 어떡할까요?”
“……면접의 형태는요?”
“근처 PC방을 빌려 토너먼트로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조사해 보니 프로게임단 2군이라든가 프로게이머 지망생들이 꽤 많았다. 그렇다 보니 면접 겸 실력을 테스트하기로 했었다.
“일 처리가 너무 빠르신 거 아닙니까?”
“아하하.”
“후. 어쩔 수 없죠. 일단 테스트는 없던 일로 하되, 사죄의 의미로 가정의 달을 맞아 대회를 여는 걸로 합시다.”
위로 휴가와 포상금, 부모님과 가족들에게 줄 선물 등을 상품으로 걸고 대회를 여는 거다.
“인재 풀을 확인하자는 거군요?”
“어떤 인재가 숨어 있을지 모르니까요.”
프로게이머나 지망생들이 아니라도 그에 버금가는 실력자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프로젝트가 다시 진행될 때를 대비해 체크를 해 놓는 것이다.
“끄응…….”
“알겠습니다.”
프로젝트가 엎어져서 그런지 힘이 빠진 부서원들의 모습에 종혁은 혀를 찼다.
“에이. 그냥 오늘 업무는 여기서 마무리합시다!”
“헉?! 그래도 됩니까?”
“부장 직권입니다!”
“우와아아아아!”
“부장님! 부장님!”
종혁은 환호성을 지르는 부서원들의 모습에 피식 웃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걸 어쩌냐 진짜.’
답이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