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644화 (644/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644화>

121. 정당한 승부

기이이이잉!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인천공항.

샤론과 샬롯, 아니 지수가 서로의 손을 꼭 잡은 채 입국 게이트를 나선다.

초조함과 긴장이 역력한 둘의 얼굴.

“여깁니다!”

“최!”

“아저씨!”

환하게 웃으며 다가오는 둘을 살핀 종혁은 아쉬움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제가 미처 청혼 반지를 준비하지 못했네요.”

“……호호호호호!”

세부에서 봤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차림새. 깔끔한 원피스를 입고 점퍼를 걸친 둘의 모습에선 부티마저 흐르고 있었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지수였다.

붙임머리를 붙인 건지 날개 뼈까지 내려오는 웨이브 진 갈색 머리에, 허벅지 중앙까지 내려온 짧은 치마, 그리고 하얀 양말에 까만색 에나멜 구두.

치마가 어색한지 자꾸 내리는 그녀의 모습에 절로 미소가 피어난다.

빨갛게 달아오른 고개를 돌리는 지수의 모습에 샤론이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종혁을 본다.

“우리 딸 많이 예쁘죠? 예쁘면 데려가도 돼요, 최.”

“전 연상 취향이라서요. 근육질에 경찰인 남자는 어떻습니까, 마드모아젤? 참고로 돈도 많답니다.”

“흐음. 확실히 우리 샬롯도 새아빠를 가질 때가 됐죠?”

“엄마!”

“호호호호호!”

“하하하. 가시죠.”

둘을 데리고 인천공항을 빠져나온 종혁은 차를 몰아 어딘가로 향했다.

그곳은 바로 샤론의 사망한 남편인 오수현의 어머니가 입원한 병원이었다.

웅성웅성.

작은 소음들이 가득한 병실의 문 앞에 선 샤론이 잠시 발을 멈춘다. 그건 지수도 마찬가지다.

들어가도 되는 걸까.

이렇게 늦게 또 갑작스럽게 찾아왔는데 반겨 주기는 할까.

동남아 며느리에, 장성한 코피노 손녀.

무엇 하나 내세울 게 없는 짐 덩어리.

그냥 지금이라도 돌아가는 게 어떨까.

지금까지처럼 서로 모르고 살아가는 건 어떨까.

온갖 걱정과 생각들이 둘의 머릿속을 채운다.

종혁은 걱정 말라는 듯 그런 둘의 등을 떠밀었고, 종혁의 얼굴을 본 둘은 입술을 깨물며 병실의 문을 연다.

드르륵!

사과를 깎으며 TV를 보고 있다 고개를 돌린 오수현, 오지현 남매의 어머니, 입원을 하며 부쩍 얼굴이 좋아진 그녀는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가 과도를 떨어트린다.

“아…… 아아…….”

아들이다. 죽은 아들과 똑 닮은 소녀가 걸어 들어오고 있다.

“서, 설마…… 수현이 딸이니? 그, 그런 거니?”

난생처음 보는 할머니. 하지만 단숨에 알아보는 그녀의 모습에 지수는 울컥하고 만다.

“아, 안녕하세요, 할머니. 오지수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어머님. 수현 씨 여자친구 샤론이에요.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아아!”

후다닥 침대를 박차고 나온 그녀는 지수의 손을 잡으며 무너졌고, 병실에 따뜻한 슬픔이 가득 차오르기 시작한다.

병원 복도, 병실 안에서 터져 나오는 울음소리에 벽에 몸을 기댄 종혁이 서글피 웃는다.

오수현이 살아 있었다면 더 축복이었을 만남.

“후우.”

그렇게 3월이 지나가고 있었다.

* * *

쏴아아아아!

샤워기가 쏟아 내는 뜨거운 물줄기를 맞으며 샤워를 마친 종혁이 커피를 들고 거실의 베란다로 향한다.

틱!

-동해상에서 북한의 무력 도발을 우리 군이 무사히 막아 낸 지 열흘이 지난 가운데……

잠시 멈춰 선 종혁이 TV를 응시한다.

회귀 전 대한민국의 수많은 국민들을 슬프게 하고 분노케 했던 악몽 같았던 폭침 사건.

그로 인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했던 용사들의 수가 무려 수십여 명에 달했다.

그런 악몽이 다시 반복되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드르륵!

“벌써 봄인가?”

저 멀리 어느 집, 분홍빛 꽃잎이 만개한 커다란 벚꽃나무 한 그루와 창문을 뚫고 들어오는 따사로운 햇빛이 어느덧 봄이 왔음을 알리고 있다.

베란다의 테이블에 머그컵을 내려놓은 종혁은 거실 소파에 놓인 신문 뭉치를 들고 와서 밤사이 전 세계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살피기 시작했다.

사락! 호록!

신문 넘기는 소리와 커피를 마시는 소리만 울리는 고요한 베란다.

그 순간 갑자기 문이 열리며 눈을 감은 순희가 비척거리며 다가와 종혁에게 안긴다.

“어이쿠. 일어났어?”

아직 꿈나라를 벗어나지 못한 건지 고개만 끄덕이며 종혁의 품을 파고드는 순희.

그녀가 더 편히 잘 수 있도록 자세를 고쳐 준 종혁은 신문을 마저 읽었고, 곧 순철이 방에서 걸어 나와 소파에 드러눕는다.

그리고 그때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어머니 고정숙.

“희야, 이제 일어나야지? 학교 가야지?”

“이잉. 5분만요…….”

“씁. 늦잠 자는 사람 어떤 사람?”

“못생긴 사람…… 히잉.”

“어구구. 그래. 얼른 씻자.”

순희의 엉덩이를 토닥이며 화장실로 떠나보낸 고정숙이 고개를 젓는다.

“어휴. 저거 아침잠이 계속 늘어서 어떡하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고는 순희의 아침밥을 차릴 준비를 하는 어머니 고정숙의 뒷모습을 보며 종혁은 생각에 잠겼다.

아침 장사를 준비하느라 바쁠 텐데도 매일 아침 이렇게 순희를 깨우고, 아침밥을 차려 주기 위해 올라오는 어머니.

집에 있는 시간보다 없는 시간이 더 많은 탓에 자신이 집안일에 신경을 쓰지 못하는 만큼 어머니가 더 고생하는 듯하여 마음이 불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엄마, 그냥 가정부 아주머니 쓸까?”

“어이구, 됐네요. 사지 멀쩡한데 가정부는 무슨. 아, 그보다 엄마 이번 주 주말에 아줌마들이랑 꽃구경 가기로 했으니까 그렇게 알아.”

“아줌마들? 누구?”

“원래부터 친했던 아줌마들이랑 소영이 엄마, 현희 엄마.”

“운전기사 해 드려?”

“됐다. 상전 모실 일 있니? 그보다 그거 다 마신 거지?”

“여기요.”

머그컵을 받아 든 고정숙은 부엌으로 향했고, 종혁은 마저 신문을 읽다 밥 먹으라는 어머니의 외침에 몸을 일으켰다.

“응? 오늘 무슨 일 있습네까?”

정복을 차려입고 나온 종혁의 모습에 출근 준비를 마치고 현관에 서던 순철이 의아해한다.

“아, 정례 회의.”

두 달에 한 번씩 있는 정례 회의. 본청의 과장급 이상 간부들이 모여 하는 회의다.

“그게 오늘이었습네까?”

“하, 진짜 가기 싫다.”

“홍보부의 수장이 안 가도 되는 겁네까?”

“안 되지. 근데 오늘따라 더 가기 싫어.”

날이 따뜻해져서 그럴지도 모른다. 분명 얼마 전 세부로 여행을 다녀왔음에도 늘어져 쉬고 싶은 마음뿐이다.

“안식년을 가져야 하나.”

“불가능한 이야기는 하지 마시라요.”

“지미럴.”

“큭큭큭. 욕보시라요.”

띵! 스르릉!

지하 1층에서 열리는 문.

“그럼 오늘도 수고하고.”

“옙! 형님도 수고하시라요!”

순철과 헤어져 지하 2층으로 향한 종혁은 차를 몰고 본청으로 향했다.

* * *

웅성웅성.

정복을 입은 과장급 이상 간부들이 모인 본청의 대회의실.

“왔어?”

“여, 최 부장.”

아침이라 그런지 졸음이 남아 있는 간부들의 얼굴.

“충성. 충성.”

“최 부장-!”

피부가 까맣게 탄 함경필 국장과 백이도 과장이 달려온다.

김정식을 검거한 공로로 인해 5박 6일의 휴가를 받은 그들. 동남아로 가족 여행을 간다더니 제대로 즐기고 온 것 같다.

“자, 이건 최 부장 선물!”

“하하, 감사합니다.”

‘태국으로 갔나 보네.’

태국의 대표 관광 상품인 비누 공예품과 호랑이 연고.

“여행은 좀 어떠셨어요? 즐거우셨어요?”

“엄-청! 최 부장, 참치 낚시는 해 봤어?”

“안 해 봤으면 다음에 같이 가자. 손맛이 이게…… 크으!”

“설마 두 분은 낚시만 한 거 아니죠?”

“……흐흐. 딱 쇼부 봤지!”

“상여금을 딱! 주면서 어?”

“에라이.”

“에라이가 아니야. 결혼 연차가 우리 정도 되면 곁에 없어 주는 게 돕는 거야.”

“그래. 이거 정말 대단한 팁이다. 새겨들어.”

종혁은 고개를 저으며 자리에 앉았고, 곧 장희락 경찰청장이 대회의실 안으로 들어오며 어수선한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간부들을 둘러본 장희락은 앞자리에서 자리를 지키는 종혁을 발견하곤 입술을 꿈틀거렸다가 이내 헛기침을 한다.

“그럼 회의를 시작하지. 첫 번째 안건이 뭐지?”

“북한에서 넘어온 황상엽 씨에 대한 비밀 경호에 관한 안건입니다.”

11년간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 의장으로 재직하다가 탈북하여 대한민국으로 망명한 인물, 황상엽.

북한의 거물이 망명한 지 벌써 13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국정원과 수사기관 모두 촉각을 곤두세우는 중이었다.

황상엽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파리지옥, 암살을 하러 오는 남파 간첩들을 잡아낼 파리지옥이기 때문이다.

“현재 비밀 경호를 맡고 있는 서울청의 경관들이 피로를 호소하고 있으며…….”

앞으로 두 달간 경찰 조직의 향방을 좌우할 정례 회의가 시작됐다.

“……이상입니다.”

장희락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홍보부?”

마이크를 넘겨받은 종혁이 입을 연다.

“5월 가정을 달을 맞아 아청과와의 협력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본청을 비롯한 전국 아청과와 협력을 하는 프로젝트로…….”

학교 폭력과 가정 폭력, 밤길 조심 캠페인을 벌일 예정이다.

또한 구청과 연계해 소외계층의 가정 실태를 조사함으로써 경찰이 도울 수 있는 부분이 있는지 조사할 방침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일에 치여 가족들과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경관들을 선별하여 상여금과 휴가를 증정하며 가족과 친해질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이것을 홍보할 예정입니다.”

경무과, 인사과와는 모두 협의가 끝난 일이다.

“……선별 기준은?”

어디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경찰이 한둘이겠는가. 가족들과 제대로 된 시간을 보내지 못하고 있는 건 대부분의 경찰이 마찬가지였다.

“작년 한 해 야근계를 가장 많이 올린 경관들을 대상으로 재산과 자녀 숫자 상황, 주변 평판까지 모두 따질 생각입니다.”

“나쁘지 않군.”

“참고로 경정 이하 젊은 경관들을 대상으로 선별할 예정이니 총경 이상 되시는 분들께선 꿈 깨 주시길 바랍니다.”

“아, 왜!”

“너무하다! 우린 경찰 아니냐!”

“돈도 벌 만큼 버는 분들께서 쪼잔하게 이러지 맙시다.”

“에이.”

툴툴거리는 간부들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인 장희락은 종혁을 보며 입술을 달싹였다.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한 모습.

종혁의 눈이 가늘게 떠졌다.

‘또 뭔 말을 하려고?’

“크흠. 최 부장, 혹시 컴퓨터 게임 같은 거 하나?”

“예, 뭐…… 친구들과 만날 때나 회식 때 소소한 내기 형식으로 하고 있습니다.”

“역시 젊은 사람은 다르군! 그럼 어떤 게임이 인기가 많나?”

“음…… 아무래도 가장 오랫동안 사랑을 받은 게임이라고 한다면, 스페이스 워라고 생각합니다.”

“오호, 그래? 그러면 말인데…….”

대체 무슨 말을 하려기에 이렇게 뜸을 들이는 것일까.

잠시 고민한 종혁은 이내 장희락의 뜻을 짐작했다.

‘아하, 태권도 대회로 재미 좀 보셨다 이거지?’

세계경찰태권도 대회로 많은 이득을 보고는 이런 걸 생각해 낸 것 같다.

“경관들을 대상으로 게임 대회를 기획하면 되겠습니까?”

각 지청, 지서들끼리 상여금과 인사고과를 두고 붙으면 꽤 피 튀기는 혈전을 볼 수 있을 듯하다.

“아니, 그게 아니라…….”

종혁은 이어지는 장희락의 말에 잠시 귀를 후볐다.

자신이 맞게 들은 게 맞는 걸까.

하지만 장희락의 얼굴엔 진심만 가득했다.

종혁은 입을 떡 벌렸다.

* * *

“오셨습니까!”

“좋은 아침입니다!”

“예. 다들 좋은 아침입니다.”

좋은 아침이 아니다.

오늘 정례 회의에서 장희락 경찰청장이 똥을 무더기로 안겨 줬기 때문이다.

“부장님! 방송국에서 선물을 보내왔습니다.”

“선물이요?”

“김정식 사건 때문에 시청률이 많이 올랐다면서 보내왔습니다.”

김정식을 인식하고, 검거하기까지의 모든 기록을 방송국에 넘긴 본청 홍보부.

모두 전 국민이 알게 하고 싶다는 종혁의 의지 덕분이었고, 덕분에 시사 프로그램 사상 최초로 40퍼센트가 넘는 시청률을 달성하게 됐다.

순간 시청률이 가장 높았을 때는 부회장이 테러범들을 이끌고 종혁들을 습격했을 때였다.

그리고 시메온 아키노 의원이 전하길 현재 필리핀에서 재판을 앞둔 김정식은 최소 30년 형이 내려질 거라고 했다.

필리핀에서 30년, 한국에서 최소 20년. 도합 50년.

김정식과 군마파 조직원들은 아마 죽고 나서야 교도소를 벗어나게 될 것이다.

그것이 김정식에게 내려질 벌이었고, 정만근을 비롯한 관련자들도 최소 10년 이상의 징역을 받게 될 것이라고 전해 왔다.

“……박카스네요?”

“석류 음료랑 매실 음료, 신화호텔 뷔페 이용권도 있습니다.”

“오, 방송국에서 제법 돈 좀 썼네요. 그건 콘텐츠 제작 및 관리팀에서 쓰도록 하세요. 고생하셨잖아요.”

“어휴. 저희가 고생한 게 있나요. 모두 다…….”

종혁 덕분이었다. 이렇게 김정식을 검거하고 그 모습을 촬영할 수 있었던 건 말이다.

그 긴박했던 상황을 떠올리며 울상을 짓는 콘텐츠 관리 및 제작팀 팀장의 어깨를 두드린 종혁은 자리에 앉으며 관자놀이를 눌렀다.

“오늘 회의에서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있었지.”

아주 큰일이 있었다.

최재수를 일견한 종혁은 홍보부 부서원들을 둘러봤다.

봄이라 몸이 쳐질 텐데도 아침부터 열의를 가지고 일하는 부서원들.

“대체 무슨…….”

한숨을 폭 내쉰 종혁은 손뼉을 쳤다.

“자, 다들 주목!”

부서원들의 시선이 모이자 종혁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청장님께서 저희 홍보부에 특명을 내리셨습니다.”

특명이란 말에 모두의 시선이 진지해진다.

“일단 그 특명이 뭔지 말하기에 앞서…… 다들 스페이스 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2000년대 초반부터 수많은 이들을 PC방에 불러들였던 국민 전략게임, 스페이스 워.

“아, 설마 스페이스 워 게임 대회를 기획하라는 겁니까?”

“아뇨. 경찰 게임단을 만들라고 하십니다.”

경찰 야구단, 경찰 축구단과 같은 스포츠 선수들의 대체복무용 e스포츠단을 말이다.

“……예?”

잠시 멍해졌던 부서원들은 이내 종혁의 얼굴을 보곤 종혁이 아까 그랬던 것처럼 입을 떡 벌렸다.

홍보부에 골치 아픈 일이 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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