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642화 (642/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642화>

    휘이잉!

    샌 페르난두의 숲 어딘가. 어디선가 푸른 바람이 불어와 땀을 식히자 한 동양인 사내가 잠시 멈춰 서서 거칠어진 숨을 몰아쉰다.

    빼빼 마르고 검게 탄 피부에 죽은 눈.

    그뿐만이 아니다. 이곳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의 눈이 죽어 있다.

    영원했으면 하지만, 순간이면 끝날 잠시의 숨 돌림.

    털썩!

    커다란 포대 자루가 쓰러지는 소리에 고개를 돌린 사내는 뜨거운 열기가 쏟아져 나오는 한 건물 앞, 바닥에 쓰러진 노인을 무심히 바라본다.

    쫘악! 쫙!

    “일어나, 이 버러지야!”

    노인을 향해 쏟아지는 채찍질.

    이제 고작 16살이나 됐을까. 그런 소년이 채찍질을 하는데 그 누구도 말리지 않는다.

    아니, 말리기는커녕 애써 시선을 피한다.

    노인은 간헐적으로 떨기만 할 뿐 일어나지 않았고, 채찍질을 하던 악마는 이내 노인의 코에 손가락을 가져다 댄다.

    “에이, 죽었네. 카악, 퉤!”

    오늘도 한 목숨이 허무히 스러졌지만, 그 누구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이 지옥을 벗어난 동료를 부러워할 뿐이다.

    그건 사내도 마찬가지다.

    “거기 너희, 너희! 이 새끼 치워!”

    지목을 받은 사내와 또 한 명의 사내는 느릿하게 다가가 노인의 양팔과 양다리를 붙든다.

    그리고 익숙한 일이라는 듯 숲 깊숙한 곳으로 향한다.

    어느 순간부터 코를 찌르는 지독한 악취.

    구덩이 앞에 선 두 사내가 잠시 노인을 내려놓고 노인의 양손을 하나씩 붙잡는다.

    ‘이제 편해지셨나요?’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어르신.’

    “부디 다음 생엔 부자로 태어나시길.”

    “부디 아프지 마시길.”

    짧게나마 염을 한 사내들은 노인을 구덩이에 밀어 넣는다. 이미 해골들이, 썩어 가는 시신들이 있는 구덩이 속으로.

    잠시 구덩이를 바라보던 사내들이 몸을 돌린다.

    “이봐.”

    “응? 어? 그건?”

    한 사내가 바지춤 안에서 꺼내 드는 담배꽁초에 다른 사내의 눈이 크게 떠진다.

    “그, 그거 어떻게 구한 거야?”

    “페드로가 두 모금만 빨고 버리는 걸 주워 뒀지!”

    페드로는 방금 전 노인에게 채찍질을 하던 소년 악마의 이름.

    “부, 불은?”

    “여기!”

    사내는 구덩이 근처의 작은 바위를 젖혀 옷가지에 싸여 있는 라이터를 보여 줬다.

    “미, 미쳤어! 그러다 걸리면 어떡하려고!”

    “그러니까 여기다 숨겨 둔 거지! 쉿! 어서 피우자.”

    사내는 저 멀리 총을 들고 있는 감시자를 가리켰고, 둘은 커다란 나무 뒤에 숨어 담배에 불을 붙였다.

    “아…….”

    몇 년 만에 마시는 담배 연기일까.

    두 사내는 몸을 휘청이더니 엉덩방아를 찧으며 해롱거렸다.

    “영감님…… 좋은 곳으로 가셨겠지?”

    “어디든 여기보다 좋은 곳이겠지.”

    그곳이 설령 저승의 지옥이라도 여기 이곳, 이승의 지옥보다는 편할 것이다.

    부디 그러길 바라며 담배를 끝까지 피운 둘은 몸을 일으켜 내키지 않는 걸음을 옮긴다.

    더 늦었다가는 채찍 세례가 쏟아질 테니 얼른 가야 했다.

    그렇게 다시 돌아온 이승의 지옥.

    사내의 눈이 노인이 쓰러진 건물을 잠시 응시한다.

    ‘누가 저곳에 들어갔을까.’

    일손이 한 명 죽었으니 지금쯤 자신들 사이에서 한 명이 차출됐을 터.

    저 뜨거운 열기를 쏟아 내는 죽음의 불구덩이에 들어갈 어느 동료를 떠올리며 안쓰러워하던 사내는 마약밭으로 향하다 멈춘다.

    삐익! 삑!

    고막을 꿰뚫는 호각 소리.

    식사 시간이었다.

    사내는 다시 몸을 돌려 한 목조 건물로 향하여 줄을 선다.

    그런 그에게 쥐어지는 더러운 스테인리스컵 하나.

    “허튼짓하면 죽여 버린다.”

    “……예.”

    고작 스테인리스컵 하나로 뭘 할 수 있을까.

    사내는 한숨을 내쉬며 배식대로 향했고, 이윽고 그의 손에 정체 모를 꿀꿀이 죽 한 컵과 감자 한 덩이가 들린다.

    오늘도 변함이 없는 메뉴.

    근처에 엉덩이를 뭉개고 앉은 사내는 버티기 위해 감자를 씹어 삼켰다.

    ‘아빠…….’

    오늘따라 한국에 계신 아빠가 보고 싶었다.

    다른 곳보다 밤이 일찍 찾아오는 숲.

    악마의 노예들은 해가 완전히 저물자 커다란 목조 건물로 밀어 넣어진다.

    수십 명이 한 건물 안에 밀어 넣어졌음에도 소음 하나 일어나지 않는 숙소. 모두 그저 거적때기 위에 눕기 바쁘다.

    쾅!

    문이 닫히며 어둠이 더 짙어지자 어디선가 한숨이 터져 나온다.

    “후우.”

    “하.”

    오늘만 두 명이 죽었다.

    지난 일주일 동안 죽어 간 사람이 무려 다섯 명.

    ‘다음 달이면 열 명이 납치되겠지.’

    “흐윽!”

    또 어디선가 울음이 터져 나왔지만,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다. 마음 여린 누군가를 신경 쓰기엔 오늘 하루의 노동이 너무도 고달팠기 때문이다.

    먹은 것조차 없어 눈앞이 아찔한 데 무얼 신경 쓸 수 있을까.

    그리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저렇게 우는 누군가도 한 달이 지나면 자신들과 똑같아진다는 걸 말이다.

    죽음 혹은 순응.

    어차피 자신들에게 이 두 가지 외에 다른 길은 없기에 사내는 옆에서 울고 있는 부모에 의해 팔려 온 소년의 손을 꼭 잡으며 눈을 감았고, 소년은 매일 말없이 위로해 주는 사내의 온기에 기대어 하염없이 울다가 잠들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털썩!

    바깥에서 들리는 포대 자루 쓰러지는 소리.

    너무도 익숙하지만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 소리에 눈을 뜬 건물 안 사람들이 바깥을 응시하며 몸을 움츠린다.

    그와 동시에 고깃덩이를 가르는 칼날의 소리.

    푸욱!

    “……커허어!”

    ‘……?!’

    숨이 빠져나가는 소리에 화들짝 놀란 사람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서로 뭉치며 문밖을 빤히 응시했다.

    * * *

    “들어가! 빨리 안 들어가?!”

    퍼억!

    마지막 노예의 엉덩이를 걷어찬 소년 악마 페드로는 흙바닥에 깐 거적에 눕기 바쁜 노예들을 둘러보며 비릿하게 웃는다.

    이 얼마나 다행이란 말인가.

    자신이 저곳에 있지 않아서…….

    자식을 팔아넘길 만큼 부모가 막장이지 않아서…….

    한가롭게 여행을 다닐 만큼 풍족하지 않아서…….

    정말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하나둘…… 응? 아, 오늘 두 마리 죽었지.”

    슬그머니 도발을 하며 기대 어린 눈빛을 지었던 페드로는 반응은커녕 눕기 바쁜 노예들의 모습에 얼굴을 구겼다.

    “병신 같은 새끼들.”

    쾅!

    문을 닫은 페드로는 소총을 어깨 뒤로 돌리며 노예 숙소 문 옆 나무상자에 걸터앉으며 담배를 꼬나문다.

    “후우우.”

    “수고했어, 페드로.”

    “너도 수고했어, 대니.”

    달칵! 치이익!

    동료가 넘기는 캔맥주를 입으로 가져간 페드로는 입맛을 다셨다.

    미지근해서 개오줌 같은 맥주.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자신들 같은 따까리들에겐 이 정도도 감지덕지이니 말이다.

    아니, 도시에 살 땐 꿈도 못 꿨던 닭튀김이나 소시지를 먹을 수 있다는 건 정말 축복이었다.

    ‘고작 노예 몇 놈 관리하는 걸로 이런 음식을 배불리 먹을 수 있다니!’

    정말 여긴 천국이었다.

    “크으! 좋다. 야, 한 캔 더 줘 봐.”

    “적당히 마셔. 오늘도 술에 취해 뻗어 버리면 루지 형님이 가만있지 않을 거야.”

    움찔!

    루지. 그들 같은 밑바닥 조직원들을 관리하는 중간 간부다.

    -와하하하하!

    저 멀리 웃음소리가 흘러나오는 갱단원 숙소들을 힐끔 쳐다본 페드로는 애써 외면하며 뻗은 손을 흔들었다.

    “……걱정 말고 주기나 해.”

    “에휴. 여기. 딱 이것까지야.”

    ‘쳇. 번을 서는 다른 형님들은 맨날 술에 취해 있는데.’

    술에 취해 있기만 하면 다행이다. 몰래 빼돌린 약에 취해 해롱거리다 새벽에 깨는 선배들도 많다.

    “그런데 아까 나간 형님들이 늦네.”

    웬 경찰을 죽이러 간다고 오전에 나갔던 형님들.

    “부회장님이 회포를 풀어 주나 보지.”

    “……여자 끼고 놀겠지?”

    “마사지까지 풀코스로 놀고 있을 거다.”

    그리고 내일 오후쯤에나 느긋이 복귀할 거다.

    “빌어먹을. 졸라 부럽네.”

    하지만 자신들 같은 말단은 꿈도 꿀 수 없는 일.

    혀를 찬 페드로는 다시 맥주를 입에 가져갔고, 씁쓸히 웃은 대니도 맥주를 입에 가져갔다.

    그러곤 스마트폰을 꺼내 든 둘은 시간을 때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내일은 비가 오려나.’

    시꺼먼 구름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달.

    듬성듬성 켜진 조명이 아니면 한 치 앞도 안 보일 늦은 밤이 되자 꾸벅 졸다 일어난 페드로가 마찬가지로 나무상자에 앉아 졸고 있는 대니를 일견하며 노예 숙소의 뒤로 돌아간다.

    지이익! 쏴아아아아!

    “어흐.”

    찰칵! 치이익!

    터질 듯한 방광을 비운 뒤 담배를 문 페드로는 다시 있던 자리로 복귀했다.

    그 순간이었다.

    와락!

    “흡?!”

    등 뒤에서 튀어나와 입을 틀어막는 우악스런 손길.

    푸욱!

    ‘어?’

    뜨거운 무언가가 가슴살을 가르며 심장을 파고들어 헤집자, 그는 단숨에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깨닫게 되었다.

    ‘왜, 왜? 내가 죽어야 해? 왜 내가…….’

    지독히도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빈민가를 전전하다 이제야 갱단에 들어와 먹고살 만해진 지금, 이제야 삶이 좋아지는 지금, 왜 하필 이 순간 자신이 죽어야 한단 말인가.

    저 숙소 안에 있는 버러지들이 아니라 자신이 왜…….

    푸우욱!

    “커어어…….”

    갑자기 어둠 속에서 튀어나와 대니의 입을 가르더니 등을 찌르는 검은 옷의 누군가.

    그것이 페드로가 기억하는 마지막 장면이었다.

    “찰리. 클리어. D 포인트로 이동하겠다.”

    -라져.

    귓가에서 손을 내린 두 검은 옷의 요원들, 필리핀 갱단들의 악몽인 필리핀 경찰 특수부대(SAF, Special Action Force)의 대원들은 소년들의 시신을 건물의 그림자에 숨기며 약속된 포인트로 이동했다.

    그와 동시에 그들의 머리 위, 이 작은 마을 같은 공간의 중앙에 있는 첨탑에서 들리는 무언가 터지는 소리들.

    퍽! 퍽!

    -저격 성공. A 포인트 클리어.

    동료의 믿음직한 목소리에 미소를 지으며 이동한 그들이 멈춘 곳은 나란히 붙어 있는 세 개의 건물 앞이었다.

    곧이어 어둠 속에서 사신들이 기어 나와 세 개의 건물 앞에 선다. 이는 즉, 이 세 건물을 제외하고 다른 곳에 있던 모든 카르텔 갱단원들이 제거됐다는 뜻.

    그리고…….

    달칵!

    그들의 손에 쥐어져 안전고리가 뽑히는 최루탄과 섬광탄.

    ‘3, 2, 1!’

    벌컥!

    동시에 세 숙소의 문을 연 그들은 최루탄과 섬광탄을 안으로 던지며 문을 닫았다.

    뻐어어엉!

    “크악!”

    “으아악!”

    안에서 아비규환이 펼쳐지자 방독면을 쓴 저승사자들은 소총을 앞세우며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엎드려! 엎드려!”

    “움직이지 마!”

    김정식이 숨기고 있던 비밀이 탄로 나는 순간이었다.

    * * *

    타다당! 타다당!

    “악!”

    “흐윽!?”

    서로를 끌어안은 사람들이 몸을 움츠리며 귀를 막는다.

    지옥. 바깥은 지금 지옥이다.

    대체 누가 쳐들어온 걸까.

    아니면 서로 싸우는 걸까.

    자신들도 죽는 걸까.

    뭐든 어서 이 시간이 지나갔으면 하며 그들이 공포에 질리는 순간이었다.

    벌컥!

    “으악!”

    “헉!”

    갑자기 문이 열리며 쏟아지는 불빛들.

    자지러지는 사람들의 귀로 경악이 가득한 음성이 들린다.

    “최…… 승경 씨?”

    번쩍!

    한국어. 한국어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이다.

    다급히 고개를 든 남성은 불빛이 치워지며 다가오는 사람의 모습에 숨을 삼켰고, 그의 앞에 선 종혁은 이를 악물었다.

    “구하러 왔습니다, 최승경 씨. 경찰입니다. 이제 그만 한국으로 돌아가시죠.”

    “아…….”

    최승경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 * *

    “우욱!”

    “이런 개씨발…….”

    어느새 밝아진 하늘, 시신이 유기되는 구덩이 앞.

    아무렇게나 유기된 시신이 아무렇게 썩어 가는 목불인견의 참상.

    “뭐해! 똑바로 안 찍어!”

    현세의 지옥에서 고통을 받다 비명에 죽어 갔을 피해자들.

    오지 않는 경찰을 얼마나 기다리고 원망했을까.

    가족을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

    그들의 한을 생각하면 단 한 컷이라도 허투루 찍을 수 없다. 단 한 컷이라도 놓치면 안 됐다.

    대한민국 경찰청 홍보부, 자신들은 이 모습을 경찰과 국민에게 전달해야 될 의무가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종혁의 호통에 이제 고작 28살이 된 막내 팀원은 눈물을 흘리며 카메라를 들고, 종혁은 필리핀 경찰들이 구해다 준 향에 불을 붙인다.

    “인사드립시다.”

    너무 늦어서 죄송하다는 사과의 인사를.

    구해 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는 사죄의 인사를.

    한국 경찰들은 두 번의 절을 했고, 필리핀 경찰들은 허리를 숙인다.

    ‘더 빨리 오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까드득! 뿌드득!

    주체할 수 없는 분노를 삭이며 애써 망자에 대한 예를 표한 종혁은 하얀색 방역복을 입은 채 움직이기 시작한 필리핀 경찰 감식반을 뒤로하며 필리핀 경찰 특수부대 SAF의 대장에게 다가갔다.

    피해자들 사이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그.

    종혁은 앉아 있다가 몸을 일으키려는 한국인들에게 앉으라며 손짓하고는 대장에게 손을 내밀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아닙니다. 덕분에 이놈들을 일망타진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도 어렴풋이 소문으로만 들었던 세부의 카르텔, 장막 뒤의 배후.

    그 어디서도 찾을 길이 없어 애만 태우던 차에 한국에서 온 경찰들 덕분에 검거할 수 있게 됐다.

    “역시 선진국 한국은 달라도 다르군요.”

    설마하니 CIA와 SVR을 움직일 줄은 생각도 못했다.

    “하하. 아닙니다. 아, 그보다 한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어떤?”

    “이번 검거, 언론에 노출시키는 걸 하루만 늦춰 주실 수 있겠습니까?”

    “아……!”

    대장의 눈이 빛나자 종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대가리가 튀기 전에 잡아야죠.”

    “하하. 알겠습니다. 그 정도는 당연히 들어 드려야죠.”

    “감사합니다. 그럼.”

    거수경례를 하고 몸을 돌린 종혁이 한국 경찰들을 둘러본다.

    “갑시다.”

    김정식. 이제 놈을 잡으러 갈 차례였다.

    종혁과 경찰들의 얼굴이 끔찍한 살의로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0